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6. 01:43

마법교사 오소마츠×인어 카라마츠

검푸르죽죽한 차가운 세계에서 따스한 붉은 빛에 처음 닿았을 때, 용기를 내서 수면 밖으로 고개를 든 인어는 붉은 태양을 사랑하게 되고 말았지. 태양이 뜨고 지는 모습과 심해보다도 까만 하늘에 알알이 박힌 별들을 보며 처음으로 인어는 바다 바깥에 나가고 싶어졌어. 뭍을 오가는 거북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호기심을 키워간 인어는 드디어 뭍에 가까이 다가가기로 했어.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래 탓에 뭍의 모습을 눈에 채 담지 못하고 인어는 물 속에 다시 몸을 담궜지. 자맥질을 되풀이하며 눈에 새기는 풍경 속에 새로운 피사체가 나타났어. 언뜻 보기에, 반은 자신을 닮았고 반은 길게 뻗은 두 개의 신체 기관으로 뭍을 돌아다니는 생명체. 태양을 닮아 있는 붉은 것을 걸치고서 바다를 바라보는 그에게 말을 걸고 싶어진 인어는 뭍으로, 뭍으로, 자신의 전부였던 바다가 어느새 끝나버리는 곳까지 헤엄쳐 그의 앞에 고개를 내밀었지. 붉은 옷을 입은 소년은 바다에 갑자기 떠오른 생명체를 응시했어. 귀 뒤에 달린 아가미, 목덜미에 있는 비늘. 전설 속에서 들었던 인어일까. 소년은 옷이 젖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 쪽으로 다가갔어. 우호의 표시로 손을 내민 채로. 인어는 갑자기 다가오는 소년이 두려웠지만 저도 모르게 다가갔어. 하체에 드러나는 비늘, 꼬리 지느러미를 파닥이며 파도가 치는 곳에서 인어는 멈췄어. 소년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손을 세워서 내밀었어. 인어가 그 동작을 같은 방향의 손으로 따라하자 소년은 팔을 바꾸고 인어의 손을 잡았지. 숨이 쉬어지지 않는 와중에도 인어는 소년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어. 더 이상 눈부신 풍경은 인어의 눈을 감게 할 수 없었고, 인어는 소년으로 시선을 가득 채웠지. 처음 태양을 봤던 날 느낀 따스함이 소년의 손에 머물러 있어서, 소년의 붉은 옷이 태양을 닮아서, 인어는 소년을 사랑하게 됐어. 
- 또 보자. 
다시 만나기 위해 인어는 소년의 손을 놓고 바다로 돌아갔어. 처음 경험한 뭍에 적응할 수 없어서 인어는 의식을 잃은 채 깊은 바다로, 바다로 가라앉았어. 소년은 잠깐의 만남에 남겨진 인어의 흔적을 주워들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인어는 다시 떠오르지 않았어. 소년은 다른 이들의 손에 이끌려 바다가 보이지 않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어. 서로가 느낀 상반된 온도와 조그만 흔적으로 남은 그 날은 둘에게 있어 기적을 바라게 되는 계기가 되었지. 
"...라는 낭만적인 일이 있었어. 첫 수업날 첫 사랑 이야기를 해달라니, 너희들은 아직도 애구나. 뭐? 그래서 인어는 다시 만났냐고? 글쎄. 방금 지어낸 따끈따끈한 거짓말이니까 말이지." 
야유 속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인 소년, 이었던 오소마츠는 목에 걸린 팬던트를 만지작거렸다. 팬던트 안에는 그날 주웠던 비늘이 마법으로 보호된 채 보관되어 있었다. 마법사가 되기 위한 적성 검사를 수없이 실패하던 그는 무작정 바다로 달려나왔다. 그때 만난 인어를 잊고 싶지 않아서 꼭 쥐며 다시 만나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고, 소원에서 비롯된 마법이 비늘에 깃들어 보호 마법이 걸리며 그의 마법 적성도 개화했다. 지금은 재능이 꽃 피고 열매 맺어 마법 교사까지 되었건만. 이제는 푸른 비늘을 가진 그 인어 씨를 뭍에 데려올 수 있을 마법을 걸어줄 수 있는데. 오랜 시간을 지금 근무하는 학교처럼 느긋하고 편한 느낌으로 배운 게 아니라 바다의 짠 내음은 맡을래야 맡을 수 없는 동굴에 갇혀 스승의 맘에 찰 때까지 수련하느라 바다에 가지 못한 탓일까. 수련이 끝나고 바다에 매일 날아가지만 그 인어 씨는 커녕 다른 인어조차 본 적이 없다. 수속성 마법에는 한계가 있어 깊은 바다에 들어갈 수도 없다. 그러니까 거짓말인 셈 치기로 했다.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몰입하던 청중도 김이 샌 듯 '하긴, 인어가 세상에 어딨겠어.' 라고 말한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거짓말같이, 기적이 일어나면 좋겠다. 마법 따위는 별 것 아니게 보일 그런 기적이. 

소년은 어른이 되었다. 소년의 흔적은 천진난만한 웃음에, 이상하리만치 붉은 옷을 고집하는 것에, 하루가 멀다하고 해가 지지 않은 바다에 찾아가는 것에 남겨졌을 뿐이다. 온통 수수한 검은 천으로 두른 다른 교사들 사이에서 화려하게 꾸민 붉은 옷을 입은 오소마츠는 첫 부임부터 이목을 끌었다. 경건하게 마법이라는 기적을 맞아들이는 장으로서의 학교에 놓인 이물질. 그의 화려한 복장은 빛바랜 낡은 돌로 쌓아올린 학교와는 다르게 마법을 생존 수단으로 삼아 살아온 훈장과도 같았다. 한편으로는 그들처럼 기적을 맞아들이기 위해 붉은 옷을 걸쳤으나 그 사정에 대해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나름 배짱있게 채용면접을 봤으나 지식의 전당에 군림하는 교장의 위엄 탓에 긴장했는지 바보같은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 인어는 존재하나요? 
소년의 기억에 금이 갔다. 그의 입으로 역시 그렇죠? 하며 농담하듯 나온 말에 그 금은 더 벌어지는 듯 했다. 하긴,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 직후 드디어 마법 적성을 깨우쳤다며 스승에 의해 동굴에 끌려갔다 나왔다곤 해도, 겨우 1년. '또 보자'는 간절한 사념의 유통기한이 겨우 그것밖에 안 되는 건지. 둘의 만남에 비하면 1년 또한 엄청난 시간이지만, 그 뒤에 지나버린 더 긴 기다림의 시간에 오소마츠는 속상해했다. 
퇴근 후, 딱히 마법을 걸지 않아도 커다란 수정구슬은 그를 바다로 데려간다. 찰나의 순간에 삶이 좌우된 남자는 사실 요즘 들어선 기대를 많이 접었다. 순수함은 점점 바래고 타성이 붙어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 같은 생각을 하며 아련한 추억으로 남으려 하고 있었다.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자신을 위로하며. 해는 제법 길어져 아직 주변이 밝았다. 그 풍경 안에서 낯선 반짝임이 눈에 띄었다. 커다란 바위산 쪽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오소마츠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처럼 유리 파편이나 물이 튀긴 거겠거니... 톡. 톡. 커다란 꼬리지느러미가 수면을 치고 있었다. 시선은 위로, 위로 향했다. 태양이 내려올 준비를 하는 곳에 눈을 고정한 채, 바다와 같은 빛깔을 가진 비늘에 뒤덮인 하체와 인간을 닮은 상체 그리고 귀 자리에 나 있는 지느러미를 가졌다. 인어의 특징이라고 전해져오는 것. 오소마츠가 가까이 온 것도 모르는지 인어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물을 튕기고만 있었다. 인어가 진짜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 그였지만,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과 자신이 만난 인어가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에 좌절하고 말았다. 오소마츠는 약이 올라 하늘만을 보는 인어의 앞을 막아섰지만, 인어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인어의 까만 눈동자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눈동자에는 오소마츠는커녕 태양조차 비치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멍하니 인어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저기..." 
그제야 인어는 오소마츠의 얼굴이 있는 쪽으로 살짝 고개를 틀었다. 인어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꼬리지느러미로 수면을 더 세차게 두드리며 손으로 바다를 가리키더니, 바위를 차고 공중제비를 돌고서 바닷물 속으로 들어갔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자신이 있던 바위 쪽을 응시하는 인어의 모습에 오소마츠는 의아해하면서도 부츠를 벗고 발을 바다에 담갔다. 
- 들리는가? 
머릿속에서 전해지는 소리. 하지만 그는 어떻게 답을 해야할 지 알지 못했다. 
- 눈치챘겠지만 나는 시력을 잃었다. 그 대신인지 뭍에 오래 머무를 수 있게 됐지만. 바다의 존재들은 바다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전하지만, 뭍의 존재와는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군. 일단 손을 잡아보지 않겠는가? 서로 맞닿아있으면 생각이 전해질 지 모른다. 소리를 내면 그 쪽으로 내가 가겠다. 
그 말에 오소마츠는 전에 인어에게 내민 적 있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수면을 발로 차면 물이 튀는 소리와 번져나가는 물결이 인어를 그에게 데려왔다. 놀랄만큼 잔잔한 바다에는 어느새 태양이 녹아내려 붉은 빛이 섞이고 있었다. 그는 손을 내밀어 인어의 손을 잡았다.
- 진짜... 인어가 있었어!
- 인어? 인어가 뭐지?
- 당신같은 존재를 이야기하는 거야.
- 뭍의 존재는 나를 인어라고 부르는군. 이 바닷가에는 작은 뭍의 존재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 뭍의 존재라고 하면 엄청 많거든? 난 오소마츠! 나 같은 존재는 인간이라고 하고.
- 인간, 오소마츠... 오소마츠... 오소마츠...
인어는 오소마츠의 이름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이런 사념까지 생생히 전달되는 걸 그는 알까.
- 너는? 물어보고 싶은 게 잔뜩 있지만, 우선은 이름을 알고 싶어.
- 이름... 이름이라고 하면 카... 카... 미안하다. 잊어버렸어.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게 아니라니. 자기가 누군지를 명확하게 해주는 건데. 중요하지 않다면, 왜 오소마츠의 이름을 되뇌인 건지.
- 알았어. 그럼, 인어 씨. 혹시 한 십 년 전? 조금 오래됐는데 이렇게 뭍에서 뭍의 존재, 그러니까 나 같은 인간하고 이야기를 나눈 적 있어?
너무 대놓고 물어봤나. 기다려온 시간만큼 쌓였던 그리움이 한번에 터져서, 간절하게 이 인어가 그때 그 인어이기를 바라면서 다급한 마음이 그를 떠밀었다. 인어는 손을 잠시 놓더니 자맥질하곤 다시 손을 잡았다.
- 미안하다.
- 응?
- 사실 난 기억을 잃었다. 시력을 잃었을 때 같이 잃어버린 것 같다. 날 구해준 동료들이 나를 위해 원래 내가 어땠는 지를 이야기해줬기에 시력도 기억도 잃었다는 것을 알 뿐. 우리, 그... 인어들은 바다의 존재이므로 뭍에 오래 머무를 수 없지만, 나만은 특이하게 뭍에 오래 있어도 괜찮다고 한다만. 이렇게 뭍에 오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지난 보름달이 떴을 때부터 왔다고 해야 하나.
- 한 달도 안 됐나... 
- 인어와 만난 적이 있는가?
- 아마도. 어릴 때였어. 정말 잠깐이었지만 또 보자고 했거든.
- 이 바닷가에서?
- 응.
- 돌아가서 동료들에게 물어봐줄까? 뭍에서 인간을 만나 그런 약속을 했는지 말이야.
부탁할게, 라는 말이 쉽사리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소마츠에게는 무척 소중한 추억이니까. 조금 복잡한 마음이었다. 그 인어를 찾고 싶은 마음과, 추억으로 아름답게 남기를 바라는 마음. 게다가 눈앞의 인어가 추억 속의 인어라는 묘한 확신이 있었다. 기억을 잃었다면 그의 마법으로 되찾아 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아, 아냐. 그보다 내일, 내일 다시 이 곳으로 와 주겠어? 오래 전 약속이라 이미 그쪽은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고, 인어 이야기를 더 듣고 싶거든. 그런데 물에 계속 몸을 담그고 있었더니 추워서...
어느새 그의 몸 대부분이 바다에 잠겨 있었다. 발만 담그고 손을 내민 불편한 자세를 벗어나려 그런 것이리라. 내일 이것저것 마법을 부릴 준비를 하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음... 좋다. 나도 뭍의 존재와 이렇게 오래 이야기를 나눈 건 처음이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하고.
인어는 이제는 붉은 빛이 가시고 검은 빛에 은은한 노란 빛 달이 떠 있는 바다로 사라져 갔다. 오소마츠는 인어가 사라진 곳을 한참 바라보다, 그제서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늘을 떠올렸다. 아까 인어가 앉아 있던 바위에는 비늘이 몇 개 떨어져 있었다. 비늘을 주워담은 뒤 오소마츠는 집에 돌아가 탁자에 깨끗한 천을 펼쳐 그것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팬던트 안에 보관한 비늘을 꺼냈다. 분명 같은 색이겠지, 했던 비늘은 색이 달랐다. 가지고 있던 비늘 또한 바다를 닮은 푸른 색이긴 했지만 그 색이 옅고 투명했다. 주워온 비늘은 색이 짙고 덜 투명했으나, 더욱 반짝이고 있었다 . 그는 실망했다. 물론 인어도 시간이 지나면 비늘이 변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묘한 확신이 부정당한 느낌이었으니까.

다음 날, 오소마츠는 강의를 마치고 남은 근무는 핑계를 대며 내팽개친 채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 떠 있는 바닷가로 부리나케 날아왔다. 인어는 어제 처음 만난 바위에 그대로 앉아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양이 인어의 눈에 더 이상 비치지 않더라도. 그러고보니 어제도 인어는 태양을 보고 있었다. 
"인어 씨!"
인어는 오늘은 그냥 가볍게 튀어올라 바다로 잠겼다. 오소마츠는 마법을 걸어 몸에 보호막을 친 뒤, 손만이 빠져나오게 한 채 바다로 걸어들어갔다. 인어가 어쩐지 놀란 표정을 지어서, 오소마츠는 쑥쓰러웠다. 어제와 같이 둘은 손을 잡았다.
- 인어 씨, 놀랐어? 사실 난 마법사거든. 보통 인간들은 하지 못하는... 기적을 만든다고 해야 하나.
- 뭔지는 알고 있다. 그 비슷한 거라면 인어들도 쓰고 있거든. 그럼 바닷속으로 더 들어와보면 어떤가? 아마 그 공기방울에 들어가 있으면 굳이 손을 잡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 거다. 뭍의 이야기를 듣기 전, 오소마츠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있으니.
인어의 말을 믿기로 하고 오소마츠는 보호막에 수속성 마법을 건 뒤 바다에 푹 잠겼다.
- 혼자 이동할 수 있는가? 
- 응. 전에 몇 번 연습은 해본 적 있어서. 인어 씨와 편하게 이야기도 할 수 있다니 더 좋은걸.
- 다행이군. 아참, 동료에게 물어서 내 이름을 알아왔다. 카라마츠, 라고 하더군. 내가 잊어버린 시간에 이름이 얽혀서인지 동료들은 가능하면 날 이름으로 부르지 않으니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건 그래서였다. 어제 오소마츠가 신경쓰는 듯한 표정을 지어서 진지하게 물어보고 왔지.
뿌듯한 표정으로 인어, 카라마츠가 생각을 전해온다. 카라마츠. 
"카라마츠"
- 응?
- 내가 쓰는 말로 카라마츠를 부르면 이런 소리가 나. 들렸어?
- 잘 안 들렸다. 이따 뭍에 나가면 다시 들려주겠는가?
- 글쎄~
카라마츠는 삐진 듯 더 깊숙이 헤엄쳐갔다. 바다의 색은 제법 짙어져 밤처럼 되었다. 지팡이에 자그마한 빛을 켜자 그 곳에 새하얀 신전 같은 게 눈에 띄었다. 더 가까이 가려 하자 카라마츠가 가로막았다.
- 뭍의 존재가 들어올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오소마츠의 안내역을 자처했기에 여기쯤이라고 내가 알 수 있었던 거지만 오소마츠가 혼자 들어왔으면 위험해졌을거다.
수속성 마법에는 한계가 있다. 그건 그런 의미였나. 깊은 바다까지 들어갈 수 없다는 건 다른 게 아니라 결계나 금기가 있다는 뜻인 모양이었다. 
- 인어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서, 인어가 알고 있는 뭍과 바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여기까지 왔다. 저 신전은 바다의 신을 모시는 곳이다. 나와 같은 인어들이 신탁을 받아 다른 바다의 존재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가까이서 바다의 신의 시중을 드는 존재들도 있지만, 나는 기억을 잃고 깨어났을 때 딱 한 번밖에 뵙지 못했지. 
[너는 사랑해선 안 될 것을 사랑하고 말았구나. 가여운 것.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끝내 갈구하게 되는 것이니. 네가 적어도 이 이상의 고통은 느끼지 않도록 자비를 베풀어주겠다.]
- 신께서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고, 그 덕인지 지금은 이렇게 밝게 웃으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신을 직접 만나다니 굉장하잖아. 오소마츠는 그런 게 기적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 사랑해선 안 될 것이 무엇인진 잘 모르겠지만, 그후 신탁으로 뭍과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지. 정확히는 하늘과 바다의 이야기지만. 
- 하늘과 바다의 이야기?
- 그렇다. 하늘과 바다의 신은 형제라는 모양이다. 물론 다른 형제도 있다고 하지만... 둘은 생명이 있는 존재의 세계를 양분하여 다스리는데 그게 하늘, 뭍과 바다인 것이지.
사념이 전해져오는 것일텐데,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눈을 감고 엷은 미소를 지은 채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에게 이야기를 계속 전했다.
- 서로의 세력권이 늘 맞닿아 있기도 하고, 두 신은 닮은 점이 많아서 매우 친밀한 사이였다고 한다. 어느 정도였는지는 당연히 신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그러던 중 뭍의 존재 중 인간이라는 종족이 하늘의 신의 가호를 받으면서 번성했고, 인간은 뭍의 지배자가 되었지. 그렇게 해서 인간은 신의 능력의 일부를 손에 넣게 되었다는데, 그게 아마 오소마츠가 쓸 수 있다는 마법이라는 것일 거다.
-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마법의 기원을 들었네. 인간이 뭍의 지배자...인가.
- 신의 능력까지 손에 넣은 인간은 이윽고 신의 권위까지 흔들기 시작했어. 이에 분노한 하늘의 신은 인간에게 심판을 내리지. 거기에 바다의 신도 동조해서 뭍은 일부의 존재만 남고 전부 심판의 파도에 휩쓸려 생명을 잃게 돼.
- 응? 그렇다는 건...
- 오소마츠는 심판 이후 새로이 번성한 인간의 후예라는 거지.
- 심판은 순조로이 끝나고, 하늘의 신은 남겨진 존재들이 다시금 뭍에서 번창할 수 있도록 했어. 그러나 심판의 파도로 꺼진 생명들은 바다의 신이 거둬들여야 했지. 바다는 한동안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 차고, 치우고 분해해도 생명을 잃은 존재의 흔적은 계속 남아 바다의 신을 괴롭게 했어. 신은 죄책감과 함께 하늘의 신을 원망했어. 더러운 일은 자기가 혼자 해야 했다고. 내리쬐는 태양이, 반짝이는 세상이 미워서 바다의 신은 마음을 닫아걸어버렸어. 그 흔적이 이 결계고, 아마 뭍에 너무 다가간 나는 저주라도 받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마저도 신께서는 용서하셨지만.
오소마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인어에게서도 마치 마음을 닫아걸어버린듯한 체념이 느껴져서. 기억을 해내려고 해도 이제는 꺼낼 수 없는 과거를 더듬으려고 노력한 카라마츠에게, 자신이 그토록 기다린 인어였다고 말한들 고통스럽기만 할 것이다. 그게 진실이든 거짓이든. 그렇게 믿든 믿지 않든. 신의 이야기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카라마츠 나름의 변명일 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르는, 애당초 자신이 겪은 일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과거를 위해서.
- 어떻게 생각해?
- 무얼 말인가?
- 기억을 잃은 거, 시력을 잃은 거 말야.
- 그거야 뭍에 너무 가까이 간 내가 나빴...
- 그게 아니라 카라마츠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나에게 이름을 알려줄 땐 기뻐했잖아... 그런데 그거 말고는... 카라마츠는 여전히 태양을 보고 싶어 하잖아! 오늘도 나를 기다리며 태양을 보고 있었잖아... 날 만나기 전에는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미련은 없었던 거야?
오소마츠가 토해낸 사념에 카라마츠는 겁먹은 듯 움찔거렸다. 그러나 이내 카라마츠는 웃어버리는 것이었다.
- 또 보자, 오소마츠. 
카라마츠가 손을 흔들자 바닷물이 용솟음치고 오소마츠는 방어막째 순식간에 해수면으로 떠올랐다. 
"젠장! 왜 자기 생각을 얘기해주지 않는 거야..."
분한 마음에 모래를 실컷 걷어차고서야 오소마츠는 돌아갔다. 그 뒤로 한동안 오소마츠는 바다에 가지 않았다.

한 달이 넘게 지났을까. 오소마츠는 바다가 그리워졌다. 구슬을 타고 날아가지 않고 걸어서 이동하니 어느새 검게 물든 바다에 보름달이 띄워져 있었다. 인어를 찾기 위해서라지만, 꽤나 오랫동안 바다에 매일같이 왔던 탓인지 한 달만의 바다는 그리운 냄새를 풍겨왔다. 그러고보니 오소마츠는 밤바다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인어를 낮에 만났기 때문인지 어두워지면 곧 돌아가곤 했으니까. 보따리에서 술을 꺼내서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한 병을 들이켰다. 집에서도 늘상 마시는 술이건만 바닷바람이 더해져 짠맛이 느껴졌다. 걸어와서 지쳐있는데 술을 들이켰으니 금세 취하고, 취한 눈에 아른거리는 사람의 그림자를 헛것 치부하며 또 한 병을 꺼내 마시려던 때,
"거기, 누구 있는가?"
차분히 가라앉은, 낮지만 고운 목소리. 들어본 적 없지만 들어본 것 같은 익숙함.
"있거든? 그러는 넌 누군데?"
"카라마츠. 카라마츠라고 한다."
고개를 들면,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카라마츠가 서 있다. 모래사장 위에 서 있다. 푸른 비닐에 덮이긴 했지만 인간처럼 두 다리로 서서.
"난 오소마츠야. 우리 만난 적 있던가?"
두 다리로 선 모습에 문득 두려워졌다. 반가운 마음과 함께, 어쩌면 카라마츠는 또 다른 무언가를 제물로 바쳐 뭍에 선 게 아닐까.
"또 보게 돼서 기쁘다, 오소마츠."
카라마츠는 눈물을 흘렸다. 사실, '보게' 됐다고 말하는 카라마츠에 눈엔 여전히 오소마츠는 비치지 않았다. 그러나 카라마츠가 흘리는 눈물 방울방울에는 오소마츠가 비쳤다.
"어떻게 된 거야... 잠깐 사이에 너무 많이 변했잖아."
"잠깐이라니. 내게는 긴 시간이었다. 이대로 오소마츠가 찾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며 걱정했다고."
"울지 마... 이야기 들을 테니까."
"으응... 긴 얘기는 아직 인간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니 물가 쪽으로 가지 않겠는가."
카라마츠는 바다로 걸어들어갔다. 푸르게 덮인 비늘의 다리는 서서히 원래의 인어와 같은 꼬리지느러미의 모습으로 변했다. 
- 오소마츠가 얘기했지.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오소마츠를 만나기 전에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신의 뜻이 있겠지, 동료들이 있으니 걱정없지... 그렇다고 태양에 대한 동경은 사라지지 않았던 건지 나는 뭍으로 올라가려고 애썼고, 그 결과 오소마츠를 만났던 거다. 오소마츠를 뭍으로 돌려보내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신전에서 기도를 드렸지. 잃어버린 기억을, 기억을 지운 게 신의 자비라는 걸 알지만, 돌려달라고. 바다의 신께서 답해주셨다. 그건 자비가 아니라 벌이라고. 그러나 기억을 찾으면 그 벌보다도 더 큰 고통을 받을 거라고. 두려웠다. 그러나 오소마츠를 떠올리니 용기가 났다. 기억을 돌려달라고 말했지. 신은 다른 제안을 했다. 시력을 돌려주겠다고. 기억을 포기하면 다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겠다고. 태양도 그러면 볼 수 있다고, 나를 회유하셨지. 오기가 생겼다. 기억을 돌려달라고. 뭍에 가는 건 포기하지 않을 거고, 태양은 볼 수 없어도 괜찮다고. 그 결과 기억을 찾고, 신의 축복으로 뭍을 걸을 수 있는 다리를 받았다. 동료가 얘기해주길, 이 다리의 모습은 신의 그것과 비슷하다더군. 
"잠깐. 태양은? 늘 보고 싶어했..."
- 둘 다 가질 순 없었던 거지. 나에게도 묘한 감이 있었어. 잃어버린 기억 속에 분명 오소마츠와의 만남이 있었을 거라고. 기억을 찾자, 내 온 몸과 눈은 불타는 듯 했어. 하늘의 신과 바다의 신이 서로 사이가 안 좋아진 결과 생긴 서로의 마음의 장벽이 말이지. 나는 하늘의 신의 영역을 넘어서고 말았던 거다. 그 영역이라는 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태양을 본 내 눈과 몸이 불타는 걸 바다의 신께서 구해주셨던 거였고. 불타는 와중에 기억 속의 붉은 옷을 입은 소년이 손을 내밀어주었어. 그 손이, 내게는 구원이었지. 오소마츠. 아마 네가 기다리던 인어는 나였던 모양이다. 더 일찍 기억해내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때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와락 끌어안았다. 오소마츠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카라마츠는 그걸 볼 수 없었다. 
"기억 속의 인어가 아니라도 괜찮았어. 카라마츠가, 한 번 더 보고 싶었어... 완전 바보잖아... 바보 카라마츠..."
더 많은 이야기를 하자. 보이지 않아도 뭍을 느끼게 해줄게. 태양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줄게. 그러니까.
-날 뭍으로 데려가줘.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두 팔로 들어올렸다. 그 상태로 구슬에 타서 바다를 뒤로 한 채 밤을 지났다. 어두운 하늘에 붉은 빛이 물든 그 시간, 하늘과 바다를 가로지르던 결계가 흐려졌다. 바닷물이 용처럼 솟구치더니 잠시 허공을 머무르고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카라마츠의 눈에도 잠시 붉은 빛이 비추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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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전에 썼다 오늘 완성한 거 포타에 이어 또 복붙
맨날 나만 알게 쓰는... 제우포세향도 좀 넣었는데 워낙 존재니 뭐의 신이니 돌려 말해서 글자수만 많아지고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좀 쓰고 쓰고 써야 늘텐데 하하하하하...



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