2023. 7. 27. 03:21




—뭐라고 말해야 할 진 모르겠지만.
좋아합니다. 저와 평생을 함께해 주세요.

이게 아닌데. 이미 평생을 함께 하고 있잖아.

—좋아해요. 저와 결혼해주세요. 행복하게 해줄게요. 진심으로.

으아아아아! 프로포즈란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그냥 결혼해달라고 하면 안돼? 너무 복잡하지 않음? 오소마츠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가 방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머리를 굴리던 그때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움찔하며 멈추자 문을 열고 카라마츠가 들어왔다.
"뭐 하는 건가, 오소마츠. 방에서 뒹굴거릴 거라면 잠깐 같이 산책이라도 하자."
"산책? 그럼 나간 김에 빠칭코..."
"그럼 안 되지, 오소마츠. 빠칭코를 가면 나이스한 나를 눈에 담을 시간이 줄어들어버린다만."
"뭐래는 거야. 아무튼, 알았어. 어디 마주 앉아서 오래도록 널 보고 있을 테니까. 발길 닿는 대로 가보자고."
오늘 프로포즈를 하기는 글렀네 생각하며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앞세워 집을 나섰다. 사귄다고 해도, 연인이 됐다고 해도, 손을 잡는 건 여전히 어려웠다. 사람이 드문 데서야 겨우 손을 잡고, 충동적이던 첫 키스 이후에는 눈치를 봐가며 입을 맞춰선지 의외로 그렇게까지 많은 키스나 애정 행각을 나눠보질 못했다. 어쩔 수 없지 뭐, 라고 전에 카라마츠는 체념한 투로 말했다. 너무 많은 걸 바랄 수는 없다며 제 나름은 시원한 투로 이야기하는 그도 사실은 아쉬워 하는 걸 오소마츠는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래서 제 맘대로 안거나 할 수 없었다. 카라마츠는 의외로 조심스럽구나. 평소에는 그렇게나 무방비하고 쉽게 다가오는 녀석이건만, 오소마츠에게 고백하는 것만은 오래도록 망설여왔다고 했다. 오소마츠가 먼저 고백하고 나서야 털어놓은 제법 오래된 카라마츠의 연심은 그의 안에 여전히 갇혀있는 듯 했다.



"결국은 여기밖에 없나~ 너도 참 여길 좋아한다니까."
"여기서 오소마츠가 고백해주지 않았나. 좋아할 수밖에 없지."
특별할 거 없는 강둑에서 나란히 앉아 손을 잡고서,  서로를 보며 덤덤히 이야기하는 이 장면을 카라마츠는 꿈꿔왔을까. 어느 날, 카라마츠의 마음을 눈치채고서는 모른 척 할 수 없어서, 오늘처럼 고민했었던가.

—어떻게 하지. 사내 새끼가, 그것도 얼굴부터 똑같은 쌍둥이 동생이 날 성적으로 좋아하는 거 같은데?! 잠, 잠깐. 이거 거짓말이지? 내가 잘못 생각한거지?

알고 있었다. 잘못 생각한 게 아니라는 건. 카라마츠가 겨우겨우 드러내지 않던 마음을 알아채버린, 발렌타인데이 며칠 전에 있던 작은 사건. 카라마츠 본인과는 인연 없을 것만 같던 커다란 제과점에 스스로 걸어들어가길래 맛있는 걸 사면 뺏어먹을 생각으로 몰래 뒤따라 들어가 뒤쪽에서 깜짝 놀래켜주려던 그때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 상자를 집어들며 '오소마츠는 이런 거 좋아할까'라며 중얼거린 그 일을. 오소마츠는 놀라서 다른 진열대로 뒷걸음질쳐 그대로 아래로 숨어버렸다. 카라마츠는 그 초콜릿을 사지 않았고, 혹시나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 선물을 고르러 온 걸까 하는 가능성은 역시나 발렌타인데이를 빈손으로 마침으로써 사라지게 되었다. 그 뒤, 오소마츠의 눈길이 카라마츠를 좇게 되었다. 왜 나를, 형제가 아닌 다른 의미로 좋아하게 된 거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아마도 카라마츠는 거짓말을 했을거다. 고등학생 시절의 카라마츠라면 눈을 피하며 무슨 소리냐고 했을 거다. 성인이 된 카라마츠라면 '나는 모두를 사랑한다제! 에브리바디 러브!' 같은 소리를 지껄였을 거다. 아니면, 정말, 혹시나 오소마츠 자신이 잘못 짚었을까 두려워서. 어쩌면, 그렇게 물어보는 것으로 오소마츠도 제 마음이 확정되는 게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런 날들이 지나고 지나 여러 해를 거치며 둘의 마음은 오래도록 숙성되어갔다. 카라마츠는 제 마음을 숨기는 덴 능숙해져갔지만 견딜 수 없는 날이면 오소마츠를 피해버렸다. 오소마츠는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을 때마다 카라마츠의 꿈을 꿨다. 꿈을 꾸는 그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에 대한 확신이 섰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을 피하는 카라마츠를 강둑에서 붙잡고 바닥에 넘어뜨린 채 엉망진창인 고백을 카라마츠에게 해버렸다. 무슨 말을 해댔는지 그 모두를 제대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랑 하자는 말을 내뱉고 바로 미안하다며 사과했던 것만은 뚜렷이 기억한다. 내려다본 카라마츠의 눈에서 조용히 눈물이 흐르기에 오소마츠는 저질러버렸구나 하고 어쩔줄 몰라했는데, 카라마츠는 손을 내밀어 오소마츠의 뺨을 쓰다듬으며 고맙다고 말하며 웃었다. 바로 둘의 몸과 입술이 포개졌다. 그런 강렬한 고백의 장소지만, 창피한 기억일지도 모르는데 카라마츠는 자주 이 곳을 데이트 장소로 골랐다.
"고맙다. 오소마츠라면 마음껏 사랑을 나누고 싶을텐데, 나 때문에 많이 참아주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사람을 성욕에 미친 사람 취급하지 말아줄래. 뭐어, 지금은 여러모로 참고 있긴 하지만. 나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아껴주고 싶어하는 면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지 뭐야. 멋지지."
"그래, 그래. 멋있어, 오소마츠."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심인 양 부드럽게 말하는 말투라니.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역시 슬슬 독립을 해야하나 싶어. 독립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복잡하지만, 우리 둘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오소마츠가 참는 것도, 내가 눈치보는 것도, 너무 오래 끌고 싶진 않다."
잠깐, 이거 프로포즈 아님? 지금 선수치기를 당한 건가? 싶어 오소마츠는 살짝 당황했지만, 한숨을 쉬며 오소마츠가 아닌 강가의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는 카라마츠에 살짝 안도했다. 돌아오는 길은 그냥 평소처럼 걸었다. 저녁 반찬은 뭘지, 또 둘이 같이 들어오냐며 아니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형제들에게 뭐라고 할지 등의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하며.



집에 와서 식사를 하고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뒹굴거라는 평소와 같은 저녁시간을 보내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오소마츠는 프로포즈를 어떻게 할지 줄곧 고민했지만 도저히 멋들어지게 구상이 나오지 않았다. 괜히 안달이라도 난 듯 뜨거워지는 자신을 탓했다. 잠이 오지 않아 눈을 뜨고 바라본 창문에 오늘은 커튼이 치는 걸 모두  깜빡해서 달빛이 새어들어왔다. 아, 이젠 고민하는 거 그만둘래. 그대로 이불을 빠져나와 카라마츠를 깨웠다. 카라마츠도 잠에 들지 않았던 건지 바로 이불 밖으로 나왔다. 조심히 오소마츠가 지붕으로 올라가면 카라마츠도 그 뒤을 따라 올라왔다. 달빛 아래서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안았다. 지나가는 누가 보면 어떠랴. 둘은 이어 키스를 했다. 밤공기가 선선해서 기분이 좋았다. 둘의 혀와 입술이 떨어지고 강둑에서처럼 나란히 앉아 손을 잡았다. 달과 얼마 보이지 않는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잠시 보다가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왼손을 자신의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지금 당장은 없는 반지 대신으로 카라마츠의 왼손 약지에 입맞춤을 했다. 카라마츠의 손을 줄곧 들어올린 채, 오소마츠는 고민을 던져버리고 이야기한다.
"평생 내 것이 되어줘, 카라마츠."
카라마츠는 말이 없다. 다만, 고백을 한 그 때처럼 또 눈물을 조용히 흘리면서 미소를 짓는다.
"평생 네 것이 될게, 오소마츠."
아마 이 프로포즈를 오소마츠도 카라마츠도 나중에는 좀 더 제대로 할 수 없었는지 후회하겠지만, 아마도 둘의 부끄럽고도 행복한 추억이 될 거라고 오소마츠는 믿어본다.



재활(?) 겸. 구상하던 이야기의 일부분이기도.
이 이야기의 전체도 시간이 꽤 지나 묘사나 방향성이 멋대로 굴러가면서 갈피가 안 잡히네요. 파편화된 채 몇 개가 끊어지고 버젼이 다른 채 존재하는 중.


Posted by 하리H( )Ri
2022. 12. 12. 02:32

차오르는 달이 검푸르게 펼쳐진 밤하늘을 하얗게 비추는 아무도 없는 어느 시골길. 그림자를 뒤집어쓴 채 조그만 불빛이 듬성듬성 삐져나온 저택의 모습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용케 이런 길을 걸어 올 생각을 했군. 차나 오토바이, 하다못해 자전거라도 있었다면… 그저 가볍게 조사를 하러 왔을 뿐인데 별 다른 단서도 못 건지고 빠르게 지는 해에 길까지 잃어버린 채로 터덜터덜. 집에 돌아가기는 글렀고, 길바닥에서 노숙이라도 했다가는 날씨 탓이든 뭐든 목숨을 내놓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 저택의 불빛은 구원과도 같았다. 설마 이 마을에 떠도는 늑대인간의 소문이 저 저택과 관련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 갔지만, 이내 주린 배와 추위가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늑대인간은 몰라도 이런 곳에선 무슨 일이든 날 것만 같은 두려움과 어디서 우는 지도 모르게 사방에서 들려오는 풀벌레의 울음소리, 이따금 개가 짖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움찔거리며 걸음을 재촉해서 저택에 다가갔다. 저택의 형태가 뚜렷이 드러날 정도로 가까워지자 조금 안심하던 그때, 앞에서 새하얀 천 같은 게 느릿느릿 다가왔다. 피가 묻은 건지 붉은 얼룩 같은 게 묻어 있었다. 새하얀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하얀 천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자, 하얀 천은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왔다. 한 걸음 달려 나왔을 뿐인데, 바로 드러난 검은 머리칼에 그대로 오소마츠는 주저앉았다.

“저어… 괜찮은가?”

새하얀 바스로브 차림에 붉은 장미 다발을 든 남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오소마츠를 쳐다보았다.

“깜짝이야. 유령인 줄 알았네.”

“훗. 내가 유령으로 보였던 건가. 겁이 많은 편이군.”

“그런 거 아니거든! 타이밍 좋게 달빛이 댁의 옷과 그 장미꽃잎만 잘 비춰서 놀랐을 뿐이야.”

달빛때문에 착각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이상한 차림새라고, 하고 쏘아붙이고 싶은 걸 오소마츠는 참았다. 이 남자가 저택의 주인인가? 설마하니 고용인이 이런 차림을 하고 있진 않을 테니까.

“병에 꽂아놓을 장미를 꺾으러 정원에 있다가 사람 그림자가 이쪽 방향으로 다가오는 것 같길래 나와봤을 뿐인데. 나에게 볼 일이 있는가? 아니면 그냥 지나가던 길인가?”

“음… 혹시 저택의 주인인 거야? 어… 그렇다면 오늘 밤 신세 좀… 져도 될까요?”

에헤헤…하며 오소마츠는 머쓱해 하면서도 바로 부탁을 했다. 사람이 좋아 보이니, 거절하진 않을 것 같은데.

“부탁하려고 바로 존대하는 건가. 이렇게 어두워져서야 위험하니, 일단 들어가기로 하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는 그에게 또다시 달빛이 비춰, 사뿐사뿐 걸어가는 그는 어쩌면 정말 유령일지도 모른다. 그의 손에 들린 붉은 장미 다발과 이제 막 가시에 찔린 듯 붉은 방울이 터져 나온 손바닥이 그것을 간신히 부정하고 있었다.



저택은 외관만큼 웅장한 내부를 자랑했다. 그러나 금이 간 벽이나, 저택 분위기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너구리나 복고양이 조형물이 부서졌다 붙인 자국이나, 그 외에 보잘 것 없는 미술품만 몇 점 놓여있다거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홀 등에서 기대했던 저택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널찍한 응접실에 들어서자 남자는 편한 소파로 오소마츠를 안내한 뒤, 비어있는 꽃병에 장미 다발을 꽂았다. 그리고 곧 간단한 먹거리와 따뜻한 차를 내왔다. 다행히도 응접실은 벽난로가 지펴져 있어서 홀만큼 춥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여러 의문을 품었지만 일단 주린 배부터 채웠다. 더 달라는 눈치 없는 부탁도 흔쾌히 응하는 남자가 짓는 미소는 쓸쓸함과 즐거움이 섞여 있었다. 오소마츠가 포만감에 배를 두드리자 남자는 일인용 소파에 제대로 자리 잡았다.

“아직 서로 자기소개도 안 했군. 난 카라마츠다. 이 저택의 주인이지.”

“난 오소마츠. 이 마을에 재밌는 소문이 돌길래 조사하러 왔다가 이렇게 신세를 지네.”

두 사람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다. 늑대인간 같은 흉흉한 소문을 듣고 조사하러 왔다면서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고 온 오소마츠를 카라마츠는 질책하면서도, 자신은 이 저택에 살게 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과 별로 교류를 하지 않아 그런 소문은 잘 모르겠다며 넘겼다. 아무튼 오늘은 여기서 묵고 가라며 카라마츠는 2층의 손님방으로 안내를 하고 잠자리를 살펴주었다. 오소마츠는 침대에 누워 저택 어딘가에 있을 카라마츠를 생각했다. 둘만이 덩그러니 있는 넓은 저택에서, 오소마츠의 첫날밤이 지나갔다.



오소마츠가 눈을 뜨고 옆에 있는 커튼을 걷으니 이미 해가 가운데에 떠 있었다. 붉은 장미가 듬성듬성 핀 정원도 카라마츠와 마찬가지로 쓸쓸함이 느껴졌다. 겨울이 다 되어가는데, 요새는 장미도 오래 피어 있구나, 하고 정원 너머 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 시골 마을도 쓸쓸한 곳이네. 밤과 별 다를 바가 없이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방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자, 카라마츠가 응접실에서 나와 반겨주었다. 낮이라 그런가 바스로브 차림이 아니구나. 그게 당연한 거겠지만. 그때 솔솔 풍겨오는 음식 냄새에 절로 오소마츠의 배가 울렸다.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응접실로 들어가는 걸 따라가자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이렇게 신세를 져도 괜찮은 건지 잠깐 생각하고선 또다시 주린 배를 채우는 오소마츠 옆에서 카라마츠도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자 그제야 식당이 따로 있지 않냐고 물었지만 카라마츠는 고개를 저었다. 혼자 넓은 저택을 쓰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쓰는 공간만 쓰게 된다며. 손님이 오는 일도 드물고 거의 혼자 식사를 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다 보니 특히나 식당같이 사람이 많이 와서 채워야 하는 곳은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또 다시, 쓸쓸한 미소를 짓는다. 이 이상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걸까. 오소마츠는 정원을 보고 싶다고 조르며 카라마츠와 밖으로 나왔다. 정원은 꽃이 듬성듬성 피어있는 점 빼고는 나름 잘 가꿔진 곳이었다. 저택 안쪽에 비하면 손길이 많이 닿은… 카라마츠가 훨씬 신경을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장미를 좋아해?"

"응. 특히 붉은 장미를 좋아한다. 강렬하게 시선을 붙드는 색인데다, 꽃잎이 마르면 마르는 대로 깊은 색깔을 내거든. 오소마츠는 좋아하는 꽃이라든지, 색이라든지 있는가?"

"나도 빨간색을 좋아해. 눈에 띄는 색이라는 점도 카라마츠랑 같은가. 꽃은 그다지 흥미가 없어서. 그 외에 좋아하는 거라면... 호기심이 동하는 것? 아니면 사람들이 날 보고 재밌어해 주는 거라든가."

"그런가. 오소마츠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군."

"에... 어떤 점이?"

"탐정 같은 거 아닐까 싶다가 이렇게 준비 없이 달려오는 것도 그렇고, 재밌어해 주길 바란다는 건 아직 잘 모르겠고..."

오소마츠가 살짝 흔들리는 눈빛으로 침을 삼키는 건 눈치채지 못한 채 카라마츠는 사뿐사뿐 앞으로 걸어갔다. 낮의 카라마츠도 밤과 마찬가지로 유령 같았다. 햇빛 아래서도 여전히 그의 얼굴은 새하얗다. 파릇파릇함을 잃어버린 장미 덩굴 사이로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은 그를 쫓아서 정원을 돌고 나서는, 고맙게도 며칠 더 머물러도 괜찮다는 권유를 받았다. 원한다면 조사를 위해 마을에도 함께 가주겠다는 그의 과한 호의를 받아들이며, 둘째 날은 그냥 저택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오소마츠는 고민하다 탐정 복으로 갈아입고 카라마츠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때 카라마츠가 당황했다 터트린 웃음은 지금까지 카라마츠의 표정 중 가장 행복해 보였다. 나름 '안식탐정'이라는 이명이 있다며 사건 현장을 온화하게 만들어준다고 주로 활동하는 지역의 경부에게 신뢰를 받고 있다며 자신을 소개하자, 카라마츠는 무언가 해결된 듯 시원하게 웃어주었다.

"안식탐정이란 말이지. 어울리는군..."

뭐가 어울린다는 건지. 하긴 내가 좀 편안한 사람이긴 하지. 오소마츠는 의기양양하게 한 번 더 안식탐정의 포즈를 취해주었다.



다음날은 함께 마을의 상점가에 갔다. 사람이 없어 보였던 마을에도 상점가만큼은 나름대로 사람이 있었다. 식자재를 사는 카라마츠의 동선을 따라 오소마츠는 사람들의 대화를 놓치지 않고 들었다. 카라마츠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 사는 것에 대해 수군거리는 사람이나 수상쩍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최근에 늑대 울음소리가 평소보다 더 자주 들린다는 소문과 관련된 이야기도 들려왔다. 상점들이 일찍 문을 닫아버리니 서둘러 장을 봐야 한다는 말과는 다르게 느릿한 걸음의 카라마츠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질 것만 같이 투명해 보였다. 잠시라도 카라마츠를 잊어버리면 곧 사라져버릴 듯한 투명함. 손을 잡으면 잡히지 않을 것만 같이 멀리 있는 느낌이었다. 카라마츠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약국이었다. 따라 들어오려는 오소마츠를 멋쩍은 듯 쳐다본 뒤, 카라마츠는 말없이 약국 안으로 들어갔다. 오소마츠도 따라 들어갔지만, 카라마츠는 그저 늘 먹는 그걸 달라고 말할 뿐이었다. 해가 기우는 인적 없는 시골길을 둘이 걸으며 저택으로 돌아가는 사이에는 어색한 공기만이 흘렀다. 오소마츠는 뭔가 말을 꺼내려다가 별 소득 없었다며 휘파람을 불며 화제를 돌려버렸다. 그날 밤은 와인과 간단한 안주가 차려졌다. 와인잔을 돌리다 음미하듯 붉은 와인을 입 안에 흘려 넣는 카라마츠를 보고선 오소마츠도 와인잔을 돌렸으나 답답함에 홀짝 들이켰다.

"카라마츠는, 왜 혼자 있어?"

배려심이라고는 없는 너무나도 직설적인 말.

"그런 건 묻지 않는 게 배려가 아닐까, 오소마츠."

쏘아붙이듯 답하는 카라마츠.

"궁금하니까. 나도 탐정이라는 나름 비밀스러운 정체를 밝힌 참이고? 그 정도는 물어봐도 되지 않아?"

"멋대로 알려주지 않았나. 궁금했긴 했지만, 소문을 조사하러 왔다는 말을 한 시점에서 대충 그런 거라고 알 수는 있었으니까."

"그럼, 안식탐정이라니 어울린다는 건 뭐야. 어제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지만,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말이었다고."

"말 그대로다. 취조하듯이 몰아붙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만."

"지금 혼자 있으면 안되는 상황 아냐? 어딘가 아프다면 간병해줄 누군가가 필요한 거 아니냐고."

"......"

카라마츠는 말없이 와인잔을 비웠다. 입 옆으로 살짝 흘러내린 붉은 와인 방울을 오소마츠가 손수건을 꺼내 닦아주었지만, 카라마츠는 그 손을 쳐냈다. 살짝 닿은 카라마츠의 볼은 역시나 차가웠다.

"먼저 들어가 보겠다. 탁자 위는 그냥 내버려 둬도 되니 더 마시다 가도 된다."

그렇게 말하며 응접실을 나가버리는 카라마츠를 오소마츠는 쉽사리 붙잡지 못했다. 대충 짐작이 가는 그의 사정을 좀 더 신경 써서 얘기할 걸 그랬나. 그래도 사흘을 함께 있었으니 이 정도면 가까워졌다 싶었는데, 카라마츠는 처음부터 줄곧 벽을 세우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렇게 어색해져서야 더 머무르긴 곤란할지도... 내일이 되면 떠나야 할까.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줄곧 유령 같았던 카라마츠가, 아픈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그걸 태도에선 드러내지 않은 채 오소마츠를 환대해주었던 그가, 너무나도 신경 쓰였다. 오소마츠도 응접실을 나서서는 1층부터 닫힌 문을 열었다 닫으며 돌아다녔다. 2층에서 오소마츠가 묵고 있는 손님방과 반대편에 있는 방에서 훌쩍거리는 소리를 찾아낸 오소마츠는 벌컥 문을 열었다. 카라마츠는 깜짝 놀라며 무슨 일인가! 하고 소리쳤지만, 어둠 속에서도 보이는 카라마츠의 우는 얼굴을 본 오소마츠는 입을 열지도, 나가지도 않고 문을 닫고서 카라마츠가 누운 침대의 이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오소마츠를 카라마츠는 밀어냈지만, 침대가 넓은 탓인지 너무 세게 밀었다가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질까 걱정한 탓인지 오소마츠는 그다지 밀려나지 않았다. 다시금 다가와서는 손가락으로 카라마츠의 차가운 볼에 손을 갖다 댄 뒤, 그의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았다. 그런데도 카라마츠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따뜻... 하다."

"줄곧, 이렇게 해주고 싶었어. 처음 본 그때부터 카라마츠는 차가웠거든."

"차갑게 대하지 않았는데... 아까는 미안했다만..."

"그게 아냐. 이렇게 따뜻하게, 이 세상에 붙들어주고 싶었어."

"무슨..."

"사라지지 마. 함께 있어 줄 테니까. 있을 수 있는 그날까지 있어 줄 테니 벌써 유령같이 살지 마, 카라마츠."

오소마츠는 카라마츠 쪽으로 더 다가와 카라마츠를 안아주었다. 그제야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에게 다가와 안쪽으로 폭 들어갔다. 카라마츠의 눈물이 오소마츠의 몸을 적셨다. 이내 두사람은 입을 맞추고, 서로를 따뜻하게 데워갔다. 그 후 이틀은 두 사람 모두 저택에서 나가지 않았다. 정원을 산책하고,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밤을 함께 보냈다. 새하얀 카라마츠의 얼굴의 붉게 물든 뺨을 바라보며, 조금씩 생기를 찾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카라마츠는 마음을 열었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릴 적 이 저택에서 사람들이 많이 와서 파티를 여는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며, 이제는 이룰 수 없는 제 나름의 소박한 소원을 털어놓으며, 오소마츠가 다른 사람을 재밌게 해주고 싶다면 카라마츠도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카라마츠의 건강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어딘가의 파티에 놀러 가서 함께 즐겨보자는 약속을 나누었다. 오소마츠가 여기 눌러앉기 위해 내일은 짐을 챙기러 잠시 집에 다녀오겠다고 말을 꺼낸 밤의 달은 어느새 보름달이 다 되었다.



왜 하필이면 그날이었을까. 왜 하필이면 그날 밤이었을까. 늑대인간의 소문을 조사하면서 간과해왔던 보름달과의 연관성. 보름달이 뜬 밤, 저택에 혼자 있는 카라마츠를 늑대인간이 습격해서 죽여버릴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집을 챙기며 잊고 있다 바라본 보름달에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어 새벽에 어떻게든 저택에 도착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저택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눈물을 삼키고선,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소원을 이루어주기로 했다. 적어도 네가 행복한 마음으로 이승을 떠날 수 있도록. 나는 기꺼이 해골이 되어 버린 너와 마지막 춤을 추고, 사람들을 모아서 저택에서 즐거운 파티를 열고, 그 파티를 달아오르게 하는 멋진 공연의 주인공은 네가 되어줄 거고, 네가 마음을 쏟던 정원에 아직도 지지 않은 장미꽃 아래에 널 잠들게 할 거고, 그런 네 앞에선 끝까지 웃어줄 거라고. 널 잃은 슬픔보다도, 네 목숨을 병마보다도 빠르게 앗아가 버린 범인에 대한 분노보다도, 널 재밌게, 행복하게 해주는 게 널 위한 것 아닐까. 그게 '안식탐정'인 나 오소마츠의 역할이니까. 저택을 나서기 전까지 참아왔던 슬픔을 저택을 등지고 쏟아내더라도, 네 앞에서는 웃어줄게. 저택을 뒤로하는 발걸음은 느려지고 눈물범벅이 된 채 저택을 돌아보면, 붉은 장미꽃잎이 흩날리며 아마도 진짜 유령일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바라보고 있다. 손을 뻗어도 이제는 진짜 잡히지 않을 너와 작별하는 데에는, 너와 지냈던 시간의 수십, 수백 배는 걸릴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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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10화 인랑편 보면 슬프거든요. 나고관주적으로? 다른 시점으로? 웃으며 무덤 만들어주고 해골하고 춤추고 공연하고 살해현장인 저택이 파티장이고... 이건 오카뇌를 너무 돌려서인진 모르지만 죽은 사람의 넋을 위로하는 의식과도 같은 그런 인상을 받았던... 거기서 이어져온 아이디어인데 이것도 1년 이상은 묵혀둔 거 같음...
12월 12일 오카의 날❤️💙 기념으로 올해도 너무 많은 걸 놓쳤지만 일단 이건 안 놓쳐야지 하는 마음으로 써봤습니다. 뭔가 그래서 결말이 (늘 그렇지만) 급전개


표지? 낙서는 어제 새벽을 불태우고 글은 밤과 새벽을 불태우고 퀄은 이모냥인데 시간은 많이 걸리고😭

Posted by 하리H( )Ri
2022. 12. 11. 00:29

정말 여기저기 올려놓는 버릇이 있어요
아무튼 카라마츠는 사랑💙
오늘내일중 뭐든 완성하기 전 낙서 하나 간만에 완성하기

아이돌 인별 셀카풍 카라마츠 | H( )Ri #pixiv https://www.pixiv.net/artworks/103504942

Posted by 하리H( )Ri
2022. 10. 2. 01:07

"이걸로 주세요."
작업실 근방에 있는 꽃집.
그곳에 조금 별난 단골고객이 생겼다.
퀭한 눈에 지친듯 굽어있는 등, 조소하듯 기분나쁘게 웃고 있는 한 남자.
꽃집의 입구 쪽에 놓여진 꽃을 가리키며 살 때마다 매번 '이걸로 주세요.' 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꽃집 주인은 '알겠습니다.' 라며 그 꽃 몇 송이를 집어들어 바스락거리는 종이에 싼 뒤 예쁘게 리본을 묶어 건넨다.
이유도 없이 그저 눈에 들어온 꽃을 몇 번이나 사갔던가. 꽃다발을 풀고 싶지 않았지만 물병에 꽂지 않으면 시들어버린다는 말을 듣고 풀어서 병에 꽂아놓은 게 큰 항아리를 가득 채울 만큼이 되었다.
몇 송이는 담당 편집자에게 떠넘기고, 몇 송이는 새로운 기획 관련 미팅 때 참석자들에게 떠넘겼는데, 그들은 바보같이 역시 '미넷 선생님은 달라!' 하면서 입에 발린 칭찬을 해댔다.
그러고보니, 늘 사는 이 꽃은 대체 무슨 꽃이지.
문득 남자는 궁금해졌다.
"이 꽃, 이름이 뭐죠?"
"소국이예요. 소국."
소국, 소국이라.
"참고로 꽃말은 밝은 마음과 고상함이라네요. 흰색은 성실함. 빨간색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실연이란 뜻도 있다고 하네요. 노란색은 실망을 뜻한다고 하는데 색이 예쁘니 들여놓고 있어요. 주는 사람이 전하고 싶은 마음이나 보는 사람의 마음에 든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요, 훗."
거 참 말 많은 꽃집 주인일세.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꽃집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 정확히는 작업실을 옮겨온 김에 거리를 둘러보고 있던 중 꽃집 옆을 지나쳤을 뿐인데 꽃집 주인이 불쑥 저 꽃을 들이밀었다.
그땐 흰 소국을 받았지.
"어제 건너편 건물로 이사오신 분이죠? 어제 이삿짐은 옮기는 걸 봐서... 저도 여기 꽃집을 연 지 얼마 안 돼서 인사를 겸해 지나가는 분들께 꽃 한 송이씩 건네고 있어요!"
푸른 앞치마에 시원스러운 얼굴.
실내에서 일하는 주제에 짙은 선팅의 선글라스를 쓴 청년이었다.
얼떨결에 꽃을 받아드니 꽃집 주인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펴진 걸 본 탓이었을까.
남자는 그 뒤 외출할 때마다 꽃집에 들러 받은 꽃과 똑같은 꽃을 사고는 했다.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순정만화를 그리면서도 작업실에 박혀 한발짝도 떼지 않는 음울함 가득하던 그가 꽃집에 가기 위해 장을 본다는 핑계를 대며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빨간색 소국도 예쁘게 꽃다발로 만들어주세요."
딱딱한 말투로 남자는 빨간 소국을 가리켰다.
"설마 꽃말 얘기한 거 듣고 혹해서 사는 거 아니죠? 역시 줄 사람이 있는 건가..."
아니야.
그런 사람 없어.
아니야.
사실은.
꽃 이름을 묻거나 그걸 사거나 한 거는 당신이 떠올랐기 때문이야.
불쑥불쑥 내 일상을 침범하는 당신 탓에.
습관처럼 배어든 당신 생각에 내 작품의 히로인도 당신을 닮아가고 있는걸.
남자는 이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전할 수 없었다. 머뭇머뭇.
늘 그렇듯 그냥요. 라고 대답하고선 남자는 꽃다발을 받고 돌아선다.

사실은, 당신의 이름을 묻고 싶었어.

예전에 트위터에 올렸던 거 같은...?
수정 및 가필하려고 하는 김에 아주 조금 손봐서 올려봐요
머리로 생각하는 것만큼 제대로 연성한 42가 잘 안보여

Posted by 하리H( )Ri
2022. 10. 1. 03:13

헤소센세의 마지막 이벤트를 위한 점검 연장전에 따라가며 오랜만에 낙서
는 트레지만 그래도 오래걸림
느와르 오카인데 홍란이라 부르던가 아무튼
디테일은 늘 그렇듯 잘 그리지 못하는 사람이라 날림날림

효과 빡 준(...) 버젼

효과 덜 줌

...
참고작
ㄹㅋㄹㄱ ep11 아이캐치인데 모방위험인지 바뀐다고 하는
분위기가 참 개쩐다였는데 재현을 못하겠어요


12であのアイキャッチのパロ | H( )Ri #pixiv https://www.pixiv.net/artworks/101599486

Posted by 하리H( )Ri
2022. 4. 7. 00:26

이런 거 만드는 쾌감!

요그스토스×크툴루 커플 흐헿헿
좋게 써먹히는 서머가면의 서머 플래시

아오안돈님의 나비나비함(?)

느와르 오카(홍란...이라 부르나-?)

무근본 마교마호

마츠이누마츠리

딕시랜드 형님조

의 위기!

사랑해 마지않는 잼세션의 피아노×색소폰

어두운 분위기로 아오안돈(눈 버젼)

3기에 나온 이과생인(?) 18카라+ 벚꽃
카라마츠... 이과생인가...? 화학을 골랐으니까?
음...

안엔프로이드(스노우) 오카
이건 뭔가 멋있게는 안 만들어졌...

여신님... 아니 아프로디테님의 은총으로 화사한 배경을...

발렌타인 축제

벚꽃의 아오안돈님( 아오안돈님 지분이 높...)

밤벚꽃과 야외... 노숙

추억의 장면

극랑오카 벚꽃벚꽃하게

좌우반전기능 추가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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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H( )Ri
2021. 11. 11. 23:11

짧글/주청/1 4개 우겨넣기식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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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11월 11일.

인간들의 시간으로는 이렇다고 하더군. 인간들의 자세한 시간을 알아두는 것도 괴담을, 이야기를 좋아하는 청행등에게 있어선 당연한 일이건만, 오늘도 그런 '시간'과 '이야기'를 어디 사는 누군가가 절묘하게 엮어내어 속고 있다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인간들이 휘둘리는 모습을 보는 게 꽤나 재밌다. 물론 저 인간의 마음은 어떨지, 어떤 심정으로 막대 과자를 주고 받는지, 지나치게 인간의 마음에 몰입하기도 한다. 현대의 괴담이란 옛날과는 또 다른 형태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법. 인간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게 그저 공포만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이날의 훈훈함과 씁쓸함이 교차하는 풍경을 청행등은 그 눈에 담고 있었다. 

청행등은 잠시 풍경을 내려다보다 들고 있던 등에서 푸른 도깨비불을 내보내 제 몸을 감쌌다. 인간의 모습으로 사뿐히 땅 위에 내려서고선 익숙하게 사람들 속에 섞여든다. 이제는, 익숙한 일이다. 옛날처럼 등을 걸어두고 모여앉아 괴담을 나누는 '햐쿠모노가타리'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지만, 괴담이든 괴이쩍은 일이든 청행등의 먹잇감이 되는 이야기는 이 시대에도 얼마든지 넘쳐난다. 이렇게 인간 속에서 이야기를 얻어가지만, 그렇지만 예전과는 다른 단절된 섞임 속에서 조금 서글퍼지긴 했다. 뭐어, 오늘의 볼일은 막대과자 아닌가. 하나쯤 슬쩍해도 별로 큰 혼란은 안 생기겠지만, 대충 그 의미를 아는 입장에선 그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디 신사라도 들어가 세전이라도 슬쩍할까 하며 공원 벤치에 앉았더니, 웬 꼬마가 청행등 앞에 와서 멀뚱멀뚱 청행등을 쳐다보았다.

"나비- 빛나는 나비가 있어"

"으응?"

"이런 나비는 처음 봐- 형아 뿔도 나있네- 신기하다-"

"아아. 어린아이라 그런건가. 내 원래 모습이 보이는 건가."

"나비 만져봐도 돼?"

"그럼. 네 손에 옮겨주지."

도깨비불로 만들어진 나비가 꼬마의 손에 옮겨갔다. 꼬마는 따뜻해, 간지러, 같은 소리를 반복하며 웃었다. 

"고마워, 형. 나비 만져보게 해줬으니까 이거 줄게."

꼬마가 메고 있던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막대과자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건넨 꼬마는 씨익 웃었다. 웃는 꼬마의 이앞니는 하나가 빠져 있었다.

"오늘 유치원에서 친구가 줬는데 우리 엄마는 이런 과자 못 먹게 하거든. 친구한테 고맙다고 하고 싶은데 버릴 수는 없으니까 형아 줄게! 안녕!"

그리고서는 재빨리 가버리는 조심성없는 꼬마다. 나같이 착한 요괴를 만나서 다행이군, 하고 청행등은 생각했다. 어쨌건 이렇게도 귀여운 사건이 생겨, 인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어 청행등은 즐거워졌다. 

본모습으로 돌아와서도 막대과자를 쉽게 맛보지는 못하는 청행등이었다. 인간의 과자도 몇 번이고 먹어봤고, 사실 이 과자의 맛도 알고 있는 바니까. 하나가 이루어지면 또 하나 욕심이 생기는 건 왜일까. 역시 이런 건, 사랑하는 이와 나누어먹는 그런 이벤트를 꿈꾸고 마는 건... 청행등은 자신이 인간에 지나치게 몰입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금 움츠러들어있었다.

"모처럼 떠들썩한 날인데 왜 우울해 보이지? 내가 너무 오래 놀러갔다왔나? 하하핫!"

맞아. 꿈꾸고 말았던 건. 그런 이가 있으니까. 생각나는 상대가 있으니까. 청행등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찔끔 보이고 말았다.

"아니, 잠깐잠깐! 내가 그렇게 잘못한거야? 미안해... 그래도 청행등이랑 마시려고 맛있는 술도 구해왔... 우왓!"

당황하는 주탄동자에게 달겨들어 폭 안기는 청행등의 행동에 주탄동자는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술도 안 마셨는데 이렇게 애교가 넘치는 청행등은 오랜만인걸.

"괜히 인간들의 축제... 같은거에 심취해버린 거 아닌가 싶어서... 조금 우울해졌다만. 주탄동자가 돌아와줬으니, 주탄동자가 거기 어울려줄거라고 믿고... 있다제."

"에에... 우리는 뭐, 인간들의 축제니 놀이니 그런거 좋아하고 잘 끼어 놀고 그렇잖아. 뭘 새삼스레. 오늘은... 막대과자를 코에 끼우는 날이었나?"

퍼억! 하고 주탄동자의 배에 청행등의 주먹이 꽂힌다. 

"농담이라고, 농담. 청행등 쪽에서 먼저 그런 걸 하자고 할 줄이야. 매번 내쪽에서 할 때마다 투정부리면서 받아줬잖아. 엉큼해졌네, 아니 때리지는 말아줘..."

주탄동자는 능글맞게 막대과자상자를 열어 봉지를 연 뒤 막대과자를 하나 꺼낸다. 누가 먼저 입에 물까 재기도 전에 둘 다 격정적으로 달라들어 막대과자가 부서져버렸다. 다음 과자는 주탄동자가 청행등에게 건네주고 청행등은 과자를 살짝 이에 물었다. 주탄동자도 이에 물고 사각, 사각,사각, 사각, 거리를 좁혀갔다. 평소에도 하는 입맞춤이 이렇게 긴장할 일인가... 싶은 순간 청행등이 살짝 힘을 줘 막대과자가 부서졌다. 손톱만큼 남은 막대과자에 주탄동자는 이거면 원래 인간들이 하는 막대과자게임에선 거의 우승급이라며 추켜세워준다. 얼굴을 붉히는 청행등에게 주탄동자는 다시 막대과자를 건네는 척 하더니 제 입에 가져간다. 이번에는, 게임 말고 원하는 걸로 할까. 말없이 전해지는 눈빛으로. 서로의 이에 막대과자를 물고서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긴장감 끝에 맞닿은 감촉과 새로운 재미에 둘은 까르르 웃어버렸다. 이후 남은 과자도 똑같은 방법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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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 땡겨서 쓰는데 쓰려는데도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짬내서 쓰려니까 눈앞이 뱅글뱅글 돌아서 뭔 헛소리를 쓴건지 모르겠단
진짜 글이 오랜만이에요오오

Posted by 하리H( )Ri
2021. 4. 10. 22:35


낮에 잠깬다고 몬스터 두 캔 때리고 잘 시간에 잠이 안 오는 김에(다른 할일은 안 하고;;) 펜을 쓰고 싶어서 새벽에 미리 전력한 그것
두 장이라 더블로 240분 걸린듯
그런데 이런 퀄리티라니 실화입니까ㅋㅋㅋㅋㅠ
1812(헤소워 마법학교) -> 교연(헤소워 마법)으로 두장째는 사족... ㅋㅣ스신이 그리고 싶었을 뿐...입니다(퀄망)

뜨이따 링크
https://twitter.com/2afterglow2km/status/1380869333643976710?s=19

언제나 힘껏 사랑하리💙₂ on Twitter

“오소카라/장미꽃 한 송이🌹 1812(마법학교AU)입니다 허접한 펜따기로 보내드립니다 #카라른_전력_120분”

twitter.com

Posted by 하리H( )Ri
2021. 1. 8. 23:54

[카라른]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10-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주의>

※카라마츠 중심, 시리즈 전체를 놓고 보면 카라총수지만 각 편은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커플링이 등장하지 않은 편에도 일관성을 위해 카라른이 붙어 있습니다.
※본 작품은 2016년부터 써온 2차 창작 작품입니다. 현재 원작(애니 기준)의 캐릭터 설정과 차이가 있습니다. 2019년에 개봉한 영화의 오소마츠상(극장판 오소마츠 6쌍둥이)의 학생 시절 설정은 차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도 캐붕이 심하니 주의해주세요.
※자살, 자해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기 5화 《카라마츠 사변》 기반으로 1기 당시의 동인 설정인 학생 시절 소재, 연극부 소재 등 이것저것 섞다못해 어디로 나아가는 지 모르는 BL향만 풍기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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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진동에 잠을 깬다. 눈을 뜨면 낯선 풍경이 그를 맞이한다. 이런, 깜빡 졸았네. 기지개를 펴도 어쩐지 찌뿌둥했다. 주변에는 미세하게 흔들리는 손잡이와 한적한 마을이 스쳐가는 창문, 텅텅 빈 의자에 자신처럼 졸고 있던 한두명의 사람들뿐. 전철에 실려 생애 첫 가출을 하는 17세 소년은 전철 노선표와 다음역 안내 표시를 번갈아보았다. 대충 이름이 마음에 드는 역에 내리려고 탔던 것인데, 다행히도 지나치지 않고 내릴 수 있었다. 거리를 걸으면 한적한 주택가. 작은 규모의 상점가.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원... 가출이라고는 하지만 집에 안 들어가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것도 아니고, 기껏 마음먹고 혼자서 멀리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다지 낯설지 않은 풍경에 살짝 실망하기도 하면서 역 주변을 배회했다. 그러다 곧 공원 한쪽의 벤치에 자리잡는다. 주머니 속에 있던 대충 구겨둔 종이를 펼쳐서 읽으면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리는 그였다. 원래대로라면 어제는 냈어야 할 숙제지만 제출하지 못한 채 구겨서 가방에 던져놓았던 걸 오늘 집에서 나오기 전 가지고 온 것이다. <자기소개서>. 진로 희망 조사와는 별개로 진학을 하든 취직을 하든 이런 걸 써야 할 일이 곧 많아질 거라며 우선은 내키는 대로 써 보라고 하는, 자유도가 높지만 그만큼 막연하기도 한 주제였다. 물론 술술 써 내려가는 사람도 있겠지. 이치마츠는 뭐라고 썼을까. 다같이 하는 숙제가 아니라 그의 반만 하는 숙제였으니. 이치마츠라면, 하고 싶은 건 없다고 했지만 의외로 성실하게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았을까. 백지로 내지는 않았을 거다. 다른 형제들이 이 숙제를 받아들었다면 어땠을까. 한숨을 쉬며 다시 내려다 본 자신의 글에는 소개라기보다는 편지나 고민상담에 어울리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는 지나치게 자신의 인생사를 나열한 것도 같다. 잘 쓰고 못 쓰고보다는 미주알고주알 자신을 드러내는 것 때문에 낼 수가 없었던 걸까. 자신도 알지 못했다. 요새는 알 수 없는 게 늘어났다. 특히나 알 수 없는 건 자기 자신이었다.

막이 내리고, 커튼콜마저 끝나고 암전된 무대에 그는 서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관객도 없는 오롯이 그만의 모노드라마. 독백도 몸짓조차도 없는 그저 가만히 서있는 그의 마음 속은 이 곳의 무대장치를 총동원해도 표현해낼 수 없는 격동으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5년간 맡아온 역할에서 내려오는 순간이다. 이제는 '연극부원 카라마츠 역'이 아니게 된다. 생각없이 붙들었던 연극부라는 명함은 그의 인생을 빠르게도 바꾸어놓았다. 신입부원에게 파격적으로 주연을 맡게 하고 다른 신입도 연극 무대에 세운다는 당황스러운 첫 연극에서, 누구 선배와 친하다며 자기가 주연이 될 게 당연하다고 으스대는 녀석을 토도마츠의 도움을 받아 골려줬었지. 대본에 새똥이 뭍었다곤 하지만, 남한테 실려서 연습하면 될 걸 연습이라곤 않던 녀석이 오디션날 펼쳐보고 당황하는 모습은 웃음거리라기보다는 영 보기 좋지 않았다. 어설프고 오버스러운 연기에도 생동감있다며 주연 자리를 차지하게 됐을땐 그런 건 금세 잊어버렸지만. 그 뒤에는 조명 담당도 맡았고 엑스트라도 맡으며 첫 연극부터 주연을 맡아 느꼈던 자신감은 좀 꺾였지만 순수하게 연극에 빠져들 수 있었다. 다만, 열정 있는 선배의 모습을 보면서 어렴풋이 연극이 내 인생의 길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생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던 선배가 고등학생이 되고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그는 연극 그 자체에 흥미가 크게 있던 건 아니었다. 다른 학교나 소극장에서 하는 연극을 찾아 볼 만큼의 열정은 없었다. 그래도 그는 나름대로 연극부 생활에 깊이 빠져 있었다. 어쩌면 그건 '연극부원'이라는 역할이 마음에 들어서일지도 모른다. 그 사소한 차이는 연극부 생활이 끝날 때 즈음 그의 고민거리가 되었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은 없는 목표만이 자리잡고 있다. 그 목표마저도, 자신을 높인다든가 사람들에게 꿈을 준다든가 세계평화라든가 하는 유치하고 그래서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없는 그런 것일 뿐. 오소마츠가 그를 불러내 진로같은 거 정했냐고 물었을 때도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연극이라는 선택지는 자신도 없지만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뭐가 있지? 내게는 뭐가 있지? 갑작스레 떠밀어진 차남이라는 역할을 잘 하고 싶었다. 여섯 쌍둥이에서 '나'라는 존재를 구분해주고 발견해주길 바랐다. 연극부는 거기에 딱 맞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장소였다.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내려오는 역자는 청중이나 함께 해준 사람들의 박수를 받지만, 역자가 다음 역할을 찾을 때까지는 홀로 고독할 뿐이다. 어둠 속에서 그는 이제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무대를 내려왔다.

차남 역할은 어중간했다. 연극부원 역할은 끝나버렸다.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했다. 그는 구깃구깃한 자기소개서를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방황하고 고민하던 나약한 자신도 거기에 함께 던져버린 채, 차남 역할을 강하고 단단한 허세로 감싸고서 그는 벤치를 떠났다. 하루도 채 되지 않은 가출이었건만, 그날 가출한 소년은 영영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는 나약한 자기 모습을 버리지는 못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이 지금까지와 지독하게도 달라서 형제들을 포함한 주변인들은 변해버린 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허술하기 짝이 없는 껍데기는 쉽게 갈라지고 뚫려서 겨우겨우 봉합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동안 마주치지 않았던 고교 시절의 동창을 길가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는, 이미 봉합하기 어려운 커다란 틈새가 자리하고 있었다. 고교 시절 부활동을 같이 하던 친구였다. '연극부원'이라는 역할에 충실한 그를 기억하고 있는 그는, 그가 모르는 그의 연극에의 열정이나 연기력이라는 재능을 가졌다며 그를 추켜세웠다. 
어째서 연극의 길로 가지 않은 거야? 지금은 뭐하고 있어? 아, 난 또 일인극 연습이라도 하는 줄 알았지. 그런 차림으로 프리 허그같은 걸 하고 있으니까. 역시 안타깝네. 그 길로 가지 그랬어. 
그는 뜬금없이 자신에게 내려진 고평가가 당황스러웠다. 그와 동시에, 이건 인사치레겠거니 싶었다. 백수로 지낸다는 말에 자신의 아르바이트를 일주일만 대신 해 주기를 부탁하며 웃는 동창의 모습에 어쩐지 자신이 그동안 뒤집어 쓴 껍데기가 쩍쩍 갈라져 부서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난 지금, 뭘 하고 있지?
그 뒤로도 그는 자신이 해오던 역할을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았다기보단 붙들고 있었다 해야 하나. 나약함이 고개를 든다. 결국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역할 같은 건, 역할이라 하긴 그랬다. 그냥 이런 사람일 뿐. 어떤 역할도 하고 있지 않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백수로 사는 삶이 즐겁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가 원했던 건 어엿한 '카라마츠'라는 인물이 되는 것이었다. 그걸 새삼 확인받은 뒤였다. 고민이 늘었다. 억지로 막아왔던 자기에 대한 생각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그렇게 밤에도 잠을 자지 못하고 잠시 바깥을 서성이던 그 날, 외상값을 갚지 않아 화가 잔뜩 난 치비타에 의해 납치를 당했다. 그 날은, 그나마 해오고 있던 차남 역할조차, 차남 역할은커녕 6쌍둥이라는 설정조차 부정당하는 듯한 날이기도 했다. 

내가 눈을 뜬 건, 고통이 머리부터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걸 느낀 밤이었다. 머리맡에는 오소마츠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말했다.
"어서 와, 카라마츠."
집...은 아닐텐데. 오소마츠가 손을 내밀어 볼을 쓰다듬으려는 걸 머리를 살짝 흔들며 거절하자, 살짝 어지러워졌다.
"뭐, 그러려나. 카라마츠, 내가 누군지 기억해?"
오소마츠. 라고 입모양만 말할 뿐 신음소리만 새어나왔다. 별 수 없이 어지럽지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다행이다. 내 당번일 때 깨서. 그냥 눈 뜬 것만으로 좋아. 다른 녀석들은 자고 있으니까 일단 깨우고 너스 콜 할게. 이거 해보고 싶었단 말이지."
전혀 웃고 있지 않은 눈과 어떻게든 웃으려는 입과 목소리톤. 그걸 바라보고 있다 갑작스럽게 퍼지는 몸 여기저기의 통증에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신음만이 새어나왔다. 곧 모두에게 둘러쌓인 채 어딘가로 옮겨졌다. 의식은 잃지 않고 마취제와 진통제를 맞으면서 의사의 말을 듣기로는, 일주일을 의식을 못 차리고 있었다고 한다. 빠르게 회복되는 편이지만, 한 달은 입원하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우선은 외상이 나아져야 다른 치료도 할 수 있다며, 불편한 점이나 힘든 점이 있으면 자신한테만 조용히 얘기해도 좋다고, 보호자들에게는 원치 않으면 일단은 알리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아픔이 좀 가시니 머릿속으로 생각을 해보려 했지만 머리가 아파올 뿐이었다. 우선은 절대 안정. 진통제로도 다 가시지 않는 아픔에 생각은 할 겨를이 없었다. 쵸로마츠나 이치마츠나 쥬시마츠나 토도마츠나 날 보면 모두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오소마츠는 아닌 척 했지만 역시 괴로워보였다. 엄마는 날 보며 울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달래며 나와 엄마를 번갈아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일단, 트럭에 치였다는 듯하다. 왼쪽 손목에는 아마 그것과는 상관없을 흉터가 있다. 목이나 뇌쪽에는 큰 이상이 없지만 어쩐지 말을 할 수가 없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들었다. 정말 목소리가 돌아올 지는 모른다. 어렴풋이 내가 처한 상황을 알게 됐지만, 쉽사리 트럭에 치이기 전의 기억이나 목소리는 돌아오질 않았다. 머리에 어지럼증이 많이 가시고 외상은 많이 나아졌을 무렵, 휠체어를 타고 보호자 동반으로 바깥을 산책하는 게 허용됐다. 그 역할은 주로 쥬시마츠가 맡았다. 쥬시마츠는 휠체어를 밀고 병원 부지에 조성된 산책로를 돌면서 나에게 불편한 점이 없는지를 물으며 챙겨주곤 했다. 그러나, 본론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 누구도 본론으로 들어가진 않았지만, 차라리 병실에서 억지로 웃는 형제들을 볼 때보단 얼굴이 보이지 않는 채 바깥을 만끽하며 있는 이 시간이 차라리 나았다. 그러나, 여전히 돌아와야 할 것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 걸지도 모른다. 좋지 않을 기억이나 그걸 전달할 목소리를 깊숙이 집어넣고서 그저 형제들에게 기대고 싶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말이지, 난 차남인데. 차남, 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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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9화를 쓴지 정확히 1424일 째, 1화 기준으로는 2148일, 쉽게 말하면 1화 쓴지 거의 5년, 9화 쓴지 거의 4년이 됐습니다. 외전이 있었지만 그것도 2년 전이네요.
그동안 2기도 나오고 극장판도 나오고 3기도 방송중이고 휴덕도 탈덕도 안하고(?)
그저 죄송하고 앞으로도 죄송할 예정입니다.
티스토리 에디터가 바뀌고 컴작업이 어려워지면서 고치고 싶은 걸 못 고친 채 일단 10화입니다. 9화의 요시다는 나카무라(5화)로 치환해서 읽어주세요. 이번 화에도 나온 동창입니다. 곧 고치겠습니다. 4년간 고민은 꽤 했는데 내용은 그대로 가되 드라마틱함이 좀 없이 건조하네요. 마치 내 방 공기와도 같은 건조함...
기다려주셨던 분, 잊어버렸다가 다시 보시게 된 분, 처음 보신 분, 모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하리H( )Ri
2020. 12. 7. 01:39
짱구 극장판 중에서 트레(꽤 유명 장면이죠ㅋㅋ)
2020 생축!
원색만 하고 혼색은... 언젠가...
요것도 탈출하는 짤 트레
3기 카운트 그림들... 일부
드라마... 내 딸 서영이였나 그거 트레... 변해영이었나 그 인물 장면
색보정법 배우고나서 팍팍 써먹느라 맨날 톤이 비슷해지는중 뭉개져서 흰자가 안 보임
흐흑 공주님...
오프닝을 1화의 똥으로...
풍선껌 일러 토토코ver
스타쟌 이예이 키홀더 홀로그램으로 괜히 만들어봄
미니배너 무료쿠폰 받고 그린 빈잔 컨셉 일러는 손이 망
풍선껌 일러 sd풍 제 그립톡임요 헿
박력넘치는 똥
빼빼로데이(포키의 날)
최애 에유는 항공입니다 문제는 글 하나 쓴 적 없
뜨이따 헤다 잠은 제게 중요한 문제라...
고기의 날
장형의 아침(사실은 낮)
3기 2권 표지 그림 마피카라로 트레(가우시안블러맥임)
마츠이누와 낙엽낙엽
복스럽게 먹는게 세상에서 젤 귀여운 카라츙

여러 작업이 겹쳐서 올릴 글은 없고
요새 글 안 써지면 대신 폰낙서해서 자꾸 쌓이는 김에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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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