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14. 00:42
스팀펑크AU로 설정을 짜다 몇 가닥이 나왔습니다. 간만에 쓰네요. 뒷얘기를 써야 하는데, 이것 말고도 써야할 뒷얘기가 너무 많아서 일단은 단편인 것으로. 세계관이 넓어져서 솔직히 괴롭군요.
지구가 환경이나 자원 문제 등으로 파괴되고 우주 개척시대로 제 7지구까지 거주지구를 만들고 지구는 모성이라 부르며 복원하고 있는 세계 연방정부가 부패하며 민중을 핍박하게 되고 그 횡포에 못 견뎌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는데 헤소쿠리에 있던 스팀펑크를 2차 혁명전쟁 즈음으로 대강 짜고 얘는 뭐, 얘는 뭐 짜는데 아무래도 오소마츠는 무법자, 카라마츠는 현상금 사냥꾼(정확히는 모르겠음) 이게 그림이 딱 나와서리... 망상전개 풀파워! 로 그 프리퀄 느낌으로 썼지만 솔직히 짜놓은 설정 내에서 쓴 거라 저 말고는 뭔 내용인지 잘 모를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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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점을 잃은 눈에 비치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 그를 봤을 때 든 생각이었다. 이상하리만치 자신과 닮아있다는 점이나 내 또래가 이런 곳에 또 있다는 점은 그 후에야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곳의 어른들보다도 더 깊고, 흐려진 그 눈에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내가 다가가서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쪽으로 날 데려온 아저씨에게 눈짓하자, 아저씨는 녀석 옆에 있던 사람을 불렀다.
“이쪽에 쓸 만한 꼬맹이가 있다고 들어서, 우리 쪽 꼬맹이를 데려왔는데…”
“오! 꼭 닮았구만. 하긴, 집 잃은 아이들이 차고 넘치는 게 요즘 세상인데, 헤어진 형제가 이런 데서 만나도 이상할 건 없겠지.“
녀석은 이쪽을 바라봤다. 여전히 깊고도 흐린 그 눈에 정말 내가 비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난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녀석은 무표정인 채였다.
“자, 자기소개라도 해두라고. 너도 그동안 또래가 없어서 외로웠을 테니 저 애를 너와 같은 조로 편성해줄까 하거든.”
아저씨가 등을 세게 두드리며 격려해줬다. 알아서 할 수 있는데.
“안녕? 난 오소마츠! 우리 둘 얼굴도 상당히 닮았고 해서…하여간 무언가 인연이 있는 거 같은데 친하게 지내보자고~”
대답 대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그 눈에는 내가 비치는 건가. 손을 내밀자 그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나누고 내가 다시 입을 열려 하자 그가 답을 했다.
“난…이름은 없고…그동안 같이 지내던 애들은 날 모지리라 불렀어. 잘…부탁해…오소마츠.”
말투는 건조할지언정 성실하기 그지없는 대답이다. 무심코 피식, 하고 웃자 그도 조금 표정이 풀어졌다. 아저씨들은 우리를 배려해선지 자리를 비켜주었다.
“저기.”
모지리…라고 초면에 참 실례되는 말을 하긴 그래서 그냥 불렀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옆에 바짝 붙으며 물었다.
“한…2주 정도.”
“그렇구나. 난 1달 반 쯤 있었나?”
그는 나를 슥 쳐다보더니 들고있던 라이플을 꼭 끌어안았다.
“여기서 뭘 했어?”
여기서 뭘 했냐라. 이런 데서 보기 드문 또래에게 물을 만한 건 이런 거 정도려나.
“너한텐 내 얘기를 아무도 안 해준 모양이네. 나도 너처럼 총 들고 전선에 있었지 뭐. 여기 모인 사람들이 뭐 별 거 있냐, 다 연방의 횡포에 들고 일어난 사람들인데.”
그 말에 조금 놀란 듯 녀석은 날 봤지만 이내 아까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너도 비슷한 거야?”
“비슷할 지도.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총을 들고 맞서는 것밖에 없으니까…”
운좋게도 교전이 없던 날이었다. 나는 그와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는 잃어버린 쌍둥이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구태여 그 얘기는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가 있던 곳에도 얍삽이라 불리던 얼굴이 똑같은 아이가 있었다는 말엔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이 곳에 오기 전 그 아이를 포함해 함깨 있던 아이들과 헤어져버린 처지에 놓인 그에게 차마 먼 기억 속의 흐릿한 이야기 같은 걸 할 수는 없었다. 대신, 나도 어떤 신부에게 거두어져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교회에서 이것저것 배우며 자라왔던 얘기를 했다. 글자라든가 산수라든가, 아것저것 배운 것들을 자랑스레 떠들면 반짝이는 눈으로 그가 바라보았다. 이곳저곳 일거리를 찾아다니며 버려진 아이들의 가장 노릇을 허며 살아온 그는 무언가 배우는 걸 동경했던 것일까. 변변찮은 이름 하나 없을 정도로 고단했던 삶이었지만, 그마저도 부서져버린 채 사지에 몰린 것에 동정심이 생겼다. 뭐, 그렇게 치자면 눈앞에서 자신을 받아들여준 것들이 모두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나도 만만찮게 불쌍한데. 불쌍한 사람끼리 뭐 어때. 선물이라도 하나 주자고.
“저기, 괜찮다면 내가 이름를 지어줘도 될까?”
“에?”
“뭐 지어준다고는 해도… 아는 사람 이름이긴 한데.”
이름이 입속에서 맴돌았지만 바로 얘기할 순 없었다.
“아까 한 얘기에서 나왔던 사람이야?”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지 그가 묻는다.
“응. 나한테 오소마츠라는 이름 지어주고 돌봐줬다는 신부님.”
“소중한 사람 아니야? 나한테 같은 이름을 줘버리면…”
오늘 처음으로, 그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자기 얘기를 할 때도 그다지 무표정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터였다. 나를 위해, 다신 만날 수 없는 신부를 위해 슬퍼해주는 구나.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다고 확신했다.
“괜찮아, 괜찮아. 그 신부님하고 너하고 어쩐지 비슷한 느낌도 들고. 무척 소중한 사람이지만, 이렇게 해서 이름만이라도 계속 누군가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어. 이젠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니까.”
그는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허락이라도 구하려는 걸까. 눈물이 살짝 맺히는 것을 난 놓치지 않았다.
“카라마츠, 라고 해. 자기 이름이랑 비슷하게 내 이름도 오소마츠라고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신부님도, 너도, 카라마츠야.”
“카라...마츠.”
“어떻게 쓰는지는 알겠어?”
고개를 젓는 모습을 보고 근처에 굴러다니는 돌을 주워다 흙바닥에 카라마츠라고 적었다. 그리운 이름이다. 카라마츠 신부의 마지막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 그의 상냥한 웃음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밀려와 눈시울이 붉어지는 듯 했다. 돌을 건네주자 그는 글씨를 지렁이 기어가듯 따라쓰며 카라마츠, 카라마츠하고 중얼거렸다. 울컥해서 고개를 돌리려는데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선 날 보고 생긋 웃었다. 눈에 맺힌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아. 역시나. 그의 미소는 신부의 상냥한 웃음과 닮아있어.
“고마워, 오소마츠. 이 이름 소중히 할게.”
“카...카라마쯔…흐아아…”
결국 눈물이 나왔다. 한번 흐르는 눈물은 깊이 묻기로 했던 슬픔을 데리고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날 이후 복수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혁명군에 뛰어들은 뒤 잊고 있던 그리움도 같이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신부에게도, 그 작은 교회에서 함께 지내던 녀석들도, 구박하다가도 점점 마음을 열어준 마을 사람들에게도, 제대로 인사하지 못했구나. 그날 미친듯이 달려 등진 불타는 풍경을 복수심으로만 바꿔 살아왔는데. 소중한 시간들이었다는 걸,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는지를 실감하고 말았다. 녀석은, 카라마츠는,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이상하지. 아까 녀석한테 내 얘기를 할 때만 해도 덤덤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한참 눈물을 흘리고서야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렇게 울 정도면, 이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카라마츠의 미소가 사라지고 다시금 슬픈 표정으로 돌아왔다. 아냐. 미소, 아까처럼 미소를 징어주면 좋겠어.
“슬픈 기억이지만, 네 이름을 부른다고 항상 슬프거나 하지는 않을거야. 그러니까,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웃었음 좋겠어. “
멋쩍게 머리를 긁으면 카라마츠가 돌을 건넨다. 오소마츠 이름도 적어줄래? 하듯이. 오소마츠,라고 땅바닥에 적으면 카라마츠가 다른 돌을 주워다 오소마츠, 오소마츠, 카라마츠, 카라마츠, 중얼거리며 흙 위에 써내려간다. 그리고 이쪽을 바라보며 다시 웃는다.
“기억했어.”

  연방에 대항해 일어난 레지스탕스의 이른바 ’혁명’은 처음부터 먹구름 일색이었다. 가족을,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많았다. 물론 나름의 구심점이나 연방군 장교였던 사람 등에 의해 군사작전 같은게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절대적으로 병력이 부족했고 일반 시민들이 연방의 보복이 두려워 도움을 주거나 하지 못하고 벌벌 떨기만 하는 것도 한몫했다. 대의, 또는 기폭제, 또는 희생이라는 게 부족했던 탓일까. 일반 시민을 움직이지 못한 혁명은 반란에 불과했다. 연방을 거스르는 자들의 본보기로 토벌될 운명이었다. 레지스탕스에 합류한 이들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싸운다는 선택지 외엔 남아있지 않았다. 항복한다고 해도 그들은 이전처럼 핍박받는 삶으로라도 돌아갈 수 없다. 감옥에 갇혀 고문당하며 옥살이를 하거나 죽는다. 그런 막다른 길목에 놓인 채 몇 달이 흘렀다. 소규모 교전이 이어지다 연방이 대대적 소탕작전을 선전한 지 얼마 안 되어 제 3지구에 있는 레지스탕스군의 최후 방어선, 그러니까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있는 전선에는 제 1,2지구의 비보가 연달아 전해졌다. 죽음은 파도처럼 서서히, 그러나 성내듯 밀려오고 있었다. 어른들은 결정했다. 두 소년을 여기서 쫓아내기로. 좋게 타일렀다가 총구를 들이댔다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항의한 들 들어주지 않았다. 무작정 뛰어, 제 4지구로 가는 셔틀에 어떻게든 타라고. 아마 그렇게 하면 연벙군이 쫓지는 않을 거라고. 날 챙겨주던 아저씨가 나와 카라마츠를 끌어안고선 미래를 맡긴다며 얘기할 때서야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 카라마츠 손을 붙잡고, 이 세상에서 다신 만날 수 없을 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그 곳을 벗어났다. 새벽을 가로질러 잠의 신이 붙잡지 않도록, 한 맺힌 영혼들이 붙잡지 않도록, 끝내 이루지 못한 복수심이 붙잡지 않도록 달렸다. 여기 올 땐 분명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을 텐데, 비겁한 내가 걸음을 재촉했다. 카라마츠는? 내 손을 잡고 달리는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같이 달렸다. 충격적인 건 그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무표정이었다는 점이다.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하여간 달렸다. 감시가 없는 곳을 찾아서, 셔틀이 있는 곳까지 달리느라 숨이 차 죽을 지경이었다.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화물 속에 들어가서야 긴장이 풀렸다.
“난 여기 죽으러 왔어. 죽으러 왔을 텐데……”
무표정한 카라마츠의 입에선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말이 나왔다.
“나도야. 죽을 각오로 녀석들에게 복수할 참이었어. 그런데 미래라니…… 너무하잖아. 그런 걸 맡기면, 거기 남아 있을 수 없잖아……”
분하기 짝이 없었다만, 카라마츠의 말에도 반발심이 생간건지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미래에, 다시금 복수하자고.

  빛이 새어들자 잠에서 깼다. 화물을 열어본 남자는 눈을 찌뿌리더니 우리 둘을 내쫓았다. 거리의 풍경을 보아하니 제4지구인 모양이다. 이번엔 카라마츠가 내 손을 붙잡고 골목으로 들어가 여기저기로 움직였다. 라디오가 틀어진 가게 옆 골목에서 그는 멈췄다. 라디오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높으신 분의 더럽게 긴 연설이 끝나고, 제3지구에 남아았던 반란군 잔당이 소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에도 연방은 시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할 것이다라는 있으나마나 한 말과 함께. 운이 좋았다고 할까. 그날 새벽 도망치지 않았다면 우린 죽은 목숨이었다. 카라마츠는 자기 손을 쳐다보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결국 카라마츠은 왜 레지스탕스에 합류한 건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만, 지금 묻기엔 그가 괴로워보였다. 한동안 그 골목에서 쭈그려 앉아았었다. 눈물이 흘렀다가도 닦고 또 닦아 아닌 척 하려 애썼다. 옆의 카라마츠도 마찬가지였다. 문득 제4지구에는 ‘바다’가 있다는 게 떠올랐다. 바다를 보면서 옛날 모성母星에 살던 사람들은 눈물을 삭혔다던가 하던 신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몸을 일으키면 그도 몸을 일으켜, 셔틀 정거장 쪽으로 되돌아갔다. 셔틀 정거장 옆에 조성된 바다는 푸른 물로 덮여있었지만, 별다른 생각이 드는 건 아니었다. 그 바다에, 카라마츠는 입고 있던 거적때기같은 옷을 벗어던지고서 뛰어든다. 아. 처음 만난 날 그의 깊은 눈은 분명 이걸 닮아 있었다. 마치 자기에게 있던 모든 걸 씻어내듯 카라마츠는 헤엄쳤다. 처음 만난 날 그가 보여준 미소를 마음껏 지어주었다. 거기에, 나는 빨려들어갔다. 후련해보이는 미소 뒤엔 무표정한 그가 여전히 숨어있다. 무표정 속에 그가 죄책감을 억누르는 모습이 보였다. 카라마츠는 자기와 함께 하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다. 그리고, 목숨을 위협하는 연방군을 몇 명 죽인 것이다. 살기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사람을 죽였다는 충격이 그에겐 있었다. 제대로 된 도덕 관념을 배우진 않았지만 해서는 안 될 것을 카라마츠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피가 흐르고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과 총을 든 자신의 손을 번갈아보면서,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 길로 카라마츠는 소문을 좇아 레지스탕스애 들어왔던 것이다. 이미 사람을 죽여 더럽혀진 손으로, 그나마 가치있는 일을 하고자 했지만, 아무래도 그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생각한 모양이었다. 바다에서 헤엄치고 나온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였다. 그런 거구나. 상관없다고. 그런 건. 이미 나는 너의 미소 속에 들어가버렸어. 그게, 미래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복수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고. 단순한 동정심이나, 불확실한 형제애 같은 게 아니라 저 미소를 계속 보고 싶다는 마음. 뭐냐고 신부님이여. 바다가 눈물을 삭히긴커녕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이상한 데잖아. 거짓말쟁이였잖아. 카라마츠는 웃으며 마무리지었다. 고마워. 이 이름을 네가 줘버린 이상, 난 살아야겠어. 오늘로 죄책감을 다 덜 수야 없겠지만. 살아서 잘못되지 않은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그런 말을 하는 카라마츠는 불안에 몸을 떨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미소만큼은 어떻게든 지으려고 애쓰고 있어서, 끌어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여기도 거짓말쟁이네. 역시 닮았잖아. 허세부리지 말라고.
“그래, 살자. 살아서, 미래를 만들자고.”
미래가 무어냐. 수많은 목숨이 던져진 미래를 당장에는 뭐라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내일이면 알게 될까. 한 달 뒤면, 1년 뒤면 알 게 될까. 무슨 미래를 맡긴 건지. 평화로운 시대에 일도 안 하고 빈둥빈둥 놀면서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미래? 다시금 혁명을 일으켜 이번에야말로 연방의 횡포에서 벗어나는 미래? 글쎄. 어떤 미래라도 카라마츠는 웃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그를 안고서 한참을 있었다.
  아침이 되었다. 바다 옆에 적당히 만든 잠자리에 카라마츠는 없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먹을 것이 머리맡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몸을 일으켜 보니 모래사장에 카라마츠가 글씨를 쓰고 있었다. 그새 카라마츠는 많은 글자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미래. 오늘 그의 발 밑에 적힌 글자다. 이쪽을 보고선 그가 미소지었다. 우선은 살아간다. 그거밖에 없나. 멋쩍은 듯 그에게 간다. 분명 그가 그리는 미래는 나와 같을 것이라 믿으며. 카라마츠는 어느 날 내 앞에서 사라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자의로 사라진 건지, 누군가에게 끌려가거나 해서 사라진 건지. 그를 찾아헤매다 나도 날 받아들여주는 곳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유야무야 흘러가버렸다. 그를 다시 만난 건 10여년 후였다. 분명 최악의 재회였다.
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