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17. 23:41
[쵸로카라] 떨어지기보다 바스러지는 게 어렵다

*필자의 소재 취향은 5화 카라마츠 사변과 24화 편지 (최애에피는 다름)
*그런 의미에서 24화에서 이어지는 내용을 날조했습니다.
*약간 고어하고 약간 그렇고 그런 이야기
*괜찮으신 분만 읽어주세요!
*혹시 모르니까...
링크
http://heartrainon.tistory.com/77

비번: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device=pc&bid=620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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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H( )Ri
2017. 1. 17.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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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2. 01:59
노토라 프로듀스(쵸로카라)
노부타 프로듀스라는 작품의 제목 패러디입니다 ㅎㅎㅎ...
▼▼▼▼▼
http://molang11.wixsite.com/mysite-1/blank-2
프로듀서 쵸로와 토라카라는 아이돌 얘기든 이번 얘기든 보충해서 다시 써보고 싶은 소재입니다.
물론 다른 분들의 작품을 보고파서 참여했던 시커먼 욕망이 더 컸지만...

본론↓
합작 모인 사이트 예전 트윗 뒤져서 주소 찾아왔어요
☆▼☆▼☆▼☆▼☆▼☆

http://molang11.wixsite.com/mysite-1

밍나...토라카라를 봐줘...내거말고 다른 분들의 빛나는 연성을 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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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토라 프로듀스!>

프로듀서 쵸로마츠×토라카라

 

  그날따라 퇴근길은 너무도 멀었다. 망할 국장이 갈구는 걸 꾸역꾸역 참고 나온데다, 간만에 일찍 퇴근한다 싶더니 퇴근 시간대라 지하철엔 사람이 득실거렸다. 금요일의 밤거리엔 즐거워보이는 사람들이 가득해서 자꾸 힘없이 걸어가는 나를 치고 가는데, 아오! 얼른 맥 주 한 캔 마시고 잠이나 자고 싶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뚫고서 오늘따라 손님이 많은 편의점에서 맥주 세 캔과 안주거리를 사가지고 나오면 평소보다는 집에 오는 데 두 배는 걸린 것 같이 느껴졌다. 낡은 맨션 계단을 천천히 올라 3층 구석 방을 열면, 나랑 똑 닮은 형제가 맹렬히 달려온다.

  「어서와, 쵸로마츠 형!」

 소매를 붕붕 돌리고 있는 기운찬 동생 쥬시마츠, 그리고 뜬금없이 피스 사인을 날리며 미소를 지어오는 안쓰러운 형 카라마츠. 이렇게 셋이 사는 조용한 방...일 터였다.

  「이거 봐! 귀엽지?」

 쥬시마츠가 무언가를 불쑥 얼굴에 들이민다.

  「잠...잠깐, 일단 짐은 내려놓고 보자,,,응?」

인형, 이라기엔 지나치게 생기있는 물건이었다. 털은 부드러워 보이고, 얼굴은 어째 우리들을 닮은 듯 한...

  「왕!」

  「이거 뭐야?」

  「아까 공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주웠어! 호랑이인거 같은데 사람 말도 할 수 있어!」

 당황하는 사이 그것이 쥬시마츠의 품을 빠져나와 내 몸으로 달려들었다.

  「꺄악!」

  「앗하하! 뭐야 그 비명소리~」

  「보통 놀라지! 그리고 호...호랑이라고? 물거나 하지 않아?」

  「안 물어!」

 답을 한 것은 호랑이 쪽이었다.

  「나, 사람 좋아서, 사람 사는데 왔어!」

 천진난만한 얼굴로 마치 어린애처럼 이야기하는 모습이,

 귀엽잖아!

  「훗, 거기다 멋도 알고 있더군. 이걸 봐라.」

 카라마츠 형이 선글라스를 가져다가 호랑이 눈에 씌웠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폼을 잡으며 미소를 짓는데, 귀여워서 똥꼬털 타버릴 거 같아! 하는 짓이 카라마츠 형 빼다 박았는데 왜 형은 안쓰럽고 얘는 귀엽지?

  「이거 형이 가르친 거야?」

  「논논. 그래도 그 잠깐 사이에 보고 배웠을 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엄청난 천재다!」

 저런 안쓰러운 행동들을 보고 배워도 되는 걸까. 하지만 이 녀석이 하면 귀엽고, 어울리고. 하는 짓도 그렇고 형과 닮기는 닮은 거 같다.

  「쵸로마츠 형, 얘 키워도 될까?」

 쥬시마츠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당연하지! 이름도 정했어!」

  「정말임까? 뭐라고 부를 검니까?」

  「카라쨩이라 부를거야!」

  「엣?」

 이렇게 사내놈들 셋이 사는 방에 호랑이 새끼 한 마리가 추가되었다.

 

 쥬시마츠는 공장에서 아르바이트, 카라마츠 형은 단기알바를 뛰거나 집안일을 하고 대체로 이 둘을 내가 부양하고 있다. 그래도 TV TOKY*에서 예능국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으니까, 저 둘을 먹여살릴 정도는 된다고. 어서 자립들 했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알바라도 찾으러 다니는 거에 지금은 만족해야 하려나. 하여간, 예능PD로서 아이돌 토크쇼를 주로 맡고 있지만 최근엔 시청률이나 화제성이 신통치 않아서 국장한테 갈굼받고 있다. 갈굼받는 가장 큰 이유는 메인연출이 요리조리 빠져나가서 그 대타로 조연출인 내가 불려가는 거지만.

  「여! 쵸로P! 오늘도 수고했어~」

 저 사람이다. 마츠노 오소마츠. 실력을 인정받아서 젊은 나이에 메인 연출을 맡게 된 유능한 PD이자 동갑내기. 이름도 비슷하고 생김새도 비슷한 탓에 종종 이용당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고 있다.

  「오늘도 마츠노 PD님 때문에 국장님께 혼났습니다만.」

  「에에, 섭섭하게 마츠노라 부르지 말고~ 너도 나도 나 마츠노잖? 오소P라고 불러줘~」

  「엄연히 상사고 선배인데 그럴 순 없죠.」

  「그래도 동갑이잖아~ 난 쵸로P랑 친해지고 싶다궁~」

  「친한 척 말아주시죠.」

 내가 네 녀석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친해지고 싶으면 네 녀석이 국장한테 가서 혼나라고.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쉬다보면 오소마츠가 와서 치근덕댄다.

  「혹시말야~ 쵸로P~ 주변에 재능있는 녀석 없어? 관객 호응 유도하는 사전MC라든가 필요할 거 같은데.」

  「인맥은 마츠노 PD가 더 넓지 않은가요.」

  「쳇. 계속 마츠노라 부르네. 이제는 사전MC로 부를만한 지망생은 잘 모르니까. 게스트로 부를 급이거든.」

 하긴. 메인PD면 영향력이 꽤 되니까. 저런 것도 빠른 승진의 영향인가. 솔직하게 부럽네.

  「저번에 너네 형도 꽤 재밌었는데」

  「절대로! 안 데려올거니까요!」

 카라마츠 형이 사전MC 알바를 와서 했던 안쓰러운 발언과 관객의 썰렁한 발언들, 그리고 혼자 배꼽잡고 웃었던 오소마츠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그러다, 어제 쥬시마츠가 데려온 카라쨩이 생각난다.

  「마츠노 PD, 동물...이라도 괜찮은가요?」

 

  「우와아!!!이건 뭐야? 쵸로...?」

  「쵸로마츠.」

  「쵸로...쵸로...어려워」

 다음 날. 카라쨩을 데리고 방송국에 온 참이다. 암만 사전MC가 없다고, 그리고 이 녀석이 말을 할 수 있고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서 이렇게 해버려도 되는 걸까. 카라쨩은 귀엽지만, 아직 스타를 알아보는 눈이라든가 생기지 않은 나로서는 불안함이 앞선다. 후, 심호흡을 하고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보 같은 낯짝의 오소마츠가 반겨준다.

  「여! 쵸로P! 하고, 인형? 쵸로P 그런 취미가 있었어?」

 확실히 인형처럼 귀엽긴 하지만...날 그런 취미 가진 녀석으로 몰다니...

  「어제 말씀드렸잖습니까. 사전MC로 동물도 괜찮나고요,」

  「흠, 이 녀석을 사전MC로 삼자고?」

 오소마츠는 찬찬히 카라쨩을 살펴보았다. 카라쨩의 말랑말랑하고 동그란 귀, 선명하게 나 있는 검은 줄무늬, 젤리처럼 보들보들한 발바닥, 푹신푹신한 가슴털, 그리고 귀여운 표정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질 데가 없지 않나?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내민다.

  「음, 뭐라 부르면 될까? 하여튼 잘 부탁해! 난 오소P야!」

 이 녀석한테도 강요하는 구나, 그 애칭.

  「나...카라쨩! 오소삐, 안녕!」

 오소삐? 오소삐라고? 오소마츠가 입을 틀어막는 걸 보고 살짝 질투심을 느낀다. 나도...나도...

  「카라쨩 귀엽다! 오소P랑 쵸로P가 많이 아껴줄게!」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가슴철을 쓰다듬으며 함박미소를 짓는다. 어쩐지 쵸로P를 힘줘서 말한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오소삐...쵸로삐...쵸로삐!」

 쵸로삐 최고오!!!!!!!!!!!!!!!!!!!!!!!!카라쨩!카라쨩!!!!!!!!!!!!!초절 귀엽다고!!!!!!!!!

  「음...쵸로P? 일단 진정하고 말이지. 일 얘기를 해야지?」

 아, 나도 모르게 넋이 나갔다. 오소마츠가 나보고 설명하라는 듯 눈을 찡긋 한다.

  「카라쨩, 어제도 말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 서주는 걸 부탁하고 싶은데.」

 「좋아!」

 과연 이 녀석은 뭘 하는 건지 알고 있는 걸까. 그냥 서 있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울음을 터뜨리면 어떡하지.

  「사람이 너무 많으면...무섭지 않아?」

  「전혀! 난 사람이 좋아! 사람들이 날 좋아해줬음 좋겠어! 쵸로삐처럼! 쥬시처럼! 카라처럼!」

  「스타의 싹이 있는 거 아냐? 사랑받고 싶은 게 스타가 되기 위한 최우선 조건이잖아?」

  「그러면, 카라마츠가 사람들 앞에서 어떤 걸 보여줄 수 있는지 우선 나와 마츠노 PD한테 보여줬음 좋겠어.」

  「응?」

  「마츠노...아아! 오소P한테 보여줬음 한다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버리는 오소마츠를 보며 살짝 좌절하지만, 과연 카라쨩이 어떤 걸 보여줄지 기대되기도 했다. 마치, 아이돌 오디션을 치르고 있는 듯한 긴장감을 혼자 느끼고 있다. 카라쨩은 막대사탕을 집어들더니, 마이크처럼 잡고서 자세를 취했다. 설마, 노래를 부르려고 하는 건가?

  「울지 뫄아아아아~~~~」

 이거 형! 완전 카라마츠 형! 그 짧은 시간동안 뭘 가르쳐 놓은 거야! 아아아아아아! 묘하게 안쓰러운데 귀여운 카라쨩의 한 소절에 오소마츠도 나도 웃음을 터뜨렸다. 특히 오소마츠는 데굴데굴 구르며 갈비뼈 나간다는 소리를 연발하고 있었다.

  「카라가 가르쳐줘써! 다른 노래도 가르쳐줬는데 해도 돼?」

  「응! 해줘!」

 카라마츠 형이 했다면 막았을 것을, 카라쨩이 하니까 참는다. 아니, 오히려 잘했다며 부비부비 하고 싶을 정도니까.

 그 뒤에는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아기 호랑이가 트로트를 느낌을 살려가며 부르는 모습이라니. 그 소리에 이끌려서 근처를 지나가던 다른 사람들도 문을 살짝 열고 들여다보다 놀라고선 주저앉아 카라쨩의 공연을 보고 있었다. 단순히 트로트만 부르는 게 아니라, 카라마츠 형에게서 배운 똥폼잡는 매너가 섞인게 오히려 귀여움으로 작용했는지 사람들은 연신 귀엽다는 소리를 해댔다. 아, 이것이 스타 탄생인가? 나 지금 스타 탄생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건가?

  「이거 보니 충분히 사전MC로 써도 되겠는데? 오히려 방송 중간에 투입해서 주목을 끄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거 같아.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선에서 말이야.」

 오소마츠가 어깨를 두드린다.

  「자 글면 쵸로P, 우리 프로의 사전MC 및 분위기 메이커 역인 카라쨩을 프로듀스 하는 역, 맡겨도 되겠지? 우리 프로의 조연출이자 카라쨩의 프로듀서로서 역할을 다해줘!」

 언제나 엉겨붙기만 하던 오소마츠였지만, 지금만큼은 상사에게 인정받은 기분이 들어서 뿌듯했다. 이게 다 카라쨩 덕분이야.

  「좋아! 오늘은 카라쨩이 좋아하는 생고기 잔뜩 먹자! 앞으로 잘해보자~ 카라쨩!」

  「응응! 쵸로삐!」

 아아아아! 너무 귀여워!

 카라쨩을 안아다 부비부비했다. 가슴털이 부드럽게 스치는 느낌이 기분이 좋았다. 카라쨩도 거기에 맞춰 그르릉거렸다. 아마도 기분이 좋은 거겠지. 함께 호랑이 아이돌을 꿈꿔 보자고!

  

 드디어 카라쨩이 처음으로 무대에 선다. 쥬시마츠도, 카라마츠 형도 오늘은 카라쨩을 위해 방청객으로 와주었다. 카라쨩에게 반짝거리는 보타이를 매주며 내가 더 긴장되어 심호흡을 한다.

  「괜찮아, 쵸로삐!」

 발바닥의 젤리로 내 손을 톡톡 두들겨주는 카라쨩에게 힐링받으며 첫 무대가 부디 성공적이길 빈다. 아마도, 방송을 탈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SNS에서는 제법 화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해보면서 카라쨩과 마주보고 파이팅을 해본다. 카라쨩이 종종거리며 무대로 달려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앞으로도 이렇게 함께 일할 수 있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Posted by 하리H( )Ri
2016. 6. 27. 04:09

[카라른/쵸로카라]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7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커플링을 써놓았지만 테이스트는 지극히 약한 것입니다...ㄷㄷ
※캐붕,글솜씨없음주의

※세 달 만에 써서 죄송합니다. 내용 구상이 잘 안되었사옵니다(굽신굽신) 어차피 아무도 안 보니까 몬다이나이

※5화 카라마츠 사변을 기반, 고통받는 카라마츠,,,등등

 

※변변찮은 타이틀 이미지 추가합니다~

 

 


 

 

 
 
 

(쵸로마츠 시점)

 

 

 

나이가 들수록 익숙하지 않은 것을 대할 땐 방어 자세부터 취하고 본다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은 어린 시절엔 그런 것일수록 호기심을 가지고 한 발짝이고 두 발짝이고 나아갔다. 그 결과 사고를 엄청 치고 다녔지만 무구했던 그 시절에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들은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 썩을 동정에 백수지만 나이는 입으로든 뒷구멍으로든 먹었는지 익숙하지 않은 일들이 생기면 당황하거나 짜증을 내는 등 방어적인 자세부터 취하고 봤다. 다가가더라도 소극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한이라는 말로 포장한 내가 피해를 받지 않을 선까지만 다가간다. 그러면서 '이걸로 됐어' 라며 안일해진다. '별 일 아니겠지'라며 거만해진다 

그래서 카라마츠가 위험한 상태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도 어른이니까 언젠가는 얘기해주겠지 하며 기다리기만 했다 

그 결과가, 수없이 손목을 그은 끝에 차도로 뛰어든 카라마츠가 누워있는 꼴이다 

물론 형식상으로는 사고지만 

 

* 

 

토도마츠로부터 카라마츠의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엄마는 기절하듯 쓰러져버리셨다. 이 나이껏 부모님에게 빌붙어 사는 백수들이지만 건강만큼은 자신 있어서 적어도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큰일은 없었으니까. 카라마츠가 잘못 맞으면 죽을 지도 모르는 이것저것을 얻어맞는 일을 당하고도 튼튼해서 그런지 병원에서 치료만 받고 돌아왔을 정도였고. 그런데 교통사고를, 그리고 울먹거리며 겨우 말을 이어가는 토도마츠의 목소리를 듣고 쇼크를 받으신 모양이다. 오소마츠 형은 우리들을 병원으로 먼저 보내고 엄마를 돌보고 왔다. 엄마는 금세 정신을 차리셨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바로 병원으로 오는 건 무리라 오소마츠 형을 병원으로 보내고 당신은 집에서 기운을 차리면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오겠다고 했다. 아마 그 상태에서 카라마츠가 자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엄마도 병원 신세를 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일단 카라마츠의 자해 사실은 아빠에게만 털어놓기로 했다 

 

수술을 마치고 카라마츠는 1인실로 옮겨졌다. 의사가 보여주는 손목의 상처와 내 말에 아빠도 다른 형제들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왜 이제껏 말을 하지 않았어? 형제가 그런 일이 있으면 부모님과 의논하는 게 먼저 아니냐." 

아빠의 꾸짖음에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아마도 말을 하지 않은 건 내 탓, 아니 우리들 탓이기에 우리들이 알아서 해 보려고 하는 책임감도 있었겠지만 우리 선에서 해결할 수 있을 거란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으리라. 

"어쨌건, 엄마를 돌봐줄 사람이 누군가는 있어야 할 테니, 너희는 카라마츠를 잘 지켜봐 주거라." 

"..." 

힘없이 답하는 목소리들. 아무도 아빠를 따라가려는 기색은 없었다. 아빠가 나가자 토도마츠가 카라마츠 옆에 앉아서 카라마츠를 부르기 시작했고 나머지는 병실 어딘가에 앉아서 그저 그 둘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야 병원에서 있으려면 필요한 게 뭔지 엄마 상태는 좀 어떤지 그런 걸 생각해 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다른 형제들은 그런 걸 생각하지 못한 거 같아서, 기분도 전환할 겸 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칫솔이나 팬티 같은 것들을 부탁받고 그 외에도 나름 필요할 듯 한 것들을 생각하다보니 집은 금방이었다. 어제 집에서 병원까지 향하는 길은 그렇게 멀었는데. 카라마츠가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아직까지 의식이 돌아온 건 아니지만... 

 

집에는 엄마 혼자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누워계셨지만 안색은 좋아보였다. 아마도 당신은 괜찮다며 아빠를 회사로 보내신 모양이다. 엄마는 이렇게 무리를 하신다. 철없는 여섯 아들을 상대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걸까 

"아빠는 회사에 가셨어요?" 

"카라마츠가 입원했으니까 입원비 벌어야지." 

"그래도 엄마도..." 

"엄마는 괜찮으니까. 카라마츠가 걱정이지. 토도마츠도. 어제 전화할 때 많이 힘들어보였는데..." 

엄마는 억세다. 하지만 그러니까 우리는 엄마에게 카라마츠에 대한 얘기를 하기 어려웠을 거다. 

"괜찮을 거에요." 

괜찮지 않아요 

"병원에서 좀 지내야 할 거 같으니까 우리들 짐을 먼저 가지러 왔는데, 혹시 엄마 뭐 해드릴 거 있나요?" 

애써 웃어 보이며 말을 한다 

"그럼, 빨래를 걷어주렴." 

지붕 위에 있는 빨래를 걷는 김에 위층 청소를 하고 가기로 했다. 아래층은 엄마가, 위층은 우리들 중 누군가가 하기로 해서 위층은 내가 손대지 않으면 아무도 청소까진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자기 물건을 치워놓을 뿐 

그래서겠지, 카라마츠의 커터칼들이 눈에 띄지 않았던 건 

누군가 그걸 발견했지만 나처럼 카라마츠를 위해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건지는 몰라도 커터칼들은 책장 뒤 야한 잡지들 너머에 널려있는 채였다. 몇 개가 있었는지 세어놓지 않아서 그 사이 더 늘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 커터칼들을 꺼내서 파카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이게 사라지면 카라마츠가 분명 더 불안해하겠지. 

하지만, 남아있다고 해서 카라마츠에게 좋을 것도 없다. 그만둬주길 바라고 있으니까. 

그러다 생각한다 

여기에 커터칼을 숨기면 누구에게 들키지 않을 거라 그는 생각한 걸까? 

손닿기 쉬운 곳이잖아. 빨간 책들이 여기 있다는 것도 언젠가 까발려버렸고. 

그런 일들도 상관없이 여기에 둬도 괜찮은 건가? 

설마. 

그는 이걸로 도움을 청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납치극 이후로 형제들에게 의존하지 못하게 된 그가 보내는 신호로써.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주변에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그 신호들을 눈치 채고 있었으면서 너무도 늦게, 그것도 빙 돌아서 다가가느라 카라마츠의 상처를 막아주지 못한 나를 파카 주머니 속 커터칼들이 찌르는 듯 했다 

 

* 

 

카라마츠로 말할 거 같으면, 의외로 꼼꼼한 사람이다. 지금도 자기 얼굴이 프린트된 탱크톱이나 브리프 같은 걸 직접 만들 정도로 손재주가 있고, 메모만큼은 열심히 해서 학창 시절에 시험 공부할 때 형제들이 돌아가며 카라마츠의 노트를 빌려갔다. 그렇게 필기를 열심히 한 본인의 성적은 정작 바닥을 기어서 역시나 그가 바보라는 걸 증명해줬지만. 수업 노트나 연극 대본의 메모를 보면 무척 사소한 것까지 적어놓아서 가끔 보다가 웃음을 터뜨린 적도 있었다 

 

「↙선생님이 이걸 세 번이나 짜증내듯 외침

유독 강조한 말들↑」

, 이건 시험에 안 나오니까↘」 

「←여기선 힘을 빼고 속삭이듯이

자꾸 오버했다간 다음번엔 지나가는 행인 역을 맡길 거야!(아사노 선배)

... 

"자꾸 오버한대, 집에서 하는 짓 그대로 연극부에서도 하고 있는 거야?" 

오소마츠 형이 낙서들을 넘기며 핀잔주듯 말했다. 

"그보다 카라마츠, 이 정도면 꼼꼼한 거라 말 안 하고 집착이라 하지 않냐?" 

"그래도 이런 걸 적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필기를 들여다봐도 전혀 감이 오지 않는걸." 

조금 주눅 든 듯이 말하는 카라마츠가 안쓰러워 보였다. 

"그래도 우리 중에 중학 데뷔가 가장 화려하잖아, 이런 노력을 해서 얻어낸 거라고?" 

내가 카라마츠를 두둔하고 나섰다. 확실히, 그 시절에는 그를 조금 동경했으려나. 

"?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건 나 아녔어? 우리 중에서 말야." 

오소마츠 형이 태클을 건다. 

"형은 그냥 사고 친 게 많을 뿐이고! 우리가 얼마나 선생님들한테 시달리는 지 알기나 해?" 

짜증을 확 내자 옆에서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도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오소마츠 형은 치하며 입을 비죽댔다. 

 

우리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 큰일을 꼽자면 두 개였다. 먼저, 우리들에게 서열이 강조된 것. 중학생이 되기 전 오소마츠 형이 느낀 바가 있었는지 형제들을 모아놓고 형이라 불러 달라며 떼를 썼다. 귀염성 없는 떼지만 안 그러면 한 대 얻어맞을까봐 그러자 했던 게 어느새 서열 정리로 이어졌다. 입에 잘 붙지 않던 형 소리를 내면서, 쵸로마츠 형이라고 말하는 어색한 동생들의 소리를 들으며 조금씩 집의 분위기를 바꾸어놓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 영향을 가장 받은 건 차남이란 딱지를 받은 카라마츠였다. 그저 형이라고 불리고 싶었던 오소마츠 형과는 다르게 카라마츠는 얼떨결에 두 번째로 큰 형이 되었다. 카라마츠는 그날부터 마음을 달리 잡은 듯 했다. 오소마츠 형을 장남으로 치켜세워주는 것도 동생들을 챙겨주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아무도 그를 떠밀지 않았지만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다며, 이제부턴 멋있는 차남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학교에 들어간 우리 중에 부활동을 먼저 시작한 것도 카라마츠였다. 역시나 그답게 '연극부 선배에게 권유받아 보러 간 무대가 멋있어서 덜컥 입부 신청을 해버렸다'며 생각 없이 들어갔고, 나머지는 카라마츠가 얼마나 버티다 연극부를 나올까 내기를 걸 정도로 그가 부활동을 계속해나갈지 기대하지 않았다. 어느 학교라 해도, 연극부는 제법 공을 들여야 하는 귀찮고 힘든 부라는 인식이다. 무대에 서서 빛나기까지 노력하는 시간들을 감내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거기다 초반에는 가만히 서 있는 나무나 지나가는 행인 같은 거나 하면서 보낼 게 뻔한데 그런 시간들을 눈에 띄고 싶어 하는 타입인 그가 기다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설마, 신입인 1학년에게 주연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그 자리에 카라마츠가 들어갈 줄은 몰랐다. 

잽싸게 내기할 때 '빨라도 1학년 이후'로 바꾼 토도마츠가 수를 써 준건지, 아니면 소음공해라며 욕을 들어가며 연습한 카라마츠의 노력이 인정받은 건지 카라마츠가 주연 자리를 따 낸 것이다 

"다른 녀석들보다 안 떨고 오버라도 생동감있게 한다며 칭찬받았어." 

쑥스러워하며 카라마츠는 주연을 따낸 얘기를 했다. 뭔가 한 듯 한 토도마츠도 그렇고 다들 경악했다. 아무리 학교에서 열리는 작은 공연이지만, 사고 쳤다고 주목받는 게 아니라 연극이란 멋진 무대에 서서 주목을 받는다는 건 처음이었다. 카라마츠도 그런 흥분을 애써 눌러가며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했고 제법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다. 

그 모습이 무척 멋있었다. 차남이란 역할도, 연극의 주연이란 역할도. 그 모습이 내 등을 떠밀었다 

 

사실 너도 되고 싶은 모습이 있을 거야. 

, 이렇게 변할 수 있는걸. 이렇게 될 수 있는 걸.

 

오소마츠 형이나 다른 형제들과 해오던 장난들은 짜릿한 맛이 있었지만, 그런 것들도 중학생이 되고 나자 유치하게 보였고, 혼나거나 놀림 받는 게 되어버렸다. 또래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경기 같은 것들로 떠들썩했고, 축구나 캐치볼을 하며 노는 녀석들, 공부한다며 열심인 녀석들, 부활동에 푹 빠진 녀석들을 보며 자기가 원하는 것이 뭔지 고민하고는 했다. 그런데 나랑 다를 바 없던 카라마츠가 형이 되고, 무대의 주역이 되었다 

그래, 나는...인정받고 싶었어. 마츠노 여섯 쌍둥이 중 하나가 아니라, 마츠노 쵸로마츠라고. 

그 뒤로 날 떠민 카라마츠의 모습은 어느새 잊고 살았다 

노력했지만 발버둥 쳐도 올라갈 수 없는 길을 걸으며 

실연을 알고 

현실을 알고, 

체념을 알고, 

평범함을 원하고, 

그러나 그마저도 얻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수없이 기어오른 벽에서 굴러 떨어지며, 난 점차 익숙하고 쉬운 길들을 고르게 됐다. 

 

* 

 

피 뭍은 커터칼 같은걸 품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 

카라마츠를 동경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커터칼을 만지작거린다. 지금도 가끔은 동경하는 형이지만, 그 형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이 마음을 쑤셔온다. 

그의 신호는 커터칼을 널부러놓은 것뿐일까. 카라마츠니까, 알기 쉬운 표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오히려 커터칼은 손목을 긋다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던져놓은 인상이었고. 그 표지를 찾아서 방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한다. 방 청소 같은 건 진작 잊어버렸다. 서랍에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를 일일이 꺼내 훑거나 카라마츠가 이전에 가져온 투명한 잔을 햇빛에 비춰보며 살펴보거나 하는 부질없는 짓들을 해가며 애를 썼지만 찾을 수가 없다 

나라면 어디에 숨길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숨겨놨지만 누군가 눈치채주길 바라는 장소나 물건은 쉽게 떠올릴 수 없다. 꽁꽁 숨겨놓고 싶은 거라면 잔뜩 있지만. 나만 손대는 취직 잡지 같은 거라면 또 모를까... 

책장으로 시선을 옮긴다. 맨 윗칸에 내가 사다 놓은 구직 잡지들 옆으로 카라마츠의 기타 악보집들이 몇 개 꽂혀있다. 아빠한테 받거나, 폐지에서 주워오거나, 가끔은 자기 돈으로 사오는 악보집들. 폼 잡는다며 핀잔을 줄 때나 카라마츠가 펼쳐놓고 기타 연주를 하고 있을 때 빼곤 그 악보집들을 볼 일이 있기나 했을까 

손을 가져가 악보집들을 꺼내려는데 유독 불룩하게 나온 책이 있다. 그 책을 끄집어내니 조그만 수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수첩을 펼쳐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XXX 

///

   

 

XXXO 

///// //\  

 

카라마츠의 글씨체를 기억하고 있다. 급하게 갈겨 쓴 필기라도 알아볼 수 있도록, 오히려 멋을 조금 부려가며 썼던 그다. 형제들 그 누구도 이런 글씨를 쓰는 사람이 없었고, 한두 장에 적어진 메모를 보니 카라마츠의 것이 맞았다. 휘갈겨댄 날짜와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시들을 보며 오싹하기까지 했지만, 날짜를 더듬어간다. 그 전에도 간간히 날짜가 적혀 있고 빗금이 쳐져 있었지만 납치극이 있었던 날을 기점으로 매일매일 기록된 날짜와 빽빽해져가는 빗금은 빽빽해졌다. 납치극 이후에는 이전에 없던 O표시까지 생겨나 당혹감을 준다 

카라마츠는 무언가를 병적으로 표시해놓고 있었다. 그게 뭔지를 사실은 눈치 채고 있지만, O표시와 주머니 속의 커터칼 개수를 세어보며 비교까지 하고 있지만, 굳이 이게 뭔지를 명확히 하고 싶지 않다. 넘어가는 수첩이 점차 흐릿해지고 동그라미고 빗금이고 구분이 가지 않는다. 실감해버린다. 카라마츠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눈물을 셔츠 자락으로 훔치며 수첩을 넘기고 넘긴다. 그 와중에는 종종 밑줄이 쳐진 날짜가 있었다. 저 날은 분명, 쥬시마츠가 창가에 학알이 담긴 병을 놔둔 날. 그리고 저 날은 지붕에서 나와 카라마츠가 단 둘이 술을 마신 날 

"정말...어디까지 상냥한 거냐고...멍청이가..." 

자살 기록이나 해대는 와중에도 형제들이 잘 해줬던 날들을 따로 표시해놓는 바보다. 우리들에게, 나에게 실망한 거 아니였냐고. 실망해서, 자기가 힘들다는 얘기를 꺼내지 못한 거 아니였냐고. 그런 주제에 위로받았다며 엷은 미소를 지었을 그를 상상한다. 그런 점만큼은 상냥한 형이다. 형제들을 사랑하고, 걱정 끼치고 싶지 않고, 있는 폼 없는 폼을 잡아가면서까지 의지할 수 있는 형을 어필하고 싶었던 카라마츠. 그에게 건넸던 위로는 아주 작지만 분명히 전해졌다. 

 

조금 대담해져볼까. 

병원에서는 나머지 형제들이 카라마츠를 지켜주고고 있다. 조금 더 느긋이 돌아가도 될 거야 

가방에 병원에서 지낼 때 쓸 옷가지나 칫솔이 같은 걸 쑤셔 넣은 뒤, 고등학교 졸업앨범과 중학교 졸업앨범을 펼쳐 몇 개의 연락처를 옮겨 적는다 

집에서 전화하면 엄마가 걱정하실 테니까 공중전화로 해야겠지. 

카라마츠를 알고 있는 반 친구나 연극부 동기들 전화번호를 주머니에 넣고, 커터칼들은 검은 봉지에 넣어 다락 한 구석에 숨겨둔다. 이따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향하겠다는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카라마츠는 분명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일이 있다. 바보니까 눈치 채지 못하거나 잊어버리고 넘긴 일일수도 있고, 자기가 꼴사나워보일까봐 말하지 않은 거일수도 있고...그게 최근 어떤 일을 계기로 카라마츠를 조여오기 시작했고, 우리들이 카라마츠의 도움을 무시하고 험한 짓을 해버린 것으로 걷잡을 수 없게 된 것이리라 

내 뇌 속에선 그동안 알고만 있고 신경 쓰지 않았던 일들을 연결해가며 대강의 시나리오를 펼쳐내고 있다. 거기에 운이 좋으면 이 연락처들이 그가 잠 못 이루게 된 사건을 안내해 줄 것이다. 진작 알아주었다면, 그리고 시답잖은 납치극이나 벌린다고 비난하지 않았더라면, 일은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카라마츠 형을 괴롭혀왔던 일들을 찾아서 카라마츠 형은 나쁘지 않다고 말해줘야 해. 멋대로 짊어진 형의 자리지만, 형은 그 자리를 지키려 노력해왔으니까. 동경하는 형일 때도 있었고, 형은 커녕 멀찍이 떨어져 남 취급을 하고 싶을 정도로 안쓰러운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눈을 뜨면 이렇게 말할게.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공중전화부스에 들어가 수화기를 집어 들고 동전을 집어넣어 버튼을 누른다 

수신음이 가더니 알듯 말듯한 목소리가 전화를 받는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서 나의 용건을 얘기해나간다 

자기는 잘 모르겠다며 시답잖은 안부나 묻는 말이 되돌아왔다. 

몇 번 동전을 집어넣고, 수신음만 울리거나 잘못된 전화번호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꿋꿋이 수화기를 들었다 놨다했다. 

이윽고, 연결된 전화에서 원하는 답을 수화기 너머에서 들을 수 있었다.

  

 

 

 

 

 

 

 

* 

 

 

 

  

 

 

 

 

 

 

새하얀 풍경 속에 내가 있다  

아니, 거기에 내가 있다는 건 인식뿐으로 몸이 있다는 감각은 전혀 없지만. 

그저 텅 비어 있는 세상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있다는 걸 느낀다. 

그 뿐으로 다른 게 있진 않은 것 같다. 

새하얀 풍경은 갑작스레 검게 물든다 

새하얀 공간보다도 내가 옅어져가는 기분이다. 

느껴지지 않는 감각을 붙잡아서 내가 여기 있는 걸 확인받고 싶다. 

한편으론 그냥 내가 있다는 인식을 필사적으로 붙잡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어 혼란스럽다. 

이런 텅 빈 공간 속에서 명확한 것은 딱 하나,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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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디어 후반부가 시작되었습니다. 따란!......

4화까지 쓰고 한 달 지나 6화까지 쓰고 세 달이 지나버렸습니다.

의도치 않은 휴재로 조금 실력이 나아지기는개뿔 방치했더니 더 의미불명의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거 말이 이어지는 작품이지 각각 얘기에서 거의 따로 놀고 있는 거 아닌가 싶고 ㅋㅋㅋㅋ

카라른인 주제에 쵸로카라인 주제에 그런 느낌 하나도 안 나고ㅋㅋㅋㅋㅋㅋ 뭐냐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더욱 의미불명인 타이틀을 직접 그려서 걸었더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느낌으로 반쯤 미친듯이 썼습니다. 의미만 통하면 퇴고는 안 할 거 같네요.(어이)

요컨대 분위기입니다. 분위기만 느끼고 가시면 됩니다...(도망)


쉬는 동안 놀랍게도 덧글 달아주시며 잘 보셨다 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진짜 감동먹었는데 어째서...?라는 의문도 들고 했습니다만 덕분에 쓸데없이 의욕과 책임감과 중압감이 늘었습니다.

방치하려 했던 건 아니지만 자기결말을 위해서, 그리고 다음 화를 기다려주시는 분들을 위해서(...?) 대강 짜여진 틀을 가지고 8월 초까지 결말을 향해 달려갈 예정입니다! 

빈 잔은 12화+외전으로 갈 거 같구요...분량은 매 화마다 들쭉날쭉 할 거 같습니다. 퀄은 늘 그렇듯 망퀄...

쓰는 와중에 통온에서 금손님들 소설도 데려와 읽어서 더 성장할 수 있을런지...ㅋㅋㅋㅋ

봐주시는 분이 없어도 상관 없어요. 자기만족입니다 늘...후후후...

그럼 이번 주 내에 8화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아무도 안 봤다고 한다)

 

 

Posted by 하리H( )Ri
2016. 3. 6. 05:56

[카라른/ 쵸로카라 편]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3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캐붕,글솜씨없음주의

※5화 카라마츠 사변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 뒤의 시간대는 뒤죽박죽으로 적용되어 있습니다.

쵸로마츠, 21화를 보고 나니 21화 당시의 느낌으로 묘사하고 싶네요. 드디어 쓰레기를 인정했어!(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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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노 가 여섯 니트들은 대부분 늦게 깬다. 누구 하나 제대로 된 녀석이 없지. 그렇다고 나도 거기서 예외는 되지 않는다. 일찍 일어난다고 해봤자 아이돌 콘서트나 굿즈를 위해 순번을 기다려야 하는 날에나 일어날 뿐이지. 이전에는 나만이 멀쩡한 녀석이라고 생각해왔다. 다른 형제들의 바보같고 안쓰러운 행각을 지켜보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던가. 나도 녀석들과 다를 바 없구나, 깔끔하게 인정했을 때 내게 평화가 찾아왔다. 내면의 평화, 랬던가. 이딴 현상을 유지하고 있대도 좋다고 생각해버리는 자기가 한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원해졌다. 다만, 그건 자기에 국한된 일이다. 나에게 내면의 평화가 찾아오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놓치던 것을 찾아내는 건 겉보기엔 좋은 일이지만, 꼭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좋지 않은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내면의 평화는 흔들리고 거기에 휩쓸려 들어갈 뿐이니까.

 

하여간, 오늘 아침에는 내면의 평화를 다시금 찾아볼까 하고 다른 형제들보다 먼저 일어났다. 토도마츠는 아침 조깅을 한댔던가, 스마트폰 알람에 '09:00 조깅♥'이라는 알림이 떠 있다. 시간은 아침 일곱 시, 터무니없이 일찍 깼군. 아침밥은 한참 멀었고 배가 조금 고파져서 우유를 한 잔 마시고 방으로 돌아왔다. 나와 똑같이 생겨먹은 다섯 녀석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내 잠을 방해하는 주범 쥬시마츠와 오소마츠 형은 퍼질러 자고 있고, 토도마츠는 몸을 틀어 배시시 웃으며 자고 있다. 이치마츠는 이불 밖으로 발을 삐죽 내밀며 자고 있다. 눈에 띄는 건 카라마츠, 눈에 다크서클이 져 있고 신음소리를 내며 불편한 듯이 자고 있다. 사실 최근에 일찍 깰 때마다, 카라마츠는 저런 상태였다. 그 최근이 카라마츠의 납치극 즈음이었던가. 아니, 그 전에도 저런 모습이었다. 카라마츠는 단순한 녀석이니까 잠도 달게 자고 일어나는 쪽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잠을 설치거나 하는 일이 잦은 모양이다. 그래도 카라마츠는 그걸 형제들에게 상담해오지 않는다. 안쓰러운 말을 한 번 줄이고 꺼내줬으면 좋으련만, 그걸 하지 못하는지 하지 않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하지 않는 쪽이겠지. 납치극 이후에 카라마츠는 언뜻 보기에 그 전과 다를 바 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형제들과 조금 벽을 쌓고 있다는 인상이다. 자기의 본심을,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고 삼키는 모습을 눈치챈 게 나의 벽이 부서진 이후다. 그 전에도 카라마츠의 모습을 관찰해왔지만, 내가 나를 제대로 의식하고 나서야 카라마츠의 상태를 제대로 눈치채다니, 바보같달까 무심하달까.

 

창가에 있는 빈 잔과 학알이 가득찬 유리병이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난다. 병 위에는 학이 여섯 마리 올려져 있는데, 아무래도 창문을 열면 바람이 불어 떨어지겠지. 용케 방에서 떠들썩하게 형제들이 놀아도 병이나 잔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종이학은 떨어지기 쉽잖아. 안 쓰는 화분받침을 병 위에 올리고, 거기에 학을 조심스럽게 배치했다. 그리고는 잔과 병의 먼지를 털고 잔은 마른 행주로 닦았다. 잔은 안까지 닦아놓으라고 말했건만 카라마츠는 바깥만 슬쩍 닦아놓고선 그대로 방치한다. 잠깐 잔에는 학알들이 차있었지만 병으로 옮겨담은 뒤에 다시금 잔은 빈 상태로 돌아갔다. 술도 잘 마시지 못하는 카라마츠가 술잔을 가져왔을 때, 도대체 저걸 어디에다가 써먹을 생각인지 궁금했는데, 카라마츠는 어디에도 쓰지 않았다. 장식으로 쓰고 있다, 라는 말은 궤변으로 녀석은 그냥 거기에 잔을 방치하고 있을 뿐이다. 술을 담아본 적 없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잔은 어딘가 안쓰러워 보였다. 오소마츠 형이 한 번 여기다가 술을 마셔보겠다고 했을 때 단호하게 거절하던 카라마츠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면서도 창가에 두고 그저 보고만 있을 뿐이다. 달빛을 마시고 싶다던가 하는 말도 그저 말 뿐, 내 잔소리에 못이겨 먼지를 털어낼 때 외에는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이다.

 

이전에 나라면 답답해 했겠지. 쓸모없는 물건을 창가에 올려놨다가 깨뜨리면 어떡할거야. 누가 다치면 어떻게 할 건데. 부엌에 갖다좀 놓으라고. 창가에 놔뒀다가 깨져도 난 몰라. 이렇게 따져들었을거다. 자기가 부족한 녀석인 것을 인정하고 난 뒤에 카라마츠가 잔을 저기에 올려둔 거라 이 잔소리가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다만 부족한 녀석인걸 인정하기 전의 나라도 아마 카라마츠에게 심한 소리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카라마츠가 멀쩡한 상태가 아닌 건 그때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땐 카라마츠가 여전히 삐져있을 거라 멋대로 착각한 거지만. 

 

방을 나와 다락방으로 들어갔다. 다락방 한 켠에 다른 형제들에게 방해받지 않게 소중한 굿즈들을 모아놓은 상자를 꺼냈다. 그 중에 냐쨩이 프린트된 일본주 병을 꺼낸다. 한정상품, 미개봉 상태라 아마 팔려고 하면 사는 사람도 있을 거다. 양보할 생각은 없지만. 술은 좋아하니까 마시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콜렉터로서 열어서 마셔버리기엔 아까우니까 여기에 박아둔 상태다. 냉장고에라도 넣었다간 누가 마셔버리고 병을 엉망진창으로 버려둘 지 모를 일이니까. 병목을 손가락으로 잡고 살짝 흔들어본다. 찰랑-찰랑-술이 병에 부딪히는 소리가 제법 좋다. 그 소리를 들으며, 큰 결심을 한다.

 

방에 돌아오니 토도마츠의 알람 소리가 들린다. 답지 않은 자연의 소리가 울려퍼지고, 토도마츠가 잠을 깬다.

"라이징따르스키형, 잘 잤어?"

"누가 라이징따르스키냐. 아침부터 기분 나쁘게시리."

"헤헤. 그보다 일찍 일어났네. 다시 취활이라도 할 셈이야?"

"아니. 그냥 어쩌다보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쵸로마츠 형은 생각이 참 많아― 뭐, 그것도 쵸로마츠 형이지만."

내면의 평화를 찾았다, 자기 자신을 드디어 인정했다, 이렇게 멋대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들 나는 나인가. 토도마츠의 말은 조금 아프게 들렸다.

"카라마츠 형, 어젯밤도 잠을 설치더라. 덕분에 잠을 제대로 못 잤어."

"뜬금없이 뭔 소리야."

"요즘 신경쓰고 있잖아, 카라마츠 형에게."

"눈에 띄게 피곤해하고 눈에 띄게 피곤하게 만드는 녀석이니까 그렇지."

토도마츠는 헤에-그러더니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쵸로마츠 형은 조금 더 내려놓는 게 좋다고 생각해."

"여기서 내려놓을 게 뭐가 더 있다고."

"나쁜 의미로 말하는 거 아니니까. 걱정할 만큼은 아니지만."

이러고선 토도마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외면을 신경쓰는 녀석이니 세수도 하고 아마 뭐라도 바르고 조깅하러 가겠지. 그것보다 내려놓으라니, 방금 제법 큰 결심을 하고 온 참인데. 내려놓고 온 참인데. 막내 녀석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까 조금 분하다.

 

니트들이 모두 일어났다. 엄마가 아침밥을 차려주고 여섯 형제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밥을 먹는다. 밥을 먹건 술을 마시건 대체로는 누구 하나 빠지는 일 없이 여섯이서 하는 게 익숙해져 있다. 전에 이치마츠랑 단 둘이 밥을 먹을 때, 평소와는 달리 무거운 분위기여서 둘이 먹는 건 별로 좋지 않으려나 생각한다. 둘이 싸웠던 것도 아닌데 여섯이서 먹고 마시는게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랬을거다. 밥을 먹고 나니까 나도 이치마츠도 좀 풀어져서는 이것저것 얘기를 했었으니까. 밥을 먹고 나서는 오소마츠 형은 빠칭코, 토도마츠는 비밀이라고 말하면서 외출, 쥬시마츠는 이치마츠와 함께 야구를 하러 나갔다. 집 안에는 카라마츠와 나만이 남았다. 카라마츠도 안쓰러운 가죽 점퍼를 입는 걸 보니 아무래도 외출하려는 모양이다.

"쵸로마츠, 오늘도 잔을 닦아준건가."

"워낙 안 닦아놓으니까 말이지. 몇 번을 얘기했는데."

"고마워."

예상치 못한 반응이다. 평소에는 닦아놓았다고 내가 먼저 말하고 카라마츠는 그저 끄덕일 뿐이었다. 오늘은 반대의 경우인가. 쥬시마츠가 저 잔을 처음으로 채운 뒤로,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걸까. 카라마츠의 표정은 살짝 지은 미소. 그 속에는 무표정. 변한 게 있는 지 없는 지 모르겠다.

"카라마츠,"

"왜 그러나, 브라더."

"이 술잔, 써도 돼?"

"응?"

"이 술잔, 써도 되냐고."

술잔을 살짝 들어올렸다. 변화구가 아닌 직구를 던진다. 변화구를 던지면 카라마츠는 못 알아들으니까. 마음을 고려한다면 변화구를 던져야 하지만, 알까보냐. 카라마츠의 표정은 조금 일그러졌다. 그도 그럴게, 그동안 저 잔은 카라마츠가 쓰지 못하게 했으니까. 오소마츠 형의 부탁을 거절할 정도로.

"아껴뒀던 술을 마실건데, 투명한 술잔이라야 술을 제대로 보고 즐길 수 있을 거 같거든. 집에 있는 다른 잔은 투명하질 않잖아."

"......"

"싫다면 거절해도 좋아. 너가 아끼고 아끼는 거라면, 그냥 저대로 두고 싶은 거라면 억지로 쓰고 싶다곤 말하지 않을게."

조금 세게 나갔다. 괜히 돌려서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다. 딱히 카라마츠를 위해서가 아니다. 나란 녀석은 이렇게 직구를 날리는 쪽이 훨씬 편하니까 그럴 뿐이다. 답답한 건 싫다.

"...깨끗이 쓰고 다시 돌려놔준다면 괜찮아."

카라마츠가 어렵게 답을 꺼낸다. 좋은 표정은 아니라 살짝 미안해진다.

"그리고 하나 더 부탁할게."

"뭔가."

"술, 혼자 마시면 쓸쓸하니까 같이 있어줘."

카라마츠가 갸웃한 표정을 짓는다. 이런 부탁은 잘 하지 않는다. 혼자 하는 거 아니면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거나 하는 건 여섯이서 하는 게 보통이다. 둘이 있는 일은 그다지 흔치 않으니까.

"한정판으로 나온 냐쨩 프린트 술이라 혼자 마시고 싶은데, 카라마츠에게 특별히 맛보여줄테니까. 술잔 빌려준 답례, 라고하면 좀 억지지만."

술잔을 빌리는 것도 술을 잘 못 마시는 카라마츠에게 술을 주겠다고 하는 것도 모두 내 억지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억지를 부린다.

"그러면 고맙게 받아들이지. 아끼던 술을 준다는 거니까."

카라마츠는 폼잡는 투로 대답한다. 저렇게까지 폼을 잡으면서 세우는 벽을 무너뜨리려면, 강하게 미는 걸로는 안되는 거라고 다시금 느끼게 된다. 카라마츠가 밖으로 나가는 걸 보며 벽을 무너뜨릴 방법을 생각하려 머리를 굴린다.

 

아무도 없던 방에 먼저 들어온 건 토도마츠. 나를 쳐다보더니 씩 웃는 게 기분나쁘다.

"쵸로마츠 형, 아침보다 좋은 표정 하고 있네? 설마 ㄸ..."

"어지간히 좀 해라, 토도마츠. 태클 거는 거는 포기한 거 아니거든."

"농담이야. 뭔가 좀 홀가분해 보여서."

의외로 눈치가 좋단 말이지, 막내 녀석.

"쯧. 그래보인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난 홀가분하지 않거든."

지금 제법 중대한 일을 앞두고 있으니까.

"형은 좋겠다~ 난 지금 전혀 감이 안 잡힌단 말이지."

"뭐가?"

"비밀."

왜 얘기한거냐, 약아빠진 녀석아.

"어쨌든, 잘 되길 빌어~"

그 말에 맞춰서 나갔던 나머지 형제들이 현관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다들 일찍 잠들었다. 다들, 이라곤 했지만 나와 카라마츠는 잠들지 않았지만. 좌쥬시 우오소를 확인하고 이불을 빠져나왔다. 카라마츠도 토도마츠와 이치마츠를 확인하고는 이불을 빠져나와 잔을 들고선 부엌으로 내려갔다. 난 다락방에서 냐쨩 프린트가 되어 있는 일본주를 꺼내든다. 중요한 건 내용물이라고 하지만 이 경우에는 반대. 포장이 훨씬 중요하다. 사실은 내용물이 중요하지만. 병을 들고 지붕으로 기어 올라간다. 뒤이어 카라마츠도 부스럭대는 소리와 함께 지붕으로 올라온다. 카라마츠의 손에는 웬 봉지가 들려있다.

"형제가 아끼는 술을 대접한다니, 안주거리라도 내놓는 게 예의가 아닐까 해서."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그보다 술잔은 하나네?"

"아, 가져올까?"

"아니, 됐어. 어차피 카라마츠...형은 별로 안 마시잖아?"

"형...이라. 간만에 형이라고 불러주는 군."

"형이 형다워야 말이지. 그래도 둘만 있는 건 오랜만이니까 형 대접을 해줘야지."

"그런가."

술 뚜껑을 연다. 솔직하게 아깝다는 생각도 살짝 스쳤다. 그래도, 아끼는 걸 내어주지 않으면 진심은 통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마음을 굳게 먹는다. 잔을 들어 술을 따른다. 술잔은 드디어 처음으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덕인지 달빛을 받아 술잔은 빛나 보인다. 나는 그 잔을 카라마츠에게 내민다.

"자."

"아끼는 술 아닌가, 먼저 맛보는 게 좋지 않아?"

"형이 아끼는 술잔이잖아. 처음으로 술을 담아보는 건데, 형이 먼저 마셔봐야지. 그 잔을 놔둘 때, 달빛을 마시고 싶다며? 딱 거기, 달이 들어앉아 있잖아."

카라마츠는 술잔을 멍하니 보더니, 조금씩 들이킨다. 술의 쓴 맛이 전해져 오는 것인지 눈을 찡그리며 그 얼마되지 않는 술을 꽤 시간을 들여 마신다.

"이제는 내가 다 마셔도 되지? 형은 한 잔으로도 벅차 보이니까."

"그래. 대신에 안주라도 먹으며 같이 있어줄테니까."

안주거리로는 육포를 가져왔다. 카라마츠답다. 육포를 집어들기도 전에 카라마츠는 술을 따라 내게 건넨다. 같은 잔에 술을 나눠 마시는 형제라. 나는 잔을 살짝살짝 돌리다 카라마츠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그가 입을 댔던 곳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댄다. 감촉은 그다지 다를 바는 없지만, 묘한 감정은 맴돈다. 술은, 뭐 특별하지 않게 평범한 맛이네. 분위기는 평범하지 않지만. 술은 분위기로 먹는 거니까, 오늘은 조금 달면서도 쓴 맛이다. 카라마츠는 그런 나를 보면서 육포를 질겅이고 있다.

"카라마츠...형은 말야."

"응?"

"솔직한 모습이라, 부러웠어."

"훗...그게 무슨 소리..."

"나야 요즈음에나 솔직해졌지만, 형은 늘 자신의 진심을 그대로 부딪혀왔잖아?"

"......"

"그게 이상한 데로 가서 안쓰러울 때도 있지만, 솔직함만큼은 솔직히 부러웠다고."

카라마츠는 답이 없다.

"솔직하고, 우리 형제들 중에선 그나마 상냥한 편이고, 묘하게 신경써주는 구석도 있고 하니까."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나와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카라마츠. 술을 한 잔 더 따라 단숨에 마셔버린다.

"형 취급을 잘 안해주고는 있지만, 그래도 난 형이 좋아."

지금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걸까. 카라마츠의 벽을 무너뜨려 보겠다고 하는 말들이 뭔가 이상하기 짝이 없다.

"형이 말하지 않고도 보내는 메시지들, 읽고 있으니까. 나한테만이라도 형의 진심을 얘기해줬음 좋겠어."

그래, 카라마츠가 지금 손목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팔을 걷어붙이지 않은 것도, 아무도 건들지 않는 벽장 뒷편에 내던져진 커터칼도, 가끔 밤중에 사라지는 것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것도 모두모두 알고 있으니까. 내게는 기대줘. 원망하는 거래도 상관없어. 받아줄 테니까. 이 말들은 입 안에서 맴돌고 있다. 다만 입 밖으로 내보낼 때, 이 말들은 나를 홀가분하게도 할 수 있지만, 카라마츠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 될지도 모른다고 내 이성이 붙들고 있다. 직구는 변화구로 바뀌어버렸다. 여전히 직구지만, 직구 속에는 생략이 많다.

"진심이라, 그렇지. 난 형제들을 사랑하고 있다. 그건 이제까지도, 지금도 변하지 않은 진심이야."

카라마츠가 다물고 있던 입술을 떼서 얘기한 말은 이것. 이것도 카라마츠의 진심이겠지만, 내가 원했던 진심하고는 조금 다르다. 카라마츠가 의지해줬음 좋겠어. 자신의 약한 면을 드러내줬으면 좋겠어. 아니면, 차라리 형제들을 사랑하고 있는 그냥 단순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인 카라마츠인 채로 있어주길 바랐는데. 카라마츠의 잔은 비었다. 카라마츠의 시각에서는 말이지. 그러나 내 시각에서는, 카라마츠의 잔은 어둠으로 가득차고 있는 것이다. 그걸 비었다고 얘기한다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속에 든 내면의 어둠은 어디까지고 카라마츠를 붙들고 있다. 그리고 그 어둠은, 우리 형제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거겠지. 카라마츠의 몸을 당겨 끌어안았다. 지금 나는 카라마츠의 벽을 무너뜨릴 수 없다. 다만, 이렇게라도 나의 사랑이, 형제들의 사랑이 카라마츠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 달이 잔을 채운다. 나의 진심도 잔을 채우고 있기를.

 

 

 

창가에는 깨끗이 씻은 빈 잔이 놓여 있다. 그 옆에는 학알을 채운 하트 모양 유리병이, 그리고 그 옆에 새로이 하시모토 냐의 프린트가 된 일본주 병이 놓여 있다. 일본주 병은 옆의 잔이나 병처럼 반짝 빛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쩐지, 희미하게 햇빛을 반사시키는 그 병도 반짝 빛나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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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분량이 길어지고 있나요? 그런 거라면 좋을텐데. 드디어 제 느낌으로, 대화가 적고 생각이 많이 들어간 스타일의 쵸로마츠 편이 나왔습니다. 쵸로마츠 편은 꽤 일찍부터 구상하고 있었는데. 소재는 쥬시마츠 편이 먼저, 세부 내용 구성은 쵸로마츠 편이 먼저 나왔습니다. 커플링 느낌도 더 살아있고. 다만 필력이 딸려서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듯 써졌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리고 의외로 토도마츠 많이 나왔네요. 토도마츠, 다음 화 메인입니다(사전예고제 ㅋㅋㅋㅋ) 어쩌다보니 소설로는 쵸로카라가 고통받는 쵸로만 나온 걸 봐서 (연중카라라든가 봤는데) 이번 쵸로는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내가 썼으니까 행복하게 해줘야지! 그러면서 카라는 불행하게 꼴아박는 나쁜 작가입니다. 

  

  

 

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