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_연성/[기타컾] 글&긂&낙낙낙'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20.11.29 [토도오소] 길동무
  2. 2016.05.29 [쵸로오소] 넌 나를 꿈꾸게 해
  3. 2016.04.10 [이치오소] 그림엽서의 봄
  4. 2016.03.13 [카라오소] 거짓말의 이면
  5. 2016.02.29 [토도오소]밤벚꽃
  6. 2016.02.21 [카라오소] 손가락
2020. 11. 29. 23:09

베니마츠 합작 참가작(https://redpinkmatsu.tistory.com/4)

 

매일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 때 있지 않아?

그래서 높은 데 올라가서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했고,

괜히 식칼을 들어 팔목에 생채기를 내보기도 하고,

수면제를 처방받아 잔뜩 모아서 먹어보려다 게워본 적도 있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에 뛰어드려는 충동을 느껴보기도 하고,

물속에 들어가 숨을 참아보기도 하고...

생각처럼 쉽진 않더라.

죽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것과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것.

용기 있으면서도 용기가 없는 자신이 싫었다.

그렇게 헤매던 어느 날, 나는 살기로 결심했다.

이 어중간한 삶의 경계에서 안쪽으로 다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놀리듯, 나의 삶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겨우 찾아낸 희망에서 끌어내려져, 죽음의 세계로.

더 이상은 돌아갈 수 없는, 삶에 대한 갈망만이 가득 채워진 채로.

 

"이봐."

"왜 그러지?"

"그만둬주지 않을래?"

"그럴 수 없다고 얘기했을 텐데. 수백 번은 족히 말이야."

"그렇다면 수천 번 이야기 해야지. 들어줄 때까지. 그만둬주지 않을래?"

녀석은 입을 다문다.

저승길을 안내하는, 내 막내동생 토도마츠의 얼굴을 한 이 녀석은 바케타누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둔갑술이 특기인 너구리요괴였던가. 녀석은 너구리 모습은커녕 꼬리조차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머리 위에 얹어지다 못해 머리핀으로 고정시킨 나뭇잎만이 어렴풋이 이 녀석의 정체와 눈앞의 토도마츠가 가짜라는 것을 상기시킬 뿐이었다. 녀석은 얼굴만이 아니라 성격도 토도마츠와 비슷한 건지, 비슷하게 꾸며내는 건지. 나를 홀리려 드는 건지, 나를 괴롭게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얼마나 더 가야 끝나?"

"얼마나? 글쎄. 오소마츠 형이 더 잘 알지 않을까?"

"토도마츠 흉내는 그만둬. 진짜 화낼 거니까."

"화를 내면? 여기서 화를 내서 뭘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어딘지 모를 저 끝을 향해 걸을 수밖에 없다는 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얘기했는걸."

"관두자..."

이 말도 안 통하는 길동무와 함께 저승의 어딘가에 다다라야 한다니. 다다르기는 하는 걸까. 그보다 난 몰라도 이 녀석도 벌을 받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나는 포기한 채 길을 걸었고, 녀석은 토도마츠의 모습을 한 채로 내 옆을 따라왔다. 길은 가지만 남아 앙상한 나무들이 늘어선 곧은 길. 그 외에는 모래만이 흩날리는 살풍경. 텅 빈 세계에 둘만이 걷고 있을 뿐이다.

 

부지런히 걸어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는 어느 날. 나무에는 푸른 잎이 돋다 못해 무성해져 모래먼지뿐인 하늘조차 가려버린 숲속이 되었다. 숲이 되자, 길동무는 갑자기 말이 많아진다.

"요괴는 말이지, 이런 규칙이 있어. 생명의 세계에서 뛰놀고 싶다면 그만큼 일하라고. 저승에서 영혼을 인도하는 일을 하면 영혼이 가진 죄에 따라 요괴를 불러들여 짝을 지어줘. 저번에는 알코올 중독? 그런 거 때문에 자기 식구를 죽인 사내를 주탄동자가 술을 잔뜩 먹이고 쥐어짜가면서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주더라니까! 방망이에 거의 으깨지다시피 하던 영혼의 꼴사나운 모습, 정말 볼만했지. , 그런 주탄동자도 내 앞에 오면 부끄러워서 술 권유나 하고 말거든. 헤헷."

뭔가 얘기할 맘이 생긴 건가?

"왜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해?"

"이 숲이 보이면 곧 도착한다는 의미거든. , 그냥 숲을 좋아하는 거기도 하고. 그동안은 모래 속이라서 기분이 나빴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그러면 지금은 들어주나, 토도마츠의 얼굴 그만둬 달라는 거."

"그건 어려워."

"어째서."

"이 모습은 말이야, 네가 원해서 하는 모습이거든."

"...내가?"

". 네가 죽기 전에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했던 사람의 모습."

"......"

죽기 전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했던 사람이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는 짓이나 말투까지 똑같이 할 필요는 없지 않아?"

" '토도마츠'가 나와 비슷한 녀석인 거 아닐까? 있을 법 하잖아."

"기분 나쁜걸."

"나도 그래, 오소마츠 형. 오소마츠 형도 아직 말 안 했잖아. 왜 여기 오게 됐는지, 그러니까 왜 죽었는지."

"...차 사고였어. 운 나쁜. 나는 몇 달 전에 내 쌍둥이 동생들을 차 사고로 잃었거든. 나만 기적적으로 살았는데, 결국에는 나도 차 사고로 죽는 운명이었던 거야. 그 때 말야, 토도마츠가 날 구하고 죽었어. 안전벨트는 언제 푼 건지, 내 안전벨트를 잽싸게 풀고 문을 열어 날 힘껏 밀었어. 급경사로 브레이크가 먹히지 않아 가드레일을 뚫고 추락하는 차 속에 토도마츠가 날 보고 있었어. 난 차도 위로 날려져갔고, 차는 그대로 폭발해버렸지."

"헤에. 그리고 차 사고로 또 죽었다고?"

"파란불이었을 텐데, 재수가 없었어. 맹렬히 횡단보도를 무시하고 달리는 차에 치여서 즉사. 대단하지."

"기적 같은 건 없는 거 아냐? 그 정도면. 의미 없잖아."

"아냐. 그때 나는 살고 싶었어. 살고 싶어서 병원을 찾아가는 길이었어. 길은 멀었지만, 발걸음이 안 떼졌지만, 나의 희망이 이야기했어. 살아달라고."

"희망?"

". 희망."

"그거 대단하네. 그보다 오소마츠 형.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 없어?"

"무슨 거짓말. 그보다 넌 토도마츠도 아니..."

"동반자살이잖아."

말문이 막혔다.

"브레이크 사고였다니까."

"일부러 고장 냈잖아. 드물게도 오소마츠 형이 운전하겠다고 한 그 순간부터 위화감이 있었어."

"무슨 소릴..."

"알고 있었어. 형이 죽고 싶어 한다는 것도. 우리 모두는 하나니까 다 같이 죽어야 한다 생각한 것도."

"......"

"형은 우리를 태우고 끝내주는 경치를 보러 가자고 했어."

"우리라니. ..."

"그날이 자살 실행일이구나. 깨달아 버린거야, ."

"토도마츠."

"정확히는 난 '토도마츠'는 아냐. 다만 그 녀석과 계약을 했어."

멍하니 그를 쳐다보는 나를 개의치 않고 녀석은 떠든다.

"나는 '토도마츠'의 영혼을 먹었다. 대신, 네가 여기 저승에 오게 되면 내가, 아니 토도마츠가 길안내를 하는 것으로 약속했지. 널 꼭 만나고 싶다면서. 널 꼭 자기 손으로 데려가고 싶다면서. “

그런...“

그러니까 나의 말은 토도마츠의 말이기도 한 거야. 흉내 같은 게 아니야. 토도마츠의 영혼이 오소마츠 형에게 하는 말인 거니까.“

토도마츠.“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마. 그런 상태의 형을 눈치 채고도 누구한테도 막아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어. 여차하면 내가 뛰어들 생각만 가득했어. 어째서였냐고 묻지마. 내 눈에는 오소마츠 형만 들어왔으니까. 형이 우리 모두와 같이 죽고 싶다고 해도 난 형이 살아주길 바랐으니까. 결국에는 이렇게 형은 비슷한 이유로 죽어버렸지만. 그래도 형을 데리러 오는 건 내가 맡고 싶었어.“

왜 그런 거야. 왜 알고도 나를 막지 않고,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구해버린 거야. 왜 추락해가는 너의 입모양이 사랑해였던 거야. ......“

형을 쭉 좋아했어. 아니, 사랑했어. 형제보다는 깊은 의미로 사랑해버렸어. 그래, 그래서 말인데, 더 물어봐도 돼? 왜 죽고 싶어 했던 거야?“
말하고 싶지 않아.“

이미 죽어버렸잖아.“

그래도.“

그렇다면...그 희망이란 건 뭐야. 죽고 싶어했던 형을 다시 살고 싶게 해준 희망 말이야. 우리를 다 죽이고도, 형에게 쥐어준 그 희망은 또 뭐냐고. 나로는 안 됐던 거잖아...나로는...“

 

미안해. 너의 사랑이 보통의 형제애와는 다르다는 거, 눈치 채고 있었어.

하지만, 나의 그건 너와는 다르더라.

그게 무섭더라.

나는 형제들을 정말 좋아하는데, 내가 눈치채버린 너의 감정은 우리 형제를 무너뜨릴 거라고 지레 겁먹었던 거야. 그 사랑이 제법 오래됐다는 것도. 그걸 나는 무시한 채로 버텼지만, 너무 힘들더라. 모두의 장남이라는 기대에 한날한시에 태어난 형제가 가진 감정에 대답을 해줄 수 없더라.

날로 우울해졌어.

날로 죽고 싶어 졌어.

형제를 버텨낼 자신이 없었어.

우린 늘 하나잖아?
그러니까,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내가 지고 있던 짐을 그날의 사고, 아니 사건으로 인해 벗어던질 수 있게 된거야.

내 목을 조여왔어.

나 혼자 살아남았단 죄책감이.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더 이상 장남도 아니게 되었지.

너의 사랑에 답할 이유도 없게 되었어.

그렇게 마음을 추스르며 너희들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나는 너의 편지를 발견하게 된거야.

 

오소마츠 형, 형이 이 편지를 읽는다는 건 내가 멀리 떠났거나, 혹은 죽었거나겠지?

정말 마지막으로 이 편지로 내 감정을 마무리하려고.

형은 눈치 채고 있을까?

은근 그런 거 잘 눈치 채잖아.

내가 형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렇지만 역시 난 고백할 용기가 안나.

그리고 형 역시 나를 사랑할 기미가 안 보여.

그래서 마음을 접으려고 해.

그래도 말야, 그건 형 탓이 아니야.

무엇이든 형 탓이 아냐.

형이 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놔도 돼.

내가 용서할게.

그래서 내가 떠나기로 했어.

형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오소마츠 형, 아니 오소마츠.

많이 사랑했어.

늘 행복해.

토도마츠가.

 

그 편지를 읽고, 나는 그동안 너희를 떠나보내고 흘리지 못한 눈물을 쏟으며 울었어.

그리고 토도마츠의 나를 향한 감정은 진지했고, 진지하게 매듭지으려 했다는 것이 너무 미안했지. 그래서 결심했어. 이미 사라져버린 너를 위해서, 나 행복하게 살겠다고. 그래서 우울증에서부터 벗어나려고 병원으로 향하던 길, 나는 죽어버렸지.

 

토도마츠의, 바케타누키의 손에 잡혀 목을 졸리며, 나는 토도마츠에게 하지 못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하지 못할 말을 떠올렸다가 지운다. 뭘 편해지려 했던 거야. 평생 지고 살았어야 할 죄인걸.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을 만큼 느끼는 고통 속에서 체념하며 눈을 감았다.

”...부탁이...있어.“

무슨 부탁?“

내 영혼도 먹어줘. 토도마츠의 흉내를 내는 너에게 해 봤자인 말들이야. 토도마츠에게 제대로 전하고, 용서를 빌겠어. 감정에 대한 답도 하겠어. 그러니까.“

바케타누키의 힘이 풀리고 나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후회해도, 소용없어. 너희는 이제 나의 일부분이 되어버릴 뿐이거든.“

상관없어.“

난감하네. 저승 길동무 역할. 영혼을 2개나 먹어버려선 한동안은 눈치 좀 보고 살아야겠군. 지상에서 주탄동자에게 술이나 받도록 할까. 그래, 그렇게 해서 전할 수 있다면야, 마음대로 하셔.“

바케타누키는 나를 집어올려 삼켰다. 그 안에는 토도마츠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다 끌어안았다.

Posted by 하리H( )Ri
2016. 5. 29. 22:14

[오소마츠상 / 쵸로오소] 넌 나를 꿈꾸게 해

*BL.

*국내방영이 싯구금이지만 그런거 없...지 않습니다. 매우 거시기하지 않을 뿐...

*오랜만에 씀, 막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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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로마츠 시점)


오소마츠 형은 알고 있을까.


오늘도 내 오른쪽에서 오소마츠 형이 태평스레 자고 있다.

그런 형을 의식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리게 된다.

후-하아-후우-하아아-

심호흡을 하며 심장박동을 가라앉히고선 형제들의 소란스런 잠버릇들 속에서 어떻게든 잠을 청하려 애썼다.

살짝 손을 뻗으면 오소마츠 형에게 닿을 수 있다.

형의 몸을 만질 수 있다.

그러나 오소마츠 형의 몸 근처까지 간 내 오른손은 다시 내 몸 위로 돌아왔다.

형의 몸에 닿지 못한 채로, 오늘도 내 손은 나 스스로를 위로해줄 뿐이다.

보름달 뜬 밤, 기분이 좋아지는 듯 몽롱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어이, 일어나."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그러나 내 주변에는 아무래도 익숙지 않은 까만 어둠 뿐이었다.

"뒤야, 뒤라고."

뒤를 돌아보자 볼을 찌르는 감촉이 느껴졌다.

"헤헹. 쉬운 녀석이네, 너."

거기에는 우리 형제들과 같은 얼굴을 한 녀석이 있었다.

자세히 보면...오소마츠 형과 닮은 듯한...거기에 뿔이라거나 날개라거나 달려있었지만.

"오소마츠 형...이야?"

"음...이름은 없는데. 심심함에 미칠 거같은 위대한 몸, 이라고 해둘까."

저런 녀석이 있다는 건,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의미겠지.

"네가 꿈꾸고 있는 건 맞지만, 그 꿈에 내가 간섭해 들어온거라고?"

마음도 읽어버리는 거냐, 이 녀석.

"그래, 그 위대하신 몸께서 굳이 나같은 니트의 꿈에 찾아오신 이유나 들어보자."

"뭐야, 그 존대하는 듯 낮춰보는 미묘한 말투는."

"됐고."

"말했잖아? 심심해서 미칠 거 같다고."
명백히 뭔가 꾸미고 있는 듯한 표정이 기분 나쁘다.

오소마츠 형도 가끔 저런 표정을 짓지만, 같은 얼굴이래도 정감이 가질 않는 녀석이다.

"고작 한 뼘도 안 되는 걸 못 뻗어서 말이야. 심심해서 계속 보고 있었더니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었다고?"

이...이 녀석...다 보고 있었던 거야?

"지금 시비 걸러 온 거냐?"

주먹을 휘둘렀지만 녀석은 여유있게 피해버린다.

내 손은 닿지 않을 거리에서 유유히 날개짓하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짓는다.

"뭣하면 내가 도와줄까?"

"뭐?"

"너의 그 마음, 현실이 되게 해 줄 테니까."

내 마음을 현실로 이루어준다.

이 녀석이 하는 말들이 하나하나 나를 찔러온다.

"믿어보라고? 난 거짓말은 하지 않거든."

그러고선 왼쪽 주먹을 꽉 쥔다.

녀석의 손에서는 녀석의 웃음만큼이나 기분나쁜 아우라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녀석은 손을 펴서 내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사탕?"

"한번 먹어봐. 달콤해서 맛있어."

뭐, 꿈이니까 괜찮겠지.

녀석이 준 사탕을 입에 넣자 마치 흑설탕같은 씁쓸한 단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자아! 이제 네가 원하는 것을 그 약에 빌어보는거야!"

녀석이 마술사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눈을 현혹시킨다.

내가 바라는 건 뭐지...

형에게 닿는 것?

그것 뿐인가?

다시금 몽롱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녀석의 말이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인간들은 나를 악마라고 부르더군. 그게 내 이름일지도."


오소마츠 형은 알고 있을까.

밤중에 내가 오소마츠 형과 닮은 악마를 만나는 꿈을 꿨다는 것을.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어째선지 입안에 씁쓸하고도 단 약의 맛이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

오소마츠 형은 아예 바닥을 구르고 있었고 쥬시마츠는 180도 돌아 누웠는지 발만 보였다.

뭐하자는 건가, 나는.

다시금 눈을 감고서 잠들기 위해 양이라도 세어본다.

양이 한 마리, 양이 두마리...

그러나 양을 세는 와중에 불쑥불쑥 떠오르는 꿈 속의 일들 때문에 결국 그대로 잠들지 못했다.


"쵸로마츠? 쵸로마츠!?"

오소마츠 형의 부름에 고개를 슬쩍 돌아봤다.

아, 또다.

볼을 찌르는 느낌.

"따하하하하핫! 이거에 걸리다니~ 쉬운 녀석이네, 쵸로마츠."

"아침부터 철없는 장난하지 말라고, 오소마츠 형."

어라. 데자뷰인가.

"오늘은 텐션이 낮네~ 라이징은 관둔거야?"

"언젯적 라이징이야. 그만 놀리라고."

"이렇게 재밌는 걸 관두겠냐 너같으면ㅋㅋㅋㅋㅋ"

결국 팔꿈치로 형 배를 세게 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보다 쵸로마츠, 어제 밤에 잘 못 잤어?"

"왜."

"너답지 않게 꼼지락대거나 하던걸?"

왜 그런 걸 눈치채는 거야.

"못 자긴 했지. 굴러다니던 주제에 잘도 아네."

"그야, 형은 너네들에 대한 거라면 뭐든 알고 있으니까?"

이유가 되지 않아.

모르고 있는 주제에.

내가 너한테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도.

형은 장남이라는 이유로, 뭐든 알고 있는 척을 해댄다.

그래서 자신이 몰랐던 동생들의 일면을 마주했을 때는, 치비타에게 징징거리고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는 바보같은 형.

그래도 여차할 때는 의지가 되기도, 마음이 맞기도 하는 형이다.

뭐라고 해도 여섯 쌍둥이 중에서도 나와 오소마츠 형은 죽이 잘 맞는 파트너인걸.

그런 형을 두고, 나는 꿈꿔버리고 만다.

"내 것이 되어줘, 오소마츠 형."

어라? 갑자기 이게 왜 입밖으로 나온거야?

"뭐라고? 못 들었는데?"

오소마츠 형이 내 몸을 돌려세운다.

잘못 말했다고 말할까.

그러나 마음 속에서 오소마츠 형에 대한 감정을 토해내야 된다고 외치고 있다.

심장이 미칠듯이 뛰고, 마치 이 말을 그대로 삼키면 내가 죽어버릴 것처럼.

"내 것이 되어달라고, 망할 장남 새꺄!"

표현이 한층 더 거칠어졌다. 

아, 이런 모습이 원래 나였지.

언제나 한 번쯤 더 생각하고 걸러버리니까.

"의미를 모르겠네, 쵸로마츠. 네 것이 되어달라니?"

오소마츠 형은 당황한 듯 묻는다.

"말 그대로야! 바보야!"

그대로 오소마츠 형의 손목을 붙든다.

모든 건 내 본능대로, 내가 숨기고 있던 마음대로.

무의식 속에서 올라오는 감정들은 나의 온 몸을 붙잡고선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는 듯 싶다.

형을 끌고서 아무도 없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의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이 어째선지 귀에 들려왔다.

"쵸...쵸로마츠?"

오소마츠 형은 끌려온 채 방문을 닫으며 말을 걸었다.

아, 이제 생각하는 것도 다 귀찮아졌어.

"오소마츠 형, 꽤나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는데."

오소마츠 형은 형을 붙잡은 내 손을 다른 손으로 잡아주었다.

"나, 형을 좋아하는 거 같아."

"갑작스레 고백이냐."

"무슨 의민지 이해하고 있는거야?"

"의미야 알 수밖에 없잖아? 날 갖고 싶다고 했으니까."

이 바보가 금방 이해해버려서 오히려 맥이 풀렸다.

답을 들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 너가 그동안 잠자리에서 내 몸을 손대려다 만 적이 몇 번 있었던 건 아는데."

알고 있었던 거야?

"그게 그런 의미인 줄은 몰랐네."

어쩐지 형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하게 들렸다.

역시, 싫은걸까.

두근대는 마음은 드디어 고속열차라도 탄듯 질주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

"그런 식이니까...다 알고 있는 듯 얘기하면서...또 능청스럽게 빠져나가버리고..."

갑작스레 눈물이 쏟아졌다.

아, 이게 그건가...악마놈이 내게 먹인 약 때문에 이런건가...

"아...울지 말라고, 쵸로마츠?"

형은 느슨해진 손목에서 내 손을 떼어내더니 날 붙잡았다.

"역시 형은 바보네~ 동생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

"만지고 싶다는 건, 역시 거기?"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오소마츠 형?

"동생이 이만큼 형을 좋아해준다는데, 거부할 이유가 없잖아?"

"진짜 무슨 소린지 이해한거냐고! 형!"

"형이 너네들을 떠나보내봤으니까 알지. 너희들이 날 필요로 해줘야 내가 버틸 수 있다는 걸."

"하지만..."

"네가 그런 의미로 날 필요로 해준다면, 나도 그런 의미로 너에게 답해줘야지 않겠어?"

오소마츠 형은 나를 앉히더니, 바지도 팬티도 벗어버린 채 벌렁 누워버린다.

아까는 무미건조하게 들렸던 형의 목소리는, 평소와도 같은 목소리로 돌아왔다.

"그런..."

눈앞에 형이 자신의 몸을 대주고 있다.

막상 거기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숨막힐 듯 뛰는 심장이 외친다.

-이제 손을 뻗을 수 있잖아? 자, 뻗어보라고. 마음껏. 원하는 대로.

그리고 그 마음에 몸을 맡겨, 나도 하의를 벗어던진 채 형에게 뛰어든다.


이 모든게 꿈일까.

꿈 속에서 꾼 꿈에 이끌려 이런 꿈을 꾼 걸까.

황홀하다못해 몽롱해지는 의식 속에서 오소마츠 형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날 떠민 악마가 형의 얼굴이 아니었다면 이런 꿈을 꾸지 않았을까.

흩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쓰고도 달고도 짠 맛이 입에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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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더빙 쵸로마츠의 애드립과 욕과 거친 입이 그렇게 찰지다면서요? 난 살릴 수 없어...

2. 내가 연성 고자라니

나 : 오른손에… 감각이 전혀 없으니… 어떻게 된 거요?
의사양반 : 아… 하필이면 총알이 영 좋지 않은 곳에 맞았어요.
나 : 그건 무슨 소리요?
의사양반 : 에… 어느 정도 완쾌된 뒤에 말해주려고 했는데... 잘 알아두세요. 선생은 앞으로 오른손을 잘 쓸수가 없습니다.

에, 다시 말해서 연성을 잘 할 수가 없다는 것이오. 에, 총알이 가장 중요한 곳을 지나갔단 말입니다.
나 : 뭐요? 이보시오, 이보시오 의사양반!

3. 오랜만에 와서 똥글쓰고 앉아있는 저...언능 잘 머릿속으로 정리해서 다른 글 써오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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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H( )Ri
2016. 4. 10. 00:43
이번엔 BGM도 가져왔습니다.


-오소른 전력 60분 「망상」 참가작(http://twitter.com/OsoRight_60/status/718794733791752193)

-소재는 Aqua Timez의 그림엽서의 봄(絵はがきの 春)에서 가져왔어요.

원곡은 첨부할 수가 없어서 음원사이트서 한번 들어보시고 이건 조금 빠르게 변형된 버젼인 거 같네요. 자꾸 듣다 보니 이게 원곡 속도였나 좀 헷갈림.
가사는 이 쪽에서(http://hun2two.blog.me/40141271073)

-이치오소; 청춘시대물; 캐붕은 언제나; 형제가 아니라는 설정





링- 띠링-

핸드폰의 수신음이 울렸다. 고양이 스트랩을 단 핸드폰을 집어든 이치마츠의 손은 조금 떨렸다.

「여어-이치마츠 군! 이런 거 찾아버렸어~ 그립네~」

문자메시지와 함께 첨부된 사진 속에는 중학교 시절 그대로 어른으로 자란 오소마츠의 얼굴과 엽서 한 장이 찍혀 있었다. 중학교 졸업하고 나서 가끔 연락 오더니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는 그 연락조차 끊겼던 오소마츠였다. 한 3년 쯤 되었나...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보내오는 것도 오소마츠답다면 오소마츠다웠다. 저 엽서는 틀림없이 직접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써서 보낸 엽서다. 수채화로 마음가는대로 벚나무를 그렸는데 기쁘게 받아줬던 오소마츠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작업실을 나서 방에 들어가 중학교 졸업앨범을 뒤적거린다. 3학년 A반. 우연히도 성이 마츠노로 같아서 출석번호가 나란히, 사진도 옆에서 찍었던 오소마츠. 그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활짝 웃은 얼굴을 보자니 중학교 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반 배정에서 자신의 이름 밑에 똑같은 마츠노를 보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마츠노 오소마츠'인가. 뒤에 붙은 마츠까지 나와 비슷해서 웃음이 나왔다. 

"마츠노 이치마츠 군?"

그때 누군가 등을 툭 두드렸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 순간, 손가락으로 볼을 찔러오는 조금 무례한 녀석. 그게 오소마츠와의 첫 만남이었다.

"에, 누구..."

"마츠노 오소마츠! 참고로 널 알고 있는 건 학교에 걸려 있는 그림을 봐서라구? 옆에 사진도 붙어있었고 말이야."

묻지도 않은 걸 잘도 얘기한다. 그만큼 조금 수다스러워 보이고 장난기가 넘쳐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런고로 잘 부탁해, 이치마츠 군!"

처음부터 이름으로 막 부르는 구나.

"나야말로 잘 부탁해, 마츠노 군."

"마츠노 군이 뭐야, 섭섭하게. 같은 마츠노니까 나도 이름으로 불러줘."

"...그럴게."

우연인지 이름이 비슷한 오소마츠와는 엮이는 일이 많았다. 출석번호가 연달아 있어서 처음부터 앞뒤로 앉는다거나  당번을 같이 한다거나 하는 사소한 일까지. 뒷자리에 앉은 오소마츠는 종종 수업중에 졸다가 공책 좀 보여달라고 나를 찌르거나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거나 했다. 귀찮지만, 그럼에도 싫지 않은 기분으로 공책을 빌려주거나 수학 문제를 알려주거나 하며 오소마츠와는 조금씩 친해졌다. 이치마츠는 조금 예민한 구석이 있어서 다른 반 애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데 비해 오소마츠는 밝고 친화력 좋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카리스마 아이돌이라는 표현답게 리더쉽도 있어서 반의 중심이 됐다. 그런 오소마츠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늘어나면서 이치마츠는 그저 이름이 비슷할 뿐인 오소마츠에게 조금씩 동경의 마음을 품게 되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그 마음은 조금씩 커져서, 여름방학이 되어서는 방학동안 오소마츠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데 아쉬움을 품게 되었다. 오소마츠를 보고 싶고, 얘기하고 싶고, 손도 잡아보고 싶고...이런 생각들을 늘어놓으며 미술부실에서 석고상을 데생하고 있었다.

'아. 이런게 사랑...인가?'

조금 충격이었다. 

'아니, 지금 이게 첫사랑인데. 에, 그러니까 내가 오소마츠를 좋아한다고? 남자를?'

얼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다른 부원들은 이치마츠가 당황해하는 걸 보지 못한 모양인지 연필 사각대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보고 싶다, 오소마츠...'

오소마츠는 고교 수험으로 바쁘려나.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는 건 별로 없었다. 방학이 지나면 2학기엔 또 어색해져버릴지 모르니까. 이치마츠의 머릿속은 눈 앞에 있는 캔버스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점심 때가 되어 부활동은 파했다. 운동장을 뱅 돌아서 집으로 돌아가려던 이치마츠의 등을 누군가 툭 쳤다. 

"누구..."

"나, 오소마츠!"

오소마츠가 방학 때 학교에 있다. 오소마츠는 귀가부, 즉 부활동이 없어서 굳이 학교에 올 일이 없을텐데...

"심심해서 학교로 놀러와버렸습니다~ 누구 없나 했는데 이치마츠가 있어서 다행이네."

이치마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오소마츠가 말을 꺼냈다.

"기껏 내가 학교까지 왔다구~ 수다라도 떨다 가지 않을래?"

배는 조금 고팠다. 하지만 아까 깨달아버린 오소마츠에의 감정은 그보다도 더 컸다. 지금 오소마츠를 놓치면, 정말로 2학기가 되서야 만날지도 모른다. 이치마츠는 오소마츠를 따라 운동장 한 켠의 그네 쪽으로 갔다.

오소마츠는 빨간 그네에 앉아서 발을 굴렸다. 이치마츠는 초록 그네에 앉아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오소마츠 군은...고등학교 어디 수험칠 지 정했어?"

한참을 우물대다 말을 꺼냈다.

"으음..."
오소마츠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이사를 갈 예정이라 적당히 그 근처 고등학교를 가게 되겠지?"

"...이사 가?"

"응. 아버지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기서 꽤 떨어진 곳으로 간다고 하더라고."

수험에 대해 정해놓은 건 없었다. 하지만 기왕이면 오소마츠와 같은 학교를 갈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오소마츠는 떠나버리는구나.

"좀 아쉽네, 기껏 여기서 친해진 녀석들이 많았는데."

방학 때 잠깐 보지 못하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2학기가 끝나면, 졸업해버리면, 오소마츠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치마츠는 두려워졌다. 오소마츠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깨닫고 나서 바로 이별의 때를 생각해버려야 한다니. 머릿 속이 뒤엉켰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오소마츠 군은, 좋아하는 사람이라든가 있어?"

갑작스레 말이 튀어나왔다. 이치마츠는 고양이마냥 놀란 채 입을 틀어막았다. 오소마츠는 그런 이치마츠를 바라보더니 씨익 웃었다.

"글쎄-AV에 나오는 누님들은 좋아하긴 하는데-"

오소마츠 답달까, 갑자기 AV이야길 꺼내다니. 틀어막은 입에서 웃음소리가 새어나갔다.

"그러는 이치마츠는 좋아하는 사람 있어?"

역공을 당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그런 걸 물어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거야.

"그,그,그것은 제쳐두고 말이야."

"왜에?궁금한 데 말이지, 이치마츠 군-"

오소마츠는 그네에 앉아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이치마츠를 재촉했다. 아, 이젠 모르겠다. 이것도 저것도.

"손 잡아도 돼?"

"뭐야 그 뜬금없는 대답은."

"잔말말고."

"좋아."

오소마츠가 팔을 쭉 내밀어 손을 이치마츠의 무릎에 갖다 댔다. 이치마츠는 오소마츠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잡았다.

'따뜻하다.'

오소마츠의 손이 따뜻해서 조금 꽉 쥐다가, 문득 자기 손이 차갑다고 느낀다.

"이치마츠 손은 시원하네. 여름에 더운데 마침 잘 됐다."

오소마츠는 잠깐 팔을 빼더니 이치마츠의 앞에 쪼그려 앉고 두 손을 내밀었다.

"자아~잡아줘."

이치마츠는 망설이다가 오소마츠의 손을 덥썩 잡았다. 손에 퍼져가는 온기를 느끼며 자기의 진심을 얘기하고 싶어졌지만, 오소마츠의 반짝이는 눈을 보자니 입이 도통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순간이자 영겁의 시간이 갔다. 방학때도 꺼놓지 않았는지 점심시간이 끝났다는 시종이 교정에 울려퍼졌다. 

"자, 이제 가봐야겠네. 이치마츠, 배고플텐데 나 때문에 점심 떄 놓쳤으려나."

"...그렇지 않아. 오소마츠도 돌아갈거야?"

"학교에 계속 있다가는 아마 쪄 죽을걸. 여름이니까."

그렇게 오소마츠와는 작별 인사를 했다. 집 방향은 정반대. 오소마츠의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심장이 두근대는 자신을 발견한다.

 

중3의 2학기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수험으로 바쁜 녀석들 속에서 오소마츠는 조금 허전해보였다. 이치마츠의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고 커져만 갔지만 여름날, 손을 잡은 이후로는 일상적인 대화만이 오갔을 뿐 더 나아가지는 못했다. 아마 거기서 더 나아갔다고 해도 곧 맞이할 이별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걸로 됐다며 혼자 마음을 삭혔다. 수험도 끝나고, 졸업을 앞두고서 이치마츠는 엽서 크기의 도화지에 벚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 한 장, 두 장, 마음가는대로 그린 벚나무 그림이 쌓여갔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이치마츠는 붓을 물통에 꽂고선 엎드려서 오소마츠를 생각했다.

조금만 일찍 오소마츠를 만났더라면...

 

어딘가에 교실에서, 오소마츠와 다시 마주한 새로운 교실.

「안녕, 오소마츠.」라며 인사를 건네는 아침. 사랑스러운 너의 얼굴을 보며, 너도 날 사랑해줬음 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인사하자마자 넌 손을 마주대어주어서, 너의 온기가 내 차가운 손에 닿아 기분이 좋다. 이런게 너와 체온을 나눈다는 걸까.

방과 후 너는 내게 다가와 이런 말을 해 줄까.

「이치마츠 군, 우리 봄을 찾으러 가볼까?」

「영문을 모르겠네.」

「내가 좋은 곳을 알고 있거든. 둘만이 봄을 만끽해보자고.」

너의 손에 이끌려 어딘가의 언덕을 향하는 나의 심장 박동. 너에게도 분명 전해지겠지. 

너는 춤추듯 바람을 따라가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를 안내한다.

요정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자, 도착했어! 어때, 여기가 나의 비밀 장소.」

거기에는 거짓말같이 커다란 벚나무가 서 있었다. 벚나무 아래에서 코 밑을 비비며 밝게 웃는 너가 있었다.

아마 꿈이겠지 이건. 이렇게 아름다운, 이 세상에 없을 거 같은 풍경을 내가 볼 리가 없잖아.

 

드르렁.

코 고는 소리에 놀라 잠을 깨버렸다. 하, 하릴 없는 망상을 해버렸네. 다만 마지막의 풍경은 잊히질 않아서, 그 풍경을 열심히 도화지에 옮겨 담았다. 오소마츠의 모습도 넣어서. 드디어 마음에 드는 그림을 손에 넣고서 뒤에는 한 자 한 자, 마음을 들였지만 그 말은 진부할 뿐인 잘 지내라는 이야기를 적어서 졸업하는 날 오소마츠에게 주었다.

"에에~이거 설마 나야?"

"응..."

"내 매력을 담기엔 좀 부족한 거 같은데? 그래도 벚나무 예쁘고, 고마워 이치마츠."
"나아먈로."

"소중히 간직할게!"

소중히 간직한다는 말을 들어버렸다. 이걸로 된 거야. 이치마츠는 그 엽서를 전한 걸로 자기의 첫사랑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멀리서 같은 달을 보거나 할 지도 모르지만, 연락이나 좀 나누다 잊혀지겠지.

잘 가, 내 첫 사랑.   

 

그런 시절도 있었다. 그 뒤에 다른 사랑도 해봤다. 그래도 이 문자를, 이 사진을 보면 떠올릴 수밖에 없잖아.

「오랜만이네, 오소마츠 군. 아직도 그런 거 간직해주고, 고마워.」

이치마츠는 졸업앨범을 닫고서 오소마츠에게 답을 보낸다. 이젠 너무 떨어져 지낸 지 오래됐지만, 그래도 그 그리운 마음을 담아서 전하고 싶다. 물론 이런 딱딱한 단문으로는 그런 게 전해지지 않겠지만. 송신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신음이 울린다.

「나 지금 중학교 근처에 와 있는데 아직도 근처에 살고 있다면 오지 않을래? 학교 뒤쪽에 굉장한 풍경을 봤거든.」

첨부 사진에는 학교가 보이는 언덕, 그리고 흩날리는 벚꽃잎.

또 다시 수신음이 울린다.

「이치마츠 군이 그려준 벚나무랑 닮아서 꼭 같이 보고 싶어.」  

문자를 보고선, 이치마츠는 차림새를 신경쓸 틈도 없이 학교 뒤 언덕으로 달렸다.

 

오소마츠, 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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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전력 시간 오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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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H( )Ri
2016. 3. 13. 02:53
☞3/12일자 오소른 전력 60분 참가
☞주제 '외톨이'
>전력60분에 맞추지 않은 마이룰60분...

*학생 시절 이야기 포함
*시점 표현이 좀 산만해짐
*변변찮음 주의



왠일로 오소마츠가 새벽에야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자고 있던 형제들을 깨우고선 한다는 소리가,
"마츠노 오소마츠, 오늘부로 동정 졸업입니다!"
동생들의 눈빛은 의구심만 가득했지만, 오소마츠는 당당하고 여유있는 표정을 잃지 않고선 동생들을 둘러봤다.
"이건, 거짓말이야...오소마츠 형이?"
토도마츠가 오소마츠를 훑어보며 말했다. 스마트폰을 든 손이 떨리는 걸 봐선 굉장히 당황한 모양이다.
"동정 뗀다면서 억지로 한건 아니지? 경찰서 갈 일은 아닌거지?"
쵸로마츠도 당황해선 의심하는 듯 말한다.
-하긴, 나라면 강간범으로 잡혀가도 할말 없을거라고 쵸로마츠가 말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오소마츠는 딴죽거는 콤비를 싱글싱글 쳐다본다.
"처음은 어땠어, 오소마츠 형?"
쥬시마츠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어본다. 표정에서 느껴지는 무구함이 좀 걸리지만 오소마츠는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찬사를 짜내어 쥬시마츠에게 얘기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응, 응, 하는 모습을 보면 어린 아이같기만 한데 하는 얘기는 그렇고 그런 거라니.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잠자코 오소마츠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저 말은 진실인가. 특히 카라마츠의 눈빛은 무언가 하고픈 말이라도 있는 듯 간절하게도 보였다.
"잘 됐네. 형님. 우리중에 먼저 동정을 벗어난 게 형님이라 다행이다."
카라마츠가 이윽고 입을 연다. 그 말에 오소마츠는 살짝 표정이 굳어졌지만 다시금 입꼬리를 올린다.
"뭐래도 이 장남이 먼저 성공했으니 나머지도 금방 탈출할 거라고~"
장난기 섞인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마츠노 형제의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모두가 잠자리에 다시 들고 나서, 한낮이 되어서야 오소마츠는 잠에서 깼다. 다들 어디엔가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쳇, 나 제법 큰 화젯거리 가지고 온거 아니였냐고.
살짝 불만을 품으며 기지개를 펴는 찰나, 방으로 들어오는 카라마츠와 눈이 마주쳤다.
"좋은...낮이다...브라더..."
"좋은 낮, 카라마츠."
-카라마츠와 단둘이 있는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아.
오소마츠는 나갈 핑계를 찾아 머리를 굴렸다.
"형님, 낚시터에 함께 가주지 않겠는가."
카라마츠가 선수를 친다. 거절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아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배 쪽을 보고만 있다.
"부탁이니까."
고개를 들어 카라마츠를 본다. 아, 역시 진지한 얼굴. 계속 피해다닐 게 아니라면 차라리 당장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이 나아보였다.
"알았어, 대신 비용은..."
"아, 내가 낼게."
낚시터로 가는 내내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속으로 무어라 생각하는 듯 했고, 오소마츠는 굳이 그걸 방해해선 안 될 거 같아서 그냥 걸었다.

봄이라곤 해도 날은 춥고, 벚꽃은 필 기미도 안 보이고. 조금 스산한 경치에 아무 말 하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이 섞여들어간다. 분명, 이 비슷한 시기였나. 카라마츠의 마지막 연극 무대는.
카라마츠는 연극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연기하는 걸 좋아했다. 그런 주제에 유리멘탈이라 욕 먹는 걸 두려워해서 여러 번 형제들에게 울며불며 매달렸다.
"무대에 서면 몇 십 개, 몇 백 개의 눈이 나를 향해 쏠리는데 어떡하지? 나 별거 아닌 지나가는 엑스트라인데도..."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려운건가, 그러면서도 홍보하는 데서는 잘만 떠들어대서 또 그건 아닌가. 그냥 긴장했을 뿐이네, 이 녀석. 그런 판단으로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에게 특훈을 시켜주었다.
오소마츠가 연극부 소품실에서 하얀 가면을 두 개 꺼내들었다. 하나는 카라마츠 손에 들려주고 무대 옆 준비실로 이동했다.
"자, 카라마츠. 이 가면을 쓰는 순간 나도 너도 다른 사람이 되는 거야. 가면의 세계 속에서 완전히 혼자가 되는 거지. 지금까지 널 알던 사람도 가면을 쓰면 못 알아보는거야."
최면을 걸듯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카라마츠는 가면과 오소마츠를 번갈아보며 여전히 불안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다른 사람이 되는 거야?"
"당연하지. 이 형을 믿어봐."
"...형은 거짓말을 많이 하잖아. 툭하면 속여서 쌈질하는데 끌고가거나 간식비 뜯거나 하니까..."
"헤헤...내가 그랬나?"
"참, 형이 연극부였다면 연기를 잘 했을지도 모르겠네...부럽다 그 뻔뻔함..."
"칭찬이나 욕 중에 한 가지만 해줄래? 욕이라면 형 상처받겠지만~"
"휴...그래...오늘은 믿어볼게..."
카라마츠가 한숨을 쉬고선 가면을 얼굴에 덮었다. 오소마츠도 가면을 덮고선, 다시금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이제 우린 마츠노 오소마츠가, 마츠노 카라마츠가 아니야. 우린 누구라도 될 수 있고, 이 가면 속에 있는 나는 그 누구도 모르고,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드는거야."
카라마츠는 그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자는 건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고, 눈을 감고 마치 정말 어디론가 빠져들어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카라마츠가 눈을 떴다.
"오소마츠, 여기선 우리 형제가 아닌거지?"
뜬금없는 카라마츠의 물음이었다. 오소마츠는 그냥 내가 말한 거에 맞춰주고 있는 건가 싶어서 가볍게 대답했다.
"응. 여기선. 가면 뒤에 세계에선 형제가 아니지."
"그렇다면,"
카라마츠가 숨을 골랐다.
"여기서라면 오소마츠를 사랑해도 되는거야?"
"응?"
"가면 뒤에 또다른 세계라고 한다면 혼자 있는 세계라고 했지? 하지만 나, 오소마츠와 둘만의 세계였음 좋겠어."
뭐라는 거야. 오소마츠는 혀를 찼다.
"이번 연극 내용이야, 그거?"
"아니야."
오소마츠는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카라마츠가 숨죽이고 깊이 빠져들었던 이유는 이거였나. 아니, 설마, 진짜?
"난 늘 오소마츠를 동경해왔어."
카라마츠의 독백이 시작됐다.
"형의 당당한 모습, 천연덕스러우면서도 미움사지 않는 모습, 강한 모습, 그 어디에도 동경을 품었어. 내게 뒤를 맡겨주고, 내 곤란함에 먼저 손을 뻗어주는게 고맙고 또 고마워서...그런데 나는 그 만큼은 아닌 거 같아서..."
평범한 얘기다. 평범하지만, 이 뒤는 듣고 싶지 않았다.
"형이 봐줄 연극이라면 좀더 당당하고 멋있고 싶었어. 그런데 그게 아니니까...내가 작아보였어. 형에게 날, 좀더 멋있는 녀석이라 각인시키고 싶었어! 그런데, 나 지금 이렇거 가면이나 뒤집어 써야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어... 한심해... 형이 좋은데, 그런 얘기조차 가면 뒤에서나 한다고..."
앞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카라마츠는 가면을 쓰고 뻔뻔해지랬더니 가면을 쓰고 되려 솔직해져버렸다.
-아마 여기서 녀석을 봐버리면 안되겠지.
오소마츠는 카라마츠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카라마츠 쪽을 보지 않았다. 그걸로, 카라마츠가 방금 한 얘기는 듣지 않은걸로 한거야. 혼잣말이었다는 걸로 쳐 뒀음 한다고.
울음을 그친 카라마츠는 가면에 묻은 눈물도 제 얼굴의 눈물도 소매로 쓱 훔치더니, 오소마츠에게 가면을 주고선 무대로 뛰쳐나갔다. 카라마츠의 연기는 아까보다 훨씬, 아니 엑스트라인데도 주역이라고 믿을 정도로 나아졌다. 카라마츠는 가면 뒤에서 자기만의 세계로 빠진듯 연기하기 시작했다. 주역도 몇 번 따내고, 졸업 전에 섰던 마지막 연극무대는 독백극을 해서 혼자 무대를 장악했다. 그때 카라마츠의 대사는 정말 많아서 외울 수는 없지만, 딱 하나는 기억이 난다.
"거짓말은 달콤해서, 인간이란 거짓의 세계에 의존하며 위안을 얻고는 하지. 그런데 그 이면에, 거짓말을 자아내는 이는 슬픔을 감추고 있다는 걸 알아줬음 해. 거짓말을 자아내는 이는 언제나 외톨이라고? 거짓말은 들키기가 무서워서, 그로 인해 자기를 감싼 세상이 변하는 게 무서워서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는거야."

카라마츠는 그 뒤로도 자기만의 세계를 살고 있다. 오소마츠가 건넨 가면 하나가 그를 외톨이로 만들었다는데 오소마츠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그 날의 일을 없는 취급 하며 살았다.
-오늘은 거기에 대한 벌을 받는 거야.
카라마츠가 고르고 있는 말의 조각들을 오소마츠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낚시터에 도착해서는 카라마츠에게 머리를 쥐어박히겠지. 그리고 아마도 왜 그런 거짓말을 했냐고 물을거야. 카라마츠는 눈치채고 있을테니까.
"형님."
낚시용 의자에 앉자마자 카라마츠가 말을 건다.
"형이 원치 않는다면, 난 그대로 묻어두고 갈 수 있어. 그러니까 그런 거짓말 하지마."
그렇지. 오소마츠가 동정을 뗐다는 건 거짓말. 이유까지도 카라마츠가 눈치챈 데엔 솔직히 감탄한다. 눈치없는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있었네.
-지금에 와서도 난 널 받아줄 수 없어.
확실한 거절은 말하기 어렵다. 카라마츠의 기분은 차갑게 거절당한 경력이 많은 이 장남이 잘 알고 있으니까. 미적지근하지 않은 태도, 하지만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걸 보이려 노력하고 있다.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되니까. 배려한다고 거짓말해서 뭐해. 형은, 오소마츠는 그걸 끌어안고 있다 외톨이가 되버리는 거잖아."
무슨 소리야.
"그건 싫어."
어째서야.
"둘 다 외톨이가 되는 건 싫어."
그건 아니잖아.
"오소마츠가 확실히 얘기해줘. 나도 그럼 다른 곳으로 마음을 찾아가려 노력할테니까."
어째서, 널 거절하는 내 마음까지 배려하는거야.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노려본다.
"그거잖아, 오소마츠. 외톨이 둘이서 등을 기대서 체온을 나누어서 사는 거, 우린 그게 안 되는 거지? 답을 해줘. 형도 그만 가면을 벗고, 솔직한 심정을 들려줘."
카라마츠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듯 오소마츠를 뒤에서 끌어안는다.
답을 뱉어내면, 둘은 정말 외톨이가 아니게 될 수 있을까?
몇 년 전 준비실의 그 때처럼, 또다시 정적이 둘을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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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거짓말을 소재로 생각하던 걸 외톨이를 가미시켜 쓴거라 거짓말이 주인지 외톨이가 주인지... 어쨌건 하고 싶은 말은 썼습니다. 그리고 어정쩡하게 일인칭 시점을 일인칭으로 안 써보려다 망했네요...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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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H( )Ri
2016. 2. 29. 12:19

갑자기 쓴 이야기

어제 본 풍경이 정말 예뻤습니다.

따라서 답지 않은 동화체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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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어느새 다 가는 2월 말. 벌써 꽃샘추위라는 말이 오르내릴 정도로 최근 며칠 동안엔 따뜻했습니다. 아직 꽃들이 피지는 않았지만 새싹은 몇 개 본 것도 같습니다.

 

'이제 봄이 오는 걸까?'

 

토도마츠는 입고 나갈 옷을 고르며 생각합니다. 날씨는 맑음, 방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도 조금 따스합니다. 그동안 추워서 입지 못한 봄옷을 꺼내들고 토도마츠는 거울 앞을 이리저리 살폈습니다.

 

'역시 이 옷이 좋겠어!'

 

기분에 따라 옷을 차려입고 봄을 준비하러 1층으로 나섭니다.

1층 거실에는 자신과 얼굴이 꼭 닮은 형제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명 있습니다. 토도마츠는 여섯 쌍둥이의 막내. 쌍둥이인데 형제들에게 일일이 형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조금 불만스럽지만, 그래도 좋은 형제들입니다. 자신의 일에 대해 크게 관여하지 않으니까요.

 

"토도마츠, 어디 나가?"

 

장남인 오소마츠가 웬일로 불러 세웁니다. 토도마츠는 조금 귀찮음을 느낍니다. 오소마츠는 조금 참견하는 버릇이 있어서, 용건을 간단하게라도 얘기하지 않으면 물고 늘어집니다. 나쁜 일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니니, 토도마츠는 그냥 행선지를 이야기합니다.

 

"응. 근처 쇼핑몰에서 옷이라도 살까 하고 말이야."

 

"헤에-여자애라도 만나는 거 아니고?"

 

오소마츠가 토도마츠의 옷차림을 훑어보고는 떠보는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런 게 기분 나쁘다고 토도마츠는 속으로만 생각합니다. 몇 번 이야기를 했지만 오소마츠의 그 표정은 좀처럼 바뀌질 않거든요.

 

"겨울엔 기회가 없어서 연락처 받은 애가 없거든요!"

 

조금 짜증내는 투로 내뱉고선 토도마츠는 재빠르게 현관을 빠져나와 집 밖으로 나섭니다.

 

'뭐야. 겨울에는 별 핑계 다 대가며 집에 묶어두더니 여자애라도 만나냐고 떠보다니.'

 

이번 겨울, 유독 오소마츠는 토도마츠를 자기 옆에 두려고 했습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든지, 오늘은 춥다든지, 형아 외롭다든지...20살 넘어서 할 일 없이 집에만 있으니 가장 고만고만한 막내라도 잡아서 놀아달라는 투정을 부리는 장남이 우스우면서도, 그런 투정을 부릴 때 어딘가 어린애처럼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는 걸 보고 있노라면, 한숨을 한 번 쉬고 상대가 되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도 그럴게, 여섯 쌍둥이라고는 해도 토도마츠와 오소마츠만큼 서로 죽이 잘 맞는 형제는 없거든요.

 

'이젠 봄이 왔으니, 형도 조금은 밖으로 나돌겠지. 원래는 집돌이도 아니었으면서 왜 이번 겨울에는 유독 집에만 박혀있었을까, 오소마츠 형.'

 

그런 의문을 떠올리고 보니 오소마츠에게 짜증낸 채 나온 게 조금 후회됩니다. 그래도 오소마츠는 담아두는 것 없는 바보니까 괜찮을 거라며 토도마츠는 자기위로를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쇼핑몰 앞입니다.

 

여기는 봄. 형형색색의 봄옷들이 쇼핑몰 곳곳에서 꽃 핀 듯 진열되었고, 쇼핑몰 한가운데에는 봄이 왔다는 듯 모형 벚꽃나무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직 벚꽃이 피기에는 조금 이르니까, 오늘 느끼는 봄기운을 만끽하기 위해 모형 벚꽃나무 아래서 셀카를 한 장 찍어봅니다. 오늘도 귀여운 얼굴로 나와서 만족스럽습니다. 이후에는 정신없이 쇼핑몰을 휘젓고 돌아다닙니다. 봄나들이에 어울릴 듯한 모자나 편하면서도 지금 입은 옷과 잘 어울리는 운동화, 아침 조깅할 때 입을 운동복, 미팅이라도 잡는다면 입고 나갈 수 있는 포인트 있는 셔츠... 눈이 팽글팽글 돌아가는 화려한 옷가지들의 향연에 빠져듭니다. 물론 관심이 가는 알바생에게 번호를 따는 것도 잊지 않고요. 꽃밭과도 같은 쇼핑몰 내부에서 이곳저곳을 휘저으며 다니다 조금 쉬어볼까 생각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와. 엄청 구름이 꼈는데?"

 

"비...아니 눈이 흩날린다! 오늘 날씨 도깨비 같네."

 

토도마츠는 바깥을 돌아봅니다. 과연, 아까까지 감돌던 봄기운은 어디로 가고 잿빛 하늘에 눈 알갱이들이 흩날리고 있습니다.

 

'이런, 오늘 옷은 얇게 입고 왔는데...'

 

슬슬 돌아가 보지 않으면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 더 추워질지 모릅니다. 옷을 여러 개 껴입고 집으로 돌아갈까 싶다가도 그러면 꼴이 이상할 거 같아 토도마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추운 건 싫은데, 그래도 지금 가는 게 좋지 않을까 고민만 앞서지만 쇼핑몰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할 때마다 들어오는 한기에 발을 쉽게 내딛지 못합니다. 어쩌면 좋을까 하고 발만 동동 구릅니다.

 

"토도마츠!"

 

어디선가 토도마츠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자기와 똑같은 얼굴의 사람이 손을 힘차게 흔들고 있습니다.

 

"형아가 와줬다궁! 고맙지?"

 

토도마츠는 대답 없이 오소마츠의 행색을 봅니다. 늘 그렇듯 빨간 파카에 목도리만 두르고 온 대충 온 차림입니다. 화려한 쇼핑몰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오소마츠의 모습이 조금 우습기도 했지만, 그가 없었더라면 추위에 덜덜 떨며 돌아왔을 자신을 생각하니 고마웠습니다.

 

"조금 꾸미고 오지 그랬어."

 

"잠깐 데리러 온 건데 그럴 것까지 뭐 있어.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지더니 눈이 쏟아지길래 놀라서 온 거니까."

 

사실 토도마츠가 나가기 전에 오소마츠는 오늘 날씨가 추워질 거라고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따뜻하게 입으라는 말이 맴돌았다가 저렇게 딱딱하게 얘기하는 토도마츠가 조금 얄미워져서 다른 얘기를 꺼냈는데, 이렇게까지 추워질 줄은 몰랐습니다.

 

"자, 우산 쓰고 가자, 토도마츠"

 

오소마츠가 자기가 하고 있던 목도리를 토도마츠에게 둘러줍니다. 오소마츠의 온기가 토도마츠의 목에 전해져서 아까까지의 한기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당장의 따뜻함에 토도마츠는 기뻐했지만, 그 뒤 눈에 들어온 오소마츠의 휑한 목 주변이 조금 마음에 걸렸습니다.

 

"오소마츠 형은 괜찮아?"

 

"집까지 금방 가는걸. 신경 쓰지 마. 너 입을 걸 가지고 나온다는 걸 깜빡해서 목도리밖에 줄 게 없었거든."

 

역시 형은 바보입니다. 걱정이 됐다는 주제에 옷가지도 챙겨 나오지 않은 하나만 생각하는 바보. 이번 겨울이 유독 추웠으니 밖에 나가지 않은 것도 추위를 피할 좋은 방법을 그것밖에 못 떠올린 걸지도 모릅니다. 오소마츠의 벌벌 떠는 표정을 보면서 토도마츠는 그런 생각에 확신을 가집니다. 그러는 새, 다행히도 눈이 그칩니다.

 

"휴, 눈이 그치니까 좀 낫네."

 

"추운 건 똑같은걸 뭐, 얼른 걸어가자 형."

 

집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벌써 어둑어둑해진 거리에는 가로등이 하나 둘 들어옵니다. 갑자기 오소마츠가 멈춰섭니다. 입술이 조금 파래진 채 오소마츠는 어딘가를 바라봅니다.

 

"토도마츠, 저것 봐."

 

오소마츠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으로 토도마츠가 고개를 돌립니다.

 

"어라?"

 

거기에는 벚꽃이 핀 나무가 한 그루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습니다.

 

"자세히 봐봐."

 

"아."

 

자세히 보니 벚꽃 나무가 아니라 아까 쌓인 눈이 살짝 얼어서 가로등 불빛을 반사하는 거였습니다. 눈이 쌓이기 전에는 겨울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앙상한 나무였는데, 눈과 빛의 조화로 밤벚꽃처럼 보인 겁니다.

 

"우와...신기하네. 봄인 줄 알았는데 겨울 날씨, 겨울인줄 알았는데 봄 풍경이 딱 펼쳐져 있잖아."

 

"그러...켈록...게...켈록"

 

오소마츠가 기침을 내뱉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풍경을 담아두고 싶다는 듯 오소마츠는 그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네, 바보 형이니까.'

 

토도마츠는 오소마츠가 그 풍경을 더 눈에 새길 수 있도록 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기왕이면 이 순간이 오랜 추억에 남았으면 하하고 생각합니다.

 

토도마츠가 오소마츠를 끌어안고, 자신의 볼을 비볐습니다. 파래진 입술도 다시금 붉어질 수 있도록 입술도 가만히 맞댔습니다. 오소마츠는 처음엔 조금 놀라더니 입술을 좀 더 내밀고선 토도마츠를 안아줍니다.

 

이번 겨울동안 보낸 시간, 그리고 겨울의 끝에 맞이한 밤벚꽃까지 해서 둘의 추억은 아마 오래도록 남아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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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체 어려워! 오글거려! 우와앙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실 동화를 읽은지도 오래되서 동화체가 뭔지도 모르는 게 함정

 

써놓고 보니 이거 뭔지 모르겠네요 ㅋㅋㅋㅋㅋ

 

그냥 요새 베니마츠가 좋아져서 썼을 뿐

 

어제 본 눈 쌓인 나무가 밤벚꽃같아서 좋았는데 묘사력 완전 없어!!!!!!!!!!!!!크하하하하ㅏ하하하하하하하하하ㅏㅎ

 

이런 쓰레기를 내놔서 죄송합니다.

 

 

 

 

Posted by 하리H( )Ri
2016. 2. 21. 21:56
☞2/21자 오소른 전력 60분 참가
☞주제 '손가락'
https://twitter.com/OsoRight_60/status/701361024113336320?s=09

(오소마츠 시점)

익숙한 기타 선율이 들려온다. 에...그러니까 이 곡은...뭐였지. 그보다 기타 치고 있는건 역시 카라마츠려나.
"어이! 카라마츠!"
카라마츠는 기타를 치던 손을 멈추고 날 아무 표정없이 바라본다.
"왜 그런가, 오소마츠."
"방금 치던 곡, 뭐야?"
"아, 그건 금지된 장난이라는 곡이다. 기타를 친다면 한번쯤은 치게 되는 곡이지."
헤—그런가.
기타는 몰라도 그 곡만은 알고 있다고. 제목이 금지된 장난이란건 처음 알았지만.
"마저 연주해 봐, 카라마츠."
카라마츠가 다시금 연주를 시작한다. 언제 들어도 구슬픈 선율이 카라마츠의 손가락을 타고 전해진다. 이 녀석, 은근히 기타를 잘 쳐서 기타를 연주할 때만큼은 장난을 치기 어려워진다. 오히려 열렬한 팬마냥 집중해서 듣고 있다고.
연주를 마친 카라마츠의 손가락에 눈길이 향한다. 사내자식 손가락이 예뻐봐야 뭐하겠냐만 이 녀석 손가락은 조금 엉망으로 굳은살이 배었다. 카라마츠도 내 눈길을 의식했는지 손가락을 쫙 펼쳐보인다.
"기타를 잘 치려면 손을 제물로 바쳐야 하지, 브라더."
"무슨 소린지..."
"기타 연습을 하다보면 손가락에 상처가 났다 아물었다 하거든. 수없이 새살이 돋고 트는 일이 반복되어서 이런 영광의 굳은살을 얻는 것이다."
네이네이. 그게 영광이라고 말하는 오늘도 안쓰러운 카라마츠 씨.
"좀 눌러봐도 돼?"
"뭐, 상관없다만."
카라마츠의 굳은살을 눌러본다. 으아, 딱딱해. 내 손가락은 아직 제법 말랑거리는데. 자세히 본 녀석의 손가락은 휘어있는데다 굳은살이 이곳저곳에 배여서 흉하다고까지 생각하게 한다. 그에 비하면 내 손가락은 고생하나 한 적없어 뵌다. 자세히 보면 흉터라든가 있지만, 고생의 흔적이 거의 없어서 그야말로 '백수'라는 말에 어울리는 손이다.
"형님도 뮤즈를 영접해보겠나?"
뭐래는거냐 카라마츠.
"오소마츠는 음악은 싫어했던가."
"그다지—듣는 건 좋지만 나 음악쪽엔 별 소질 없으니까."
"기타는 어떤가."
"역시 듣는 쪽이 좋으려나."
카라마츠는 내게 기타를 가르쳐주고 싶은 모양이다. 재밌을 거같긴 한데, 네 손을 보면 역시 자신이 없어지는걸.
"잠깐 손 좀 내밀어봐."
내 손가락을 쭉 편채 손을 내밀었다. 카라마츠는 내 손을 쓰다듬듯, 주무르듯 만지더니 자기 손바닥과 내 손바닥을 마주댄다.
"손가락 길이는 충분히 기네. 뭐, 이런 데까지 똑같은 게 쌍둥이인가."
카라마츠가 싱긋 웃어보인다. 손바닥을 마주한 채 나도 싱긋 웃으며 카라마츠의 미소에 답해준다.
"형은 역시 안 배울래."
카라마츠의 연주를 듣는 거만으로, 네가 말하는 뮤즈를 영접할 수 있을 거 같으니까.
"대신 한 곡만 더 쳐줘."
마주댄 손을 기타 쪽으로 갖다댄다. 살짝 만지작거린 카라마츠의 손가락은 울퉁불퉁해서 묘한 기분이 든다.
"No problem~듣고 싶은 곡이 있는가, 오소마츠?"
"너가 치고 싶은 걸로 쳐."
카라마츠가 망설임 없이 기타를 치기 시작한다. 자작곡이려나, 마음가는 대로 치는 듯한 느낌이다. 그 느낌이 좋아서 무심코 카라마츠의 무릎을 베고 누워버렸다.

선율은 이리저리 나의 정신을 데리고 가고픈 곳으로 데려가고, 난 거기에 홀린듯 따라간다. 따뜻한 느낌 속에 파묻힌 채 흐릿해지는 선율을 듣는다.

익숙지 않은 감촉에 눈을 살짝 떴다. 카라마츠의 얼굴이 가장 눈에 들어오고, 그 입술에는...아, 내 손가락이 물려 있나. 카라마츠는 내 왼손 검지를 제 입에 가져가 살짝 빨고 있었다. 마치 갓난아이가 젖을 빨듯, 내 손가락을 빠는 카라마츠는 행복해보였다.
"카라마츠."
"어으어어에에에에."
괴상한 소리를 내며 카라마츠가 내 손가락을 입에서 뺀다. 그러고보니 나, 어느새 카라마츠의 오른무릎이 아니라 다리를 다 차지하고선 왼무릎에 누워있네. 카라마츠는 손가락의 침을 닦아주려고 자기 탱크톱에 내 손가락을 문지르고 있다.
"미안...손가락이 부드러워서 만지작거리다 나도 모르게..."
저런 부끄러움 타는 모습이 귀엽다. 녀석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좀처럼 보이지 않으려 하니까 이건 녀석의 단 한명뿐인 형으로서의 특권이겠지.
"아니, 난 괜찮다고?"
"응?"
"사랑하는 형제가 내 손가락을 빠는 거, 괜찮다고."
그 감촉이 싫었다면 깨자마자 저항했을거라고.
"자~이 형님의 손가락, 특별히 양보한다고?"
왼손 검지를 카라마츠의 입술 근처로 내민다. 카라마츠는 검지를 잡더니 내 입술에 갖다댄다.
"사실, 손가락보다 더 원하는 게 있는데."
카라마츠가 고개를 숙여 검지를 댄 곳에 자기 입술을 갖다댄다. 카라마츠의 손가락이 울퉁불퉁하고 굳은살이 박혀있다면 카라마츠의 입술은 촉촉하고 말랑말랑하다. 입술이 닿았다는 것보다 먼저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 건 왤까.
"어어어? 뭐하는거야 카라마츠!"
뒤늦게 카라마츠를 밀쳐낸다. 카라마츠가 벙 찐 얼굴로 날 쳐다본다. 서로의 입술을 각자 혀로 훔치며 시선을 회피한다.

그래도 그 감촉, 좋았어 카라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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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오소송 글연성을 해봤습니다만, 역시 글재주가 없는지 망했어요.
장남마츠 다이스키♥
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