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9. 02:11
https://heartrainon.tistory.com/m/185
여기서 이어지는(?) 정확히는 이전의 이야기+ a
전에 연결해둔 타래를 발견한 김에 업로드
이어나갈 힘이 있다면 이것도 장편으로 이어나가고 싶...음...

일단 세계관도 정리해보고 모아놓은 타래라도 같이 달아드리겠습니다.
https://twitter.com/heartrain_on/status/1170665372229324801?s=19

*
(오소마츠)
기억하는 것 몇 가지. 첫 번째는 태어났을 때의 기억. 7개의 두근거림이 하나로 줄어드는 그 때의 불안감. 나의 가족이 엄마, 아빠, 나 그리고 5명의 쌍둥이 동생이라는 걸 인식한 건 조금 지나고 나서였다. 두 번째는 가족을 잃어버리던 때. 선명한 총성이 두 번 울리고 싸늘하게 식은 부모의 몸. 세 번째. 우릴 맡아준 보육원이 망하고, 여섯 형제가 뿔뿔이 흩어지던 때. 그 세 가지는 모두 내가, 우리가 태어나고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나는 다른 보육원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버려지고, 카라마츠 신부를 만나게 되었다. 그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미소지었다. 가족을 모두 잃은 내게 지은 그 미소가, 아마도 날 처음 구원해 준 것이리라.
신부가 나를 데리고 간 교회는 보육원과 다를 바 없었다. 같은 보육원에 있던 아이들도 몇 있었고, 신부를 제외하면 아이들로 가득했기 때문일까. 신부는 글자나 산수같은 걸 알려주고, 신에 대한 이야기나 동화나 전설을 들려주기도 했다. 말썽쟁이들에게 시달리는 와중에도 그는 미소를 잊지 않았다. 그 미소가 좋아서일까, 안 좋은 기억에서 구원해준 사람이어서일까 나는 그를 잘 따랐다. 이름 없는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 떼를 써가며 그와 비슷한 이름을 만들어달라고 했을 정도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소마츠는 어때, 라고 말했을 때는 벅차오르는 기쁨을 느꼈다. 공부하는 건 따분했지만 신부가 웃어주니까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보육원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냈는데도 그저 살아있을 뿐이던 존재는 이제야 오소마츠라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교회에서도 몇 년을 지내며 신부의 일을 돕거나 마을에 일하러 가는 등 자신의 가치가 느껴지는 나날을 보냈다. 그런 날이 계속되기를 바랐다. 많은 걸 원해서는 안되는데, 신께 간만에 진심으로 기도한 탓이었나. 어느날 일상은 깨어졌다.
마을에 연방군이 반란분자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과도한 세금을 요구하거나 민간인을 죄를 씌워 죽인다는 등의 소문이 나돌았다. 교회에 맡겨진 나는 상관없는 일이려나, 하고 무시했지만.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소문은 사실이었는지 마을에 연방군이 나타났다. 탐문을 하며 돌아다니는 군인 무리를 일하는 중에 마주했다. 싸늘한 눈길. 더러운 것을 보는 듯한 그 눈길이 싫어서 재빨리 교회로 돌아와 마을 얘기를 모두에게 전하던 참이었다. 아까 마주친 군인 무리가 교회에 들이닥쳤다. 카라마츠 신부가 막아서서 아이들을 보호하자, 한 군인이 신부의 멱살을 잡으며 반란을 꾸미려 아이들을 모아온 건지 추궁했다. 곧바로 내가 달려들었지만 녀석의 발길질에 나가떨어졌다. 다시 달려들려 하자 이번엔 신부가 그만하라고 말했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렴. 신께서 보고 있으시니 어떤 사람이든 용서해야 해. 이런 말을 하면서. 군인의 발길질은 신부를 향했고 그는 바닥에 내팽겨진채 군화 짓밟혔다. 이 때도 신부는 표정을 일그러뜨리지 않은 채였지만 눈만큼은 무언가 굳은 의지가 보였던 것 같다. 밤이 되고, 그런 사건이 있었던 뒤에도 교회에선 평소와 다름없는 일과를 보냈다. 아이들은 신께 아까의 나쁜 군인들을 혼내달라고 빌었지만 신부는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며 기도를 이어나갔다. 취침 시간이 지나 다들 잠든 걸 확인하고 나는 신부의 처소에 들어가 따졌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용서하고 화를 내지 않는 거냐고. 그의 답은 한결같았다. 한참을 혼자서 분통을 터뜨렸을까. 바깥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신부는 나보고 기다리라며 먼저 나가보려 했고 나는 그 말을 듣지 않고 함께 밖으로 향했다. 신부의 처소는 교회 안에 위치해 있었다. 아이들은 교회 바깥에 허름하지만 넓은 건물에서 잠을 자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신부의 방에 난 창문은 아이들의 숙소가 아니라 산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상황을 판단하는 게 늦고 말았다. 아이들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커지자 교회를 빠져나온 두 사람은 곧 화염에 싸인 건물과 그 곳을 빙 둘러싼 군인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신부는 내 어깨를 툭 치더니 산 쪽으로 가라고 했다. 나를 바라보는 눈은 아까 봤던 무언가 결심한 눈이었다.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는 그런 눈. 교회를 빙 돌아 산쪽으로 달리는 동안 신부는 군인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총성이 울렸다. 총성이 무서워서, 나는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총성은 부모님을 앗아갔다. 그리고 그 총성은 계속 울렸다. 진짜 소리인지 환청인지 알 길은 없었다. 산으로, 산으로, 산으로... 총성이 멈추자 뒤돌아 볼 용기가 생겼다. 아니, 그건 용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숙소도, 교회도,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마을도 불타고 있었다. 태양이 땅에서 솟은 듯 불길은 어둠을 가르고 일대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맥이 풀려 주저앉았다. 어째서. 어째서야. 불행인지 다행인지 군인들은 날 뒤쫓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도망친 것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리라. 그리고 내가 눈에 띄지 않은 건, 카라마츠 신부가 나섰기 때문일 거다. 내 귀에 울린 총성 중 몇 번째가 신부의 목숨을 앗아간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몇 시간을 주저앉아 있었을까.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다. 기세좋게 내린 비는 하마터면 산불로 번질뻔한 불길을 금세 잠재웠다. 이것이 신의 조화일까. 그렇다면, 신은 왜 신부를 구해주지 않은 것인가. 신의 뜻에 따라 무엇이든 용서할 줄 알았던 그를. 왜. 그제서야 내 감정은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물을, 절규를 토해낸 들 이젠 돌아올 수 없는 것들 앞에서. 잿더미 앞에서. 신을 원망했다. 상황을 보자마자 날 살리려 한 신부를 원망했다. 신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군인을 원망했다. 총성을 원망했다. 부모도, 형제도 잃은 내겐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원망은 분노로 바뀌어갔다. 군인이 하고 간 말 중 반란이 떠올랐다. 이딴 세상이다. 연방의 횡포는 분명 다른 곳에도 뻗쳐 있을 터다. 어디엔가는 연방군에 맞서는 데가 있겠지. 그 생각이 미치자 나는 일어섰다. 여기서 다른 마을로 가려면 산을 넘어야 하니까. 그렇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딘가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 곳을 찾아서.

*
(카라마츠)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길바닥에서 살았다. 그 어렸을 때가 언제인진 모른다. 첫 기억이 길바닥이니까. 나보다 큰 형이나 누나가 있어 그들이 구걸해서 얻은 걸 같이 버려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나날이었다. 그런 나날도 어느새 끝나버렸지만.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그들은 우릴 떠나버렸다. 하필, 그들이 떠나고 나선 내가 연장자 취급을 받았다. 내가 구걸하고 대여섯 명이 나눠먹는 삶. 얍삽이라고 불리는 나와 닮았고 아마도 나와 나이가 비슷할 아이가 있었지만 그도 내게 의존했다. 모두가 가난한 곳에서 구걸은 점점 어려워졌고, 어떻게든 품을 팔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라면 나는 힘이 센 편이었다. 힘쓰는 일을 어른만큼은 못하지만, 어떻게든 일할만한 것을 찾아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 축복이었다. 그렇게 함께 있는 아이들을 먹여살렸다. 내게 모지리라며 바보취급을 하다가도 품삯을 받아오거나 먹을걸 가져오면 녀석들은 기뻐했다. 다른 녀석들도 구걸이나 일거리 찾기를 전혀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걔 중에 꾸준히 생을 이어갈 만큼을 벌어오는 게 나뿐이었던 것이다. 적당한 잠자리를 찾아서 옮겨다니거나 장작 모아오기 같은 다른 잡일은 다른 아이들이 나눠서 했으니까. 이렇게 살다보면 절로 남의 것에 손대게 될법한데, 들키면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걸 아는 우리 무리는 도둑질은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럼에도 한 번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산속 동네 유지의 창고를 턴 적이 있는데 창고지기에게 들켜서 죽을만큼 두들겨맞았다. 그러고보니 그때 얍삽이는 이미 도망갔던가. 나를 개패듯 팬 창고지기는 이 일을 남에게 알리지 않고, 오히려 일자리를 하나 알선해주었다. 부자들의 유흥거리인 사냥에 함께 나서는 것이었다. 그때 라이플을 처음 들고 쏘는 방법이나 장전하는 법, 빠른 사냥감이나 멀리있는 사냥감을 저격하는 법을 배웠다. 어린 내가 라이플을 들고 끙끙대는 꼴이 유흥의 일부였는지 사냥에 나선 사람들은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의 사냥터에 나섰다. 비웃음을 견디며 돈을 벌었다. 걔중에는 나를 창고나 자기 방으로 부르는 사람도 생겼다. 날 깨끗이 씻기고 알몸으로 벗겨 찬찬히 감상하거나 더듬거나 했다. 수치스러움을 느낀 건 그런 일을 몇 번 겪은 뒤였다. 처음에는 그 의미를 잘 몰랐던 거였다. 반항하기 시작하자 얻어맞고는 했다. 벌어오는 돈은 많았지만 수치심을 느끼고 얼마 안 가 이 일을 관뒀다. 얼마 안 가라고 해도 모지리였던만큼 저 일을 당한 기간은 꽤 길었다. 그 이후 육체노동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안정적인 수입이 되니까. 모두를 먹여살리는 일에 불만없이 바보처럼 살았다만, 지나고 나면 조금 후회가 되기는 한다. 하여간, 길바닥 인생이어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굶어 죽는 아이들도 제법 되는 시대니까.
지나다니는 가게의 라디오에서 듣기로 부랑자들을 일거 소탕한다는 말이 있었다. 슬프게도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매일 듣는 말들만 알고 있으니까. 알아들었다면 조금 더 조심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거에 대비하기도 전에 살고 있던 동네의 부랑자 소탕 작전이 시작됐다. 우리도 당연히 그 표적이 되어 근처에서 구걸하던 다른 부랑자들과 같이 도망쳤다. 군인들은 인적이 드문 산으로 우리를 몰아갔다. 죽이려는 건지 도회지에서 쫓아내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총과 칼을 든 그들에게서 도망가는 것만이 살 길이었다. 다른 무리의 아이가 넘어지고 그 아이가 짓밟히는 꼴을 보고서 정신이 들었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살아온 나날들이다. 쫓겨온 부랑자들 중 어린 아이들은 얼마 안 가 붙잡혀 맞고 있었다. 그 중엔 함께 지내던 아이들이 섞여 있었다. 도망치던 와중에 그게 눈에 띄고 말았다. 그리고 근방에 내게 수치스러운 기억을 남긴 그 창고가 있었다. 창고지기의 알선 탓에 그 창고를 얼마나 드나들었던가. 한때 쓰던 라이플을 꺼내와 군인들의 머리에 쏘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살짝 미쳐있었던 걸까. 맨정신에는 맞지 않던 탄환이 이상하게도 그들의 두개골을 뚫고 붉은 분수를 뿜어내는 것이었다. 그 자리의 군인들을 다 쏘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앞에 펼쳐진 모습은 끔찍해서 그 자리에서 헛구역질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뒤로 하고 달아났다. 사람을 죽였다. 암만 거리에서 못 배운 채 살아온 사람이라도 알고 있다.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붉은 흔적은 잔상이 되어 눈앞을 흐리게 했다. 기묘한 의존에 의한 책임감같은 건 알 바가 아니었다. 순간에 저지른 죄는 그것을 넘어섰다. 다른 아이들을 구하려는 거였잖아라고 변명하지만 방아쇠를 당겨 표적을 맞췄을 때의 쾌감이 그걸 부정했다. 사냥에 따라다닐 때는 알지 못한 감정을 긴박한 그 순간 알아버린 것이다. 잠시 멈춰 토하고는 다시 내달렸다. 가련하게도, 난 그 죄를 더는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손이 더럽다고 느껴져서 눈앞에 보이는 물에 손을 박박 씻었다.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실감하면서. 제5지구에서 4지구로 넘어가는 셔틀을 탔다. 화물 속에 낑겨들어갔다. 4지구에 내리자 묘한 안심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안심한 자신을 책망했다. 그리고 이전처럼 일거리를 찾아다녔다. 잊어버리기 위해서. 하지만 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레지스탕스의 소문을 들었다. 이미 연방군을 죽인 전과가 있는 그였다. 차라리 대의 속에 숨기로 했다. 죄책감이 가시는 건 아니었지만 그의 생각 속의 선택지가 많은 것도 아니었으므로. 그는 혼자서도 멋대로 성장했다. 그날로 그는 합리화를 할 줄 아는 어른의 길로 들어섰다.

*
"헤에..."
제6지구, 고철 더미 옆에 임시로 건물을 세워 만든 어느 바. 간판은커녕 이름조차 없는 이런 곳에는 온갖 사람이 모인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연방정부에 찍힌 지명수배자,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신분세탁을 하며 사는 사람, 동네 불량배에서부터 정부를 쥐락펴락하는 어둠의 세력까지. 그렇기에 이곳에는 암묵의 룰이 존재한다. 이 바에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면 안된다는 것.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도 이름을 불러선 안되며 모른다고 물어봐서도 안된다는 것. 접선이 필요하다면 은밀한 암호를 통해서 해야만 한다. 그런 곳이다보니, 지명수배자 신세인 오소마츠도 이곳만큼은 편안히 드나든다. 뭐, 다른 곳도 변장을 하거나 하면서 잘도 드나들지만. 지명수배라고는 해도, 그는 평범하고 흔한 얼굴인 뿐더러 정부 측의 인물이 아니라면 그다지 탐나는 먹잇감이 아니었다. 수십명의 현상금 사냥꾼을 골탕먹이고 당한 것은 갚아준다는 주의 아래 괴멸시킨 뒷골목의 조직도 많고,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알려져있어 눈에 띄지 않는 지지자가 많고, 연방정부가 첩보를 받고 실행한 소통 작전마다 번번이 정부를 엿먹이고는 하는 사람이었다. 생명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가며 살아가는 그는 나름대로 삶의 목적이 있다고 했지만 종잡을 수 없는 자였다. 그의 목숨을 노리는 살기가 느껴지지 않아서일까. 이곳의 분위기도 제법 편안해졌군, 하고 오소마츠는 생각했다.
"위스키, 온 더 락으로."
커다란 얼음덩어리에 위스키가 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머리나 식혀볼까 생각하던 차였다.
"그 소문 들었어? 얼마 전에 울프가 또 한 건 했다는데."
"그 가면 쓰고 활동한다는 현상금 사냥꾼 말이지?"
"그러니까. 누가 움직이고 있는 녀석인지, 아니면 정말 혼자 내키는대로 활동하는지 감이 안 온단 말이지. 언제 누구의 등을 노릴지도 모르고, 얼굴을 까고 다니지 않는 게 영 맘에 안 들어."
"대비를 제대로 해두는 수밖에 없지 않겠어? 그 녀석만 위협인 건 아니니까. 세상 천지에 다 적이지."
울프라고 이름을 숨기고 얼굴을 가린 채 활동하는 현상금 사냥꾼이라. 만나면 한 번 놀아볼까? 오소마츠의 흥미가 동하던 때 새로운 인물이 바에 걸어들어왔다.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묘하게 여유가 넘치는 목소리. 바의 마스터는 살짝 한심한 듯 그 목소리의 주인을 보고는 주문대로 쉐이커에 보드카와 베르무트를 담아 흔든다. 오소마츠는 슬쩍 그 남자쪽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오소마츠가 앉은 방향쪽에 팔을 올려 턱을 괴고 얼굴을 묘하게 가렸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만. 목소리에 넘치는 여유와는 달리 그는 생각할 것이 많은 듯 오소마츠의 반대 방향, 그러니까 사람이 없는 쪽을 보면서 연신 한숨을 쉬었다. 지쳐 보였다. 마스터가 그 앞에 마티니를 내자 오소마츠는 그의 옆에 다가갔다.
"어이, 형씨. 심심하면 나랑 수다나 떨지 않을래? 한숨만 쉬지 말고."
그는 오소마츠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동시에, 두 사람은 소리를 지르려던 걸 입을 틀어막아 저지했다. 매우 닮은 얼굴의 두 사람. 그리고, 그 두 사람은 서로가 누구인지를 어렴풋이 눈치챘다. 그 남자가 먼저 마티니를 음미할 새도 없이 들이키자 오소마츠도 단숨에 위스키를 들이켰다. 남자는 오소마츠의 몫까지 빠르게 계산한다. 둘은 말 한 마디 섞지 않은 채 바를 나와 고철 더미 뒷편으로 갔다.
"너, 카라..."
"오랜만이다, 오소마츠. 잘 지냈어?"
잘 지냈냐고.
"네가 갑자기 사라져서, 그 뒤로 이런저런 일 있었지. 잘 지냈냐면, 그건 아닐걸?"
"그런가."
뭐야, 그 덤덤한 반응은.
"그 날, 왜 사라진 거야? 누가 끌고가기라도 한 거야?"
제발. 그렇다고 말해줘.
"아니. 내가 도망간거다. 너에게서 말이지."
"무슨 소리야. 나한테서 왜 도망치는데."
"너하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유약한 소년 둘이서 살아남을 순 없어. 사지를 거쳐왔다고 해도."
"혼자서도 살아남았잖아. 너도, 나도."
"그러니까."
"둘이면 서로 더 의지해서..."
"오소마츠,"
그가, 아니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부른다. 감정을 읽어낼 수 없는 무척이나 건조한 목소리. 어릴 때와는 달리 깊은 저음의 목소리로.
"각오해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카라마츠는 오소마츠 쪽으로 무언가를 던졌다. 오소마츠는 재빨리 몸을 틀었지만 그 무언가가 팔에 스치는 건 막지 못했다. 찢긴 옷 사이로 피가 배어나왔다.
"아파! 이게 뭐야, 나이프? 하? 뭐하는 짓..."
오소마츠가 팔에 난 상처에 정신이 팔린 동안 카라마츠는 빠르게 달려와서 명치 쪽에 주먹을 날렸다. 깊게 들어가진 않았지만 급소에 맞은 충격에 오소마츠는 기침을 해댔다. 다시 한 번 주먹이 날아오자 오소마츠는 일단 허리를 꺾어 피하고는 땅을 짚고 카라마츠를 힘껏 걷어찼다. 겨우 나이프에 스쳤을 팔이 아파온다. 카라마츠는 살짝 비틀거리며 섰다. 정강이에 제대로 직격했나.
"만나자마자 이렇게 과격하게 대화해야해?"
오소마츠는 다시금 카라마츠에게 말을 건다.
"내란죄 및 연방정부를 능욕한 혐의."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본다. 설마.
"지명수배범 오소마츠. 얌전히 잡혀주실까."
여전히 건조하기만 한 카라마츠의 목소리.
"너...정부의 개가 된 거야?"
오소마츠의 목소리엔 이제 분노가 묻어난다.
"잊어버린거야? 우리가 어떻게 살아난 건데! 목숨을 걸고 우릴 탈출시켜준 아저씨들을 잊어버렸어? 너도! 복수하고 싶다며! 약속했잖아! 미래를 같이 만들자고..."
격해지던 감정은 급격히 가라앉는다. 힘이 쭉 빠져나가더니 오소마츠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는다. 아, 나이프인가. 아까 명치 쪽에도. 뭔가 약이나 독을 쓴 건가. 어째서.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올려다보았다. 카라마츠는 어느새 가면을 썼다. 그의 눈동자, 는 나를 어떤 마음으로, 보는 거지? 몽롱해져가는 의식 속에서도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마음을 알고 싶어 손을 뻗었다.

*
삑삑삑삐익, 삑삑삑삐익.
기묘한 새 소리에 잠에서 깼다. 오소마츠는 팔을 쭉 펴 기지개를 켜고선 그의 주위를 둘러보았다. 작은 방에 달린 작은 창문으로 나무들이 보였다. 그러고보니 팔 다쳤었지, 하고 보면 깨끗하게 처치가 되어있다. 아프지도 않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 쪽으로 걸어가 밖을 바라보았다. 한 청년이 나뭇가지를 손질하고 있었다. 아, 카라마츠인가. 아까 본 카라마츠와는 달리 좀더 생기있는 표정이었다. 어릴 때의 그의 모습이 보이는 듯도 했다. 카라마츠와 눈이 마주쳤다. 카라마츠는 민망한 듯 멋쩍은 웃음을 짓더니 원예용 가위를 내려놓고 오소마츠 쪽으로 왔다. 오소마츠는 뒷걸음질을 쳤으나 도망가기 어려운 상황인 걸 깨닫고 주먹에 힘을 잔뜩 넣고 있었다.
"깼는가, 오소마츠."
깊고 낮은, 그러나 상냥한 목소리. 거기에 오소마츠는 주먹에 넣었던 힘을 풀고 말았다.
"상황을 설명하게 해 주겠나. 용서받기 어렵다는 건 알지만. 우선은 식사를 하자. 사흘을 꼬박 누워있었으니 배가 엄청 고플거야."
그 말을 들으니 배가 고픈 듯도 했다. 그러나 경계를 쉽게 풀 수는 없었다. 카라마츠는 어딘가로 연락을 했고, 곧 정원 쪽으로 누군가 음식을 가져왔다.  그도 오소마츠나 카라마츠와 닮은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토도마츠입니다. 소문은 많이 들었어요, 오소마츠 씨."
토도마츠라는 청년은 나무 그늘에 천을 깔더니 가지고 온 음식을 늘어놓았다. 여기로 오라는 듯 손짓하면 카라마츠는 거기에 응해 가서 앉는다. 오소마츠는 멍하게 그 모습을 보다 토도마츠의 채근에 와서 앉았다. 샌드위치를 집어 크게 베어먹는 카라마츠를 보자, 오소마츠도 샌드위치를 베어물었다.
"하여간, 카라마츠 형도 무리한다니까. 사람을 독으로 꼼짝못하게 하면 당한 사람은 경계하지! 거기다 6지구에서 여기 5지구까지 자력으로 이동해오다니, 안 들켜서 망정이지 원."
토도마츠는 카라마츠에게 잔소리를 해댄다. 카라마츠는 날 잡아가려 그런 건 아니었구나, 하고 오소마츠는 조금 안심했다.
"그래서, 상황을 설명해주겠단건 뭔데."
토라진 목소리로 오소마츠가 얘기를 꺼낸다.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는 채로.
"난 지금은 현상금 사냥꾼으로 활동하고 있어. 여기 토도마츠는 탐정을 하고 있고. 혹시 기억나? 얍삽이라 부르던..."
"헤에, 넌 기억나냐고 편하게 얘기하는구나."
카라마츠의 말에 그는 정색했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카라마츠가 나타나자마자 그에게 한 일은 냅다 공격해서 약에 취해 재운 것이었으니까.
"난 반가웠어. 거기서, 다시 만나서 놀랐어. 보고싶었단말은 커녕 넌 나보고 각오하라면서 상처나 줬어. 뭐하자는 거야? 그래놓고 지금은? 왜 갑자기 상냥한 건데! 우리가 잠깐 함께 있던 그 시간 나눈 대화를 내가 행복한 기억으로 둘 거 같아? 괴로워도 널 찾고 싶어서 나 열심히 돌아다녔어! 아저씨들이 맡긴 미래만큼이나 너도 소중했으니까! 거창한 신념이 있어서 레지스탕스로 복귀한 게 아냐. 너와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어서였으니까. 그런데, 10년만의 재회가 그런 식이었어. 좋았던 기억으로 두고 싶었던 그 시간이 순식간에 잊어버리고픈 기억이 된 거야. 그거 알아? 나도 사선을 넘나들었어. 몇 번이고 배신도 당해보고, 함정에 빠졌지.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건 이번이 처음이야. 짧은 시간 동안, 너가 나를 차지해버린걸까."
오소마츠의 말을 카라마츠는 그저 듣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저기..."
토도마츠가 조용히 오소마츠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오소마츠 씨는 카라마츠 형을 굉장히 좋아하는군요. 열렬한 고백 잘 들었네."
푸풉, 하고 웃는 소리에 오소마츠는 터뜨렸던 분통과 감정이 부끄러워지며 얼굴을 가렸다. 눈물이 찔끔 나는것도 같았다.
"오소마츠."
카라마츠가 나직이 오소마츠를 부른다.
"난 말야, 그때 난 말야, 지금도 난 말야, 너에게 감사하고 있어."
오소마츠는 가렸던 얼굴을 살짝 내밀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너에게 구원받았어. 카라마츠라는 이름도 너에게 받았고, 너가 있어서 난 내가 저지른 죄에도 불구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럼, 어째서..."
"동시에 난 불안했어. 나와 같이 있다가는 너마저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싸여 있었어. 오소마츠와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었지만 두 번이나 소중한 걸 잃은 나는 불안했어. 그리고..."
카라마츠는 무슨 말을 하려다 멈췄다. 스스로의 몸을 감싸고서 떨고 있었다.
"역시 말 못하겠어. 그건 봐주지 않을래?"
어느새 카라마츠는 10년 전 전장에서 처음 만났던 소년으로 돌아가 있었다. 초점을 잃은 눈에 눈물이 고였다. 오소마츠에게도 전해졌다. 이것만큼은 말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그리고 그게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떠났던 이유라고.
"알았어. 안 물어볼게. 용기가 나면 말해줘. 평생 말 안해도 괜찮으니까. 화난 거 아니야? 화가 난 건 사흘 전 6지구에서 있었던 그거뿐이니까? 그건 말해줄 수 있지?"
바로 대답할 수 있을 건 아니겠지. 오소마츠는 두 개 째의 샌드위치를 손에 들고서 이번에는 두 입에 해치웠다. 볼 가득히 넣고 우물거리는 버릇은 어릴 때부터 고치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든 우겨넣어야 했으니까. 살아남기 위해서. 그때 토도마츠가 일어섰다.
"잠시 일 좀 보고 올테니 오소마츠 씨는 카라마츠 형과 같이 있어줘요. 이거 하나만 말할게요. 카라마츠 형은 오소마츠 씨를 보호하고 싶었던 거야. 오소마츠 씨가 노려진다는 말을 듣고선 쏜살같이 날아갔어. 형은 지금 울프라는 이름으로 현상금 사냥꾼을 하고 있는데, 그 이름값이면 자기가 노리는 척 하면서 데려올 수 있을 거라고 했거든. 오소마츠 씨를 데려오자마자, 형은 그쪽을 치료하고선 한참을 죄책감에 울며 보냈어. 미움받아도 어쩔 수 없지만 두렵다면서. 솔직히 부러웠어. 나는 형에게 몇 번 목숨을 구해졌지만 이렇게까지 혼신을 다하는 모습은 처음 봤거든. 그러니까. 제대로 들어줘요. 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말도 있을 테니까."
토도마츠는 살짝 삐진 듯한 목소리로 진심을 전했다. 오소마츠는 대충의 사정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6지구의 그 바에 종종 간다는 정보가 어디서 새어나간 거였을 지도 모른다. 암살자나 현상금 사냥꾼을 고용해서 그를 덮치거나 죽일 계획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거봐."
카라마츠가 다시 입을 뗐다.
"넌 나를 보자마자 긴장을 다 풀어버렸어. 심지어 내가 던진 나이프에 다쳐서도. 네가 말했지. 신부를, 친구들을 두고, 아저씨들을 두고 도망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고. 그래서 너만큼은 지키고 싶다고. 그래서...넌 나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어."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어째서...
"내가 만약 진심이었다면, 진심으로 널 잡으려들고 죽이려 했다면, 넌 어땠을 거 같아? 지금까지 그래왔듯 넌 무리하게 뛰어들어 죽음도 개의치않는 미친 개처럼, 나를 막았을까? 꽉 쥔 주먹과 분노와 결의에 찬 눈빛을 난 잊을 수 없었어. 오소마츠 혼자선 악착같이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나랑 있다가는 나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어."
"카라마츠,"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리고는 다가가 손을 떼고 대신 입술을 댔다. 두 손은 카라마츠의 양 볼을 감싼 채, 카라마츠의 입 속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카라마츠는 가만히 있다 오소마츠의 혀를 받아들였다. 오소마츠는 왼팔로 카라마츠의 허리를 감싸고 오른팔로는 목과 머리를 받친 채 바닥에 깔린 천 위로 카라마츠를 넘어뜨렸다. 두 사람이 나란히 포개져서 몸이 닿은 채, 입술이 닿은 채 한동안 몸짓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두 입술이 마침내 떨어지고 카라마츠는 눈물을 흘렸다.
어째서, 너 때문에 내가 죽는다는 거야. 그것도 아까 말할 수 없다던 그것 때문이야? 싫어. 네가 밀처내도 난 널 다시 놓고 싶지 않아. 오소마츠는 말없이 그의 감정을 카라마츠의 안에 들이밀었다. 소년시절의 높은 신음소리가 간만에 들려온다. 처음이지만 둘은 능숙하게 서로를 받아들였다. 말로 할 수는 없는 그 이유가, 내가 모르는 너의 이야기가, 이런 걸로는 들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Posted by 하리H( )Ri
2019. 9. 9. 00:41
나도 왕공이라는 시대의 웨이브에 타고 싶었던 이야기
두근두근하지 않나요?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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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에, 우리가 살고 있는 땅 위의 세계와 땅 아래의 세계는 이어져 있었단다.]
그런 거 믿을 리가 없잖아.
유모 말 같은 건 다 거짓말이야.
[지금은 서로 만날 수 없도록 길이 끊어져있지만 가끔 땅 아래의 세계의 흔적이 보인다는 이야기가 돌고는 했지.]
나와 늘 함께 있어주겠다면서.
날 감싸고선 눈앞에서 죽어버렸잖아.
거짓말쟁이 말은 믿지 않아.
아니, 난 이제부터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을 거야.

불타는 성에서 아바마마의 충신이었던 자에게 안겨 도망쳐나오면서 오소마츠는 다짐했다.
간신히 도망친 곳에서 세력을 길러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를 죽이고 왕좌에 오른 숙부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아왔다.
정통성이나 내분 등 여러 가지 문제가 겹쳐 그를 제거하지 못한 반란 세력들은 몇 년이 지나고 이쪽에서 먼저 숙청했다.
타오르는 불꽃과 끈적한 피를 딛고서 오소마츠는 <붉은 왕>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하아..."
살아남기 위해서, 한시라도 빨리 왕의 자리를 되돌려받기 위해서, 수많은 공부와 훈련의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바쳐온 날들의 반동일까.
오소마츠에겐 때때로 왕좌에 앉아있는 게 따분했고, 세상을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가곤 했다.
[어느 날, 근처 숲속에 땅굴이 생겨났는데 그 땅굴에 들어간 사람이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나는 그 땅굴을 보러 집을 조용히 빠져나와 숲으로 향했지.]
"왕이시어, 무엇을 하시는 것이옵니까?"
"잠행 또한 왕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혼자서 백성들을 살피러 잠시 다녀올 것이니 그 누구도 따라오지 말도록 하라."
옷을 갈아입고 간단한 채비와 칼 한 자루에 사냥용으로 기르는 말 한 마리를 탄 채 그는 왕궁을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미친 거 아냐? 왕이라는 자각 있는 거냐고? 이럴때만 위엄있는 말투로? 사람 붙여! 얼른!"
오소마츠를 지지해준 친구이자 재상인 쵸로마츠의 당황하는 목소리.
"형님을, 아니지. 폐하를 잘 알고 있잖아. 사람 괜히 붙였다 그 사람 목숨이 위험할지도 몰라. 걱정마, 친구인 고양이 몇 마리를 붙여 뒀어..."
오소마츠의 동생이자 생물들, 특히 고양이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치마츠의 목소리.
그런 목소리들이 제멋대로인 오소마츠를 지탱해주는 것이다.
빠른 속도로 오소마츠가 모는 말은 자신이 숨어살던 마을 방향으로 내달렸다.
[깊고 깊은 숲속을 헤쳐나가자 팔다리에는 수많은 상처가 나고 옷은 나뭇가지에 걸려 너덜너덜해졌지.]
달빛을 받아 어두운 길 위에 무언가 반짝 빛났다.
오소마츠는 말을 잠시 멈추고 말 위에서 내렸다.
[그렇게 헤매다 지쳐 울고 있을 때,]
"눈앞에 땅굴이 나타났단다."
날카로운 은빛의 무언가가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두더지인가. 두더지 발톱이 아무렴 저렇게 빛날까.
은색 손톱은 점점 모습을 드러내더니, 거기서 푸른 옷자락과, 머리 같은 것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땅굴에서...사람이...튀어나왔...어?"
오소마츠의 유모가 들려준 옛이야기처럼, 방금 막 만들어진 땅굴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프리~~~~~덤!"
우렁차게 외치며 땅굴에서 튀어나온 사람은 두더지같은 강철 손톱에, 흙이 묻기는 했지만 한눈에 봐도 우아하고 반짝거리는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이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튀어나온 사람은 당황한 듯 고개를 숙이더니 일어서서는 갑자기 치마를 걷어올렸다.
이게 뭔 횡재냐! 오소마츠는 깜짝 놀라 굳어버렸다.
건강해보이는 실루엣의 다리에는 드릴같아 보이는 것이나 작은 가방 등 이것저것 매달려있었다.
거기서 그는 강철 손톱같은 걸 빼서는 가방같은 데 집어넣더니 왕관을 꺼내 썼다.
그리고서는 드레스를 털고 옷매무새와 머리를 정돈했다.
[마치 온기라곤 없다는 듯 새하얀 피부의 사람이 말이야.]
달빛 아래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하기엔 새하얀 피부, 푸른 보석이 달린 화려한 은색 왕관에 푸른 드레스를 입고 그는 서 있었다.
그 모든 것에 달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나...나오자마자 지...지상인과 마주칠 줄이야...그보다 다...당황했구나, 지상인!"
그리고 예상치 못한 굵고 낮은 목소리.
"하? 당황한 건 그쪽인 거 같은데? 갑자기 자기 치마를 들추다니, 무슨 포상인가 했지."
오소마츠는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로 미소를 지으며 받아친다.
불편했던 왕으로서의 위엄은 잠시 내려놓은 편한 마음으로.
"그보다 지상인? 여기는 장미의 나라야. 지상이라는 나라가 있던가?"
"장미? 나라? 여기는 지상이 아닌건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
"지상이 땅 위라는 의미라면 여기도 지상이 맞겠지."
"그런가. 다행이다. 몇 번 올라오긴 했지만 지상인과 마주친 건 이번이 처음이라."
안도하는 그를 보며 오소마츠는 유모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설마.
"그러는 너는 어디서 온 거지? 설마 땅 밑에서 온 거?"
"그래. 나는 지하에서 왔다. 지하 세계의 공주로서 말이지."
지하 세계면 보통 저승을 얘기하지 않나? 그보다 공주? 차림새만 보면 공주같기는 한데...
"당황스러운 것도 당연하다. 지하 세계에서도 지상 세계의 존재는 전설로만 전해져왔고, 정말로 존재한다는 것은 극히 일부의 사람만이 알고 있는 일이다. 지상 세계도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생각했지."
"아...응...지하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대체로 생명이 다하면 가는 곳이라고 하고 있어서 말이지.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뺴면 거의 전설조차도 안 남아 있다고 할까."
죽음이라는 말에 그는 드레스를 주먹으로 꼭 부여잡았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지상에도 있는 걸로 알고 있었지만, 그런 건 비슷한 모양이다. 참고로 나는 저승에서 온 사람은 아니야. 죽은 사람은 아니니 안심해도 좋다."
오소마츠를 안심시키려는 듯 그는 다정하게 말을 한다.
나쁜 녀석은 아닌가. 오소마츠는 자기도 모르게 하고 있던 긴장을 살짝 풀었다.
"이렇게 말도 통하는데 너는 누구야? 지하 세계의 공주님?"
공주님이라는 말에 살짝 얼굴을 붉힌다.
"카라마츠. 카라마츠다. 너는 누구인가?"
"나는 오소마츠. 오소마츠야."
"오소마츠인가. 어...잘 부탁합니다."
뭘 잘 부탁한다는 거야.
지금껏 살짝 고압적인 말투로 말하다가 갑자기 높임말을 쓴다고 해도 말이지.
"나도 잘 부탁해, 카라마츠 공주."
"잘 부탁합니다. 처음으로 지상인을 만나면 쓰려고 수없이 연습했던 말이다. 생각보다 편하게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래?"
첫인상과는 달리 카라마츠는 어딘가 바보같고 허술해보였다. 그리고 상냥해보였다.
"지상에 겨우 왔으니 묻고 싶은 게 많겠지만 내가 먼저 물어봐도 돼?"
"상관없다. 뭔가?"
"카라마츠 공주는 남자지? 어째서 공주인 거야?"
"남자인 게 상관있는가?"
"에?"
오소마츠는 당황했다. 지상과 지하는 공주의 개념이 다른가?
"공주는 세대교체 시기에 그 세대에서 선발된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다. 5명 정도를 선발하여 그 중에 왕이나 여왕으로 지명되는 것이지. 예컨대 나는 우리 세대에서 가장 강한 것으로 공주로 선발되었다만."
"아...그렇군. 에? 가장 강하다고?"
"그렇다. 뭐, 여왕님께는 미치지 못하지만."
힘으로 선발된 건가? 혹시 지상을 침략하거나 하기 위한 첨병같은 건가?
"그런가...공주라고 하면 보통 여성이거든. 개념이 좀 다른가보네."
"뭐, 지하도 공주에 선발된 자들은 여자가 많은 편이다. 왕보다도 여왕이 많고 말이지."
"지상에 온 이유는 뭐야?"
"그야 뭐, 지상의 이것저것을 알아보기 위해서지."
이것저것이라...
"문헌으로만 읽었던 다양한 생물들을 만나보고 싶다! 예를 들면 늑대라든가 호랑이라든가! 하늘이라든가, 바다라든가, 보고 싶은 것도 많고!"
이내 눈을 반짝인다. 너무 지나친 생각이었나. 연기라면 참 소름돋을 만큼 순수함이 눈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보다 오소마츠, 어쩐지 주변에 생물이 늘어난 거 같다만...저건 음...고양이라고 하던가?"
"고양이? 어느새 이렇게 늘었...아! 이치마츠!"
수많은 고양이의 존재를 눈치챘을 즈음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모습을 드러낸 건 말에 탄 쵸로마츠였다.
"에...쵸로마츠?"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노려보다 앞에 있는 카라마츠를 눈치채곤 살짝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누구...신지...?"
아마 오소마츠를 막 부를지 왕으로서 높여 불러야 할지 고민하는 듯 했다.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네. 카라마츠 공주, 이 쪽은 쵸로마츠. 내 신하야. 나는 아까 말했던 이 곳 장미의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고."
"카라마츠...공주...?"
"아. 오소마츠는 왕이었군...에에! 지상의 임금이었던 건가! 제대로 예의를 갖추질 못했는데..."
"됐어됐어. 안 들키면 왕이라고 밝힐 생각 없었고. 아까 말했지만 나는 장미의 나라의 왕이야. 지상의 극히 일부만을 다스리고 있으니까, 너 쪽에서 낮출 필요는 없어. 편하게 하자고~"
"왕으로서의 위엄이라곤 없어! 카라마츠 공주? 어느 나라에서 오신 공주님이신지..."
"들어보라고, 쵸로마츠! 카라마츠 공주 엄청 반짝거리지? 지하 세계에서 왔대! 그 전설 속의 지하세계..."
"물러나시죠, 왕이시여."
쵸로마츠는 정색을 하더니 오소마츠 앞을 가로막고 칼을 꺼내든다.
"어디서 온 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이 나라의 지존을 속이려 들다니. 제대로 정체를 밝히거나 당장 눈앞에서 사라져라!"
단호한 쵸로마츠에 오소마츠는 당황했다. 오소마츠를 막 대하면서 한편으로 아끼고 이 나라의 임금으로서 지키고 싶다는 그의 마음을 알고 있어서 무작정 말릴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등장의 임팩트 탓인가 카라마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렸는데,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쵸로마츠의 호통에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아까 받았던 바보같으면서도 상냥한 느낌을 따라가면 그가 거짓말을 했을 것 같진 않지만. 그렇게 믿고 싶지만. 행여나 아까 다리에 매달려있던 무기를 꺼내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카라마츠는 당황했던 얼굴을 거두고 다시금 왕관과 드레스를 매만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드레스를 살짝 잡고서 살짝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온화하면서도 굳센 의지가 느껴지는 눈빛, 달빛을 받아 빛나는 새하얀 피부. 아까 땅굴에서 나와 막 섰을 때보다도 더 그는 빛나고 있었다. 거기에 살짝 지은 미소가 전하는 위엄까지.
"저는 지하 세계의 공주, 카라마츠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카라마츠의 눈빛에 빨려들어갈 것 같았다. 밤에 특별한 빛도 없건만 눈앞이 눈부셔서 견딜 수 없었다.
"지하 세계라니 그런 전설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를 어떻게 믿으라는 거지?"
쵸로마츠는 대단해. 저렇게 흘러나오는 기품조차 의심하고 있다니. 오소마츠는 생각한다. 그는 그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했었다. 그는 카라마츠를 믿고 싶은 것일까. 아, 닮았다. 그는 오소마츠의 숙부와 닮았다. 생긴 게 닮았다는 건 아니고. 숙부는 상냥하고 살짝 허술한 사람이었다. 정사에 바쁜 아바마마와 성을 돌봐야 하는 어마마마를 대신해 오소마츠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숙부였다. 오소마츠는 숙부를 잘 따랐다. 뭐든 척척 해내고 뭐든 척척 대답해주는 숙부를 그는 전적으로 믿고 있었다. 그래서 숙부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실은 야망에 불타고 있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유모는 오소마츠와 숙부가 가는 곳마다 따라와 오소마츠를 지켜보고 있었다. 늘 함께 있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숙부의 야망이 실천에 옮겨진 날, 유모의 희생으로 불타는 성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오소마츠는 그의 순진무구함을 버렸다. 뭐든 쉽게 믿던 그 시절을 버렸다. 냉혹해질 수는 없었지만 복수심을 누르며 살아왔다. 자신과 피가 이어진 동생, 자신의 안목으로 우정을 이어나간 친구, 그 외에 그가 믿을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기반으로 서서히 세력을 늘려 몇 년 뒤 숙부에게 복수하러 갔다. 오소마츠는 선봉에 서서 그를 막아서는 신하들을 짓밟고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도망치지 않고 어전에 남아있던 숙부의 목을 직접 베었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칼과 손이 피로 물들었다. 숙부의 목을 벤 칼을 떨어뜨리고 피묻은 손을 바라보았다. 떨리는 손과 지금까지의 인생이 스쳐지나가며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성이 불타던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흘리지 않았던 울음이 터져나왔다. 온몸이 뜨거워지는 듯, 불타버리는 듯, 마음이 아파왔다. 사태를 수습하고 왕으로 즉위한 뒤에도 이 고통은 종종 밀려왔다. 그 고통을 숨긴 채, 따분하다며 장난으로 넘기곤 했다.
"괜찮다."
머리 쪽이 시원해졌다. 동시에, 뜨겁게 불태우던 고통은 따스함으로 바뀌어갔다.
"괜찮다."
오소마츠는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그는 카라마츠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었다. 카라마츠는 한 손을 오소마츠의 머리에 짚고 다른 손으로는 가슴쪽을 토닥여주었다. 쵸로마츠는 칼을 거두고 무릎을 꿇은 채 그 둘을 응시하고 있었다. 카라마츠의 손에서는 물 같은 게 느껴졌다.
"이게...어떻게 된..."
"정신이 들어? 괜찮아? 여기 카라마츠 공주님이 널 구해주셨어. 물의 마법으로 네 고열을 가라앉혀주셔서... 종종 있었잖아, 갑자기 열이 올라서 쓰러지는 일이... 기운차게 나가길래 약 같은 건 생각도 못했는데...정말...다행...훌쩍..."
쵸로마츠는 걱정했다는 듯 눈물을 쏟았다. 오소마츠는 이마를 짚고 있던 카라마츠의 손을 잡아 살짝 내렸다. 카라마츠의 손에서는 물이 솟아나고 있었다. 흘러내리지 않고 그 손 안에서만 작은 분수처럼 솟아나는 물에 손가락을 슬쩍 대니 시원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갑자기 쓰러져서 걱정했다. 종종 열이 올라 힘들어한다는 말을 듣고 미약하게나마 힘을 써봤다. 그저 물을 조금 다룰 수 있는 것뿐이지만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다."
오소마츠가 갑자기 쓰러지자 쵸로마츠는 카라마츠를 경계하던 걸 포기하고 오소마츠 쪽으로 갔다. 평소라면 은밀히 약을 챙겨와 먹이거나 찬물을 적신 수건을 얹기만 하면 됐을텐데, 여기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일단 의식이라도 차리게 하려고 어깨 쪽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머리에 손을 짚었다. 일단은 이걸로 응급조치를 해보지 않겠냐는 말을 건네며 카라마츠는 손에서 물이 솟아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쵸로마츠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자칭 공주를 경계하고 있었지만, 기적처럼 물이 솟아나오는 것을 보고선 경계심을 풀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오소마츠를 구할 수 있는 게 카라마츠밖에 없었으니까.
"여전히 믿기 어렵지만, 임금님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도 지하 세계와 마찬가지로 거의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으니까요. 물론 아는 사람중에 마법 비슷한 것을 쓰는 사람이 있기에 마법에 대해서는 믿고 있습니다만."
"그런가. 지하 세계는 그래도 이런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꽤 된다. 땅의 기운을 근원으로 삼아서라고 들은 적은 있지만. 마법이라기보단 잔재주에 가깝다. 목이 말라서 곤란한 일은 없을 정도의 작은 힘이지만..."
"그 덕에 내가 살았잖아. 고마워, 카라마츠 공주."
"그럼, 오소마츠도 깼으니. 쵸로마츠여. 당신의 충성심, 그리고 그 이상의 우정은 잘 알았다. 솔직히 나도 당신과 같은 신하가, 아니 친구가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소마츠가 부럽다. 하지만 그와는 정말 방금 막 만난 거 뿐이다. 지하 세게에서 지상으로 막 나온 나와 우연히 마주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 절대로 오소마츠를 속이거나 할 생각은 없다. 오소마츠, 아니 장미의 나라의 왕이시여. 친구도 걱정하고 있고, 이제 성으로 돌아가 쉬지 않겠나. 잠시나마 만나서 즐거웠다. 지상에서의 첫 만남이 오소마츠여서 정말 다행이다."
이별의 말을 건넨다. 쵸로마츠의 진심과 오소마츠의 몸 상태. 카라마츠가 앞으로 어디서 뭘 할지는 모르지만, 처음 마주한 오소마츠와는 여기서 헤어져야 할 거라는 판단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오소마츠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이제부턴...어떻게 할 거야? 지상의 이것저것을 알아보고 싶다며?"
"여기저기 다녀보면서 배우면 되겠지. 지상에 대한 책도 들고 왔으니 걱정할 것 없다."
여기서 놓치면 영영 카라마츠를 못 보게 될 것 같았다.
"장미의 나라에서 정식으로 지하 세계의 공주 카라마츠를 초대하겠다!"
오소마츠는 간절하게 외쳤다. 믿고 싶으니까 믿는다고. 믿음에 배신을 당한 적도 있지만 운명같은 끌림에 그는 마음을 열고 카라마츠를 믿어보기로 했다.
"공주라고는 해도 호위 하나 없이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혼자서 헤쳐나가는 건 힘드니까, 외로우니까, 그러니까, 당분간은 나의 성에 머물며 찬찬히 지상을 알아가는 건 어떤가?"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와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쵸로마츠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기꺼이 초대를 받아들이지요.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미의 나라의 왕이시여."
오소마츠는 안도한 듯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런 고로, 성에 귀하신 손님을 초대하게 되었으니 임금님께서도 성으로 돌아가시죠. 말은 탈 수 있겠어? 공주님은 어디에 태워야 하지?"
"에에...쵸로마츠, 조금 더 쉬면 안 돼?"
"안 돼. 이치마츠도 걱정하고 있고, 네 성격에 다른 사람을 보내면 가만두지 않을 거 같아서 급하게 찾으러 온 거니까. 하여간 위기감도 뭣도 없다니까."
"헤헤..."
"내가 오소마츠를 데리고 거기 탈 테니 쵸로마츠가 성까지 안내해주면 어떤가? 다루는 법을 알려주면 비슷한 것은 타 봤으니 금방 탈 수 있을 거다."
카라마츠는 쵸로마츠에게 말을 다루는 법을 듣고 잠깐 타 보더니 내려서 오소마츠를 번쩍 들어올렸다.
"잠깐? 내가 공주한테 공주님 안기를 당하는 거야? 에? 그보다 카라마츠, 정말 힘이 세네."
"말했잖아. 우리 세대에서 가장 강하다고, 훗."
"의기양양하다못해 자기애로 가득한 표정! 아프네! 하하하..."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말에 먼저 태운 후 올라탔다.
쵸로마츠를 따라 성으로 향하는 길, 어느새 살짝 주변이 밝아지고 있었다.
"카라마츠, 깜깜해졌다가 살짝 밝아지는 이 풍경, 이걸 하늘이라 그래."
"이게 하늘? 하늘은 푸른색이라고 들었다만."
"꼭 그렇진 않아. 하늘은 다양한 색으로 물들고 구름도 있고 해도 있고 아까처럼 달도 뜨고 별도 뜨고... 하늘 하나만 봐도 정말 다양해. 그런 세계를, 카라마츠 공주가 알아갔으면 좋겠어."
"그냥 카라마츠라고 불러줘, 오소마츠. 처음 만날 때부터 호칭도 말투도 다 꼬였지만, 이름을 부르는 게 더 친해진 거 같아서 좋아. 물론 공적으로는 제대로 격식을 갖춰야 겠지만."
"그럼, 카라마츠. 잘 부탁해."
"잘 부탁합니다, 오소마츠."
그건 여전히 높임말인거냐. 그렇게 핀잔을 줄까 하다가 슬쩍 바라본 카라마츠의 새하얀 목덜미를 보고선 얼굴을 붉힌 채 카라마츠의 등에 기대어갔다.
그렇게 카라마츠 공주는 장미의 나라의 성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지상에 온 그가 겪을 수많은 이야기에 이제 막 첫발을 내딛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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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이 머릿속에 구축되었지만 최대한 친절하게 크게 떡밥을 던지지 않고 썼습니다. 떡밥 던지면 또 나만 알아보는 글이 되니까...단편인데 장편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랬다간...하여간 단편으로 썼습니다. 뒤에 똥냥꽁냥 복닥복닥은 이미 많은 왕공이 있으니까...둘이 결혼하겠지!
Posted by 하리H( )Ri
2018. 5. 14. 00:42
스팀펑크AU로 설정을 짜다 몇 가닥이 나왔습니다. 간만에 쓰네요. 뒷얘기를 써야 하는데, 이것 말고도 써야할 뒷얘기가 너무 많아서 일단은 단편인 것으로. 세계관이 넓어져서 솔직히 괴롭군요.
지구가 환경이나 자원 문제 등으로 파괴되고 우주 개척시대로 제 7지구까지 거주지구를 만들고 지구는 모성이라 부르며 복원하고 있는 세계 연방정부가 부패하며 민중을 핍박하게 되고 그 횡포에 못 견뎌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는데 헤소쿠리에 있던 스팀펑크를 2차 혁명전쟁 즈음으로 대강 짜고 얘는 뭐, 얘는 뭐 짜는데 아무래도 오소마츠는 무법자, 카라마츠는 현상금 사냥꾼(정확히는 모르겠음) 이게 그림이 딱 나와서리... 망상전개 풀파워! 로 그 프리퀄 느낌으로 썼지만 솔직히 짜놓은 설정 내에서 쓴 거라 저 말고는 뭔 내용인지 잘 모를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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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점을 잃은 눈에 비치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 그를 봤을 때 든 생각이었다. 이상하리만치 자신과 닮아있다는 점이나 내 또래가 이런 곳에 또 있다는 점은 그 후에야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곳의 어른들보다도 더 깊고, 흐려진 그 눈에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내가 다가가서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쪽으로 날 데려온 아저씨에게 눈짓하자, 아저씨는 녀석 옆에 있던 사람을 불렀다.
“이쪽에 쓸 만한 꼬맹이가 있다고 들어서, 우리 쪽 꼬맹이를 데려왔는데…”
“오! 꼭 닮았구만. 하긴, 집 잃은 아이들이 차고 넘치는 게 요즘 세상인데, 헤어진 형제가 이런 데서 만나도 이상할 건 없겠지.“
녀석은 이쪽을 바라봤다. 여전히 깊고도 흐린 그 눈에 정말 내가 비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난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녀석은 무표정인 채였다.
“자, 자기소개라도 해두라고. 너도 그동안 또래가 없어서 외로웠을 테니 저 애를 너와 같은 조로 편성해줄까 하거든.”
아저씨가 등을 세게 두드리며 격려해줬다. 알아서 할 수 있는데.
“안녕? 난 오소마츠! 우리 둘 얼굴도 상당히 닮았고 해서…하여간 무언가 인연이 있는 거 같은데 친하게 지내보자고~”
대답 대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그 눈에는 내가 비치는 건가. 손을 내밀자 그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나누고 내가 다시 입을 열려 하자 그가 답을 했다.
“난…이름은 없고…그동안 같이 지내던 애들은 날 모지리라 불렀어. 잘…부탁해…오소마츠.”
말투는 건조할지언정 성실하기 그지없는 대답이다. 무심코 피식, 하고 웃자 그도 조금 표정이 풀어졌다. 아저씨들은 우리를 배려해선지 자리를 비켜주었다.
“저기.”
모지리…라고 초면에 참 실례되는 말을 하긴 그래서 그냥 불렀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옆에 바짝 붙으며 물었다.
“한…2주 정도.”
“그렇구나. 난 1달 반 쯤 있었나?”
그는 나를 슥 쳐다보더니 들고있던 라이플을 꼭 끌어안았다.
“여기서 뭘 했어?”
여기서 뭘 했냐라. 이런 데서 보기 드문 또래에게 물을 만한 건 이런 거 정도려나.
“너한텐 내 얘기를 아무도 안 해준 모양이네. 나도 너처럼 총 들고 전선에 있었지 뭐. 여기 모인 사람들이 뭐 별 거 있냐, 다 연방의 횡포에 들고 일어난 사람들인데.”
그 말에 조금 놀란 듯 녀석은 날 봤지만 이내 아까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너도 비슷한 거야?”
“비슷할 지도.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총을 들고 맞서는 것밖에 없으니까…”
운좋게도 교전이 없던 날이었다. 나는 그와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는 잃어버린 쌍둥이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구태여 그 얘기는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가 있던 곳에도 얍삽이라 불리던 얼굴이 똑같은 아이가 있었다는 말엔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이 곳에 오기 전 그 아이를 포함해 함깨 있던 아이들과 헤어져버린 처지에 놓인 그에게 차마 먼 기억 속의 흐릿한 이야기 같은 걸 할 수는 없었다. 대신, 나도 어떤 신부에게 거두어져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교회에서 이것저것 배우며 자라왔던 얘기를 했다. 글자라든가 산수라든가, 아것저것 배운 것들을 자랑스레 떠들면 반짝이는 눈으로 그가 바라보았다. 이곳저곳 일거리를 찾아다니며 버려진 아이들의 가장 노릇을 허며 살아온 그는 무언가 배우는 걸 동경했던 것일까. 변변찮은 이름 하나 없을 정도로 고단했던 삶이었지만, 그마저도 부서져버린 채 사지에 몰린 것에 동정심이 생겼다. 뭐, 그렇게 치자면 눈앞에서 자신을 받아들여준 것들이 모두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나도 만만찮게 불쌍한데. 불쌍한 사람끼리 뭐 어때. 선물이라도 하나 주자고.
“저기, 괜찮다면 내가 이름를 지어줘도 될까?”
“에?”
“뭐 지어준다고는 해도… 아는 사람 이름이긴 한데.”
이름이 입속에서 맴돌았지만 바로 얘기할 순 없었다.
“아까 한 얘기에서 나왔던 사람이야?”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지 그가 묻는다.
“응. 나한테 오소마츠라는 이름 지어주고 돌봐줬다는 신부님.”
“소중한 사람 아니야? 나한테 같은 이름을 줘버리면…”
오늘 처음으로, 그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자기 얘기를 할 때도 그다지 무표정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터였다. 나를 위해, 다신 만날 수 없는 신부를 위해 슬퍼해주는 구나.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다고 확신했다.
“괜찮아, 괜찮아. 그 신부님하고 너하고 어쩐지 비슷한 느낌도 들고. 무척 소중한 사람이지만, 이렇게 해서 이름만이라도 계속 누군가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어. 이젠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니까.”
그는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허락이라도 구하려는 걸까. 눈물이 살짝 맺히는 것을 난 놓치지 않았다.
“카라마츠, 라고 해. 자기 이름이랑 비슷하게 내 이름도 오소마츠라고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신부님도, 너도, 카라마츠야.”
“카라...마츠.”
“어떻게 쓰는지는 알겠어?”
고개를 젓는 모습을 보고 근처에 굴러다니는 돌을 주워다 흙바닥에 카라마츠라고 적었다. 그리운 이름이다. 카라마츠 신부의 마지막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 그의 상냥한 웃음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밀려와 눈시울이 붉어지는 듯 했다. 돌을 건네주자 그는 글씨를 지렁이 기어가듯 따라쓰며 카라마츠, 카라마츠하고 중얼거렸다. 울컥해서 고개를 돌리려는데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선 날 보고 생긋 웃었다. 눈에 맺힌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아. 역시나. 그의 미소는 신부의 상냥한 웃음과 닮아있어.
“고마워, 오소마츠. 이 이름 소중히 할게.”
“카...카라마쯔…흐아아…”
결국 눈물이 나왔다. 한번 흐르는 눈물은 깊이 묻기로 했던 슬픔을 데리고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날 이후 복수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혁명군에 뛰어들은 뒤 잊고 있던 그리움도 같이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신부에게도, 그 작은 교회에서 함께 지내던 녀석들도, 구박하다가도 점점 마음을 열어준 마을 사람들에게도, 제대로 인사하지 못했구나. 그날 미친듯이 달려 등진 불타는 풍경을 복수심으로만 바꿔 살아왔는데. 소중한 시간들이었다는 걸,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는지를 실감하고 말았다. 녀석은, 카라마츠는,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이상하지. 아까 녀석한테 내 얘기를 할 때만 해도 덤덤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한참 눈물을 흘리고서야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렇게 울 정도면, 이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카라마츠의 미소가 사라지고 다시금 슬픈 표정으로 돌아왔다. 아냐. 미소, 아까처럼 미소를 징어주면 좋겠어.
“슬픈 기억이지만, 네 이름을 부른다고 항상 슬프거나 하지는 않을거야. 그러니까,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웃었음 좋겠어. “
멋쩍게 머리를 긁으면 카라마츠가 돌을 건넨다. 오소마츠 이름도 적어줄래? 하듯이. 오소마츠,라고 땅바닥에 적으면 카라마츠가 다른 돌을 주워다 오소마츠, 오소마츠, 카라마츠, 카라마츠, 중얼거리며 흙 위에 써내려간다. 그리고 이쪽을 바라보며 다시 웃는다.
“기억했어.”

  연방에 대항해 일어난 레지스탕스의 이른바 ’혁명’은 처음부터 먹구름 일색이었다. 가족을,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많았다. 물론 나름의 구심점이나 연방군 장교였던 사람 등에 의해 군사작전 같은게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절대적으로 병력이 부족했고 일반 시민들이 연방의 보복이 두려워 도움을 주거나 하지 못하고 벌벌 떨기만 하는 것도 한몫했다. 대의, 또는 기폭제, 또는 희생이라는 게 부족했던 탓일까. 일반 시민을 움직이지 못한 혁명은 반란에 불과했다. 연방을 거스르는 자들의 본보기로 토벌될 운명이었다. 레지스탕스에 합류한 이들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싸운다는 선택지 외엔 남아있지 않았다. 항복한다고 해도 그들은 이전처럼 핍박받는 삶으로라도 돌아갈 수 없다. 감옥에 갇혀 고문당하며 옥살이를 하거나 죽는다. 그런 막다른 길목에 놓인 채 몇 달이 흘렀다. 소규모 교전이 이어지다 연방이 대대적 소탕작전을 선전한 지 얼마 안 되어 제 3지구에 있는 레지스탕스군의 최후 방어선, 그러니까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있는 전선에는 제 1,2지구의 비보가 연달아 전해졌다. 죽음은 파도처럼 서서히, 그러나 성내듯 밀려오고 있었다. 어른들은 결정했다. 두 소년을 여기서 쫓아내기로. 좋게 타일렀다가 총구를 들이댔다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항의한 들 들어주지 않았다. 무작정 뛰어, 제 4지구로 가는 셔틀에 어떻게든 타라고. 아마 그렇게 하면 연벙군이 쫓지는 않을 거라고. 날 챙겨주던 아저씨가 나와 카라마츠를 끌어안고선 미래를 맡긴다며 얘기할 때서야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 카라마츠 손을 붙잡고, 이 세상에서 다신 만날 수 없을 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그 곳을 벗어났다. 새벽을 가로질러 잠의 신이 붙잡지 않도록, 한 맺힌 영혼들이 붙잡지 않도록, 끝내 이루지 못한 복수심이 붙잡지 않도록 달렸다. 여기 올 땐 분명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을 텐데, 비겁한 내가 걸음을 재촉했다. 카라마츠는? 내 손을 잡고 달리는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같이 달렸다. 충격적인 건 그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무표정이었다는 점이다.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하여간 달렸다. 감시가 없는 곳을 찾아서, 셔틀이 있는 곳까지 달리느라 숨이 차 죽을 지경이었다.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화물 속에 들어가서야 긴장이 풀렸다.
“난 여기 죽으러 왔어. 죽으러 왔을 텐데……”
무표정한 카라마츠의 입에선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말이 나왔다.
“나도야. 죽을 각오로 녀석들에게 복수할 참이었어. 그런데 미래라니…… 너무하잖아. 그런 걸 맡기면, 거기 남아 있을 수 없잖아……”
분하기 짝이 없었다만, 카라마츠의 말에도 반발심이 생간건지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미래에, 다시금 복수하자고.

  빛이 새어들자 잠에서 깼다. 화물을 열어본 남자는 눈을 찌뿌리더니 우리 둘을 내쫓았다. 거리의 풍경을 보아하니 제4지구인 모양이다. 이번엔 카라마츠가 내 손을 붙잡고 골목으로 들어가 여기저기로 움직였다. 라디오가 틀어진 가게 옆 골목에서 그는 멈췄다. 라디오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높으신 분의 더럽게 긴 연설이 끝나고, 제3지구에 남아았던 반란군 잔당이 소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에도 연방은 시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할 것이다라는 있으나마나 한 말과 함께. 운이 좋았다고 할까. 그날 새벽 도망치지 않았다면 우린 죽은 목숨이었다. 카라마츠는 자기 손을 쳐다보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결국 카라마츠은 왜 레지스탕스에 합류한 건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만, 지금 묻기엔 그가 괴로워보였다. 한동안 그 골목에서 쭈그려 앉아았었다. 눈물이 흘렀다가도 닦고 또 닦아 아닌 척 하려 애썼다. 옆의 카라마츠도 마찬가지였다. 문득 제4지구에는 ‘바다’가 있다는 게 떠올랐다. 바다를 보면서 옛날 모성母星에 살던 사람들은 눈물을 삭혔다던가 하던 신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몸을 일으키면 그도 몸을 일으켜, 셔틀 정거장 쪽으로 되돌아갔다. 셔틀 정거장 옆에 조성된 바다는 푸른 물로 덮여있었지만, 별다른 생각이 드는 건 아니었다. 그 바다에, 카라마츠는 입고 있던 거적때기같은 옷을 벗어던지고서 뛰어든다. 아. 처음 만난 날 그의 깊은 눈은 분명 이걸 닮아 있었다. 마치 자기에게 있던 모든 걸 씻어내듯 카라마츠는 헤엄쳤다. 처음 만난 날 그가 보여준 미소를 마음껏 지어주었다. 거기에, 나는 빨려들어갔다. 후련해보이는 미소 뒤엔 무표정한 그가 여전히 숨어있다. 무표정 속에 그가 죄책감을 억누르는 모습이 보였다. 카라마츠는 자기와 함께 하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다. 그리고, 목숨을 위협하는 연방군을 몇 명 죽인 것이다. 살기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사람을 죽였다는 충격이 그에겐 있었다. 제대로 된 도덕 관념을 배우진 않았지만 해서는 안 될 것을 카라마츠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피가 흐르고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과 총을 든 자신의 손을 번갈아보면서,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 길로 카라마츠는 소문을 좇아 레지스탕스애 들어왔던 것이다. 이미 사람을 죽여 더럽혀진 손으로, 그나마 가치있는 일을 하고자 했지만, 아무래도 그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생각한 모양이었다. 바다에서 헤엄치고 나온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였다. 그런 거구나. 상관없다고. 그런 건. 이미 나는 너의 미소 속에 들어가버렸어. 그게, 미래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복수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고. 단순한 동정심이나, 불확실한 형제애 같은 게 아니라 저 미소를 계속 보고 싶다는 마음. 뭐냐고 신부님이여. 바다가 눈물을 삭히긴커녕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이상한 데잖아. 거짓말쟁이였잖아. 카라마츠는 웃으며 마무리지었다. 고마워. 이 이름을 네가 줘버린 이상, 난 살아야겠어. 오늘로 죄책감을 다 덜 수야 없겠지만. 살아서 잘못되지 않은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그런 말을 하는 카라마츠는 불안에 몸을 떨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미소만큼은 어떻게든 지으려고 애쓰고 있어서, 끌어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여기도 거짓말쟁이네. 역시 닮았잖아. 허세부리지 말라고.
“그래, 살자. 살아서, 미래를 만들자고.”
미래가 무어냐. 수많은 목숨이 던져진 미래를 당장에는 뭐라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내일이면 알게 될까. 한 달 뒤면, 1년 뒤면 알 게 될까. 무슨 미래를 맡긴 건지. 평화로운 시대에 일도 안 하고 빈둥빈둥 놀면서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미래? 다시금 혁명을 일으켜 이번에야말로 연방의 횡포에서 벗어나는 미래? 글쎄. 어떤 미래라도 카라마츠는 웃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그를 안고서 한참을 있었다.
  아침이 되었다. 바다 옆에 적당히 만든 잠자리에 카라마츠는 없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먹을 것이 머리맡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몸을 일으켜 보니 모래사장에 카라마츠가 글씨를 쓰고 있었다. 그새 카라마츠는 많은 글자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미래. 오늘 그의 발 밑에 적힌 글자다. 이쪽을 보고선 그가 미소지었다. 우선은 살아간다. 그거밖에 없나. 멋쩍은 듯 그에게 간다. 분명 그가 그리는 미래는 나와 같을 것이라 믿으며. 카라마츠는 어느 날 내 앞에서 사라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자의로 사라진 건지, 누군가에게 끌려가거나 해서 사라진 건지. 그를 찾아헤매다 나도 날 받아들여주는 곳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유야무야 흘러가버렸다. 그를 다시 만난 건 10여년 후였다. 분명 최악의 재회였다.
Posted by 하리H( )Ri
2016. 9. 11. 23:21

-카라른 전력 60분 주제: 감기 (https://twitter.com/karareun60/status/774954422229082113)

-파카카라(오소카라/이치카라)입니당

-캐붕은 패시브

-오소마츠상 OST 넘나 좋은것...★(응?)




<L*NE 육둥이 단체채팅방>

[오소] 집에 누구 있냐

[카라] 지금은 나뿐이다만

[오소] 그러면

[오소] ㄱㅏㅁ겨얏좀

[오소] 감기약좀

[카라] 뭐라고?

[오소] 찾아봐

[카라] 알았다

[카라] 감기 걸렸어?

[오소] 그런듯

[오소] 목이 간질간질한게

[오소] 이건 감기갈ㄷㄱ더님

[오소] 자꾸 기침하니까 오타가

[카라] 얼른 들어와라

[토도] 카라마츠 형

[토도] 감기약 집에 많이 있어?

[카라] 많이 있다

[카라] 알약도 있고

[카라] 베이뷔들을 위한 달콤한 액체 약도 있다구~

[토도] 하하하...

[토도] 그럼

[카라] 토도마츠도 감기인가? 별일이군

[토도] 어제 오소마츠 형이 기침하던데

[오소] 그럼 나한테 옮은거?

[토도] 아마도

[쵸로] 바보는 감기에 안 걸린다더니

[쵸로] 오소마츠 형도 감기에 걸리는군

[오소] 바보라고 까지 마라 휴지마츠

[쵸로] 여기서 휴지가 왜 나오냐!!!

[쵸로] 나도 감기약 좀 준비해주면 안될까?

[카라] 에? 쵸로마츠도?

[쵸로] 간만에 사람 많은데 갔다가 옮은 거 같아

[쵸로] 요새 독감이 유행한단 말은 들었지만

[쵸로] 내가 걸릴 줄이야

[카라] 독감이면 큰일이잖아

[카라] 얼른 집으로 돌아와라

[쵸로] 안그래도 가는 중이야

[이치] 저기

[카라] 왜 그러는가 이치마츠

[카라] 무슨 일 있나

[카라] 답이 없어! 브라더! 쓰러진거 아냐???

[이치] 그런 거 아니니까

[이치] 개똥마츠가 설레발 치긴

[토도] 이치마츠 형이 좀 느리긴 하지

[이치] 그런 거 아냐

[이치] ...감기약 내 몫도 준비해줄 수 있을까

[이치] 카라마츠 형

[오소] ?!!!!!

[쵸로] ?!!!!!!!!!!

[토도] !!!!!!!!!!!!!!!!!!!!!!!!!

[카라] 알았다! 성심성의껏 준비하지!

[오소] 카라마츠 들뜬 거 봐 ㅋㅋㅋㅋㅋㅋㅋㅋ

[쥬시] 카라마츠 형! 죄송함다!
[쥬시] 제 것도 준비해주시지 않겠슴까!!!!!!!!!!!!!!!!!

[카라] 이 무슨!

[카라] 잔혹한 운명의 데스티니란 말인가!

[카라] 나만 빼놓고 모두 감기에 걸린 것인가!!!!!!!!!!


카라마츠의 마지막 메시지가 전송되고 10분이 지나도록 5읽음만 떠 있을뿐 답은 오지 않았다. 다행히 카라마츠는 스마트폰은 보지 못한 채 형제들이 누울 이부자리를 펴고 주전자에 따뜻한 물을 끓이고 감기약을 있는대로 꺼내 식탁위에 늘어다놓고선 복용법을 꼼꼼히 읽고 있었다. 바쁜 부엌의 풍경과는 달리 바깥에는 나른한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나 왔음~켈록켈록"

현관에서 오소마츠의 소리가 들리자 카라마츠는 재빨리 뛰어나가 오소마츠를 부축해주었다. 됐다는 듯 오소마츠는 손을 내저었지만 카라마츠에게 기대는 그는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이 형~ 카라마츠가 끓인 뜨끈한 죽을 먹고 싶은데~ 해 줄거지......"

평소와 달리 오소마츠는 여유가 없어 보였다. 슬쩍 지은 미소는 그의 상태를 더 나빠보이게 했다. 열이 오르는 가운데 카라마츠의 부축을 받으며 2층으로 옮기는 걸음은 흐느적거렸다. 이부자리의 가운데에 오소마츠를 눕히고 카라마츠는 체온계를 가져다 그의 귀에 꽂았다. 38도라. 제법 열이 있군. 카라마츠는 힘없이 늘어진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선 수건을 적셔서 가져다 줄게. 죽도 끓여서 먹여줄테니까 형은 누워있어."

카라마츠가 급히 내려가버리자 오소마츠는 아쉬운 듯 손을 뻗었다 내렸다. 카라마츠라면 분명, 나만이 아니라 다른 녀석들에게도 지극정성으로 간호해주겠지. 그런 카라마츠의 상냥함은 좋지만, 가끔 카라마츠의 상냥함이 자신만의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오소마츠는 생각했다. 몸에 오르는 열기와 갓 햇볕에 마른 이불의 냄새, 사내놈들이 뒤섞여 자는 방의 체취가 그런 감정과 뒤엉켜서 살짝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 왔어."

현관에서 이치마츠의 목소리가 들리자 마찬가지로 카라마츠는 잽싸게 나가서 이치마츠를 부축했다. 평소 카라마츠를 쳐내는 일이 많은 이치마츠지만, 오늘은 카라마츠가 빌려주는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우두커니 서있었다.

"이치마츠? 많이 아픈가?"

카라마츠의 말이 저 멀리서 들리는 듯 했다. 오늘 새끼를 낳을 듯한 고양이를 지켜본다고 새벽부터 나갔던 터라 갑작스런 기온 변화와 소나기를 피하지 못한게 화근이었나. 카라마츠의 품에서 이대로 잠들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치마츠는 약해져 있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업고서 2층으로 올라갔다. 늘 그렇듯 이불의 끄뜨머리에 이치마츠를 눕히고서 카라마츠가 체온계를 귀에 꽂았다. 38도. 뭐야, 이런 점도 쌍둥이인가.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어깨를 토닥여주곤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이치마츠는 토닥임이 멈춘 걸 아쉬워하며 옆을 돌아보았다. 오소마츠가 토라진 듯한 얼굴을 한 채 누워있었다. 저 형은 어리광이 많았지. 카라마츠 형이 간호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오소마츠의 얼굴에서 자신의 감정을 발견하고선 이치마츠는 반대쪽으로 홱 돌아누웠다. 조용한 집 안에서 보글보글 죽이 끓는 소리, 쪼르륵 물이 컵에 들어가는 소리, 카라마츠가 연신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쥬시마츠, 쵸로마츠, 토도마츠가 귀가했다. 쥬시마츠는 감기에 걸려도 멀쩡한 듯 토도마츠를 들고서, 쵸로마츠는 카라마츠의 부축을 받으며 2층으로 올라왔다. 카라마츠는 마찬가지로 체온을 재고, 이불을 덮어주고 토닥여주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해주는 구나, 카라마츠. 조금 분한 마음을 삭이며 누워있다보니 카라마츠가 따뜻한 물과 죽을 들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보자. 이치마츠는 자는 모양이고...다들 죽 먹을래? 내가 떠먹여줄까?"

"괜찮아. 고마워, 카라마츠."

쵸로마츠가 죽을 받아들고서 후후 불어가며 죽을 먹는다. 토도마츠도 카라마츠가 건네주는 죽을 들고선 뜨거운 듯 조심히 이불 위에 접시를 올려 놓고 귀여운 척을 하며 후후 불어댄다. 쥬시마츠는 이불을 빠져나와 차를 가지고 온다며 급히 내려간다. 지금이 오소마츠에겐 좋은 기회일까.

"카라마츠, 이 형아 숟가락 들 힘도 없는데 떠먹여주면 안될까아?"

없는 아양을 떨어가며 오소마츠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흡족한 표정으로 알았다며 끄덕이곤 숟가락에 죽을 떠서 호호 불어주었다. 평소 휘파람을 불던 탓인지 호 하고 부는 와중에 살짝 휘파람 소리가 섞여나왔다. 침이라도 튀었을 수 있겠지만 그게 무슨 대수냐. 오소마츠가 행복한 듯 입을 벌리면 카라마츠는 눈을 맞춰주며 오소마츠의 입에 죽을 넣었다. 알맞게 식은 죽임에도 오소마츠는 뜨거운 척을 하며 카라마츠를 힐끔 보고 카라마츠는 당황해하며 다음 숟갈은 몇 번이고 식혔다. 오소마츠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주는 카라마츠. 카라마츠가 이렇게까지 해주는 건 나밖에 없겠지. 죽을 받아먹으며, 오소마츠는 이렇게 카라마츠가 나만을 챙겨주는 나날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카라마츠가 여러 번 얼음 띄운 물에 수건을 적셔 형제들에게 번갈아 올려주고 있는 동안, 오소마츠는 잠들지 않고 카라마츠의 상냥함을 즐기고 있었다.


이치마츠가 깬 건 제법 늦은 밤이었다. 다른 형제들은 자는 듯 숨소리만 들리고 카라마츠가 체온계와 수건을 번갈아들며 형제들의 병수발을 들고 있었다. 저번에도 저렇게 해주었다면 다들 무시하지 않았을 거 아냐. 역시 바보야.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말 대신에 기침이 먼저 새어나왔다.

"이치마츠, 깼는가? 배 고프지? 죽 해줄까?"

다급히 와서 말을 거는 카라마츠 때문에 놀라면서도, 어쩐지 이치마츠는 기분이 좋았다.

"응...조금이면 되니까..."

카라마츠가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남은 죽이었는지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살짝 일어나 체온계를 귀에 꽂았다. 아까보다는 조금 열이 내려간 듯 했다. 이치마츠는 안심하며 잠에서 깨기 위해 눈을 비비적거렸다.

"이치마츠, 직접 먹여줄까?"

카라마츠가 죽을 들고와서는 물었다. 이치마츠는 싫지 않았지만, 좋다고 말하기 민망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니 카라마츠가 앞에서 죽을 떠서는 식혀준다. 후후 부는 카라마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치는 상상을 하며 카라마츠를 넋놓고 바라보고 있자니 숟가락이 이치마츠의 입 앞으로 다가왔다. 이치마츠는 입을 살짝 벌려 받아먹고는 오물거렸다. 기분이 좋아져서 몇 번이고 받아먹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다만, 내일도 카라마츠가 죽을 먹여주면 좋을텐데 하며 생각할 뿐이었다.

밤은 깊어가고 카라마츠는 조금 지친 듯 벽에 기댔다. 쵸로마츠의 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쵸로마츠의 수건만 집중적으로 갈아주고 있었지만, 다른 형제들에 비해 뒤척거리는 모습이 애처로웠는지 카라마츠는 쵸로마츠를 줄곧 쳐다보고 있었다. 쥬시마츠는 별로 아프지 않은 듯 태평스레 굴러다니다 어느새 이치마츠의 발 밑에 있었고, 토도마츠는 킥킥거리며 밭은 기침을 하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이불에서 나와 카라마츠 옆에 붙어앉았다. 카라마츠가 걱정스러운 듯 고개를 돌리자 이치마츠는 됐다는 듯 손을 올리고선 카라마츠의 어깨에 기댔다.

"이럴 땐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싶다. 다들 아픈 모습을 보니 괴롭군...쥬시마츠는 괜찮아 보이지만."

키스를 하면 감기가 옮는다는 말이 있던데. 카라마츠가 중얼거렸다. 별 희한한 것을 다 믿는구나. 역시 바보야.

"그러면,"

"응?"

"키스해줄래? 나하고."

이치마츠가 대담하게 제안했다. 설마, 진짜로 받아들여 주겠어? 카라마츠는 모두를 아껴주고 있을 뿐. 그뿐인데.

"이치마츠가 원한다면."

카라마츠가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기나 해? 개똥마츠가.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흘깃 보았지만 카라마츠는 거짓말을 하고 있진 않은 듯 했다.

"대신 이치마츠가 리드해줘. 내게 감기를 옮겨버리겠다는 일념으로. 너 대신 아플 수 있다면 난 괜찮다."

카라마츠가 몸을 틀어 이치마츠 쪽을 향했다. 이치마츠는 당황하면서도 바라왔던 일이기에 재빨리 가장 황홀한 방법을 찾아내려 애썼다.

"그럼...간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확 끌어안은 채 입술을 갖다댔다. 살짝 혀를 밀어넣으면 카라마츠는 입술을 열듯 말듯 하다가 열어주었다. 이어 카라마츠의 혀도 이치마츠의 입 속에 들어왔다 서로의 혀가 뒤섞이며, 서로 끌어안은 체온이 뒤섞이며, 한참을 입술도 혀도 떼지 않은 채 있었다.

"자, 다 나았다. 카라마츠 형에게 전부 옮겼어."

이치마츠가 썩은 미소를 지었다. 그 나름대로 행복함을 표현한 웃음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그게 잘 전해지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그런 동생을 잘 알기에 싱긋 웃어줬다. 방금 키스를 한 거라고? 남자끼리, 그것도 형제끼리. 너는 어떤 기분이었던거야. 이치마츠는 물어보고 싶었지만 키스를 마치자 밀려오는 잠에 다시금 이부자리로 기어들어갔다. 카라마츠는 다가가서 이치마츠가 잠들 때까지 토닥여주었다.


아직은 해가 일찍 떠서 살짝 싸늘하지만 밝은 새벽이 찾아왔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다독여 준 후 다시 쵸로마츠 앞 쪽에 앉아있다 잠이 들었는지 벽에 기대고 졸고 있었다. 오소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기대서 자는 바보같은 동생을 바라보았다. 아까 선잠을 자며 들었던 소리가 맴돌았다. 이치마츠와 카라마츠가 키스했다. 시간으로 보면 제법 오랫동안 입을 맞댔던 것 같았다. 나쁜 동생이네. 형 말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다니. 벌을 줘야겠어. 오소마츠는 카라마츠 쪽으로 기어갔다.

"자, 내 감기도 옮겨줄게? 그리고 형한테 간호를 받는 거야, 카라마츠."

그러고선 오소마츠는 키스를 했다. 카라마츠는 혀가 들어오는 느낌에 잠에서 깬 듯 눈을 뜨고선 오소마츠를 쳐다보았지만 오소마츠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이내 혀를 오소마츠의 입에 집어넣었다. 쉬운 남자네, 카라마츠. 누구나 원하면 키스를 해주는 거야? 오소마츠는 작은 불만과, 그럼에노 갖고 싶은 동생과 하는 키스의 달콤함을 느끼며 카라마츠에게 딱 달라붙어서는 오랜 시간 혀를 섞었다. 혀를 빼고 오소마츠가 미소를 지어보이면 카라마츠도 미소를 지어주었다. 카라마츠에게 키스는 어떤 의미일까. 그냥 감기를 옮겨받고픈 자기 희생의 마인드? 좋아하는 사람과 하는 거? 그럼 이치마츠하고도, 나하고도 한 이유는 뭐야? 형제니까 좋아한다는 건가? 형제끼리 보통 그런 걸 해? 하나만 선택할 수는 없는건가? 오소마츠의 마음은 키스를 하기 전보다 더 복잡해졌지만, 카라마츠가 다시 벽에 기대서 자는 모습을 보며 일단은 생각을 거둬들이기로 했다.


해가 중천에 뜨자, 6쌍둥이들은 한 명 한 명 일어났다. 다들 개운한 표정인 가운데, 정말 독감에 걸린 듯한 쵸로마츠와, 어제까진 멀쩡하던 카라마츠만이 몽롱한 채로 1층으로 내려왔다.

"어제는 일요일이었지만, 오늘은 월요일이니 병원이 열겠지?"

"카라마츠도 감기 걸린 거야? 역시 따로 잤으면 좋았을 걸... 어제 다른 형제들 간호해주느라 잠 설친 거 맞지?"

쵸로마츠가 걱정스러운 듯 카라마츠에게 말을 걸자 카라마츠는 그저 미소를 지어보였다. 키스 이후에 지어준 미소와 비슷해서 이치마츠와 오소마츠는 흠칫 놀랐지만 모른 척 했다.

"카라마츠! 뭐 먹고 싶어?"

이치마츠와 오소마츠가 동시에 말했다. 토도마츠가 풋! 하고 웃는 소리가 들리고, 카라마츠는 뒤를 돌아보며 죽이 먹고 싶다고 한 후 쵸로마츠와 집을 나섰다.


+1


<L*NE 이치마츠, 카라마츠 채팅방>

[이치] 있지

[카라] 응?

[이치] 어제 못 한 거 마저 하고 싶은데

[카라] 무슨 소린가

[이치] 그...저...키...키...

[카라] 뭐야

[카라] 모처럼 감기 나았는데 나하고 다시 하면 다시 감기 걸린다고?

[카라] 그럼 어제 한 일이 헛수고가 되잖아


이치마츠는 감기가 중요한게 아니잖아! 그냥 그게 하고 싶을 뿐이라고 바보멍충아라고 썼다가 지웠다. 일단 바보같은 형이 감기가 나아야 다시 말을 꺼내볼 수 있는 건가. 이치마츠는 한숨을 쉬며 죽을 저었다.


+2


<L*INE 오소마츠, 카라마츠 채팅방>

[오소] 카라마츠

[오소] 넌 내꺼야

[오소] 얼른 나아서

[오소] 그땐 제대로 달콤한 츄를 선사해줄게

[카라]

[카라] 간호나 잘 해줘


카라마츠의 단호한 멘트에 오소마츠는 풀이 죽었다. 병원에서 돌아오면 쵸로마츠랑 카라마츠 둘 다 알밤 한 대씩 먹여주고 빨리 나으라고 달달 볶아야지. 수건들을 차곡차곡 쌓으며 오소마츠는 분을 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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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풀기 겸 오랜만에 쓰는 겁니다 헤헤...

장편도 합작도 모두모두 밀려있는데! 일벌리기를 워낙 좋아하는 건가...


Posted by 하리H( )Ri
2016. 7. 30. 23:22
*오소마츠상 24화 기반
*오소마츠 시점의 오소카라?





넌 이별을 고하지 않았다.
내가 등지고 외면한 상황들을 차례차례 정리하고선 너도 떠나버렸다.
물론 등 뒤로 「잘 있어」란 말을 던지고서 갔지만,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가지 않았다.
저기, 아직도 화난거야?
내가 홧김에 쥬시마츠를 때려서?
쵸로마츠의 배웅에 나서지 않아서?
나보고 정신 차리라는 토도마츠에게 멍을 남겨서?
이유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정신차리라며 형을 때린 네가,
맏형이라면 동생들을 잘 챙겨줘야하는 거 아니냐던 네가,
나 대신 형 노릇을 한 네가,
말없이 가버린 네가,
날 봐주지 않은 네가,
지금은 너무 미워.

사내 놈들 여섯이 북적대던 집에 혼자만 남게 되자 그간 한 녀석 한 녀석 떠나갈 때 이상으로 쓸쓸하다.
우리가 쓰던 방은 분명 크지 않은 방인데도 혼자 쓰려니 너무 크다.
이불도, 쓸데없이 많아진 베개도, 곳곳에 남은 여섯의 흔적도 나의 쓸쓸함을 더해준다.
동생들이 없는 나란, 여섯에서 하나뿐인 마츠노 오소마츠란, 이렇게 보잘 것 없었나 싶었다.
매실장아찌같이 쪼글쪼글하고 작은 내 자의식은 오늘따라 더 보잘 것 없어보인다.
주머니에서 데굴데굴 그것을 굴리다 바닥에서 구슬치기를 하듯 탁 튕긴다.
벽에 부딪혀 제멋대로 통통튀던 자의식은 책장 위에 덩그러니 놓인 기타 케이스에 부딪히곤 내 품으로 돌아온다.
그러고보니, 카라마츠가 얼굴을 주먹으로 갈겼었지.
맞았을 때는 제법 아팠는데 아픔이나 멍은 금방 사라졌다.
애초에 그 녀석이 있는 힘껏 날 때리긴 했을까.
그러나 저러나 망할 자식인건 변치 않지만.

쵸로마츠의 취직 축하 파티가 있던 그날.
어떤 마음이었는지 하나만 고를 수 없을 정도로 내 맘 속은 복잡했다.
그래도 가장 크게 느꼈던 건 배신감이었을까.
이 집을, 형제들을 떠나간다니.
그게,
축하받을 일이야?
나의 짜증은 눈치없는 쥬시마츠를 향했고 그 결과 난 카라마츠에게 얻어맞고서 바깥으로 끌려갔다.
"형이잖아? 쵸로마츠를 제대로 축하해주진 못하더라도 화풀이하는 건 좀 아니잖아?"
화도 나 있고, 걱정도 하는 듯한 얼굴로 나를 설득했다.
"시꺼! 니가 뭘 안다고 지껄여대!"
아까의 복수로 날린 주먹이 카라마츠의 배에 꽂혔다.
카라마츠의 콜록거리는 소리에 앗차 싶었지만 사과는 할 수 없었다.
"오소마츠, 오늘은 먼저 자러 가."
카라마츠는 표정을 찡그리면서도 진지하게 대응했다.
아프면 화 내라고.
한 번 대판 싸우자고.
먼저 어른이라도 됐다는 거야?
기분 나빠.
그런 동생한테 애취급 받았다 생각해버리는 나도 기분 나빠.
먼저 방으로 올라간 뒤부터 난 동생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이렇게 혼자 남겨진 후론 지붕에 자주 올라간다.
지붕에 주로 가던 멤버는 카라마츠, 이치마츠, 쥬시마츠였지.
특히 카라마츠는 혼자서 기타를 들고 올라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나도 그렇게 하면 기분이 좋아질까.
진작 기타 좀 배워둘걸.
방으로 가서 책장 위의 기타를 꺼낸다.
기타를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으면, 그런다고 달라진 것 없는 걸 알면서도 내가 달라진 기분이 든다.
기타 케이스를 열고 카라마츠의 기타를 꺼낸다.
녀석이 선글라스를 안쓰러울 정도로 반짝반짝 닦듯이 기타도 잘 손질되어 있다.
줄을 튕기면, 뎅-뎅-거리는 진동이 조금 묘하다.
여러 줄을 튕겨 소리를 낸다.
디리리링-
무언가 노래가 만들어진 거 같은데?
혹시 나 천재인가?
하지만 그 뿐으로, 다른 음을 내거나 할 수가 없다.
아는 노래는 기타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엔카나 유행가 뿐이라 분위기만 내는 거에도 도움이 되질 않았다.
녀석이 불렀던 노래가―
"여섯 쌍둥이로 태어났다~"
쥬시마츠와 함께 부른 그 노래가 있었지.
하지만,
가사가 잘 떠오르질 않는다.
한참 폼만 잡다가 기타를 정리하고 평소와 같이 마을을 응시할 뿐이다.

"젠장, 망할! 오랜만이다 짜샤!"
격하게 반겨주는 치비타의 인사가 어쩐지 오랜만에 듣는 듯 하다.
"잘 지냈냐, 오소마츠? 카라마츠한테 듣자니 다들 독립했다고 하던데, 넌 어떻게 됐어?"
난 대답하지 않고 그저 오뎅을 입에 집어넣는다.
"다들 연락은 하고 사냐? 카라마츠가 집에 연락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치비타가 재빨리 화제를 돌린다.
뭐 저 질문도 답하긴 뭐하다.
엄마하고는 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난 녀석들과 연락을 안 했으니까.
"카라마츠 녀석, 계속 취직한다고 이력서 쓰고 면접 보러 다니는데 잘 안 되더라고."
그걸 왜 얘기하는거야.
위로라도 해 주라 뭐 이런 거냐고.
나간건 그 녀석이야.
날 버리고 갔다고.
"맥주나 줘."
한숨을 쉬며 맥주를 주문한다.
치비타는 왠일로 군말없이 맥주병을 내놓는다.
한 병, 두 병…
취기가 오르고, 그간 쳤던 벽이 흐물흐물해진다.
"역시 외동인게 좋았어."
"데자뷰도 아니고, 왜 또 외동이 좋다는 거야 쨔샤."
"이렇게 다 떨어지고 헤어지고 할 줄 알았으면 차라리 처음부터 혼자인게 낫잖아."
"그래도 형제랑 같이 커 온 건 좋잖냐."
"그래도..."
외롭단 말야.
술기운에 취해 졸음이 쏟아진다.
거봐, 이런 때마저도 옆에 늘 있던 녀석들이 없어서 춥다고.
따뜻한 기운에 잠을 깬다.
어느새 누군가에 등에 업혀 밤길을 가고 있다.
"으음..."
"깼는가, 오소마츠."
낯익은 목소리...아, 카라마츠인가.
"네가 어째서..."
"밤에는 치비타 일을 도와주고 있어. 치비타에게 신세지고 있는 처지니까 이 정도는 해야지. 그보다, 많이 마신 모양이네."
간만에 만난 녀석은 여전히 어른 같아서,
기분 나쁘다.
"내버려둬도 될걸, 뭣하러 와서 업어주고 있는 거야."
"형 핑계로 집에 다녀간다...일까? 계속 면접에서 낙방하니까 사나이 카라마츠도 역시 지치는군."
또, 또...되도 않는 폼을 잡는다.
"원망하는 거...아니였어?"
"응?"
"나한테 인사도 않고 집 나갔잖아."
"그건 돌아봐주지 않은 게 나빴지."
카라마츠가 아쉬운 투로 답한다.
"쵸로마츠가, 토도마츠가 떠날 땐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는 자세를 고쳐잡는다.
내 몸은 축 늘어진 채 그저 카라마츠가 움직이는대로 들썩거릴 뿐이다.
"내가 나갈 땐 돌아봐줄 줄 알았어."
"어째서?"
"다른 녀석들은 내가 형 노릇을 해 줄 수 있지만 난 오소마츠밖에 형이 없잖아?"
또 형 타령이다.
"난 니들 형인거밖에 없는거야?!"
업혀있는 주제에 업어주는 카라마츠에게 짜증을 확 낸다.
"형, 형, 지겨워 죽겠어! 평소에는 형 대접도 안 하는 주제에 지들 필요할 때만 형 노릇 하라고 하고, 필요없음 버리고 가면서!"
"버리고 가다니?"
"버리고 간 거잖아...쵸로마츠가 드디어 노래부르던 취직하고 나니까 다들 집에서 나가버리려는 생각만 잔뜩이었다고...너만해도 그렇잖아? 집에서 떨어지지 않겠다면서...쉽게 집을 떠났잖아. 토도마츠 녀석이 한 말 들렸다고. 우린 함께 있지 않는게 좋다며? 다들 그렇게 생각해온 거잖아...너도 마찬가지고..."
꼴사납게 넋두리를 쏟아내는 형이다.
이런 형이니까, 싫었던 걸까.
의지하기 어려웠겠지.
카라마츠는 한참 묵묵히 길을 걷는다.
집 방향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저 강을 따라 쭉 간다.
"들어봐, 오소마츠."
그가 입을 연다.
"역시 오소마츠는 우리가 없으면 안 되는 거지?"
내내 한 소릴 한 줄로 요약해버린다.
"모두가 돌아와줬음 좋겠어?"
"......응."
"그럼 형이 말해줘. 돌아와달라고."
"하지만, 다들 함께 있으면 한 사람 몫을 못 한다고 그랬잖아."
괜히 돌아오란 소리를 못 하는 거 아니란 걸 모르는 걸까, 이 녀석은.
"그래도 자기 기분을 전하지 않으면 몰라줄 거 아냐."
정론을 얘기한다.
마치 남 얘기를 하듯이, 객관적이면서도 자기는 거기에 없는 듯 하다.
"그럼, 넌 내가 돌아오라면 돌아올거야?"
"음...결과를 내면 돌아갈게."
뭐야.
결과를 낸다니.
"집에서도 이력서는 쓸 수 있잖아! 면접도 보러 다닐 수 있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결심했어."
차디찬 강바람을 맞으며, 그는 답한다.
"형을 때린 그날, 형에게 말했던 게 자신에게 돌아와서 나도 한 사람 몫을 해야만 형을 볼 면목이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형 얼굴을 볼 용기가 안 났던 걸지도 몰라. 취직해서 당당히 어른이 되면 집에 돌아갈게."
좋은 말이다.
어느새 녀석은 철이 들었다.
그렇기에, 기분이 더 나빠졌다.
안 그래도 녀석의 등에 업혀 초라해뵈는 꼴이 더더욱 초라해보였다.
"너는...형이 다 됐네?"
"그렇지도 않ㅇ..."
카라마츠의 목을 조른다.
카라마츠가 휘청이며 넘어진다.
"먼저 어른이 돼 버리고...치사하잖아 새꺄..."
취기와 감정이 뒤섞여 혼란스럽다.
카라마츠를 짓누르고 얼굴을 때리기 시작한다.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서 앞은 흐릿하다.
찍소리 없이, 반항없이 카라마츠는 그저 맞고 있다.
"기분 나빠...기분 나쁘다고..."
울음 섞인 꼴사나운 소리로 중얼거리자니 녀석이 날 끌어안았다.
분명 따뜻한데,
따뜻하고 좋은데,
카라마츠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그의 진심을 알 수가 없다.
"넌 변하지 않아도 된다고..."
언젠가 그에게 했던 말을 되뇌이며 카라마츠의 품에서 잠든다.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 보인다.
주변을 둘러보니 익숙한 옷이 걸려있다.
아, 여긴 치비타네 집인가.
옆에는 카라마츠가 정장 셔츠를 풀어헤친 채 잠들어있다.
셔츠가 더러워진 걸 보니 아까 날 업었을 때도 저 차림이었으려나.
정장 차림인건 오늘도 어딘가 면접을 보러 간 거였을까.
얼굴에는 멍이 들어있고 피곤한 듯 전에 없던 다크서클이 져있다.
그를 안았다.
이제 알았지.
어른이 된다는건 이렇게나 힘든 일인데.
무리해서 될 건 뭐야.
미움이 녹아내리고 동정심이 찬다.
아니지, 그를 동정하기보다는 미안한 마음이다.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나 때문일거다.
못 미더운 형이라, 날 대신에 형이 되려고 그러는 거다.
조용히 카라마츠에게 입맞춤을 한다.
풀어헤쳐진 그의 셔츠를 벗기고 심장소리를 듣는다.
네게 돌아와달라 한다면.
나와 같이 어른이 되는건 미뤄두고 집에 있자고 한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
그는 어른이 되기로 결심했으니까 돌아오지 않을거다.
이대로 집으로 끌고 가 억지로 돌아오게 할까.
묶어놓고 감금해버릴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유혹을 누르고 삼킨 채 그저 녀석의 몸을 어루만진다.
현실에 굴복하자.
그냥 포기하자.
언젠간 돌아와줄거야.
약속했잖아.
어른이 되면 돌아온다고.
물론 어른이 되면 내가 알던 카라마츠가 아니게 될 거 같지만.
카라마츠의 몸에 눈물이 타고 흐른다.
그 눈물에 반응하듯 카라마츠는 아까처럼 날 안아준다.
슬쩍 올려다본 그의 얼굴에도 눈물이 어려 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뭐야?
너도 외로워?
나와 같은 마음이야?
아니면 동정하는 거야?
단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그는 지금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뿐.

날 안았던 손을 풀고서 그가 돌아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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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단편으로 왔습니다.
쓰던 거나 마저 써야 하는데 또 엉켜서;;;
뜬금없이 떠오른 거 썼네요.
24화 기반으로 쓰다 만 게 있었는데 것도 버려두고(취미가 쓰다 내팽개치기입니다) 또 번뜩 떠오른 거네요.
24화의 충격이 꽤 커서 뒤에가 개그인걸 알았는데도 오소마츠 마음은 어떨까 어떨까 생각했는데 그 생각 중 단편의 이야기입니다.
카라른이긴 한데 음...그냥 오소의 집착 얘기네요.
의식의 흐름이라 늘 그렇듯 허술하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하리H( )Ri
2016. 3. 22. 16:17

[카라른/오소카라]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5-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캐붕,글솜씨없음주의

※5화 카라마츠 사변 기반+기타 에피소드들 소재

※오늘은 조금 힘을 뺀 이야기와 힘을 넣은 이야기가 공존. 뭔 소린지 원.

※그 외 뭐 여러 가지 주의(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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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이름 모를 거리의 인도. 거기에 나는 서 있다. 밤손님은 이제는 낮에도 찾아와 날 유혹한다.

- 자, 이딴 세상에서 사는거 그만 두자고? 편해지는 거야, 카라마츠.

텅 빈 나를 잡아끄는 그 손길에는 언제든 끌려갈 것만 같다. 그 손길에 몸을 맡긴 채 보낸 시간과 그 손길을 외면하며 보내는 시간이 교차하다, 이제는 조금 더 편해지는 쪽을 택하고는 한다. 

도로에는 빠르게 지나가는 트럭이 몇 대 있을 뿐.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은 거리다. 어디지, 라는 생각은 그만둔 지 오래다. 내가 어디에 있든 무슨 상관인가. 나는 어차피 가벼운 존재. 어디서 굴러다닌 들 상관없는 존재. 기왕 이렇게 된 거, 더욱 더 가벼워진 채 어디 먼 곳으로, 먼 차원으로, 여기가 아닌 곳으로 날려갈 수 있다면 좋을텐데. 형제들은 나를 붙들어서 이 세상에 묶여있게 하지만, 그건 진심인걸까. 아니, 나를 위해서인걸까. 그들이 여섯이서 하나인 20년을 부술 수 없어서 날 붙들고 있는 건 아닐까. 사고는 한번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면 멈추질 않는다. 나의 사고도, 그런 것일테지. 날아가고 싶다. 어디론가, 여기가 아닌 곳으로. 그 소망이 나를 채운다. 붉은 신호등도 푸른 신호등도 상관없이, 나의 세계는 어느새 하얗게 물들어간다. 

 

텅.

 

묵직한 감이 나를 강타한다. 소원이 이루어진 듯, 나는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다. 길 건너엔 또 하나의 나가 미소짓고 있다.

이제 곧 편하게 될 수 있어, 그치?

 

 

 

*

 

 

 

토도마츠는 하루를 꼬박 카라마츠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퉁퉁 불어버린 눈에 눈동자에 생기마저 사라진 토도마츠는 수술이 끝나고 병실로 옮겨진 카라마츠의 손을 잡은 채 카라마츠 형, 카라마츠 형 하며 기도하듯 읊조리고 있을 뿐이었다. 카라마츠가 차에 치였다는 소식을 듣고선 모두들 놀라며 병실로 달려와서는 교대로 토도마츠와 카라마츠의 곁을 지켰다. 아, 거기에는 이치마츠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치마츠는 병실에 와서 카라마츠를 그저 응시하다 나가더니 병실 밖 복도에서만 계속 있었다. 병실의 분위기에 지친 형제들을 위로해주는 건지도 모르지만, 내가 밖에서 있을 때 이치마츠는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무언가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듯 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나도 입을 다문 채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병실로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쵸로마츠가 집에 다녀오겠다며 사왔으면 하는 것, 가지고 왔으면 하는 것을 적어가서 병간호에서 잠시 제외. 토도마츠를 카라마츠하고만 있게 하는 시간도 필요할 것 같아 쥬시마츠를와 함께 병실 밖으로 나왔다. 

"오소마츠 형아, 카라마츠 형 손목에 상처가 많았대...난 손목보호대를 빌려간 게 정말 손목이 아픈 걸로만 생각했는데..."

"응..."

"카라마츠 형, 마음에 상처가 역시 많았던 거겠지? 우리 때문일까?"

"......"

카라마츠는 형제 탓을 잘 하지 않는다. 사소하게 당황스러워 하거나 짜증을 내는 일은 있어도, 정말 심각한 일에 말려들었을때 다른 형제가 연관되어서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 일이라도 괜찮다며 넘기곤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싸움이나 하고 다니면서 다른 형제들에게 피해를 주고 다닌 나와는 다르게. 나 때문에 가장 곤란해 했던 것도 카라마츠였다. 어느 날 부턴가 남을 상처입히고 싶지 않다면서 쌈질에서 빠져나왔다가 내게 당한 복수를 한답시고 덤벼든 불량배에게 당하고 오는 일이 잦았다. 카라마츠도 카라마츠라, 당하고만 오진 않았지만 이전보다는 확실히 힘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대신에 남을 즐겁게 해주겠다며 연극부에 들어가서는 이상한 연기들만 잔뜩 하고는 했던가.

"카라마츠는,"

좀 더 남을 의지할 필요가 있어.

라는 말이 입에서 맴돈다. 늘 생각하는 바지만, 그게 카라마츠가 받은 마음의 상처를 해결하리란 보장이 없다. 아니, 애초에 카라마츠의 기대를 저버린 건 우리들이니까. 특히, 내가 저버렸으니까.

"걱정마. 쥬시마츠. 카라마츠의 의식이 회복되면, 카라마츠를 웃게 해주면 되는거야."
가볍게 말한다. 웃게 해준다고? 그 웃음이 진짜 웃음일지도 모르는 주제에.

"...그걸로 되는걸까?"

"당연하지."

그럼에도 나는 가볍게 답을 내린다. 그도 그럴게, 나는 카라마츠만이 아니라 쵸로마츠,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의 형이기도 하니까. 장남이니까.

 

 

 

최근에 카라마츠와 제대로 대화했던 게 언제였지.

아, 카라마츠가 찻집 알바를 할 때. 그 때였나.

그 이후로, 카라마츠와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아니, 나눌 수가 없었다.

카라마츠의 자해를 보고 말았으니까.

어딘가 어두워져 가는 카라마츠를 눈치채고 있었지만, 찻집 알바를 한답시고 놀려주던 때에는 상황이 거기까지 치닫았다는 것을 어째서 알지 못했던걸까.

「좋은게 좋다」, 나의 모토가 흔들린 순간이었다.

 

카라마츠의 납치극이 적어도 겉보기엔 조용히 지나간 뒤, 새로운 머신이 들어왔다는 전단지에 평소 가던 파칭코와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신 머신에 한 번도 안 가본 곳, 딱 운이 터지기 좋은 곳이니까. 그 결과, 따긴 땄다. 하지만 대박도 아니라서 애매했다. 운세로 치면 소길. 한두 판 더 하면 대박이 터지거나 쪽박을 차거나 할 거 같아 오늘은 여기서 손을 놨다. 일단 따냈다는 데 만족하자는 생각이었다. 기왕 낯선 거리로 왔으니까 넘쳐나는 시간을 조금 보내볼까하고 어슬렁거렸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오전 열한 시, 할 일 없는 니트와 대조되는 분주한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따낸 돈으로 무얼 할지 궁리하던 차에, 어딘가 익숙한 사내를 한 찻집에서 발견했다. 우와, 우리같은 최하층 밑바닥 카스트는 들어가지도 못할 분위기의 찻집. 스타버와는 다른 느낌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만 오갈 거 같은 찻집에 나랑 같은 얼굴이 앉아 있었다. 저런 데라면 톳티, 가 아니라 저 열심히 뭔가 적어내려가는 모습은 카라마츠!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찻집을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무언가를 받아적고 있었고 맞은편에는 우리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카라마츠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설마.

그 카라마츠가 취직을 하려 드는건가? 자립은 하지 않을 거라구~, 날 먹여살리지 않겠나? 같은 말을 내뱉는 안쓰런 카라마츠가 취직을 스스로 하려 든다고? 

그대로 주변 벤치를 찾아 앉아서 찻집을 감시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자 초조해졌다. 본격적인 느낌이라서. 그것보다는 카라마츠의 표정이 더 신경쓰였지만. 우리들 앞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쑥쓰러운 미소라거나 진지한 끄덕임이나, 니트 탈출보다도 그런 게 날 더 초조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이윽고, 카라마츠가 찻집 문을 열고 나왔다. 카라마츠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그의 등 뒤로 돌아 어깨를 확 잡았다.

"어흐어어에에에엑!"

"뭐야 그 반응은, 푸하하."

 카라마츠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형님이 왜 여기 있는 거지? 혹시, 날 따라온..."

"그런 거 아니니까. 이 근처 파칭코 가게 갔다온 참."
"아,"

설마 이 녀석, 날 한심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 표정, 대박 터뜨린 것도, 쪽박 찬 것도 아닌 거 같은데."

"뭐, 그렇지. 따긴 땄는데 정말 조금이라서 말야. 그보다, 잠깐 앉아봐."

"왜 그리 진지한 표정인가?"

"카라마츠...아까 봤는데 혹시 취직하는 거야?"

"취직?"

"응, 방금 나온 찻집에서 뭐 받아적고 있는 거나 분위기가 그래보였는데."

"아, 이건 잠깐 부탁받은 거다."

"그래?"
"아까 얘기하던 사람, 고등학교 때 같이 부활동을 했던 나카무라 군인데 일주일 정도 볼일이 있어서 자기 대신에 잠깐 일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지. 거리에서 우연히 만주쳤다가 권유받아서 오늘 찻집 주인 아저씨와 인사하고 일에 대해 설명을 듣고 한 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고 서빙이나 계산, 잡일을 해 주는 거라며. 카라마츠는 내가 걱정한다고 생각했는지 제법 상세하게 얘기를 해줬다. 뭐야, 취직은 아니었나...다행이네, 다행.  그래도 잘 상상이 가진 않았다. 워낙 우리 앞에선 폼잡고 있거나 하는 게 익숙한 녀석이니까 사람을 접대하는 일을 하는 게 가능은 한건가 싶다. 물론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면 다를 거 같지만. 의외로 쭈뼛쭈뼛하게 손님 눈도 못 마주치고 차만 딱 갖다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했더니 우리 집 차남, 귀여워서 죽어버릴지도.

"형님, 듣고 있나?"

망상을 펼치는 동안 카라마츠가 이것저것 얘기한 모양이다. 어차피 아까의 일을 더 구체적으로 얘기했을 거 같지만. 

"그래. 어쨌든 힘내라."

"오우."

 

나 외에는 잠깐 알바를 한다는 것 정도만 형제들에게 전해서, 카라마츠가 찻집 알바를 한다는 건 나만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형제의 레어한 모습을 보는 걸 독점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으려나. 아침 열 시에나 일어나는 니트가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선 평소에 입던 안쓰런 패션이 아닌 깔끔한 옷을 입고 눈을 비비며 나가는 광경을 쳐다보며 조금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언젠간 우리 형제들도 저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제각각의 일을 찾아 흩어졌다 저녁에 돌아오는 생활을 하게 될까,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간만에 하는 일에 지쳐 돌아온 알바 첫 날, 저녁을 먹고 일찍 들어간 카라마츠는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일주일은 짧은 시간이지만 그 중 하루가 평소와 다른 낯선 하루라면 그게 길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 카라마츠는, 그런 기분일까.

다음 날, 카라마츠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카라마츠가 늘상 하듯 거울을 보며 머리를 정돈하고, 말끔한 옷을 차려입고, 전신 거울 속에 비친 나를 쳐다봤다. 물론 멋있지, 이 몸은. 그 채로 집을 벗어나 거리를 배회하다 찻집이 연다는 열 시 즈음에 맞춰 갔다. 여전히 우리같은 밑바닥은 들어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기지만, 다시금 보니 어쩐지 평화롭고 잔잔해 보이는 찻집. 얇은 커튼이 쳐진 창문 너머에는 카라마츠가 성실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가게 정리를 하고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찻집 문을 열어젖혔다.

"카라마츠~ 이 형이 와줬다고!"

유독 큰 소리로 카라마츠를 불러봤다. 가게 안에는 손님은 없고, 주인 아저씨와 카라마츠만이 일하다 말고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에, 오소마츠?"

카라마츠가 당황한 듯이 나를 쳐다봤다. 그럴 법도 하지. 가게 문을 떡하니 열어젖히고선 한 손으로 기대고 나름대로 폼을 잡고 있으니까.

"가끔은 이런 상류층의 문화도 누리면 좋잖아! 그래, 지명은 카라마츠! 오늘 나와 시간을 보내줘야겠어!"

"그거 상류층 아니니까...여기 어딘가의 가게도 아니고..."

"지금은 손님도 없으니까 괜찮은 거 아냐? 어때요, 아저씨?"

아저씨가 나와 카라마츠를 번갈아보더니 머리를 긁적이다 입을 열었다.

"지금은 한가한 시간이니 마츠노 군, 형과 상대를 해줘도 좋네."

"에, 그렇지만..."

"물론 음료는 공짜가 아니니까, 마츠노 군."

"알겠습니다."

나는 볕이 잘 드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 카라마츠는 나와 마주보고선 앉았다. 주인 아저씨가 주문을 받지도 않고 내 쪽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카라마츠 쪽에는 진해보이는 커피를 놓았다. 이름이 에스프레소 도...도피소였나.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카라마츠가 먼저 운을 띄웠다.

"그냥 우리 카라마츠가 어떻게 일하고 있나 보고싶어서 온거야. 딱히 할 일도 없고 말이지."

"그건 그렇네. 다른 애들은?"

"둘만의 비밀, 이란 걸로 하고 싶어서 말 안했어."

"나는 몰라도 이렇게 말끔하게 차려입은 걸 보고 아무 말도 안 했다고?"

"그럴까봐 눈에 띄기 전에 나왔지."

"얼마나 일찍 나온거야..."

카라마츠는 내 말을 들으면서 살짝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모처럼 둘만의 시간인데,"

그 멋쩍은 미소를 짓는 입술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

"이 형에게 고민거리가 있다면 털어보지 않을래?" 

입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집어들고선 한 모금 들이켰다.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 가게 문 바깥쪽에 달린 종소리, 원두 내리는 소리, 그 소리들 사이에서 카라마츠의 목소리는 섞여나오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커피잔을 잡고 커피를 들여다볼 뿐, 내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기미를 보이진 않았다. 저 모습은 뭘까. 망설이고 있는 걸까. 내겐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인걸까. 그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녀석을 재촉했다간 뭣도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는 고민이 없는게 고민이란 말이지."

일단 나의 이야기를 꺼냈다. 대화를 이어가는 건 일단 한 마디의 말이다.

"너희들을 걱정하긴 하는데, 그게 또 고민까지 이어지진 않는달까. 의외로 다들 제각각의 개성대로 살고 있으니까. 아, 이치마츠는 그래도 좀 걱정이 되려나. 그 녀석은 사회성 제로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뒷골목에서 잘만하면 폭군으로 군림하고 살 거 같기도 한데, 냐하하."

멋쩍은 웃음과 함께 농담을 던졌다. 이치마츠가 들으면 기분 나빠하려나 같은 생각은 일단 제쳐두고.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이치마츠한테 말하지 마. 아, 너라면 말할 거 같진 않지만."

"그게 아니라..."

이치마츠 뒷담 쪽이 아니었나.

"제각각의 개성대로 살고 있다고 말했지, 우리들이."

"그쪽이었나? 그렇지. 최근에야 너네들이 평소에 어떻게 사는 지 알게 됐고 말이지."

카라마츠는 컵을 들고선 커피를 조금씩 마시기 시작한다.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는 걸 보니 역시 쓴 건 잘 먹는 거 같진 않지만.

"내게도 개성이 있어, 오소마츠?"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개성 만만하다 못해 마이 웨이잖냐, 네 녀석은.

"당연하지! 어설픈 오자키 흉내나 안쓰러운 취향이라든가..."

카라마츠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조금 표정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아, 그리고, 그리고, 기타 연주 같은거도 좋아하고 노래 좋아하고 그러잖냐. 나머지는 그런 녀석 없으니까."

간신히 좋은 의미 쪽으로 얘기를 한 거 같다. 아까 말은 하고 보니 기분이 나빴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소마츠가 보는 나는 그렇다는 거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있는데, 역시 말로 설명하기엔 어려운 거 아닐까?"

화제를 돌리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카라마츠는 내가 말을 꺼내면 꺼낼수록 표정이 안 좋아졌다. 물론, 마시고 있는 커피도 써서 그러겠지만.

"카라마츠, 그 커피 한번 마셔봐도 돼?"

카라마츠는 대답없이 잔을 내밀었다. 나도 아메리카노를 내밀어 서로의 음료를 바꿔 마셨다.

"켁, 쓰네 이거...이게 뭐랬지? 에스프레소 도피...도피소?"

"도피오. 샷을 두 번 추가했다는 거야."

카라마츠는 얼음을 입에서 굴리며 답한다. 물론 그 표정은 조금 전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그런가...도피오...용케 이런 걸 마시네."

"어쩌다보니 커피를 마신다면 이걸 마시게 됐어."

분명 이것도 폼 잡는다고 마시게 된 걸거야. 머릿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카라마츠의 표정을 봐서는, 그런 소리를 했다간 더 상처를 받을 거 같았다.

다시금 두 사람의 음료를 바꿔서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시덥잖은 대화를 하며 마시는 동안, 손님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시간은 열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점심 때인가, 손님이 많이 오네."

"아, 이제..."

"가봐야겠네. 동생의 알바를 방해하는 나쁜 형이 되고 싶진 않다구."
"응."

카라마츠는 일어나서 기지개를 한 번 펴더니 나를 쳐다봤다.

"오소마츠."

"왜?"

카라마츠는 입술을 실룩거리더니, 한숨을 쉬었다.

"아무 것도 아냐. 이따가 집에서 보게."
"그래, 일 힘내라."

 

내가 가게 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는 카라마츠는 어쩐지 손을 내밀고 있는 거 같았다. 사실은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고 하는 듯이. 그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못하는 차남. 그리고 누군가에게 의지받지 못하는 장남. 이 때를 놓쳐버린 것에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 그날 밤 옥상의 카라마츠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지금, 카라마츠는 자해인지 사고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병원에 누워있다. 심한 부상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렇게나 거하게 한 건 해버린 카라마츠가 눈을 뜨고 입을 연다고 한들, 나를 의지해주는 날로 돌아올 수 있을까. 카페로 찾아갔던 날, 난 그곳에서 무엇을 말해야 했을까. 동생들에겐 가볍게 답을 얘기해주는 나지만, 나 자신에게만큼은 답을 이야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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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쓰는데 시간이 많이 들었습니다.

구상은 오래 전부터 하던 편인데도 막상 만들어지고보니 재밌지도 않고 감동적이지도 ㅇ낳네요.

문제는 오늘, 24화가....으어.....

스포는 못하겠는데 으어.....그거 보고 무조건 오늘 오소카라 편을 써야겠다 생각해서 이러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써내고 보니 으어...망했어요.

그래도 오늘 일단 이치카라 편도 써서 한 사이클이라도 완성할 수 있음 하는 바람입니다. 두 사이클+@니까요. 지금 내가 후기로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모르는 하츠모리 드림. 

     

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