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26. 01:02

[카라른/이치카라]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6-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캐붕,글솜씨없음주의

※5화 카라마츠 사변+원작 기반

※멋대로 쓰는 학생 시절 이야기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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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츠가 있는 병실 밖 복도에는 나와 오소마츠 형, 쥬시마츠가 있다. 배치로 보면 오소마츠 형과 쥬시마츠가 병실 쪽 벽에, 나는 병실 반대 쪽 벽에 붙어선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무거운 표정을 한 오소마츠 형은 쥬시마츠의 마음 속 짐을 덜어주려고 애쓰고 있다. 언제나 오소마츠 형은, 우리가 고민하고 있을 때 그 고민들을 들어주고 함께 끌어안아주곤 했다. 저 무거운 표정의 의미는, 카라마츠의 고민을 같이 안아주지 못했다는 것일까. 

닮았어.

나와 닮았어.

오소마츠 형의 표정에 지나는 것은 죄책감.

카라마츠를 쳐다볼 수 없게 된 나를 옥죄는 것도 죄책감. 

마스크를 쓴 채 숨죽이고 주변의 풍경을 마치 CCTV라도 된 양 눈에 담는다. 심적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이유로 1인실에 카라마츠가 들어가선지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종종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던 사람들도 내 눈초리를 보고 피해가는 듯 했다. 이걸로...된 거야.

오소마츠 형은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금 병실로 들어갔다. 쥬시마츠가 내가 있는 쪽 벽으로 옮겨와서 조용히 기댄다.

"이치마츠 형."

쥬시마츠는 평소와는 다른 낮은 텐션으로 나를 부른다. 당연하겠지. 지금 분위기를 생각하면. 

"형은 알고 있었어? 카라마츠 형의 상태."

듣고 싶지 않았던 질문이다. 쥬시마츠의 의도가 어쨌든간에 그 말들이 나를 짓누른다. 평소와는 다른 쥬시마츠의 처진 목소리도 거기에 한 몫 한다.

"알고 있었을 리, 없잖아."

아니지, 아니야. 넌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 이치마츠.

그딴 장면을 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텐데.

카라마츠가 망가지고 있는 것 따위 몰랐으면 좋았을텐데.




카라마츠는 예전부터 텅 빈 녀석이었다. 텅 빈게 어떤 의미냐고 묻는다면 생각이 없고 멍청한데다, 폼 잡는 와중에 실속있는 건 하나도 없다고 해야할까. 카라(空)마츠라는 이름이 딱 어울리는 녀석이었다. 녀석은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상냥하고 남 도와주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연극부에도 들어가서, 우리 중에는 부활동에 가장 매달리는 쪽이 되었다. 형제들이 그렇게 된 이유를 물으니, 누군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지 않냐며 웃어보이던 녀석이 인상깊었다. 그런건 분명 자기만족이겠지만, 사춘기를 겪어가며 조금씩 흔들리는 형제들 가운데서 카라마츠가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변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그만큼 악동으로 사는 오소마츠 형, 격변기의 쵸로마츠와 토도마츠, 그저 회색 청춘을 보내던 나와 쥬시마츠 사이에서 카라마츠는 홀로 장밋빛 청춘을 보내는 듯 했다. 고등학교에 와서는 나와 쥬시마츠에게 변화가 찾아왔는데, 나의 경우는 변화보단 악화란 말이 어울렸다. 회색 청춘은 검은색 청춘으로, 청춘이라고 부를 것 조차 없는 어둠으로 빠져들어갔다. 같은 반의 녀석들이나, 알지도 못하는 선배들이나, 글러먹은 선생들에게 치이면서 학교가, 사람이 싫어졌다. 그나마 형제들이 붙잡아주고 끌어줘서 어떻게든 학교에 다니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지만 도서관에 박혀있거나, 학교 주변을 배회하는 고양이들을 보러 교사 뒷편에 있거나 하는 일이 늘어났다. 1학년 땐 같은 반이었던 쵸로마츠가 몇 번이고 나를 찾아서 데려왔다. 사람 없는 곳을 찾아서는 잔소리를 퍼붓는 데 질려서 수업시간에 가버리는 것만은 그만하게 되었지만, 시간이 비거나 사람과 부딫힐 일이 많은 체육 수업 같은 때는 빠져나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게 그나마의 낙이었다.

형제들은 방과 후 시간도 제각각 보냈기에 매일같이 집에 같이 돌아가지는 않았다. 주로 쥬시마츠와 같이 귀가했지만, 가끔은 방과후에 혼자 학교에 남아 교내를 돌아다니곤 했다. 사람들은 동아리방에 있거나, 운동장에 있거나 해서 의외로 조용한 공간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재밌었다. 그런 공간들 대부분엔 바닥에 담뱃재가 떨어져 있는게 눈에 띄긴 하지만. 2학기가 시작되고 어느 가을, 그런 공간들 중 마음에 쏙 드는 공간을 발견했다. 버려진 옛 소각로. 고양이들이 종종 보금자리로 쓰곤 하던 모양인데 내 몸도 쪼그리면 쏙 들어가는데다 미묘한 경사 덕분에 남들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담장 주변이라 담배를 피기는 좀 그럴지 몰라도 그저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이라면 거기서 학교를 관찰하며 시간을 죽일 수 있었다. 그곳에서 눈에 잘 띄는 교실은 연극부가 사용하는 교실. 

아, 저 교실에는 카라마츠가 있겠지. 하필이면 질리는 얼굴이 있는 교실이 잘 보이냐.

그래도 내 입장에선 몸짓으로 무언가 하는 게 흥미가 있어서 방과 후 혼자가 될 때마다 그 교실을 관찰했다. 중학생 시절 토도마츠의 도움으로 첫 주연을 따낸 카라마츠의 연극을 본 이후, 카라마츠의 연극을 굳이 보러가지는 않았다. 집에서도 엄청 대본 연습을 해대서 질릴 정도였고, 애초에 연극을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카라마츠가 연기를 특출나게 잘해서 빠져들게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런데 연극부에 몸 담은지 4년이 넘어가는 사이, 카라마츠의 연기가 많이 늘은 거 같았다. 카라마츠의 과장된 몸짓 하나하나는 궁금증을 자아냈고, 상대역이 압도당하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도대체 저건 무슨 상황일까, 카라마츠는 무슨 대사를 하고 있는 걸까. 그러고보니 고등학교 와서는 집에서 대본 연습을 거의 하지 않는데. 대신 늦게 들어오니까. 카라마츠의 몸짓을 보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뛰어가서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다만 고등학생이 되고 방황하는 사이, 손을 내밀어주는 카라마츠를 밀쳐내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에 가까이 갈 수는 없었다. 카라마츠는 분명 그런 거 신경쓰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손을 내밀어주는 카라마츠의 손을 이제와서 잡기에는 불편했다. 멀리서 쳐다보는 풍경일 뿐이지만, 카라마츠는 빛나고 있었다. 검게 물들어가는 내가 그 반짝임을 좇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요즘은 대본 연습 안 하는거?"

오소마츠 형이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연극부에서 매일같이 연습하고 오니까. 거기다 집에서 연습하면 다들 시끄럽다고 하지 않는가."

"그럼 그 안쓰런 말투도 관둬주면 안될까, 카라마츠 형?"

"논논. 이건 역할에 몰입하기 위한 내 나름의 노력이니까."
"있지, 카라마츠 형. 이번에는 무슨 연극을 하는데?"

"햄릿이라고 셰익스피어의 연극이다."

"설마 주인공은 아니겠지?"

"주인공은 아니지만 레어티즈라고 중요한 인물이라고?"

햄릿. 어떤 내용이었더라. 복수극이었던건 기억나는데, 레어티즈가 어떤 인물인지는 가물가물하다. 

"이번 연극은 언제 하는데?"

궁금증에 내가 입을 열었다.

"오! 이치마츠, 연극을 보러 와 줄 생각인가?"

카라마츠의 눈이 반짝였다. 아마 자기가 나한테 미움이라도 받고 있을거라 생각했겠지. 그래서 저렇게 기쁜 표정을 짓는 걸까 혼자 생각했다.

"시간 나면."

애매한 답을 내뱉는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난 카라마츠의 몸짓이 완성되는 그 연극을 보러 갈 수밖에 없을 거라고.

그 해 겨울, 바쁘다는 토도마츠를 제외하고 모두들 카라마츠의 연극을 보러 갔다. 내가 몰래 관찰하던 카라마츠의 몸짓들은 무대 위에서 대사와, 분위기와, 상대역과 합쳐지며 더 강한 의미를 자아냈다. 주인공은 햄릿일 텐데, 카라마츠가 연기하는 레어티즈의 분노와 복수심이 안에 밀려들어오면서 햄릿을 압도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카라마츠가 이렇게 연기를 잘 했던가. 무대 위에 서 있는 인물은 레어티즈 그 자체였고, 카라마츠가 검에 찔려 죽어가는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파지기까지 했다. 이게 과몰입인가. 

그렇게 카라마츠의 연기에 나는 빠져들었다. 2학년 때는 카라마츠와 같은 반이 되어서 이런저런 핑계로 카라마츠의 연습을 구경하러 가기도 했고, 카라마츠가 서는 연극 무대는 빠짐없이 보러 갔다. 방과후에는 나만의 시간을 가졌지만, 그땐 카라마츠도 연극부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그 나만의 시간마저도 이전처럼 카라마츠의 연기를 관찰하곤 했다. 대신 그 외에 1학년 때 정립시켜놓은 나의 일상들은 삐걱거렸다. 카라마츠는 멍청하니까, 일과시간에 밖으로 나돌면 나를 찾으러 헤매고 다닐까봐 시야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했다. 쉬는 시간에는 다른 녀석들과 잡담을 떨거나 하는 시간들을 쪼개어 말을 걸어와서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을 방해받기도 했다. 썩을마츠라고 부르며 쫓아내기도 했지만 녀석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연극 연습이 힘들었던 다음 날이면 쉬는 시간에 잠들어버려서 한숨 돌리기도 했다. 


2학년 말에는 꽤나 큰 사건이 있었다. 오소마츠 형이 진지하게 우리들을 불러모아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렇다곤 해도, 오소마츠 형은 이미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라 둘의 대화 후 나온 결론을 들어보는 거 뿐이지만. 형제들의 대답은 대부분 똑같았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일 없음. 진학도 취업도 노 플랜. 앞일따위 생각하지 못하는 우리들다워서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카라마츠는 혼자 우두커니 있었다.

"아직 고민하고 있는거야, 카라마츠?"

오소마츠 형과 이미 얘기했을 텐데, 카라마츠만은 결론을 내지 못했었나보다. 

"아...아니 뭐, 나도 진학이라든가 일을 배운다던가 그런 건 하고 싶지 않아."

그 얘기를 하는 카라마츠는 조금 주눅들어 보였다.

"강요하는 거 아니니까, 카라마츠.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굳이 형제들 장단에 맞추지 않아도 되니까."

"자신을 높이고 싶고, 사람들에게 꿈을 배달하고,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게 지금은 연극밖에 안 떠오르는데. 딱히 대학까지 간다거나 연극으로 먹고 살 수 있을 거 같진 않지만,"

뭐야, 의외로 현실적이잖아.

"그래도 역시, 하고 있으면 즐겁거든."

카라마츠는 힘들게 본심을 꺼냈다. 그래도 그와 동시에 형제들과 같이 진학은 하지 않는 것으로 했다. 조금 아쉬움이 남아 있어 보였지만, 아마 자신도 확신을 가지지 못해서겠지. 이렇게 형제들의 의견을 모아 오소마츠 형은 3학년이 되기 전, 잘 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우리들이니까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지 않느냐며 우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분명 피해갈 수 없는 진로 이야기가 공론화되어서 닦달당하기 전에 선수를 칠 생각을 한 오소마츠 형도 대단했고, 그렇게 당당하게 나와버리니 오히려 부모님이 이해해줘서 적어도 한동안은 집안이 소란스러울 일이 줄었다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새해가 되고, 카라마츠는 졸업 전 마지막 연극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진학을 포기했으니 상관없지만 3학년은 수험생이 많아서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는 게 암묵적인 룰이라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은 유급되지 않는다면 1년이나 남았지만, 3학년이 되면 카라마츠도 자동적으로 연극부에서 나오는 걸로 되어버린 것이다. 연극에 미련이 남았던 카라마츠는 어쩌면 자기가 서게 될 마지막 무대를 위해 온 힘과 정신을 쏟아냈다. 

카라마츠는 정말로 연극에 빠졌구나. 

마지막 무대를 준비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연극을 준비하던 3월, 카라마츠는 캔커피를 건네며 드물게도 내게 상담을 해왔다. 

"같은 반이니까 너에게만 얘기할게, 이치마츠."

2학년 때 카라마츠와 의외로 많은 시간을 보내서였을까. 그의 연습을 많이 구경하러 가서였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하고 싶은 게 있어?"

"없다고 했잖아. 기억 못하냐, 썩을마츠."

한번 끝난 이야기를 캔커피나 건네주며 끄집어내는 녀석의 의도는 뭘까. 

"그런가..."

"그러는 너는, 역시 연극이 계속 하고 싶은거야?"

카라마츠의 답을 기다리며 캔커피를 따서 마셨다. 3월이지만 아직 추워서 따뜻한 캔커피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게 기분이 좋았다.

"...이번 무대가 끝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어."

카라마츠는 슬쩍 웃어보이며 답했다. 안심시키고 싶다는 의도였을까. 그렇게 웃어보여도 눈은 하나도 웃고있지 않은걸. 

그때 수업 종소리가 울리고 이 대화는 흐지부지 끝났다. 

카라마츠는 마지막 무대이니만큼 간만에 연기 연습을 집에서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할 정도로 카라마츠는 열심이였고, 내가 몰래 지켜보던 시절보다 한층 빛나 보였다. 

아, 이쯤 되면 별처럼 빛나고 있다고 해야되나. 

카라마츠의 연기는 형제들 누구나가 감탄할 정도로 발전해있었다.

"우와...진짜 다른 사람같아, 카라마츠 형."

토도마츠는 그간 카라마츠의 연극을 보지 않았으니 그 놀라움이 더 큰 모양이었다.

"대본 완벽소화? 대단한데."

전에 집에서 연습할 땐 시끄럽다고 핀잔주던 쵸로마츠도 감탄했다.

카라마츠가 읊는 대사와 표정, 그 몸짓 하나하나를 눈으로 좇으며 반짝임을 만끽했다. 지금 집에서 잠옷 입고서 하는 연기도 저정도인데, 무대에 가면 도대체 어떤 광경을 보게 될런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이윽고 카라마츠의 마지막 무대의 막이 올랐다. 이번만큼은 형제들이 모두 연극을 보러 갔다. 이번에는 주인공으로 무대에 선 카라마츠에게 공연장은 휘둘렸다. 카라마츠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무언가를 갈구하는 그의 손짓은 아쉬움을 내뱉던 그의 한숨도 담겨있는 듯 했고,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안에 담아두고 있던 본심을 전하는 듯 했으며, 그의 눈빛은 어딘가 초월해버린 것같아 보였다. 이건 나만의 생각이라, 카라마츠의 연기를 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느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 형제들은 좀처럼 빛나는 일이 없다. 

마지막 무대에 선 카라마츠가 마치 초신성처럼 빛났던 그날 이후.

우리 형제 중 그 누구도 빛을 내는 일은 없었다.

다만, 녀석의 반짝임에 반해버렸는지 난 그 반짝임을 잊을 수가 없다.

초신성은 별이 죽어가면서 짜내는 최후의 빛을 내는 거라고 하던가.

그래서 마지막 무대에서 녀석은 그렇게 아름답게 빛났던 걸까.

카라마츠가 떨어지는 모습을 본 그 때를 떠올린다.

녀석은 어느새 어둠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어버린 걸까.

마지막 무대를 마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니트로서 폼이나 잡으며 다니는 안쓰러운 녀석이 된 지금, 

도대체 어느 시점에서 녀석은 어둠을 집어삼키게 된걸까.

혹시,

나 때문인걸까.

그 이후, 나는 카라마츠와 그다지 어울려다니지도 않았고, 녀석의 안쓰러운 면모가 더해갈수록 심한 말을 하는 일이 잦아졌었지.

그 전에도 나는 녀석에게 심하게 대한 걸 후회해왔다. 거기에 카라마츠의 자살 시도를 목격한 이후, 카라마츠를 볼 때마다 죄책감이 목을 조여와 카라마츠를 피하기 시작했다. 지금 병실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것도 죄책감이 나를 덮칠까봐 두려워서다. 

머리만 텅 비었던 녀석은 마음 속도 텅 비어버렸다. 

그걸 메워주지 못한 초봄의 그날부터 나의 죄가 쌓이기 시작한 거다. 

카라마츠가 눈을 떠 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카라마츠의 마음을 메우지 않으면 아마 카라마츠는 스스로 텅 빈 자신을 버리려 들 것이다.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이젠 복도에서마저 내 죄책감은 나를 옥죈다.

같은 공간에 있다간 집어삼켜져버릴 거 같아. 

병원 바깥을 향한다.


나는 카라마츠에게서 도망치는 거 밖에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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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여기가 1/2 지점이네요. 아, 4월에나 끝나버리는 거 아닌가 이거
중요한 건 정말 자기만족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소마츠상 볼때마다 제 안에서의 캐해석이 막 뒤바뀌고 뒤집어지고 하니까 그게 여기에도 고대로 반영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죄송해요. 그래도 전 편 읽으면서 혼란주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구상하다보니 청춘물을 쓰고 싶어졌는데 그냥 이 시리즈가 아니라 단편으로 낼걸...하다가도 어차피 아무도 안보는데 여기 넣어버리자, 차피 카라마츠 과거썰은 풀어야겠지 해서 좋아하는 이치카라에 넣었습니다. 앞에서부터 봐주셨다면, 카라마츠가 왜 자기를 텅 비었다고 생각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고팠는데 잘 전해졌을까요.  
그리고 이거, 아무래도 커플링이 아니라 조합으로 써야 할 거 같은데, 일단은 최대한 브로맨스 테이스트를 느낄 수 있게 쓰고 있으니까 뭐, 취향껏 즐겨주세요. 죄송합니다. 변변찮네요 ㅠㅠㅠ 


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