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 23:49

#카라마츠사변5주년 #사변카라5주년

3기 시작 후 벌써 4화 방영(일본 기준)을 앞둔 시점, 카라마츠 사변과 나름대로 1,2기와 극장판을 지나온 여섯쌍둥이에 대한 생각을 녹여봤습니다. 

 

 

이맘때의 바닷물은 차디 차다. 해가 중천을 지나고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따뜻하다못해 뜨거운 햇볕이건만, 살짝 발을 담그면 여름은 이미 끝난 지 오래됐다는 듯 차갑다못해 저려오기까지 한다.

“추워 죽겠는데 뭐하는 거야. 너도 참 제멋대로라니까. 자꾸 이렇게 하나둘 딴짓하다보면 늦어져서 저녁 먹을 시간을 못 맞춘다고.”

“아…알았다, 쵸로마츠. 마미의 밥을 놓친다는 건 투 배드하…”

“꼭 그렇게 쓸데없이 한 마디씩 더 넣는다니까. 이래서야 원,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모르겠네.”

“쵸로마츠 형도 말이지. 평소에는 우리보다 조금은 더 어른인 척 굴지만 현실은 휴지마츠잖아?”

“휴지마츠 소리 하지마! 휴지휴지 트라우마라고 정말…”

트라우마인가. 그야 트라우마일지도 모르지만. 한 번 놀림감이 제대로 찍혀서는 쵸로마츠는 절찬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늘리고 있는 터였다.

“아아, 그러세요? 한번 육둥이에서 강판되신 막내 토도마츠 씨?”

“육둥이 강판이 뭔데? 정말 어이없어. 갑자기 외국인 데려오거나 한다고? 미친 거 아냐? 그리고 우리 얼마 전에 단체로 육둥이 강판됐었거든? 나만 그런 거 아니니까!”

토도마츠도 저때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톳티는 두 번째 강판이잖아. 우리랑은 좀 다르지.”

“꼭 그렇게 후벼파야 속이 시원해? 어두운 양 코스프레하는 노멀 사남 주제에. 그런 캐릭터 잡으면서 실은 나보다 더 주변에 어리광부리고 있는 거 아냐? 학생 시절까지는 잘 해왔으면서 말이지. 어두운 척 떡밥 뿌리기 같은 거, 완전 깨거든?”

“학생시절 운운하지 말라고! 여전히 그때 내 모습 생각하면 지옥같거든… 죽고 싶을 정도로.”

이치마츠는 자주 죽고싶다는 말을 하고는 하지. 죽인다는 말도 세트로 하지만은..

“아하하! 무슨 폭로전인 거야? 야구? 야구하는 거?”

“폭로전인 걸 인식한 상황에서 야구를 끼워넣는 거냐고, 쥬시마츠… 너도 말이야 이래저래 컨셉인 거 아냐?”

“보웨에-!”

그냥 종종 우리가 일란성 쌍둥이가 맞는지 의심되는 쥬시마츠. 애초에 일란성이고 쌍둥이고 뭐고 인간인지도 의심이 가서 여전히 무서울 때가 있다.

“어이! 동정들! 자기들끼리만 재밌게 노는 거야? 형아도 끼워줘~!”

“닥쳐, 망할 장남.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말 몰라? 최고봉 구정물 주제에.”

“이 형아는 구정물이든 쓰레기든 다 괜찮거든~ 어차피 너희들도 다 똑같으니까. 6쌍둥이인걸.”

이렇게 말하는 오소마츠도 사실은 혼자 남겨지면 외로움으로 힘들어한다는 걸 토토코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뭐, 형아의 마음씨처럼 넓은 바다에서 솔직하게 뭐든 부딪혀보라고. 우리들 개그만화 등장인물이니까 몇 번 죽고 심한 꼴 당하고 서로서로 죽이고 해도 멀쩡하게 부활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인간관계도 멀쩡히 돌아오잖아? 거기서 웃길 것 같은 부분만 건져올려져 꾸준히 쓰이는 새로운 설정이 돼버리는 거지. 휴지마츠처럼.”

“하? 또 예시가 그거야? 진지한 척 또 놀리려고…”

“지금까지 이어져서야, 쵸로마츠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지. 헤헤헤…”

“아, 형이 간만에 멋진 소리 좀 하려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여기서 서운한 거 다 떨치고 들어가게. 모처럼 경마에서 따서 당일치기지만 기차여행에 점심까지 제대로 쐈으니까 말야.”

“왜 하필 오늘이고 왜 하필 바다인지 이해가 안 가는데. 그냥 방에서 모여서 얘기해도 되는 거 아냐? 나는 그다지 서운한 것도 내게 서운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드라이해… 드라이하다고, 톳티.”

“어제 봤어! 오소마츠 형아가 새벽에 혼자 보던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왔거든.”

“에에… 몰래 보고 있었는데 들킨 거?.”

“그런 걸 왜 새벽에 혼자 봐?”

“간만에 혼자 감동적인 것 보려 그랬다, 왜.”

“누가 DVD 내용물을 바꿔놓은 걸 빌렸나 보지. 오소마츠 형이 그런 걸 빌렸을 리가.”

“들켰나~ 뭐, 재밌게 봤으니까 아무래도 좋아.”

오소마츠의 눈길이 카라마츠를 향한다. 

“카라마츠는 뭐 얘기 할 거 없어?”

“훗, 나는 브라더들을 모두 사랑하고 있으니까. 서운한 건 낫띵, 제로다.”

“아, 아파아파아파. 또 갈비뼈 부러질 뻔했다.”

“하여간, 시간이 지나도 카라마츠 형은 안쓰러운 발언을 하네. 이제는 다들 익숙해져버린 것 같아.”

“개똥마츠니까 말이지. 그렇게 쉽게 변할 리가 없잖아. 모두들 그렇긴 하지만.”

“그러니까 줄곧 백수 하고 있는 것 아니겠어. 동정도 못 떼고.”

“쵸로마츠 형아도 포기했나봐. 아하하.”

“아니거든. 멋대로 포기시키지 말아줄래. 언젠가는 탈출할 거니까.”

“그럼 이제 집으로 돌아갈까! 오늘 저녁밥은 뭘까~”

힘들었던 것, 괴로웠던 것은 모두 이 바다에 흘려보내고 다시 시작해 보는거야!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장식하듯 서로를 끌어안으며 감동의 라스트 신. 우리네 인생은 개그만화일지언정 드라마틱하지는 않기에, 그저 줌 아웃으로 우리의 모습이 바다의 풍경에 지워져갔다.

 

백수들의 기지, 마츠노 가의 평범한 저녁시간, 조금 특별한 식사. 소고기를 구워먹으며 모두들 투닥거리는 듯 보였지만 카라마츠가 있는 쪽에는 은근슬쩍 고기가 밀려들어왔다. 카라마츠는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고기를 먹으며 행복해하고 있다.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 절로 배어나오는 육즙의 농후함, 고소함과 감칠맛, 풍부함이 뒤섞인듯 질서정연하게 카라마츠의 혀에 닿아 미각을 깨우고는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짧은 순간이 가져다주는 행복. 이런 작은 행복이 줄곧 변화라고는 없는 인생에 스며들어 삶을 이어주는 것이 아닐까. 복잡한 생각은 잠시나마 맛있게 익어가는 소고기의 향에 묻힌다. 후식으로는 달콤하고 맛있는 배. 쥬시마츠가 배 꼬치를 만들어 카라마츠에게 건네주면, 카라마츠는 기쁘게 받아들며 맨 위에 꽂힌 배를 와앙하고 물어서 쏙 뺴낸다. 살짝 끈적하면서도 과즙을 머금은 배가 아삭, 아삭하며 잘게 잘게 부서져가면 달콤함은 사라지고 작은 구슬이 뭉친 듯한 조직감이 머물다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아삭거리는 소리의 합주는 점차 줄어들어 어느새 하나만이 남게 되었지만, 그 독주는 제법 오래 이어졌다.그날도 언제나와 다르지 않은 날이었지. 우리가 변화하는 걸, 성장하는 걸 버리고 미루며 정체된 지 수 년이 지난 그 날. 어릴 적부터 제법 험한 꼴을 당하기로는 상위권이었던 카라마츠는 그를 그나마 만만하게 본 치비타에게 찍혀 외상대금에 대한 인질로 잡혀버렸다. 발끝을 에는 바다의 감촉, 얇은 파자마 사이사이를 거센 바닷바람이 스치고, 영문도 모른 채 밧줄에 꽁꽁 묶여 뜨거운 어묵에 가볍게 화상을 입는 일 같은 건 카라마츠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무서웠지만 개그 만화의 흐름상 종종 있는 일이기도 했다. 거기에 익숙해져있냐는 다른 문제이지만, 그나마 납치범이 소꿉친구인 치비타니까 살짝 방심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유괴사건보다는, 유괴사건에 대한 형제들의 냉대가 더 힘들었지. 한밤중에 온갖 집기에 맞아서 죽어버렸으니까. 아삭, 아삭, 쩝, 쩝. 배가 입속에서 잘게 부서진다. 단맛이라곤 사라져버린 배를 카라마츠는 되새김질하며 오래도록 먹고 있었다. 밤이 되면 오늘도 여전히 커다란 이불을 펴서 여섯이 누울 자리를 마련한다. 베개싸움이나 레슬링이 갑자기 시작되거나, 눕자마자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면서 껄껄 웃고 있거나 하는 왁자지껄한 언제나의 밤이다. 조금 피곤하군, 하고 카라마츠는 먼저 드러누워 잠들 준비를 한다.  평소에는 신경쓰이지 않던 주변의 소리들이 잠을 방해해오지만, 눈을 다시 뜰 생각은 없었다. 카라마츠는 잠드는 대신 그날의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5년이면 아주 길지는 않은 시간이다. 그렇다고 짧은 시간도 아니지만. 그러고보면 우린, 아니 난 많은 일들을 겪어왔지만 그다지 변한 게 없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변한다는 것은 아픔을 동반하는 일이니까. 자신을 바꾸려다 새긴 상처의 아픔을 우리는 알고 있잖아. 그래서 줄곧 뒤로 미루고 안으로 구겨넣으며 변하지 않으려는 거야. 그렇게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나이만 어른이 돼버린지도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상처를 극복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폼을 잡고 허세를 부리며, 눈을 가리고선 피해버리며, 도망치고 도망친 끝에 지금에 이르렀다. 형제들에게 외면당해 깊이 패인 상처조차 천 한 장 덧대고 대충 메우고선 다 나은 척 햐면서 변하지 않은 자신을 연기한다. 흉이 지다못해 썩어버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없는 흔적을 없는 셈 치며 살아가다가도 이렇게 문득 끄집어내면 괴로워하는 것조차 아무렇지 않은 척 가릴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생각하고 있다. 떠들썩한 일상 속에서 잊어버릴 수 있다는 건 좋은 것이다. 변하지 않는 우리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변화무쌍한 매일매일을 맞이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오늘 밤만은 슬퍼해도 될까. 오늘 밤만은 괴로워해도 될까. 이제 그만, 그때의 나와 제대로 마주해도 될까. 용서해도 좋으니까. 원망해도 좋으니까. 솔직해질 수 있게 해줘. 변해도 괜찮으니까. 변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성장통은 달게 받을 테니까. 그러나 마음을 아무리 꺼내봐도 더 깊은 곳으로 끌려들어만 가고 있었다.

“카라마츠.”

눈을 뜬 카라마츠의 주위를 형제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수건을 든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의 얼굴이나 목덜미에 흘러내린 식은땀을 닦고, 이치마츠가 찬물이 든 바가지에 수건을 적시고 짜고 있었다. 쥬시마츠는 부채질을, 토도마츠는 미니 선풍기를 들고 카라마츠의 열을 식힌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머리 위쪽에 앉아 카라마츠를 응시한다. 

“감기라도 걸린 거? 차가운 바닷바람 좀 맞았다고 그런 건가? 오늘은 좀 무리었나~”

“날도 춥기야 했지만, 카라마츠 자기 맨발을 바다에 담그더라니까. 자업자득이야. 이 날씨에 뭐한 거냐고.”
“됐어... 그 녀석 바보니까.”

“그럼 부채랑 선풍기는 치울까? 그런데 땀이 이렇게 나는데?”

“열도 좀 있으니까, 대신 이마 쪽에만 틀어줘. 쥬시마츠 형, 형이 선풍기 들어. 따뜻한 차 좀 가지고 올게.”

“미안해.”

카라마츠가 입을 열었다.

“뭐가. 감기 걸린 게 네 탓은 아니잖아.”

“그렇지. 갑자기 바다 가자고 졸라댄 오소마츠 형 탓이지.”

“에, 아까는 카라마츠보고 자업자득이라더니.”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나쁜 거거든?”

“아하하하! 내가 낫게 해줄게!”

“쥬시마츠...네가 하면 일이 더 복잡해지니까 관둬…”

“알겠슴다!”
“카라마츠 형도 바보네.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오늘은 특별 서비스긴 하지만~ 얼마나 형제들끼리 서로를 끔찍이 챙기거나 하겠어. 다들 섬세함이라곤 없는 멍청이들 뿐인데.”

“은근슬쩍 형들을 디스하지 말아줄래? 그냥 뒀다 옮으면 좀 그러니까 그래. 내일은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또 그 레이카인가 하는 아이돌 일이겠지.”

“냐쨩이거든. 그만 좀 외워라.”

“뭐, 이런게 우리들 아니겠어.”

“하아?”

“서로 상처주고 짖궂게 지내고. 그러다가도 같이 웃으며 즐겁고. 모두들 우리를 똑같다고는 하지만 그렇지만도 않아. 결국은 서로를 하나부터 여섯까지 다 아는 건 아니고, 20년 넘게 살면서 우리들 마음속은 똑같은 부분보다는 다른 부분이 더 많아졌지. 그러니까 혼자 끌어안지 말아줘, 카라마츠. 미안하다고 하기엔 너무 늦어버렸고,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돌아가며 심한 꼴 당하고 장난치고 그래왔잖아. 저마다 거기에 대한 반응은 다 다른 거야. 그러니까 네가 느낀 마음을 이야기해주면 좋겠어. 우린 서로를 너무나도 모르니까.”

오소마츠의 말과 함께 방 안의 시간은 멈췄다. 카라마츠만이 그렇게 느꼈는 지도 모른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표정을 지었을 때, 오늘 하루가 잔상처럼 눈앞을 스쳤다. 

“편해지자고, 카라마츠. 뭣하면 나부터 얘기할까. 맞다, 그때 말이야. 쵸로마츠 취직 사건.”

“남의 그나마 좋았던 일을 사건 취급하지 말아줄래? 나도!  휴지마츠라든가 갈색머리라든가 사과해줬음 좋겠거든?”

아까의 토도마츠 말이 떠올랐다. 굳이 바다 같은 데가 아니라도, 방에서 이렇게 털어놓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다만, 마음이 좀 열린 것 같은 건 방금 전에야 깨달았던 오늘의 형제들의 마음 씀씀이가 아닐까. 카라마츠의 열로부터 시작된 진심 털어놓기 이야기는, 서로가 피곤함을 느끼면서도 새벽 늦게까지 이어졌다. 피곤함에 휘둘리면서도 어렵게 꺼낸 그날의 감정은 제대로 전달된 건진 의문으로 남지만, 조금은 수면으로 건져올려진 느낌이 들었다. 

 

그 날 새벽 나는 꿈을 꾸었다. 유괴소동과 형제들이 집어던진 집기에 얻어맞은 탓에 생긴 상처가 욱신욱신거렸다. 붕대에 머리와 팔과 다리가 감싸진 채, 내가 없이 다섯 형제가 행복한 표정으로 걷는 모습을 보며 절규하는 내가 있다. 그 장면은 이윽고 넓게 펼쳐진 수많은 에피소드들 속에서 점이 되어 잘 보이지 않게 됐다. 그럼에도 아픔은 가시질 않았다. 그렇게 쪼그라든 점을 누군가가 내 가슴에 갖다 대었다. 내가 줄곧 가라앉던 바다는 나의 눈물로 만들어진 듯, 내가 흘린 눈물이 바닥을 적셔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다만 이제는 지면에 제대로 몸을 붙이고 있다. 따뜻하지만은 않지만 누군가가 내민 손을 잡고서 일어서면 감겨 있던 붕대와 함께 환상통은 사라져갔다. 마음이 여전히 쿡쿡 쑤시지만, 이제는 어설프게 메우느라 곪아버린 상처의 고름을 짜낸 채 패인 상처에 새살이 돋고 있다. 그래. 이걸 아픔이라고 하는거야.   

 

 

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