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24. 23:46
생일이라고 즐거운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야. 사람은 꼬여서 축하가 아니라 무슨 잔뜩 암울한 글을 씁니다. 정작 이야기가 길어지면 거기서 못 헤어나와서 못 쓰는 게 함정이지만.

극장판이 한국에서도 개봉해서 기쁩니다. 보러 가야지...그러면서 스포가 섞인 소설을 씁니다. 뭐가 스포인지는 영화를 봐야 알 수 있을지도... 그러니까 신경쓰이시면 이 거지같은 소설 나부랭이도 읽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오롯이, 스포를 안 읽고 안 봐야 더 재밌으니까요.




*영화의 오소마츠상(극장판 오소마츠 6쌍둥이) 스포
*맘대로 각색하고 내용 넣어서 뭐가 스포인지는 모르겠지만...















생일날 아침이지만, 거실은 적막했다. 엄마와 아빠가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을 해도 짧게 답할 뿐.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고3의 어느 날일 뿐이었다. 오늘로, 18살이 되었다. 카라마츠는 늘 그렇듯 밥을 느릿느릿 씹어 삼켰다. 그 사이에 다른 형제들은 밥을 다 먹고 나가버렸다. 말없이 불쾌한 기분으로 일어나는 오소마츠, 그 불쾌함에 어두워진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돌리는 이치마츠, 억지로 인상을 쓰는 쥬시마츠, 하이톤으로 밝게 답하며 도수 없는 안경을 고쳐쓰지만 다른 형제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쵸로마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얘기하다 쵸로마츠를 쫓아가는 토도마츠. 카라마츠는 식탁에서의 짧은 순간들을 다시금 떠올렸다. 마츠노 형제들이 이렇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고3이 되고 미묘한 기류들이 부딪혀 그들 사이를 갈라놓았다.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서로 말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모여 식사하는 시간조차 긴장과 불안이 가득했다. 카라마츠는 소화가 잘 되지 않았지만 꾸역꾸역 밥을 밀어넣었다. 그도 짧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선 학교로 향했다.

"잇치! 오늘 생일이라며? 축하해."
쉬는 시간, 이치마츠에게 친하게 구는 류타가 이치마츠를 보자 인사를 건넨다. 멋쩍은 웃음으로 이치마츠가 고개를 끄덕이자, 류타는 손바닥을 내밀고 눈을 찡긋거렸다. 이치마츠는 최대한 입꼬리를 올리며 그 손에 자기 손을 갖다댔다. 웨이~
"학교 끝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따로 약속 있어?"
생일날은 항상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했었다. 엄마가 평소보다 힘을 준 요리를 먹기도 하고,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같은 분위기라면, 오늘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작은 기뢰들이 그들 사이를 떠다니고 있다. 잘못 건들면 폭발할 지 모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6쌍둥이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댔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발버둥을 붙잡지 못한채 손을 뻗으려 움찔거릴 뿐이다.
"응! 좋아."
이치마츠는 애써 밝게 웃었다.
쯧, 혀를 차며 오소마츠는 교실을 나섰다. 억지로 웃는 이치마츠가 꼴보기 싫어서인지, 생일날조차 잔뜩 뭉쳐진 짜증을 걷어낼 수 없어서인지. 계단을 오르고 오르면 옥상에 다다른다. 고3이 되고 나선 옥상 입구로 들어가는 계단에 카라마츠가 혼자 앉아있을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못본 척하고 지나쳤다. 오늘은...있다면 말이라도 걸어볼까. 일단 나 장남인걸, 하고 마음먹으면 이런 날엔 꼭 없는 법이다. 그것마저 짜증이 나 오소마츠는 옥상에 들어가 벌렁 누웠다. 햇살이 따갑다.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딩-동-댕-동- 작년 점심때는, 마츠요 특제 도시락을 다같이 먹었다. 성장기 소년들에게 필요한 고기, 고기, 고기. 서로 하나 더 먹겠다며 싸워댔지만 그것만으로 즐거웠던 시절. 그런 시절에 태클을 걸어온 것은 그래도 장남이니 네가 잘해야 한다며 생애 처음으로 짐을 지우는 교사들과, 여섯이 같이 있으면 뒤에서 낄낄대는 무리들과, 점차 장난에 어울려주지 않는 형제들. 불쾌한 기분에 사로잡혔다가도 한숨을 쉰다. 이대로, 이런 게 익숙해지려나.

"기다려, 쵸로마츠 형아~"
화장실에 가는 쵸로마츠를 토도마츠가 바짝 쫓았다. 매번 그렇지만, 18살이 돼서도 혼자서 화장실을 못 간다니 말이 돼?쵸로마츠의 마음 속에선 이런 말들이 요동쳤지만, 성실한 학생은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겠지. 그는 내색하지 않고 뻣뻣하게 걸었다. 오늘이 생일이라도 그다지 다를 일 없는 날. 모두가 사이가 좋지 않든 그렇지 않든 18살이 된 것엔 변함이 없다. 오늘은 그냥 그런 것으로 두자고 생각했다. 오소마츠가 저래선, 그 누구도 화해의 손길을 내밀 거 같지 않으니까. 이렇게 줄곧 똑같기만 했던 6쌍둥이는 달라질 수 있겠지, 하고 긍정적으로 보기로 한다. 거기에 약간의 체념이 섞여있다는 걸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채.
토도마츠는 쵸로마츠를 쫓아 화장실로, 복도로, 운동장으로, 그리고 다시 교실로 왔다. 생일날조차 형제끼리 한 마디 섞지 않는다니, 이상하잖아. 하지만 그 말을 쵸로마츠에게 할 용기가, 다른 형제에게 할 용기가, 토도마츠에게는 없었다. 그나마 쵸로마츠는 토도마츠를 쫓아내거나 날카로운 말을 던지지 않고 어리광을 받아주니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니까. 그나마 안심이 된다. 따로 떨어져 점심을 먹고, 다른 친구들에게 붙잡혀 생일 축하를 받아도, 토도마츠의 마음 한 구석엔 쓸쓸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교할 때가 되자, 살짝 풀어져있던 쥬시마츠의 얼굴이 구겨졌다. 누가 봐도 일부러 하는 거지만,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는 있었기에 주변 사람들은 쥬시마츠를 피했다. 앙? 뭘봐? 양아치같은 말을 내뱉으며 칠렐레팔렐레한 복장에 엉덩이 골이 보이는지는 모르는지 쥬시마츠는 길을 나섰다. 6쌍둥이인게, 모두 똑같아서 누가 누군지 알아봐주지 못하는 게 싫었을 뿐인데. 정작 달라지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집에는 돌아가기 싫고,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로 거리를 걸었다. 강둑에 다다랐을때야 그는 얼굴을 푼 채 잔잔한 봄날의 강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아, 차라리 제대로 마음을 부딪힌다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터놓고 얘기할 수 있었다면. 그러나 쥬시마츠도 용기를 내지 못한다. 마음은 반대로 뒤집혀 자신도 남들도 서로 피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쥬시마츠를 눈으로 쫓던 카라마츠도 자리에서 일어나 학교를 나왔다. 스쳐지나간 형제들은 눈길을 마주쳐주질 않았다. 하교길, 상점가에 들러 과자 봉지를 몇 개 집었다. 사실 일란성의 6쌍둥이라 해도 조금씩 다른 것이다. 좋아하는 과자부터 좋아하는 것들, 성격, 관심있는 것, 옷을 입는 스타일, 그런 하나하나가. 그럼에도 6쌍둥이니까. 이대로 서로를 남처럼 대하는 나날들이 될까 두려웠다. 이건 토도마츠가 좋아했었지. 아, 이건 이치마츠가. 쥬시마츠는 이걸 잘 먹어. 오소마츠는 이거. 쵸로마츠는 특히 이걸 좋아하고. 이건 내가... 좋아하는 과자도 다같이 나눠먹던, 그러다 곧잘 싸움을 하며 왁자지껄했던 시간이 너무 멀리 느껴졌다. 직접 건네줄 수 있을까. 다른 곳을 들러 집에 와도 오늘도 누가 먼저 와있질 않았다. 과자들을 가지고 거실로 들어서니 여섯 색의 파카를 늘어놓고 고민하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이건?"
"왔구나, 카라마츠. 올해 선물할까 하고 사둔 파카란다. 다스로 사긴 했지만, 색이 다르니까 늘 똑같은 옷이라 불평하던 것도 없으려나 했지. 그런데 얼마 전부터 다들 사이가 안 좋으니, 이런 걸 건넸다 싫어할까봐. 결국 너희들이 그다지 공부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필기구를 다시 사왔단다."
빨강. 파랑. 초록. 보라. 노랑. 분홍. 색색의 파카를 보고 다정하게 웃는 6쌍둥이의 모습이 두 사람의 눈앞에서 아른거리다 사라졌다. 아마도, 오늘은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카라마츠는 과자를 건네며 엄마에게 부탁하고 말았다.

그날 저녁밥은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 음식을 먹는 표정들은 마치 맛없는 음식을 먹는듯 했다. 엄마는 한 명씩 불러 선물과 카라마츠가 사온 과자를 같이 주며 다시 축하해주었다. 작게 고맙다며 하는 아들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가, 그래도 기다려보기로 마음먹는다. 모두 제각각 흩어져버린 형제들을 보고 토도마츠가 울먹이자 카라마츠가 옆에 다가와 아까 보았던 6색의 파카 이야기를 했다. 같이 입었으면 좋겠네, 하고 카라마츠가 얘기하자 토도마츠는 분명 서로 입고 싶은 색으로 싸우겠지? 하고 답한다. 그날이 올 지는 그들은 알 수 없었지만. 18세가 된 첫 날이, 암울하게 막을 내렸다.

다음날, 어제와 다를 바 없이 따로따로 밥을 먹고 따로따로 등교 준비를 하던 중 토도마츠가 카라마츠의 어깨를 두드렸다. 귓속말로, 어제 말한 파카를 다같이 입는 꿈을 꾸었다면서 순진하게 웃어보였다. 카라마츠는 그저 머리를 쓰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토도마츠는 다시 카라마츠의 귀에 속삭였다. 그 꿈을 꾸고 일어났더니 토도마츠의 손을 쵸로마츠와 오소마츠가 잡아주고 있었다고. 모두가 서로 손을 잡은 채 잠을 자고 있었다고. 눈시울이 불거진 채, 카라마츠는 간만에 미소를 지었다.
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