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9. 23:09

베니마츠 합작 참가작(https://redpinkmatsu.tistory.com/4)

 

매일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 때 있지 않아?

그래서 높은 데 올라가서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했고,

괜히 식칼을 들어 팔목에 생채기를 내보기도 하고,

수면제를 처방받아 잔뜩 모아서 먹어보려다 게워본 적도 있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에 뛰어드려는 충동을 느껴보기도 하고,

물속에 들어가 숨을 참아보기도 하고...

생각처럼 쉽진 않더라.

죽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것과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것.

용기 있으면서도 용기가 없는 자신이 싫었다.

그렇게 헤매던 어느 날, 나는 살기로 결심했다.

이 어중간한 삶의 경계에서 안쪽으로 다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놀리듯, 나의 삶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겨우 찾아낸 희망에서 끌어내려져, 죽음의 세계로.

더 이상은 돌아갈 수 없는, 삶에 대한 갈망만이 가득 채워진 채로.

 

"이봐."

"왜 그러지?"

"그만둬주지 않을래?"

"그럴 수 없다고 얘기했을 텐데. 수백 번은 족히 말이야."

"그렇다면 수천 번 이야기 해야지. 들어줄 때까지. 그만둬주지 않을래?"

녀석은 입을 다문다.

저승길을 안내하는, 내 막내동생 토도마츠의 얼굴을 한 이 녀석은 바케타누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둔갑술이 특기인 너구리요괴였던가. 녀석은 너구리 모습은커녕 꼬리조차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머리 위에 얹어지다 못해 머리핀으로 고정시킨 나뭇잎만이 어렴풋이 이 녀석의 정체와 눈앞의 토도마츠가 가짜라는 것을 상기시킬 뿐이었다. 녀석은 얼굴만이 아니라 성격도 토도마츠와 비슷한 건지, 비슷하게 꾸며내는 건지. 나를 홀리려 드는 건지, 나를 괴롭게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얼마나 더 가야 끝나?"

"얼마나? 글쎄. 오소마츠 형이 더 잘 알지 않을까?"

"토도마츠 흉내는 그만둬. 진짜 화낼 거니까."

"화를 내면? 여기서 화를 내서 뭘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어딘지 모를 저 끝을 향해 걸을 수밖에 없다는 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얘기했는걸."

"관두자..."

이 말도 안 통하는 길동무와 함께 저승의 어딘가에 다다라야 한다니. 다다르기는 하는 걸까. 그보다 난 몰라도 이 녀석도 벌을 받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나는 포기한 채 길을 걸었고, 녀석은 토도마츠의 모습을 한 채로 내 옆을 따라왔다. 길은 가지만 남아 앙상한 나무들이 늘어선 곧은 길. 그 외에는 모래만이 흩날리는 살풍경. 텅 빈 세계에 둘만이 걷고 있을 뿐이다.

 

부지런히 걸어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는 어느 날. 나무에는 푸른 잎이 돋다 못해 무성해져 모래먼지뿐인 하늘조차 가려버린 숲속이 되었다. 숲이 되자, 길동무는 갑자기 말이 많아진다.

"요괴는 말이지, 이런 규칙이 있어. 생명의 세계에서 뛰놀고 싶다면 그만큼 일하라고. 저승에서 영혼을 인도하는 일을 하면 영혼이 가진 죄에 따라 요괴를 불러들여 짝을 지어줘. 저번에는 알코올 중독? 그런 거 때문에 자기 식구를 죽인 사내를 주탄동자가 술을 잔뜩 먹이고 쥐어짜가면서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주더라니까! 방망이에 거의 으깨지다시피 하던 영혼의 꼴사나운 모습, 정말 볼만했지. , 그런 주탄동자도 내 앞에 오면 부끄러워서 술 권유나 하고 말거든. 헤헷."

뭔가 얘기할 맘이 생긴 건가?

"왜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해?"

"이 숲이 보이면 곧 도착한다는 의미거든. , 그냥 숲을 좋아하는 거기도 하고. 그동안은 모래 속이라서 기분이 나빴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그러면 지금은 들어주나, 토도마츠의 얼굴 그만둬 달라는 거."

"그건 어려워."

"어째서."

"이 모습은 말이야, 네가 원해서 하는 모습이거든."

"...내가?"

". 네가 죽기 전에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했던 사람의 모습."

"......"

죽기 전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했던 사람이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는 짓이나 말투까지 똑같이 할 필요는 없지 않아?"

" '토도마츠'가 나와 비슷한 녀석인 거 아닐까? 있을 법 하잖아."

"기분 나쁜걸."

"나도 그래, 오소마츠 형. 오소마츠 형도 아직 말 안 했잖아. 왜 여기 오게 됐는지, 그러니까 왜 죽었는지."

"...차 사고였어. 운 나쁜. 나는 몇 달 전에 내 쌍둥이 동생들을 차 사고로 잃었거든. 나만 기적적으로 살았는데, 결국에는 나도 차 사고로 죽는 운명이었던 거야. 그 때 말야, 토도마츠가 날 구하고 죽었어. 안전벨트는 언제 푼 건지, 내 안전벨트를 잽싸게 풀고 문을 열어 날 힘껏 밀었어. 급경사로 브레이크가 먹히지 않아 가드레일을 뚫고 추락하는 차 속에 토도마츠가 날 보고 있었어. 난 차도 위로 날려져갔고, 차는 그대로 폭발해버렸지."

"헤에. 그리고 차 사고로 또 죽었다고?"

"파란불이었을 텐데, 재수가 없었어. 맹렬히 횡단보도를 무시하고 달리는 차에 치여서 즉사. 대단하지."

"기적 같은 건 없는 거 아냐? 그 정도면. 의미 없잖아."

"아냐. 그때 나는 살고 싶었어. 살고 싶어서 병원을 찾아가는 길이었어. 길은 멀었지만, 발걸음이 안 떼졌지만, 나의 희망이 이야기했어. 살아달라고."

"희망?"

". 희망."

"그거 대단하네. 그보다 오소마츠 형.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 없어?"

"무슨 거짓말. 그보다 넌 토도마츠도 아니..."

"동반자살이잖아."

말문이 막혔다.

"브레이크 사고였다니까."

"일부러 고장 냈잖아. 드물게도 오소마츠 형이 운전하겠다고 한 그 순간부터 위화감이 있었어."

"무슨 소릴..."

"알고 있었어. 형이 죽고 싶어 한다는 것도. 우리 모두는 하나니까 다 같이 죽어야 한다 생각한 것도."

"......"

"형은 우리를 태우고 끝내주는 경치를 보러 가자고 했어."

"우리라니. ..."

"그날이 자살 실행일이구나. 깨달아 버린거야, ."

"토도마츠."

"정확히는 난 '토도마츠'는 아냐. 다만 그 녀석과 계약을 했어."

멍하니 그를 쳐다보는 나를 개의치 않고 녀석은 떠든다.

"나는 '토도마츠'의 영혼을 먹었다. 대신, 네가 여기 저승에 오게 되면 내가, 아니 토도마츠가 길안내를 하는 것으로 약속했지. 널 꼭 만나고 싶다면서. 널 꼭 자기 손으로 데려가고 싶다면서. “

그런...“

그러니까 나의 말은 토도마츠의 말이기도 한 거야. 흉내 같은 게 아니야. 토도마츠의 영혼이 오소마츠 형에게 하는 말인 거니까.“

토도마츠.“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마. 그런 상태의 형을 눈치 채고도 누구한테도 막아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어. 여차하면 내가 뛰어들 생각만 가득했어. 어째서였냐고 묻지마. 내 눈에는 오소마츠 형만 들어왔으니까. 형이 우리 모두와 같이 죽고 싶다고 해도 난 형이 살아주길 바랐으니까. 결국에는 이렇게 형은 비슷한 이유로 죽어버렸지만. 그래도 형을 데리러 오는 건 내가 맡고 싶었어.“

왜 그런 거야. 왜 알고도 나를 막지 않고,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구해버린 거야. 왜 추락해가는 너의 입모양이 사랑해였던 거야. ......“

형을 쭉 좋아했어. 아니, 사랑했어. 형제보다는 깊은 의미로 사랑해버렸어. 그래, 그래서 말인데, 더 물어봐도 돼? 왜 죽고 싶어 했던 거야?“
말하고 싶지 않아.“

이미 죽어버렸잖아.“

그래도.“

그렇다면...그 희망이란 건 뭐야. 죽고 싶어했던 형을 다시 살고 싶게 해준 희망 말이야. 우리를 다 죽이고도, 형에게 쥐어준 그 희망은 또 뭐냐고. 나로는 안 됐던 거잖아...나로는...“

 

미안해. 너의 사랑이 보통의 형제애와는 다르다는 거, 눈치 채고 있었어.

하지만, 나의 그건 너와는 다르더라.

그게 무섭더라.

나는 형제들을 정말 좋아하는데, 내가 눈치채버린 너의 감정은 우리 형제를 무너뜨릴 거라고 지레 겁먹었던 거야. 그 사랑이 제법 오래됐다는 것도. 그걸 나는 무시한 채로 버텼지만, 너무 힘들더라. 모두의 장남이라는 기대에 한날한시에 태어난 형제가 가진 감정에 대답을 해줄 수 없더라.

날로 우울해졌어.

날로 죽고 싶어 졌어.

형제를 버텨낼 자신이 없었어.

우린 늘 하나잖아?
그러니까,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내가 지고 있던 짐을 그날의 사고, 아니 사건으로 인해 벗어던질 수 있게 된거야.

내 목을 조여왔어.

나 혼자 살아남았단 죄책감이.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더 이상 장남도 아니게 되었지.

너의 사랑에 답할 이유도 없게 되었어.

그렇게 마음을 추스르며 너희들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나는 너의 편지를 발견하게 된거야.

 

오소마츠 형, 형이 이 편지를 읽는다는 건 내가 멀리 떠났거나, 혹은 죽었거나겠지?

정말 마지막으로 이 편지로 내 감정을 마무리하려고.

형은 눈치 채고 있을까?

은근 그런 거 잘 눈치 채잖아.

내가 형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렇지만 역시 난 고백할 용기가 안나.

그리고 형 역시 나를 사랑할 기미가 안 보여.

그래서 마음을 접으려고 해.

그래도 말야, 그건 형 탓이 아니야.

무엇이든 형 탓이 아냐.

형이 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놔도 돼.

내가 용서할게.

그래서 내가 떠나기로 했어.

형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오소마츠 형, 아니 오소마츠.

많이 사랑했어.

늘 행복해.

토도마츠가.

 

그 편지를 읽고, 나는 그동안 너희를 떠나보내고 흘리지 못한 눈물을 쏟으며 울었어.

그리고 토도마츠의 나를 향한 감정은 진지했고, 진지하게 매듭지으려 했다는 것이 너무 미안했지. 그래서 결심했어. 이미 사라져버린 너를 위해서, 나 행복하게 살겠다고. 그래서 우울증에서부터 벗어나려고 병원으로 향하던 길, 나는 죽어버렸지.

 

토도마츠의, 바케타누키의 손에 잡혀 목을 졸리며, 나는 토도마츠에게 하지 못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하지 못할 말을 떠올렸다가 지운다. 뭘 편해지려 했던 거야. 평생 지고 살았어야 할 죄인걸.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을 만큼 느끼는 고통 속에서 체념하며 눈을 감았다.

”...부탁이...있어.“

무슨 부탁?“

내 영혼도 먹어줘. 토도마츠의 흉내를 내는 너에게 해 봤자인 말들이야. 토도마츠에게 제대로 전하고, 용서를 빌겠어. 감정에 대한 답도 하겠어. 그러니까.“

바케타누키의 힘이 풀리고 나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후회해도, 소용없어. 너희는 이제 나의 일부분이 되어버릴 뿐이거든.“

상관없어.“

난감하네. 저승 길동무 역할. 영혼을 2개나 먹어버려선 한동안은 눈치 좀 보고 살아야겠군. 지상에서 주탄동자에게 술이나 받도록 할까. 그래, 그렇게 해서 전할 수 있다면야, 마음대로 하셔.“

바케타누키는 나를 집어올려 삼켰다. 그 안에는 토도마츠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다 끌어안았다.

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