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7. 03:21




—뭐라고 말해야 할 진 모르겠지만.
좋아합니다. 저와 평생을 함께해 주세요.

이게 아닌데. 이미 평생을 함께 하고 있잖아.

—좋아해요. 저와 결혼해주세요. 행복하게 해줄게요. 진심으로.

으아아아아! 프로포즈란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그냥 결혼해달라고 하면 안돼? 너무 복잡하지 않음? 오소마츠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가 방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머리를 굴리던 그때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움찔하며 멈추자 문을 열고 카라마츠가 들어왔다.
"뭐 하는 건가, 오소마츠. 방에서 뒹굴거릴 거라면 잠깐 같이 산책이라도 하자."
"산책? 그럼 나간 김에 빠칭코..."
"그럼 안 되지, 오소마츠. 빠칭코를 가면 나이스한 나를 눈에 담을 시간이 줄어들어버린다만."
"뭐래는 거야. 아무튼, 알았어. 어디 마주 앉아서 오래도록 널 보고 있을 테니까. 발길 닿는 대로 가보자고."
오늘 프로포즈를 하기는 글렀네 생각하며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앞세워 집을 나섰다. 사귄다고 해도, 연인이 됐다고 해도, 손을 잡는 건 여전히 어려웠다. 사람이 드문 데서야 겨우 손을 잡고, 충동적이던 첫 키스 이후에는 눈치를 봐가며 입을 맞춰선지 의외로 그렇게까지 많은 키스나 애정 행각을 나눠보질 못했다. 어쩔 수 없지 뭐, 라고 전에 카라마츠는 체념한 투로 말했다. 너무 많은 걸 바랄 수는 없다며 제 나름은 시원한 투로 이야기하는 그도 사실은 아쉬워 하는 걸 오소마츠는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래서 제 맘대로 안거나 할 수 없었다. 카라마츠는 의외로 조심스럽구나. 평소에는 그렇게나 무방비하고 쉽게 다가오는 녀석이건만, 오소마츠에게 고백하는 것만은 오래도록 망설여왔다고 했다. 오소마츠가 먼저 고백하고 나서야 털어놓은 제법 오래된 카라마츠의 연심은 그의 안에 여전히 갇혀있는 듯 했다.



"결국은 여기밖에 없나~ 너도 참 여길 좋아한다니까."
"여기서 오소마츠가 고백해주지 않았나. 좋아할 수밖에 없지."
특별할 거 없는 강둑에서 나란히 앉아 손을 잡고서,  서로를 보며 덤덤히 이야기하는 이 장면을 카라마츠는 꿈꿔왔을까. 어느 날, 카라마츠의 마음을 눈치채고서는 모른 척 할 수 없어서, 오늘처럼 고민했었던가.

—어떻게 하지. 사내 새끼가, 그것도 얼굴부터 똑같은 쌍둥이 동생이 날 성적으로 좋아하는 거 같은데?! 잠, 잠깐. 이거 거짓말이지? 내가 잘못 생각한거지?

알고 있었다. 잘못 생각한 게 아니라는 건. 카라마츠가 겨우겨우 드러내지 않던 마음을 알아채버린, 발렌타인데이 며칠 전에 있던 작은 사건. 카라마츠 본인과는 인연 없을 것만 같던 커다란 제과점에 스스로 걸어들어가길래 맛있는 걸 사면 뺏어먹을 생각으로 몰래 뒤따라 들어가 뒤쪽에서 깜짝 놀래켜주려던 그때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 상자를 집어들며 '오소마츠는 이런 거 좋아할까'라며 중얼거린 그 일을. 오소마츠는 놀라서 다른 진열대로 뒷걸음질쳐 그대로 아래로 숨어버렸다. 카라마츠는 그 초콜릿을 사지 않았고, 혹시나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 선물을 고르러 온 걸까 하는 가능성은 역시나 발렌타인데이를 빈손으로 마침으로써 사라지게 되었다. 그 뒤, 오소마츠의 눈길이 카라마츠를 좇게 되었다. 왜 나를, 형제가 아닌 다른 의미로 좋아하게 된 거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아마도 카라마츠는 거짓말을 했을거다. 고등학생 시절의 카라마츠라면 눈을 피하며 무슨 소리냐고 했을 거다. 성인이 된 카라마츠라면 '나는 모두를 사랑한다제! 에브리바디 러브!' 같은 소리를 지껄였을 거다. 아니면, 정말, 혹시나 오소마츠 자신이 잘못 짚었을까 두려워서. 어쩌면, 그렇게 물어보는 것으로 오소마츠도 제 마음이 확정되는 게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런 날들이 지나고 지나 여러 해를 거치며 둘의 마음은 오래도록 숙성되어갔다. 카라마츠는 제 마음을 숨기는 덴 능숙해져갔지만 견딜 수 없는 날이면 오소마츠를 피해버렸다. 오소마츠는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을 때마다 카라마츠의 꿈을 꿨다. 꿈을 꾸는 그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에 대한 확신이 섰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을 피하는 카라마츠를 강둑에서 붙잡고 바닥에 넘어뜨린 채 엉망진창인 고백을 카라마츠에게 해버렸다. 무슨 말을 해댔는지 그 모두를 제대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랑 하자는 말을 내뱉고 바로 미안하다며 사과했던 것만은 뚜렷이 기억한다. 내려다본 카라마츠의 눈에서 조용히 눈물이 흐르기에 오소마츠는 저질러버렸구나 하고 어쩔줄 몰라했는데, 카라마츠는 손을 내밀어 오소마츠의 뺨을 쓰다듬으며 고맙다고 말하며 웃었다. 바로 둘의 몸과 입술이 포개졌다. 그런 강렬한 고백의 장소지만, 창피한 기억일지도 모르는데 카라마츠는 자주 이 곳을 데이트 장소로 골랐다.
"고맙다. 오소마츠라면 마음껏 사랑을 나누고 싶을텐데, 나 때문에 많이 참아주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사람을 성욕에 미친 사람 취급하지 말아줄래. 뭐어, 지금은 여러모로 참고 있긴 하지만. 나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아껴주고 싶어하는 면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지 뭐야. 멋지지."
"그래, 그래. 멋있어, 오소마츠."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심인 양 부드럽게 말하는 말투라니.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역시 슬슬 독립을 해야하나 싶어. 독립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복잡하지만, 우리 둘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오소마츠가 참는 것도, 내가 눈치보는 것도, 너무 오래 끌고 싶진 않다."
잠깐, 이거 프로포즈 아님? 지금 선수치기를 당한 건가? 싶어 오소마츠는 살짝 당황했지만, 한숨을 쉬며 오소마츠가 아닌 강가의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는 카라마츠에 살짝 안도했다. 돌아오는 길은 그냥 평소처럼 걸었다. 저녁 반찬은 뭘지, 또 둘이 같이 들어오냐며 아니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형제들에게 뭐라고 할지 등의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하며.



집에 와서 식사를 하고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뒹굴거라는 평소와 같은 저녁시간을 보내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오소마츠는 프로포즈를 어떻게 할지 줄곧 고민했지만 도저히 멋들어지게 구상이 나오지 않았다. 괜히 안달이라도 난 듯 뜨거워지는 자신을 탓했다. 잠이 오지 않아 눈을 뜨고 바라본 창문에 오늘은 커튼이 치는 걸 모두  깜빡해서 달빛이 새어들어왔다. 아, 이젠 고민하는 거 그만둘래. 그대로 이불을 빠져나와 카라마츠를 깨웠다. 카라마츠도 잠에 들지 않았던 건지 바로 이불 밖으로 나왔다. 조심히 오소마츠가 지붕으로 올라가면 카라마츠도 그 뒤을 따라 올라왔다. 달빛 아래서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안았다. 지나가는 누가 보면 어떠랴. 둘은 이어 키스를 했다. 밤공기가 선선해서 기분이 좋았다. 둘의 혀와 입술이 떨어지고 강둑에서처럼 나란히 앉아 손을 잡았다. 달과 얼마 보이지 않는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잠시 보다가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왼손을 자신의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지금 당장은 없는 반지 대신으로 카라마츠의 왼손 약지에 입맞춤을 했다. 카라마츠의 손을 줄곧 들어올린 채, 오소마츠는 고민을 던져버리고 이야기한다.
"평생 내 것이 되어줘, 카라마츠."
카라마츠는 말이 없다. 다만, 고백을 한 그 때처럼 또 눈물을 조용히 흘리면서 미소를 짓는다.
"평생 네 것이 될게, 오소마츠."
아마 이 프로포즈를 오소마츠도 카라마츠도 나중에는 좀 더 제대로 할 수 없었는지 후회하겠지만, 아마도 둘의 부끄럽고도 행복한 추억이 될 거라고 오소마츠는 믿어본다.



재활(?) 겸. 구상하던 이야기의 일부분이기도.
이 이야기의 전체도 시간이 꽤 지나 묘사나 방향성이 멋대로 굴러가면서 갈피가 안 잡히네요. 파편화된 채 몇 개가 끊어지고 버젼이 다른 채 존재하는 중.


Posted by 하리H( )Ri
2022. 12. 12. 02:32

차오르는 달이 검푸르게 펼쳐진 밤하늘을 하얗게 비추는 아무도 없는 어느 시골길. 그림자를 뒤집어쓴 채 조그만 불빛이 듬성듬성 삐져나온 저택의 모습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용케 이런 길을 걸어 올 생각을 했군. 차나 오토바이, 하다못해 자전거라도 있었다면… 그저 가볍게 조사를 하러 왔을 뿐인데 별 다른 단서도 못 건지고 빠르게 지는 해에 길까지 잃어버린 채로 터덜터덜. 집에 돌아가기는 글렀고, 길바닥에서 노숙이라도 했다가는 날씨 탓이든 뭐든 목숨을 내놓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 저택의 불빛은 구원과도 같았다. 설마 이 마을에 떠도는 늑대인간의 소문이 저 저택과 관련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 갔지만, 이내 주린 배와 추위가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늑대인간은 몰라도 이런 곳에선 무슨 일이든 날 것만 같은 두려움과 어디서 우는 지도 모르게 사방에서 들려오는 풀벌레의 울음소리, 이따금 개가 짖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움찔거리며 걸음을 재촉해서 저택에 다가갔다. 저택의 형태가 뚜렷이 드러날 정도로 가까워지자 조금 안심하던 그때, 앞에서 새하얀 천 같은 게 느릿느릿 다가왔다. 피가 묻은 건지 붉은 얼룩 같은 게 묻어 있었다. 새하얀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하얀 천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자, 하얀 천은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왔다. 한 걸음 달려 나왔을 뿐인데, 바로 드러난 검은 머리칼에 그대로 오소마츠는 주저앉았다.

“저어… 괜찮은가?”

새하얀 바스로브 차림에 붉은 장미 다발을 든 남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오소마츠를 쳐다보았다.

“깜짝이야. 유령인 줄 알았네.”

“훗. 내가 유령으로 보였던 건가. 겁이 많은 편이군.”

“그런 거 아니거든! 타이밍 좋게 달빛이 댁의 옷과 그 장미꽃잎만 잘 비춰서 놀랐을 뿐이야.”

달빛때문에 착각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이상한 차림새라고, 하고 쏘아붙이고 싶은 걸 오소마츠는 참았다. 이 남자가 저택의 주인인가? 설마하니 고용인이 이런 차림을 하고 있진 않을 테니까.

“병에 꽂아놓을 장미를 꺾으러 정원에 있다가 사람 그림자가 이쪽 방향으로 다가오는 것 같길래 나와봤을 뿐인데. 나에게 볼 일이 있는가? 아니면 그냥 지나가던 길인가?”

“음… 혹시 저택의 주인인 거야? 어… 그렇다면 오늘 밤 신세 좀… 져도 될까요?”

에헤헤…하며 오소마츠는 머쓱해 하면서도 바로 부탁을 했다. 사람이 좋아 보이니, 거절하진 않을 것 같은데.

“부탁하려고 바로 존대하는 건가. 이렇게 어두워져서야 위험하니, 일단 들어가기로 하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는 그에게 또다시 달빛이 비춰, 사뿐사뿐 걸어가는 그는 어쩌면 정말 유령일지도 모른다. 그의 손에 들린 붉은 장미 다발과 이제 막 가시에 찔린 듯 붉은 방울이 터져 나온 손바닥이 그것을 간신히 부정하고 있었다.



저택은 외관만큼 웅장한 내부를 자랑했다. 그러나 금이 간 벽이나, 저택 분위기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너구리나 복고양이 조형물이 부서졌다 붙인 자국이나, 그 외에 보잘 것 없는 미술품만 몇 점 놓여있다거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홀 등에서 기대했던 저택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널찍한 응접실에 들어서자 남자는 편한 소파로 오소마츠를 안내한 뒤, 비어있는 꽃병에 장미 다발을 꽂았다. 그리고 곧 간단한 먹거리와 따뜻한 차를 내왔다. 다행히도 응접실은 벽난로가 지펴져 있어서 홀만큼 춥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여러 의문을 품었지만 일단 주린 배부터 채웠다. 더 달라는 눈치 없는 부탁도 흔쾌히 응하는 남자가 짓는 미소는 쓸쓸함과 즐거움이 섞여 있었다. 오소마츠가 포만감에 배를 두드리자 남자는 일인용 소파에 제대로 자리 잡았다.

“아직 서로 자기소개도 안 했군. 난 카라마츠다. 이 저택의 주인이지.”

“난 오소마츠. 이 마을에 재밌는 소문이 돌길래 조사하러 왔다가 이렇게 신세를 지네.”

두 사람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다. 늑대인간 같은 흉흉한 소문을 듣고 조사하러 왔다면서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고 온 오소마츠를 카라마츠는 질책하면서도, 자신은 이 저택에 살게 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과 별로 교류를 하지 않아 그런 소문은 잘 모르겠다며 넘겼다. 아무튼 오늘은 여기서 묵고 가라며 카라마츠는 2층의 손님방으로 안내를 하고 잠자리를 살펴주었다. 오소마츠는 침대에 누워 저택 어딘가에 있을 카라마츠를 생각했다. 둘만이 덩그러니 있는 넓은 저택에서, 오소마츠의 첫날밤이 지나갔다.



오소마츠가 눈을 뜨고 옆에 있는 커튼을 걷으니 이미 해가 가운데에 떠 있었다. 붉은 장미가 듬성듬성 핀 정원도 카라마츠와 마찬가지로 쓸쓸함이 느껴졌다. 겨울이 다 되어가는데, 요새는 장미도 오래 피어 있구나, 하고 정원 너머 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 시골 마을도 쓸쓸한 곳이네. 밤과 별 다를 바가 없이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방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자, 카라마츠가 응접실에서 나와 반겨주었다. 낮이라 그런가 바스로브 차림이 아니구나. 그게 당연한 거겠지만. 그때 솔솔 풍겨오는 음식 냄새에 절로 오소마츠의 배가 울렸다.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응접실로 들어가는 걸 따라가자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이렇게 신세를 져도 괜찮은 건지 잠깐 생각하고선 또다시 주린 배를 채우는 오소마츠 옆에서 카라마츠도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자 그제야 식당이 따로 있지 않냐고 물었지만 카라마츠는 고개를 저었다. 혼자 넓은 저택을 쓰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쓰는 공간만 쓰게 된다며. 손님이 오는 일도 드물고 거의 혼자 식사를 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다 보니 특히나 식당같이 사람이 많이 와서 채워야 하는 곳은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또 다시, 쓸쓸한 미소를 짓는다. 이 이상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걸까. 오소마츠는 정원을 보고 싶다고 조르며 카라마츠와 밖으로 나왔다. 정원은 꽃이 듬성듬성 피어있는 점 빼고는 나름 잘 가꿔진 곳이었다. 저택 안쪽에 비하면 손길이 많이 닿은… 카라마츠가 훨씬 신경을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장미를 좋아해?"

"응. 특히 붉은 장미를 좋아한다. 강렬하게 시선을 붙드는 색인데다, 꽃잎이 마르면 마르는 대로 깊은 색깔을 내거든. 오소마츠는 좋아하는 꽃이라든지, 색이라든지 있는가?"

"나도 빨간색을 좋아해. 눈에 띄는 색이라는 점도 카라마츠랑 같은가. 꽃은 그다지 흥미가 없어서. 그 외에 좋아하는 거라면... 호기심이 동하는 것? 아니면 사람들이 날 보고 재밌어해 주는 거라든가."

"그런가. 오소마츠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군."

"에... 어떤 점이?"

"탐정 같은 거 아닐까 싶다가 이렇게 준비 없이 달려오는 것도 그렇고, 재밌어해 주길 바란다는 건 아직 잘 모르겠고..."

오소마츠가 살짝 흔들리는 눈빛으로 침을 삼키는 건 눈치채지 못한 채 카라마츠는 사뿐사뿐 앞으로 걸어갔다. 낮의 카라마츠도 밤과 마찬가지로 유령 같았다. 햇빛 아래서도 여전히 그의 얼굴은 새하얗다. 파릇파릇함을 잃어버린 장미 덩굴 사이로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은 그를 쫓아서 정원을 돌고 나서는, 고맙게도 며칠 더 머물러도 괜찮다는 권유를 받았다. 원한다면 조사를 위해 마을에도 함께 가주겠다는 그의 과한 호의를 받아들이며, 둘째 날은 그냥 저택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오소마츠는 고민하다 탐정 복으로 갈아입고 카라마츠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때 카라마츠가 당황했다 터트린 웃음은 지금까지 카라마츠의 표정 중 가장 행복해 보였다. 나름 '안식탐정'이라는 이명이 있다며 사건 현장을 온화하게 만들어준다고 주로 활동하는 지역의 경부에게 신뢰를 받고 있다며 자신을 소개하자, 카라마츠는 무언가 해결된 듯 시원하게 웃어주었다.

"안식탐정이란 말이지. 어울리는군..."

뭐가 어울린다는 건지. 하긴 내가 좀 편안한 사람이긴 하지. 오소마츠는 의기양양하게 한 번 더 안식탐정의 포즈를 취해주었다.



다음날은 함께 마을의 상점가에 갔다. 사람이 없어 보였던 마을에도 상점가만큼은 나름대로 사람이 있었다. 식자재를 사는 카라마츠의 동선을 따라 오소마츠는 사람들의 대화를 놓치지 않고 들었다. 카라마츠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 사는 것에 대해 수군거리는 사람이나 수상쩍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최근에 늑대 울음소리가 평소보다 더 자주 들린다는 소문과 관련된 이야기도 들려왔다. 상점들이 일찍 문을 닫아버리니 서둘러 장을 봐야 한다는 말과는 다르게 느릿한 걸음의 카라마츠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질 것만 같이 투명해 보였다. 잠시라도 카라마츠를 잊어버리면 곧 사라져버릴 듯한 투명함. 손을 잡으면 잡히지 않을 것만 같이 멀리 있는 느낌이었다. 카라마츠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약국이었다. 따라 들어오려는 오소마츠를 멋쩍은 듯 쳐다본 뒤, 카라마츠는 말없이 약국 안으로 들어갔다. 오소마츠도 따라 들어갔지만, 카라마츠는 그저 늘 먹는 그걸 달라고 말할 뿐이었다. 해가 기우는 인적 없는 시골길을 둘이 걸으며 저택으로 돌아가는 사이에는 어색한 공기만이 흘렀다. 오소마츠는 뭔가 말을 꺼내려다가 별 소득 없었다며 휘파람을 불며 화제를 돌려버렸다. 그날 밤은 와인과 간단한 안주가 차려졌다. 와인잔을 돌리다 음미하듯 붉은 와인을 입 안에 흘려 넣는 카라마츠를 보고선 오소마츠도 와인잔을 돌렸으나 답답함에 홀짝 들이켰다.

"카라마츠는, 왜 혼자 있어?"

배려심이라고는 없는 너무나도 직설적인 말.

"그런 건 묻지 않는 게 배려가 아닐까, 오소마츠."

쏘아붙이듯 답하는 카라마츠.

"궁금하니까. 나도 탐정이라는 나름 비밀스러운 정체를 밝힌 참이고? 그 정도는 물어봐도 되지 않아?"

"멋대로 알려주지 않았나. 궁금했긴 했지만, 소문을 조사하러 왔다는 말을 한 시점에서 대충 그런 거라고 알 수는 있었으니까."

"그럼, 안식탐정이라니 어울린다는 건 뭐야. 어제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지만,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말이었다고."

"말 그대로다. 취조하듯이 몰아붙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만."

"지금 혼자 있으면 안되는 상황 아냐? 어딘가 아프다면 간병해줄 누군가가 필요한 거 아니냐고."

"......"

카라마츠는 말없이 와인잔을 비웠다. 입 옆으로 살짝 흘러내린 붉은 와인 방울을 오소마츠가 손수건을 꺼내 닦아주었지만, 카라마츠는 그 손을 쳐냈다. 살짝 닿은 카라마츠의 볼은 역시나 차가웠다.

"먼저 들어가 보겠다. 탁자 위는 그냥 내버려 둬도 되니 더 마시다 가도 된다."

그렇게 말하며 응접실을 나가버리는 카라마츠를 오소마츠는 쉽사리 붙잡지 못했다. 대충 짐작이 가는 그의 사정을 좀 더 신경 써서 얘기할 걸 그랬나. 그래도 사흘을 함께 있었으니 이 정도면 가까워졌다 싶었는데, 카라마츠는 처음부터 줄곧 벽을 세우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렇게 어색해져서야 더 머무르긴 곤란할지도... 내일이 되면 떠나야 할까.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줄곧 유령 같았던 카라마츠가, 아픈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그걸 태도에선 드러내지 않은 채 오소마츠를 환대해주었던 그가, 너무나도 신경 쓰였다. 오소마츠도 응접실을 나서서는 1층부터 닫힌 문을 열었다 닫으며 돌아다녔다. 2층에서 오소마츠가 묵고 있는 손님방과 반대편에 있는 방에서 훌쩍거리는 소리를 찾아낸 오소마츠는 벌컥 문을 열었다. 카라마츠는 깜짝 놀라며 무슨 일인가! 하고 소리쳤지만, 어둠 속에서도 보이는 카라마츠의 우는 얼굴을 본 오소마츠는 입을 열지도, 나가지도 않고 문을 닫고서 카라마츠가 누운 침대의 이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오소마츠를 카라마츠는 밀어냈지만, 침대가 넓은 탓인지 너무 세게 밀었다가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질까 걱정한 탓인지 오소마츠는 그다지 밀려나지 않았다. 다시금 다가와서는 손가락으로 카라마츠의 차가운 볼에 손을 갖다 댄 뒤, 그의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았다. 그런데도 카라마츠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따뜻... 하다."

"줄곧, 이렇게 해주고 싶었어. 처음 본 그때부터 카라마츠는 차가웠거든."

"차갑게 대하지 않았는데... 아까는 미안했다만..."

"그게 아냐. 이렇게 따뜻하게, 이 세상에 붙들어주고 싶었어."

"무슨..."

"사라지지 마. 함께 있어 줄 테니까. 있을 수 있는 그날까지 있어 줄 테니 벌써 유령같이 살지 마, 카라마츠."

오소마츠는 카라마츠 쪽으로 더 다가와 카라마츠를 안아주었다. 그제야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에게 다가와 안쪽으로 폭 들어갔다. 카라마츠의 눈물이 오소마츠의 몸을 적셨다. 이내 두사람은 입을 맞추고, 서로를 따뜻하게 데워갔다. 그 후 이틀은 두 사람 모두 저택에서 나가지 않았다. 정원을 산책하고,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밤을 함께 보냈다. 새하얀 카라마츠의 얼굴의 붉게 물든 뺨을 바라보며, 조금씩 생기를 찾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카라마츠는 마음을 열었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릴 적 이 저택에서 사람들이 많이 와서 파티를 여는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며, 이제는 이룰 수 없는 제 나름의 소박한 소원을 털어놓으며, 오소마츠가 다른 사람을 재밌게 해주고 싶다면 카라마츠도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카라마츠의 건강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어딘가의 파티에 놀러 가서 함께 즐겨보자는 약속을 나누었다. 오소마츠가 여기 눌러앉기 위해 내일은 짐을 챙기러 잠시 집에 다녀오겠다고 말을 꺼낸 밤의 달은 어느새 보름달이 다 되었다.



왜 하필이면 그날이었을까. 왜 하필이면 그날 밤이었을까. 늑대인간의 소문을 조사하면서 간과해왔던 보름달과의 연관성. 보름달이 뜬 밤, 저택에 혼자 있는 카라마츠를 늑대인간이 습격해서 죽여버릴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집을 챙기며 잊고 있다 바라본 보름달에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어 새벽에 어떻게든 저택에 도착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저택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눈물을 삼키고선,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소원을 이루어주기로 했다. 적어도 네가 행복한 마음으로 이승을 떠날 수 있도록. 나는 기꺼이 해골이 되어 버린 너와 마지막 춤을 추고, 사람들을 모아서 저택에서 즐거운 파티를 열고, 그 파티를 달아오르게 하는 멋진 공연의 주인공은 네가 되어줄 거고, 네가 마음을 쏟던 정원에 아직도 지지 않은 장미꽃 아래에 널 잠들게 할 거고, 그런 네 앞에선 끝까지 웃어줄 거라고. 널 잃은 슬픔보다도, 네 목숨을 병마보다도 빠르게 앗아가 버린 범인에 대한 분노보다도, 널 재밌게, 행복하게 해주는 게 널 위한 것 아닐까. 그게 '안식탐정'인 나 오소마츠의 역할이니까. 저택을 나서기 전까지 참아왔던 슬픔을 저택을 등지고 쏟아내더라도, 네 앞에서는 웃어줄게. 저택을 뒤로하는 발걸음은 느려지고 눈물범벅이 된 채 저택을 돌아보면, 붉은 장미꽃잎이 흩날리며 아마도 진짜 유령일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바라보고 있다. 손을 뻗어도 이제는 진짜 잡히지 않을 너와 작별하는 데에는, 너와 지냈던 시간의 수십, 수백 배는 걸릴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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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10화 인랑편 보면 슬프거든요. 나고관주적으로? 다른 시점으로? 웃으며 무덤 만들어주고 해골하고 춤추고 공연하고 살해현장인 저택이 파티장이고... 이건 오카뇌를 너무 돌려서인진 모르지만 죽은 사람의 넋을 위로하는 의식과도 같은 그런 인상을 받았던... 거기서 이어져온 아이디어인데 이것도 1년 이상은 묵혀둔 거 같음...
12월 12일 오카의 날❤️💙 기념으로 올해도 너무 많은 걸 놓쳤지만 일단 이건 안 놓쳐야지 하는 마음으로 써봤습니다. 뭔가 그래서 결말이 (늘 그렇지만) 급전개


표지? 낙서는 어제 새벽을 불태우고 글은 밤과 새벽을 불태우고 퀄은 이모냥인데 시간은 많이 걸리고😭

Posted by 하리H( )Ri
2022. 10. 1. 03:13

헤소센세의 마지막 이벤트를 위한 점검 연장전에 따라가며 오랜만에 낙서
는 트레지만 그래도 오래걸림
느와르 오카인데 홍란이라 부르던가 아무튼
디테일은 늘 그렇듯 잘 그리지 못하는 사람이라 날림날림

효과 빡 준(...) 버젼

효과 덜 줌

...
참고작
ㄹㅋㄹㄱ ep11 아이캐치인데 모방위험인지 바뀐다고 하는
분위기가 참 개쩐다였는데 재현을 못하겠어요


12であのアイキャッチのパロ | H( )Ri #pixiv https://www.pixiv.net/artworks/101599486

Posted by 하리H( )Ri
2021. 11. 11. 23:11

짧글/주청/1 4개 우겨넣기식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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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11월 11일.

인간들의 시간으로는 이렇다고 하더군. 인간들의 자세한 시간을 알아두는 것도 괴담을, 이야기를 좋아하는 청행등에게 있어선 당연한 일이건만, 오늘도 그런 '시간'과 '이야기'를 어디 사는 누군가가 절묘하게 엮어내어 속고 있다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인간들이 휘둘리는 모습을 보는 게 꽤나 재밌다. 물론 저 인간의 마음은 어떨지, 어떤 심정으로 막대 과자를 주고 받는지, 지나치게 인간의 마음에 몰입하기도 한다. 현대의 괴담이란 옛날과는 또 다른 형태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법. 인간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게 그저 공포만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이날의 훈훈함과 씁쓸함이 교차하는 풍경을 청행등은 그 눈에 담고 있었다. 

청행등은 잠시 풍경을 내려다보다 들고 있던 등에서 푸른 도깨비불을 내보내 제 몸을 감쌌다. 인간의 모습으로 사뿐히 땅 위에 내려서고선 익숙하게 사람들 속에 섞여든다. 이제는, 익숙한 일이다. 옛날처럼 등을 걸어두고 모여앉아 괴담을 나누는 '햐쿠모노가타리'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지만, 괴담이든 괴이쩍은 일이든 청행등의 먹잇감이 되는 이야기는 이 시대에도 얼마든지 넘쳐난다. 이렇게 인간 속에서 이야기를 얻어가지만, 그렇지만 예전과는 다른 단절된 섞임 속에서 조금 서글퍼지긴 했다. 뭐어, 오늘의 볼일은 막대과자 아닌가. 하나쯤 슬쩍해도 별로 큰 혼란은 안 생기겠지만, 대충 그 의미를 아는 입장에선 그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디 신사라도 들어가 세전이라도 슬쩍할까 하며 공원 벤치에 앉았더니, 웬 꼬마가 청행등 앞에 와서 멀뚱멀뚱 청행등을 쳐다보았다.

"나비- 빛나는 나비가 있어"

"으응?"

"이런 나비는 처음 봐- 형아 뿔도 나있네- 신기하다-"

"아아. 어린아이라 그런건가. 내 원래 모습이 보이는 건가."

"나비 만져봐도 돼?"

"그럼. 네 손에 옮겨주지."

도깨비불로 만들어진 나비가 꼬마의 손에 옮겨갔다. 꼬마는 따뜻해, 간지러, 같은 소리를 반복하며 웃었다. 

"고마워, 형. 나비 만져보게 해줬으니까 이거 줄게."

꼬마가 메고 있던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막대과자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건넨 꼬마는 씨익 웃었다. 웃는 꼬마의 이앞니는 하나가 빠져 있었다.

"오늘 유치원에서 친구가 줬는데 우리 엄마는 이런 과자 못 먹게 하거든. 친구한테 고맙다고 하고 싶은데 버릴 수는 없으니까 형아 줄게! 안녕!"

그리고서는 재빨리 가버리는 조심성없는 꼬마다. 나같이 착한 요괴를 만나서 다행이군, 하고 청행등은 생각했다. 어쨌건 이렇게도 귀여운 사건이 생겨, 인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어 청행등은 즐거워졌다. 

본모습으로 돌아와서도 막대과자를 쉽게 맛보지는 못하는 청행등이었다. 인간의 과자도 몇 번이고 먹어봤고, 사실 이 과자의 맛도 알고 있는 바니까. 하나가 이루어지면 또 하나 욕심이 생기는 건 왜일까. 역시 이런 건, 사랑하는 이와 나누어먹는 그런 이벤트를 꿈꾸고 마는 건... 청행등은 자신이 인간에 지나치게 몰입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금 움츠러들어있었다.

"모처럼 떠들썩한 날인데 왜 우울해 보이지? 내가 너무 오래 놀러갔다왔나? 하하핫!"

맞아. 꿈꾸고 말았던 건. 그런 이가 있으니까. 생각나는 상대가 있으니까. 청행등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찔끔 보이고 말았다.

"아니, 잠깐잠깐! 내가 그렇게 잘못한거야? 미안해... 그래도 청행등이랑 마시려고 맛있는 술도 구해왔... 우왓!"

당황하는 주탄동자에게 달겨들어 폭 안기는 청행등의 행동에 주탄동자는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술도 안 마셨는데 이렇게 애교가 넘치는 청행등은 오랜만인걸.

"괜히 인간들의 축제... 같은거에 심취해버린 거 아닌가 싶어서... 조금 우울해졌다만. 주탄동자가 돌아와줬으니, 주탄동자가 거기 어울려줄거라고 믿고... 있다제."

"에에... 우리는 뭐, 인간들의 축제니 놀이니 그런거 좋아하고 잘 끼어 놀고 그렇잖아. 뭘 새삼스레. 오늘은... 막대과자를 코에 끼우는 날이었나?"

퍼억! 하고 주탄동자의 배에 청행등의 주먹이 꽂힌다. 

"농담이라고, 농담. 청행등 쪽에서 먼저 그런 걸 하자고 할 줄이야. 매번 내쪽에서 할 때마다 투정부리면서 받아줬잖아. 엉큼해졌네, 아니 때리지는 말아줘..."

주탄동자는 능글맞게 막대과자상자를 열어 봉지를 연 뒤 막대과자를 하나 꺼낸다. 누가 먼저 입에 물까 재기도 전에 둘 다 격정적으로 달라들어 막대과자가 부서져버렸다. 다음 과자는 주탄동자가 청행등에게 건네주고 청행등은 과자를 살짝 이에 물었다. 주탄동자도 이에 물고 사각, 사각,사각, 사각, 거리를 좁혀갔다. 평소에도 하는 입맞춤이 이렇게 긴장할 일인가... 싶은 순간 청행등이 살짝 힘을 줘 막대과자가 부서졌다. 손톱만큼 남은 막대과자에 주탄동자는 이거면 원래 인간들이 하는 막대과자게임에선 거의 우승급이라며 추켜세워준다. 얼굴을 붉히는 청행등에게 주탄동자는 다시 막대과자를 건네는 척 하더니 제 입에 가져간다. 이번에는, 게임 말고 원하는 걸로 할까. 말없이 전해지는 눈빛으로. 서로의 이에 막대과자를 물고서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긴장감 끝에 맞닿은 감촉과 새로운 재미에 둘은 까르르 웃어버렸다. 이후 남은 과자도 똑같은 방법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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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 땡겨서 쓰는데 쓰려는데도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짬내서 쓰려니까 눈앞이 뱅글뱅글 돌아서 뭔 헛소리를 쓴건지 모르겠단
진짜 글이 오랜만이에요오오

Posted by 하리H( )Ri
2021. 4. 10. 22:35


낮에 잠깬다고 몬스터 두 캔 때리고 잘 시간에 잠이 안 오는 김에(다른 할일은 안 하고;;) 펜을 쓰고 싶어서 새벽에 미리 전력한 그것
두 장이라 더블로 240분 걸린듯
그런데 이런 퀄리티라니 실화입니까ㅋㅋㅋㅋㅠ
1812(헤소워 마법학교) -> 교연(헤소워 마법)으로 두장째는 사족... ㅋㅣ스신이 그리고 싶었을 뿐...입니다(퀄망)

뜨이따 링크
https://twitter.com/2afterglow2km/status/1380869333643976710?s=19

언제나 힘껏 사랑하리💙₂ on Twitter

“오소카라/장미꽃 한 송이🌹 1812(마법학교AU)입니다 허접한 펜따기로 보내드립니다 #카라른_전력_120분”

twitter.com

Posted by 하리H( )Ri
2020. 12. 1. 06:22

픽*브(pi/xi/v)에 올렸던 거
만화 등 일본어로 된 것도 있고 슬쩍 효과를 다르게 한 것도 있어서 픽*브 먼저 올리고 티스토리에도~
https://www.pixiv.net/artworks/86021002

#おそカラ osokara log - H( )Riのイラスト - pixiv

昨年のおそカラ月間に参加したのと今まで描いたのまとめました。12月はまたおそカラ月間がありますね。楽しみだな... とにかくですね、閲覧有難うございます!3期もガンガン見ましょう!

www.pixiv.net

뭐어... 잘 그리진 않았습니다

2019년 오소카라월간 기념 만화 1812

주제가 뭐더라...

이것도 제우포세로

 금환일식 소재로 반지로 표현

 

페북의 뭔툰인가... 원출처를 못 찾겠는데 그거 트레입니다
번역본이 없었나;;; 19년 9월 21일 일본판 오카 전력 60분

좋아요 12개
@okalove_12
인스타그램 패러디에요~
오늘 점심은 카레라이스! 카라쨩💙이 만들어줬어!
#점심 #카레라이스 #좋아해

트레틀로 도전한 저스니쿠

 

마찬가지로 트레틀로 레스니트
날 뽀뽀마로 만든 슈텐아오(주청)
디*님 그림체로 왕공(왕희)
오늘 그린 따끈따끈한 항공마츠 기장부기장 카라가 두 버젼
일판 오카전력 올해판 아래 gif로 참가
춤춘다! 마살라~ 카라의 아오자이 차림이 매우... 바람직한
캔 테잌 유어 아이즈 옾 미~ 교사(국영) 오카데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걸 올리고 문득 자신을 돌아보니 오카 지분이 굉장히 높네요 이젠 거의 오카 메인이라고 해도 되지 않나 싶을 정도로ㅋㅋㅋ
연성하는 건 오카요 많이 보는 건 잋카요 쌓아놓은 건 쵸카요 생각하는 건 토카요 써야하는 건 쥬카인 상황

Posted by 하리H( )Ri
2020. 11. 29. 23:34

1812합작 참가작(http://18osokara.tistory.com/21)

 

첫눈이 내리면 첫사랑에게 고백한다.

그런 로망을 항상 품고 있다.

품고만 있을 뿐.

한 걸음 더 나가기에는 용기가 없다.

오소마츠는, 나의 쌍둥이 형은, 어쩌면 나한테는 가장 가깝고도 가장 먼 존재니까.

오소마츠와의 거리감은 고3이 되고 나서 느끼게 되었다.

반이 달라져서일까. 우리 6쌍둥이들이 점점 멀어져서일까.

오소마츠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고, 여자들에게 장난치러 다니고,

그러다 고백을 받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설마, 했는데.

벚꽃이 져가는 어느 봄날 오소마츠가 웃으며 낯선 여자와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다.

마음 한 구석이 아파와서 견딜 수 없었다.

혼자 싸매고 있는 게 그나마 나아서, 서로 서먹해진 우리 형제 사이를 좁혀볼 기력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흘러, 싸늘한 공기가 가득해지는 겨울이 왔다.

 

*

 

첫눈이 내리면 첫사랑에게 고백한다.

그런 로망을 항상 품고 있다.

품고만 있을 뿐.

한 걸음 더 나가기에는 용기가 없다.

카라마츠는 소중한 동생이다. 소중한 동생을 나는 사랑하고 있다.

결코 우애 같은 것이 아니라 연애, 연심이라고 불러야 하는 그런 사랑.

다들 똑같은 얼굴의 6쌍둥이일 텐데, 왜 나는 녀석만을 그렇게 사랑하는지.

그 사실을 부정해보려 발버둥을 쳤다.

6쌍둥이가 아니었다면. 형제가 아니었다면.

그러면 좀 더 편하게 너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첫사랑과 같이 첫눈을 맞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나봐.

철없이 뛰어놀던 어린 시절, 내리기 시작한 첫눈에 너는 그런 말을 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첫사랑은커녕 사랑이 뭔지조차 모르던 철없는 아이였다. 그저 눈이 길가에 쌓일 만큼 내리지 않고 흩날리는 것에 아쉬워할 뿐이었다. 그런 말을 한 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봐도 모를 일이다. ‘첫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좀 흐른 뒤였다. 연애 이야기로 떠들썩한 중고등학교 시절, 1년도 넘게 여자 친구와 사귀는 반 친구에게 슬쩍 물어봤었지. 뭐가 그렇게 좋냐고. ‘뭐든 좋지만 둘이 있으면 행복해라는 짧고도 풋풋한 한 마디는 어째선지 마음을 울렸다. 먼저 떠오른 너의 얼굴을 고개를 흔들며 지웠다. 아니야. 그도 그럴게, 우리는 쌍둥이 형제인걸. 그야 네가 나고 내가 너인 듯 자란 우리 6쌍둥이는 함께 하면 즐겁고 서로를 잘 알아주는 사이기는 하지만... 둘이 있다고 항상 마음이 맞는 건 아니었으니까. 뭐든 좋은 건 아니었다.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있다고 해도 서로에 대해 다 아는 건 아니었다. 특히 중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서로에 대해 모르는 일들이 많이 생겼으니까. 그래서 그럴지도 모른다. 다들 이유는 제각각 다르겠지만 고3이 된 우리 6쌍둥이는 서로 멀어져갔다. 나도 반이 달라졌다는 핑계로 카라마츠를 피해 다니며 더욱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녔고, 그런 나에게 한 아이가 고백한 것을 거절하지 않았다. 벚꽃이 내리는 봄의 마력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카라마츠의 시선을 피한 채 그 아이와 사귀었지만, 친구 이상의 마음은 여전히 생기지 않았다. 그런 어중간한 상태로 시간은 흘러흘러 싸늘한 공기가 가득해지는 계절이 왔다.

오소마츠 군. 고마워.”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거 알아? 첫사랑과 같이 첫눈을 맞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어릴 적 카라마츠가 했던 말.

들어본 것 같기도... , 곧 겨울이라 그런가? 하하핫!”

나 말야, 첫사랑은 중학교 막 들어갔을 때 부활동 선배가 정말 많이 도와줬었거든. 그 선배가 첫사랑이야. 고백하기도 전에 그 선배는 다른 선배랑 사귄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쉽게 마음을 접을 수 없더라고.”

....”

그 상태로 겨울이 되고,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첫눈이 오는 날을 기다렸어. 자기만족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첫눈이 오는 날 같은 장소에 있으면 같이 눈을 맞으면 상관없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정말 첫눈이 오는 날, 점심시간 운동장에서 기적처럼 첫눈을 같이 맞은 셈이 됐는데. 그 때 선배는 그저 농구를 하고 있었을 뿐이지 날 알아챈 것도 아니었고, 뭔가 자신이 갑자기 한심하게 느껴진 거야. 너무 바보 같았어.”

사귀고 있는 애한테서 첫사랑 이야기를 들을 줄이야. 그러고 보니 우리 꽤 오래 사귀었네.”

그러네. 오소마츠 군이 내 고백을 받아줄 지는 생각도 못했어. 어영부영 반년이 지났네. 많은 추억은 없지만. 내가 고백해놓고 막상 진학 준비 때문에 바빴던 탓도 있지만. 오소마츠 군은, 여전히 생각중?”

생각하고 싶지가 않아서 말야~ 잘 모르겠...”

그렇구나.”

그녀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걸까. 반년동안 사귀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들로 가득해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솔직히, 나의 행동도 별반 바뀌질 않아 여전히 여자들한테 장난치는 걸 관두지도 못했고, 그녀는 그런 걸 그다지 나무라지 않았다. 하긴, 3학년 때였으니 이런 사람인 걸 대충 알고도 사귀자고 한 걸지도 모르지만. 왜 나를 좋아하게 됐는지 물었을 때 웃는 모습을 좋아해서라고 답했던 그녀다.

오소마츠 군, 사실 좋아하는 사람 있는 거지?”

좋아한다고 듣고 싶은 거...”

나 말고 다른 사람.”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보고 있으면 알게 되는 걸? 날 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런 거 아니...”

괜찮아. 고마웠어. 내 고백을 받아준 것도. 조금 짓궂다고 생각하지만...그래도 반년동안 즐거웠어.”

“......”

어렴풋이 알고 있어. 누굴 보고 있는지. 분명 그 사람도 너를 보고 있을 거야. 내일에서 모레, 첫눈 예보가 있더라고? 누구나 첫사랑과 이루어지는 건 아닐 테고 첫사랑과 첫눈을 맞는다고 해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건 단순한 미신이겠만, 믿으면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해. 아마 네가 보고 있는 사람은 너의 첫사랑이겠지? 그래서, 며칠 생각하다가, 이제 그만 보내주기로 했어. 고마워.”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걸 보고도 마음이 크게 동요하진 않았다. . 그래서 눈치 챈 걸까. 아무리 한심한 녀석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 나쁜 녀석 같잖아. 그녀는 손을 꼭 잡아주었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할게.”

소매로 눈물을 슥 훔치고 돌아서는 그녀를 보다, 새삼 자신이 차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에 전해진 온기를 꽉 쥐자, 별로 흔들리지 않던 마음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다시 그녀를 붙잡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용기를 내서 첫사랑에게, 카라마츠에게 고백을 할 것인가. 다시 그녀가 돌아보며 웃는 표정으로 힘내라는 듯이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며 힘내라는 포즈를 하고선 돌아섰다. 그녀 나름의 배려 덕에, 일단 용기를 내기로 마음먹었다.

 

*

 

편지를 썼다. 첫눈이 오면 첫사랑한테 고백한다는 마음을 벌써 몇 년이나 품어왔던가. 아침에 주워들은 날씨예보에서 내일이나 모레쯤에는 첫눈이 온다는 말을 듣자, 닫아두려 애썼던 사랑이 열려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오소마츠는 지금 사귀는 사람도 있겠다, 그리고 애초에 형제끼리 사귄다는 게, 연애감정을 품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제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어른이 될 거니까. 오소마츠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이 마음을 정리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새벽에 조용히 일어나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들고 방을 나왔다. 달이 비추는 거실의 탁자 위에서 펜은 허공을 맴돌았다. 차분하게 쓰고 싶었다. 어른스럽게, 담담하게. 하지만, 잘 되지 않아서 눈물이 났다. 결국 몇 마디 쓰지 못하고 편지를 봉투에 넣고선, 마지막 미련으로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 라고 봉투에 써 놓고 들어왔다. 아침까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모두가 먼저 나간 틈을 타 봉투를 쓰레기통에 넣고 집을 벗어났다. 여러 가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너무도 답답했으니까. 괴로웠으니까. 첫눈이라도 올 듯 잔뜩 흐리고 살이 에이는 듯 추운 날이었다.

 

*

 

날이 잔뜩 흐려 낮에도 온통 회색빛에, 날이 제법 추워져서 이런 날이라면 눈이 올 것만 같았다. 정말, 첫눈이 오려나. 그녀가 남기고 간 말과 카라마츠에게 해야 할 고백의 말은 뒤엉켜서 오늘 하루 내내 기분이 저기압이었다. 늘상 그랬지만 형제 누구하고도 마주쳐도 제 갈 길을 갈 뿐. 오늘은 카라마츠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았다. 피해 다니기만 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그다지 서로 마주칠 일도 없었던 걸까. 만약에 지금 마주친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 그 고민은 헛것이 된 채 학교는 끝이 나고, 카라마츠를 옥상에 불러낼까 생각하다 고개를 저으면 관뒀다. 카라마츠는 누구보다도 먼저 하교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것은 늦은 편에 속했다. 아마 집안 분위기를 견딜 수 없어서겠지. 어디를 가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피해 다니다, 마음을 속이고 도피하기까지 했으니까. 언제 첫눈이 내릴지 몰라 애타는 마음 반, 여전히 고백할 준비 같은 건 되지 않아 피하고 싶은 마음 반. 그렇게 일단 집에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또 나갈 거지만.”

평소 하지 않는 인사를 하며 집에 들어서도 누가 있는 건 아니었다. 엄마는 외출하셨나. 일단 가방이라도 두고 카라마츠를 찾으러 가볼까 하며 방에 들어갔다 쓰레기통에 편지 같은 것을 발견했다. 누구 편지지? ...

카라마츠?”

봉투 뒤편에 카라마츠라고 쓰인 편지. 수줍게 붙은 하트 스티커. 뒤집어보면 오소마츠에게.’라고 적혀있었다.

?”

무방비하게 버려진 거 보면 별 거 아닐까. 하지만 나에게 쓴 편지고. 열어보니 편지가 들어있었다. 편지라기보다는. 문장이 나열된 걸로 봐야할까.

 

오소마츠 좋아해

아니 사랑해

정말 오랫동안 사랑했어

가슴이 답답해

그동안 줄곧 말하지 못해서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어

나는 그만하기로 했어

이 마음을 이젠 버릴게

미안해

이제 지울게

안녕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어제는 없었으니 오늘 아침에라도 버린 편지인가.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왜 그만두는 거야. 왜 지우려는 거야. 이제 와서 그런 마음을 가져버리는 거야. 포기하지 말아줘. 그게 아니야. 포기하지 않을게. 진짜 사랑도, 갑자기 다 떠나버리면 어떡해. 그게 아니야. 거짓 사랑에게도 미안하다고 말할게. 진짜 사랑을, 첫사랑을, 외면하지 않을게. 이제는 지우려 하지 않을게. 내가 먼저 말할게. 편지를 들고 뛰쳐나갔다. 정말, 거짓말처럼, 카라마츠가 집으로 오고 있었다. 꽉 차서 답답한 마음과는 달리 어색한 기류가 감싸 절로 정색하는 말투로 카라마츠 앞을 막아서고 말았다.

.”

카라마츠는 나직이 탄식을 내뱉었다.

카라마츠, 잠깐만.”

카라마츠 앞에 편지봉투를 슥 보여주고 만다. 이렇게나 조심성 없이. 하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 어떻게 그걸...”

그걸 그냥 방의 쓰레기통에 넣어버리는 게 누군데. 바보 아냐.

“...읽었어?”

“...읽었어.”

“......”

저기 있잖아...”

그 순간, 카라마츠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에 당황하고 말았다.

어이, 카라마츠. 울지 말고...”

카라마츠는 나를 바라본다. 여태껏 피해왔던, 숨겨왔던 감정들을 다 들켜서 그런가. 간만에 그는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으면서. 그 눈길을 견디지 못해 눈을 피했다.

사귀어 줄 테니까...”

?”

좋아한다며... 그 마음 받아줄 테니까.”

카라마츠의 그렁그렁하게 눈물이 맺힌 눈이 감기고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 미소는, 그 표정은, 치사하잖아. 간만에 봐서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예쁜 미소를 지어버리면. 그렇게 행복한 듯 웃어버리면.

“...잖아.”

?”

오소마츠는... 지금 사귀는 사람이 있잖아?”

, 차였어. 어제.”

어제 차이고, 오늘 사랑고백하는 거야? 오소마츠는 역시 쓰레기야.”

그렇게 울먹거리며 예쁘게 웃으면서 독설을 날리는 카라마츠.

갑자기 그렇게 말해도...”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벅찬 듯 울음이 섞이기 시작했다. 잠깐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흐르자,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울보구나, 카라마츠.”

태연한 척 카라마츠의 어깨를 잡으면, 카라마츠는 슬쩍 내 교복의 넥타이만 잡았다.

이런 쓰레기지만, 사랑한다며.”

카라마츠는 어정쩡하게 나의 옷깃을 잡을 뿐 안겨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뭐랄까. 어떻게, 이제 우리 사귀는 거야?”

“......”

편지로 사랑하는 걸 그만두겠다면서 녀석도 덥석 사귀자고 답해버리다니.

우리는 너무나도 바보 같다.

 

*

 

어정쩡한 상태로 집 앞에서 우린 한참을 서 있었다. 날은 춥고, 흐리고, 어색한 분위기를 견딜 수 없어 입을 열었다.

그럼, 연인이 됐으니까 하고 싶은 거 있어? 한동안 서로 말도 안 했으니까 좀 어색한데... 한 번에 거리를 줄여버려? ...”

...”

어색한 분위기를 풀려고 늘어놓은 장황한 말을 가르고 답이 돌아왔다.

잡아줬으면...하는데...”

...”

카라마츠가 오른손을 내밀면, 나는 왼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집 앞에 있기는 뭐하니 일단 걸었지만, 손만 잡았지 카라마츠는 나와 최대한 떨어져선 나의 시선을 피했다. 뭐냐고. 그렇게 말없이 걷는 동안,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자연스레 카라마츠가 가는대로 따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날이 추워서 그런가, 긴장해서 그런가. 카라마츠의 손은 유독 차가웠다. 공원의 사람이 잘 오가지 않는 곳에 다다라서는 그가 멈췄다.

오소마츠. 따뜻하네... 손이...”

슬쩍 나를 보며 카라마츠는 뺨을 붉게 물들이고선 말을 건넸다. 부끄러워서였나. 내 쪽을 보지 않은 건.

손 정도는 어릴 적에는 실컷 잡았잖아? 한 발 앞으로 나가보자고?”

농담따먹듯 말을 던지면 손을 꼭 움켜쥔 채 카라마츠는 고개를 가볍게 가로저었다..

부끄럽다고...나중에 하자...”

나중에? 뭔가 하고 싶은 건 있구나?”

그만해... 부끄럽다고 했잖아. , 그렇지만...”

네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차가운 것이 마주잡은 손에 닿았다. , 하고 너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도 너를 따라 하늘을 보면 어느새 하얀 눈송이가 내리고 있다.

오소마츠, 기억해?”

첫사랑과 같이 첫눈을 맞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그 말 하려고 했는데.”

어제 차이면서 들었던 말.”

왜 그런 말을 들으면서 차여. 이상하잖아.”

그러게. 이상하네.”

원래는, 첫눈이 오면 첫사랑과 같이 맞으며 고백할 셈이었는데...고백을 먼저 하고 이루어지고... 그러고 첫눈을 맞는 셈이 됐네...”

어쩌면 이미 고백한 거 아닐까? 나한테 그 말을 했을 때. 몇 살 때였나... 첫눈 올 때 나한테 말했잖아. 그게 고백 같았어. 지금 생각해보면.”

...”

새삼 깨달았어. 네가 몇 년을 첫사랑을 쌓아온 건지. 그 첫사랑이 나라서 고마워.”

오소마츠는 어때. 첫사랑이...”

나도, 너였거든.”

잡은 손이 떨리는 게 느껴진다.

나도 오랫동안 첫사랑을, 이 마음을 쌓아 왔나봐. 카라마츠, 사랑해.”

손을 놓고 너를 안고 입을 맞춘다.

너는 놀란 눈을 하지만 저항 없이 나의 박자에 맞추고.

첫눈이 내리고 두 사람의 첫사랑이 이어지는 기적의 순간.

차가운 세계에서 온기가 오가는 속에서.

두 사람의 어깨에 눈이 쌓일 때까지 두 사람은 떨어지지 않았다.

 


후기

"원내용 짤 때만 해도 로맨틱했는데 생각하다 미루다보니 뭔가 이상한 이야기가 된 듯한... 1812에 대한 사랑이 전해졌을까? 1812의 사랑이 전해졌을까? 조금 의구심을 가지면서... 결국 마감일에 써서 제출하고 말았습니다. 풋풋한 이야기들을 생각하면서 즐거운 18세 커플링, 오소마츠는 연애경험이 있고 카라마츠는 없는데 둘이 첫사랑이라는 설정을 넣으면서 음흉하게 웃으며 시작했었죠! 그리고 결과물. 합작에 많이 참여해보지 않았던데다 워낙 설정만 짜고 미루기대장이라 완성만 해도 다행이라고 안심해버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음... 다른 분들의 멋진 작품들을 기대하며...합작 열어주신 른른이님과 합작 참여해주신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하며 후기 마칠게요! 앗 후기 너무 길다!"

Posted by 하리H( )Ri
2020. 6. 26. 01:43

마법교사 오소마츠×인어 카라마츠

검푸르죽죽한 차가운 세계에서 따스한 붉은 빛에 처음 닿았을 때, 용기를 내서 수면 밖으로 고개를 든 인어는 붉은 태양을 사랑하게 되고 말았지. 태양이 뜨고 지는 모습과 심해보다도 까만 하늘에 알알이 박힌 별들을 보며 처음으로 인어는 바다 바깥에 나가고 싶어졌어. 뭍을 오가는 거북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호기심을 키워간 인어는 드디어 뭍에 가까이 다가가기로 했어.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래 탓에 뭍의 모습을 눈에 채 담지 못하고 인어는 물 속에 다시 몸을 담궜지. 자맥질을 되풀이하며 눈에 새기는 풍경 속에 새로운 피사체가 나타났어. 언뜻 보기에, 반은 자신을 닮았고 반은 길게 뻗은 두 개의 신체 기관으로 뭍을 돌아다니는 생명체. 태양을 닮아 있는 붉은 것을 걸치고서 바다를 바라보는 그에게 말을 걸고 싶어진 인어는 뭍으로, 뭍으로, 자신의 전부였던 바다가 어느새 끝나버리는 곳까지 헤엄쳐 그의 앞에 고개를 내밀었지. 붉은 옷을 입은 소년은 바다에 갑자기 떠오른 생명체를 응시했어. 귀 뒤에 달린 아가미, 목덜미에 있는 비늘. 전설 속에서 들었던 인어일까. 소년은 옷이 젖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 쪽으로 다가갔어. 우호의 표시로 손을 내민 채로. 인어는 갑자기 다가오는 소년이 두려웠지만 저도 모르게 다가갔어. 하체에 드러나는 비늘, 꼬리 지느러미를 파닥이며 파도가 치는 곳에서 인어는 멈췄어. 소년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손을 세워서 내밀었어. 인어가 그 동작을 같은 방향의 손으로 따라하자 소년은 팔을 바꾸고 인어의 손을 잡았지. 숨이 쉬어지지 않는 와중에도 인어는 소년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어. 더 이상 눈부신 풍경은 인어의 눈을 감게 할 수 없었고, 인어는 소년으로 시선을 가득 채웠지. 처음 태양을 봤던 날 느낀 따스함이 소년의 손에 머물러 있어서, 소년의 붉은 옷이 태양을 닮아서, 인어는 소년을 사랑하게 됐어. 
- 또 보자. 
다시 만나기 위해 인어는 소년의 손을 놓고 바다로 돌아갔어. 처음 경험한 뭍에 적응할 수 없어서 인어는 의식을 잃은 채 깊은 바다로, 바다로 가라앉았어. 소년은 잠깐의 만남에 남겨진 인어의 흔적을 주워들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인어는 다시 떠오르지 않았어. 소년은 다른 이들의 손에 이끌려 바다가 보이지 않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어. 서로가 느낀 상반된 온도와 조그만 흔적으로 남은 그 날은 둘에게 있어 기적을 바라게 되는 계기가 되었지. 
"...라는 낭만적인 일이 있었어. 첫 수업날 첫 사랑 이야기를 해달라니, 너희들은 아직도 애구나. 뭐? 그래서 인어는 다시 만났냐고? 글쎄. 방금 지어낸 따끈따끈한 거짓말이니까 말이지." 
야유 속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인 소년, 이었던 오소마츠는 목에 걸린 팬던트를 만지작거렸다. 팬던트 안에는 그날 주웠던 비늘이 마법으로 보호된 채 보관되어 있었다. 마법사가 되기 위한 적성 검사를 수없이 실패하던 그는 무작정 바다로 달려나왔다. 그때 만난 인어를 잊고 싶지 않아서 꼭 쥐며 다시 만나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고, 소원에서 비롯된 마법이 비늘에 깃들어 보호 마법이 걸리며 그의 마법 적성도 개화했다. 지금은 재능이 꽃 피고 열매 맺어 마법 교사까지 되었건만. 이제는 푸른 비늘을 가진 그 인어 씨를 뭍에 데려올 수 있을 마법을 걸어줄 수 있는데. 오랜 시간을 지금 근무하는 학교처럼 느긋하고 편한 느낌으로 배운 게 아니라 바다의 짠 내음은 맡을래야 맡을 수 없는 동굴에 갇혀 스승의 맘에 찰 때까지 수련하느라 바다에 가지 못한 탓일까. 수련이 끝나고 바다에 매일 날아가지만 그 인어 씨는 커녕 다른 인어조차 본 적이 없다. 수속성 마법에는 한계가 있어 깊은 바다에 들어갈 수도 없다. 그러니까 거짓말인 셈 치기로 했다.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몰입하던 청중도 김이 샌 듯 '하긴, 인어가 세상에 어딨겠어.' 라고 말한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거짓말같이, 기적이 일어나면 좋겠다. 마법 따위는 별 것 아니게 보일 그런 기적이. 

소년은 어른이 되었다. 소년의 흔적은 천진난만한 웃음에, 이상하리만치 붉은 옷을 고집하는 것에, 하루가 멀다하고 해가 지지 않은 바다에 찾아가는 것에 남겨졌을 뿐이다. 온통 수수한 검은 천으로 두른 다른 교사들 사이에서 화려하게 꾸민 붉은 옷을 입은 오소마츠는 첫 부임부터 이목을 끌었다. 경건하게 마법이라는 기적을 맞아들이는 장으로서의 학교에 놓인 이물질. 그의 화려한 복장은 빛바랜 낡은 돌로 쌓아올린 학교와는 다르게 마법을 생존 수단으로 삼아 살아온 훈장과도 같았다. 한편으로는 그들처럼 기적을 맞아들이기 위해 붉은 옷을 걸쳤으나 그 사정에 대해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나름 배짱있게 채용면접을 봤으나 지식의 전당에 군림하는 교장의 위엄 탓에 긴장했는지 바보같은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 인어는 존재하나요? 
소년의 기억에 금이 갔다. 그의 입으로 역시 그렇죠? 하며 농담하듯 나온 말에 그 금은 더 벌어지는 듯 했다. 하긴,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 직후 드디어 마법 적성을 깨우쳤다며 스승에 의해 동굴에 끌려갔다 나왔다곤 해도, 겨우 1년. '또 보자'는 간절한 사념의 유통기한이 겨우 그것밖에 안 되는 건지. 둘의 만남에 비하면 1년 또한 엄청난 시간이지만, 그 뒤에 지나버린 더 긴 기다림의 시간에 오소마츠는 속상해했다. 
퇴근 후, 딱히 마법을 걸지 않아도 커다란 수정구슬은 그를 바다로 데려간다. 찰나의 순간에 삶이 좌우된 남자는 사실 요즘 들어선 기대를 많이 접었다. 순수함은 점점 바래고 타성이 붙어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 같은 생각을 하며 아련한 추억으로 남으려 하고 있었다.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자신을 위로하며. 해는 제법 길어져 아직 주변이 밝았다. 그 풍경 안에서 낯선 반짝임이 눈에 띄었다. 커다란 바위산 쪽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오소마츠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처럼 유리 파편이나 물이 튀긴 거겠거니... 톡. 톡. 커다란 꼬리지느러미가 수면을 치고 있었다. 시선은 위로, 위로 향했다. 태양이 내려올 준비를 하는 곳에 눈을 고정한 채, 바다와 같은 빛깔을 가진 비늘에 뒤덮인 하체와 인간을 닮은 상체 그리고 귀 자리에 나 있는 지느러미를 가졌다. 인어의 특징이라고 전해져오는 것. 오소마츠가 가까이 온 것도 모르는지 인어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물을 튕기고만 있었다. 인어가 진짜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 그였지만,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과 자신이 만난 인어가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에 좌절하고 말았다. 오소마츠는 약이 올라 하늘만을 보는 인어의 앞을 막아섰지만, 인어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인어의 까만 눈동자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눈동자에는 오소마츠는커녕 태양조차 비치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멍하니 인어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저기..." 
그제야 인어는 오소마츠의 얼굴이 있는 쪽으로 살짝 고개를 틀었다. 인어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꼬리지느러미로 수면을 더 세차게 두드리며 손으로 바다를 가리키더니, 바위를 차고 공중제비를 돌고서 바닷물 속으로 들어갔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자신이 있던 바위 쪽을 응시하는 인어의 모습에 오소마츠는 의아해하면서도 부츠를 벗고 발을 바다에 담갔다. 
- 들리는가? 
머릿속에서 전해지는 소리. 하지만 그는 어떻게 답을 해야할 지 알지 못했다. 
- 눈치챘겠지만 나는 시력을 잃었다. 그 대신인지 뭍에 오래 머무를 수 있게 됐지만. 바다의 존재들은 바다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전하지만, 뭍의 존재와는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군. 일단 손을 잡아보지 않겠는가? 서로 맞닿아있으면 생각이 전해질 지 모른다. 소리를 내면 그 쪽으로 내가 가겠다. 
그 말에 오소마츠는 전에 인어에게 내민 적 있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수면을 발로 차면 물이 튀는 소리와 번져나가는 물결이 인어를 그에게 데려왔다. 놀랄만큼 잔잔한 바다에는 어느새 태양이 녹아내려 붉은 빛이 섞이고 있었다. 그는 손을 내밀어 인어의 손을 잡았다.
- 진짜... 인어가 있었어!
- 인어? 인어가 뭐지?
- 당신같은 존재를 이야기하는 거야.
- 뭍의 존재는 나를 인어라고 부르는군. 이 바닷가에는 작은 뭍의 존재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 뭍의 존재라고 하면 엄청 많거든? 난 오소마츠! 나 같은 존재는 인간이라고 하고.
- 인간, 오소마츠... 오소마츠... 오소마츠...
인어는 오소마츠의 이름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이런 사념까지 생생히 전달되는 걸 그는 알까.
- 너는? 물어보고 싶은 게 잔뜩 있지만, 우선은 이름을 알고 싶어.
- 이름... 이름이라고 하면 카... 카... 미안하다. 잊어버렸어.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게 아니라니. 자기가 누군지를 명확하게 해주는 건데. 중요하지 않다면, 왜 오소마츠의 이름을 되뇌인 건지.
- 알았어. 그럼, 인어 씨. 혹시 한 십 년 전? 조금 오래됐는데 이렇게 뭍에서 뭍의 존재, 그러니까 나 같은 인간하고 이야기를 나눈 적 있어?
너무 대놓고 물어봤나. 기다려온 시간만큼 쌓였던 그리움이 한번에 터져서, 간절하게 이 인어가 그때 그 인어이기를 바라면서 다급한 마음이 그를 떠밀었다. 인어는 손을 잠시 놓더니 자맥질하곤 다시 손을 잡았다.
- 미안하다.
- 응?
- 사실 난 기억을 잃었다. 시력을 잃었을 때 같이 잃어버린 것 같다. 날 구해준 동료들이 나를 위해 원래 내가 어땠는 지를 이야기해줬기에 시력도 기억도 잃었다는 것을 알 뿐. 우리, 그... 인어들은 바다의 존재이므로 뭍에 오래 머무를 수 없지만, 나만은 특이하게 뭍에 오래 있어도 괜찮다고 한다만. 이렇게 뭍에 오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지난 보름달이 떴을 때부터 왔다고 해야 하나.
- 한 달도 안 됐나... 
- 인어와 만난 적이 있는가?
- 아마도. 어릴 때였어. 정말 잠깐이었지만 또 보자고 했거든.
- 이 바닷가에서?
- 응.
- 돌아가서 동료들에게 물어봐줄까? 뭍에서 인간을 만나 그런 약속을 했는지 말이야.
부탁할게, 라는 말이 쉽사리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소마츠에게는 무척 소중한 추억이니까. 조금 복잡한 마음이었다. 그 인어를 찾고 싶은 마음과, 추억으로 아름답게 남기를 바라는 마음. 게다가 눈앞의 인어가 추억 속의 인어라는 묘한 확신이 있었다. 기억을 잃었다면 그의 마법으로 되찾아 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아, 아냐. 그보다 내일, 내일 다시 이 곳으로 와 주겠어? 오래 전 약속이라 이미 그쪽은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고, 인어 이야기를 더 듣고 싶거든. 그런데 물에 계속 몸을 담그고 있었더니 추워서...
어느새 그의 몸 대부분이 바다에 잠겨 있었다. 발만 담그고 손을 내민 불편한 자세를 벗어나려 그런 것이리라. 내일 이것저것 마법을 부릴 준비를 하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음... 좋다. 나도 뭍의 존재와 이렇게 오래 이야기를 나눈 건 처음이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하고.
인어는 이제는 붉은 빛이 가시고 검은 빛에 은은한 노란 빛 달이 떠 있는 바다로 사라져 갔다. 오소마츠는 인어가 사라진 곳을 한참 바라보다, 그제서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늘을 떠올렸다. 아까 인어가 앉아 있던 바위에는 비늘이 몇 개 떨어져 있었다. 비늘을 주워담은 뒤 오소마츠는 집에 돌아가 탁자에 깨끗한 천을 펼쳐 그것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팬던트 안에 보관한 비늘을 꺼냈다. 분명 같은 색이겠지, 했던 비늘은 색이 달랐다. 가지고 있던 비늘 또한 바다를 닮은 푸른 색이긴 했지만 그 색이 옅고 투명했다. 주워온 비늘은 색이 짙고 덜 투명했으나, 더욱 반짝이고 있었다 . 그는 실망했다. 물론 인어도 시간이 지나면 비늘이 변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묘한 확신이 부정당한 느낌이었으니까.

다음 날, 오소마츠는 강의를 마치고 남은 근무는 핑계를 대며 내팽개친 채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 떠 있는 바닷가로 부리나케 날아왔다. 인어는 어제 처음 만난 바위에 그대로 앉아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양이 인어의 눈에 더 이상 비치지 않더라도. 그러고보니 어제도 인어는 태양을 보고 있었다. 
"인어 씨!"
인어는 오늘은 그냥 가볍게 튀어올라 바다로 잠겼다. 오소마츠는 마법을 걸어 몸에 보호막을 친 뒤, 손만이 빠져나오게 한 채 바다로 걸어들어갔다. 인어가 어쩐지 놀란 표정을 지어서, 오소마츠는 쑥쓰러웠다. 어제와 같이 둘은 손을 잡았다.
- 인어 씨, 놀랐어? 사실 난 마법사거든. 보통 인간들은 하지 못하는... 기적을 만든다고 해야 하나.
- 뭔지는 알고 있다. 그 비슷한 거라면 인어들도 쓰고 있거든. 그럼 바닷속으로 더 들어와보면 어떤가? 아마 그 공기방울에 들어가 있으면 굳이 손을 잡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 거다. 뭍의 이야기를 듣기 전, 오소마츠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있으니.
인어의 말을 믿기로 하고 오소마츠는 보호막에 수속성 마법을 건 뒤 바다에 푹 잠겼다.
- 혼자 이동할 수 있는가? 
- 응. 전에 몇 번 연습은 해본 적 있어서. 인어 씨와 편하게 이야기도 할 수 있다니 더 좋은걸.
- 다행이군. 아참, 동료에게 물어서 내 이름을 알아왔다. 카라마츠, 라고 하더군. 내가 잊어버린 시간에 이름이 얽혀서인지 동료들은 가능하면 날 이름으로 부르지 않으니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건 그래서였다. 어제 오소마츠가 신경쓰는 듯한 표정을 지어서 진지하게 물어보고 왔지.
뿌듯한 표정으로 인어, 카라마츠가 생각을 전해온다. 카라마츠. 
"카라마츠"
- 응?
- 내가 쓰는 말로 카라마츠를 부르면 이런 소리가 나. 들렸어?
- 잘 안 들렸다. 이따 뭍에 나가면 다시 들려주겠는가?
- 글쎄~
카라마츠는 삐진 듯 더 깊숙이 헤엄쳐갔다. 바다의 색은 제법 짙어져 밤처럼 되었다. 지팡이에 자그마한 빛을 켜자 그 곳에 새하얀 신전 같은 게 눈에 띄었다. 더 가까이 가려 하자 카라마츠가 가로막았다.
- 뭍의 존재가 들어올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오소마츠의 안내역을 자처했기에 여기쯤이라고 내가 알 수 있었던 거지만 오소마츠가 혼자 들어왔으면 위험해졌을거다.
수속성 마법에는 한계가 있다. 그건 그런 의미였나. 깊은 바다까지 들어갈 수 없다는 건 다른 게 아니라 결계나 금기가 있다는 뜻인 모양이었다. 
- 인어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서, 인어가 알고 있는 뭍과 바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여기까지 왔다. 저 신전은 바다의 신을 모시는 곳이다. 나와 같은 인어들이 신탁을 받아 다른 바다의 존재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가까이서 바다의 신의 시중을 드는 존재들도 있지만, 나는 기억을 잃고 깨어났을 때 딱 한 번밖에 뵙지 못했지. 
[너는 사랑해선 안 될 것을 사랑하고 말았구나. 가여운 것.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끝내 갈구하게 되는 것이니. 네가 적어도 이 이상의 고통은 느끼지 않도록 자비를 베풀어주겠다.]
- 신께서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고, 그 덕인지 지금은 이렇게 밝게 웃으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신을 직접 만나다니 굉장하잖아. 오소마츠는 그런 게 기적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 사랑해선 안 될 것이 무엇인진 잘 모르겠지만, 그후 신탁으로 뭍과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지. 정확히는 하늘과 바다의 이야기지만. 
- 하늘과 바다의 이야기?
- 그렇다. 하늘과 바다의 신은 형제라는 모양이다. 물론 다른 형제도 있다고 하지만... 둘은 생명이 있는 존재의 세계를 양분하여 다스리는데 그게 하늘, 뭍과 바다인 것이지.
사념이 전해져오는 것일텐데,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눈을 감고 엷은 미소를 지은 채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에게 이야기를 계속 전했다.
- 서로의 세력권이 늘 맞닿아 있기도 하고, 두 신은 닮은 점이 많아서 매우 친밀한 사이였다고 한다. 어느 정도였는지는 당연히 신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그러던 중 뭍의 존재 중 인간이라는 종족이 하늘의 신의 가호를 받으면서 번성했고, 인간은 뭍의 지배자가 되었지. 그렇게 해서 인간은 신의 능력의 일부를 손에 넣게 되었다는데, 그게 아마 오소마츠가 쓸 수 있다는 마법이라는 것일 거다.
-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마법의 기원을 들었네. 인간이 뭍의 지배자...인가.
- 신의 능력까지 손에 넣은 인간은 이윽고 신의 권위까지 흔들기 시작했어. 이에 분노한 하늘의 신은 인간에게 심판을 내리지. 거기에 바다의 신도 동조해서 뭍은 일부의 존재만 남고 전부 심판의 파도에 휩쓸려 생명을 잃게 돼.
- 응? 그렇다는 건...
- 오소마츠는 심판 이후 새로이 번성한 인간의 후예라는 거지.
- 심판은 순조로이 끝나고, 하늘의 신은 남겨진 존재들이 다시금 뭍에서 번창할 수 있도록 했어. 그러나 심판의 파도로 꺼진 생명들은 바다의 신이 거둬들여야 했지. 바다는 한동안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 차고, 치우고 분해해도 생명을 잃은 존재의 흔적은 계속 남아 바다의 신을 괴롭게 했어. 신은 죄책감과 함께 하늘의 신을 원망했어. 더러운 일은 자기가 혼자 해야 했다고. 내리쬐는 태양이, 반짝이는 세상이 미워서 바다의 신은 마음을 닫아걸어버렸어. 그 흔적이 이 결계고, 아마 뭍에 너무 다가간 나는 저주라도 받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마저도 신께서는 용서하셨지만.
오소마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인어에게서도 마치 마음을 닫아걸어버린듯한 체념이 느껴져서. 기억을 해내려고 해도 이제는 꺼낼 수 없는 과거를 더듬으려고 노력한 카라마츠에게, 자신이 그토록 기다린 인어였다고 말한들 고통스럽기만 할 것이다. 그게 진실이든 거짓이든. 그렇게 믿든 믿지 않든. 신의 이야기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카라마츠 나름의 변명일 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르는, 애당초 자신이 겪은 일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과거를 위해서.
- 어떻게 생각해?
- 무얼 말인가?
- 기억을 잃은 거, 시력을 잃은 거 말야.
- 그거야 뭍에 너무 가까이 간 내가 나빴...
- 그게 아니라 카라마츠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나에게 이름을 알려줄 땐 기뻐했잖아... 그런데 그거 말고는... 카라마츠는 여전히 태양을 보고 싶어 하잖아! 오늘도 나를 기다리며 태양을 보고 있었잖아... 날 만나기 전에는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미련은 없었던 거야?
오소마츠가 토해낸 사념에 카라마츠는 겁먹은 듯 움찔거렸다. 그러나 이내 카라마츠는 웃어버리는 것이었다.
- 또 보자, 오소마츠. 
카라마츠가 손을 흔들자 바닷물이 용솟음치고 오소마츠는 방어막째 순식간에 해수면으로 떠올랐다. 
"젠장! 왜 자기 생각을 얘기해주지 않는 거야..."
분한 마음에 모래를 실컷 걷어차고서야 오소마츠는 돌아갔다. 그 뒤로 한동안 오소마츠는 바다에 가지 않았다.

한 달이 넘게 지났을까. 오소마츠는 바다가 그리워졌다. 구슬을 타고 날아가지 않고 걸어서 이동하니 어느새 검게 물든 바다에 보름달이 띄워져 있었다. 인어를 찾기 위해서라지만, 꽤나 오랫동안 바다에 매일같이 왔던 탓인지 한 달만의 바다는 그리운 냄새를 풍겨왔다. 그러고보니 오소마츠는 밤바다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인어를 낮에 만났기 때문인지 어두워지면 곧 돌아가곤 했으니까. 보따리에서 술을 꺼내서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한 병을 들이켰다. 집에서도 늘상 마시는 술이건만 바닷바람이 더해져 짠맛이 느껴졌다. 걸어와서 지쳐있는데 술을 들이켰으니 금세 취하고, 취한 눈에 아른거리는 사람의 그림자를 헛것 치부하며 또 한 병을 꺼내 마시려던 때,
"거기, 누구 있는가?"
차분히 가라앉은, 낮지만 고운 목소리. 들어본 적 없지만 들어본 것 같은 익숙함.
"있거든? 그러는 넌 누군데?"
"카라마츠. 카라마츠라고 한다."
고개를 들면,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카라마츠가 서 있다. 모래사장 위에 서 있다. 푸른 비닐에 덮이긴 했지만 인간처럼 두 다리로 서서.
"난 오소마츠야. 우리 만난 적 있던가?"
두 다리로 선 모습에 문득 두려워졌다. 반가운 마음과 함께, 어쩌면 카라마츠는 또 다른 무언가를 제물로 바쳐 뭍에 선 게 아닐까.
"또 보게 돼서 기쁘다, 오소마츠."
카라마츠는 눈물을 흘렸다. 사실, '보게' 됐다고 말하는 카라마츠에 눈엔 여전히 오소마츠는 비치지 않았다. 그러나 카라마츠가 흘리는 눈물 방울방울에는 오소마츠가 비쳤다.
"어떻게 된 거야... 잠깐 사이에 너무 많이 변했잖아."
"잠깐이라니. 내게는 긴 시간이었다. 이대로 오소마츠가 찾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며 걱정했다고."
"울지 마... 이야기 들을 테니까."
"으응... 긴 얘기는 아직 인간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니 물가 쪽으로 가지 않겠는가."
카라마츠는 바다로 걸어들어갔다. 푸르게 덮인 비늘의 다리는 서서히 원래의 인어와 같은 꼬리지느러미의 모습으로 변했다. 
- 오소마츠가 얘기했지.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오소마츠를 만나기 전에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신의 뜻이 있겠지, 동료들이 있으니 걱정없지... 그렇다고 태양에 대한 동경은 사라지지 않았던 건지 나는 뭍으로 올라가려고 애썼고, 그 결과 오소마츠를 만났던 거다. 오소마츠를 뭍으로 돌려보내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신전에서 기도를 드렸지. 잃어버린 기억을, 기억을 지운 게 신의 자비라는 걸 알지만, 돌려달라고. 바다의 신께서 답해주셨다. 그건 자비가 아니라 벌이라고. 그러나 기억을 찾으면 그 벌보다도 더 큰 고통을 받을 거라고. 두려웠다. 그러나 오소마츠를 떠올리니 용기가 났다. 기억을 돌려달라고 말했지. 신은 다른 제안을 했다. 시력을 돌려주겠다고. 기억을 포기하면 다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겠다고. 태양도 그러면 볼 수 있다고, 나를 회유하셨지. 오기가 생겼다. 기억을 돌려달라고. 뭍에 가는 건 포기하지 않을 거고, 태양은 볼 수 없어도 괜찮다고. 그 결과 기억을 찾고, 신의 축복으로 뭍을 걸을 수 있는 다리를 받았다. 동료가 얘기해주길, 이 다리의 모습은 신의 그것과 비슷하다더군. 
"잠깐. 태양은? 늘 보고 싶어했..."
- 둘 다 가질 순 없었던 거지. 나에게도 묘한 감이 있었어. 잃어버린 기억 속에 분명 오소마츠와의 만남이 있었을 거라고. 기억을 찾자, 내 온 몸과 눈은 불타는 듯 했어. 하늘의 신과 바다의 신이 서로 사이가 안 좋아진 결과 생긴 서로의 마음의 장벽이 말이지. 나는 하늘의 신의 영역을 넘어서고 말았던 거다. 그 영역이라는 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태양을 본 내 눈과 몸이 불타는 걸 바다의 신께서 구해주셨던 거였고. 불타는 와중에 기억 속의 붉은 옷을 입은 소년이 손을 내밀어주었어. 그 손이, 내게는 구원이었지. 오소마츠. 아마 네가 기다리던 인어는 나였던 모양이다. 더 일찍 기억해내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때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와락 끌어안았다. 오소마츠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카라마츠는 그걸 볼 수 없었다. 
"기억 속의 인어가 아니라도 괜찮았어. 카라마츠가, 한 번 더 보고 싶었어... 완전 바보잖아... 바보 카라마츠..."
더 많은 이야기를 하자. 보이지 않아도 뭍을 느끼게 해줄게. 태양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줄게. 그러니까.
-날 뭍으로 데려가줘.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두 팔로 들어올렸다. 그 상태로 구슬에 타서 바다를 뒤로 한 채 밤을 지났다. 어두운 하늘에 붉은 빛이 물든 그 시간, 하늘과 바다를 가로지르던 결계가 흐려졌다. 바닷물이 용처럼 솟구치더니 잠시 허공을 머무르고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카라마츠의 눈에도 잠시 붉은 빛이 비추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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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전에 썼다 오늘 완성한 거 포타에 이어 또 복붙
맨날 나만 알게 쓰는... 제우포세향도 좀 넣었는데 워낙 존재니 뭐의 신이니 돌려 말해서 글자수만 많아지고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좀 쓰고 쓰고 써야 늘텐데 하하하하하...



Posted by 하리H( )Ri
2020. 4. 1. 22:53

 

https://heartrainon.tistory.com/m/201

이전(?) 글
전에 써둔 거(뜨이따엔 올렸던가) 백업으로 올립니다
다른 컾은 쓰다 만게 대부분인데 오카는 마무리지어진게 있네요
덕분에 오카 지분률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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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모 대륙에 있는 소국, 장미의 나라의 일명 '붉은 왕'.
■카라-지하세계의 공주(왕 후보자). 지상을 알고 싶어서 지상으로 왔다.

"카라마츠 공주, 오늘은 바다를 보러 가지 않겠어?"
오늘도 카라마츠 공주는 선글라스를 쓴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소마츠 왕은 그런 카라마츠에게 말을 걸었다.
"바다? 하지만, 장미의 나라는 바다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동맹국인 산호의 나라에 잠시 갈 일이 생겼거든. 그 참에 카라마츠에게도 바다를 보여주고 싶어서."
"동맹국과의 교류에 나를 데려가도 괜찮은가?"
"주요 업무는 쵸로마츠가 볼 거고, 산호의 나라의 왕은 호탕해서 가끔 바다를 보러 가고 싶을 때 부탁하면 자유롭게 보내주거든."
"그래도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카라마츠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잔뜩 드러나서 오소마츠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럼 준비가 되면 이야기해줘."

어딘가 나갈 일이 있을 때는 항상 말을 타던 두 사람은 처음으로 한 마차 안에 마주보고 앉았다. 하얀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낯선 곳에서 둘만 있어서 그런지, 마차가 흔들거려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두 사람은 말을 하지 못하고 바깥만을 보면서 산호의 나라로 향했다. 바깥 풍경이 변해가는 보습을 보며 선글라스 너머로 눈을 반짝이는 카라마츠가 사랑스러워서 오소마츠는 그를 쳐다보다가 카라마츠가 시선을 느껴서 고개를 돌리면 재빨리 다른 쪽 창밖을 보는 척을 하곤 했다. 산호의 나라에 도착하고, 카라마츠가 마차 안에서 기다리는 동안 오소마츠는 산호의 나라의 왕인 데카판에게 인사를 하고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은 뒤 실무를 쵸로마츠에게 떠밀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빠르게 허락받았지. 바다를 보고 오면 카라마츠 공주를 산호의 나라의 왕에게도 소개해도 괜찮을까?"
"물론이지. 하지만 순서가 잘못된 건 아닌가, 오소마츠?"
"괜찮대도. 이 나라의 왕은 내가 왜 여기 오는지를 잘 알거든. 대신에 좋은 모종을 보내고 정원사도 파견해서 왕궁의 조경을 멋있게 만들어주고 있는걸."
"그런 거라면, 알겠다."
말에서 마차를 뗴어내고, 마부에게 마차를 지키도록 명령한 뒤, 오소마츠는 말에 올라타 카라마츠에게 손을 내밀었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뒤에 탄 채 자연스럽게 허리를 끌어안았다. 오소마츠가 자신있게 말을 원하는 방향으로 달리게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다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때. 강하고는 또 다르지, 바다는?"
"아아.."
카라마츠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오소마츠는 신경이 쓰였지만 꾹 참고 바닷가로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새하얀 모래사장. 부서지는 파도. 말을 멈춘 곳에는 산호의 나라가 자랑하는 푸른 바닷가가 있었다. 카라마츠는 구두를 벗은 채 드레스를 두 손으로 잡고 모래사장을 사뿐사뿐 걸었다. 파도가 치는 곳에 발을 놓으면 파도가 카라마츠의 새하얀 발을 간질였다. 차가워서 놀라 발을 뗐다가 다시 집어넣으면 파도는 카라마츠의 발에 의해 하얗게 부서졌다. 햇빛 아래, 바다 위에서 반사된 빛을 받아 카라마츠의 피부는 더욱 반짝였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가 구두를 벗은 그 옆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서 있었다. 푸른 드레스를 입은 카라마츠는 지금이라도 당장 하늘 속으로, 바다 속으로, 오소마츠가 보는 풍경 속으로 녹아들 것만 같았다. 반짝임에 눈이 부셔 눈을 찡그리고 잠시 얼굴을 가리면,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오소마츠! 왜 가만히 있기만 하는건가? 같이 '바다'에 들어가야지! 파도라고 하던가? 발 끝에서 부서지는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기분이 좋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갸웃한 채 오소마츠의 얼굴을 아래에서 올려다보았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린 오소마츠는 못 이기는 척 부츠를 벗고 바지를 걷어올린 채 카라마츠의 손을 잡고 모래사장을 밟으며 바다 쪽으로 걸었다. 부서지는 파도를 발로 맞으며 연신 까르륵거리는 카라마츠에 푹 빠져, 오소마츠는 자신의 바지가 젖는지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새 바다에 붉은 빛이 물들고, 오소마츠를 애타게 부르는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오소마츠는 바지가 젖은 걸 눈치채고 난처해했다. 그런 오소마츠를 번쩍 안아들고, 카라마츠는 바다를 벗어나 모래사장에 대기된 마차에 오소마츠를 태웠다. 카라마츠의 드레스도 제법 젖은 채였다.
"왕과 공주라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칠칠치 못하니... 갈아입을 옷을 챙겨왔으니 이따 산호의 나라 왕궁의 빈 방을 빌려서 갈아입어야겠네요."
쵸로마츠는 두 사람이 탄 마차에 잠시 타서 한숨을 푹 쉬고 말한 후 내려서는 왕궁으로 향하는 길을 재촉했다. 아까와는 달리 서로 마주보는 게 어색하지가 않아서,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는 서로의 젖은 다리를 보고 눈을 맞추더니 까르르 웃었다.
두 사람의 새로운 추억이 또 하나 생긴 셈이었다.

Posted by 하리H( )Ri
2020. 4. 1. 21:47

SNS든 커뮤니티든 지쳐서 쉬는 요즘입니다. 특히 일적으로... 감정소모도 잘하고 조절도 잘 못하다보니 어쩔 수 없네요. 앞으로의 세상은 늘 그렇듯 겪어보지 못한 일들로 가득차겠죠. 안정적이고 안주할 수 있을 거란 착각은 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런고로 만우절이 아쉬우니 오소카라 짧글 던지고 갑니다. 다른 컾도 쓰려 했는데 눈의 피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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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으응? 하며 돌아보는 카라마츠가 사랑스럽다.
"사랑한다고."
"에이프럴 풀은 그쯤 해두겠는가? 오소마츠. 재미도 없고, 속아봤자 별 생각도 안 든다고?"
"그런가. 재미없네! 그럼 취소다 취소!"
차가운 눈으로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쳐다보더니 이내 거울로 시선을 옮겨 머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오소마츠는 그런 카라마츠 옆으로 다가가 대뜸 입을 맞춘다.
"으읍...으으읍!"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밀어냈다. 당혹감이 깃든 카라마츠의 눈동자에는 이전에는 보지 못한 오소마츠의 따뜻한 미소가 비쳤다.
"사랑한다는 거, 거짓말이야."
카라마츠가 미간을 찌푸리며 매섭게 쳐다보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소마츠는 말을 이어나갔다.
"정말 사랑해, 카라마츠. 내 모든 걸 다 바칠 수 있을 정도로."
카라마츠의 눈초리는 여전히 따가웠다. 그는 오른손을 내밀어 무언가를 달라는 시늉을 했다.
"응? 뭘 주면 돼? 내 사랑?"
"지갑."
의아해하면서도 오소마츠는 지갑을 카라마츠의 손에 쥐어주었다. 카라마츠는 지갑을 열어 탈탈 털었다. 굴러 떨어지는 10엔 동전 몇 개.
"모든 거, 란 말이지..."
"모든 게 그 모든 걸 말하는 게 아니잖..."
"내 지갑에서 슬쩍해간 만 엔은 어디간 건가."
"그건 내 사랑으로 갚으면 안...될까...?"
망했다. 아까부터 괜히 싸한 분위기는 이 때문이었던가! 오소마츠는 빠져나갈 구석을 살폈으나 눈에 띄지 않았다.
"후우..."
카라마츠는 한숨을 쉬더니 살짝 웃었다.
"됐다. 오늘 하루는 에이프럴 풀인것으로 하고 웃어넘어갈테니. 사랑한다든가 얼토당토않은 걸로 속이지 말고 다음에 한턱 쏴라. 이 쿨한 퍼펙트 가이, 카라마츠는 사소한 장난엔 신경쓰지 않는다제!"
그 말에 오소마츠는 안심할 뻔했다가 멈칫했다.
잠깐, 내 고백마저 만우절 장난인셈 치는 거야? 안돼... 안된다고!
그러나 오소마츠는 적어도 그 날 다시 고백할 수는 없었다. 그 날 내내 쌀쌀한 카라마츠의 반응에 오소마츠는 찔려하면서도 속이 상했다. 살짝 삐져서 베란다에 나가 앉으면 아직은 쌀쌀한 바람에 부르르 몸이 떨리고는 하는 것이다.
"오, 사, 삼, 이, 일."
카라마츠가 베란다로 넘어오는 창문을 열고선 별안간 카운트를 센다. 그러더니 베란다로 넘어왔다.
"만우절 끝났어."
"응."
"나도 오소마츠에게 장난 좀 쳐봤다. 쌀쌀맞게 반응했다고 삐져서는 찬바람이나 맞고 있다니."
"난 장난 안 쳤거든? 만 엔은 다음에 갚아줄테니 걱정말고."
"장난이 아니면, 진심이었던 건가. 그... 키스...도..."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사랑스럽다. 카라마츠. 카라마츠를 붙잡고 다시 입을 맞췄다. 입술의 온기가 전해지고, 익숙하지 않은 따뜻하고 촉촉한 것이 서로의 심장만큼이나 요동치며 두 사람의 감각과 신경과 감정을 깨운다. 볼에서 한기가 느껴질 쯤에야 둘은 떨어졌다.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해. 카라마츠."
카라마츠는 입만을 뻐끔거렸다. 흔들리는 눈빛 속에서 그가 감정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걸 오소마츠는 알 수 있었다. 곧 카라마츠의 입이 명확한 형태로 움직였다.

사랑해, 오소마츠.

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