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8. 23:54

[카라른]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10-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주의>

※카라마츠 중심, 시리즈 전체를 놓고 보면 카라총수지만 각 편은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커플링이 등장하지 않은 편에도 일관성을 위해 카라른이 붙어 있습니다.
※본 작품은 2016년부터 써온 2차 창작 작품입니다. 현재 원작(애니 기준)의 캐릭터 설정과 차이가 있습니다. 2019년에 개봉한 영화의 오소마츠상(극장판 오소마츠 6쌍둥이)의 학생 시절 설정은 차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도 캐붕이 심하니 주의해주세요.
※자살, 자해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기 5화 《카라마츠 사변》 기반으로 1기 당시의 동인 설정인 학생 시절 소재, 연극부 소재 등 이것저것 섞다못해 어디로 나아가는 지 모르는 BL향만 풍기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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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진동에 잠을 깬다. 눈을 뜨면 낯선 풍경이 그를 맞이한다. 이런, 깜빡 졸았네. 기지개를 펴도 어쩐지 찌뿌둥했다. 주변에는 미세하게 흔들리는 손잡이와 한적한 마을이 스쳐가는 창문, 텅텅 빈 의자에 자신처럼 졸고 있던 한두명의 사람들뿐. 전철에 실려 생애 첫 가출을 하는 17세 소년은 전철 노선표와 다음역 안내 표시를 번갈아보았다. 대충 이름이 마음에 드는 역에 내리려고 탔던 것인데, 다행히도 지나치지 않고 내릴 수 있었다. 거리를 걸으면 한적한 주택가. 작은 규모의 상점가.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원... 가출이라고는 하지만 집에 안 들어가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것도 아니고, 기껏 마음먹고 혼자서 멀리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다지 낯설지 않은 풍경에 살짝 실망하기도 하면서 역 주변을 배회했다. 그러다 곧 공원 한쪽의 벤치에 자리잡는다. 주머니 속에 있던 대충 구겨둔 종이를 펼쳐서 읽으면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리는 그였다. 원래대로라면 어제는 냈어야 할 숙제지만 제출하지 못한 채 구겨서 가방에 던져놓았던 걸 오늘 집에서 나오기 전 가지고 온 것이다. <자기소개서>. 진로 희망 조사와는 별개로 진학을 하든 취직을 하든 이런 걸 써야 할 일이 곧 많아질 거라며 우선은 내키는 대로 써 보라고 하는, 자유도가 높지만 그만큼 막연하기도 한 주제였다. 물론 술술 써 내려가는 사람도 있겠지. 이치마츠는 뭐라고 썼을까. 다같이 하는 숙제가 아니라 그의 반만 하는 숙제였으니. 이치마츠라면, 하고 싶은 건 없다고 했지만 의외로 성실하게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았을까. 백지로 내지는 않았을 거다. 다른 형제들이 이 숙제를 받아들었다면 어땠을까. 한숨을 쉬며 다시 내려다 본 자신의 글에는 소개라기보다는 편지나 고민상담에 어울리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는 지나치게 자신의 인생사를 나열한 것도 같다. 잘 쓰고 못 쓰고보다는 미주알고주알 자신을 드러내는 것 때문에 낼 수가 없었던 걸까. 자신도 알지 못했다. 요새는 알 수 없는 게 늘어났다. 특히나 알 수 없는 건 자기 자신이었다.

막이 내리고, 커튼콜마저 끝나고 암전된 무대에 그는 서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관객도 없는 오롯이 그만의 모노드라마. 독백도 몸짓조차도 없는 그저 가만히 서있는 그의 마음 속은 이 곳의 무대장치를 총동원해도 표현해낼 수 없는 격동으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5년간 맡아온 역할에서 내려오는 순간이다. 이제는 '연극부원 카라마츠 역'이 아니게 된다. 생각없이 붙들었던 연극부라는 명함은 그의 인생을 빠르게도 바꾸어놓았다. 신입부원에게 파격적으로 주연을 맡게 하고 다른 신입도 연극 무대에 세운다는 당황스러운 첫 연극에서, 누구 선배와 친하다며 자기가 주연이 될 게 당연하다고 으스대는 녀석을 토도마츠의 도움을 받아 골려줬었지. 대본에 새똥이 뭍었다곤 하지만, 남한테 실려서 연습하면 될 걸 연습이라곤 않던 녀석이 오디션날 펼쳐보고 당황하는 모습은 웃음거리라기보다는 영 보기 좋지 않았다. 어설프고 오버스러운 연기에도 생동감있다며 주연 자리를 차지하게 됐을땐 그런 건 금세 잊어버렸지만. 그 뒤에는 조명 담당도 맡았고 엑스트라도 맡으며 첫 연극부터 주연을 맡아 느꼈던 자신감은 좀 꺾였지만 순수하게 연극에 빠져들 수 있었다. 다만, 열정 있는 선배의 모습을 보면서 어렴풋이 연극이 내 인생의 길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생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던 선배가 고등학생이 되고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그는 연극 그 자체에 흥미가 크게 있던 건 아니었다. 다른 학교나 소극장에서 하는 연극을 찾아 볼 만큼의 열정은 없었다. 그래도 그는 나름대로 연극부 생활에 깊이 빠져 있었다. 어쩌면 그건 '연극부원'이라는 역할이 마음에 들어서일지도 모른다. 그 사소한 차이는 연극부 생활이 끝날 때 즈음 그의 고민거리가 되었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은 없는 목표만이 자리잡고 있다. 그 목표마저도, 자신을 높인다든가 사람들에게 꿈을 준다든가 세계평화라든가 하는 유치하고 그래서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없는 그런 것일 뿐. 오소마츠가 그를 불러내 진로같은 거 정했냐고 물었을 때도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연극이라는 선택지는 자신도 없지만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뭐가 있지? 내게는 뭐가 있지? 갑작스레 떠밀어진 차남이라는 역할을 잘 하고 싶었다. 여섯 쌍둥이에서 '나'라는 존재를 구분해주고 발견해주길 바랐다. 연극부는 거기에 딱 맞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장소였다.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내려오는 역자는 청중이나 함께 해준 사람들의 박수를 받지만, 역자가 다음 역할을 찾을 때까지는 홀로 고독할 뿐이다. 어둠 속에서 그는 이제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무대를 내려왔다.

차남 역할은 어중간했다. 연극부원 역할은 끝나버렸다.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했다. 그는 구깃구깃한 자기소개서를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방황하고 고민하던 나약한 자신도 거기에 함께 던져버린 채, 차남 역할을 강하고 단단한 허세로 감싸고서 그는 벤치를 떠났다. 하루도 채 되지 않은 가출이었건만, 그날 가출한 소년은 영영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는 나약한 자기 모습을 버리지는 못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이 지금까지와 지독하게도 달라서 형제들을 포함한 주변인들은 변해버린 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허술하기 짝이 없는 껍데기는 쉽게 갈라지고 뚫려서 겨우겨우 봉합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동안 마주치지 않았던 고교 시절의 동창을 길가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는, 이미 봉합하기 어려운 커다란 틈새가 자리하고 있었다. 고교 시절 부활동을 같이 하던 친구였다. '연극부원'이라는 역할에 충실한 그를 기억하고 있는 그는, 그가 모르는 그의 연극에의 열정이나 연기력이라는 재능을 가졌다며 그를 추켜세웠다. 
어째서 연극의 길로 가지 않은 거야? 지금은 뭐하고 있어? 아, 난 또 일인극 연습이라도 하는 줄 알았지. 그런 차림으로 프리 허그같은 걸 하고 있으니까. 역시 안타깝네. 그 길로 가지 그랬어. 
그는 뜬금없이 자신에게 내려진 고평가가 당황스러웠다. 그와 동시에, 이건 인사치레겠거니 싶었다. 백수로 지낸다는 말에 자신의 아르바이트를 일주일만 대신 해 주기를 부탁하며 웃는 동창의 모습에 어쩐지 자신이 그동안 뒤집어 쓴 껍데기가 쩍쩍 갈라져 부서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난 지금, 뭘 하고 있지?
그 뒤로도 그는 자신이 해오던 역할을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았다기보단 붙들고 있었다 해야 하나. 나약함이 고개를 든다. 결국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역할 같은 건, 역할이라 하긴 그랬다. 그냥 이런 사람일 뿐. 어떤 역할도 하고 있지 않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백수로 사는 삶이 즐겁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가 원했던 건 어엿한 '카라마츠'라는 인물이 되는 것이었다. 그걸 새삼 확인받은 뒤였다. 고민이 늘었다. 억지로 막아왔던 자기에 대한 생각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그렇게 밤에도 잠을 자지 못하고 잠시 바깥을 서성이던 그 날, 외상값을 갚지 않아 화가 잔뜩 난 치비타에 의해 납치를 당했다. 그 날은, 그나마 해오고 있던 차남 역할조차, 차남 역할은커녕 6쌍둥이라는 설정조차 부정당하는 듯한 날이기도 했다. 

내가 눈을 뜬 건, 고통이 머리부터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걸 느낀 밤이었다. 머리맡에는 오소마츠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말했다.
"어서 와, 카라마츠."
집...은 아닐텐데. 오소마츠가 손을 내밀어 볼을 쓰다듬으려는 걸 머리를 살짝 흔들며 거절하자, 살짝 어지러워졌다.
"뭐, 그러려나. 카라마츠, 내가 누군지 기억해?"
오소마츠. 라고 입모양만 말할 뿐 신음소리만 새어나왔다. 별 수 없이 어지럽지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다행이다. 내 당번일 때 깨서. 그냥 눈 뜬 것만으로 좋아. 다른 녀석들은 자고 있으니까 일단 깨우고 너스 콜 할게. 이거 해보고 싶었단 말이지."
전혀 웃고 있지 않은 눈과 어떻게든 웃으려는 입과 목소리톤. 그걸 바라보고 있다 갑작스럽게 퍼지는 몸 여기저기의 통증에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신음만이 새어나왔다. 곧 모두에게 둘러쌓인 채 어딘가로 옮겨졌다. 의식은 잃지 않고 마취제와 진통제를 맞으면서 의사의 말을 듣기로는, 일주일을 의식을 못 차리고 있었다고 한다. 빠르게 회복되는 편이지만, 한 달은 입원하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우선은 외상이 나아져야 다른 치료도 할 수 있다며, 불편한 점이나 힘든 점이 있으면 자신한테만 조용히 얘기해도 좋다고, 보호자들에게는 원치 않으면 일단은 알리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아픔이 좀 가시니 머릿속으로 생각을 해보려 했지만 머리가 아파올 뿐이었다. 우선은 절대 안정. 진통제로도 다 가시지 않는 아픔에 생각은 할 겨를이 없었다. 쵸로마츠나 이치마츠나 쥬시마츠나 토도마츠나 날 보면 모두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오소마츠는 아닌 척 했지만 역시 괴로워보였다. 엄마는 날 보며 울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달래며 나와 엄마를 번갈아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일단, 트럭에 치였다는 듯하다. 왼쪽 손목에는 아마 그것과는 상관없을 흉터가 있다. 목이나 뇌쪽에는 큰 이상이 없지만 어쩐지 말을 할 수가 없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들었다. 정말 목소리가 돌아올 지는 모른다. 어렴풋이 내가 처한 상황을 알게 됐지만, 쉽사리 트럭에 치이기 전의 기억이나 목소리는 돌아오질 않았다. 머리에 어지럼증이 많이 가시고 외상은 많이 나아졌을 무렵, 휠체어를 타고 보호자 동반으로 바깥을 산책하는 게 허용됐다. 그 역할은 주로 쥬시마츠가 맡았다. 쥬시마츠는 휠체어를 밀고 병원 부지에 조성된 산책로를 돌면서 나에게 불편한 점이 없는지를 물으며 챙겨주곤 했다. 그러나, 본론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 누구도 본론으로 들어가진 않았지만, 차라리 병실에서 억지로 웃는 형제들을 볼 때보단 얼굴이 보이지 않는 채 바깥을 만끽하며 있는 이 시간이 차라리 나았다. 그러나, 여전히 돌아와야 할 것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 걸지도 모른다. 좋지 않을 기억이나 그걸 전달할 목소리를 깊숙이 집어넣고서 그저 형제들에게 기대고 싶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말이지, 난 차남인데. 차남, 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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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9화를 쓴지 정확히 1424일 째, 1화 기준으로는 2148일, 쉽게 말하면 1화 쓴지 거의 5년, 9화 쓴지 거의 4년이 됐습니다. 외전이 있었지만 그것도 2년 전이네요.
그동안 2기도 나오고 극장판도 나오고 3기도 방송중이고 휴덕도 탈덕도 안하고(?)
그저 죄송하고 앞으로도 죄송할 예정입니다.
티스토리 에디터가 바뀌고 컴작업이 어려워지면서 고치고 싶은 걸 못 고친 채 일단 10화입니다. 9화의 요시다는 나카무라(5화)로 치환해서 읽어주세요. 이번 화에도 나온 동창입니다. 곧 고치겠습니다. 4년간 고민은 꽤 했는데 내용은 그대로 가되 드라마틱함이 좀 없이 건조하네요. 마치 내 방 공기와도 같은 건조함...
기다려주셨던 분, 잊어버렸다가 다시 보시게 된 분, 처음 보신 분, 모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하리H( )Ri
2019. 1. 9. 14:17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인터미션1―

《장형마츠의 중학교 1학년 여름》

(맏형마츠라고도 함)

-오소카라 요소 조금 있음.

-늘 그렇듯 망상폭주기관차

-단편으로 읽어도 되도록 했습니다.















이번 여름은 유독 길다.



*



올해는 여름이 빨리 찾아왔다.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빨리 30도를 넘었다던가. 그래서 예년같으면 6월이 되어서야 여름 분위기가 났을텐데 올해는 5월부터 쭉 더워서 지금은 벌써 여름이 무르익어가는 느낌이다. 중학교에 입학하며 들뜬 마음으로 맞춘 가쿠란을 채 두 달도 못 입고 반팔 셔츠를 입고 다니는 것이 당연해진 요즘. 여름 방학을 며칠 앞두고 학생들은 시험에서 해방된 기쁨과 금방이라도 푹 쪄질 거 같은 더위 사이를 오가며 방학이 어서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중학생이 되고 어느새 많이 변해버린 내 '동생'들도 그럴까. 어리광으로 시작했던 맏형 자리는 의외로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 전에도 이미 난 모두를 주도하는 역할이었으니까 별 달라진 점이 없는데. 형이라고 불리는 것은 당연히 기쁘기만 한데. 엄마가 우리를 찾을 때 나부터 부르는 건 태어날 때부터였으니 그것도 큰 문제는 아닌데. '동생'들이 변해서겠지, 역시. 그 중에서도, '둘째'라는 위치를 해내고 있는 카라마츠가 가장 큰 원인인 거 같다. 그에게 이끌려 맏형이 될 때마다 이 자리가 어쩐지 부담스러워진다. 말 안듣는 쵸로마츠나 토도마츠도 물론 큰 골칫거리지만. 그러고보니, 카라마츠에게서 왜 그렇게 차남 역을 열심히 하는지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어차피 물어봤자 그냥 그렇게 하고 싶다며 웃어 넘길 게 뻔하지만.
"하? 폐건물 탐험? 어린애냐고?"
"언제가 되어도 오소마츠 형만큼은 어른이 되지 않을 거 같아."
얼마 전부터 이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재개발이 한창이다. 어릴 때는 그런 곳의 폐건물을 종종 가고는 했다. 나와 쵸로마츠가 앞장서고 나머지도 벌벌 떨면서 건물을 돌아다니다 정말 별 거 아닌 구슬이나 긴 못 같은 걸 주워서 건물을 정복했다며 뻐기곤 했다.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니다. 분명 작년에도 버려진 학원에 가서 책상에 실컷 낙서를 하고 돌아왔을 터다. 그걸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는 먼 옛날 얘기인 양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치마츠와 쥬시마츠 쪽을 바라봤지만 둘은 빠르게 고개를 저으며 내 눈을 피한다.
"쳇. 형아의 로망을 이해해주지 못하다니."
몸을 홱 돌리며 삐진 척을 해보지만,
"형다운 짓을 하면서 형이라고 좀 해봐라. 덕분에 1학기 내내 전원 교무실 단골이 되었다고? 교내 방송에 '마츠노'가 얼마나 많이 나왔는 지 이젠 스피커에서 소리 날 때마다 절로 고개숙이고 일어서는 기분을 알아?"
기다렸다는 듯 쵸로마츠가 쏘아붙인다. 그렇게 불만이었냐. 하긴, 내가 사고를 치고 나선 매번 다른 이름을 대면서 도망쳐 다녔기에 동생들도 제법 고생했을 것이다. 그걸 알아도, 장난은 그만둘 수 없지만.
"바보짓은 그만 좀 해! 금쪽같은 쉬는 시간도 다 뺏기고 말야."
토도마츠도 거들고 나서고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는 여전히 내 눈을 피한 채 끄덕거리고 있다.
"이래서야 내가 나쁜 사람 같잖아~"
4명의 눈이 이쪽을 향한다.
"나쁜 사람 맞잖아!"
그 후, 저녁 먹기 전까지 쵸로마츠에게 설교를 들었다. 교칙으로 위험한 장소는 가지 말라는 게 정해져 있다고. 폐건물 같은 데를 갔다 들키면 쉽게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말과, 갔다가 만약 누구에게 걸리지 않더라도 바보짓에 질린 자신이 직접 선생에게 말할 거라는 협박도 함께. 무거운 분위기의 거실에서 날 구원해준 건 언제나처럼 늦게 귀가한 카라마츠였다. 닭고기 냄새에 혹했는지 어린애처럼 밥을 보채는 그에 동조하듯 모두 밥을 달라며 떼를 썼고, 엄마는 한숨을 쉬면서도 "어쩔 수 없네"라며 밥상을 차려주셨다.

다음날도 볕이 뜨거웠다. 교복의 등은 벌써 땀으로 젖어 있다. 시험이 끝나서인지 더위를 못 참는 기분을 이해해서인지 책상에 엎드려있어도 용서해주는 자비로운 수업시간. 지루한 톤의 말소리는 살짝 스쳐가고, 오히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더 귓속을 울리는 오후 시간. 그러다 문득, 카라마츠에게 묻고 싶었던 말이 떠올랐다. 거기에 폐건물. 종합병원이 폐업한 거라 분명 재밌을 텐데. 둘이 그런 곳에서 얘기하면 좀더 솔직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예로부터 귀신의 집이나 담력훈련은 사랑이 싹트는...어라? 갑자기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선생의 눈길이 잠시 나를 향했다 이내 다른 쪽으로 향했다. 뭐, 연인이 되는 이벤트를 형제한테 못 한다는 법은 없지. 생각난 김에, 오늘 해 버리는 게 좋겠다...그렇게 생각이 이어지는 동안 수업종이 울리고, 난 교실을 뛰쳐나갔다.

방과 후, 연극부로 향하는 카라마츠를 뒤에서 붙잡았다. 흐엑! 같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놀라는 점이 카라마츠의 숨겨진 볼거리다. 그랬다가 한심하다는 듯 째려보는 눈길이 조금 쓰라렸지만.
"자자, 아우여. 오늘은 이 형님과 갈 곳이 있으니 잔말말고..."
"싫다."
"잠깐! 그렇게 단칼에 거절하지 말고~"
"시험은 끝났지만 연극부는 가을공연을 준비해야 하니까 쉬지 않는다. 모처럼 1학기에 잘 심어둔 인상과 여기에 바친 열정을 단 하루의 실수로 놓아버리고 싶진 않아."
"은근히 빡빡하네, 연극부."
"학기마다 적어도 한 번은 공연하니까. 많이 익숙해졌고, 남아있는 1학년들 모두 열심히 하자고 선배들이 응원해준 게 바로 어제인걸. 그런 다음 날 연습을 빼먹으면 누가 신뢰를 주겠어?"
카라마츠가 연극부에 푹 빠져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겨우 하루 빼먹는 걸 이렇게까지 싫어할 줄이야. 하지만, 이미 손은 써 놨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말없이 빠지는 게 싫은거지?"
"응...하지만 집합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갑자기 안 간다고 하긴 좀..."
"그건 걱정마."
"에?"
"이미 말해뒀음."
카라마츠가 벙찐 얼굴로 날 봤다. 못 믿겠다는 게 얼굴에 쓰여 있었다.
"3학년에...그...아사노였나? 연극부 선배지? 그 사람한테 오늘 볼 일이 있다고 아까 말해뒀어. 귀엽더라, 그 선배~ 혹시 그 선배 때문에 연극부 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아...어...그건 아니야...아사노 선배는 어떻게 알고 연극부인건 또 어떻게 안 거야?"
"저번 공연 때 눈여겨 봤지. 네가 몇번 얘기한 적도 있잖아?"
벙 찐 카라마츠의 얼굴은 살짝 경외가 묻어나 보였다. 내 생각이지만.
"뭐...형제의 주변을 챙기게 되다니 역시 맏형답군."
그냥 그 사람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던 거 뿐이지만, 카라마츠는 이 틈에도 나를 괜스레 맏형이라 추켜세운다.
"처음에는 너인 척하고 가서 꾀병부렸는데 너가 아닌 것도 꾀병인 것도 금방 들키더라? 그래서 사나이 대 사나이로 긴히 할 말이 있어 널 데려간다 했더니 엄청 웃던데? 눈물까지 찔끔이면서. 그러더니 오늘은 카라마츠를 잘 부탁한다며 보내줬어."
카라마츠는 내 말을 유심히 듣더니 의심이 걷힌 듯 끄덕였다.
"...그래서?"
"응?"
"어디 갈 건데, 오소마츠 형."
급격히 진지해졌다. 이런 점은 확실히 예전과 다르다. 녀석이 정색할 줄 알았던가.
"재개발하는 쪽에 종합병원이 폐업하고 남은 폐건물이 있거든. 거기 한 번 가 볼까 해. 다른 녀석들은 애취급하면서 안 간다잖아. 가기 싫으면 그냥 안 가면 되지 거기서 왜 어른이 못 될 거냐느니 하는 말이 나오냐고."
"작년까지만 해도 종종 그런 데 가긴 했지. 그런데 지금은 교칙으로 못 가게 되어있지 않아?"
"내가 교칙을 지키는 쪽이 아닌 건 잘 알잖아?"
"하긴...입학하자마자 덕분에 고생했어. 특히 내 이름 대고 자주 튀었잖아."
"그건 뭐..."
머쓱한 표정으로 카라마츠를 본다. 생각해보면 나 때문에 자주 혼났으니, 장난에 꾀어내는 걸 싫어할 지도 모른다.
"좋아. 오랜만에 한 번 가보지 뭐."
카라마츠는 살짝 웃어보였다. 아마도, 그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본 건 오랜만이라 생각한다.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지 않게 된 것도 벌써 반 년이다.



*



한때는 종합병원이었던 건물은 철로 된 울타리에 둘러싸인 채 덩그러니 놓여있다. 울타리들엔 락카로 수놓은 욕망의 잔재들, 각양각색의 광고지, 으레 새겨진 사랑의 화살표 등이 수놓아져 있다. 울타리를 따라 빙 돌다보면 발로 찼는지 삽 같은 것으로 쳤는지는 모르지만 철판이 안으로 휘어진 개구멍이 만들어져있다. 낑낑대며 들어가면 바닥에 씨처럼 흩뿌려진 담배 꽁초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그런 건 나나 카라마츠에겐 아무래도 좋았다. 한때는 정문이었을 유리문은 돌이라도 맞았는지 깨져있고, 그 곳에 너덜너덜하게 폐업일 안내와 철거일 안내 쪽지가 붙어 있었다.
"내일 철거하나 보네."
카라마츠는 답이 없다.
"운이 좋았네, 우리. 그렇지 카라마츠?"
카라마츠가 움찔하며 내 쪽을 본다. 맞아, 이 녀석 겁쟁이였지. 암만 철 든 척 형인 척 해도 겁이 많던 그가 갑자기 대담해지지는 않았을 터다.
"본방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고? 안에 들어가서 재밌는 게 있나 살펴봐야지!"
손을 덥썩 잡았다. 카라마츠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여름날이라 그런지 겁이 나서 그런지 그의 손은 촉촉했다.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꼭 붙든다. 이거야 원... 형에게 의지해 주다니 기쁜데.
"...귀신이라던가...원혼 같은 건 없겠지?"
"그런 게 세상에 어딨냐? 있으면 이 '형'이 혼내줄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라고~"
그렇게 떠는 와중에도 불신의 눈으로 그가 나를 쳐다본다. 그게 하늘같은 형님 보는 눈빛이냐. 뭐, 어떠랴. 그의 손을 붙잡은 채 깨지지 않은 쪽 문을 열었다. 떨면서 멈칫서리는 카라마츠를 끌어당겨 안으로 들어왔다.
"자, 손전등 가져왔어. 하나 받아."
"오...오우..."
"이젠 좀 떨어져도 되지 않냐? 괜히 붙잡고 있다가 넘어져서 다칠 수도 있다고?"
"그럴지도..."
카라마츠는 손을 놓고 그 자리서 우뚝 섰다. 희미하게 비치는 햇빛에 의지해 그의 눈은 공포와 호기심이 뒤섞인 채 이 공간을 파악해가고 있다. 나도 그를 시야에서 놓지 않도록 주의하며 주위를 살폈다. 맥주 캔이나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지만, 대체로 휑한 곳이었다. 그도 그럴게, 이 건물은 내일이면 사라질 곳이니까. 카라마츠는 이번엔 옷깃을 붙잡은 채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계단..."
"올라가볼까? 여섯이 왔을 때보다 너무 떠는 거 아님?"
"그땐 사람이 많았잖아. 오늘은 단 둘이니까."
"두고 도망가면 볼 만 하겠는 걸~"
"그랬다간 형이고 자시고 패버릴테니까 알아서 해. 아마 다들 기회 잡으면 좋다고 널 패러 달려들걸."
부들부들 떨면서 강한 어조로 그가 말해온다. 나한테 쌓인 거라도 있었나. 사람은 몰리면 본심이 튀어나온다고 하던데, 딱 그런 느낌이었다.
"농담이야, 농담. 자, 올라가자!"
2층, 3층, 4층...6층 하고 옥상. 옥상 문을 열고 나갔지만 높이 솟아오른 철조망과 한때는 이것저것 빨래가 널려 있었을 줄들이 수거되지 않은 채 곳곳의 기둥에 묶여 있었다.
"내일이면 사라질 건물이니까 망정이지, 누군가 여길 진작 알았다면 분명 안 좋은 일이 있었을 거야..."
카라마츠는 걱정스럽게 옥상을 둘러보았다. 폐건물의 탐험 놀이도 시간이 지나면 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걸까. 고작 반 년밖에 안 됐는데. 녀석이 '둘째 형'이 된 지도, '중학교 1학년생'이 된 지도, '성실한 연극부원'이 된 지도. 억지로 '첫째 형'이 된 나와는 다르게 그 변화가 자연스럽다. 여전히 겁쟁이고 바보인 점은 변하지 않았지만. 푹푹 찌는 더위에도 살짝 바람이 부는 이곳은 어째선지 선선했다. 흔들리는 빨랫줄과 철조망에 부서진 주위 풍경과, 계단을 오르느라 땀에 젖은 카라마츠와, 나와. 그곳에 계속 있다가는 본연의 목적을 잊어버릴 거 같아 땀이 식자마자 6층으로 내려왔다.

"폐건물 탐험의 룰은 알고 있겠지?"
"호...혼자 다니게 할 셈이야? 더 좋은 거 주워오기 경쟁이잖아?"
혼자 다녀본 적은 없었다. 예전엔 짝지어서 다녔으니까. 생각해보니 카라마츠와는 짝을 지어서 폐건물을 돌아본 적이 없었다.
"쳇. 어차피 먼저 본 사람이 임자니까 같이 다니면서 경쟁하는 걸로 하지 뭐. 여기는 병실만 있어서 별 거 없을 거 같으니까 다른 데 찾으러 가자."
가지고 온 손전등을 켜고, 본격적으로 병원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검사실, 진료실, 약품 보관실...종합병원이라곤 해도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아보였는데, 크고 작은 방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마 가져가기에 골칫거리인 침대나 소파나 책상같은 큰 물건들을 제외하곤 주사기 바늘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렇게 위험한 요소들은 안전하게 치워놓고 비워주는 게 당연하지만, 이런건 너무 정 없잖냐. 로망을 모른단 말이지. 이래서야 그냥 죽음을 앞둔 건물일 뿐이잖아. 생각만큼 수확이 없었던 데다 더운 날씨에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닌 탓에 지친 우린 3층의 휴게실에서 우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아아~ 간만에 하는 탐험이 이다지도 무의미할 줄이야."
"그러게, 별 거 없었네 정말."
하아. 동시에 한숨을 쉬고선 눈이 마주쳤다. 뭐, 마침 잘 됐어. 둘이서 진득하게 이야기나 하지 뭐.
"카라마츠, 있잖아."
"왜?"
"있잖아...음..."
큰일이다. 막상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더니 입이 안 떨어져.
"중학생이 되니까 어때?"
"중학생? 아...글쎄."
그리고 어색한 침묵.
"사실 교복을 늘 입고 다녀도 항상 한 다스로 사서 세트로 입고 다니던 우리 여섯 쌍둥이에겐 별 새로운 느낌은 없었지. 중학생이 되서보다는, 중학생이 되기 전 오소마츠 형이 형으로 불러달라고 했던 그 날, 그렇게 형동생이 생겨버린 그 때가 더 영향이 컸다 해야 할까? 뭐냐고, 갑자기. 그런 생각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그날 이후 조금씩 달라지고 싶었던 거 같다. 나도 그렇게 찌면 둘째 가는 형이니까. 그리고 연극부가 재밌다! 연기력따위 늘지 않고 처음에 주연을 해서 그런가 살짝 열정이 시들해진 감도 있지만, 그래도 재밌어. 수업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등교하자마자 방과후가 됐으면 하면서."
카라마츠가 의외로 떠들어준다.
"오소마츠 형이야말로, 어떤가. 누가 보면 행복하다못해 폭발하는 청춘을 보내고 있지?"
"음...글쎄다."
다른 녀석들하고 어울리기도 하고, 치고받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매일 즐겁긴 하지만.
하지만.
혼자인걸.
괜한 짓으로 나는 너희들과, 너와, 멀어져버린 거 같아.
"너무 미움사지는 말라고? 쵸로마츠는 저렇게 직접 얘기하는데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 같아. 성실한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하지. 다른 녀석들도 내가 속마음까지 어떻게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형에게 휘둘려서 조금은 힘들어하고 있다. 다들 조금씩, 그렇게 자기를 찾아가는 거 아닐까."
뭐냐고.
혼자 훌쩍 커버린 소리 하지 말라고.
어쩌다 그런 소리를 하게 된거야, 바보 주제에.
"난 그런게 아니라, 너에 대해..."
다시 분위기를 잡아보려 했는데, 카라마츠가 갑자기 공포에 질린 얼굴을 했다. 시선은 휴게실의 창문 너머였다. 아무것도 없는데? 하고 다시 카라마츠 쪽을 보는데, 카라마츠가 손을 덥썩 잡았다.
"여...역시...얼른 나가자..."
무섭다라는 말은 자존심 때문인지 하지 않는다. 녀석은 뭘 본 걸까. 더 이상 여기 있기도 그러고, 분명 둘이서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도 많겠지. 손을 잡고 넘어지지 않게 계단을, 계단을 달려 바깥으로 나왔다. 다시 개구멍을 지나서 폐건물이 멀어질 때까지 달리는 동안 제법 해가 내려앉은 것이 보였다. 하늘엔 어느새 붉은 빛이 한 방울 떨어뜨려졌다. 집에 들어가기 전 공터에서 서로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고 카라마츠가 가지고 있던 용돈으로 아이스바를 7개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둘이 같이 오다니 별일이네."
집에 먼저 와 있던 이치마츠가 마루에서 부채질을 하며 인사한다. 옆에 있던 쥬시마츠가 봉지를 눈치채고 다가와서 아이스바를 두 개 빼갔다. 카라마츠도 아이스바를 두 개 꺼내서 내 손에 쥐어주더니 집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이치마츠 옆으로 가서 앉아 아이스바의 껍질을 깠다. 파란 색의 소다맛. 혀로 핥으면 여름이 묻어나오는 그런 맛. 냉장고에 남은 아이스바를 넣고 온 카라마츠도 내 옆에 앉아서 어느새 살짝 녹은 아이스바를 입에 문다. 땀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며 잠시의 일탈을 씻어냈다.



*



멍하니 앉아 있으면 어디선가 쿵, 쿵, 하고 울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아, 어제 갔던 그 폐건물이 철거된다고 했던가. 창문은 열려 있고, 바람이 불어서 그런가 간만에 선선했지만 여기까지 그 소리가 들릴 리가 없잖아. 마치 어제 오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매일매일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흘러가고 있다. 옆동네에선 폐건물을 철거하는 소리가 한동안 소란스럽겠지만 어느새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또 그 건물이 항상 있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간이 흘러갈 것이다. 조금씩 달라져버린 카라마츠도, 다른 녀석들도, 언젠가는 늘 그랬다는 듯이 받아들여지겠지. 그런건 싫지만, 그땐 그랬지 하며 어제 일을 별 거 아닌 양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러는 동안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멈췄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며 주변이 소란스러워진다. 복도를 바라보면 평소와 같이 카라마츠가 들뜬 표정을 하고서 지나간다.

여름방학도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데.

이번 여름은 유독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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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가 도대체 몇 번 째인지) 쉬어가는 겸 단편 먼저 갑니다. 흐에에...
원래는 끝나고 외전 몰아쓰고 마치는 게 작년까지의 계획이었는데...재작년...재작년...하...
쉬는 동안 덕질은 안 쉬었습니다. 단타로 굵직굵직하게 즐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삶이 여러모로 글러먹은데다 지리멸렬해서 힘들군요(진행중)
작년이 재작년이 되고 또 한 해 지나고...아...미치겠...
어느새 2기도 끝나고 극장판이 학생마츠 코피팡! 그리고 설정 다 붕괴하면서 극장찬 보고 오면 쳐울며 지울 거 같아서 그 전에 어떻게든 쥐어짰습니다 흑흑

겨울에 하는 여름 이야기입니다! 아 넘모넘모 추운거시에요
폐건물에 로망은 없나요? 아지트라든가.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지금도 그런 로망이 있습니다. 저기서 보통 진한 ■■■■■■■■■를 상상하지만 건전하게 가봤습니다. 자신이 없어...
Posted by 하리H( )Ri
2017. 2. 15. 19:58

[카라른/이치카라]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9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캐붕,날조,글솜씨없음주의

※5화 카라마츠 사변 기반

 

9화가 데자뷰라고 느끼신 분은 정상입니다. 다만 안에 내용은 많이 바뀌었어요.

또 이렇게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 화 작업중이에요 ㅠㅠㅠㅠ 벌써 이것도 1년 되가는...

뭘 쓴게 있다고 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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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바깥을 배회하자면 머리 위에 떠 있던 해는 어느새 기울어 지평선을 향하고 있다. 그다지 기다릴 셈은 아니었지만 쵸로마츠가 생각보다 늦어지자 병원 입구를 자꾸 바라보게 된다. 병원 앞뒤를 둘러싼 작은 산책로에는 링거 거치대를 끄는 노인, 휠체어에 탄 소년과 그걸 미는 남자, 목발을 짚고 느리게 움직이는 여자 등이 보였다. 그리고 의외로 고양이도 몇 마리 돌아다녔다. 병원 직원이 먹이를 주는지 한켠에 빈 그릇과 물통도 놓여 있었다. 고양이들을 놀아주며 산책로 벤치에 앉아있자면, 고양이처럼 굽은 등을 한 쵸로마츠가 느릿느릿 입구로 걸어 들어온다. 빠른 걸음으로 짐을 받아주자 그는 한숨을 쉬면서 카라마츠가 입원한 병실 쪽을 바라보았다.

 

"좀 늦었네. 엄마 병수발이라도 하고 온 거?"

 

고개를 젓고선 쵸로마츠가 입을 떼려다 다물어버렸다.

 

"아니. 그건 아냐. 이따가, 다 같이 있을 때 말할게."

 

그는 능숙하게 숨기질 못한다. 분명 중요한 말이겠지. 그래서 다 같이 있을 때 말한다는 걸까. 그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저 표정을 본다면 누군가는 쵸로마츠에게 말을 해 달라 할 것이다.

 

"일단 올라가자. 어차피 계속 밖에서 있었을 거 아냐. 그 사이에 카라마츠가 일어났을 지도 모르니까."

 

 

쵸로마츠가 병실 문을 열자 모두가 이쪽으로 왔다. 오소마츠 형은 '쵸로마츠, 수고~'라는 말과 함께 쵸로마츠를 가볍게 맞아주며 나를 쳐다봤다. 어쩐지 그 눈길이 거북해서 눈을 피하며 다시금 복도 의자에 주저앉았다. 쵸로마츠는 훌쩍거리는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를 달래며 안쪽으로 들어가고, 오소마츠 형이 복도로 나왔다.

 

이치마츠, 뭐 하나만 물어도 돼?”

 

“...뭔데.”

 

아까 쵸로마츠랑 얘기 나눈 거 있어?”

 

별건 없어. 이따가 다 같이 있을 때 얘기해준다는 건 있었지만.”

 

내가 숨겨봤자 어차피 곧 쵸로마츠의 표정을 보고 알 테니까 그냥 말해버린다.

 

?”

 

글쎄.”

 

그리고, 왜 카라마츠를 보러 들어오질 않는 거야? 걱정은 엄청 하고 있는 주제에.”

 

하나가 아니잖아! 거기다 당황스런 질문이다.

 

...누가 걱정한다고...”

 

하고 있잖아? 엄청. 너도 힘들어하는 거 있는 거 아냐?”

 

그다지...암만 썩을마츠라 해도 저렇게 다쳐서 못 일어나면 걱정되는 건 당연한 거고...”

 

그거 말고.”

 

“......”

 

나는 형이니까, 카라마츠의 고민을 알아주지 못한 거라던가 책임감을 느끼고 있거든. 너도 그런 거 있지 않을까 해서.”

 

이럴 때 느낀다. 역시 장남은 장남. 바보 주제에 저런 건 잘 알아챈다.

 

쉽게 얘기하네.”

 

?”

 

그 정도잖아? 단지 형이니까 몰라줘서 미안한 거로 끝. 녀석을 저기까지 몰아간 직접적인 원인은 되지 않아. 느끼는 죄책감이 있다고 해도, 그저 의무적인 것뿐이니까. 나랑은 다르다고. 나랑은...”

 

형의 페이스에 말려들면 위험하다. 그래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런 중얼거림조차 끈질기게 물어올 게 분명하니 다시 병원 밖으로 나간다. 카라마츠의 병실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은 채 멍하니 지내고 있다 보니 어느새 하늘은 푸른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릴 적 나비의 생태를 알아보자는 내용이었나, 하여간 교실에서 애벌레를 길렀던 적이 있다. 다들 어서 나비가 되기를 기다렸지만, 애벌레는 몇 번이고 허물만을 벗을 뿐, 나비가 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잘난 척 하던 녀석이 이런 게 탈피라면서, 이걸 몇 번 해야지 나비가 된다고 말했던가. 애벌레에게 상추라던가 먹이를 주는 담당이 나였기 때문에, 벗겨진 허물을 보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이윽고,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어버렸다. 담임이 호들갑을 떨며 겁을 주면, 몇 명인가가 피식거리고 몇몇은 나비 죽었냐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번데기에서 나비가 우화해서, 사육장의 뚜껑을 열어주니 날아가는 모습에 그 당시에는 감동했었다. 하지만, 신비롭고 아름답게 남은 그 장면은 거미줄에 걸린 나비를 본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긴 시간, 날 수 있는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지 못한 채 자라온 녀석의 비참한 최후를 보며 여느 녀석들처럼 죽어서 불쌍하다는 생각이 아니라 나비가 되기까지 허물을 벗으며 고통받았을 그 시간들이 아깝고 쓸모없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껍데기를 깨고 자신의 본질을 드러낸다한들 스스로 지켜내지 못하면, 보호받지 못하면, 어차피 약할 뿐이라고. 산소라든가, 세상이라든가, 무심코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마는 나다. 그런 내게 카라마츠는 예나 지금이나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의 손을 내내 뿌리쳤다. 미움을 샀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나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카라마츠의 마지막 연극을 하기 전, 봄이었다. 그 뒤, 우리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우리의 마지막 학생시절을 소비하는 동안, 카라마츠는 급격히 안쓰러워졌다. 그 전에도 그는 남자다운 것을 좋아하고 종종 연극톤을 내뱉었으며 폼 잡으며 뜬구름 잡는 소리를 내뱉는 사람이었지만 그 시간을 거치며 카라마츠는 안쓰러운 캐릭터에 암묵적으로 무시하는 편이 낫다고 여겨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연극에 대한 어긋난 애정일 거라 생각했다. 5년을 빠져 살았던 연극이다. 그걸 어쨌건 타의로 관두게 되었으니 카라마츠의 변화에 동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 정도가 갈수록 심해졌다. 마치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기라도 한 양, 이상한 필터로 타인의 말을 걸러듣는가 하면(주로 자기에게 좋은 쪽으로) 오자키처럼 남자들이 동경할 법한 패션이나 말투를 과하게 써서 눈총을 받거나 자기애 넘치는 작품들을 양산해내곤 했다. 거기에 질려서 결국 형제들까지 안쓰럽다거나 무시하는 일이 된 게 고작 그 1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지만, 너무도 달라진 껍데기에 사람들은 적응하고 바뀌어갔다. 카라마츠의 상담에 제대로 대응해주지 못한 나에게도 잘못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이전보다 나에게 다가오는 방식이 짜증나서, 그리고 나도 만사가 부정적으로만 보여서, 카라마츠를 대하는 방식은 점점 심해졌다. 내가 자기혐오로 무장하고 땅굴을 파는 타입이라면 그는 전형적인 나르시스트였다. 자신에게 자신이 없으면서도 그 발현방식이 정반대라 그런지 이전보다도 그와 엇나가기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내는 관계. 거기에 상처받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갔다. 나도 상처받고 있잖아. 애초에 저런 안쓰런 모습 관두면 안 되나. 그렇게 자신이 단단한 척 애써봤자 남는 건 없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변하지 않았다. 이젠 카라마츠는 원래 저런 녀석이었지라고 여겨질 정도로. ‘이치마츠가 제일 걱정된다고라고 들을 때 그걸 감싸주는 카라마츠의 본질마저 안쓰럽다 여길 정도로. 물론 약한 모습도 자주 보이지만 그가 꾸며낸 껍데기는 단단해져서 깨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우화를 기대해본 적은 없다. 그 껍데기로 사는 게, 그 껍데기가 본질이 되는 게,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거 아닐까. 물론 저런 어른이 되는 건 결코 좋은 방향이 아니지만. ‘어른은 좋은 의미로만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고, 니트 생활을 하며 미루고는 있지만 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살아야 하고. 어릴 적에 생각했던 어른은 되고 싶은 존재였는데 삶이 이어지면서 어른이 다 좋은 건 아니다 싶고. 훌륭한 어른이 있는가하면 쓰레기 같은 어른이 있고. 그 쓰레기도 타는 쓰레기와 타지 않는 쓰레기로 나뉘듯 내가 겪은 쓰레기어른과 내가 돼버린 쓰레기어른은 다르고. 더 이상은 자기가 누군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이 어른의 장점이라 멋대로 여긴다. 그 누구보다 고민 없는 남자 카라마츠도 영 쓸모없고 어른답지 않지만 어른은 어른인거다. 그런 판정을 내리며, 우리 여섯 쌍둥이가 모두 그런 처지가 되었다는 것에 조소하곤 했다. 설마, 껍데기가 깨지는 모습을 보게 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균열은 조그맣게, 예상치 못하게 생기는 법이니까. 카라마츠가 치비타에게 납치를 당했다 돌아온 날. 버릇처럼 그에게 툭툭대면서 엄살떨지 말라고 했지만 병원에 다녀와 붕대를 둘둘 감은 카라마츠의 모습은 애처로워 보였다. 평소와는 달리 거실에 1인용 요를 깔고 카라마츠가 잘 수 있도록 해둬서, 늘 좁았던 6인용 이불은 넓어보였다. 도대체 납치 당일에는 왜 눈치를 못 챈 건지 의아할 정도로 카라마츠의 빈자리는 컸다. 잠결에 밖으로 나돌아다니다 우리의 먹튀에 열받은 치비타에게 잘못 걸렸던 거겠지 생각한다. 납치극의 전개과정에 대해서는 카라마츠를 위해서인지 스스로를 죄책감에 몰아넣고 싶지 않아서인지 그 뒤로 누구도 입 밖에 꺼낸 적이 없으니까. 카라마츠의 잠자리를 살펴주자 붕대와 반창고로 뒤덮힌 그의 얼굴에 핀 미소는 여전히 해맑아서, 그날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자리에 누우면 옆의 빈자리를 괜히 휘적거리고 요에 파묻혀 카라마츠의 흔적을 더듬기도 하고 원래는 건너였던 토도마츠를 괜히 건드리기도 하고, 그러다 정신이 맑아져 버렸다. 다사다난한 날이었다. 친구인 고양이가 본심을 말하는 약을 맞고, 내 본심이 들켜서 화내버리고, 나 때문에 도망간 고양이를 쥬시마츠가 찾아주고, 모두와 화해하고선 목욕을 끝내고 돌아오자 심한 꼴을 하고 있는 카라마츠가 있고, 카라마츠의 상태 탓인지 모두들 솔직하게 싹싹 빌었는데, 아마 에스퍼 냥이 사건의 부산물일지도 모른다. 평소같았으면 그렇게 심하게 다쳐와도 별 신경 안 썼을 거라 생각하니까. 맑아진 정신에서는 끊임없이 그날 하루가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때, 1층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도둑인가? 하지만 문이 열리기도 전에 발소리가 들리는 게 영 이상했다. 그리고 조금 지나, 지붕이 살짝 울렸다. 몸을 일으켜 조심히 방을 빠져나왔다.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누가 올라갔나 살피러 가자, 그곳에 익숙한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다.

 

......하하하...하하하핫...”

 

우는지 웃는지 모를 소리를 내면서 그의 어깨는 들썩이고 있었다. 달빛에 비친 얼굴은 분명 카라마츠였다. 왼쪽 손목에 무엇인가 반짝, 하고 빛났다. 으윽하는 소리를 내며 카라마츠가 움츠리고 다시금 아까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슬쩍 카라마츠의 몸이 틀어져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넋이라도 나간 듯이 그저 자신의 손목을 긋고, 긋고, 그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손목을 긋던 것을 떨어뜨렸다. 아까의 웃음소리, 아니 웃음소리라기엔 애처로운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소리조차 목구멍에서 막힌 듯 작게 들려왔다. 울음이 섞여 마음껏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소리. 카라마츠는 망가지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소리에 맷돌에 맞아 목이 꺾인 카라마츠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 탓이야. 무서워. 서둘러 내 잠자리로 돌아왔다. 잠자리에서마저 비치는 달빛은 나의 가슴을 찌르고 잠 못 이루게 했다. 그 뒤론 카라마츠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피하기만 했다. 카라마츠가 오는 걸 살피고 밖에 나가거나 했다. 병실에 있지 못하는 것도 그 탓이다. 그를 볼 때마다 가슴이 저려오고 숨이 막히는 것 같으니까.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날이 어둑해졌다.

 

이치마츠, 들어가자.”

 

쵸로마츠가 저녁밥은 먹어야 한다며, 병실에서 마중을 나왔다. 고개를 흔들자, 그는 머리를 감싸며 얘기한다.

 

밥은 먹어야지. 이런 상황에 한 명 더 쓰러지면 정말 곤란하다고? 밥 먹으면서, 모두에게 얘기 좀 할 거니까.”

 

...”

 

쵸로마츠의 손에 이끌려 병실로 들어왔다. 쥬시마츠가 애써 밝은 얼굴로 뭐하고 있었냐고 물으면, 그냥이라 작게 중얼거릴 뿐. 카라마츠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고, 자연스레 밥상에 둘러앉듯 작은 탁자에 모여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밥을 삼켰다.

 

슬슬 괜찮을까나. 모두에게 할 말이 있는데.”

 

좋다고, 답하는 사람은 오소마츠 형밖에 없었지만, 쵸로마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제 집에 간 김에, 카라마츠가 학창 시절에 무슨 일을 겪지는 않았을지 조금 알아보고 왔어. 내가 알아본 것만으로는 카라마츠가 이 지경에 이른 것까지 설명할 순 없지만, 그래도 내 나름의 추측까지 더해서 정리하느라 바로 말하진 않았어. 이거 말고도 아마 각자가 알고 있는 일들이 있을 거라 생각해. 다 얘기하라고는 하지 않을게. 다만, 카라마츠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생각해줘.”

 

쵸로마츠는 카라마츠의 중고등학교 시절 연극부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다. 그래봤자 제3자의 이야기로, 카라마츠가 겪었던 일이나 감정을 다 대변해주지는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상냥하고 의지되는 형으로 남고 싶었던 집에서의 카라마츠와는 다르게 학교에서의 그는 평범했다. 바보여서 수업에 따라가기 힘들어했다거나, 늘 즐겁게만 보였던 연극부 활동도 부원들간의 트러블이라든가에 말려서 곤란했다거나. 생각없어서 좋겠다느니, 하나도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느니, 그건 그가 한껏 꾸며낸 허세에 말려든 것에 불과했던 모양이었다. 다만, 힘들 때마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털어놓거나 하지 않은 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다들 똑같았는데, 나도 그랬는데, 녀석만 강한 척 하다가 괜히 힘들어지게 된 거 아니냐고. 그런데, 학창 시절의 일들이 이제 와서 카라마츠를 조이는 이유가 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졸업하고 벌써 몇 년이나 된 일이잖아. 나름대로 극복한 거 아니였냐고. 안쓰럽게 변해가면서.

 

“...그러다 요시다 군이라고, 이치마츠 기억나? 1때 같은 반이었던 녀석.”

 

1때라. 좋은 기억이 없어서 쵸로마츠 외의 동급생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 녀석도 연극부였는데, 얼마 전에 카라마츠를 만났다고 하더라고. 그냥 예삿말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연기 쪽으로 안 나가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호들갑이더라. 카라마츠를 만났을 때도 그런 말을 했다고 했어. 확실치는 않지만 그때쯤부터 카라마츠가 우울해하기 시작했던 거 같아.”

 

그거였나.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라마츠가 납치당했지. 시기를 더듬어보니까 그렇게 되더라고.”

 

납치극을 얘기하자, 표정들이 한층 어두워졌다.

 

그럼, 카라마츠 형에게 있어서는 불행이 연달아 겹친 거...였을까...”

 

토도마츠가 힘없이 말했다.

 

그랬을지도...”

 

쵸로마츠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마무리를 지어버렸다.

 

 

 

병실을 나가서 복도에서 잠드려 하자, 쥬시마츠와 토도마츠가 붙들고선 카라마츠가 보이지 않을 법한 커튼 너머 자리로 데려왔다. 하필 잠버릇이 고약한 오소마츠 형과 함께 써야 했지만, 다시 나가기엔 두 사람에게 미안해져서 그대로 누웠다. 카라마츠가 자해하던 이야기, 했어야 했나. 데카판 박사에게 다시 고양이에게 기분 약을 주사해 달라고 부탁할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커튼 너머에서는 심장박동을 측정하는 비프음과 다른 녀석들의 숨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카라마츠, 내일은 깨어날까. 하지만, 그때의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며 원망할까봐 두려웠다. 쵸로마츠는 알고 있는 얘기들을 말해달라고 했지만, 다른 녀석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것조차 마음을 굳혀야 하는 일이었다. 쉽게 잠들지 못한 채 뒤척이고 있으면 불안한 생각들만 스쳐갔다. 이렇게 병원에서의 둘째 날이 지났다.

 

...”

 

창가 근처라 떠오르는 해의 빛이 눈을 자극하고, 거기에 조금씩 정신이 깨어났다. 거기에 거친 숨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하악, 하악, 하아악...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듯한 숨소리는 카라마츠의 것이었다. 재빨리 일어나 그를 흔들어보아도 대답 없이 눈물과 식은땀, 그리고 불규칙적으로 이어지는 거친 숨소리만이 나온다. 옆에 있는 응급 버튼을 몇 번이고 두드리며, 제발 누군가 와주기를 빌어본다.

 

카라마츠...카라마츠...!”

 

내 소리에 다들 잠이 깨어서 누군가는 복도로 달려나가고 누군가는 떨리는 내 몸을 잡아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와 담당의가 카라마츠를 데려갔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녀석이 이마를 감싸쥐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느끼는 고통이 저거다. 사고로 치인 곳보다 저번에 우리가 던졌던 집기들이 맞았던 이마가 더 아프다는 건가. 그 모습이 나를 원망하는 것 같아 다시금 가슴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카라마츠에게 거리낌 없이 대했던 주제에, 이런 생각해선 안 된다는 걸 잘 알지만. 이렇게 소중한데, 이렇게 좋아하는데, 왜 그걸 표현하지 못해서, 그는 나를 의지해주지 않은 채 스스로 깊은 고통으로 빠져들었다. 참을 수 없어서 의사를 따라 중환자실 쪽으로 달려갔다. 카라마츠의 숨은 끊어질 듯 아슬아슬해서, 이대로 있다간 그를 영영 잃어버릴 것 같았다. 어느새 모두 카라마츠 옆으로 붙어서 중환자실 앞까지 왔지만, 의사는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보호자 분들은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며. 닫힌 문은 이승과 저승을 나누듯, 다시는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될 것처럼 느끼게 했다.

 

 

 

아직 카라마츠랑 헤어질 수 없는데.

 

카라마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데.

 

카라마츠에게 돌려줘야 할 것이 잔뜩 있는데.

 

카라마츠가 왜 고통스러워 하는지조차 모른 채로, 그를 보낼 수 없는데.

 

옆에 있는 게 당연해서, 그동안 왜 잘해주지 않았는지, 저 문을 보면서 후회한다.

 

다시, 다시 기회를 준다면.

 

그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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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양심없다...그쵸?

저에게 돌을 던져주...뭐 읽는 사람도 없겠구나.

이렇게 쓸쓸히 잊혀지고(※그 전에도 남은 적 없음)

어느새 이거 쓴 지도 1년 되어가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22일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장편감도 아닌데 ㅋㅋㅋㅋㅋㅋ 9화짼뎈ㅋㅋㅋㅋㅋㅋ

 

 

 

죽어야겠다.

그보다 카라마츠 잠자는 숲속의 미녀같다. 몇 달째 잠에서 못 깨네...미안...

Posted by 하리H( )Ri
2016. 9. 19. 09:03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캐붕,글솜씨없음주의

※5화 카라마츠 사변 기반

 

 

※제가 까만 배경이 무서워서 더욱더 허접하게 타이틀 바꿔 달았습니다. 안쓰러운 그림 실력 양해를...

아무도 몹싸 오프닝의 패러딘지 모를거야 개차판으로 그려놔서

타이틀 그려주실 분 구합니다

아무도 안해줘 그런거

 

※이번 편은 토도마츠 시점 +a입니다. 그동안 누구 시점인지 쓰지 않은 +a가 있었지만 정황상 아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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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는 나와 카라마츠 형만 남아있다.

조용히 카라마츠 형의 심장박동 소리를 듣는다.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심장은 계속 뛰고 있구나.

두근거리는 느낌과 따스한 체온에 기대듯 엎드린다.

형을 부르다 지쳤던 걸까.

고작 하루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내 형의 환자복과 내 뺨은 축축해진다.

그때 오소마츠 형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불렀다.

토도마츠, 잠깐 바람 좀 쐬고 와.”

고개를 돌려 눈물을 닦았다.

어째서...”

기분전환 좀 하고 오라고.”

오소마츠 형은 애써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얼굴에 진 그늘까지는 숨길 수 없었다. 힘들게 몸을 일으켜 병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오소마츠 형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렇게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어, 토도마츠.”

마치 자기에게 얘기하듯,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그 말을 들으니 닦았던 눈물이 다시금 나오려 했다.

카라마츠가 이렇게 된 건 모두의...나의 탓이니까...너만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다고? 그리고 카라마츠라면 너까지 힘들어하는 모습 보고 싶지 않을 거야.”

이래도 되는 걸까. 카라마츠 형을 막지 못한 걸 탓하기는커녕 모두의 탓이라고 하다니. 그런 것까지 감싸 안으려 하지 말라고. 이럴 때만, 치사하게 장남으로 나서는 거야?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병실을 나왔다. 쥬시마츠 형이 앉아 있다가 반겨준다. 형의 표정도 그다지 좋지 않지만, 날 위해서인지 억지로 웃으려 하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쥬시마츠 형은 복도 모퉁이를 돌아가더니 단팥죽 두 캔을 뽑아왔다. 단팥죽이라니, 쥬시마츠 형다워서 살짝이 미소가 지어진다. 형이 건네는 따뜻한 단팥죽 캔을 건네받아 마시며, 쥬시마츠 형도 과연 오소마츠 형처럼 우리 책임이라고,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쥬시마츠 형도 같은 생각을 하겠지. 하지만, 카라마츠 형에게 내가 했던 일은, 분명 모두가 함께 책임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여섯 쌍둥이라곤 해도 매 순간을 여섯이 함께 하는 건 아니었다. 여섯은 그만큼 많은 수인걸?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짝지어 노는 일이 많아졌다. 악동 중의 악동 콤비인 오소마츠 형과 쵸로마츠 형, 그나마 얌전한 이치마츠 형과 쥬시마츠 형이 주로 어울려 놀았고 장난끼 많은 나와 카라마츠 형이 짝올 이뤄서 놀았다. 악동 콤비에 댈 건 아니지만 나와 카라마츠 형도 장난질을 제법 했는데, 우리 둘은 역할 분배가 철저했다. 계획은 내가 세우고 실행은 카라마츠 형이 맡아 다른 형제나 치비타, 이야미 등을 골려주곤 했다. 철없는 시절이었다. 장난이 성공하는 쾌감, 실패하거나 들켜서 쫓길 때의 짜릿함, 대판 치고받고 싸우고 나서 터진 웃음, 즐거움이나 슬픔, 화나거나 짜증나거나 하는 감정들을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던 시절이었다. 거짓말은 했을지언정 자신의 감정에는 솔직했다.

중학생이 된 우리들의 첫 화젯거리는 카라마츠 형이 연극부에 들어간 거였다. 연극부라니, 그것도 멋있어서 들어갔다니 카라마츠 형답게 단순한 이유여서 다들 놀리면서 한편으로 카라마츠 형이 언제쯤 연극부를 박차고 나올지 내기를 걸었다.

"한 달은 있다 나오려나, 카라마츠 형."

쵸로마츠 형이 먼저 말했다.

"의외로 견디는 거 아닐까? 1학기 공연 정도는 끝낸다거나..."

자신없는 목소리로 이치마츠 형은 다른 의견을 냈다.

"...난 이치마츠...형 말에 한 표."

쥬시마츠 형도 아직 형 소리가 익숙하지 않은 듯 했다.

", 그럼 난 일주일! 일주일에 이번 주 용돈을 겁니다!"

오소마츠 형이 자신 있게 100엔 동전을 굴려대며 외쳤다.

"연극 한 번은 하고 나오겠지, 카라마츠."

"형 붙여."

내 답에 오소마츠 형이 즉각 반응. 형 소리가 그렇게 듣고 싶으면 자기만 들을 것이지 이 참에 서열 정리를 해버리는 걸까. 이즈음엔 막내로 서열 밑바닥이 된 내 작은 불만이 생기고 있었다.

"자자, 그러면 다 이번 주 용돈이나 걸까? 누구 말이 맞을지?"

쵸로마츠 형이 다급히 정리를 한다. 저런 것도 형의 역할이라면 역할이겠지.

 

며칠 뒤, 카라마츠 형으로부터 1학년을 연극의 주역으로 뽑는 오디션올 한다고 들었다. 슬쩍 형이 1학년 말에나 연극부에서 나오려 하지 않을까라며 내기 내용을 바꿨다. 형이 그렇게 의욕 가득한 눈을 하고 있는데, 쉽게 연극부를 뛰쳐나오진 않을 듯 했다. 결과만 말하면, 형은 첫 연극에 주연으로 발탁되었다. 내가 살짝 도와준 건 있지만, 그것만으로 카라마츠 형이 주역이 될 수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형이 무대에 서서 조금 어정쩡하지만 잔뜩 폼 잡으며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에서 뭔가 엉키는 기분이 들었다.

이윽고 커튼 콜. 출연자들이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박수갈채를 받았다. 무의식적으로 박수를 치며 무대를 보다 형과 눈이 마주쳤다. 형은 미소지었다. 어쩐지 고맙다고 말하는 듯 했다. 나도 답하듯 미소를 지었다. 얼굴 근육이 어쩐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 날 이후, 형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중학교에서 사귄 친구들과 어울린다거나 여자애들과 친해지려 놀러 다닌다거나, 형들과 비슷해지지 않기 위해 꾸미는 데에 신경쓴다거나... 같잖은 질투 때문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나는 달라지고 싶었다. Copy&Paste의 여섯 쌍둥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태어난 순서로 마지막에 설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 위에 서는 수밖에 없었다. 카라마츠 형의 주역 데뷔는 그런 마음을 자극했고, 오소마츠 형은 장남이라는 포지션을 굳히려 무던히 애썼고, 쵸로마츠 형은 학생회에 들어가거나 하는 식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이치마츠 형과 쥬시마츠 형은 꾸준하고 성실했다. 그런 형들에 대한 반감으로, 형들과 멀어지던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금의 드라이몬스터 토도마츠를 만든 거겠지. 그 중에도 카라마츠 형은 질투의 시발점이었다는 이유로 일부러 싫은 티를 더 냈지만 카라마츠 형은 형이라는 역할을 잘 해내고 싶었는지 그럴 때마다 더 다정하게 대했고 고민을 들어준답시고 참견해왔다. 다정한 형이라. 한때는 함께 장난질하던 파트너였을텐데.

어느새 이렇게나 달라져버려서,

나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 되어버린 거 같아서,

곧 있으면 따라잡을 수 없을 거 같아서,

그런 형이 좋아서,

하지만 싫어서,

반발심은 커져만 갔다.

모순된 감정을 안고서 중학교 시절은 흘러갔다. 우리는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존재였고, 다른 형제들에 대한 좋은 소리나 안 좋은 소리가 자신의 귀에 들어오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형들에 대한 악담에 귀를 기울이고 맞장구쳐주는 것으로 형들과의 거리를 점차 넓혀갔다. 내 입에서 형들의 험담을 하는 일도 늘어갔다.

? 카라마츠? 그 안쓰러운 녀석이 형 행세하는 거 진심 기분 나쁜데. 물론 애초에 오소마츠도 쵸로마츠도 형이라며 으스대는 거 기분 나쁘지만, 카라마츠는 형 놀이에 취해있달까 짜증 제대로 유발하거든.”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하던가. 3학년 때인가 뒷담화를 하는 모습을 오소마츠 형에게 들켰다.

할 말 있으면 직접 앞에서 말하라고, 토도마츠.”

정색하며 오소마츠 형이 얼굴에 주먹을 갈겼다. 형을 째려보면 멱살을 잡아들고 아까 했던 말을 다시 해보라며 나를 부추겼다. 형은 화난 얼굴로 계속 때렸다. 그때만큼 오소마츠 형에게 많이 맞았던 날은 없을 정도로 쳐맞았다. 아마도 형은 계속 내가 형들을 나쁘게 대했던 걸 알고 있었고, 내 입으로 말할 때까지 기다렸던 거겠지. 맞고 있으면서도 오소마츠는 그래도 형이구나 생각해버리는 자신이 싫었다. 그 때 창문 너머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창문 너머를 보니 카라마츠 형이 창문을 슬쩍 보고선 모른 척했다.

카라마츠, 뭐 하고 있어. 너도 들어와서 한 마디 해. 너한테 뭐라 하는 지 다 들었잖아?”

오소마츠 형과 함께 왔던 건가. 하지만 카라마츠 형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있는 듯 했다. 카라마츠 형은 내 편을 들지도, 오소마츠 형의 편을 들지도 않았다. 오소마츠 형은 다시 나를 보고 멱살을 잡아챘다.

재작년부터 형제들한테 하는 태도가 짜증난다 싶었는데 그 이유 들어보자고? 우리가 너한테 뭘 그리 잘못했길래 그러는 건데?”

한숨을 푹 쉬고선, 오소마츠 형이 날 내려놓았다.

됐다. 집에서 더 얘기하자.”

오소마츠 형은 교실을 나갔다. 복도의 두 사람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갈라져 갔다. 나는 그저 교실에 넘어진 채 어안이 벙벙해하는 친구와 함께 남겨졌다.

집에 돌아와서 오소마츠 형은 2층에 집합시키려 했지만 나는 밖에 나갈 준비를 했다. 그땐 다 싫은 시절이었다. 6쌍둥이가 모두 같은 얼굴인 것도, 그럼에도 형이나 동생이 있어 밑바닥 서열인 막내가 돼버린 것도. 소학교 시절 단짝이었던 카라마츠 형이, 쭉 파트너로 남아있자고 약속했던 그가 점점 형이 되어버리는 것도. 현관으로 따라나와 나를 붙잡으려던 카라마츠 형의 손을 뿌리치며 내뱉고야 말았다.

어차피 들켰으니까 확실히 말할게? 나한테 형 행세 하지마. 그리고 쓸데없이 내 일에 참견하는 것도 그만 둬.”

토도...”

뒷말을 무시한 채 집을 나섰다.

형 같은 건 없어지면 좋을 텐데.”

나는 선을 넘어섰다. 사소한 것까지 걱정해주고 신경써주는 카라마츠 형의 관심이 기분 나빴다 해도, 그런 말까진 해선 안됐다.

그 후 오소마츠 형과의 갈등은 적당히 해결되었다. 한번 대판 싸우고 나니 차라리 나아졌다. 그러나 카라마츠 형과는 미묘해졌다. 카라마츠 형은 그 후에도 날 책망하거나 하지 않았다. 나는 말이 심했다고 생각한 뒤에도 사과는 하지 않았다. 아니지, 사과는커녕 한동안 서로 말도 하지 않았다.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데 더 신경 썼던 터라 흐지부지 넘어갔다. 사과는 타이밍, 시기를 놓쳐버리면 그 당시의 감정들은 응어리로 남아버린다는 걸 모른 채, 나는 카라마츠 형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었고 형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었다. 이후 내 반항기가 끝을 맞이한 고2 이후에도 이 건은 사과하지 않았다. 다만, 첫 연극 이후로 보지 않았던 형의 연극을 그래도 마지막 무대라는 핑계로 보러 가는 것 정도로 작은 사과를 했다. 분명 모두한테 향한 분노였을텐데, 내 반항기의 직격탄은 카라마츠 형만이 맞았다. 형이 진짜로 싫었던 건 아닌데 질투가 만들어간 감정의 뒤틀림이 형을 힘들게 만들었다. 내가 형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그 순간에 형의 텅 비어버린 듯한 얼굴은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어제, 다시금 그 얼굴을 마주했다. 그를 거기까지 떠민 건 누구겠어.

단팥죽을 쥐고서 눈물을 흘린다.

미안해, 미안해.

내가 형에게 잘못된 감정을 품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텐데.

그런 질투가, 그러면서도 형이라고 기대버리며 사과조차 하지 않았던 일들 하나하나가 형을 힘들게 만들었지?

조용한 복도에 내가 훌쩍이는 소리만이 울려퍼진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모두가 병실로 들어가 바닥에 누워 잘 준비를 했다. 나는 형들의 배려로 침대 옆 간이침대에 누웠다. 카라마츠 형의 손을 잡으며 일어나면 꼭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기로 하면서.

 

 

 

 

 

*

 

 

 

 

 

눈을 뜨면 낯선 천장이다. 커튼 틈 사이로 해가 막 뜨기 전의 하늘이 보인다. 살짝 닿은 손의 촉감에 눈을 돌리자 토도마츠가 부은 눈을 하고선 쪼그려 자고 있다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다 그만둔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형제들도 바닥에 널부러져 자고 있다. 다들 춥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키자마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왼쪽은 아마, 이번에 사고당한 곳일 거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마 쪽과 정수리 쪽이 아파왔다. 나를 쪼갤 것 같은 통증에 괴로워하면서도 비명을 지를 수가 없었다. 그저 눈물만이 흐르고 만다. 이어서 가슴이 아파온다. 견딜 수 없는 통증에 다시금 누워버린다. 서서히 이런저런 기억들이 뒤죽박죽 수면 위로 올라온다. 당장 떠오르는 건, 불타는 나와 창문에서 날아오는 각종 집기들. 그리고 서서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억들이 가슴을 후벼파기 시작했다.

살려줘. 누가 나 좀 도와줘.

외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헐떡이는 숨소리와 눈물만이 나의 고통을 드러내주었지만, 아무도 그 소리에는 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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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의 쵸로마츠쟝)

 
 
 

 

분명 완결을 8월 초까지 낸다는 약속이었는데 벌써 9월이네요. (절망)

쉬는 동안에 쓸 수 있겠지^^는 게으름이 가속화되어서 장렬히 실패! 다시 일하고 나니까 의욕이 생기는 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네요 ㅋㅋㅋ 합작도 참여한다고 질러놓았고(???) 소비 생활을 충분히 즐겼고, 무엇보다 스스로 완결을 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데 마음을 못 잡다가 다급히 씁니다.

사실 이번 편은 7월 초부터 반 써놓고 묵혀놨습니다.  그런고로 최대한 급히, 늘 그렇듯 완성도는 없는데 더 없이 열심히 써내려가야겠습니다.

그런고로 이번 주부터 해서 주간연재를 시작합니다(두둥)

일요일 22시까지는 올릴 예정...은 오늘도 좀 늦었네요;;;헤헤

.........

 

ㅠㅠㅠ 아직도 한참...남았다고 생각하기 싫은데...한참 남았네요.

대강 12~13편으로 완결을 낼 예정입니다. 외전도 기획했지만 음...일단 완결이나 하시는게 좋겠네요;;;

이번 화는 기승전결로 치면 승 막바지입니다.

다음부터는 전...전...하아...그러네요. 제 특기 발휘 대기중입니다.

 

저번 편에 덧글을 주신 분들이 그동안 쓴 글 중에 가장 많아서...특히 더 감사드리구요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혹시나 기다리신 분이 있다면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 그리고 완결을 내야 할 말이지만 배포용으로 책을 만들까말까 매우 고민중입니다. 혹시 필요하신 분은 물어보셔요(없음

 

 

 

 

 

 

Posted by 하리H( )Ri
2016. 6. 27. 04:09

[카라른/쵸로카라]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7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커플링을 써놓았지만 테이스트는 지극히 약한 것입니다...ㄷㄷ
※캐붕,글솜씨없음주의

※세 달 만에 써서 죄송합니다. 내용 구상이 잘 안되었사옵니다(굽신굽신) 어차피 아무도 안 보니까 몬다이나이

※5화 카라마츠 사변을 기반, 고통받는 카라마츠,,,등등

 

※변변찮은 타이틀 이미지 추가합니다~

 

 


 

 

 
 
 

(쵸로마츠 시점)

 

 

 

나이가 들수록 익숙하지 않은 것을 대할 땐 방어 자세부터 취하고 본다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은 어린 시절엔 그런 것일수록 호기심을 가지고 한 발짝이고 두 발짝이고 나아갔다. 그 결과 사고를 엄청 치고 다녔지만 무구했던 그 시절에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들은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 썩을 동정에 백수지만 나이는 입으로든 뒷구멍으로든 먹었는지 익숙하지 않은 일들이 생기면 당황하거나 짜증을 내는 등 방어적인 자세부터 취하고 봤다. 다가가더라도 소극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한이라는 말로 포장한 내가 피해를 받지 않을 선까지만 다가간다. 그러면서 '이걸로 됐어' 라며 안일해진다. '별 일 아니겠지'라며 거만해진다 

그래서 카라마츠가 위험한 상태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도 어른이니까 언젠가는 얘기해주겠지 하며 기다리기만 했다 

그 결과가, 수없이 손목을 그은 끝에 차도로 뛰어든 카라마츠가 누워있는 꼴이다 

물론 형식상으로는 사고지만 

 

* 

 

토도마츠로부터 카라마츠의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엄마는 기절하듯 쓰러져버리셨다. 이 나이껏 부모님에게 빌붙어 사는 백수들이지만 건강만큼은 자신 있어서 적어도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큰일은 없었으니까. 카라마츠가 잘못 맞으면 죽을 지도 모르는 이것저것을 얻어맞는 일을 당하고도 튼튼해서 그런지 병원에서 치료만 받고 돌아왔을 정도였고. 그런데 교통사고를, 그리고 울먹거리며 겨우 말을 이어가는 토도마츠의 목소리를 듣고 쇼크를 받으신 모양이다. 오소마츠 형은 우리들을 병원으로 먼저 보내고 엄마를 돌보고 왔다. 엄마는 금세 정신을 차리셨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바로 병원으로 오는 건 무리라 오소마츠 형을 병원으로 보내고 당신은 집에서 기운을 차리면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오겠다고 했다. 아마 그 상태에서 카라마츠가 자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엄마도 병원 신세를 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일단 카라마츠의 자해 사실은 아빠에게만 털어놓기로 했다 

 

수술을 마치고 카라마츠는 1인실로 옮겨졌다. 의사가 보여주는 손목의 상처와 내 말에 아빠도 다른 형제들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왜 이제껏 말을 하지 않았어? 형제가 그런 일이 있으면 부모님과 의논하는 게 먼저 아니냐." 

아빠의 꾸짖음에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아마도 말을 하지 않은 건 내 탓, 아니 우리들 탓이기에 우리들이 알아서 해 보려고 하는 책임감도 있었겠지만 우리 선에서 해결할 수 있을 거란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으리라. 

"어쨌건, 엄마를 돌봐줄 사람이 누군가는 있어야 할 테니, 너희는 카라마츠를 잘 지켜봐 주거라." 

"..." 

힘없이 답하는 목소리들. 아무도 아빠를 따라가려는 기색은 없었다. 아빠가 나가자 토도마츠가 카라마츠 옆에 앉아서 카라마츠를 부르기 시작했고 나머지는 병실 어딘가에 앉아서 그저 그 둘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야 병원에서 있으려면 필요한 게 뭔지 엄마 상태는 좀 어떤지 그런 걸 생각해 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다른 형제들은 그런 걸 생각하지 못한 거 같아서, 기분도 전환할 겸 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칫솔이나 팬티 같은 것들을 부탁받고 그 외에도 나름 필요할 듯 한 것들을 생각하다보니 집은 금방이었다. 어제 집에서 병원까지 향하는 길은 그렇게 멀었는데. 카라마츠가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아직까지 의식이 돌아온 건 아니지만... 

 

집에는 엄마 혼자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누워계셨지만 안색은 좋아보였다. 아마도 당신은 괜찮다며 아빠를 회사로 보내신 모양이다. 엄마는 이렇게 무리를 하신다. 철없는 여섯 아들을 상대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걸까 

"아빠는 회사에 가셨어요?" 

"카라마츠가 입원했으니까 입원비 벌어야지." 

"그래도 엄마도..." 

"엄마는 괜찮으니까. 카라마츠가 걱정이지. 토도마츠도. 어제 전화할 때 많이 힘들어보였는데..." 

엄마는 억세다. 하지만 그러니까 우리는 엄마에게 카라마츠에 대한 얘기를 하기 어려웠을 거다. 

"괜찮을 거에요." 

괜찮지 않아요 

"병원에서 좀 지내야 할 거 같으니까 우리들 짐을 먼저 가지러 왔는데, 혹시 엄마 뭐 해드릴 거 있나요?" 

애써 웃어 보이며 말을 한다 

"그럼, 빨래를 걷어주렴." 

지붕 위에 있는 빨래를 걷는 김에 위층 청소를 하고 가기로 했다. 아래층은 엄마가, 위층은 우리들 중 누군가가 하기로 해서 위층은 내가 손대지 않으면 아무도 청소까진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자기 물건을 치워놓을 뿐 

그래서겠지, 카라마츠의 커터칼들이 눈에 띄지 않았던 건 

누군가 그걸 발견했지만 나처럼 카라마츠를 위해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건지는 몰라도 커터칼들은 책장 뒤 야한 잡지들 너머에 널려있는 채였다. 몇 개가 있었는지 세어놓지 않아서 그 사이 더 늘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 커터칼들을 꺼내서 파카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이게 사라지면 카라마츠가 분명 더 불안해하겠지. 

하지만, 남아있다고 해서 카라마츠에게 좋을 것도 없다. 그만둬주길 바라고 있으니까. 

그러다 생각한다 

여기에 커터칼을 숨기면 누구에게 들키지 않을 거라 그는 생각한 걸까? 

손닿기 쉬운 곳이잖아. 빨간 책들이 여기 있다는 것도 언젠가 까발려버렸고. 

그런 일들도 상관없이 여기에 둬도 괜찮은 건가? 

설마. 

그는 이걸로 도움을 청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납치극 이후로 형제들에게 의존하지 못하게 된 그가 보내는 신호로써.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주변에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그 신호들을 눈치 채고 있었으면서 너무도 늦게, 그것도 빙 돌아서 다가가느라 카라마츠의 상처를 막아주지 못한 나를 파카 주머니 속 커터칼들이 찌르는 듯 했다 

 

* 

 

카라마츠로 말할 거 같으면, 의외로 꼼꼼한 사람이다. 지금도 자기 얼굴이 프린트된 탱크톱이나 브리프 같은 걸 직접 만들 정도로 손재주가 있고, 메모만큼은 열심히 해서 학창 시절에 시험 공부할 때 형제들이 돌아가며 카라마츠의 노트를 빌려갔다. 그렇게 필기를 열심히 한 본인의 성적은 정작 바닥을 기어서 역시나 그가 바보라는 걸 증명해줬지만. 수업 노트나 연극 대본의 메모를 보면 무척 사소한 것까지 적어놓아서 가끔 보다가 웃음을 터뜨린 적도 있었다 

 

「↙선생님이 이걸 세 번이나 짜증내듯 외침

유독 강조한 말들↑」

, 이건 시험에 안 나오니까↘」 

「←여기선 힘을 빼고 속삭이듯이

자꾸 오버했다간 다음번엔 지나가는 행인 역을 맡길 거야!(아사노 선배)

... 

"자꾸 오버한대, 집에서 하는 짓 그대로 연극부에서도 하고 있는 거야?" 

오소마츠 형이 낙서들을 넘기며 핀잔주듯 말했다. 

"그보다 카라마츠, 이 정도면 꼼꼼한 거라 말 안 하고 집착이라 하지 않냐?" 

"그래도 이런 걸 적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필기를 들여다봐도 전혀 감이 오지 않는걸." 

조금 주눅 든 듯이 말하는 카라마츠가 안쓰러워 보였다. 

"그래도 우리 중에 중학 데뷔가 가장 화려하잖아, 이런 노력을 해서 얻어낸 거라고?" 

내가 카라마츠를 두둔하고 나섰다. 확실히, 그 시절에는 그를 조금 동경했으려나. 

"?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건 나 아녔어? 우리 중에서 말야." 

오소마츠 형이 태클을 건다. 

"형은 그냥 사고 친 게 많을 뿐이고! 우리가 얼마나 선생님들한테 시달리는 지 알기나 해?" 

짜증을 확 내자 옆에서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도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오소마츠 형은 치하며 입을 비죽댔다. 

 

우리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 큰일을 꼽자면 두 개였다. 먼저, 우리들에게 서열이 강조된 것. 중학생이 되기 전 오소마츠 형이 느낀 바가 있었는지 형제들을 모아놓고 형이라 불러 달라며 떼를 썼다. 귀염성 없는 떼지만 안 그러면 한 대 얻어맞을까봐 그러자 했던 게 어느새 서열 정리로 이어졌다. 입에 잘 붙지 않던 형 소리를 내면서, 쵸로마츠 형이라고 말하는 어색한 동생들의 소리를 들으며 조금씩 집의 분위기를 바꾸어놓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 영향을 가장 받은 건 차남이란 딱지를 받은 카라마츠였다. 그저 형이라고 불리고 싶었던 오소마츠 형과는 다르게 카라마츠는 얼떨결에 두 번째로 큰 형이 되었다. 카라마츠는 그날부터 마음을 달리 잡은 듯 했다. 오소마츠 형을 장남으로 치켜세워주는 것도 동생들을 챙겨주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아무도 그를 떠밀지 않았지만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다며, 이제부턴 멋있는 차남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학교에 들어간 우리 중에 부활동을 먼저 시작한 것도 카라마츠였다. 역시나 그답게 '연극부 선배에게 권유받아 보러 간 무대가 멋있어서 덜컥 입부 신청을 해버렸다'며 생각 없이 들어갔고, 나머지는 카라마츠가 얼마나 버티다 연극부를 나올까 내기를 걸 정도로 그가 부활동을 계속해나갈지 기대하지 않았다. 어느 학교라 해도, 연극부는 제법 공을 들여야 하는 귀찮고 힘든 부라는 인식이다. 무대에 서서 빛나기까지 노력하는 시간들을 감내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거기다 초반에는 가만히 서 있는 나무나 지나가는 행인 같은 거나 하면서 보낼 게 뻔한데 그런 시간들을 눈에 띄고 싶어 하는 타입인 그가 기다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설마, 신입인 1학년에게 주연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그 자리에 카라마츠가 들어갈 줄은 몰랐다. 

잽싸게 내기할 때 '빨라도 1학년 이후'로 바꾼 토도마츠가 수를 써 준건지, 아니면 소음공해라며 욕을 들어가며 연습한 카라마츠의 노력이 인정받은 건지 카라마츠가 주연 자리를 따 낸 것이다 

"다른 녀석들보다 안 떨고 오버라도 생동감있게 한다며 칭찬받았어." 

쑥스러워하며 카라마츠는 주연을 따낸 얘기를 했다. 뭔가 한 듯 한 토도마츠도 그렇고 다들 경악했다. 아무리 학교에서 열리는 작은 공연이지만, 사고 쳤다고 주목받는 게 아니라 연극이란 멋진 무대에 서서 주목을 받는다는 건 처음이었다. 카라마츠도 그런 흥분을 애써 눌러가며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했고 제법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다. 

그 모습이 무척 멋있었다. 차남이란 역할도, 연극의 주연이란 역할도. 그 모습이 내 등을 떠밀었다 

 

사실 너도 되고 싶은 모습이 있을 거야. 

, 이렇게 변할 수 있는걸. 이렇게 될 수 있는 걸.

 

오소마츠 형이나 다른 형제들과 해오던 장난들은 짜릿한 맛이 있었지만, 그런 것들도 중학생이 되고 나자 유치하게 보였고, 혼나거나 놀림 받는 게 되어버렸다. 또래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경기 같은 것들로 떠들썩했고, 축구나 캐치볼을 하며 노는 녀석들, 공부한다며 열심인 녀석들, 부활동에 푹 빠진 녀석들을 보며 자기가 원하는 것이 뭔지 고민하고는 했다. 그런데 나랑 다를 바 없던 카라마츠가 형이 되고, 무대의 주역이 되었다 

그래, 나는...인정받고 싶었어. 마츠노 여섯 쌍둥이 중 하나가 아니라, 마츠노 쵸로마츠라고. 

그 뒤로 날 떠민 카라마츠의 모습은 어느새 잊고 살았다 

노력했지만 발버둥 쳐도 올라갈 수 없는 길을 걸으며 

실연을 알고 

현실을 알고, 

체념을 알고, 

평범함을 원하고, 

그러나 그마저도 얻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수없이 기어오른 벽에서 굴러 떨어지며, 난 점차 익숙하고 쉬운 길들을 고르게 됐다. 

 

* 

 

피 뭍은 커터칼 같은걸 품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 

카라마츠를 동경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커터칼을 만지작거린다. 지금도 가끔은 동경하는 형이지만, 그 형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이 마음을 쑤셔온다. 

그의 신호는 커터칼을 널부러놓은 것뿐일까. 카라마츠니까, 알기 쉬운 표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오히려 커터칼은 손목을 긋다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던져놓은 인상이었고. 그 표지를 찾아서 방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한다. 방 청소 같은 건 진작 잊어버렸다. 서랍에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를 일일이 꺼내 훑거나 카라마츠가 이전에 가져온 투명한 잔을 햇빛에 비춰보며 살펴보거나 하는 부질없는 짓들을 해가며 애를 썼지만 찾을 수가 없다 

나라면 어디에 숨길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숨겨놨지만 누군가 눈치채주길 바라는 장소나 물건은 쉽게 떠올릴 수 없다. 꽁꽁 숨겨놓고 싶은 거라면 잔뜩 있지만. 나만 손대는 취직 잡지 같은 거라면 또 모를까... 

책장으로 시선을 옮긴다. 맨 윗칸에 내가 사다 놓은 구직 잡지들 옆으로 카라마츠의 기타 악보집들이 몇 개 꽂혀있다. 아빠한테 받거나, 폐지에서 주워오거나, 가끔은 자기 돈으로 사오는 악보집들. 폼 잡는다며 핀잔을 줄 때나 카라마츠가 펼쳐놓고 기타 연주를 하고 있을 때 빼곤 그 악보집들을 볼 일이 있기나 했을까 

손을 가져가 악보집들을 꺼내려는데 유독 불룩하게 나온 책이 있다. 그 책을 끄집어내니 조그만 수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수첩을 펼쳐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XXX 

///

   

 

XXXO 

///// //\  

 

카라마츠의 글씨체를 기억하고 있다. 급하게 갈겨 쓴 필기라도 알아볼 수 있도록, 오히려 멋을 조금 부려가며 썼던 그다. 형제들 그 누구도 이런 글씨를 쓰는 사람이 없었고, 한두 장에 적어진 메모를 보니 카라마츠의 것이 맞았다. 휘갈겨댄 날짜와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시들을 보며 오싹하기까지 했지만, 날짜를 더듬어간다. 그 전에도 간간히 날짜가 적혀 있고 빗금이 쳐져 있었지만 납치극이 있었던 날을 기점으로 매일매일 기록된 날짜와 빽빽해져가는 빗금은 빽빽해졌다. 납치극 이후에는 이전에 없던 O표시까지 생겨나 당혹감을 준다 

카라마츠는 무언가를 병적으로 표시해놓고 있었다. 그게 뭔지를 사실은 눈치 채고 있지만, O표시와 주머니 속의 커터칼 개수를 세어보며 비교까지 하고 있지만, 굳이 이게 뭔지를 명확히 하고 싶지 않다. 넘어가는 수첩이 점차 흐릿해지고 동그라미고 빗금이고 구분이 가지 않는다. 실감해버린다. 카라마츠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눈물을 셔츠 자락으로 훔치며 수첩을 넘기고 넘긴다. 그 와중에는 종종 밑줄이 쳐진 날짜가 있었다. 저 날은 분명, 쥬시마츠가 창가에 학알이 담긴 병을 놔둔 날. 그리고 저 날은 지붕에서 나와 카라마츠가 단 둘이 술을 마신 날 

"정말...어디까지 상냥한 거냐고...멍청이가..." 

자살 기록이나 해대는 와중에도 형제들이 잘 해줬던 날들을 따로 표시해놓는 바보다. 우리들에게, 나에게 실망한 거 아니였냐고. 실망해서, 자기가 힘들다는 얘기를 꺼내지 못한 거 아니였냐고. 그런 주제에 위로받았다며 엷은 미소를 지었을 그를 상상한다. 그런 점만큼은 상냥한 형이다. 형제들을 사랑하고, 걱정 끼치고 싶지 않고, 있는 폼 없는 폼을 잡아가면서까지 의지할 수 있는 형을 어필하고 싶었던 카라마츠. 그에게 건넸던 위로는 아주 작지만 분명히 전해졌다. 

 

조금 대담해져볼까. 

병원에서는 나머지 형제들이 카라마츠를 지켜주고고 있다. 조금 더 느긋이 돌아가도 될 거야 

가방에 병원에서 지낼 때 쓸 옷가지나 칫솔이 같은 걸 쑤셔 넣은 뒤, 고등학교 졸업앨범과 중학교 졸업앨범을 펼쳐 몇 개의 연락처를 옮겨 적는다 

집에서 전화하면 엄마가 걱정하실 테니까 공중전화로 해야겠지. 

카라마츠를 알고 있는 반 친구나 연극부 동기들 전화번호를 주머니에 넣고, 커터칼들은 검은 봉지에 넣어 다락 한 구석에 숨겨둔다. 이따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향하겠다는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카라마츠는 분명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일이 있다. 바보니까 눈치 채지 못하거나 잊어버리고 넘긴 일일수도 있고, 자기가 꼴사나워보일까봐 말하지 않은 거일수도 있고...그게 최근 어떤 일을 계기로 카라마츠를 조여오기 시작했고, 우리들이 카라마츠의 도움을 무시하고 험한 짓을 해버린 것으로 걷잡을 수 없게 된 것이리라 

내 뇌 속에선 그동안 알고만 있고 신경 쓰지 않았던 일들을 연결해가며 대강의 시나리오를 펼쳐내고 있다. 거기에 운이 좋으면 이 연락처들이 그가 잠 못 이루게 된 사건을 안내해 줄 것이다. 진작 알아주었다면, 그리고 시답잖은 납치극이나 벌린다고 비난하지 않았더라면, 일은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카라마츠 형을 괴롭혀왔던 일들을 찾아서 카라마츠 형은 나쁘지 않다고 말해줘야 해. 멋대로 짊어진 형의 자리지만, 형은 그 자리를 지키려 노력해왔으니까. 동경하는 형일 때도 있었고, 형은 커녕 멀찍이 떨어져 남 취급을 하고 싶을 정도로 안쓰러운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눈을 뜨면 이렇게 말할게.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공중전화부스에 들어가 수화기를 집어 들고 동전을 집어넣어 버튼을 누른다 

수신음이 가더니 알듯 말듯한 목소리가 전화를 받는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서 나의 용건을 얘기해나간다 

자기는 잘 모르겠다며 시답잖은 안부나 묻는 말이 되돌아왔다. 

몇 번 동전을 집어넣고, 수신음만 울리거나 잘못된 전화번호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꿋꿋이 수화기를 들었다 놨다했다. 

이윽고, 연결된 전화에서 원하는 답을 수화기 너머에서 들을 수 있었다.

  

 

 

 

 

 

 

 

* 

 

 

 

  

 

 

 

 

 

 

새하얀 풍경 속에 내가 있다  

아니, 거기에 내가 있다는 건 인식뿐으로 몸이 있다는 감각은 전혀 없지만. 

그저 텅 비어 있는 세상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있다는 걸 느낀다. 

그 뿐으로 다른 게 있진 않은 것 같다. 

새하얀 풍경은 갑작스레 검게 물든다 

새하얀 공간보다도 내가 옅어져가는 기분이다. 

느껴지지 않는 감각을 붙잡아서 내가 여기 있는 걸 확인받고 싶다. 

한편으론 그냥 내가 있다는 인식을 필사적으로 붙잡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어 혼란스럽다. 

이런 텅 빈 공간 속에서 명확한 것은 딱 하나,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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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디어 후반부가 시작되었습니다. 따란!......

4화까지 쓰고 한 달 지나 6화까지 쓰고 세 달이 지나버렸습니다.

의도치 않은 휴재로 조금 실력이 나아지기는개뿔 방치했더니 더 의미불명의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거 말이 이어지는 작품이지 각각 얘기에서 거의 따로 놀고 있는 거 아닌가 싶고 ㅋㅋㅋㅋ

카라른인 주제에 쵸로카라인 주제에 그런 느낌 하나도 안 나고ㅋㅋㅋㅋㅋㅋ 뭐냐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더욱 의미불명인 타이틀을 직접 그려서 걸었더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느낌으로 반쯤 미친듯이 썼습니다. 의미만 통하면 퇴고는 안 할 거 같네요.(어이)

요컨대 분위기입니다. 분위기만 느끼고 가시면 됩니다...(도망)


쉬는 동안 놀랍게도 덧글 달아주시며 잘 보셨다 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진짜 감동먹었는데 어째서...?라는 의문도 들고 했습니다만 덕분에 쓸데없이 의욕과 책임감과 중압감이 늘었습니다.

방치하려 했던 건 아니지만 자기결말을 위해서, 그리고 다음 화를 기다려주시는 분들을 위해서(...?) 대강 짜여진 틀을 가지고 8월 초까지 결말을 향해 달려갈 예정입니다! 

빈 잔은 12화+외전으로 갈 거 같구요...분량은 매 화마다 들쭉날쭉 할 거 같습니다. 퀄은 늘 그렇듯 망퀄...

쓰는 와중에 통온에서 금손님들 소설도 데려와 읽어서 더 성장할 수 있을런지...ㅋㅋㅋㅋ

봐주시는 분이 없어도 상관 없어요. 자기만족입니다 늘...후후후...

그럼 이번 주 내에 8화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아무도 안 봤다고 한다)

 

 

Posted by 하리H( )Ri
2016. 3. 26. 01:02

[카라른/이치카라]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6-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캐붕,글솜씨없음주의

※5화 카라마츠 사변+원작 기반

※멋대로 쓰는 학생 시절 이야기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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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츠가 있는 병실 밖 복도에는 나와 오소마츠 형, 쥬시마츠가 있다. 배치로 보면 오소마츠 형과 쥬시마츠가 병실 쪽 벽에, 나는 병실 반대 쪽 벽에 붙어선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무거운 표정을 한 오소마츠 형은 쥬시마츠의 마음 속 짐을 덜어주려고 애쓰고 있다. 언제나 오소마츠 형은, 우리가 고민하고 있을 때 그 고민들을 들어주고 함께 끌어안아주곤 했다. 저 무거운 표정의 의미는, 카라마츠의 고민을 같이 안아주지 못했다는 것일까. 

닮았어.

나와 닮았어.

오소마츠 형의 표정에 지나는 것은 죄책감.

카라마츠를 쳐다볼 수 없게 된 나를 옥죄는 것도 죄책감. 

마스크를 쓴 채 숨죽이고 주변의 풍경을 마치 CCTV라도 된 양 눈에 담는다. 심적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이유로 1인실에 카라마츠가 들어가선지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종종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던 사람들도 내 눈초리를 보고 피해가는 듯 했다. 이걸로...된 거야.

오소마츠 형은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금 병실로 들어갔다. 쥬시마츠가 내가 있는 쪽 벽으로 옮겨와서 조용히 기댄다.

"이치마츠 형."

쥬시마츠는 평소와는 다른 낮은 텐션으로 나를 부른다. 당연하겠지. 지금 분위기를 생각하면. 

"형은 알고 있었어? 카라마츠 형의 상태."

듣고 싶지 않았던 질문이다. 쥬시마츠의 의도가 어쨌든간에 그 말들이 나를 짓누른다. 평소와는 다른 쥬시마츠의 처진 목소리도 거기에 한 몫 한다.

"알고 있었을 리, 없잖아."

아니지, 아니야. 넌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 이치마츠.

그딴 장면을 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텐데.

카라마츠가 망가지고 있는 것 따위 몰랐으면 좋았을텐데.




카라마츠는 예전부터 텅 빈 녀석이었다. 텅 빈게 어떤 의미냐고 묻는다면 생각이 없고 멍청한데다, 폼 잡는 와중에 실속있는 건 하나도 없다고 해야할까. 카라(空)마츠라는 이름이 딱 어울리는 녀석이었다. 녀석은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상냥하고 남 도와주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연극부에도 들어가서, 우리 중에는 부활동에 가장 매달리는 쪽이 되었다. 형제들이 그렇게 된 이유를 물으니, 누군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지 않냐며 웃어보이던 녀석이 인상깊었다. 그런건 분명 자기만족이겠지만, 사춘기를 겪어가며 조금씩 흔들리는 형제들 가운데서 카라마츠가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변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그만큼 악동으로 사는 오소마츠 형, 격변기의 쵸로마츠와 토도마츠, 그저 회색 청춘을 보내던 나와 쥬시마츠 사이에서 카라마츠는 홀로 장밋빛 청춘을 보내는 듯 했다. 고등학교에 와서는 나와 쥬시마츠에게 변화가 찾아왔는데, 나의 경우는 변화보단 악화란 말이 어울렸다. 회색 청춘은 검은색 청춘으로, 청춘이라고 부를 것 조차 없는 어둠으로 빠져들어갔다. 같은 반의 녀석들이나, 알지도 못하는 선배들이나, 글러먹은 선생들에게 치이면서 학교가, 사람이 싫어졌다. 그나마 형제들이 붙잡아주고 끌어줘서 어떻게든 학교에 다니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지만 도서관에 박혀있거나, 학교 주변을 배회하는 고양이들을 보러 교사 뒷편에 있거나 하는 일이 늘어났다. 1학년 땐 같은 반이었던 쵸로마츠가 몇 번이고 나를 찾아서 데려왔다. 사람 없는 곳을 찾아서는 잔소리를 퍼붓는 데 질려서 수업시간에 가버리는 것만은 그만하게 되었지만, 시간이 비거나 사람과 부딫힐 일이 많은 체육 수업 같은 때는 빠져나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게 그나마의 낙이었다.

형제들은 방과 후 시간도 제각각 보냈기에 매일같이 집에 같이 돌아가지는 않았다. 주로 쥬시마츠와 같이 귀가했지만, 가끔은 방과후에 혼자 학교에 남아 교내를 돌아다니곤 했다. 사람들은 동아리방에 있거나, 운동장에 있거나 해서 의외로 조용한 공간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재밌었다. 그런 공간들 대부분엔 바닥에 담뱃재가 떨어져 있는게 눈에 띄긴 하지만. 2학기가 시작되고 어느 가을, 그런 공간들 중 마음에 쏙 드는 공간을 발견했다. 버려진 옛 소각로. 고양이들이 종종 보금자리로 쓰곤 하던 모양인데 내 몸도 쪼그리면 쏙 들어가는데다 미묘한 경사 덕분에 남들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담장 주변이라 담배를 피기는 좀 그럴지 몰라도 그저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이라면 거기서 학교를 관찰하며 시간을 죽일 수 있었다. 그곳에서 눈에 잘 띄는 교실은 연극부가 사용하는 교실. 

아, 저 교실에는 카라마츠가 있겠지. 하필이면 질리는 얼굴이 있는 교실이 잘 보이냐.

그래도 내 입장에선 몸짓으로 무언가 하는 게 흥미가 있어서 방과 후 혼자가 될 때마다 그 교실을 관찰했다. 중학생 시절 토도마츠의 도움으로 첫 주연을 따낸 카라마츠의 연극을 본 이후, 카라마츠의 연극을 굳이 보러가지는 않았다. 집에서도 엄청 대본 연습을 해대서 질릴 정도였고, 애초에 연극을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카라마츠가 연기를 특출나게 잘해서 빠져들게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런데 연극부에 몸 담은지 4년이 넘어가는 사이, 카라마츠의 연기가 많이 늘은 거 같았다. 카라마츠의 과장된 몸짓 하나하나는 궁금증을 자아냈고, 상대역이 압도당하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도대체 저건 무슨 상황일까, 카라마츠는 무슨 대사를 하고 있는 걸까. 그러고보니 고등학교 와서는 집에서 대본 연습을 거의 하지 않는데. 대신 늦게 들어오니까. 카라마츠의 몸짓을 보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뛰어가서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다만 고등학생이 되고 방황하는 사이, 손을 내밀어주는 카라마츠를 밀쳐내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에 가까이 갈 수는 없었다. 카라마츠는 분명 그런 거 신경쓰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손을 내밀어주는 카라마츠의 손을 이제와서 잡기에는 불편했다. 멀리서 쳐다보는 풍경일 뿐이지만, 카라마츠는 빛나고 있었다. 검게 물들어가는 내가 그 반짝임을 좇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요즘은 대본 연습 안 하는거?"

오소마츠 형이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연극부에서 매일같이 연습하고 오니까. 거기다 집에서 연습하면 다들 시끄럽다고 하지 않는가."

"그럼 그 안쓰런 말투도 관둬주면 안될까, 카라마츠 형?"

"논논. 이건 역할에 몰입하기 위한 내 나름의 노력이니까."
"있지, 카라마츠 형. 이번에는 무슨 연극을 하는데?"

"햄릿이라고 셰익스피어의 연극이다."

"설마 주인공은 아니겠지?"

"주인공은 아니지만 레어티즈라고 중요한 인물이라고?"

햄릿. 어떤 내용이었더라. 복수극이었던건 기억나는데, 레어티즈가 어떤 인물인지는 가물가물하다. 

"이번 연극은 언제 하는데?"

궁금증에 내가 입을 열었다.

"오! 이치마츠, 연극을 보러 와 줄 생각인가?"

카라마츠의 눈이 반짝였다. 아마 자기가 나한테 미움이라도 받고 있을거라 생각했겠지. 그래서 저렇게 기쁜 표정을 짓는 걸까 혼자 생각했다.

"시간 나면."

애매한 답을 내뱉는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난 카라마츠의 몸짓이 완성되는 그 연극을 보러 갈 수밖에 없을 거라고.

그 해 겨울, 바쁘다는 토도마츠를 제외하고 모두들 카라마츠의 연극을 보러 갔다. 내가 몰래 관찰하던 카라마츠의 몸짓들은 무대 위에서 대사와, 분위기와, 상대역과 합쳐지며 더 강한 의미를 자아냈다. 주인공은 햄릿일 텐데, 카라마츠가 연기하는 레어티즈의 분노와 복수심이 안에 밀려들어오면서 햄릿을 압도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카라마츠가 이렇게 연기를 잘 했던가. 무대 위에 서 있는 인물은 레어티즈 그 자체였고, 카라마츠가 검에 찔려 죽어가는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파지기까지 했다. 이게 과몰입인가. 

그렇게 카라마츠의 연기에 나는 빠져들었다. 2학년 때는 카라마츠와 같은 반이 되어서 이런저런 핑계로 카라마츠의 연습을 구경하러 가기도 했고, 카라마츠가 서는 연극 무대는 빠짐없이 보러 갔다. 방과후에는 나만의 시간을 가졌지만, 그땐 카라마츠도 연극부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그 나만의 시간마저도 이전처럼 카라마츠의 연기를 관찰하곤 했다. 대신 그 외에 1학년 때 정립시켜놓은 나의 일상들은 삐걱거렸다. 카라마츠는 멍청하니까, 일과시간에 밖으로 나돌면 나를 찾으러 헤매고 다닐까봐 시야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했다. 쉬는 시간에는 다른 녀석들과 잡담을 떨거나 하는 시간들을 쪼개어 말을 걸어와서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을 방해받기도 했다. 썩을마츠라고 부르며 쫓아내기도 했지만 녀석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연극 연습이 힘들었던 다음 날이면 쉬는 시간에 잠들어버려서 한숨 돌리기도 했다. 


2학년 말에는 꽤나 큰 사건이 있었다. 오소마츠 형이 진지하게 우리들을 불러모아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렇다곤 해도, 오소마츠 형은 이미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라 둘의 대화 후 나온 결론을 들어보는 거 뿐이지만. 형제들의 대답은 대부분 똑같았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일 없음. 진학도 취업도 노 플랜. 앞일따위 생각하지 못하는 우리들다워서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카라마츠는 혼자 우두커니 있었다.

"아직 고민하고 있는거야, 카라마츠?"

오소마츠 형과 이미 얘기했을 텐데, 카라마츠만은 결론을 내지 못했었나보다. 

"아...아니 뭐, 나도 진학이라든가 일을 배운다던가 그런 건 하고 싶지 않아."

그 얘기를 하는 카라마츠는 조금 주눅들어 보였다.

"강요하는 거 아니니까, 카라마츠.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굳이 형제들 장단에 맞추지 않아도 되니까."

"자신을 높이고 싶고, 사람들에게 꿈을 배달하고,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게 지금은 연극밖에 안 떠오르는데. 딱히 대학까지 간다거나 연극으로 먹고 살 수 있을 거 같진 않지만,"

뭐야, 의외로 현실적이잖아.

"그래도 역시, 하고 있으면 즐겁거든."

카라마츠는 힘들게 본심을 꺼냈다. 그래도 그와 동시에 형제들과 같이 진학은 하지 않는 것으로 했다. 조금 아쉬움이 남아 있어 보였지만, 아마 자신도 확신을 가지지 못해서겠지. 이렇게 형제들의 의견을 모아 오소마츠 형은 3학년이 되기 전, 잘 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우리들이니까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지 않느냐며 우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분명 피해갈 수 없는 진로 이야기가 공론화되어서 닦달당하기 전에 선수를 칠 생각을 한 오소마츠 형도 대단했고, 그렇게 당당하게 나와버리니 오히려 부모님이 이해해줘서 적어도 한동안은 집안이 소란스러울 일이 줄었다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새해가 되고, 카라마츠는 졸업 전 마지막 연극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진학을 포기했으니 상관없지만 3학년은 수험생이 많아서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는 게 암묵적인 룰이라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은 유급되지 않는다면 1년이나 남았지만, 3학년이 되면 카라마츠도 자동적으로 연극부에서 나오는 걸로 되어버린 것이다. 연극에 미련이 남았던 카라마츠는 어쩌면 자기가 서게 될 마지막 무대를 위해 온 힘과 정신을 쏟아냈다. 

카라마츠는 정말로 연극에 빠졌구나. 

마지막 무대를 준비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연극을 준비하던 3월, 카라마츠는 캔커피를 건네며 드물게도 내게 상담을 해왔다. 

"같은 반이니까 너에게만 얘기할게, 이치마츠."

2학년 때 카라마츠와 의외로 많은 시간을 보내서였을까. 그의 연습을 많이 구경하러 가서였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하고 싶은 게 있어?"

"없다고 했잖아. 기억 못하냐, 썩을마츠."

한번 끝난 이야기를 캔커피나 건네주며 끄집어내는 녀석의 의도는 뭘까. 

"그런가..."

"그러는 너는, 역시 연극이 계속 하고 싶은거야?"

카라마츠의 답을 기다리며 캔커피를 따서 마셨다. 3월이지만 아직 추워서 따뜻한 캔커피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게 기분이 좋았다.

"...이번 무대가 끝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어."

카라마츠는 슬쩍 웃어보이며 답했다. 안심시키고 싶다는 의도였을까. 그렇게 웃어보여도 눈은 하나도 웃고있지 않은걸. 

그때 수업 종소리가 울리고 이 대화는 흐지부지 끝났다. 

카라마츠는 마지막 무대이니만큼 간만에 연기 연습을 집에서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할 정도로 카라마츠는 열심이였고, 내가 몰래 지켜보던 시절보다 한층 빛나 보였다. 

아, 이쯤 되면 별처럼 빛나고 있다고 해야되나. 

카라마츠의 연기는 형제들 누구나가 감탄할 정도로 발전해있었다.

"우와...진짜 다른 사람같아, 카라마츠 형."

토도마츠는 그간 카라마츠의 연극을 보지 않았으니 그 놀라움이 더 큰 모양이었다.

"대본 완벽소화? 대단한데."

전에 집에서 연습할 땐 시끄럽다고 핀잔주던 쵸로마츠도 감탄했다.

카라마츠가 읊는 대사와 표정, 그 몸짓 하나하나를 눈으로 좇으며 반짝임을 만끽했다. 지금 집에서 잠옷 입고서 하는 연기도 저정도인데, 무대에 가면 도대체 어떤 광경을 보게 될런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이윽고 카라마츠의 마지막 무대의 막이 올랐다. 이번만큼은 형제들이 모두 연극을 보러 갔다. 이번에는 주인공으로 무대에 선 카라마츠에게 공연장은 휘둘렸다. 카라마츠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무언가를 갈구하는 그의 손짓은 아쉬움을 내뱉던 그의 한숨도 담겨있는 듯 했고,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안에 담아두고 있던 본심을 전하는 듯 했으며, 그의 눈빛은 어딘가 초월해버린 것같아 보였다. 이건 나만의 생각이라, 카라마츠의 연기를 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느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 형제들은 좀처럼 빛나는 일이 없다. 

마지막 무대에 선 카라마츠가 마치 초신성처럼 빛났던 그날 이후.

우리 형제 중 그 누구도 빛을 내는 일은 없었다.

다만, 녀석의 반짝임에 반해버렸는지 난 그 반짝임을 잊을 수가 없다.

초신성은 별이 죽어가면서 짜내는 최후의 빛을 내는 거라고 하던가.

그래서 마지막 무대에서 녀석은 그렇게 아름답게 빛났던 걸까.

카라마츠가 떨어지는 모습을 본 그 때를 떠올린다.

녀석은 어느새 어둠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어버린 걸까.

마지막 무대를 마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니트로서 폼이나 잡으며 다니는 안쓰러운 녀석이 된 지금, 

도대체 어느 시점에서 녀석은 어둠을 집어삼키게 된걸까.

혹시,

나 때문인걸까.

그 이후, 나는 카라마츠와 그다지 어울려다니지도 않았고, 녀석의 안쓰러운 면모가 더해갈수록 심한 말을 하는 일이 잦아졌었지.

그 전에도 나는 녀석에게 심하게 대한 걸 후회해왔다. 거기에 카라마츠의 자살 시도를 목격한 이후, 카라마츠를 볼 때마다 죄책감이 목을 조여와 카라마츠를 피하기 시작했다. 지금 병실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것도 죄책감이 나를 덮칠까봐 두려워서다. 

머리만 텅 비었던 녀석은 마음 속도 텅 비어버렸다. 

그걸 메워주지 못한 초봄의 그날부터 나의 죄가 쌓이기 시작한 거다. 

카라마츠가 눈을 떠 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카라마츠의 마음을 메우지 않으면 아마 카라마츠는 스스로 텅 빈 자신을 버리려 들 것이다.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이젠 복도에서마저 내 죄책감은 나를 옥죈다.

같은 공간에 있다간 집어삼켜져버릴 거 같아. 

병원 바깥을 향한다.


나는 카라마츠에게서 도망치는 거 밖에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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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여기가 1/2 지점이네요. 아, 4월에나 끝나버리는 거 아닌가 이거
중요한 건 정말 자기만족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소마츠상 볼때마다 제 안에서의 캐해석이 막 뒤바뀌고 뒤집어지고 하니까 그게 여기에도 고대로 반영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죄송해요. 그래도 전 편 읽으면서 혼란주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구상하다보니 청춘물을 쓰고 싶어졌는데 그냥 이 시리즈가 아니라 단편으로 낼걸...하다가도 어차피 아무도 안보는데 여기 넣어버리자, 차피 카라마츠 과거썰은 풀어야겠지 해서 좋아하는 이치카라에 넣었습니다. 앞에서부터 봐주셨다면, 카라마츠가 왜 자기를 텅 비었다고 생각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고팠는데 잘 전해졌을까요.  
그리고 이거, 아무래도 커플링이 아니라 조합으로 써야 할 거 같은데, 일단은 최대한 브로맨스 테이스트를 느낄 수 있게 쓰고 있으니까 뭐, 취향껏 즐겨주세요. 죄송합니다. 변변찮네요 ㅠㅠㅠ 


Posted by 하리H( )Ri
2016. 3. 22. 16:17

[카라른/오소카라]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5-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캐붕,글솜씨없음주의

※5화 카라마츠 사변 기반+기타 에피소드들 소재

※오늘은 조금 힘을 뺀 이야기와 힘을 넣은 이야기가 공존. 뭔 소린지 원.

※그 외 뭐 여러 가지 주의(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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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이름 모를 거리의 인도. 거기에 나는 서 있다. 밤손님은 이제는 낮에도 찾아와 날 유혹한다.

- 자, 이딴 세상에서 사는거 그만 두자고? 편해지는 거야, 카라마츠.

텅 빈 나를 잡아끄는 그 손길에는 언제든 끌려갈 것만 같다. 그 손길에 몸을 맡긴 채 보낸 시간과 그 손길을 외면하며 보내는 시간이 교차하다, 이제는 조금 더 편해지는 쪽을 택하고는 한다. 

도로에는 빠르게 지나가는 트럭이 몇 대 있을 뿐.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은 거리다. 어디지, 라는 생각은 그만둔 지 오래다. 내가 어디에 있든 무슨 상관인가. 나는 어차피 가벼운 존재. 어디서 굴러다닌 들 상관없는 존재. 기왕 이렇게 된 거, 더욱 더 가벼워진 채 어디 먼 곳으로, 먼 차원으로, 여기가 아닌 곳으로 날려갈 수 있다면 좋을텐데. 형제들은 나를 붙들어서 이 세상에 묶여있게 하지만, 그건 진심인걸까. 아니, 나를 위해서인걸까. 그들이 여섯이서 하나인 20년을 부술 수 없어서 날 붙들고 있는 건 아닐까. 사고는 한번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면 멈추질 않는다. 나의 사고도, 그런 것일테지. 날아가고 싶다. 어디론가, 여기가 아닌 곳으로. 그 소망이 나를 채운다. 붉은 신호등도 푸른 신호등도 상관없이, 나의 세계는 어느새 하얗게 물들어간다. 

 

텅.

 

묵직한 감이 나를 강타한다. 소원이 이루어진 듯, 나는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다. 길 건너엔 또 하나의 나가 미소짓고 있다.

이제 곧 편하게 될 수 있어, 그치?

 

 

 

*

 

 

 

토도마츠는 하루를 꼬박 카라마츠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퉁퉁 불어버린 눈에 눈동자에 생기마저 사라진 토도마츠는 수술이 끝나고 병실로 옮겨진 카라마츠의 손을 잡은 채 카라마츠 형, 카라마츠 형 하며 기도하듯 읊조리고 있을 뿐이었다. 카라마츠가 차에 치였다는 소식을 듣고선 모두들 놀라며 병실로 달려와서는 교대로 토도마츠와 카라마츠의 곁을 지켰다. 아, 거기에는 이치마츠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치마츠는 병실에 와서 카라마츠를 그저 응시하다 나가더니 병실 밖 복도에서만 계속 있었다. 병실의 분위기에 지친 형제들을 위로해주는 건지도 모르지만, 내가 밖에서 있을 때 이치마츠는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무언가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듯 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나도 입을 다문 채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병실로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쵸로마츠가 집에 다녀오겠다며 사왔으면 하는 것, 가지고 왔으면 하는 것을 적어가서 병간호에서 잠시 제외. 토도마츠를 카라마츠하고만 있게 하는 시간도 필요할 것 같아 쥬시마츠를와 함께 병실 밖으로 나왔다. 

"오소마츠 형아, 카라마츠 형 손목에 상처가 많았대...난 손목보호대를 빌려간 게 정말 손목이 아픈 걸로만 생각했는데..."

"응..."

"카라마츠 형, 마음에 상처가 역시 많았던 거겠지? 우리 때문일까?"

"......"

카라마츠는 형제 탓을 잘 하지 않는다. 사소하게 당황스러워 하거나 짜증을 내는 일은 있어도, 정말 심각한 일에 말려들었을때 다른 형제가 연관되어서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 일이라도 괜찮다며 넘기곤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싸움이나 하고 다니면서 다른 형제들에게 피해를 주고 다닌 나와는 다르게. 나 때문에 가장 곤란해 했던 것도 카라마츠였다. 어느 날 부턴가 남을 상처입히고 싶지 않다면서 쌈질에서 빠져나왔다가 내게 당한 복수를 한답시고 덤벼든 불량배에게 당하고 오는 일이 잦았다. 카라마츠도 카라마츠라, 당하고만 오진 않았지만 이전보다는 확실히 힘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대신에 남을 즐겁게 해주겠다며 연극부에 들어가서는 이상한 연기들만 잔뜩 하고는 했던가.

"카라마츠는,"

좀 더 남을 의지할 필요가 있어.

라는 말이 입에서 맴돈다. 늘 생각하는 바지만, 그게 카라마츠가 받은 마음의 상처를 해결하리란 보장이 없다. 아니, 애초에 카라마츠의 기대를 저버린 건 우리들이니까. 특히, 내가 저버렸으니까.

"걱정마. 쥬시마츠. 카라마츠의 의식이 회복되면, 카라마츠를 웃게 해주면 되는거야."
가볍게 말한다. 웃게 해준다고? 그 웃음이 진짜 웃음일지도 모르는 주제에.

"...그걸로 되는걸까?"

"당연하지."

그럼에도 나는 가볍게 답을 내린다. 그도 그럴게, 나는 카라마츠만이 아니라 쵸로마츠,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의 형이기도 하니까. 장남이니까.

 

 

 

최근에 카라마츠와 제대로 대화했던 게 언제였지.

아, 카라마츠가 찻집 알바를 할 때. 그 때였나.

그 이후로, 카라마츠와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아니, 나눌 수가 없었다.

카라마츠의 자해를 보고 말았으니까.

어딘가 어두워져 가는 카라마츠를 눈치채고 있었지만, 찻집 알바를 한답시고 놀려주던 때에는 상황이 거기까지 치닫았다는 것을 어째서 알지 못했던걸까.

「좋은게 좋다」, 나의 모토가 흔들린 순간이었다.

 

카라마츠의 납치극이 적어도 겉보기엔 조용히 지나간 뒤, 새로운 머신이 들어왔다는 전단지에 평소 가던 파칭코와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신 머신에 한 번도 안 가본 곳, 딱 운이 터지기 좋은 곳이니까. 그 결과, 따긴 땄다. 하지만 대박도 아니라서 애매했다. 운세로 치면 소길. 한두 판 더 하면 대박이 터지거나 쪽박을 차거나 할 거 같아 오늘은 여기서 손을 놨다. 일단 따냈다는 데 만족하자는 생각이었다. 기왕 낯선 거리로 왔으니까 넘쳐나는 시간을 조금 보내볼까하고 어슬렁거렸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오전 열한 시, 할 일 없는 니트와 대조되는 분주한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따낸 돈으로 무얼 할지 궁리하던 차에, 어딘가 익숙한 사내를 한 찻집에서 발견했다. 우와, 우리같은 최하층 밑바닥 카스트는 들어가지도 못할 분위기의 찻집. 스타버와는 다른 느낌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만 오갈 거 같은 찻집에 나랑 같은 얼굴이 앉아 있었다. 저런 데라면 톳티, 가 아니라 저 열심히 뭔가 적어내려가는 모습은 카라마츠!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찻집을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무언가를 받아적고 있었고 맞은편에는 우리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카라마츠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설마.

그 카라마츠가 취직을 하려 드는건가? 자립은 하지 않을 거라구~, 날 먹여살리지 않겠나? 같은 말을 내뱉는 안쓰런 카라마츠가 취직을 스스로 하려 든다고? 

그대로 주변 벤치를 찾아 앉아서 찻집을 감시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자 초조해졌다. 본격적인 느낌이라서. 그것보다는 카라마츠의 표정이 더 신경쓰였지만. 우리들 앞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쑥쓰러운 미소라거나 진지한 끄덕임이나, 니트 탈출보다도 그런 게 날 더 초조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이윽고, 카라마츠가 찻집 문을 열고 나왔다. 카라마츠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그의 등 뒤로 돌아 어깨를 확 잡았다.

"어흐어어에에에엑!"

"뭐야 그 반응은, 푸하하."

 카라마츠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형님이 왜 여기 있는 거지? 혹시, 날 따라온..."

"그런 거 아니니까. 이 근처 파칭코 가게 갔다온 참."
"아,"

설마 이 녀석, 날 한심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 표정, 대박 터뜨린 것도, 쪽박 찬 것도 아닌 거 같은데."

"뭐, 그렇지. 따긴 땄는데 정말 조금이라서 말야. 그보다, 잠깐 앉아봐."

"왜 그리 진지한 표정인가?"

"카라마츠...아까 봤는데 혹시 취직하는 거야?"

"취직?"

"응, 방금 나온 찻집에서 뭐 받아적고 있는 거나 분위기가 그래보였는데."

"아, 이건 잠깐 부탁받은 거다."

"그래?"
"아까 얘기하던 사람, 고등학교 때 같이 부활동을 했던 나카무라 군인데 일주일 정도 볼일이 있어서 자기 대신에 잠깐 일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지. 거리에서 우연히 만주쳤다가 권유받아서 오늘 찻집 주인 아저씨와 인사하고 일에 대해 설명을 듣고 한 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고 서빙이나 계산, 잡일을 해 주는 거라며. 카라마츠는 내가 걱정한다고 생각했는지 제법 상세하게 얘기를 해줬다. 뭐야, 취직은 아니었나...다행이네, 다행.  그래도 잘 상상이 가진 않았다. 워낙 우리 앞에선 폼잡고 있거나 하는 게 익숙한 녀석이니까 사람을 접대하는 일을 하는 게 가능은 한건가 싶다. 물론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면 다를 거 같지만. 의외로 쭈뼛쭈뼛하게 손님 눈도 못 마주치고 차만 딱 갖다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했더니 우리 집 차남, 귀여워서 죽어버릴지도.

"형님, 듣고 있나?"

망상을 펼치는 동안 카라마츠가 이것저것 얘기한 모양이다. 어차피 아까의 일을 더 구체적으로 얘기했을 거 같지만. 

"그래. 어쨌든 힘내라."

"오우."

 

나 외에는 잠깐 알바를 한다는 것 정도만 형제들에게 전해서, 카라마츠가 찻집 알바를 한다는 건 나만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형제의 레어한 모습을 보는 걸 독점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으려나. 아침 열 시에나 일어나는 니트가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선 평소에 입던 안쓰런 패션이 아닌 깔끔한 옷을 입고 눈을 비비며 나가는 광경을 쳐다보며 조금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언젠간 우리 형제들도 저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제각각의 일을 찾아 흩어졌다 저녁에 돌아오는 생활을 하게 될까,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간만에 하는 일에 지쳐 돌아온 알바 첫 날, 저녁을 먹고 일찍 들어간 카라마츠는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일주일은 짧은 시간이지만 그 중 하루가 평소와 다른 낯선 하루라면 그게 길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 카라마츠는, 그런 기분일까.

다음 날, 카라마츠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카라마츠가 늘상 하듯 거울을 보며 머리를 정돈하고, 말끔한 옷을 차려입고, 전신 거울 속에 비친 나를 쳐다봤다. 물론 멋있지, 이 몸은. 그 채로 집을 벗어나 거리를 배회하다 찻집이 연다는 열 시 즈음에 맞춰 갔다. 여전히 우리같은 밑바닥은 들어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기지만, 다시금 보니 어쩐지 평화롭고 잔잔해 보이는 찻집. 얇은 커튼이 쳐진 창문 너머에는 카라마츠가 성실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가게 정리를 하고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찻집 문을 열어젖혔다.

"카라마츠~ 이 형이 와줬다고!"

유독 큰 소리로 카라마츠를 불러봤다. 가게 안에는 손님은 없고, 주인 아저씨와 카라마츠만이 일하다 말고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에, 오소마츠?"

카라마츠가 당황한 듯이 나를 쳐다봤다. 그럴 법도 하지. 가게 문을 떡하니 열어젖히고선 한 손으로 기대고 나름대로 폼을 잡고 있으니까.

"가끔은 이런 상류층의 문화도 누리면 좋잖아! 그래, 지명은 카라마츠! 오늘 나와 시간을 보내줘야겠어!"

"그거 상류층 아니니까...여기 어딘가의 가게도 아니고..."

"지금은 손님도 없으니까 괜찮은 거 아냐? 어때요, 아저씨?"

아저씨가 나와 카라마츠를 번갈아보더니 머리를 긁적이다 입을 열었다.

"지금은 한가한 시간이니 마츠노 군, 형과 상대를 해줘도 좋네."

"에, 그렇지만..."

"물론 음료는 공짜가 아니니까, 마츠노 군."

"알겠습니다."

나는 볕이 잘 드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 카라마츠는 나와 마주보고선 앉았다. 주인 아저씨가 주문을 받지도 않고 내 쪽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카라마츠 쪽에는 진해보이는 커피를 놓았다. 이름이 에스프레소 도...도피소였나.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카라마츠가 먼저 운을 띄웠다.

"그냥 우리 카라마츠가 어떻게 일하고 있나 보고싶어서 온거야. 딱히 할 일도 없고 말이지."

"그건 그렇네. 다른 애들은?"

"둘만의 비밀, 이란 걸로 하고 싶어서 말 안했어."

"나는 몰라도 이렇게 말끔하게 차려입은 걸 보고 아무 말도 안 했다고?"

"그럴까봐 눈에 띄기 전에 나왔지."

"얼마나 일찍 나온거야..."

카라마츠는 내 말을 들으면서 살짝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모처럼 둘만의 시간인데,"

그 멋쩍은 미소를 짓는 입술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

"이 형에게 고민거리가 있다면 털어보지 않을래?" 

입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집어들고선 한 모금 들이켰다.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 가게 문 바깥쪽에 달린 종소리, 원두 내리는 소리, 그 소리들 사이에서 카라마츠의 목소리는 섞여나오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커피잔을 잡고 커피를 들여다볼 뿐, 내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기미를 보이진 않았다. 저 모습은 뭘까. 망설이고 있는 걸까. 내겐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인걸까. 그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녀석을 재촉했다간 뭣도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는 고민이 없는게 고민이란 말이지."

일단 나의 이야기를 꺼냈다. 대화를 이어가는 건 일단 한 마디의 말이다.

"너희들을 걱정하긴 하는데, 그게 또 고민까지 이어지진 않는달까. 의외로 다들 제각각의 개성대로 살고 있으니까. 아, 이치마츠는 그래도 좀 걱정이 되려나. 그 녀석은 사회성 제로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뒷골목에서 잘만하면 폭군으로 군림하고 살 거 같기도 한데, 냐하하."

멋쩍은 웃음과 함께 농담을 던졌다. 이치마츠가 들으면 기분 나빠하려나 같은 생각은 일단 제쳐두고.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이치마츠한테 말하지 마. 아, 너라면 말할 거 같진 않지만."

"그게 아니라..."

이치마츠 뒷담 쪽이 아니었나.

"제각각의 개성대로 살고 있다고 말했지, 우리들이."

"그쪽이었나? 그렇지. 최근에야 너네들이 평소에 어떻게 사는 지 알게 됐고 말이지."

카라마츠는 컵을 들고선 커피를 조금씩 마시기 시작한다.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는 걸 보니 역시 쓴 건 잘 먹는 거 같진 않지만.

"내게도 개성이 있어, 오소마츠?"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개성 만만하다 못해 마이 웨이잖냐, 네 녀석은.

"당연하지! 어설픈 오자키 흉내나 안쓰러운 취향이라든가..."

카라마츠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조금 표정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아, 그리고, 그리고, 기타 연주 같은거도 좋아하고 노래 좋아하고 그러잖냐. 나머지는 그런 녀석 없으니까."

간신히 좋은 의미 쪽으로 얘기를 한 거 같다. 아까 말은 하고 보니 기분이 나빴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소마츠가 보는 나는 그렇다는 거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있는데, 역시 말로 설명하기엔 어려운 거 아닐까?"

화제를 돌리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카라마츠는 내가 말을 꺼내면 꺼낼수록 표정이 안 좋아졌다. 물론, 마시고 있는 커피도 써서 그러겠지만.

"카라마츠, 그 커피 한번 마셔봐도 돼?"

카라마츠는 대답없이 잔을 내밀었다. 나도 아메리카노를 내밀어 서로의 음료를 바꿔 마셨다.

"켁, 쓰네 이거...이게 뭐랬지? 에스프레소 도피...도피소?"

"도피오. 샷을 두 번 추가했다는 거야."

카라마츠는 얼음을 입에서 굴리며 답한다. 물론 그 표정은 조금 전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그런가...도피오...용케 이런 걸 마시네."

"어쩌다보니 커피를 마신다면 이걸 마시게 됐어."

분명 이것도 폼 잡는다고 마시게 된 걸거야. 머릿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카라마츠의 표정을 봐서는, 그런 소리를 했다간 더 상처를 받을 거 같았다.

다시금 두 사람의 음료를 바꿔서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시덥잖은 대화를 하며 마시는 동안, 손님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시간은 열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점심 때인가, 손님이 많이 오네."

"아, 이제..."

"가봐야겠네. 동생의 알바를 방해하는 나쁜 형이 되고 싶진 않다구."
"응."

카라마츠는 일어나서 기지개를 한 번 펴더니 나를 쳐다봤다.

"오소마츠."

"왜?"

카라마츠는 입술을 실룩거리더니, 한숨을 쉬었다.

"아무 것도 아냐. 이따가 집에서 보게."
"그래, 일 힘내라."

 

내가 가게 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는 카라마츠는 어쩐지 손을 내밀고 있는 거 같았다. 사실은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고 하는 듯이. 그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못하는 차남. 그리고 누군가에게 의지받지 못하는 장남. 이 때를 놓쳐버린 것에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 그날 밤 옥상의 카라마츠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지금, 카라마츠는 자해인지 사고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병원에 누워있다. 심한 부상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렇게나 거하게 한 건 해버린 카라마츠가 눈을 뜨고 입을 연다고 한들, 나를 의지해주는 날로 돌아올 수 있을까. 카페로 찾아갔던 날, 난 그곳에서 무엇을 말해야 했을까. 동생들에겐 가볍게 답을 얘기해주는 나지만, 나 자신에게만큼은 답을 이야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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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쓰는데 시간이 많이 들었습니다.

구상은 오래 전부터 하던 편인데도 막상 만들어지고보니 재밌지도 않고 감동적이지도 ㅇ낳네요.

문제는 오늘, 24화가....으어.....

스포는 못하겠는데 으어.....그거 보고 무조건 오늘 오소카라 편을 써야겠다 생각해서 이러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써내고 보니 으어...망했어요.

그래도 오늘 일단 이치카라 편도 써서 한 사이클이라도 완성할 수 있음 하는 바람입니다. 두 사이클+@니까요. 지금 내가 후기로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모르는 하츠모리 드림. 

     

Posted by 하리H( )Ri
2016. 3. 6. 07:59

[카라른/토도카라]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4-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캐붕,글솜씨없음주의

※5화 카라마츠 사변 기반, 3화 연극부 썰 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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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안쓰러운 형, 카라마츠. 그는 최근 들어 잠을 설치고 있다. 이유는 모르지만, 모른 척 하려 해도 옆자리니까 알게 되는걸. 덕분에 내 컨디션도 엉망진창. 잠을 못 드는 걸로 화를 내는 건 좀 치졸하지만, 책임을 물을 수 있은 데가 달리 없으니까 조금 불만이 쌓이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카라마츠 형에게 핀잔을 던지는 나날을 보낼 즈음, 나머지 형제들의 행동이 조금씩 달라진 게 보였다. 카라마츠 형에게의 태도가 묘하게 달라졌단 말이지. 카라마츠 형의 납치극이 원인이었을까. 나는 카라마츠 형도 이젠 어른이니까 고민 한두가지라고 할 시간을 가지느라 그런 거 아닐까 하고 내버려뒀었는데, 그 이상의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치 못했던 거다. 드라이 몬스터, 나한테 잘 어울리는 말일지도.

 

카라마츠 형이 갖다 놓은 투명한 잔 옆에는 어느새 학알이 든 병과 쵸로마츠 형이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이 붙은 병이 놓여있다. 쵸로마츠 형, 잔소리는커녕 이제는 저기에다 자기 물건까지 올려둘 정도라니. 이유야 대강 알고 있지만. 쵸로마츠 형이 카라마츠 형을 신경쓰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눈에 떡하니 들어와서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쵸로마츠 형이 드디어 자기 인식을 제대로 하기 전에도 신경썼던 부분이라 단순히 형이 주변을 살피게 되었다, 와는 다른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이 적중했음을 안 건 우연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는 주의인 우리 마츠노 형제. 책장 뒤를 뒤지는 쵸로마츠 형을 보고 카라마츠 형의 야한 잡지를 보겠다고 저러는 게 우스워서 사진으로 찍을까 고민하던 차에 쵸로마츠 형이 책장 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뭔지는 잘 보이지 않지만 쵸로마츠 형이 만지작거리다 얼굴을 감싸쥐는 걸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 뒤로 책장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은 나지 않았다. 누군가 한 명은 방에 남아있었으니까.

 

분명 저 책장 뒤에는 심각한 일이 숨어있어. 그래서 혼자가 아니면 좀 집안이 떠들썩해질지 몰라.

 

그걸 목격한 지도 2주일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쵸로마츠 형은 카라마츠 형에게 무언가 시도했다. 쥬시마츠 형도 느낌상 무언가를 눈치채고 카라마츠 형에게 다가갔다. 이치마츠 형은 카라마츠 형을 피하고 있다. 오소마츠 형은 알 수 없이 밖으로 나돈다. 카라마츠를 둘러싼 형제들의 이상한 흐름은 분명 그 책장 뒤에 있는 무언가와 관련이 되어 있겠지. 판도라의 상자가 거기에 있다. 점심밥을 먹고 나서, 다른 형제들의 눈치를 살폈다. 오늘은 다들 어디 안 나가려나, 좀 나갔으면 좋겠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소마츠 형을 제외하고는 다들 바깥으로 나갔다. 이제 이 형만 내보내면 되겠는데. 경마 가라고 천 엔 주고 꼬실까.

"뭘 그렇게 경계하는 거야, 토도마츠."

나왔다! 가끔 예리해지는 장남력.

"경계하긴 뭘 경계했다 그래? 간만에 집에서 느긋이 쉬고 싶은데 누가 남아있는 게 싫어서 그렇거든?"

"'간만에'라니! 하하하핫."

하긴, 우리들 니트니까 매일같이 쉬고 있긴 하지.

"톳티."

"뭐."

"안쓰러운 녀석한텐 뭐라고 해주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런 건 왜 묻는데."

"카라마츠 녀석이 물어봤거든. 자기가 모두를 아프게 만들고 있다고. 고슴도치의 딜레마라고까지 말한다고? 그런건 딱히 아닌데. 그래서 넌 그대로 있어도 좋다고 얘기했거든? 그런데 그걸로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오소마츠 형도 카라마츠 형의 이야기를 꺼낸다. 오소마츠 형이 밖으로 나도는 것도 카라마츠 형 때문이었나. 사랑받고 있네, 라기엔 지금 상황은 좀 애매하다.

"나야 안쓰럽다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쪽이니까. 그런대도 변함이 없어서 안쓰럽지."

"그렇지? 안쓰러운 건 딱히 변하질 않으니까. 우리가 안쓰러워 해주는 게 좋은 건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잖아."

카라마츠 형은 변하지 않아. 안쓰럽게 폼 잡는 것은 변하지 않아. 그렇게 폼 잡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속에 든 게 있는 건지 어떤지는 알지 못하지만. 어찌되든 안쓰러울 뿐이다. 지금은 그 안쓰러움이 행동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마음 속에서 느껴지고 있는 거지만. 잠을 설치고 있다. 텅 빈 카라마츠 형이 고민을 끌어안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안쓰럽게 행동한다. 그 행동으로 그는 고민하는 자신을 숨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소마츠 형이 일부러 이 얘기를 꺼낸 거 같았다. 따지려고 돌아보니 오소마츠 형이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을 뿐이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문을 닫았다. 책장 뒤를 살펴봤다. 카라마츠 형의 야한 잡지들이 널부러져 있다. 잡지들을 걷어내니 커터칼이 여러 개 던져져 있었다. 하나를 집어들어 칼날을 빼보니 칼날 끝에 갈색 얼룩이 져있다. 다른 칼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보고 떠오르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손목을 긋고 있는 거야, 카라마츠 형은. 순간 오싹해졌다. 설마, 카라마츠 형이 끌어안고 있는 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 멍청하게 순진한 형이 자살을 생각한다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납치극 당시가 떠올랐다. 카라마츠 형은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 옷을 갈아입고 병원에 다녀와 치료를 받고 돌아왔다. 집을 비울 때는 이치마츠 형이 큰일이었으니까. 매일매일 사고치는 쌍둥이 형제가 6명이면 한 명쯤 잊어버리는 일도 허다하니까, 그래도 카라마츠 형을 깜빡한 것, 밤에 시끄럽다며 물건을 집어던진건 아무래도 심한 일이었으니까 우리들은 카라마츠 형에게 사과했다. 그 사과는 우리들 형제의 기준으로 보면 대충한 것도, 그저 외면치레만 한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카라마츠 형이 괜찮다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을 때 더 미안하다며 난리를 쳤을 정도였지. 그게 큰 트라우마가 될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로. 문제는 그것만이 다는 아닐 거라는 감이었다. 카라마츠 형이 잠을 설친 건, 납치극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형에게 얽혀있는 일은 단순한 인과관계가 아니었다.

 

카라마츠 형.

 

그러고보니 어느새부턴가 카라마츠 형은 소매를 잘 걷어붙이지 않았다. 특히 왼쪽 팔목은. 소매를 걷어붙일 때에는 쥬시마츠 형에게서 손목 보호대를 빌려서 하고 있었다.  왼쪽 팔목이 아프댔던가, 손목을 돌리면서 하는 말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게 기억난다. 그렇게 카라마츠 형은 혼자서 자신의 아픔을 삼키고 있다. 아니지. 삼키고 있는 게 아니라 발버둥치고 있는 거겠지. 손목을 긋는다는 건 결코 삼키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니까. 그리고 한두번이 아니었을 자살시도를 하면서, 카라마츠 형은 더욱더 깊은 고통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째서. 하나를 알게 되니까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알아버리는데, 그 전에는 하나도 몰랐던 걸까. '드라이하네~' 오소마츠 형의 이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내가 카라마츠 형에게 관심이 없었으니까, 잠을 못 자고 설쳐도 그러려니 하고 넘겨버리니까, 카라마츠 형은 더욱 더 고통스러운 쪽으로 빠져들어갔을 거라고 자책한다. 이런 건 결코 나답지 않지만. 죄 없는 사람 하나를 몰아넣고 태평할 정도까지는 타락하지 않았으니까.

 

카라마츠 형과는 어떻게든 얘기를 나눠야 했다. 카라마츠 형이 자기 마음을 털어놓고 상처를 꿰맬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오소마츠 형이, 쵸로마츠 형이, 쥬시마츠 형이 부딪혔음에도 잘 되지 않은 거 같다. 하물며 이제서야 그의 상처를 눈치챈 나다. 내가 따지듯이 물어간다고 한들, 카라마츠 형은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지 않을거야. 오히려 괜찮다면서 안쓰럽게 폼이나 잡겠지. 그가 더 심각한 생각을 하기 전에, 어둠에 먹혀버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끄집어올 기회만이라도 만들 수만 있다면. 그 계기를 만들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멍때리기만 시전하고 있다.

 

고슴도치의 딜레마.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상처를 주는 거라고 했던가. 이건 카라마츠 형보다는 나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카라마츠를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그 정도까진 아니라고 답하겠지만. 그래도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다. 카라마츠 형은 좀더 나에게 상처를 줘도 괜찮을텐데. 속으로 삼키면 자기의 상처만 벌어진다는 걸 왜 몰라주는 거야.

 

카라마츠 형에게 직접 전할 수 있는 말은 없을거다. 적어도 지금은. 직접적으로 말하는 게 카라마츠 형에게는 상처로 박힐 것이다. 안그래도, 그는 상처를 잔뜩 안고 있다. 돌려 말하는 메시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형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봉합될 수 있도록 일단은 말없는 사랑을 건네야 할 시점이다. 옳은 방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난 방을 뛰쳐나와 달렸다. 달리고, 달리고, 목적지도 없이 달렸다. 무언가 내 마음 속에서 터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애써 무시해왔던 것들이 한번에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어떻게 해야 좋은 거야, 도와줘. 파트너.

 

아무 이유 없이 선인장이 떠오른다. 메마른 사막에서 가시를 뽐내며 선인장이 서있다. 선인장은 성가신 녀석이라 물을 너무 많이 줘도 죽어버린다 한다. 메마른 곳에서 살아온 나름의 폴리시는 사막이 아닌 곳에 와서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물을 안 주면 말라버리지만, 아슬아슬할 때 한 번 주면 된다고 하니까 귀찮은 녀석이다. 뾰족한 가시는 누군가를 찌르기 위한 게 아니라 메마른 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물을 빼앗기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선인장의 진화의 말로다. 그런 선인장이 자신과 닮았다고 느꼈다. 고슴도치보다도 더. 나를 위해서만 발버둥치고 있는 꼴이 딱이다. 카라마츠 형이 주는 물에 흠뻑 적셔졌을 때, 나는 카라마츠 형을 거부했다. 그의 관심을 지나친 거라고만 생각했고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나는 메말라가기 시작했다. 선인장처럼 남을 찌르는 쪽으로 변화해갔다. 그러는동안 물을 채우던 카라마츠 형의 잔도 메말라가기 시작한 걸까. 이윽고 넘치듯 찰랑거리던 물은 증발하고 빈 잔만 남았다. 그 결과, 카라마츠 형은 잔에 물이 아니라 다른 것을 채우기 시작한 거다. 어릴 적 파트너라며 꼭 붙어다녔던 형과 나다. 여섯 쌍둥이라고는 해도, 가장 가까웠던 관계 정도는 있으니까. 늘 같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여섯 쌍둥이가 개성을 찾아가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로가 쌓아왔던 관계도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카라마츠 형은 나름대로 길을 잘 찾아간 편이라고 생각했다. 안쓰러운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그러나 과연 형이 찾아간 길은 형을 위한 길이었을까. 형이 연극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안쓰러움은 가속화되고, 형의 변화도 가속화되었던 것이다. 형은 여전히 텅 비고 멍청한 사람이었지만 겉을 꾸며낼 줄도 알게 되었단 걸 어째서 눈치채지 못한걸까. 

 

숨이 가빠진다. 이젠 내 목이 메말라간다. 아무 생각 없이 뛰쳐나와서 돈도 없고, 집에서도 너무 멀리 떨어져있는 듯 하다. 간질거리는 목에 침을 삼키면서, 조금씩 이성을 되찾는다. 익숙하지 않은 거리의 횡단보도에 서 있다. 슬슬 머릿속을 정리해보자. 카라마츠 형에게 상처가 되더라도, 직접 하고픈 말을 얘기하자. 진심을 부딪히면 형도 진심을 꺼내주지 않을까. 내가 사과하는 일, 좀처럼 없으니까 내 사과라면 진심으로 받아주지 않을까. 아직은 괜찮으니까. 형, 그정도 여유는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오늘 점심도 잘만 먹었지, 식탁을 치워주겠다며 웃으며 밥그릇들도 들고 가줬지. 적어도 오늘 형에게 내 진심을 전한다면, 사과한다면 형이 지고 있는 짐을 덜어줄 수 있을거야. 어디까지 뛰쳐나왔는지는 모르지만, 형을 빨리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 그런 기분이다. 그때, 횡단보도의 건너쪽에서 익숙한 형체가 보였다. 8차선 도로라 그런지 횡단보도가 꽤 커서 명확하지는 않지만, 저건 카라마츠 형이다. 여기서 만날 줄이야. 다른 형제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들어갈 수 있는 좋은 환경이다. 신이 돕는 거네, 이건.

 

 

 

라고 착각했다.

 

차선에는 빠른 속도로 트럭들이 몇 대 지나간다. 보행신호는 도무지 파란불로 바뀔 생각을 않는다. 이윽고 차쪽 신호등이 노란 불, 빨간불로 바뀐다. 3.2.1.텅.

 

트럭이 정지선에 급하게 멈추는 짧은 시간, 카라마츠 형의 몸이 앞으로 내던져졌다. 급정거하는 트럭에 부딪힌 카라마츠 형의 몸은 횡단보도 쪽까지 튕겨나갔다. 머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트럭 운전사도,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들도 모두 카라마츠 형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난 그저 굳은 채 반대편 인도에 서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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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저 지금 뭐라고 써대고 있는 겁니까.

실은 짜놓은 얘기지만. 토도마츠는 막연히 선인장을 건네주면 어떨까 생각하던 차에 뒷얘기를 생각했던 거라 이번 화에서는 선인장이고 빈 잔이고 내던졌습니다. 토도마츠의 드라이함을 살리고 싶었는데 드라이하려다 땀내나게 되어버렸으니 이거. 분량은 반도 안 왔고, 재미는 없습니다. 변변찮을 정도가 아니라 안타는 쓰레기네요 이거.헿. 그래도 자기만족으로 최대한 써내려가야죠 뭐.

 

 

 

 

Posted by 하리H( )Ri
2016. 3. 6. 05:56

[카라른/ 쵸로카라 편]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3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캐붕,글솜씨없음주의

※5화 카라마츠 사변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 뒤의 시간대는 뒤죽박죽으로 적용되어 있습니다.

쵸로마츠, 21화를 보고 나니 21화 당시의 느낌으로 묘사하고 싶네요. 드디어 쓰레기를 인정했어!(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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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노 가 여섯 니트들은 대부분 늦게 깬다. 누구 하나 제대로 된 녀석이 없지. 그렇다고 나도 거기서 예외는 되지 않는다. 일찍 일어난다고 해봤자 아이돌 콘서트나 굿즈를 위해 순번을 기다려야 하는 날에나 일어날 뿐이지. 이전에는 나만이 멀쩡한 녀석이라고 생각해왔다. 다른 형제들의 바보같고 안쓰러운 행각을 지켜보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던가. 나도 녀석들과 다를 바 없구나, 깔끔하게 인정했을 때 내게 평화가 찾아왔다. 내면의 평화, 랬던가. 이딴 현상을 유지하고 있대도 좋다고 생각해버리는 자기가 한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원해졌다. 다만, 그건 자기에 국한된 일이다. 나에게 내면의 평화가 찾아오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놓치던 것을 찾아내는 건 겉보기엔 좋은 일이지만, 꼭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좋지 않은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내면의 평화는 흔들리고 거기에 휩쓸려 들어갈 뿐이니까.

 

하여간, 오늘 아침에는 내면의 평화를 다시금 찾아볼까 하고 다른 형제들보다 먼저 일어났다. 토도마츠는 아침 조깅을 한댔던가, 스마트폰 알람에 '09:00 조깅♥'이라는 알림이 떠 있다. 시간은 아침 일곱 시, 터무니없이 일찍 깼군. 아침밥은 한참 멀었고 배가 조금 고파져서 우유를 한 잔 마시고 방으로 돌아왔다. 나와 똑같이 생겨먹은 다섯 녀석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내 잠을 방해하는 주범 쥬시마츠와 오소마츠 형은 퍼질러 자고 있고, 토도마츠는 몸을 틀어 배시시 웃으며 자고 있다. 이치마츠는 이불 밖으로 발을 삐죽 내밀며 자고 있다. 눈에 띄는 건 카라마츠, 눈에 다크서클이 져 있고 신음소리를 내며 불편한 듯이 자고 있다. 사실 최근에 일찍 깰 때마다, 카라마츠는 저런 상태였다. 그 최근이 카라마츠의 납치극 즈음이었던가. 아니, 그 전에도 저런 모습이었다. 카라마츠는 단순한 녀석이니까 잠도 달게 자고 일어나는 쪽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잠을 설치거나 하는 일이 잦은 모양이다. 그래도 카라마츠는 그걸 형제들에게 상담해오지 않는다. 안쓰러운 말을 한 번 줄이고 꺼내줬으면 좋으련만, 그걸 하지 못하는지 하지 않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하지 않는 쪽이겠지. 납치극 이후에 카라마츠는 언뜻 보기에 그 전과 다를 바 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형제들과 조금 벽을 쌓고 있다는 인상이다. 자기의 본심을,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고 삼키는 모습을 눈치챈 게 나의 벽이 부서진 이후다. 그 전에도 카라마츠의 모습을 관찰해왔지만, 내가 나를 제대로 의식하고 나서야 카라마츠의 상태를 제대로 눈치채다니, 바보같달까 무심하달까.

 

창가에 있는 빈 잔과 학알이 가득찬 유리병이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난다. 병 위에는 학이 여섯 마리 올려져 있는데, 아무래도 창문을 열면 바람이 불어 떨어지겠지. 용케 방에서 떠들썩하게 형제들이 놀아도 병이나 잔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종이학은 떨어지기 쉽잖아. 안 쓰는 화분받침을 병 위에 올리고, 거기에 학을 조심스럽게 배치했다. 그리고는 잔과 병의 먼지를 털고 잔은 마른 행주로 닦았다. 잔은 안까지 닦아놓으라고 말했건만 카라마츠는 바깥만 슬쩍 닦아놓고선 그대로 방치한다. 잠깐 잔에는 학알들이 차있었지만 병으로 옮겨담은 뒤에 다시금 잔은 빈 상태로 돌아갔다. 술도 잘 마시지 못하는 카라마츠가 술잔을 가져왔을 때, 도대체 저걸 어디에다가 써먹을 생각인지 궁금했는데, 카라마츠는 어디에도 쓰지 않았다. 장식으로 쓰고 있다, 라는 말은 궤변으로 녀석은 그냥 거기에 잔을 방치하고 있을 뿐이다. 술을 담아본 적 없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잔은 어딘가 안쓰러워 보였다. 오소마츠 형이 한 번 여기다가 술을 마셔보겠다고 했을 때 단호하게 거절하던 카라마츠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면서도 창가에 두고 그저 보고만 있을 뿐이다. 달빛을 마시고 싶다던가 하는 말도 그저 말 뿐, 내 잔소리에 못이겨 먼지를 털어낼 때 외에는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이다.

 

이전에 나라면 답답해 했겠지. 쓸모없는 물건을 창가에 올려놨다가 깨뜨리면 어떡할거야. 누가 다치면 어떻게 할 건데. 부엌에 갖다좀 놓으라고. 창가에 놔뒀다가 깨져도 난 몰라. 이렇게 따져들었을거다. 자기가 부족한 녀석인 것을 인정하고 난 뒤에 카라마츠가 잔을 저기에 올려둔 거라 이 잔소리가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다만 부족한 녀석인걸 인정하기 전의 나라도 아마 카라마츠에게 심한 소리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카라마츠가 멀쩡한 상태가 아닌 건 그때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땐 카라마츠가 여전히 삐져있을 거라 멋대로 착각한 거지만. 

 

방을 나와 다락방으로 들어갔다. 다락방 한 켠에 다른 형제들에게 방해받지 않게 소중한 굿즈들을 모아놓은 상자를 꺼냈다. 그 중에 냐쨩이 프린트된 일본주 병을 꺼낸다. 한정상품, 미개봉 상태라 아마 팔려고 하면 사는 사람도 있을 거다. 양보할 생각은 없지만. 술은 좋아하니까 마시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콜렉터로서 열어서 마셔버리기엔 아까우니까 여기에 박아둔 상태다. 냉장고에라도 넣었다간 누가 마셔버리고 병을 엉망진창으로 버려둘 지 모를 일이니까. 병목을 손가락으로 잡고 살짝 흔들어본다. 찰랑-찰랑-술이 병에 부딪히는 소리가 제법 좋다. 그 소리를 들으며, 큰 결심을 한다.

 

방에 돌아오니 토도마츠의 알람 소리가 들린다. 답지 않은 자연의 소리가 울려퍼지고, 토도마츠가 잠을 깬다.

"라이징따르스키형, 잘 잤어?"

"누가 라이징따르스키냐. 아침부터 기분 나쁘게시리."

"헤헤. 그보다 일찍 일어났네. 다시 취활이라도 할 셈이야?"

"아니. 그냥 어쩌다보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쵸로마츠 형은 생각이 참 많아― 뭐, 그것도 쵸로마츠 형이지만."

내면의 평화를 찾았다, 자기 자신을 드디어 인정했다, 이렇게 멋대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들 나는 나인가. 토도마츠의 말은 조금 아프게 들렸다.

"카라마츠 형, 어젯밤도 잠을 설치더라. 덕분에 잠을 제대로 못 잤어."

"뜬금없이 뭔 소리야."

"요즘 신경쓰고 있잖아, 카라마츠 형에게."

"눈에 띄게 피곤해하고 눈에 띄게 피곤하게 만드는 녀석이니까 그렇지."

토도마츠는 헤에-그러더니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쵸로마츠 형은 조금 더 내려놓는 게 좋다고 생각해."

"여기서 내려놓을 게 뭐가 더 있다고."

"나쁜 의미로 말하는 거 아니니까. 걱정할 만큼은 아니지만."

이러고선 토도마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외면을 신경쓰는 녀석이니 세수도 하고 아마 뭐라도 바르고 조깅하러 가겠지. 그것보다 내려놓으라니, 방금 제법 큰 결심을 하고 온 참인데. 내려놓고 온 참인데. 막내 녀석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까 조금 분하다.

 

니트들이 모두 일어났다. 엄마가 아침밥을 차려주고 여섯 형제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밥을 먹는다. 밥을 먹건 술을 마시건 대체로는 누구 하나 빠지는 일 없이 여섯이서 하는 게 익숙해져 있다. 전에 이치마츠랑 단 둘이 밥을 먹을 때, 평소와는 달리 무거운 분위기여서 둘이 먹는 건 별로 좋지 않으려나 생각한다. 둘이 싸웠던 것도 아닌데 여섯이서 먹고 마시는게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랬을거다. 밥을 먹고 나니까 나도 이치마츠도 좀 풀어져서는 이것저것 얘기를 했었으니까. 밥을 먹고 나서는 오소마츠 형은 빠칭코, 토도마츠는 비밀이라고 말하면서 외출, 쥬시마츠는 이치마츠와 함께 야구를 하러 나갔다. 집 안에는 카라마츠와 나만이 남았다. 카라마츠도 안쓰러운 가죽 점퍼를 입는 걸 보니 아무래도 외출하려는 모양이다.

"쵸로마츠, 오늘도 잔을 닦아준건가."

"워낙 안 닦아놓으니까 말이지. 몇 번을 얘기했는데."

"고마워."

예상치 못한 반응이다. 평소에는 닦아놓았다고 내가 먼저 말하고 카라마츠는 그저 끄덕일 뿐이었다. 오늘은 반대의 경우인가. 쥬시마츠가 저 잔을 처음으로 채운 뒤로,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걸까. 카라마츠의 표정은 살짝 지은 미소. 그 속에는 무표정. 변한 게 있는 지 없는 지 모르겠다.

"카라마츠,"

"왜 그러나, 브라더."

"이 술잔, 써도 돼?"

"응?"

"이 술잔, 써도 되냐고."

술잔을 살짝 들어올렸다. 변화구가 아닌 직구를 던진다. 변화구를 던지면 카라마츠는 못 알아들으니까. 마음을 고려한다면 변화구를 던져야 하지만, 알까보냐. 카라마츠의 표정은 조금 일그러졌다. 그도 그럴게, 그동안 저 잔은 카라마츠가 쓰지 못하게 했으니까. 오소마츠 형의 부탁을 거절할 정도로.

"아껴뒀던 술을 마실건데, 투명한 술잔이라야 술을 제대로 보고 즐길 수 있을 거 같거든. 집에 있는 다른 잔은 투명하질 않잖아."

"......"

"싫다면 거절해도 좋아. 너가 아끼고 아끼는 거라면, 그냥 저대로 두고 싶은 거라면 억지로 쓰고 싶다곤 말하지 않을게."

조금 세게 나갔다. 괜히 돌려서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다. 딱히 카라마츠를 위해서가 아니다. 나란 녀석은 이렇게 직구를 날리는 쪽이 훨씬 편하니까 그럴 뿐이다. 답답한 건 싫다.

"...깨끗이 쓰고 다시 돌려놔준다면 괜찮아."

카라마츠가 어렵게 답을 꺼낸다. 좋은 표정은 아니라 살짝 미안해진다.

"그리고 하나 더 부탁할게."

"뭔가."

"술, 혼자 마시면 쓸쓸하니까 같이 있어줘."

카라마츠가 갸웃한 표정을 짓는다. 이런 부탁은 잘 하지 않는다. 혼자 하는 거 아니면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거나 하는 건 여섯이서 하는 게 보통이다. 둘이 있는 일은 그다지 흔치 않으니까.

"한정판으로 나온 냐쨩 프린트 술이라 혼자 마시고 싶은데, 카라마츠에게 특별히 맛보여줄테니까. 술잔 빌려준 답례, 라고하면 좀 억지지만."

술잔을 빌리는 것도 술을 잘 못 마시는 카라마츠에게 술을 주겠다고 하는 것도 모두 내 억지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억지를 부린다.

"그러면 고맙게 받아들이지. 아끼던 술을 준다는 거니까."

카라마츠는 폼잡는 투로 대답한다. 저렇게까지 폼을 잡으면서 세우는 벽을 무너뜨리려면, 강하게 미는 걸로는 안되는 거라고 다시금 느끼게 된다. 카라마츠가 밖으로 나가는 걸 보며 벽을 무너뜨릴 방법을 생각하려 머리를 굴린다.

 

아무도 없던 방에 먼저 들어온 건 토도마츠. 나를 쳐다보더니 씩 웃는 게 기분나쁘다.

"쵸로마츠 형, 아침보다 좋은 표정 하고 있네? 설마 ㄸ..."

"어지간히 좀 해라, 토도마츠. 태클 거는 거는 포기한 거 아니거든."

"농담이야. 뭔가 좀 홀가분해 보여서."

의외로 눈치가 좋단 말이지, 막내 녀석.

"쯧. 그래보인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난 홀가분하지 않거든."

지금 제법 중대한 일을 앞두고 있으니까.

"형은 좋겠다~ 난 지금 전혀 감이 안 잡힌단 말이지."

"뭐가?"

"비밀."

왜 얘기한거냐, 약아빠진 녀석아.

"어쨌든, 잘 되길 빌어~"

그 말에 맞춰서 나갔던 나머지 형제들이 현관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다들 일찍 잠들었다. 다들, 이라곤 했지만 나와 카라마츠는 잠들지 않았지만. 좌쥬시 우오소를 확인하고 이불을 빠져나왔다. 카라마츠도 토도마츠와 이치마츠를 확인하고는 이불을 빠져나와 잔을 들고선 부엌으로 내려갔다. 난 다락방에서 냐쨩 프린트가 되어 있는 일본주를 꺼내든다. 중요한 건 내용물이라고 하지만 이 경우에는 반대. 포장이 훨씬 중요하다. 사실은 내용물이 중요하지만. 병을 들고 지붕으로 기어 올라간다. 뒤이어 카라마츠도 부스럭대는 소리와 함께 지붕으로 올라온다. 카라마츠의 손에는 웬 봉지가 들려있다.

"형제가 아끼는 술을 대접한다니, 안주거리라도 내놓는 게 예의가 아닐까 해서."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그보다 술잔은 하나네?"

"아, 가져올까?"

"아니, 됐어. 어차피 카라마츠...형은 별로 안 마시잖아?"

"형...이라. 간만에 형이라고 불러주는 군."

"형이 형다워야 말이지. 그래도 둘만 있는 건 오랜만이니까 형 대접을 해줘야지."

"그런가."

술 뚜껑을 연다. 솔직하게 아깝다는 생각도 살짝 스쳤다. 그래도, 아끼는 걸 내어주지 않으면 진심은 통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마음을 굳게 먹는다. 잔을 들어 술을 따른다. 술잔은 드디어 처음으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덕인지 달빛을 받아 술잔은 빛나 보인다. 나는 그 잔을 카라마츠에게 내민다.

"자."

"아끼는 술 아닌가, 먼저 맛보는 게 좋지 않아?"

"형이 아끼는 술잔이잖아. 처음으로 술을 담아보는 건데, 형이 먼저 마셔봐야지. 그 잔을 놔둘 때, 달빛을 마시고 싶다며? 딱 거기, 달이 들어앉아 있잖아."

카라마츠는 술잔을 멍하니 보더니, 조금씩 들이킨다. 술의 쓴 맛이 전해져 오는 것인지 눈을 찡그리며 그 얼마되지 않는 술을 꽤 시간을 들여 마신다.

"이제는 내가 다 마셔도 되지? 형은 한 잔으로도 벅차 보이니까."

"그래. 대신에 안주라도 먹으며 같이 있어줄테니까."

안주거리로는 육포를 가져왔다. 카라마츠답다. 육포를 집어들기도 전에 카라마츠는 술을 따라 내게 건넨다. 같은 잔에 술을 나눠 마시는 형제라. 나는 잔을 살짝살짝 돌리다 카라마츠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그가 입을 댔던 곳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댄다. 감촉은 그다지 다를 바는 없지만, 묘한 감정은 맴돈다. 술은, 뭐 특별하지 않게 평범한 맛이네. 분위기는 평범하지 않지만. 술은 분위기로 먹는 거니까, 오늘은 조금 달면서도 쓴 맛이다. 카라마츠는 그런 나를 보면서 육포를 질겅이고 있다.

"카라마츠...형은 말야."

"응?"

"솔직한 모습이라, 부러웠어."

"훗...그게 무슨 소리..."

"나야 요즈음에나 솔직해졌지만, 형은 늘 자신의 진심을 그대로 부딪혀왔잖아?"

"......"

"그게 이상한 데로 가서 안쓰러울 때도 있지만, 솔직함만큼은 솔직히 부러웠다고."

카라마츠는 답이 없다.

"솔직하고, 우리 형제들 중에선 그나마 상냥한 편이고, 묘하게 신경써주는 구석도 있고 하니까."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나와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카라마츠. 술을 한 잔 더 따라 단숨에 마셔버린다.

"형 취급을 잘 안해주고는 있지만, 그래도 난 형이 좋아."

지금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걸까. 카라마츠의 벽을 무너뜨려 보겠다고 하는 말들이 뭔가 이상하기 짝이 없다.

"형이 말하지 않고도 보내는 메시지들, 읽고 있으니까. 나한테만이라도 형의 진심을 얘기해줬음 좋겠어."

그래, 카라마츠가 지금 손목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팔을 걷어붙이지 않은 것도, 아무도 건들지 않는 벽장 뒷편에 내던져진 커터칼도, 가끔 밤중에 사라지는 것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것도 모두모두 알고 있으니까. 내게는 기대줘. 원망하는 거래도 상관없어. 받아줄 테니까. 이 말들은 입 안에서 맴돌고 있다. 다만 입 밖으로 내보낼 때, 이 말들은 나를 홀가분하게도 할 수 있지만, 카라마츠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 될지도 모른다고 내 이성이 붙들고 있다. 직구는 변화구로 바뀌어버렸다. 여전히 직구지만, 직구 속에는 생략이 많다.

"진심이라, 그렇지. 난 형제들을 사랑하고 있다. 그건 이제까지도, 지금도 변하지 않은 진심이야."

카라마츠가 다물고 있던 입술을 떼서 얘기한 말은 이것. 이것도 카라마츠의 진심이겠지만, 내가 원했던 진심하고는 조금 다르다. 카라마츠가 의지해줬음 좋겠어. 자신의 약한 면을 드러내줬으면 좋겠어. 아니면, 차라리 형제들을 사랑하고 있는 그냥 단순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인 카라마츠인 채로 있어주길 바랐는데. 카라마츠의 잔은 비었다. 카라마츠의 시각에서는 말이지. 그러나 내 시각에서는, 카라마츠의 잔은 어둠으로 가득차고 있는 것이다. 그걸 비었다고 얘기한다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속에 든 내면의 어둠은 어디까지고 카라마츠를 붙들고 있다. 그리고 그 어둠은, 우리 형제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거겠지. 카라마츠의 몸을 당겨 끌어안았다. 지금 나는 카라마츠의 벽을 무너뜨릴 수 없다. 다만, 이렇게라도 나의 사랑이, 형제들의 사랑이 카라마츠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 달이 잔을 채운다. 나의 진심도 잔을 채우고 있기를.

 

 

 

창가에는 깨끗이 씻은 빈 잔이 놓여 있다. 그 옆에는 학알을 채운 하트 모양 유리병이, 그리고 그 옆에 새로이 하시모토 냐의 프린트가 된 일본주 병이 놓여 있다. 일본주 병은 옆의 잔이나 병처럼 반짝 빛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쩐지, 희미하게 햇빛을 반사시키는 그 병도 반짝 빛나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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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분량이 길어지고 있나요? 그런 거라면 좋을텐데. 드디어 제 느낌으로, 대화가 적고 생각이 많이 들어간 스타일의 쵸로마츠 편이 나왔습니다. 쵸로마츠 편은 꽤 일찍부터 구상하고 있었는데. 소재는 쥬시마츠 편이 먼저, 세부 내용 구성은 쵸로마츠 편이 먼저 나왔습니다. 커플링 느낌도 더 살아있고. 다만 필력이 딸려서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듯 써졌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리고 의외로 토도마츠 많이 나왔네요. 토도마츠, 다음 화 메인입니다(사전예고제 ㅋㅋㅋㅋ) 어쩌다보니 소설로는 쵸로카라가 고통받는 쵸로만 나온 걸 봐서 (연중카라라든가 봤는데) 이번 쵸로는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내가 썼으니까 행복하게 해줘야지! 그러면서 카라는 불행하게 꼴아박는 나쁜 작가입니다. 

  

  

 

Posted by 하리H( )Ri
2016. 3. 6. 02:27

[카라른/ 쥬시카라 편]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2- 

誰か
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캐붕,글솜씨없음주의
※5화 카라마츠 사변 기반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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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창문의 틀에는 술잔이 하나 놓여 있다. 카라마츠 형이 올려놓고선 종종 닦아놓는다. 쵸로마츠 형이 깨끗이 닦아주겠다며 나서는 일도 있지만, 그 외엔 누구도 손대지 않는다. 저렇게 닿기 쉬운 위치에 있는데도, 술잔은 늘 비어있는 채 거기 있다. 카라마츠 형에게 술잔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는다. 저 술잔은 카라마츠 형이 잠시 알바를 하고 받은 돈으로 엄마에게 찻잔 세트를 사왔을 때 덤으로 받아온 것이고, 그 술잔을 처음부터 부엌이 아니라 이 방에 놓을 생각이었던듯 형은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저곳에 놓았다. 술잔을 막 저기 놓았을 때는 당연히 다들 궁금해했다. 그때마다 날아온 답이 죄다 "달빛을 마시고 싶기 때문이지."같은 폼 잡는 말뿐이라 별 도움이 안됐지만. 다만 내가 물을 때만은 "술잔을 바라보고 싶어서."라고 알듯말듯한 답을 해줬다.

카라마츠 형은 그저 술잔을 닦거나 바라보는 것밖에 하지 않았다. 술잔을 닦는 것도 먼지가 앉아서일 뿐인듯 대충 털어내다 쵸로마츠 형의 잔소리 이후 바깥쪽만 닦아낼 뿐이다. 무언가 채워볼 생각은 없는걸까? 술잔은 어딘가 쓸쓸해보였다.

-날 채워줘. 빈 채로 두지 말아줘.

술잔이 마치 그렇게 외치는 듯 했다. 술잔을 빤히 들여다봤다. 햇빛을 받아 빛나는 투명한 술잔은 아직 술을 붓기에는 아까워보였다.

아, 생각났다. 여기에 담고 싶은 거.
나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카라마츠 형을 닮은 투명한 술잔은 그 자리에서 나의 귀환을 기다릴 것이다.

동네 문구점에서 반짝이는 학알접기종이와 학종이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집에는 이치마츠 형만 남아있다. 이치마츠 형은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고양이가 저기 있었나. 형의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야지. 길쭉한 학알접기종이를 꺼낸다.


음...학알은 어떻게 접는거지.


종이를 돌돌돌 말아본다. 모르겠다. 삼각형 느낌이었는데 그런건 어떻게 만드는거지.
자."
어느새 이치마츠 형이 내 곁에 왔다. 형은 쪽지 하나를 건네준다. 어라, 여기에 학알 접는 방법이 그려져 있네.
"어디서 찾은겨, 이치마츠 형."
형은 대답 대신 학알종이가 들어있던 봉투 쪽을 가리킨다. 하하. 널부러놔서 못 봤던 거구나.
"이런 거 접어다 어디다 쓰게?"
이치마츠 형이 금색 종이를 하나 집어들며 묻는다.
"저 술잔."
"하?"
"술잔에다가 넣어주는 거야."
"……썩을마츠가 싫어하지 않을까?"
"술잔이 자기를 채워주길 바라는걸!"
이치마츠 형이 날 빤히 쳐다본다. 왜일까.
"……맘대로 해."
그러고선 쪽지를 보고 학알종이를 척척 접어낸다. 어딘가 각이 잡힌 모습은 아니지만, 학알이 완성됐다. 나도 쪽지를 보고 접지만 모양이 도통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새 빨간색과 파란색 학알을 만든 이치마츠 형은 아까랑은 조금 다른 눈길로 빤히 내 손을 쳐다본다.
"접을 때...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아?"
"그래야 모양이 잘 잡히거든."
"그런가!"
종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접는다. 뭔가 세모꼴로 만들어지고는 있는 거같아.
"쥬시마츠, 난 외출한다."
"으응!"
멸치봉지를 챙겨들고 이치마츠 형이 나간다. 고양이에게 멸치를 챙겨주러 가는 거겠지.

그 뒤로 한참을 끙끙댔다. 쪽지를 보고도 어째선지 학알이 잘 접어지지 않는다. 잔뜩 구겨진 종이들을 한켠에 모아놓고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 그때 카라마츠 형이 방으로 들어왔다.
"반짝반짝한게 아름답군, 브라더."
종이 한 장을 집어들고선 카라마츠 형이 폼 잡고 말한다.
"뭘 만드는가?"
"학알이야."
"그렇군. 학알인가."
이치마츠 형이 만들고 간 학알을 보며 카라마츠 형은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건 보통 병에 담아서 선물하는 것일터. 어디 선물할 데라도 있는건가, 쥬시마츠?"
"저 잔에다 담아두려고."
"잔?"
난 창가에 있는 술잔을 가리켰다. 해가 높이 떠 있어서 그런가 술잔은 더욱 반짝거리고 있다. 형은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보이지 않는 선을 따라 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잔을 바라보는 형의 얼굴은 어쩐지 탐탁찮아 보였다.
"...난 비어있는 쪽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데."
잔은 무언가 채워주길 원하는데, 잔의 주인인 형은 그게 싫다고 한다. 그 말을 꺼내는 형이 저 술잔과 닮아 있어서, 정말로 싫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도 저 잔은 예쁘지만, 이걸 담으면 분명 더 예쁠거야!"

"......"

"하지만 형이 싫다면 그만..."

형은 잠시 고민하는 듯 멍하니 잔을 쳐다보았다. 그러고선 헛기침을 한번 한다.

"쥬시마츠가 원한다면 잠깐은 괜찮아."

"대신 형이 브라더를 위해서 멋있는 병을 구해줄테니, 그땐 거기에 옮겨줬으면 한다."

"응. 알았어!"

그래도 형은 나를 신경써준다. 딱 잘라 거절하지도 않고 내게도 좋을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형의 마음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학알 만드는 거 조금 어려운 일인가, 성공한 거는 몇 개 없어 보이는데."

"아, 이거 만든건 이치마츠 형."

"그런가. 그러면 이 몸이 조금 도와주도록 하지."

그러고선 형은 내 옆에 엎드린다. 아까 집어든 파란색 종이를 쪽지를 보며 의외로 척척 접어낸다.

"어떤가! 잘 만들지 않았는가, 브라더!"

이치마츠 형이 어딘가 딱딱 접히지 않은 학알을 만들었다면, 카라마츠 형이 만든 건 각이 잡혀 세모꼴이 잘 살아있는 학알이다. 여전히 학알이 잘 접히지 않아 구겨진 종이를 보니 조금 풀이 죽네.

"쥬시마츠, 잠깐 손 좀 빌리자."

형이 내 등 뒤에 올라타듯이 하고 내 손을 감싸듯 잡는다. 몸이 살짝 눌려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형이 내 손을 잡고 종이를 접는 동안 종이보다는 형에게 더 신경이 쓰였다. 

"어떤가, 이제는 좀 감이 오는가?"

아뇨, 전혀 감이 안 오는데요. 종이 접는 걸 전혀 못 봤으니까. 신경도 안 쓰고 있었으니까.

"다시 한번 부탁드림다!"

"그럼 다시 한번 접어보도록 하지."

내 손가락들을 꾹꾹 눌러가며 형은 학알을 접어낸다. 종이의 접힌 선은 깔끔하고, 힘을 꾹 주지도 덜 주지도 않아 적당히 모양이 잡힌 학알이 하나 둘 만들어진다.

"이젠 내 힘으로도 만들 수 있을 거 같아!"

"오오, 잘 됐군."

형이 아쉽게도 내 몸 위에서 내려온다. 그래도 다시금 옆에 엎드려서 다른 종이를 집어든다.

"쥬시마츠가 학알을 접는 동안 난 학을 만들고 있을게."

"응응."

 

그 이후로 나는 종이접기에 몰두했다. 형은 이따금 나에게 잘했다, 좋아라며 칭찬을 해줬고 난 그때마다 웃음으로 화답했다. 종이가 사각사각 접히는 소리와 카라마츠형, 나만이 있는 방에서 이어진 종이접기는 쵸로마츠 형이 방에 들어오는 걸로 끝났다. 

"어휴, 방을 이렇게 어질러놓으면 어떡해."

"금방 치울테니까 기다려줘, 쵸로마츠 형."

그동안 접은 학알을 두 손에 모았다. 벌써 해가 기울고 있으니 제법 오랜 시간 만들었구나. 손에 모은 학알들을 보니 아무래도 잔에 넣으면 흘러넘칠 거같다. 뭐, 흘러넘치면 더 좋은 거 아닐까? 손에서 천천히 학알을 잔에 붓는다. 학알이 수북히 차는 모습에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다. 빨간색 학알이 하나 굴러떨어지자 손을 올려서 잔에 학알을 붓는 걸 멈췄다. 쵸로마츠 형이 빈 과자상자를 건네주며 나머지 학알을 넣게 했고 난 학알들과 남은 종이를 집어넣어 책장에 꽂아두었다. 카라마츠 형이 다시 상자를 꺼내 자기가 접었던 학을 집어넣고선 학알이 가득찬 잔을 바라보았다.

 

형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뻐하고 있을까, 언짢아하고 있을까. 형에게서 표정을 읽어낼 수가 없다. 표정이 없다는 말이 이런 의미일까. 아까 종이접기에 몰두하다보니 형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를 볼 수 없었다. 폼 잡으면서 지은 표정 말고는, 형은 오늘 내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거 같다. 역시 형은, 멋대로 저 잔에 학알을 채워넣고 싶어한 내게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쥬시마츠. 학알을 아직은 더 접을 생각인가?"

형이 나를 보며 얘기한다.

"병을 구해다주기로 했으니까, 어느 정도 크기면 좋을지 생각해봐야지."

저 말에는 화가 담겨있지 않다. 형에게 느낄 수 있는 상냥함이 담겨 있다.

"이제까지 접은게 반에 반도 안되니까 저 잔의 네 배 정도면 되겠지?"

"응!"

"그러면 모양은? 쥬시마츠는 어떤 모양이 좋은가?"

난 별 모양이 좋아.

"하트 모양으로!"

형에게 선물할 거니까, 그걸로 형의 마음을 채워주고 싶어.

"그렇다면 하트 모양으로. 알았다."

그러고선 형은 살짝 미소를 지어보인다. 저 미소는 가짜일까, 아니면 진짜일까.

형은 창가로 다가가 잔을 훑더니, 다시금 무표정으로 돌아가버린다. 그리고선 방에서 나가버렸다. 쵸로마츠 형도 슬쩍 잔을 쳐다보더니 카라마츠 형을 뒤따르듯 방에서 나갔다. 방에는 이제 나 혼자만 남았다.

 

형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

빈 잔이 가득 차면, 웃을 수 있을까.

아직 학알이, 내 마음이 부족한 거야.

학알을 접고 접어서, 가득 채워줄게. 형이 진짜 미소를 보여줄 수 있도록.

카라마츠 형이 접은 학을 꺼낸다. 형이 접은 학은 여섯 마리. 우리 형제들의 색과 같은 빨강, 파랑, 초록, 보라, 노랑, 분홍 학을 한 마리씩 접었다. 잔 옆에 뭉쳐 있는 형태로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다시금 학알을 접기 시작한다. 형의 마음을 대신할 병을 찾아올 때까지, 이 학알들을 접어서 가득 채워주고 싶으니까. 어느새 노을이 번지기 시작한다. 카라마츠 형의 빈 잔도, 그 잔에 담긴 학알들도 노을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내가 접고 있는 학알들도 빛난다. 반짝임 속에서, 나는 그저 학알을 접어나간다.

 

야구하는 것도 잊고 학알을 틈틈이 접어나간지 사흘만에 학알 종이를 다 썼다. 그 종이들이 오롯이 학알이 된 건 아니었지만, 과자 상자를 두 개나 꽉꽉 채울 정도로 제법 많은 양이 되었다. 카라마츠 형은 학알을 잔에 채운 그날 바로 어디선가 하트 모양 병을 구해와서 마당 한 켠에 씻어서 말려놓았다. 햇빛이 좋아 금방 말랐는데도 형은 그 병을 방으로 가져오지 않고 마당에 그대로 두었다. 

"카라마츠 형, 다 접었어."

형이 내가 내미는 과자상자를 받아든다.

"그러면 병, 가져올까?"

"응, 가져와줘."

형은 내려가서 하트 모양 병을 가지고 왔다. 병의 크기를 보아하니, 학알들을 모두 넣을 수 있을 거 같다. 눈대중이 좋구나, 카라마츠 형은.

내가 과자상자 하나를, 형이 다른 과자상자 하나를 들고 병에 붓는다. 이윽고 잔에 있던 학알만이 남았다. 

"어떻게 하고 싶어, 카라마츠 형?"

형은 잔과 병을 번갈아 쳐다본다. 병에 옮겨줬으면 좋겠다던 형이 고민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어쩐지 기분이 좋다. 

"역시 병에 옮겨 담아야겠지..."

형은 조금 아쉬운 듯 잔을 가져오더니 병에 옮겨담는다. 조금씩 쥐어서 옮겨 담으니 어디 바닥에 흘리거나 하지 않고 금세 병을 채운다."

"응! 그리고 카라마츠 형,"

"응?"

"자 이거!"

나는 형에게 병을 내밀었다.

"선물이야."

"다른 사람 주는 거 아니였나?"

"아녀아녀, 처음부터 카라마츠 형 주려고 접은 거니까."

형은 병을 받아든다. 지금 형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아무래도 진짜인 듯 싶다. 형의 온기가 들어있으니까. 

"고맙다, 쥬시마츠."

형은 병을 빈 잔의 옆에 놓았다. 그리고선 내가 늘어놓았던 학들을 병 위에 올려놓는다.

이제 형의 마음은 텅 빈게 아니라고, 내 마음이 전해졌을 것이다.

 

 

 

 

 

 

 -고마워, 덕분에 오늘 밤은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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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로 소설을 쓰면 문단 띄는 게 항상 곤란합니다. 읽기 편하라고 문단을 띄는 걸 당연하게 하고 있는데, 이건 틀린 문법이란 말이지. 거기에 얽히면 곤란하기도 하고, 띄는 거 자체가 어떤 장치로 작용할 수 있는데 그걸 날리는 거같단 말이죠. 하여간 어렵습니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으로 정작 내용물은 안 타는 쓰레기...

 

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