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30. 23:22
*오소마츠상 24화 기반
*오소마츠 시점의 오소카라?





넌 이별을 고하지 않았다.
내가 등지고 외면한 상황들을 차례차례 정리하고선 너도 떠나버렸다.
물론 등 뒤로 「잘 있어」란 말을 던지고서 갔지만,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가지 않았다.
저기, 아직도 화난거야?
내가 홧김에 쥬시마츠를 때려서?
쵸로마츠의 배웅에 나서지 않아서?
나보고 정신 차리라는 토도마츠에게 멍을 남겨서?
이유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정신차리라며 형을 때린 네가,
맏형이라면 동생들을 잘 챙겨줘야하는 거 아니냐던 네가,
나 대신 형 노릇을 한 네가,
말없이 가버린 네가,
날 봐주지 않은 네가,
지금은 너무 미워.

사내 놈들 여섯이 북적대던 집에 혼자만 남게 되자 그간 한 녀석 한 녀석 떠나갈 때 이상으로 쓸쓸하다.
우리가 쓰던 방은 분명 크지 않은 방인데도 혼자 쓰려니 너무 크다.
이불도, 쓸데없이 많아진 베개도, 곳곳에 남은 여섯의 흔적도 나의 쓸쓸함을 더해준다.
동생들이 없는 나란, 여섯에서 하나뿐인 마츠노 오소마츠란, 이렇게 보잘 것 없었나 싶었다.
매실장아찌같이 쪼글쪼글하고 작은 내 자의식은 오늘따라 더 보잘 것 없어보인다.
주머니에서 데굴데굴 그것을 굴리다 바닥에서 구슬치기를 하듯 탁 튕긴다.
벽에 부딪혀 제멋대로 통통튀던 자의식은 책장 위에 덩그러니 놓인 기타 케이스에 부딪히곤 내 품으로 돌아온다.
그러고보니, 카라마츠가 얼굴을 주먹으로 갈겼었지.
맞았을 때는 제법 아팠는데 아픔이나 멍은 금방 사라졌다.
애초에 그 녀석이 있는 힘껏 날 때리긴 했을까.
그러나 저러나 망할 자식인건 변치 않지만.

쵸로마츠의 취직 축하 파티가 있던 그날.
어떤 마음이었는지 하나만 고를 수 없을 정도로 내 맘 속은 복잡했다.
그래도 가장 크게 느꼈던 건 배신감이었을까.
이 집을, 형제들을 떠나간다니.
그게,
축하받을 일이야?
나의 짜증은 눈치없는 쥬시마츠를 향했고 그 결과 난 카라마츠에게 얻어맞고서 바깥으로 끌려갔다.
"형이잖아? 쵸로마츠를 제대로 축하해주진 못하더라도 화풀이하는 건 좀 아니잖아?"
화도 나 있고, 걱정도 하는 듯한 얼굴로 나를 설득했다.
"시꺼! 니가 뭘 안다고 지껄여대!"
아까의 복수로 날린 주먹이 카라마츠의 배에 꽂혔다.
카라마츠의 콜록거리는 소리에 앗차 싶었지만 사과는 할 수 없었다.
"오소마츠, 오늘은 먼저 자러 가."
카라마츠는 표정을 찡그리면서도 진지하게 대응했다.
아프면 화 내라고.
한 번 대판 싸우자고.
먼저 어른이라도 됐다는 거야?
기분 나빠.
그런 동생한테 애취급 받았다 생각해버리는 나도 기분 나빠.
먼저 방으로 올라간 뒤부터 난 동생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이렇게 혼자 남겨진 후론 지붕에 자주 올라간다.
지붕에 주로 가던 멤버는 카라마츠, 이치마츠, 쥬시마츠였지.
특히 카라마츠는 혼자서 기타를 들고 올라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나도 그렇게 하면 기분이 좋아질까.
진작 기타 좀 배워둘걸.
방으로 가서 책장 위의 기타를 꺼낸다.
기타를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으면, 그런다고 달라진 것 없는 걸 알면서도 내가 달라진 기분이 든다.
기타 케이스를 열고 카라마츠의 기타를 꺼낸다.
녀석이 선글라스를 안쓰러울 정도로 반짝반짝 닦듯이 기타도 잘 손질되어 있다.
줄을 튕기면, 뎅-뎅-거리는 진동이 조금 묘하다.
여러 줄을 튕겨 소리를 낸다.
디리리링-
무언가 노래가 만들어진 거 같은데?
혹시 나 천재인가?
하지만 그 뿐으로, 다른 음을 내거나 할 수가 없다.
아는 노래는 기타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엔카나 유행가 뿐이라 분위기만 내는 거에도 도움이 되질 않았다.
녀석이 불렀던 노래가―
"여섯 쌍둥이로 태어났다~"
쥬시마츠와 함께 부른 그 노래가 있었지.
하지만,
가사가 잘 떠오르질 않는다.
한참 폼만 잡다가 기타를 정리하고 평소와 같이 마을을 응시할 뿐이다.

"젠장, 망할! 오랜만이다 짜샤!"
격하게 반겨주는 치비타의 인사가 어쩐지 오랜만에 듣는 듯 하다.
"잘 지냈냐, 오소마츠? 카라마츠한테 듣자니 다들 독립했다고 하던데, 넌 어떻게 됐어?"
난 대답하지 않고 그저 오뎅을 입에 집어넣는다.
"다들 연락은 하고 사냐? 카라마츠가 집에 연락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치비타가 재빨리 화제를 돌린다.
뭐 저 질문도 답하긴 뭐하다.
엄마하고는 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난 녀석들과 연락을 안 했으니까.
"카라마츠 녀석, 계속 취직한다고 이력서 쓰고 면접 보러 다니는데 잘 안 되더라고."
그걸 왜 얘기하는거야.
위로라도 해 주라 뭐 이런 거냐고.
나간건 그 녀석이야.
날 버리고 갔다고.
"맥주나 줘."
한숨을 쉬며 맥주를 주문한다.
치비타는 왠일로 군말없이 맥주병을 내놓는다.
한 병, 두 병…
취기가 오르고, 그간 쳤던 벽이 흐물흐물해진다.
"역시 외동인게 좋았어."
"데자뷰도 아니고, 왜 또 외동이 좋다는 거야 쨔샤."
"이렇게 다 떨어지고 헤어지고 할 줄 알았으면 차라리 처음부터 혼자인게 낫잖아."
"그래도 형제랑 같이 커 온 건 좋잖냐."
"그래도..."
외롭단 말야.
술기운에 취해 졸음이 쏟아진다.
거봐, 이런 때마저도 옆에 늘 있던 녀석들이 없어서 춥다고.
따뜻한 기운에 잠을 깬다.
어느새 누군가에 등에 업혀 밤길을 가고 있다.
"으음..."
"깼는가, 오소마츠."
낯익은 목소리...아, 카라마츠인가.
"네가 어째서..."
"밤에는 치비타 일을 도와주고 있어. 치비타에게 신세지고 있는 처지니까 이 정도는 해야지. 그보다, 많이 마신 모양이네."
간만에 만난 녀석은 여전히 어른 같아서,
기분 나쁘다.
"내버려둬도 될걸, 뭣하러 와서 업어주고 있는 거야."
"형 핑계로 집에 다녀간다...일까? 계속 면접에서 낙방하니까 사나이 카라마츠도 역시 지치는군."
또, 또...되도 않는 폼을 잡는다.
"원망하는 거...아니였어?"
"응?"
"나한테 인사도 않고 집 나갔잖아."
"그건 돌아봐주지 않은 게 나빴지."
카라마츠가 아쉬운 투로 답한다.
"쵸로마츠가, 토도마츠가 떠날 땐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는 자세를 고쳐잡는다.
내 몸은 축 늘어진 채 그저 카라마츠가 움직이는대로 들썩거릴 뿐이다.
"내가 나갈 땐 돌아봐줄 줄 알았어."
"어째서?"
"다른 녀석들은 내가 형 노릇을 해 줄 수 있지만 난 오소마츠밖에 형이 없잖아?"
또 형 타령이다.
"난 니들 형인거밖에 없는거야?!"
업혀있는 주제에 업어주는 카라마츠에게 짜증을 확 낸다.
"형, 형, 지겨워 죽겠어! 평소에는 형 대접도 안 하는 주제에 지들 필요할 때만 형 노릇 하라고 하고, 필요없음 버리고 가면서!"
"버리고 가다니?"
"버리고 간 거잖아...쵸로마츠가 드디어 노래부르던 취직하고 나니까 다들 집에서 나가버리려는 생각만 잔뜩이었다고...너만해도 그렇잖아? 집에서 떨어지지 않겠다면서...쉽게 집을 떠났잖아. 토도마츠 녀석이 한 말 들렸다고. 우린 함께 있지 않는게 좋다며? 다들 그렇게 생각해온 거잖아...너도 마찬가지고..."
꼴사납게 넋두리를 쏟아내는 형이다.
이런 형이니까, 싫었던 걸까.
의지하기 어려웠겠지.
카라마츠는 한참 묵묵히 길을 걷는다.
집 방향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저 강을 따라 쭉 간다.
"들어봐, 오소마츠."
그가 입을 연다.
"역시 오소마츠는 우리가 없으면 안 되는 거지?"
내내 한 소릴 한 줄로 요약해버린다.
"모두가 돌아와줬음 좋겠어?"
"......응."
"그럼 형이 말해줘. 돌아와달라고."
"하지만, 다들 함께 있으면 한 사람 몫을 못 한다고 그랬잖아."
괜히 돌아오란 소리를 못 하는 거 아니란 걸 모르는 걸까, 이 녀석은.
"그래도 자기 기분을 전하지 않으면 몰라줄 거 아냐."
정론을 얘기한다.
마치 남 얘기를 하듯이, 객관적이면서도 자기는 거기에 없는 듯 하다.
"그럼, 넌 내가 돌아오라면 돌아올거야?"
"음...결과를 내면 돌아갈게."
뭐야.
결과를 낸다니.
"집에서도 이력서는 쓸 수 있잖아! 면접도 보러 다닐 수 있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결심했어."
차디찬 강바람을 맞으며, 그는 답한다.
"형을 때린 그날, 형에게 말했던 게 자신에게 돌아와서 나도 한 사람 몫을 해야만 형을 볼 면목이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형 얼굴을 볼 용기가 안 났던 걸지도 몰라. 취직해서 당당히 어른이 되면 집에 돌아갈게."
좋은 말이다.
어느새 녀석은 철이 들었다.
그렇기에, 기분이 더 나빠졌다.
안 그래도 녀석의 등에 업혀 초라해뵈는 꼴이 더더욱 초라해보였다.
"너는...형이 다 됐네?"
"그렇지도 않ㅇ..."
카라마츠의 목을 조른다.
카라마츠가 휘청이며 넘어진다.
"먼저 어른이 돼 버리고...치사하잖아 새꺄..."
취기와 감정이 뒤섞여 혼란스럽다.
카라마츠를 짓누르고 얼굴을 때리기 시작한다.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서 앞은 흐릿하다.
찍소리 없이, 반항없이 카라마츠는 그저 맞고 있다.
"기분 나빠...기분 나쁘다고..."
울음 섞인 꼴사나운 소리로 중얼거리자니 녀석이 날 끌어안았다.
분명 따뜻한데,
따뜻하고 좋은데,
카라마츠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그의 진심을 알 수가 없다.
"넌 변하지 않아도 된다고..."
언젠가 그에게 했던 말을 되뇌이며 카라마츠의 품에서 잠든다.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 보인다.
주변을 둘러보니 익숙한 옷이 걸려있다.
아, 여긴 치비타네 집인가.
옆에는 카라마츠가 정장 셔츠를 풀어헤친 채 잠들어있다.
셔츠가 더러워진 걸 보니 아까 날 업었을 때도 저 차림이었으려나.
정장 차림인건 오늘도 어딘가 면접을 보러 간 거였을까.
얼굴에는 멍이 들어있고 피곤한 듯 전에 없던 다크서클이 져있다.
그를 안았다.
이제 알았지.
어른이 된다는건 이렇게나 힘든 일인데.
무리해서 될 건 뭐야.
미움이 녹아내리고 동정심이 찬다.
아니지, 그를 동정하기보다는 미안한 마음이다.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나 때문일거다.
못 미더운 형이라, 날 대신에 형이 되려고 그러는 거다.
조용히 카라마츠에게 입맞춤을 한다.
풀어헤쳐진 그의 셔츠를 벗기고 심장소리를 듣는다.
네게 돌아와달라 한다면.
나와 같이 어른이 되는건 미뤄두고 집에 있자고 한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
그는 어른이 되기로 결심했으니까 돌아오지 않을거다.
이대로 집으로 끌고 가 억지로 돌아오게 할까.
묶어놓고 감금해버릴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유혹을 누르고 삼킨 채 그저 녀석의 몸을 어루만진다.
현실에 굴복하자.
그냥 포기하자.
언젠간 돌아와줄거야.
약속했잖아.
어른이 되면 돌아온다고.
물론 어른이 되면 내가 알던 카라마츠가 아니게 될 거 같지만.
카라마츠의 몸에 눈물이 타고 흐른다.
그 눈물에 반응하듯 카라마츠는 아까처럼 날 안아준다.
슬쩍 올려다본 그의 얼굴에도 눈물이 어려 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뭐야?
너도 외로워?
나와 같은 마음이야?
아니면 동정하는 거야?
단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그는 지금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뿐.

날 안았던 손을 풀고서 그가 돌아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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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단편으로 왔습니다.
쓰던 거나 마저 써야 하는데 또 엉켜서;;;
뜬금없이 떠오른 거 썼네요.
24화 기반으로 쓰다 만 게 있었는데 것도 버려두고(취미가 쓰다 내팽개치기입니다) 또 번뜩 떠오른 거네요.
24화의 충격이 꽤 커서 뒤에가 개그인걸 알았는데도 오소마츠 마음은 어떨까 어떨까 생각했는데 그 생각 중 단편의 이야기입니다.
카라른이긴 한데 음...그냥 오소의 집착 얘기네요.
의식의 흐름이라 늘 그렇듯 허술하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