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2. 01:07

"이걸로 주세요."
작업실 근방에 있는 꽃집.
그곳에 조금 별난 단골고객이 생겼다.
퀭한 눈에 지친듯 굽어있는 등, 조소하듯 기분나쁘게 웃고 있는 한 남자.
꽃집의 입구 쪽에 놓여진 꽃을 가리키며 살 때마다 매번 '이걸로 주세요.' 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꽃집 주인은 '알겠습니다.' 라며 그 꽃 몇 송이를 집어들어 바스락거리는 종이에 싼 뒤 예쁘게 리본을 묶어 건넨다.
이유도 없이 그저 눈에 들어온 꽃을 몇 번이나 사갔던가. 꽃다발을 풀고 싶지 않았지만 물병에 꽂지 않으면 시들어버린다는 말을 듣고 풀어서 병에 꽂아놓은 게 큰 항아리를 가득 채울 만큼이 되었다.
몇 송이는 담당 편집자에게 떠넘기고, 몇 송이는 새로운 기획 관련 미팅 때 참석자들에게 떠넘겼는데, 그들은 바보같이 역시 '미넷 선생님은 달라!' 하면서 입에 발린 칭찬을 해댔다.
그러고보니, 늘 사는 이 꽃은 대체 무슨 꽃이지.
문득 남자는 궁금해졌다.
"이 꽃, 이름이 뭐죠?"
"소국이예요. 소국."
소국, 소국이라.
"참고로 꽃말은 밝은 마음과 고상함이라네요. 흰색은 성실함. 빨간색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실연이란 뜻도 있다고 하네요. 노란색은 실망을 뜻한다고 하는데 색이 예쁘니 들여놓고 있어요. 주는 사람이 전하고 싶은 마음이나 보는 사람의 마음에 든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요, 훗."
거 참 말 많은 꽃집 주인일세.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꽃집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 정확히는 작업실을 옮겨온 김에 거리를 둘러보고 있던 중 꽃집 옆을 지나쳤을 뿐인데 꽃집 주인이 불쑥 저 꽃을 들이밀었다.
그땐 흰 소국을 받았지.
"어제 건너편 건물로 이사오신 분이죠? 어제 이삿짐은 옮기는 걸 봐서... 저도 여기 꽃집을 연 지 얼마 안 돼서 인사를 겸해 지나가는 분들께 꽃 한 송이씩 건네고 있어요!"
푸른 앞치마에 시원스러운 얼굴.
실내에서 일하는 주제에 짙은 선팅의 선글라스를 쓴 청년이었다.
얼떨결에 꽃을 받아드니 꽃집 주인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펴진 걸 본 탓이었을까.
남자는 그 뒤 외출할 때마다 꽃집에 들러 받은 꽃과 똑같은 꽃을 사고는 했다.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순정만화를 그리면서도 작업실에 박혀 한발짝도 떼지 않는 음울함 가득하던 그가 꽃집에 가기 위해 장을 본다는 핑계를 대며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빨간색 소국도 예쁘게 꽃다발로 만들어주세요."
딱딱한 말투로 남자는 빨간 소국을 가리켰다.
"설마 꽃말 얘기한 거 듣고 혹해서 사는 거 아니죠? 역시 줄 사람이 있는 건가..."
아니야.
그런 사람 없어.
아니야.
사실은.
꽃 이름을 묻거나 그걸 사거나 한 거는 당신이 떠올랐기 때문이야.
불쑥불쑥 내 일상을 침범하는 당신 탓에.
습관처럼 배어든 당신 생각에 내 작품의 히로인도 당신을 닮아가고 있는걸.
남자는 이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전할 수 없었다. 머뭇머뭇.
늘 그렇듯 그냥요. 라고 대답하고선 남자는 꽃다발을 받고 돌아선다.

사실은, 당신의 이름을 묻고 싶었어.

예전에 트위터에 올렸던 거 같은...?
수정 및 가필하려고 하는 김에 아주 조금 손봐서 올려봐요
머리로 생각하는 것만큼 제대로 연성한 42가 잘 안보여

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