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7. 03:21




—뭐라고 말해야 할 진 모르겠지만.
좋아합니다. 저와 평생을 함께해 주세요.

이게 아닌데. 이미 평생을 함께 하고 있잖아.

—좋아해요. 저와 결혼해주세요. 행복하게 해줄게요. 진심으로.

으아아아아! 프로포즈란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그냥 결혼해달라고 하면 안돼? 너무 복잡하지 않음? 오소마츠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가 방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머리를 굴리던 그때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움찔하며 멈추자 문을 열고 카라마츠가 들어왔다.
"뭐 하는 건가, 오소마츠. 방에서 뒹굴거릴 거라면 잠깐 같이 산책이라도 하자."
"산책? 그럼 나간 김에 빠칭코..."
"그럼 안 되지, 오소마츠. 빠칭코를 가면 나이스한 나를 눈에 담을 시간이 줄어들어버린다만."
"뭐래는 거야. 아무튼, 알았어. 어디 마주 앉아서 오래도록 널 보고 있을 테니까. 발길 닿는 대로 가보자고."
오늘 프로포즈를 하기는 글렀네 생각하며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앞세워 집을 나섰다. 사귄다고 해도, 연인이 됐다고 해도, 손을 잡는 건 여전히 어려웠다. 사람이 드문 데서야 겨우 손을 잡고, 충동적이던 첫 키스 이후에는 눈치를 봐가며 입을 맞춰선지 의외로 그렇게까지 많은 키스나 애정 행각을 나눠보질 못했다. 어쩔 수 없지 뭐, 라고 전에 카라마츠는 체념한 투로 말했다. 너무 많은 걸 바랄 수는 없다며 제 나름은 시원한 투로 이야기하는 그도 사실은 아쉬워 하는 걸 오소마츠는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래서 제 맘대로 안거나 할 수 없었다. 카라마츠는 의외로 조심스럽구나. 평소에는 그렇게나 무방비하고 쉽게 다가오는 녀석이건만, 오소마츠에게 고백하는 것만은 오래도록 망설여왔다고 했다. 오소마츠가 먼저 고백하고 나서야 털어놓은 제법 오래된 카라마츠의 연심은 그의 안에 여전히 갇혀있는 듯 했다.



"결국은 여기밖에 없나~ 너도 참 여길 좋아한다니까."
"여기서 오소마츠가 고백해주지 않았나. 좋아할 수밖에 없지."
특별할 거 없는 강둑에서 나란히 앉아 손을 잡고서,  서로를 보며 덤덤히 이야기하는 이 장면을 카라마츠는 꿈꿔왔을까. 어느 날, 카라마츠의 마음을 눈치채고서는 모른 척 할 수 없어서, 오늘처럼 고민했었던가.

—어떻게 하지. 사내 새끼가, 그것도 얼굴부터 똑같은 쌍둥이 동생이 날 성적으로 좋아하는 거 같은데?! 잠, 잠깐. 이거 거짓말이지? 내가 잘못 생각한거지?

알고 있었다. 잘못 생각한 게 아니라는 건. 카라마츠가 겨우겨우 드러내지 않던 마음을 알아채버린, 발렌타인데이 며칠 전에 있던 작은 사건. 카라마츠 본인과는 인연 없을 것만 같던 커다란 제과점에 스스로 걸어들어가길래 맛있는 걸 사면 뺏어먹을 생각으로 몰래 뒤따라 들어가 뒤쪽에서 깜짝 놀래켜주려던 그때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 상자를 집어들며 '오소마츠는 이런 거 좋아할까'라며 중얼거린 그 일을. 오소마츠는 놀라서 다른 진열대로 뒷걸음질쳐 그대로 아래로 숨어버렸다. 카라마츠는 그 초콜릿을 사지 않았고, 혹시나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 선물을 고르러 온 걸까 하는 가능성은 역시나 발렌타인데이를 빈손으로 마침으로써 사라지게 되었다. 그 뒤, 오소마츠의 눈길이 카라마츠를 좇게 되었다. 왜 나를, 형제가 아닌 다른 의미로 좋아하게 된 거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아마도 카라마츠는 거짓말을 했을거다. 고등학생 시절의 카라마츠라면 눈을 피하며 무슨 소리냐고 했을 거다. 성인이 된 카라마츠라면 '나는 모두를 사랑한다제! 에브리바디 러브!' 같은 소리를 지껄였을 거다. 아니면, 정말, 혹시나 오소마츠 자신이 잘못 짚었을까 두려워서. 어쩌면, 그렇게 물어보는 것으로 오소마츠도 제 마음이 확정되는 게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런 날들이 지나고 지나 여러 해를 거치며 둘의 마음은 오래도록 숙성되어갔다. 카라마츠는 제 마음을 숨기는 덴 능숙해져갔지만 견딜 수 없는 날이면 오소마츠를 피해버렸다. 오소마츠는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을 때마다 카라마츠의 꿈을 꿨다. 꿈을 꾸는 그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에 대한 확신이 섰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을 피하는 카라마츠를 강둑에서 붙잡고 바닥에 넘어뜨린 채 엉망진창인 고백을 카라마츠에게 해버렸다. 무슨 말을 해댔는지 그 모두를 제대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랑 하자는 말을 내뱉고 바로 미안하다며 사과했던 것만은 뚜렷이 기억한다. 내려다본 카라마츠의 눈에서 조용히 눈물이 흐르기에 오소마츠는 저질러버렸구나 하고 어쩔줄 몰라했는데, 카라마츠는 손을 내밀어 오소마츠의 뺨을 쓰다듬으며 고맙다고 말하며 웃었다. 바로 둘의 몸과 입술이 포개졌다. 그런 강렬한 고백의 장소지만, 창피한 기억일지도 모르는데 카라마츠는 자주 이 곳을 데이트 장소로 골랐다.
"고맙다. 오소마츠라면 마음껏 사랑을 나누고 싶을텐데, 나 때문에 많이 참아주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사람을 성욕에 미친 사람 취급하지 말아줄래. 뭐어, 지금은 여러모로 참고 있긴 하지만. 나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아껴주고 싶어하는 면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지 뭐야. 멋지지."
"그래, 그래. 멋있어, 오소마츠."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심인 양 부드럽게 말하는 말투라니.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역시 슬슬 독립을 해야하나 싶어. 독립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복잡하지만, 우리 둘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오소마츠가 참는 것도, 내가 눈치보는 것도, 너무 오래 끌고 싶진 않다."
잠깐, 이거 프로포즈 아님? 지금 선수치기를 당한 건가? 싶어 오소마츠는 살짝 당황했지만, 한숨을 쉬며 오소마츠가 아닌 강가의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는 카라마츠에 살짝 안도했다. 돌아오는 길은 그냥 평소처럼 걸었다. 저녁 반찬은 뭘지, 또 둘이 같이 들어오냐며 아니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형제들에게 뭐라고 할지 등의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하며.



집에 와서 식사를 하고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뒹굴거라는 평소와 같은 저녁시간을 보내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오소마츠는 프로포즈를 어떻게 할지 줄곧 고민했지만 도저히 멋들어지게 구상이 나오지 않았다. 괜히 안달이라도 난 듯 뜨거워지는 자신을 탓했다. 잠이 오지 않아 눈을 뜨고 바라본 창문에 오늘은 커튼이 치는 걸 모두  깜빡해서 달빛이 새어들어왔다. 아, 이젠 고민하는 거 그만둘래. 그대로 이불을 빠져나와 카라마츠를 깨웠다. 카라마츠도 잠에 들지 않았던 건지 바로 이불 밖으로 나왔다. 조심히 오소마츠가 지붕으로 올라가면 카라마츠도 그 뒤을 따라 올라왔다. 달빛 아래서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안았다. 지나가는 누가 보면 어떠랴. 둘은 이어 키스를 했다. 밤공기가 선선해서 기분이 좋았다. 둘의 혀와 입술이 떨어지고 강둑에서처럼 나란히 앉아 손을 잡았다. 달과 얼마 보이지 않는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잠시 보다가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왼손을 자신의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지금 당장은 없는 반지 대신으로 카라마츠의 왼손 약지에 입맞춤을 했다. 카라마츠의 손을 줄곧 들어올린 채, 오소마츠는 고민을 던져버리고 이야기한다.
"평생 내 것이 되어줘, 카라마츠."
카라마츠는 말이 없다. 다만, 고백을 한 그 때처럼 또 눈물을 조용히 흘리면서 미소를 짓는다.
"평생 네 것이 될게, 오소마츠."
아마 이 프로포즈를 오소마츠도 카라마츠도 나중에는 좀 더 제대로 할 수 없었는지 후회하겠지만, 아마도 둘의 부끄럽고도 행복한 추억이 될 거라고 오소마츠는 믿어본다.



재활(?) 겸. 구상하던 이야기의 일부분이기도.
이 이야기의 전체도 시간이 꽤 지나 묘사나 방향성이 멋대로 굴러가면서 갈피가 안 잡히네요. 파편화된 채 몇 개가 끊어지고 버젼이 다른 채 존재하는 중.


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