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6. 01:39

짧글/니트/여장 요소

두 가지 색으로 섞인 솜사탕을 좋아한다. 솜사탕하면 파스텔 핑크가 먼저 떠오르지만, 거기에 파스텔 블루가 섞여 들어가 팡팡 부풀려진 솜사탕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걸 좋아한다. 어릴 때 일이다. 좋아해서 먹지 못하고 그저 들고 다녔더니 솜사탕은 쭈글쭈글해지고 솜사탕을 든 손은 녹은 설탕에 끈적끈적해졌다. 망가진 솜사탕에 훌쩍거리면 조용히 다른 손에 사탕을 쥐어주는 이가 있다. 헤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웃으면 그쪽도 웃어주는 것이다. 다음날 그는 솜사탕을 사와선 나만 슬쩍 불러냈다. 끈적해지는 건 신경도 쓰지 않고 솜사탕을 움켜쥐어 단단히 뭉쳐 입에 던져넣더니, 또 하나 뭉쳐 내 입속에 넣어주면 그건 그거대로 달콤한 마법에 걸리는 듯 했다. 그게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 있어 최고로 달콤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센스가 있고 뭘 입어도 잘 어울리는 내가 여장에 눈뜬 건 키가 작고 귀엽다는 이유로 문화제 여장 선발대회에 떠밀려 무대에 선 이후였다. 물론 매일같이 입고 싶은 생각도 없고 바깥을 돌아다니기엔 용기가 안 나서 가끔가다 옷을 사모아 숨겨둔 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입어보는 정도. 은밀한 놀이에는 달콤한 매력이 있다. 나만 알고 싶은 맛. 나만 갖고 싶은 맛. 어느 시점부터 여장을 위한 쇼핑은 나만이 아니라 내가 입히고 싶은 사람에도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패션감각이 정말 쓰레기같으니까, 차라리 내가 골라준 옷을 입고 여장을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나의 여장을 가끔 장난식으로 형제들에게 선보이고는 한다. 미팅 연습같이 실상 도움은 안 되는 놀이에 불과한 것이건만, 나의 욕망을 해소하는 무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 우리 형제는 그다지 서로의 취미 영역을 크게 간섭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뭐든 다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거기에 나는 한걸음 더 나아가고 싶어한다. 그를 여장시키고 싶다.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보고 싶고, 의외로 잘 어울리는 데 감탄해줬으면도 하다. 그렇지만 그는 남자다움에 집착하는, 이른바 여장하고는 상극인 취향. 어지간해서는 입어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카라마츠 형, 심심해."
"으응?"
방에 단둘이 있게 된 어느 날. 나는 말을 걸었다.
"심-심-해-"
"심심하다고! 놀아줘!"
"성인 남성이 떼를 쓰는 건가. 어쩔 수 없는 브라더로군! 이 형이 오늘은 특별히 놀아주도록 하지. 뭘 하고 싶은가."
역시 폼을 잡는다. 어릴 적에는 파트너라 부르며 둘이 어울려 장난을 쳤지만, 그는 나름 형 노릇을 하려 들었다. 내가 울 때, 떼쓸 때, 혼나려 할 때. 위로하는 방법은 형편없었고나 대신에 혼나는 게 일상이었지만, 그는 그럴 때만은 내 형으로 있었다. 지금은 형이라고 부른지 꽤 됐지만, 역할은 그다지 바뀐 게 없어.
"팔씨름 어때? 진 사람이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
"훗. 이 상남자에게 도전하겠다는 건가? 지고 나서 질질 짜지 말라고."
3판 2선승제. 두 판으로 끝나버렸다. 나 헬스장 다닌다고 이야기 했던 거 같은데. 카라마츠 형, 그다지 운동하진 않잖아. 자기가 한 말 되돌려받지 말라고...
"질질 짜지 말고. 내 소원은 남자만이 할 수 있는 거야. 그야말로 남자 중의 남자의 의식인거지!"
그의 눈이 반짝 빛난다.
"여장하고 간식 사오기!"
빛을 잃다못해 생기조차 사라진 그의 눈을 피해 그동안 생각해 온 옷을 꺼내온다. 가발도 제대로 준비하고, 메이크업 준비도 만전. 자신감도 자존감도 꺾인 그는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순조롭게 발랄한 스타일의 트윈테일 여성으로 변장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자인지 눈치채겠지만,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이냐 하고 자신은 시도하지 못한 길거리 여장 데뷔를 뻔뻔하게 시키려 하는 나였다. 폰으로 사진을 몇 장 남긴 뒤, 간식을 사러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사진 속에는 내가 상상해온 부끄러운 표정과는 좀 다른, 넋이 나가있는 얼굴들이 가득했다.  그러다 마지막 컷, 찍는 나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카라마츠 형은 부끄러움을 담은 미소로 카메라를 봐 주었다. 우연인 걸까. 이내 쫓아가지 않은 게 아쉬워 달려나갔다. 그리 멀지 않은 공원에서 솜사탕을 기다리는 형의 모습이 보였다. 파스텔 핑크의 솜사탕 하나와 파스텔 블루의 솜사탕 하나. 그리고 일회용 컵에 담긴 핑크와 블루의 마블. 컵에 담긴 솜사탕 둘. 불편한 동작으로 이것들을 안고 오는 그에게 달려가 핑크 솜사탕 하나와 컵 솜사탕 하나를 받아들었다. 벤치에 앉았다 갈까 권유했지만 카라마츠 형은 고개를 숙이고선 얼른 집에 가자고 보챘다. 입으로 베어물면 끈적끈적하고 달콤한 보드라운 것이 녹아내린다. 다시금 솜사탕을 베어물었다. 이번에는 카라마츠 형의 입에 넣어주고 입술을 맞댔다. 아까보다도 보드라운, 폭신폭신한, 그리고 살면서 가장 달콤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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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타도 쓰고 여기도 쓰니까 헷갈헷갈하는데 두 군데 다 똑같은 걸 올리면 좀 그런가... 싶다가도 그냥 올립니다
덧글후기 옮겨오기
써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연습용. 모바일로 넘어오면 확실히 티스토리보다 포스타입이 쓰기에 편한 거 같아요. 설탕을 들이붓고 뽀쪽을 추가... 저는 순수하므로 뽀쪽을 매우 사랑하고 많이 넣습니다 흐흐 쎅쓰...


Posted by 하리H( )Ri
2016. 9. 19. 09:03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캐붕,글솜씨없음주의

※5화 카라마츠 사변 기반

 

 

※제가 까만 배경이 무서워서 더욱더 허접하게 타이틀 바꿔 달았습니다. 안쓰러운 그림 실력 양해를...

아무도 몹싸 오프닝의 패러딘지 모를거야 개차판으로 그려놔서

타이틀 그려주실 분 구합니다

아무도 안해줘 그런거

 

※이번 편은 토도마츠 시점 +a입니다. 그동안 누구 시점인지 쓰지 않은 +a가 있었지만 정황상 아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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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는 나와 카라마츠 형만 남아있다.

조용히 카라마츠 형의 심장박동 소리를 듣는다.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심장은 계속 뛰고 있구나.

두근거리는 느낌과 따스한 체온에 기대듯 엎드린다.

형을 부르다 지쳤던 걸까.

고작 하루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내 형의 환자복과 내 뺨은 축축해진다.

그때 오소마츠 형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불렀다.

토도마츠, 잠깐 바람 좀 쐬고 와.”

고개를 돌려 눈물을 닦았다.

어째서...”

기분전환 좀 하고 오라고.”

오소마츠 형은 애써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얼굴에 진 그늘까지는 숨길 수 없었다. 힘들게 몸을 일으켜 병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오소마츠 형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렇게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어, 토도마츠.”

마치 자기에게 얘기하듯,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그 말을 들으니 닦았던 눈물이 다시금 나오려 했다.

카라마츠가 이렇게 된 건 모두의...나의 탓이니까...너만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다고? 그리고 카라마츠라면 너까지 힘들어하는 모습 보고 싶지 않을 거야.”

이래도 되는 걸까. 카라마츠 형을 막지 못한 걸 탓하기는커녕 모두의 탓이라고 하다니. 그런 것까지 감싸 안으려 하지 말라고. 이럴 때만, 치사하게 장남으로 나서는 거야?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병실을 나왔다. 쥬시마츠 형이 앉아 있다가 반겨준다. 형의 표정도 그다지 좋지 않지만, 날 위해서인지 억지로 웃으려 하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쥬시마츠 형은 복도 모퉁이를 돌아가더니 단팥죽 두 캔을 뽑아왔다. 단팥죽이라니, 쥬시마츠 형다워서 살짝이 미소가 지어진다. 형이 건네는 따뜻한 단팥죽 캔을 건네받아 마시며, 쥬시마츠 형도 과연 오소마츠 형처럼 우리 책임이라고,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쥬시마츠 형도 같은 생각을 하겠지. 하지만, 카라마츠 형에게 내가 했던 일은, 분명 모두가 함께 책임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여섯 쌍둥이라곤 해도 매 순간을 여섯이 함께 하는 건 아니었다. 여섯은 그만큼 많은 수인걸?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짝지어 노는 일이 많아졌다. 악동 중의 악동 콤비인 오소마츠 형과 쵸로마츠 형, 그나마 얌전한 이치마츠 형과 쥬시마츠 형이 주로 어울려 놀았고 장난끼 많은 나와 카라마츠 형이 짝올 이뤄서 놀았다. 악동 콤비에 댈 건 아니지만 나와 카라마츠 형도 장난질을 제법 했는데, 우리 둘은 역할 분배가 철저했다. 계획은 내가 세우고 실행은 카라마츠 형이 맡아 다른 형제나 치비타, 이야미 등을 골려주곤 했다. 철없는 시절이었다. 장난이 성공하는 쾌감, 실패하거나 들켜서 쫓길 때의 짜릿함, 대판 치고받고 싸우고 나서 터진 웃음, 즐거움이나 슬픔, 화나거나 짜증나거나 하는 감정들을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던 시절이었다. 거짓말은 했을지언정 자신의 감정에는 솔직했다.

중학생이 된 우리들의 첫 화젯거리는 카라마츠 형이 연극부에 들어간 거였다. 연극부라니, 그것도 멋있어서 들어갔다니 카라마츠 형답게 단순한 이유여서 다들 놀리면서 한편으로 카라마츠 형이 언제쯤 연극부를 박차고 나올지 내기를 걸었다.

"한 달은 있다 나오려나, 카라마츠 형."

쵸로마츠 형이 먼저 말했다.

"의외로 견디는 거 아닐까? 1학기 공연 정도는 끝낸다거나..."

자신없는 목소리로 이치마츠 형은 다른 의견을 냈다.

"...난 이치마츠...형 말에 한 표."

쥬시마츠 형도 아직 형 소리가 익숙하지 않은 듯 했다.

", 그럼 난 일주일! 일주일에 이번 주 용돈을 겁니다!"

오소마츠 형이 자신 있게 100엔 동전을 굴려대며 외쳤다.

"연극 한 번은 하고 나오겠지, 카라마츠."

"형 붙여."

내 답에 오소마츠 형이 즉각 반응. 형 소리가 그렇게 듣고 싶으면 자기만 들을 것이지 이 참에 서열 정리를 해버리는 걸까. 이즈음엔 막내로 서열 밑바닥이 된 내 작은 불만이 생기고 있었다.

"자자, 그러면 다 이번 주 용돈이나 걸까? 누구 말이 맞을지?"

쵸로마츠 형이 다급히 정리를 한다. 저런 것도 형의 역할이라면 역할이겠지.

 

며칠 뒤, 카라마츠 형으로부터 1학년을 연극의 주역으로 뽑는 오디션올 한다고 들었다. 슬쩍 형이 1학년 말에나 연극부에서 나오려 하지 않을까라며 내기 내용을 바꿨다. 형이 그렇게 의욕 가득한 눈을 하고 있는데, 쉽게 연극부를 뛰쳐나오진 않을 듯 했다. 결과만 말하면, 형은 첫 연극에 주연으로 발탁되었다. 내가 살짝 도와준 건 있지만, 그것만으로 카라마츠 형이 주역이 될 수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형이 무대에 서서 조금 어정쩡하지만 잔뜩 폼 잡으며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에서 뭔가 엉키는 기분이 들었다.

이윽고 커튼 콜. 출연자들이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박수갈채를 받았다. 무의식적으로 박수를 치며 무대를 보다 형과 눈이 마주쳤다. 형은 미소지었다. 어쩐지 고맙다고 말하는 듯 했다. 나도 답하듯 미소를 지었다. 얼굴 근육이 어쩐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 날 이후, 형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중학교에서 사귄 친구들과 어울린다거나 여자애들과 친해지려 놀러 다닌다거나, 형들과 비슷해지지 않기 위해 꾸미는 데에 신경쓴다거나... 같잖은 질투 때문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나는 달라지고 싶었다. Copy&Paste의 여섯 쌍둥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태어난 순서로 마지막에 설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 위에 서는 수밖에 없었다. 카라마츠 형의 주역 데뷔는 그런 마음을 자극했고, 오소마츠 형은 장남이라는 포지션을 굳히려 무던히 애썼고, 쵸로마츠 형은 학생회에 들어가거나 하는 식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이치마츠 형과 쥬시마츠 형은 꾸준하고 성실했다. 그런 형들에 대한 반감으로, 형들과 멀어지던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금의 드라이몬스터 토도마츠를 만든 거겠지. 그 중에도 카라마츠 형은 질투의 시발점이었다는 이유로 일부러 싫은 티를 더 냈지만 카라마츠 형은 형이라는 역할을 잘 해내고 싶었는지 그럴 때마다 더 다정하게 대했고 고민을 들어준답시고 참견해왔다. 다정한 형이라. 한때는 함께 장난질하던 파트너였을텐데.

어느새 이렇게나 달라져버려서,

나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 되어버린 거 같아서,

곧 있으면 따라잡을 수 없을 거 같아서,

그런 형이 좋아서,

하지만 싫어서,

반발심은 커져만 갔다.

모순된 감정을 안고서 중학교 시절은 흘러갔다. 우리는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존재였고, 다른 형제들에 대한 좋은 소리나 안 좋은 소리가 자신의 귀에 들어오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형들에 대한 악담에 귀를 기울이고 맞장구쳐주는 것으로 형들과의 거리를 점차 넓혀갔다. 내 입에서 형들의 험담을 하는 일도 늘어갔다.

? 카라마츠? 그 안쓰러운 녀석이 형 행세하는 거 진심 기분 나쁜데. 물론 애초에 오소마츠도 쵸로마츠도 형이라며 으스대는 거 기분 나쁘지만, 카라마츠는 형 놀이에 취해있달까 짜증 제대로 유발하거든.”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하던가. 3학년 때인가 뒷담화를 하는 모습을 오소마츠 형에게 들켰다.

할 말 있으면 직접 앞에서 말하라고, 토도마츠.”

정색하며 오소마츠 형이 얼굴에 주먹을 갈겼다. 형을 째려보면 멱살을 잡아들고 아까 했던 말을 다시 해보라며 나를 부추겼다. 형은 화난 얼굴로 계속 때렸다. 그때만큼 오소마츠 형에게 많이 맞았던 날은 없을 정도로 쳐맞았다. 아마도 형은 계속 내가 형들을 나쁘게 대했던 걸 알고 있었고, 내 입으로 말할 때까지 기다렸던 거겠지. 맞고 있으면서도 오소마츠는 그래도 형이구나 생각해버리는 자신이 싫었다. 그 때 창문 너머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창문 너머를 보니 카라마츠 형이 창문을 슬쩍 보고선 모른 척했다.

카라마츠, 뭐 하고 있어. 너도 들어와서 한 마디 해. 너한테 뭐라 하는 지 다 들었잖아?”

오소마츠 형과 함께 왔던 건가. 하지만 카라마츠 형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있는 듯 했다. 카라마츠 형은 내 편을 들지도, 오소마츠 형의 편을 들지도 않았다. 오소마츠 형은 다시 나를 보고 멱살을 잡아챘다.

재작년부터 형제들한테 하는 태도가 짜증난다 싶었는데 그 이유 들어보자고? 우리가 너한테 뭘 그리 잘못했길래 그러는 건데?”

한숨을 푹 쉬고선, 오소마츠 형이 날 내려놓았다.

됐다. 집에서 더 얘기하자.”

오소마츠 형은 교실을 나갔다. 복도의 두 사람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갈라져 갔다. 나는 그저 교실에 넘어진 채 어안이 벙벙해하는 친구와 함께 남겨졌다.

집에 돌아와서 오소마츠 형은 2층에 집합시키려 했지만 나는 밖에 나갈 준비를 했다. 그땐 다 싫은 시절이었다. 6쌍둥이가 모두 같은 얼굴인 것도, 그럼에도 형이나 동생이 있어 밑바닥 서열인 막내가 돼버린 것도. 소학교 시절 단짝이었던 카라마츠 형이, 쭉 파트너로 남아있자고 약속했던 그가 점점 형이 되어버리는 것도. 현관으로 따라나와 나를 붙잡으려던 카라마츠 형의 손을 뿌리치며 내뱉고야 말았다.

어차피 들켰으니까 확실히 말할게? 나한테 형 행세 하지마. 그리고 쓸데없이 내 일에 참견하는 것도 그만 둬.”

토도...”

뒷말을 무시한 채 집을 나섰다.

형 같은 건 없어지면 좋을 텐데.”

나는 선을 넘어섰다. 사소한 것까지 걱정해주고 신경써주는 카라마츠 형의 관심이 기분 나빴다 해도, 그런 말까진 해선 안됐다.

그 후 오소마츠 형과의 갈등은 적당히 해결되었다. 한번 대판 싸우고 나니 차라리 나아졌다. 그러나 카라마츠 형과는 미묘해졌다. 카라마츠 형은 그 후에도 날 책망하거나 하지 않았다. 나는 말이 심했다고 생각한 뒤에도 사과는 하지 않았다. 아니지, 사과는커녕 한동안 서로 말도 하지 않았다.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데 더 신경 썼던 터라 흐지부지 넘어갔다. 사과는 타이밍, 시기를 놓쳐버리면 그 당시의 감정들은 응어리로 남아버린다는 걸 모른 채, 나는 카라마츠 형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었고 형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었다. 이후 내 반항기가 끝을 맞이한 고2 이후에도 이 건은 사과하지 않았다. 다만, 첫 연극 이후로 보지 않았던 형의 연극을 그래도 마지막 무대라는 핑계로 보러 가는 것 정도로 작은 사과를 했다. 분명 모두한테 향한 분노였을텐데, 내 반항기의 직격탄은 카라마츠 형만이 맞았다. 형이 진짜로 싫었던 건 아닌데 질투가 만들어간 감정의 뒤틀림이 형을 힘들게 만들었다. 내가 형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그 순간에 형의 텅 비어버린 듯한 얼굴은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어제, 다시금 그 얼굴을 마주했다. 그를 거기까지 떠민 건 누구겠어.

단팥죽을 쥐고서 눈물을 흘린다.

미안해, 미안해.

내가 형에게 잘못된 감정을 품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텐데.

그런 질투가, 그러면서도 형이라고 기대버리며 사과조차 하지 않았던 일들 하나하나가 형을 힘들게 만들었지?

조용한 복도에 내가 훌쩍이는 소리만이 울려퍼진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모두가 병실로 들어가 바닥에 누워 잘 준비를 했다. 나는 형들의 배려로 침대 옆 간이침대에 누웠다. 카라마츠 형의 손을 잡으며 일어나면 꼭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기로 하면서.

 

 

 

 

 

*

 

 

 

 

 

눈을 뜨면 낯선 천장이다. 커튼 틈 사이로 해가 막 뜨기 전의 하늘이 보인다. 살짝 닿은 손의 촉감에 눈을 돌리자 토도마츠가 부은 눈을 하고선 쪼그려 자고 있다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다 그만둔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형제들도 바닥에 널부러져 자고 있다. 다들 춥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키자마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왼쪽은 아마, 이번에 사고당한 곳일 거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마 쪽과 정수리 쪽이 아파왔다. 나를 쪼갤 것 같은 통증에 괴로워하면서도 비명을 지를 수가 없었다. 그저 눈물만이 흐르고 만다. 이어서 가슴이 아파온다. 견딜 수 없는 통증에 다시금 누워버린다. 서서히 이런저런 기억들이 뒤죽박죽 수면 위로 올라온다. 당장 떠오르는 건, 불타는 나와 창문에서 날아오는 각종 집기들. 그리고 서서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억들이 가슴을 후벼파기 시작했다.

살려줘. 누가 나 좀 도와줘.

외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헐떡이는 숨소리와 눈물만이 나의 고통을 드러내주었지만, 아무도 그 소리에는 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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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의 쵸로마츠쟝)

 
 
 

 

분명 완결을 8월 초까지 낸다는 약속이었는데 벌써 9월이네요. (절망)

쉬는 동안에 쓸 수 있겠지^^는 게으름이 가속화되어서 장렬히 실패! 다시 일하고 나니까 의욕이 생기는 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네요 ㅋㅋㅋ 합작도 참여한다고 질러놓았고(???) 소비 생활을 충분히 즐겼고, 무엇보다 스스로 완결을 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데 마음을 못 잡다가 다급히 씁니다.

사실 이번 편은 7월 초부터 반 써놓고 묵혀놨습니다.  그런고로 최대한 급히, 늘 그렇듯 완성도는 없는데 더 없이 열심히 써내려가야겠습니다.

그런고로 이번 주부터 해서 주간연재를 시작합니다(두둥)

일요일 22시까지는 올릴 예정...은 오늘도 좀 늦었네요;;;헤헤

.........

 

ㅠㅠㅠ 아직도 한참...남았다고 생각하기 싫은데...한참 남았네요.

대강 12~13편으로 완결을 낼 예정입니다. 외전도 기획했지만 음...일단 완결이나 하시는게 좋겠네요;;;

이번 화는 기승전결로 치면 승 막바지입니다.

다음부터는 전...전...하아...그러네요. 제 특기 발휘 대기중입니다.

 

저번 편에 덧글을 주신 분들이 그동안 쓴 글 중에 가장 많아서...특히 더 감사드리구요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혹시나 기다리신 분이 있다면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 그리고 완결을 내야 할 말이지만 배포용으로 책을 만들까말까 매우 고민중입니다. 혹시 필요하신 분은 물어보셔요(없음

 

 

 

 

 

 

Posted by 하리H( )Ri
2016. 3. 6. 07:59

[카라른/토도카라]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4-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캐붕,글솜씨없음주의

※5화 카라마츠 사변 기반, 3화 연극부 썰 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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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안쓰러운 형, 카라마츠. 그는 최근 들어 잠을 설치고 있다. 이유는 모르지만, 모른 척 하려 해도 옆자리니까 알게 되는걸. 덕분에 내 컨디션도 엉망진창. 잠을 못 드는 걸로 화를 내는 건 좀 치졸하지만, 책임을 물을 수 있은 데가 달리 없으니까 조금 불만이 쌓이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카라마츠 형에게 핀잔을 던지는 나날을 보낼 즈음, 나머지 형제들의 행동이 조금씩 달라진 게 보였다. 카라마츠 형에게의 태도가 묘하게 달라졌단 말이지. 카라마츠 형의 납치극이 원인이었을까. 나는 카라마츠 형도 이젠 어른이니까 고민 한두가지라고 할 시간을 가지느라 그런 거 아닐까 하고 내버려뒀었는데, 그 이상의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치 못했던 거다. 드라이 몬스터, 나한테 잘 어울리는 말일지도.

 

카라마츠 형이 갖다 놓은 투명한 잔 옆에는 어느새 학알이 든 병과 쵸로마츠 형이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이 붙은 병이 놓여있다. 쵸로마츠 형, 잔소리는커녕 이제는 저기에다 자기 물건까지 올려둘 정도라니. 이유야 대강 알고 있지만. 쵸로마츠 형이 카라마츠 형을 신경쓰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눈에 떡하니 들어와서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쵸로마츠 형이 드디어 자기 인식을 제대로 하기 전에도 신경썼던 부분이라 단순히 형이 주변을 살피게 되었다, 와는 다른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이 적중했음을 안 건 우연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는 주의인 우리 마츠노 형제. 책장 뒤를 뒤지는 쵸로마츠 형을 보고 카라마츠 형의 야한 잡지를 보겠다고 저러는 게 우스워서 사진으로 찍을까 고민하던 차에 쵸로마츠 형이 책장 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뭔지는 잘 보이지 않지만 쵸로마츠 형이 만지작거리다 얼굴을 감싸쥐는 걸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 뒤로 책장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은 나지 않았다. 누군가 한 명은 방에 남아있었으니까.

 

분명 저 책장 뒤에는 심각한 일이 숨어있어. 그래서 혼자가 아니면 좀 집안이 떠들썩해질지 몰라.

 

그걸 목격한 지도 2주일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쵸로마츠 형은 카라마츠 형에게 무언가 시도했다. 쥬시마츠 형도 느낌상 무언가를 눈치채고 카라마츠 형에게 다가갔다. 이치마츠 형은 카라마츠 형을 피하고 있다. 오소마츠 형은 알 수 없이 밖으로 나돈다. 카라마츠를 둘러싼 형제들의 이상한 흐름은 분명 그 책장 뒤에 있는 무언가와 관련이 되어 있겠지. 판도라의 상자가 거기에 있다. 점심밥을 먹고 나서, 다른 형제들의 눈치를 살폈다. 오늘은 다들 어디 안 나가려나, 좀 나갔으면 좋겠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소마츠 형을 제외하고는 다들 바깥으로 나갔다. 이제 이 형만 내보내면 되겠는데. 경마 가라고 천 엔 주고 꼬실까.

"뭘 그렇게 경계하는 거야, 토도마츠."

나왔다! 가끔 예리해지는 장남력.

"경계하긴 뭘 경계했다 그래? 간만에 집에서 느긋이 쉬고 싶은데 누가 남아있는 게 싫어서 그렇거든?"

"'간만에'라니! 하하하핫."

하긴, 우리들 니트니까 매일같이 쉬고 있긴 하지.

"톳티."

"뭐."

"안쓰러운 녀석한텐 뭐라고 해주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런 건 왜 묻는데."

"카라마츠 녀석이 물어봤거든. 자기가 모두를 아프게 만들고 있다고. 고슴도치의 딜레마라고까지 말한다고? 그런건 딱히 아닌데. 그래서 넌 그대로 있어도 좋다고 얘기했거든? 그런데 그걸로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오소마츠 형도 카라마츠 형의 이야기를 꺼낸다. 오소마츠 형이 밖으로 나도는 것도 카라마츠 형 때문이었나. 사랑받고 있네, 라기엔 지금 상황은 좀 애매하다.

"나야 안쓰럽다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쪽이니까. 그런대도 변함이 없어서 안쓰럽지."

"그렇지? 안쓰러운 건 딱히 변하질 않으니까. 우리가 안쓰러워 해주는 게 좋은 건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잖아."

카라마츠 형은 변하지 않아. 안쓰럽게 폼 잡는 것은 변하지 않아. 그렇게 폼 잡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속에 든 게 있는 건지 어떤지는 알지 못하지만. 어찌되든 안쓰러울 뿐이다. 지금은 그 안쓰러움이 행동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마음 속에서 느껴지고 있는 거지만. 잠을 설치고 있다. 텅 빈 카라마츠 형이 고민을 끌어안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안쓰럽게 행동한다. 그 행동으로 그는 고민하는 자신을 숨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소마츠 형이 일부러 이 얘기를 꺼낸 거 같았다. 따지려고 돌아보니 오소마츠 형이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을 뿐이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문을 닫았다. 책장 뒤를 살펴봤다. 카라마츠 형의 야한 잡지들이 널부러져 있다. 잡지들을 걷어내니 커터칼이 여러 개 던져져 있었다. 하나를 집어들어 칼날을 빼보니 칼날 끝에 갈색 얼룩이 져있다. 다른 칼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보고 떠오르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손목을 긋고 있는 거야, 카라마츠 형은. 순간 오싹해졌다. 설마, 카라마츠 형이 끌어안고 있는 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 멍청하게 순진한 형이 자살을 생각한다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납치극 당시가 떠올랐다. 카라마츠 형은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 옷을 갈아입고 병원에 다녀와 치료를 받고 돌아왔다. 집을 비울 때는 이치마츠 형이 큰일이었으니까. 매일매일 사고치는 쌍둥이 형제가 6명이면 한 명쯤 잊어버리는 일도 허다하니까, 그래도 카라마츠 형을 깜빡한 것, 밤에 시끄럽다며 물건을 집어던진건 아무래도 심한 일이었으니까 우리들은 카라마츠 형에게 사과했다. 그 사과는 우리들 형제의 기준으로 보면 대충한 것도, 그저 외면치레만 한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카라마츠 형이 괜찮다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을 때 더 미안하다며 난리를 쳤을 정도였지. 그게 큰 트라우마가 될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로. 문제는 그것만이 다는 아닐 거라는 감이었다. 카라마츠 형이 잠을 설친 건, 납치극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형에게 얽혀있는 일은 단순한 인과관계가 아니었다.

 

카라마츠 형.

 

그러고보니 어느새부턴가 카라마츠 형은 소매를 잘 걷어붙이지 않았다. 특히 왼쪽 팔목은. 소매를 걷어붙일 때에는 쥬시마츠 형에게서 손목 보호대를 빌려서 하고 있었다.  왼쪽 팔목이 아프댔던가, 손목을 돌리면서 하는 말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게 기억난다. 그렇게 카라마츠 형은 혼자서 자신의 아픔을 삼키고 있다. 아니지. 삼키고 있는 게 아니라 발버둥치고 있는 거겠지. 손목을 긋는다는 건 결코 삼키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니까. 그리고 한두번이 아니었을 자살시도를 하면서, 카라마츠 형은 더욱더 깊은 고통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째서. 하나를 알게 되니까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알아버리는데, 그 전에는 하나도 몰랐던 걸까. '드라이하네~' 오소마츠 형의 이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내가 카라마츠 형에게 관심이 없었으니까, 잠을 못 자고 설쳐도 그러려니 하고 넘겨버리니까, 카라마츠 형은 더욱 더 고통스러운 쪽으로 빠져들어갔을 거라고 자책한다. 이런 건 결코 나답지 않지만. 죄 없는 사람 하나를 몰아넣고 태평할 정도까지는 타락하지 않았으니까.

 

카라마츠 형과는 어떻게든 얘기를 나눠야 했다. 카라마츠 형이 자기 마음을 털어놓고 상처를 꿰맬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오소마츠 형이, 쵸로마츠 형이, 쥬시마츠 형이 부딪혔음에도 잘 되지 않은 거 같다. 하물며 이제서야 그의 상처를 눈치챈 나다. 내가 따지듯이 물어간다고 한들, 카라마츠 형은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지 않을거야. 오히려 괜찮다면서 안쓰럽게 폼이나 잡겠지. 그가 더 심각한 생각을 하기 전에, 어둠에 먹혀버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끄집어올 기회만이라도 만들 수만 있다면. 그 계기를 만들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멍때리기만 시전하고 있다.

 

고슴도치의 딜레마.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상처를 주는 거라고 했던가. 이건 카라마츠 형보다는 나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카라마츠를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그 정도까진 아니라고 답하겠지만. 그래도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다. 카라마츠 형은 좀더 나에게 상처를 줘도 괜찮을텐데. 속으로 삼키면 자기의 상처만 벌어진다는 걸 왜 몰라주는 거야.

 

카라마츠 형에게 직접 전할 수 있는 말은 없을거다. 적어도 지금은. 직접적으로 말하는 게 카라마츠 형에게는 상처로 박힐 것이다. 안그래도, 그는 상처를 잔뜩 안고 있다. 돌려 말하는 메시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형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봉합될 수 있도록 일단은 말없는 사랑을 건네야 할 시점이다. 옳은 방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난 방을 뛰쳐나와 달렸다. 달리고, 달리고, 목적지도 없이 달렸다. 무언가 내 마음 속에서 터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애써 무시해왔던 것들이 한번에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어떻게 해야 좋은 거야, 도와줘. 파트너.

 

아무 이유 없이 선인장이 떠오른다. 메마른 사막에서 가시를 뽐내며 선인장이 서있다. 선인장은 성가신 녀석이라 물을 너무 많이 줘도 죽어버린다 한다. 메마른 곳에서 살아온 나름의 폴리시는 사막이 아닌 곳에 와서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물을 안 주면 말라버리지만, 아슬아슬할 때 한 번 주면 된다고 하니까 귀찮은 녀석이다. 뾰족한 가시는 누군가를 찌르기 위한 게 아니라 메마른 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물을 빼앗기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선인장의 진화의 말로다. 그런 선인장이 자신과 닮았다고 느꼈다. 고슴도치보다도 더. 나를 위해서만 발버둥치고 있는 꼴이 딱이다. 카라마츠 형이 주는 물에 흠뻑 적셔졌을 때, 나는 카라마츠 형을 거부했다. 그의 관심을 지나친 거라고만 생각했고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나는 메말라가기 시작했다. 선인장처럼 남을 찌르는 쪽으로 변화해갔다. 그러는동안 물을 채우던 카라마츠 형의 잔도 메말라가기 시작한 걸까. 이윽고 넘치듯 찰랑거리던 물은 증발하고 빈 잔만 남았다. 그 결과, 카라마츠 형은 잔에 물이 아니라 다른 것을 채우기 시작한 거다. 어릴 적 파트너라며 꼭 붙어다녔던 형과 나다. 여섯 쌍둥이라고는 해도, 가장 가까웠던 관계 정도는 있으니까. 늘 같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여섯 쌍둥이가 개성을 찾아가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로가 쌓아왔던 관계도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카라마츠 형은 나름대로 길을 잘 찾아간 편이라고 생각했다. 안쓰러운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그러나 과연 형이 찾아간 길은 형을 위한 길이었을까. 형이 연극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안쓰러움은 가속화되고, 형의 변화도 가속화되었던 것이다. 형은 여전히 텅 비고 멍청한 사람이었지만 겉을 꾸며낼 줄도 알게 되었단 걸 어째서 눈치채지 못한걸까. 

 

숨이 가빠진다. 이젠 내 목이 메말라간다. 아무 생각 없이 뛰쳐나와서 돈도 없고, 집에서도 너무 멀리 떨어져있는 듯 하다. 간질거리는 목에 침을 삼키면서, 조금씩 이성을 되찾는다. 익숙하지 않은 거리의 횡단보도에 서 있다. 슬슬 머릿속을 정리해보자. 카라마츠 형에게 상처가 되더라도, 직접 하고픈 말을 얘기하자. 진심을 부딪히면 형도 진심을 꺼내주지 않을까. 내가 사과하는 일, 좀처럼 없으니까 내 사과라면 진심으로 받아주지 않을까. 아직은 괜찮으니까. 형, 그정도 여유는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오늘 점심도 잘만 먹었지, 식탁을 치워주겠다며 웃으며 밥그릇들도 들고 가줬지. 적어도 오늘 형에게 내 진심을 전한다면, 사과한다면 형이 지고 있는 짐을 덜어줄 수 있을거야. 어디까지 뛰쳐나왔는지는 모르지만, 형을 빨리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 그런 기분이다. 그때, 횡단보도의 건너쪽에서 익숙한 형체가 보였다. 8차선 도로라 그런지 횡단보도가 꽤 커서 명확하지는 않지만, 저건 카라마츠 형이다. 여기서 만날 줄이야. 다른 형제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들어갈 수 있는 좋은 환경이다. 신이 돕는 거네, 이건.

 

 

 

라고 착각했다.

 

차선에는 빠른 속도로 트럭들이 몇 대 지나간다. 보행신호는 도무지 파란불로 바뀔 생각을 않는다. 이윽고 차쪽 신호등이 노란 불, 빨간불로 바뀐다. 3.2.1.텅.

 

트럭이 정지선에 급하게 멈추는 짧은 시간, 카라마츠 형의 몸이 앞으로 내던져졌다. 급정거하는 트럭에 부딪힌 카라마츠 형의 몸은 횡단보도 쪽까지 튕겨나갔다. 머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트럭 운전사도,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들도 모두 카라마츠 형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난 그저 굳은 채 반대편 인도에 서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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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저 지금 뭐라고 써대고 있는 겁니까.

실은 짜놓은 얘기지만. 토도마츠는 막연히 선인장을 건네주면 어떨까 생각하던 차에 뒷얘기를 생각했던 거라 이번 화에서는 선인장이고 빈 잔이고 내던졌습니다. 토도마츠의 드라이함을 살리고 싶었는데 드라이하려다 땀내나게 되어버렸으니 이거. 분량은 반도 안 왔고, 재미는 없습니다. 변변찮을 정도가 아니라 안타는 쓰레기네요 이거.헿. 그래도 자기만족으로 최대한 써내려가야죠 뭐.

 

 

 

 

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