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1. 23:11

짧글/주청/1 4개 우겨넣기식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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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11월 11일.

인간들의 시간으로는 이렇다고 하더군. 인간들의 자세한 시간을 알아두는 것도 괴담을, 이야기를 좋아하는 청행등에게 있어선 당연한 일이건만, 오늘도 그런 '시간'과 '이야기'를 어디 사는 누군가가 절묘하게 엮어내어 속고 있다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인간들이 휘둘리는 모습을 보는 게 꽤나 재밌다. 물론 저 인간의 마음은 어떨지, 어떤 심정으로 막대 과자를 주고 받는지, 지나치게 인간의 마음에 몰입하기도 한다. 현대의 괴담이란 옛날과는 또 다른 형태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법. 인간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게 그저 공포만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이날의 훈훈함과 씁쓸함이 교차하는 풍경을 청행등은 그 눈에 담고 있었다. 

청행등은 잠시 풍경을 내려다보다 들고 있던 등에서 푸른 도깨비불을 내보내 제 몸을 감쌌다. 인간의 모습으로 사뿐히 땅 위에 내려서고선 익숙하게 사람들 속에 섞여든다. 이제는, 익숙한 일이다. 옛날처럼 등을 걸어두고 모여앉아 괴담을 나누는 '햐쿠모노가타리'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지만, 괴담이든 괴이쩍은 일이든 청행등의 먹잇감이 되는 이야기는 이 시대에도 얼마든지 넘쳐난다. 이렇게 인간 속에서 이야기를 얻어가지만, 그렇지만 예전과는 다른 단절된 섞임 속에서 조금 서글퍼지긴 했다. 뭐어, 오늘의 볼일은 막대과자 아닌가. 하나쯤 슬쩍해도 별로 큰 혼란은 안 생기겠지만, 대충 그 의미를 아는 입장에선 그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디 신사라도 들어가 세전이라도 슬쩍할까 하며 공원 벤치에 앉았더니, 웬 꼬마가 청행등 앞에 와서 멀뚱멀뚱 청행등을 쳐다보았다.

"나비- 빛나는 나비가 있어"

"으응?"

"이런 나비는 처음 봐- 형아 뿔도 나있네- 신기하다-"

"아아. 어린아이라 그런건가. 내 원래 모습이 보이는 건가."

"나비 만져봐도 돼?"

"그럼. 네 손에 옮겨주지."

도깨비불로 만들어진 나비가 꼬마의 손에 옮겨갔다. 꼬마는 따뜻해, 간지러, 같은 소리를 반복하며 웃었다. 

"고마워, 형. 나비 만져보게 해줬으니까 이거 줄게."

꼬마가 메고 있던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막대과자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건넨 꼬마는 씨익 웃었다. 웃는 꼬마의 이앞니는 하나가 빠져 있었다.

"오늘 유치원에서 친구가 줬는데 우리 엄마는 이런 과자 못 먹게 하거든. 친구한테 고맙다고 하고 싶은데 버릴 수는 없으니까 형아 줄게! 안녕!"

그리고서는 재빨리 가버리는 조심성없는 꼬마다. 나같이 착한 요괴를 만나서 다행이군, 하고 청행등은 생각했다. 어쨌건 이렇게도 귀여운 사건이 생겨, 인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어 청행등은 즐거워졌다. 

본모습으로 돌아와서도 막대과자를 쉽게 맛보지는 못하는 청행등이었다. 인간의 과자도 몇 번이고 먹어봤고, 사실 이 과자의 맛도 알고 있는 바니까. 하나가 이루어지면 또 하나 욕심이 생기는 건 왜일까. 역시 이런 건, 사랑하는 이와 나누어먹는 그런 이벤트를 꿈꾸고 마는 건... 청행등은 자신이 인간에 지나치게 몰입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금 움츠러들어있었다.

"모처럼 떠들썩한 날인데 왜 우울해 보이지? 내가 너무 오래 놀러갔다왔나? 하하핫!"

맞아. 꿈꾸고 말았던 건. 그런 이가 있으니까. 생각나는 상대가 있으니까. 청행등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찔끔 보이고 말았다.

"아니, 잠깐잠깐! 내가 그렇게 잘못한거야? 미안해... 그래도 청행등이랑 마시려고 맛있는 술도 구해왔... 우왓!"

당황하는 주탄동자에게 달겨들어 폭 안기는 청행등의 행동에 주탄동자는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술도 안 마셨는데 이렇게 애교가 넘치는 청행등은 오랜만인걸.

"괜히 인간들의 축제... 같은거에 심취해버린 거 아닌가 싶어서... 조금 우울해졌다만. 주탄동자가 돌아와줬으니, 주탄동자가 거기 어울려줄거라고 믿고... 있다제."

"에에... 우리는 뭐, 인간들의 축제니 놀이니 그런거 좋아하고 잘 끼어 놀고 그렇잖아. 뭘 새삼스레. 오늘은... 막대과자를 코에 끼우는 날이었나?"

퍼억! 하고 주탄동자의 배에 청행등의 주먹이 꽂힌다. 

"농담이라고, 농담. 청행등 쪽에서 먼저 그런 걸 하자고 할 줄이야. 매번 내쪽에서 할 때마다 투정부리면서 받아줬잖아. 엉큼해졌네, 아니 때리지는 말아줘..."

주탄동자는 능글맞게 막대과자상자를 열어 봉지를 연 뒤 막대과자를 하나 꺼낸다. 누가 먼저 입에 물까 재기도 전에 둘 다 격정적으로 달라들어 막대과자가 부서져버렸다. 다음 과자는 주탄동자가 청행등에게 건네주고 청행등은 과자를 살짝 이에 물었다. 주탄동자도 이에 물고 사각, 사각,사각, 사각, 거리를 좁혀갔다. 평소에도 하는 입맞춤이 이렇게 긴장할 일인가... 싶은 순간 청행등이 살짝 힘을 줘 막대과자가 부서졌다. 손톱만큼 남은 막대과자에 주탄동자는 이거면 원래 인간들이 하는 막대과자게임에선 거의 우승급이라며 추켜세워준다. 얼굴을 붉히는 청행등에게 주탄동자는 다시 막대과자를 건네는 척 하더니 제 입에 가져간다. 이번에는, 게임 말고 원하는 걸로 할까. 말없이 전해지는 눈빛으로. 서로의 이에 막대과자를 물고서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긴장감 끝에 맞닿은 감촉과 새로운 재미에 둘은 까르르 웃어버렸다. 이후 남은 과자도 똑같은 방법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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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 땡겨서 쓰는데 쓰려는데도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짬내서 쓰려니까 눈앞이 뱅글뱅글 돌아서 뭔 헛소리를 쓴건지 모르겠단
진짜 글이 오랜만이에요오오

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