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4. 02:54
앞에서 이어집니다. (http://heartrainon.tistory.com/186)
- 망상가득한 이치카라 소설
- 나의 ~마츠는 이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여러모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
- 글쓴이의 머릿속이 꽃밭
- 제목은 별 거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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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마츠와 사귄 지 어언 한 달이 넘었다. 지금도 그 강둑에 산책하러 가는 게 페이버릿 데이트 코스다. 이치마츠에게 고백을 받고, 키스를 하고. 세계가 부서지는 가운데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나눈 입술과 혀의 감촉은 아마 죽어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세상이 부서졌다가 기적처럼 다시 붙어서 원래대로 돌아온, 그런 세계를 나는 살아가는 것이다. 이치마츠의 고백을 받아들인 것이 정답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덕에 아직 우리는 이 세계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아직. 분명 세계가 다시 돌아오면서 내 머릿속에 울렸던 목소리가 말하길 다른 세계에서 있었던 일, 내가 세상을 부수는 존재라는 일 같은 건 점점 잊혀질 거라고 했다. 좀 더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라고. 나를 묶었던 데스티니에서 해방되어, 그렇게 나는 그저 소중한 형제인 이치마츠의 연인이 돼버린 마츠노 카라마츠로서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러나, 옅어진 듯 보였던 균열은 한 달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의외로 세계가 회복되는 건 느린 걸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수없이 많은 세계의 내가 세계를 부쉈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은 채 내 머릿속에 남아서 날 괴롭힌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나날이 이어졌다. 행복해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이치마츠는 그런 나를 걱정한다. 하지만, 이젠 그가 나의 걱정을 나눠 가질 수 없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세계의 기억이 사라졌다. 이치마츠의 말에 따르면 다른 형제들도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들에게서도 역시 사라진 모양이었다. 강둑에 가서, 이치마츠를 슬쩍 떠본 것도 몇 번이고 한 일이다.
"이 강둑에서 너에게 고백을 받고 거절할 지 받아들일 지 고민했었지."
이렇게 운을 띄우면,
"그때 용기내서 널 안기를 잘했어. 설마 그러고 바로 키스를 하다니 진도가 빨랐네, 우리."
히힛, 하며 이치마츠는 부끄러워 하지만,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는 처음이자 마지막 키스라고 생각하며 세상이 부서지는 속에서 끝을 맞이할 때까지 따뜻함을 나누자고 생각했다 말해주었던 그다. 나와의 첫 키스의 여운은 사라져버렸을까.  그 뒤로도 우린 거의 매일같이 키스를 했고 그때마다 이치마츠는 입술을 떼고 나서는 부끄러워하며 멋쩍은듯 웃어버린다. 그것 또한 사랑스럽지만, 가장 소중했던 순간의 기억을 혼자서만 알고 있다는 건 슬픈 일이었다. 그리고 기억이 사라지지 않은 것에서, 균열이 사라지지 않은 것에서 나는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헤에~ 왠일로 이치마츠랑 같이 있지 않네, 카라마츠."
오소마츠가 어깨를 탁 치고선 옆에 앉는다.
"혹시 싸운 거? 이치마츠가 무리하게 러브호텔 끌고 가려 하진 않았지? 그 녀석 그래뵈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엔 어그레시브한 면 있다고? 분명 너 휘둘리고 살 거 같은데."
"무슨 일로 걱정해주는 건가. 이치마츠는 분명 어그레시브하지만 내가 싫다고 하면 참을 줄 아는 착한 아이다. 만약 오소마츠였다면 돈 생기는 대로 러브호텔 끌려가서 수없이 만져졌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에, 나 그런 이미지? 아직 동정인데 벌써 그런 이미지?"
"그런 이미지 갖고도 남는다는 걸 잘 알아두라고, 누가 보더라도 그렇게 생각할걸."
"쳇. 모처럼 걱정해줬더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오소마츠는 내가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평소에는 이치마츠가 붙어있고, 알아서 둘이 해결하겠지 생각해 주었던 걸까.
"형제가 연인이 되는 거 보고, 서로 행복하기만 하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단 말이지. 쵸로마츠는 밖에 다닐때만큼은 주의해달라고 하는 거 보면 아직 완전히 인정하진 못한 거 같아. 엄마나 아빠한테는 말도 못하고 있고. 그래도 이 형은 완전 괜찮아. 둘이 행복하면 그걸로 괜찮아. 그런데, 행복해야 할 네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까 걱정된다고. 이치마츠도 걱정해주고 있기야 하겠지만, 애초에 이치마츠가 고백한 그 자체가 잘못된 거 아닐까 생각해버린다고. 그래도 깨어 있을 때 둘이 지내는 모습 보면 안심한다고. 혹시 다른 걱정거리가 있는 거 아냐? 벌써 미래설계 하는 거 아니지? 둘이 따로 살림을 차리러 사람의 도피행같은 거 계획하는 거 아니지? 그런 것만은 절대 안 돼. 둘이 연인이든 부부가 되서 살림을 차리든 이 집에서 내 손에 닿는 곳에 있다면 상관없으니까."
걱정해주네. 며칠을 참은 말들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적도 없는데 오버하기는. 하지만 내 고민은 오소마츠에게 털어놓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털어놔도 어차피 황당무계한 일로 받아들이겠지. 아니지. 믿어준다고 해도, 그저 믿어줄 뿐.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겠지. 이건 오소마츠만이 아니라 쵸로마츠도, 쥬시마츠도, 토도마츠도, 그리고 이치마츠도 마찬가지다. 다른 세계의 일 같은 것, 내가 무엇인가 같은 것.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 일이고, 설령 끌어들인다 해도 어떻게 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날 괴롭힌다. 아아, 이치마츠는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겠지. 날 안아주고, 키스해주고, 만져주고, 사랑해주고...나의 말도 믿어줄 것이고, 첫 키스를 한 그 때처럼 세계가 부서지는 순간에도 나와 함께 있어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오소마츠, 아니 형님. 이치마츠는 무엇 하나 잘못하지 않았다. 이렇게 사랑받는 이 몸이 길티 그 자체일 뿐. 연인의 그건 아니지만, 형님에게도 다른 동생들에게도 분명 사랑받는 러브 헌터, 길티 가이!인 나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허세다. 최악의 허세다. 분명 바보인 이 장남 녀석도 알아챌 정도의 허세다.
"여전히 갈비뼈 아프네에! 이치마츠 갈비뼈는 부러뜨리지 말라고."
장난으로 받아들여주는 건가. 그건 그거대로 고마울 따름이지만.
"잠도 잘 자야 착한 아이라고, 카라마츠?"
대답을 피하는 나의 정곡을 찌르며, 바보지만 바보지 않은 하나뿐인 형이 얘기한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하다. 그 뒤 쥬시마츠와 외출했던 이치마츠가 돌아왔다. 이치마츠는 현관에 우두커니 서서 팔을 벌렸고, 나는 그에게 달려가서 그의 품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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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못하는 나날은 계속되었다. 꿈은, 다른 세계에서의 기억은, 깨어있을 때나 잠에 들었을 때나 나를 괴롭혔다. 이 세계가 부서지는 순간, 벌에서 해방됐다며 기뻐해 주던 운명의 여신, 아니 어딘가 다른 세계의 목소리는 이제 와서는 다른 소리를 한다.
'한번 부서진 세계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어.'
'넌 분명 세계를 부수는 존재라는 벌에서는 해방됐지만, 이미 이 세계는 네가 부숴버린 거야.'
'저 균열, 네가 어떻게든 붙들어놓고 있는 거지만 그것도 슬슬 한계겠지.'
균열을 붙잡아두고 있다는 의식은 없지만, 그 탓이었나. 균열이 사라지지 않은 건. 오히려 이제 그 틈이 점점 벌어지고, 이 세계는 결국 부서질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거라고. 이치마츠가 나를 살짝 두드렸다. 팔을 뻗어주는 그에게 살짝 애교를 부려 팔베게를 받았다.
그렇게 잠시 꿈을 꾸었다. 세계의 틈새 같은 곳에서 무수한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형제들이 있다. 아니, 형제인지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다. 그곳에서 눈부신 빛이 말한다.
"너희 여섯명은 세계의 운행에 간섭했다. 영영 세계의 틈새에 가둬두는 것도, 무수한 세계에서 벌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도 너희가 속죄하는 방법이겠지. 하지만 여기까지 해낸 너희의 대단함을 높이 사겠다. 이 세계가 열리고, 수없이 긴 시간이 흘러 이른바 평행세계라는 것도 수없이 생겨나고 말았다. 가능성과 가능성이 부딪혀 세계는 실제로는 한 세계가 선택을 받아 그 방향으로 흐르고 있지만, 평행세계가 증식한 탓에 그 흐름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들에게는 평행세계를 부수는 역할을 주겠다. 그렇다고 너희들이 그 권능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게 되면 지금처럼 세계의 운행에 간섭하는 일이 다시 벌어지리란 것은 불보듯 뻔한 일. 너희 여섯이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이 살던 세계를 부수는 고통을 알면서 속죄를 해야만 한다."
"잠깐."
오소마츠가, 아니 분명 오소마츠일 녀석이 눈부신 빛의 말에 끼어들었다. 녀석답다면 녀석다운 행동이다.
"속죄라고는 해도, 우리들 원해서 세계의 운행에 간섭한 것도 아니고, 우연에 우연이 겹쳤던 것 뿐이라고? 세계의 이치에 간섭하는 거, 너무 허술하지 않아?"
"건방진 자로군. 그럼에도 그 자체가 중죄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자칫 '올바른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그랬다간 '올바른 흐름'이 무너져 모든 세계가 사라져버리는 일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헤에, 그런가. 그럼 딱 하나만 부탁하자고. 수많은 평행세계를 우리 손으로 부수며 속죄하는 큰 일을 해야 한다면, 적어도 우리들 평행세계들 안에서 인연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주지 않겠어? 세계를 부숴버렸다는 무서운 죄책감을 적어도 여섯 등분으로 나눠서 가져갈 수 있도록 말야."
"그런 걸로는 벌이 되지 않을 터. 수많은 평행세계를 돌며, 수많은 죄책감을 가져야 할 너희들이다.그걸 여섯이 서로 나눈다면 그게 무슨 속죄가 될 수 있지?"
"그렇다면..."
이번엔 쵸로마츠인가.
"수많은 평행세계를 돌며 우리가 그 세계들을 부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줘. 세계가 부서지는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좋아. 우리 탓에 세계가 부서지는 걸 깨닫고서, 후회하고 죄를 뉘우치고, 그럼에도 그 역할이 끝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게 해줘."
겁에 질려 떨고 있었지만, 오소마츠의 말에 동조하고 싶었던 거겠지. 여섯이 함께 있자는 그 말을 위로삼아 앞으로 있을 속죄의 순례에 조건을 거는 그 모습이 쵸로마츠답다.
"부탁드려요. 열심히 할테니까. 언제 끝나냐고 불평하지 않을 테니까."
쥬시마츠가 고개를 숙였다.
"저도 부탁드려요. 서로가 소중한 사람들이에요. 서로 흩어져서 벌을 받는다면, 그 여정의 한 틈에서 분명 누군가는 엉뚱한 생각을 품고 이런 죄를 저지를 지 모르니까 불안하기도 해요. 서로가 서로를 저지할 수 있도록 같은 세계를 돌게 해주세요."
토도마츠는 살짝 협박하듯 말한다. 이 녀석들, 어느 세계를 가도 대단한 녀석들 뿐이구나.
"우리의 벌은, 그런 소중한 사람들을 계속 잃으며 자신이 살아가던 세계를 부수는 거니까, 분명  함께 벌을 받는 편이 속죄 난이도가 높아지는 거라고? 영영 만나지 못하는 것도 괴롭겠지만, 수없는 이별을 반복하는 편이 더 괴로울거야."
이치마츠는 조곤조곤 설득한다. 말하는 투는 심하지만.
"나도, 이들의 말에 찬성이다. 물론 죄인인 우리가 이렇게 요구할 처지가 안 된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리고 내가 말한다.
"그렇다면 그 조건, 받아들이지. 그러나 너희가 원한 길은 너희 생각대로 갈 수 있지 않을 거란 것도 알아두도록."
눈부신 빛은 이윽고 커져 우리들을 감쌌다. 그 빛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나를 꿰뚫었다.
"너희 여섯은 어떤 세계에서든 어떤 식으로든 만나게 되겠지만, 그 끝은 파국일 것이다. 가장 처음으로 이 세계의 틈새에 들어와버린 네가 그 파국의 촉매가 되어줘야겠다. 여섯이 함께 있고 싶다는 소원은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너에게는 세계의 파괴자라는 역할을 주지. 너희들이 함께 모이고, 너희들이 서로를 인식하게 된다면 그 뒤 언젠가엔 자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가 부서지는 그 순간 너희들이 부순 평행세계의 마지막을 다들 떠올릴 것이다. 다만 딱 하나,  그 마지막을 떠올리고도 너희가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그때 너희의 속죄도 끝날 것이라 약속해주지. 그럴 수 있다면 더는 세계의 운행에 손대고 싶은 마음같은 걸 가지지 않을 테니까."
저 빛은 분명 전지전능한 신 같은 거겠지. 우리가 이렇게 세계의 운행에 손을 댄 이유는 떠오르지 않지만 살고있던 세계에 불만을 품었던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우연과 우연이 겹쳤지만 우리는 바벨의 탑을 오르고 만 것이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위험한 영역으로 몰고 간 것인지는 모르지만, 서로가 소중했다는 토도마츠의 말이 마음 속에 남았다. 그 서로가, 여섯 명 전부를 얘기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우리의 속죄의 평행세계 순례가 시작됐다. 그 뒤는 알고 있는 대로다.
서로를 생각해주는 사람으로 남는다라, 그래서 벌이 끝난 것인가. 그러나 그렇게 남는다한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 없다. 이제 다른 세계의 우리는, 이 굴레에서 해방되고 나서 행복하게 될 테지.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수많은 평행세계 속에서 내가 왜 이치마츠의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알았다. 자신의 운명을 자각하고 만 자신은 분명 이치마츠의 고백을 받아들여도 마지막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을 이야기해야 하는 게 두려웠다. 쭉 사랑하는 채로 있고 싶었다. 세상이 끝날때까지, 라는 흔해빠진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신을 탓했다. 세계가 끝나버린다는 절망감이 가득한 차에 그롸 함께 행복한 종말을 맞이할 자신도 없었다. 그러니까 도망쳤다. 적어도 혼자서 끝내고 싶었다. 세계를 부수는 그 죄책감을 혼자만 끌어안고 싶었다. 그렇게 지금 세계에 이르렀다. 여섯이 나누었어야 할 죄는 신의 변덕에 자신에게만 향했지만 그걸 알게 된 건 이번뿐이다. 그리고 이번을 마지막으로, 그 고통은 끝난다. 이제 다른 세계의 나도 모두도 세계가 부서지는 고통을 겪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세계의 이치마츠는 나를 좋아한다고 해줄까. 나는 이런 걸 재지 않고 솔직하게 그의 사랑을 받아들여줄까. 우린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마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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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이제 질렸어"
우리에게 특별한 장소인 강둑, 첫 키스를 했던 그 자리에서 카라마츠는 돌연 이렇게 말했다.
"무슨...소리야?"
오늘은 내내 카라마츠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엇을 해도 카라마츠는 웃어주지 않았다. 굳은 표정으로 다니는 그에게 솔직히 화가 났지만,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터였다. 갑자기 나와 사귀게 되어서 걱정이 늘었나? 그러고보니 우리 사이를 인정해 준 건 오소마츠 형이나 쥬시마츠 정도. 토도마츠는 한숨을 쉬며 맘대로 하라고 했고, 쵸로마츠는 여섯 명의 썩을 동정 니트들 사이에 호모까지 출연하면 도대체 뭐가 되냐고 당황하며 일단 우리 형제 사이에서만 알고 있자고 했으니까. 미안, 동정은 뗐어. 정확히는 동정도 처녀도 둘 다 잃었지만. 인정하지 못하면서도 일부러 우리를 위해 자리를 피해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 배려가 고맙긴 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마음을 돌려보고 싶은 걸로 고민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책임감을 갖고 있는 게 카라마츠라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어젯밤만 해도 팔베개를 해주니 내게 안겨 잠들던 녀석이 왜 그런 말을 하는거야.
"생각해보았다. 우리 관계에 대해서. 너와 사귀고나서부터 난 행복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서운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만 것이다. 그래서 질렸다고 말하는 거다."
언젠가처럼, 그는 딱딱하게 말했다. 분명, 고백하던 그날 카라마츠가 내게 이런 느낌으로 말했다. 뭐라고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를 붙잡으려 애썼으니까. 왜 애썼지? 차였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걸까. 그날 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유 같은 게 있었던 건가. 그러고 보니, 왜 조용히 품어왔던 연심을 그때는 고백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쟁취한 자의 여유 같은 거? 아무리 쓰레기인 나라고 해도, 그건 너무한 일이었다.
"이치마츠는 우리의 첫 날, 네가 고백했던 날을 제대로 기억해주지 않는다. 나는 몇 번이나 너를 떠봤지만, 키스했던 그 순간만을 기억하는 너에게 아쉬움을 느꼈다. 그날 나는 사실 너를 밀어내려 했다. 네가 한 번 차였다가 나에게 다시 용기내서 고백한 건 고맙지만, 그렇게 필사적인 고백의 순간을 네가 잊어버린 거 같아서 아쉬웠다. 그러다 생각했다. 너는 그저 나를 얻고 나면 그걸로 끝이 아닌가 하고. 왜 나를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그런 필사적인 고백을 해놓고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웃어버리는 네게 실망한 것도 여러 번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조차 질린다. 그저 서로 사랑하면 되는 건데, 그런 생각을 해버리는 나도 제법 이기적인 녀석이다. 그러다, 너무 고백을 빨리 받아들였다는 생각에 미쳤다. 생각없이 너의 고백을 받고, 사랑을 나누고 말았다."
무언가 내 머리를 세게 강타하는 느낌이었다. 카라마츠는 의외로 섬세한 편이었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고백의 순간을, 첫 키스의 순간을 되새기고 싶어하는 것만으로 생각했다. 물론 자신도 그 순간이 소중해서 몇 번이고 되새기며 그 자리에서 몇 번이나 키스를 나눴다. 설마 그게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지 확인하는 과정이었을 줄이야. 은근 속좁은 부분이 있구만. 그 정도 집착은 해주는 게 좋기야 하지만. 문제는 카라마츠의 저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점일까. 어째선지 그날의 기억이 모호하다. 나를 피하던 카라마츠를 쫓아갔더니 차이는 듯한 말을 듣고, 거기에 북받힌 감정에 카라마츠에게 고백을 하고, 그가 받아들이고 키스를 했다. 어둑어둑해진 강둑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잖아. 아니야. 충분하지 않아. 그날 나를 떠민 감정은 도대체 무엇이었지. 그냥 단순히, 카라마츠가 나를 피하는 데 상처를 받아서였나.
"거봐. 얼빠진 표정을 보아하니 이렇게 말해도 너는 기억을 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조금만 시간을 줬으면 한다. 우리 관계를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벌써 권태기가 온 거야? 맨날 붙어사는 형제니까 그런가? 아니지. 한 달을 고민한 카라마츠 나름의 결론이었다. 카라마츠는 주먹을 꽉 쥐기도 하고 눈을 질끈 감기도 하고 입술을 꽉 물기도 했다. 내가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라는 걸 어째선지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 바보같은 소리에 응해줄 리가 없잖아. 그런 시간 가진다고 해도 우리들 같은 집 안에서 사는 형제니까 만나지 않는 것도 할 수 없다고."
나는 일단 거부했다. 당연하지. 그렇다고 카라마츠가 마음을 바꿔줄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단 둘이 있는 시간만 피하면 된다. 내가 꺼낸 말이니까,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할테니 너무 신경쓰지 마라."
"아니, 신경쓰이거든.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자면서 뭘 혼자서 끌어안으려 하는거야."
무언가 카라마츠에게 숨기는 게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추측한 것, 카라마츠가 한 말 모두 틀렸을 수 있다. 신경쓰지 말라니.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니. 나를 탓하는 척 했지만 사실 자기의 문제 때문에 나랑 거리를 두려는 거 아니야?
"아무튼! 이치마츠는 이치마츠대로 우리가 사귀기 전의 일들이나 마음들을 생각해냈으면 한다. 내 변덕에 너를 말려들게 해서 미안하지만, 시작점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연인하고는 오래 갈 수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니까."
다른 건 몰라도 저거에 서운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는 거 보통 이별 플래그니까. 이대로 이별하게 되면 어쩌지. 어떻게 해도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집을 나와서 다른 형제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말 것이다. 그게 문제가 아니지. 카라마츠가 그런 선택을 해버린다면 아마 살고 싶지 않아질거야. 그 날이 오면 죽자. 아니지, 그 날이 오기 전에 죽는게 나을까.
"...재촉은 하지 않을게. 카라마츠. 기억을 제대로 못하는 건 미안하지만, 나는 너만으로도 내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어.  사랑해. 첫 키스의 감촉, 고백하면서 안았을 때 느꼈던 너의 온기 무엇 하나 잊지 않았어. 그건 알아줬음 좋겠어. 기다릴게."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 쪽을 보지 않았다.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다. 이대로 이별해버릴까봐 불안했지만, 나는 카라마츠가 잠시 샛길을 걷는 걸 허락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카라마츠는 언젠가처럼 혼자 거실에 내려가 잠을 잤다. 팔을 뻗으면 빈 자리가 느껴진다. 조금 따스한 느낌을 받아 눈을 뜨면 토도마츠의 얼굴이었다거나. 갑자기 바뀐 분위기를 다들 눈치채지 못한 건 아니었겠지만, 다들 우리를 배려해주려 애썼다. 쥬시마츠는 나에게 놀자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토도마츠는 쇼핑에 어울려달라고 하며 나를 끌고간다. 쵸로마츠는 나와 단 둘이 있으면 조금 어색해서인지 집에서 나를 챙겨주려 한다. 오소마츠 형은 내가 혼자 고양이와 노는 듯 하면서 멍때리고 있을 때 다가와 그 녀석을 믿어달라고 말한다. 그런 배려에도 난 외로움을 떨칠 수 없었다. 고백하기 전보다도 더, 카라마츠를 찾고 있는 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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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더 달라며 이치마츠를 멀리하기 시작한 그 날로부터, 내 눈에 띄는 세계의 균열은 점차 심하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균열을 붙들어두고 있다는 말은 이런 의미였나. 나의 심란함에 반응해 균열은 커지고 있었다. 아니다. 사실은 이치마츠와 처음 사귀게 된 그날로부터 계속 균열이 커지고 있었다. 나는 모른척했다. 언젠간 사라질거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잠들면 내게 묶인 운명의 사슬이 나를 조여오고 있다는 걸 신경쓸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나는 이 세계의 파괴자. 이 세계의 누군가의 행복을 부수는 존재. 그 누군가에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치마츠도, 소중한 가족들도, 카라마츠 걸즈와 보이즈도, 세계의 그 모든 것이 들어가는 것이다. 마지막에 와서 이 죄책감을 짊어진 게 정말로 자기뿐이라는 걸 알아도, 다른 형제들이 그걸 느끼지 않게 되어서 좋았다. 아마 그 신 같은 녀석의 말로 미루어볼 때 그동안 다른 세계에선 세계가 부서지며 다른 형제들은 나를 원망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게 이번에는 나를 믿어주고 나를 붙잡아주려 노력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벌이 끝났다. 이치마츠도 세계를 몇번 돌고 돌았을 때 나를 원망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런건 덮어두기로 했다. 이걸로 마지막이다. 다른 세계를 기약하며 나는 이치마츠를 놓아줄까도 생각했다. 이치마츠와 사귀기 시작했던 그날, 사실은 세계가 끝났어야 했던 그날, 나를 붙잡아서 안아주고 키스해줬던 이치마츠가 고마웠지만 한편으로 세계가 부서지는 그 한가운데 이치마츠가 있는 게 싫었다. 이번 세계는 상냥해서 이치마츠가 고백하고 난 뒤에 내가 나의 존재를 자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저 많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뿐이다. 상냥했던 세계는, 그래도 부서져야 하는 운명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미안하다. 내 탓에, 세계의 질서에 선택되지 못했던 세계는 무수히 파괴되고 말았다. 그래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희망과 함께 나와 함께 부서져주지 않겠나, 상냥하고 아름다운 나의 세계여. 이치마츠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고마운 세계여.
나는 이치마츠만이 아니라, 다른 형제들도 피하기 시작했다. 눈을 마주치면 울어버릴 것 같아서. 내게 주어진 운명을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적어도 이미 다른 세계의 기억을 잊어버린 그들에게는 행복하게 종말을 맞이하게 하고 싶었다. 사실 지금도 나때문에 그들은 조금 불행해졌을테지만. 마지막 순간에, 꼭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끝이 다가온다는 사실은 모른채로 이 세계가 끝났으면 했다. 균열은 그런 내게 반응해 무수한 조각의 금으로 갈라졌다. 건들면 분명 한번에 무너져버리겠지만, 아직까진 어떻게든 버텨주는 상냥한 세계. 그 수많은 금들을 보며 끝을 향해 착실히 가고 있다는 걸 실감하고선 울어버린다. 공원 벤치에 앉아 꼴사납게 울고 있어도 다른 사람들은 나를 슬쩍 보더니 가버릴 뿐. 이 균열은 내게만 보이는 것이라서, 암만 소중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고통을 나눌 순 없어서 외로움을 떨칠 수 없었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기엔, 나는 너무나도 나쁜 사람이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제, 마지막이 와버려.
종막이다. 해피 엔딩을 가장한 새드 엔딩이다. 나는 웃기로 했다. 웃는 표정을 잃지 않기로 했다. 오늘 하루는, 오늘 하루만큼은 모두가 행복했으면 한다. 나는 신같은 게 아니라서 모두를 축복해 줄 수 없지만. 적어도 부서지는 그 순간은 최대한 짧게, 행복한 감정 그대로 마지막을 맞이하도록 노력할테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이치마츠에게 사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그런 심한 말 해서 미안하다고. 지금 나를 소중히 해주는 감정이 중요한데 바보같은 생각을 했다고. 웃는 얼굴은 무너져내렸다. 이치마츠는 그런 나를 꼭 끌어안았다. 어제보다도 심하게 울었다. 그 눈물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의 연인, 이치마츠는 그런 나를 안고서 키스를 했다. 오랜만에 하는 키스는 달콤했다. 그리고 격렬했다. 이치마츠는 정말 열심히 참았구나. 그리고선 모두에게도 사과했다. 내가 바보같아서 이치마츠와 모두를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다들 괜찮다며 웃어주었다.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끝에 미소를 품었다. 쥬시마츠는 다행이라며 폴짝 뛰었다. 오소마츠 형만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그래, 다행이네. 하고 씨익 웃었다. 미안하다. 그래도 너희가 웃어서 다행이야.
집을 비워준 상냥한 형제들 덕택에 집에서 이치마츠와 육체의 대화를 했다. 이치마츠가 얼마나 참아왔는지 격렬하게 느꼈지만, 그의 품이 따스하다는 걸 다시금 느끼고 말았다. 마지막 쾌락. 사랑하는 이치마츠를 마지막으로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몸이 뜨거워져서 나도 모르게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미안하다고 말이 나올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서 갈 수 있었다. 마무리의 키스가 멈추지 않을 땐 세상이 이대로 끝나버리길 바랐다. 그리고 나서 같이 씻고, 이치마츠가 아끼는 고양이들을 만나는 비밀장소로 향했다. 고양이들은 여전히 내게 곁을 내어주지 않았지만, 강아지풀을 흔드는 내 움직임에는 맞춰 놀아주었다. 그러고 나선 공원에서 캔커피를 마시며 시덥잖은 대화를 하고, 강둑을 걸으며 어둑어둑해지는 거리에서 키스를 나누는 지금까지와 그다지 다를 것 없는 데이트를 했다. 이번이 마지막 키스겠지, 하고 눈물이 절로 맺혔다. 얼마나 서운했던 거냐고. 이치마츠는 미안한 듯 말했다. 미안하다. 미안한 건 나인데. 강둑을 따라 걸어오면서 나는 계속 웃는 가면을 썼다. 가면을 썼다곤 해도 웃으며 울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손을 꽉 잡고 걸어주었다. 걸음이 느려지면 그도 보폭을 맞추어 걸었다. 언제나와 반대다. 걸음이 느려지는 건 이치마츠 쪽이었는데, 오늘은 아니네. 아무렇지 않게 하루의 마무리를 하며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잠들기 전 이불 안에서 이치마츠는 내 손을 꼭 붙들었다. 그런 그에게 맞춰주면서 그가 깊이 잠들길 기다렸다. 손을 몇번 꼼지락거리니 그의 손이 풀렸다. 손을 놓고서 다들 잘 자는지 확인하고서 조용히 옷을 챙겨 나왔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불었다. 마당에서 푸른 파카와 반짝이는 바지를 입고, 밤중에 써봤자 소용없을 선글라스를 썼다. 집도 무엇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상하리만치 균열만큼은 잘 보였다. 톡 건들면 부서질 그런 균열이. 웃는 표정을 잃지 말자고 했지만 오늘 하루 도대체 몇번이나 울었는지 모른다. 결국 마지막에도 나는 울고 있다. 누군가는 잠들어 있고, 누군가는 깨어 있다. 만난 적 없는 월드 에브리씽, 아이 엠 쏘리.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제대로 된 인사를 할 시간을 주지 않아서 미안하다.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치마츠. 미안하다.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버린다. 적어도 너는 나와의 사랑이 오늘을 계기로 계속 이어질 거라 믿는 달콤한 결말을 주고 싶었다. 미안하다. 그것도 내 이기심이란 걸 모르는 건 아니다. 미안하다. 그 날처럼, 너와 처음으로 사귀었던 그 날처럼, 종말이 한 번 변덕을 부려준 그 날처럼, 사실은 너와 함께 맞이하고 싶었다. 그 또한 내 이기심이다. 미안하다. 잘 자라. 안녕이다. 심장이 부서지며 내 몸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허공을 향해 손을 흔들자 금갔던 세계는 한번에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파편이 떨어져내리는 속에서 차마 나는 이치마츠의 흔적을 좇을 수 없었다. 이내 어둠이 세계를 순식간에 삼켰다. 이 세계에는 나만이 남고 말았다. 그리고 나도 어둠에 삼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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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 오늘도 이 세계는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켁. 또 그런 밥맛 없는 소릴. 아침부터 그런 말 안 하면 입에 가시라도 돋치냐고."
"참~ 일어나자마자 싸우지 말고, 정말 두 사람은 사이가 안 좋은 건지 좋은 건지."
"이치마츠가 맨날 화내는 데도 매번 저런 소릴 하는 네 멘탈 정말 어떻게 된 거 아닌지 모르겠다고, 카라마츠."
"멘탈? 멘탈이 뭐야? 먹는거?"
"먹는 거 아니라고, 쥬시마츠. 아침부터 팔팔하잖냐, 너희들."
마츠노 가 6쌍둥이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20세 넘어서도 백수에 동정. 매일매일이 별다를 바 없는 그들의 삶은 평범하다못해 최저다만, 그다지 다들 벗어날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런 형제들이 정말 좋다. 운명에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할 때가 있어 말하면 안쓰럽다며 조롱받기는 하지만. 정말 소중한 형제들이다.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바보지만 종종 믿음직한 오소마츠 형, 잔소리쟁이에 촌스러운 구석이 있지만 모두를 신경쓰는 쵸로마츠, 어둠 가득하고 심한 소리를 내뱉지만 사실은 상냥한 이치마츠, 예측불가능하지만 활기가 넘치고 착한 쥬시마츠, 자기 생각이 가득하지만 형들을 의지하는 귀여운 토도마츠. 그리고 나 카라마츠. 영원히 일하지 않고 이렇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만, 언젠간 독립해야겠다는 모순된 마음도 가지고 있다.
그런 하루하루에, 어느날 누군가 돌을 던졌다.
"썩...썩을마츠...나 네가 좋다고."
청춘드라마도 아니고, 벚꽃 흩날리는 강둑에서 이치마츠가 갑자기 고백을 한 것이다.
"좋다는 의미는?"
"성적으로 좋다는 거. 만지고 키스하고 잔뜩 안고 박고 싶어."
"하항~ 격렬하군, 브라더의 러브가."
예상도 못했다. 나를 싫어하는줄만 알았던 이치마츠가 날 이렇게 격렬하게 사랑한다니. 아니지, 누군가의 장난 아닌가? 이치마츠에게 이런 말을 시키는 장난을 누가 쳤다거나, 아니면 이치마츠 본인이 장난을 치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받아줄거야 말거야?"
"미안하지만 그 사랑은 받아줄 수가 없다. 나는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니까, 이치마츠에게만 사랑을 줄 수는 없다는 거지. 좀 더 멋진 사랑을 찾아가는 건 어떻겠는가."
누가 봐도 어른스러운 대응이지 않은가, 하항?
"쳇, 재수없는 대답하기는. 알았어. 내가 노력할 테니까. 그러고 나서 다시 고백할 테니까 목 씻고 기다려."
이치마츠는 내 얼굴을 붙잡고 입을 맞추었다. 그러더니 뒤돌아서 반대편으로 격렬히 도망쳤다. 으아아아아아하는 소리만을 내지르며. 붙잡을까 하다가 말았다. 진심이었나. 그보다 목씻고 기다리란 말은 보통 죽이겠단 말 아닌가? 으응? 이치마츠가 도망치는 모습 뒤로 벚꽃이 떨어지는 게 어쩐지 아름다웠다. 부끄러움을 타는 브라더인가. 사랑을 받아주려면 나도 노력해야 하나. 입을 맞춘 감촉이 갑자기 떠오르며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아, 아아, 아아아. 이치마츠. 사랑스러운 나의 동생. 그러다보니 문득 이런 고백을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카라마츠 걸일 거라 생각했지만 보이가, 그것도 쌍둥이 친동생이 그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이제 곧 그와는 동생이자 연인이 될 지도 모른다. 조금은 애타게 만들어볼까. 쉽게 넘어가주는 건 재미없다고, 브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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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편의 마무리가 조금 허술했을 지도 모릅니다. 이번 편이라고 허술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앞편의 마지막에서 이치마츠의 기억이 사라졌다는 게 제대로 전해졌을까요. 그게 아니라도 써놓기야 했으니 별 문제는 없겠지만요. 세계의 파괴자같은 소재거리를 쓰면서 해피 엔딩으로 갈 지 새드 엔딩으로 갈지 조금 고민했지만 해피 엔딩을 선사해주고 싶다는 게 앞편이었다면, 여지를 일부러 남겨놓고 새드 엔딩을 맞이하는 뒷편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그도 그럴게 세계를 파괴하는 그런 거 보통 악역이 하는 거라고요? 그걸 저지하는 게 주인공. 저지하지 않더라도 행복한 다른 세계를 맞이하려 노력하는 것도 있죠. 이번 편 또한 아주 조금이지만 라이더 네타(빌드...)를 쓸까말까 엄청 고민했습니다만 마이너카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쪽도 마지막편 보면 토끼용 커플링을 파던 사람들이 비명 지를 급의 반쯤 오피셜 BL엔딩이라고요(아님 절대 아닙니다 미안합니다)
하여간, 이번 편에 나름대로 왜 카라마츠가 이렇게 된 건지, 굴레에서 벗어난 6쌍둥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카라마츠가 바란대로 이치카라가 한 걸음 다시 내딛게 되는 결국은 해피엔딩을 썼습니다. 그리하야 진엔딩입니다. 기세로 쓰느라 피곤하네요. 스트레스를 이걸로 풀고 있네요. 이치카라 강화주간에 이어서 곧 빈잔 다음편도 가지고 오겠습니다. 2년만에 말이죠...하...ㅅ...
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