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6. 01:39

짧글/니트/여장 요소

두 가지 색으로 섞인 솜사탕을 좋아한다. 솜사탕하면 파스텔 핑크가 먼저 떠오르지만, 거기에 파스텔 블루가 섞여 들어가 팡팡 부풀려진 솜사탕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걸 좋아한다. 어릴 때 일이다. 좋아해서 먹지 못하고 그저 들고 다녔더니 솜사탕은 쭈글쭈글해지고 솜사탕을 든 손은 녹은 설탕에 끈적끈적해졌다. 망가진 솜사탕에 훌쩍거리면 조용히 다른 손에 사탕을 쥐어주는 이가 있다. 헤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웃으면 그쪽도 웃어주는 것이다. 다음날 그는 솜사탕을 사와선 나만 슬쩍 불러냈다. 끈적해지는 건 신경도 쓰지 않고 솜사탕을 움켜쥐어 단단히 뭉쳐 입에 던져넣더니, 또 하나 뭉쳐 내 입속에 넣어주면 그건 그거대로 달콤한 마법에 걸리는 듯 했다. 그게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 있어 최고로 달콤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센스가 있고 뭘 입어도 잘 어울리는 내가 여장에 눈뜬 건 키가 작고 귀엽다는 이유로 문화제 여장 선발대회에 떠밀려 무대에 선 이후였다. 물론 매일같이 입고 싶은 생각도 없고 바깥을 돌아다니기엔 용기가 안 나서 가끔가다 옷을 사모아 숨겨둔 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입어보는 정도. 은밀한 놀이에는 달콤한 매력이 있다. 나만 알고 싶은 맛. 나만 갖고 싶은 맛. 어느 시점부터 여장을 위한 쇼핑은 나만이 아니라 내가 입히고 싶은 사람에도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패션감각이 정말 쓰레기같으니까, 차라리 내가 골라준 옷을 입고 여장을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나의 여장을 가끔 장난식으로 형제들에게 선보이고는 한다. 미팅 연습같이 실상 도움은 안 되는 놀이에 불과한 것이건만, 나의 욕망을 해소하는 무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 우리 형제는 그다지 서로의 취미 영역을 크게 간섭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뭐든 다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거기에 나는 한걸음 더 나아가고 싶어한다. 그를 여장시키고 싶다.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보고 싶고, 의외로 잘 어울리는 데 감탄해줬으면도 하다. 그렇지만 그는 남자다움에 집착하는, 이른바 여장하고는 상극인 취향. 어지간해서는 입어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카라마츠 형, 심심해."
"으응?"
방에 단둘이 있게 된 어느 날. 나는 말을 걸었다.
"심-심-해-"
"심심하다고! 놀아줘!"
"성인 남성이 떼를 쓰는 건가. 어쩔 수 없는 브라더로군! 이 형이 오늘은 특별히 놀아주도록 하지. 뭘 하고 싶은가."
역시 폼을 잡는다. 어릴 적에는 파트너라 부르며 둘이 어울려 장난을 쳤지만, 그는 나름 형 노릇을 하려 들었다. 내가 울 때, 떼쓸 때, 혼나려 할 때. 위로하는 방법은 형편없었고나 대신에 혼나는 게 일상이었지만, 그는 그럴 때만은 내 형으로 있었다. 지금은 형이라고 부른지 꽤 됐지만, 역할은 그다지 바뀐 게 없어.
"팔씨름 어때? 진 사람이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
"훗. 이 상남자에게 도전하겠다는 건가? 지고 나서 질질 짜지 말라고."
3판 2선승제. 두 판으로 끝나버렸다. 나 헬스장 다닌다고 이야기 했던 거 같은데. 카라마츠 형, 그다지 운동하진 않잖아. 자기가 한 말 되돌려받지 말라고...
"질질 짜지 말고. 내 소원은 남자만이 할 수 있는 거야. 그야말로 남자 중의 남자의 의식인거지!"
그의 눈이 반짝 빛난다.
"여장하고 간식 사오기!"
빛을 잃다못해 생기조차 사라진 그의 눈을 피해 그동안 생각해 온 옷을 꺼내온다. 가발도 제대로 준비하고, 메이크업 준비도 만전. 자신감도 자존감도 꺾인 그는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순조롭게 발랄한 스타일의 트윈테일 여성으로 변장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자인지 눈치채겠지만,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이냐 하고 자신은 시도하지 못한 길거리 여장 데뷔를 뻔뻔하게 시키려 하는 나였다. 폰으로 사진을 몇 장 남긴 뒤, 간식을 사러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사진 속에는 내가 상상해온 부끄러운 표정과는 좀 다른, 넋이 나가있는 얼굴들이 가득했다.  그러다 마지막 컷, 찍는 나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카라마츠 형은 부끄러움을 담은 미소로 카메라를 봐 주었다. 우연인 걸까. 이내 쫓아가지 않은 게 아쉬워 달려나갔다. 그리 멀지 않은 공원에서 솜사탕을 기다리는 형의 모습이 보였다. 파스텔 핑크의 솜사탕 하나와 파스텔 블루의 솜사탕 하나. 그리고 일회용 컵에 담긴 핑크와 블루의 마블. 컵에 담긴 솜사탕 둘. 불편한 동작으로 이것들을 안고 오는 그에게 달려가 핑크 솜사탕 하나와 컵 솜사탕 하나를 받아들었다. 벤치에 앉았다 갈까 권유했지만 카라마츠 형은 고개를 숙이고선 얼른 집에 가자고 보챘다. 입으로 베어물면 끈적끈적하고 달콤한 보드라운 것이 녹아내린다. 다시금 솜사탕을 베어물었다. 이번에는 카라마츠 형의 입에 넣어주고 입술을 맞댔다. 아까보다도 보드라운, 폭신폭신한, 그리고 살면서 가장 달콤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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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타도 쓰고 여기도 쓰니까 헷갈헷갈하는데 두 군데 다 똑같은 걸 올리면 좀 그런가... 싶다가도 그냥 올립니다
덧글후기 옮겨오기
써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연습용. 모바일로 넘어오면 확실히 티스토리보다 포스타입이 쓰기에 편한 거 같아요. 설탕을 들이붓고 뽀쪽을 추가... 저는 순수하므로 뽀쪽을 매우 사랑하고 많이 넣습니다 흐흐 쎅쓰...


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