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7. 04:09

[카라른/쵸로카라]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7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커플링을 써놓았지만 테이스트는 지극히 약한 것입니다...ㄷㄷ
※캐붕,글솜씨없음주의

※세 달 만에 써서 죄송합니다. 내용 구상이 잘 안되었사옵니다(굽신굽신) 어차피 아무도 안 보니까 몬다이나이

※5화 카라마츠 사변을 기반, 고통받는 카라마츠,,,등등

 

※변변찮은 타이틀 이미지 추가합니다~

 

 


 

 

 
 
 

(쵸로마츠 시점)

 

 

 

나이가 들수록 익숙하지 않은 것을 대할 땐 방어 자세부터 취하고 본다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은 어린 시절엔 그런 것일수록 호기심을 가지고 한 발짝이고 두 발짝이고 나아갔다. 그 결과 사고를 엄청 치고 다녔지만 무구했던 그 시절에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들은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 썩을 동정에 백수지만 나이는 입으로든 뒷구멍으로든 먹었는지 익숙하지 않은 일들이 생기면 당황하거나 짜증을 내는 등 방어적인 자세부터 취하고 봤다. 다가가더라도 소극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한이라는 말로 포장한 내가 피해를 받지 않을 선까지만 다가간다. 그러면서 '이걸로 됐어' 라며 안일해진다. '별 일 아니겠지'라며 거만해진다 

그래서 카라마츠가 위험한 상태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도 어른이니까 언젠가는 얘기해주겠지 하며 기다리기만 했다 

그 결과가, 수없이 손목을 그은 끝에 차도로 뛰어든 카라마츠가 누워있는 꼴이다 

물론 형식상으로는 사고지만 

 

* 

 

토도마츠로부터 카라마츠의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엄마는 기절하듯 쓰러져버리셨다. 이 나이껏 부모님에게 빌붙어 사는 백수들이지만 건강만큼은 자신 있어서 적어도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큰일은 없었으니까. 카라마츠가 잘못 맞으면 죽을 지도 모르는 이것저것을 얻어맞는 일을 당하고도 튼튼해서 그런지 병원에서 치료만 받고 돌아왔을 정도였고. 그런데 교통사고를, 그리고 울먹거리며 겨우 말을 이어가는 토도마츠의 목소리를 듣고 쇼크를 받으신 모양이다. 오소마츠 형은 우리들을 병원으로 먼저 보내고 엄마를 돌보고 왔다. 엄마는 금세 정신을 차리셨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바로 병원으로 오는 건 무리라 오소마츠 형을 병원으로 보내고 당신은 집에서 기운을 차리면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오겠다고 했다. 아마 그 상태에서 카라마츠가 자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엄마도 병원 신세를 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일단 카라마츠의 자해 사실은 아빠에게만 털어놓기로 했다 

 

수술을 마치고 카라마츠는 1인실로 옮겨졌다. 의사가 보여주는 손목의 상처와 내 말에 아빠도 다른 형제들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왜 이제껏 말을 하지 않았어? 형제가 그런 일이 있으면 부모님과 의논하는 게 먼저 아니냐." 

아빠의 꾸짖음에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아마도 말을 하지 않은 건 내 탓, 아니 우리들 탓이기에 우리들이 알아서 해 보려고 하는 책임감도 있었겠지만 우리 선에서 해결할 수 있을 거란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으리라. 

"어쨌건, 엄마를 돌봐줄 사람이 누군가는 있어야 할 테니, 너희는 카라마츠를 잘 지켜봐 주거라." 

"..." 

힘없이 답하는 목소리들. 아무도 아빠를 따라가려는 기색은 없었다. 아빠가 나가자 토도마츠가 카라마츠 옆에 앉아서 카라마츠를 부르기 시작했고 나머지는 병실 어딘가에 앉아서 그저 그 둘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야 병원에서 있으려면 필요한 게 뭔지 엄마 상태는 좀 어떤지 그런 걸 생각해 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다른 형제들은 그런 걸 생각하지 못한 거 같아서, 기분도 전환할 겸 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칫솔이나 팬티 같은 것들을 부탁받고 그 외에도 나름 필요할 듯 한 것들을 생각하다보니 집은 금방이었다. 어제 집에서 병원까지 향하는 길은 그렇게 멀었는데. 카라마츠가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아직까지 의식이 돌아온 건 아니지만... 

 

집에는 엄마 혼자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누워계셨지만 안색은 좋아보였다. 아마도 당신은 괜찮다며 아빠를 회사로 보내신 모양이다. 엄마는 이렇게 무리를 하신다. 철없는 여섯 아들을 상대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걸까 

"아빠는 회사에 가셨어요?" 

"카라마츠가 입원했으니까 입원비 벌어야지." 

"그래도 엄마도..." 

"엄마는 괜찮으니까. 카라마츠가 걱정이지. 토도마츠도. 어제 전화할 때 많이 힘들어보였는데..." 

엄마는 억세다. 하지만 그러니까 우리는 엄마에게 카라마츠에 대한 얘기를 하기 어려웠을 거다. 

"괜찮을 거에요." 

괜찮지 않아요 

"병원에서 좀 지내야 할 거 같으니까 우리들 짐을 먼저 가지러 왔는데, 혹시 엄마 뭐 해드릴 거 있나요?" 

애써 웃어 보이며 말을 한다 

"그럼, 빨래를 걷어주렴." 

지붕 위에 있는 빨래를 걷는 김에 위층 청소를 하고 가기로 했다. 아래층은 엄마가, 위층은 우리들 중 누군가가 하기로 해서 위층은 내가 손대지 않으면 아무도 청소까진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자기 물건을 치워놓을 뿐 

그래서겠지, 카라마츠의 커터칼들이 눈에 띄지 않았던 건 

누군가 그걸 발견했지만 나처럼 카라마츠를 위해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건지는 몰라도 커터칼들은 책장 뒤 야한 잡지들 너머에 널려있는 채였다. 몇 개가 있었는지 세어놓지 않아서 그 사이 더 늘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 커터칼들을 꺼내서 파카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이게 사라지면 카라마츠가 분명 더 불안해하겠지. 

하지만, 남아있다고 해서 카라마츠에게 좋을 것도 없다. 그만둬주길 바라고 있으니까. 

그러다 생각한다 

여기에 커터칼을 숨기면 누구에게 들키지 않을 거라 그는 생각한 걸까? 

손닿기 쉬운 곳이잖아. 빨간 책들이 여기 있다는 것도 언젠가 까발려버렸고. 

그런 일들도 상관없이 여기에 둬도 괜찮은 건가? 

설마. 

그는 이걸로 도움을 청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납치극 이후로 형제들에게 의존하지 못하게 된 그가 보내는 신호로써.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주변에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그 신호들을 눈치 채고 있었으면서 너무도 늦게, 그것도 빙 돌아서 다가가느라 카라마츠의 상처를 막아주지 못한 나를 파카 주머니 속 커터칼들이 찌르는 듯 했다 

 

* 

 

카라마츠로 말할 거 같으면, 의외로 꼼꼼한 사람이다. 지금도 자기 얼굴이 프린트된 탱크톱이나 브리프 같은 걸 직접 만들 정도로 손재주가 있고, 메모만큼은 열심히 해서 학창 시절에 시험 공부할 때 형제들이 돌아가며 카라마츠의 노트를 빌려갔다. 그렇게 필기를 열심히 한 본인의 성적은 정작 바닥을 기어서 역시나 그가 바보라는 걸 증명해줬지만. 수업 노트나 연극 대본의 메모를 보면 무척 사소한 것까지 적어놓아서 가끔 보다가 웃음을 터뜨린 적도 있었다 

 

「↙선생님이 이걸 세 번이나 짜증내듯 외침

유독 강조한 말들↑」

, 이건 시험에 안 나오니까↘」 

「←여기선 힘을 빼고 속삭이듯이

자꾸 오버했다간 다음번엔 지나가는 행인 역을 맡길 거야!(아사노 선배)

... 

"자꾸 오버한대, 집에서 하는 짓 그대로 연극부에서도 하고 있는 거야?" 

오소마츠 형이 낙서들을 넘기며 핀잔주듯 말했다. 

"그보다 카라마츠, 이 정도면 꼼꼼한 거라 말 안 하고 집착이라 하지 않냐?" 

"그래도 이런 걸 적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필기를 들여다봐도 전혀 감이 오지 않는걸." 

조금 주눅 든 듯이 말하는 카라마츠가 안쓰러워 보였다. 

"그래도 우리 중에 중학 데뷔가 가장 화려하잖아, 이런 노력을 해서 얻어낸 거라고?" 

내가 카라마츠를 두둔하고 나섰다. 확실히, 그 시절에는 그를 조금 동경했으려나. 

"?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건 나 아녔어? 우리 중에서 말야." 

오소마츠 형이 태클을 건다. 

"형은 그냥 사고 친 게 많을 뿐이고! 우리가 얼마나 선생님들한테 시달리는 지 알기나 해?" 

짜증을 확 내자 옆에서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도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오소마츠 형은 치하며 입을 비죽댔다. 

 

우리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 큰일을 꼽자면 두 개였다. 먼저, 우리들에게 서열이 강조된 것. 중학생이 되기 전 오소마츠 형이 느낀 바가 있었는지 형제들을 모아놓고 형이라 불러 달라며 떼를 썼다. 귀염성 없는 떼지만 안 그러면 한 대 얻어맞을까봐 그러자 했던 게 어느새 서열 정리로 이어졌다. 입에 잘 붙지 않던 형 소리를 내면서, 쵸로마츠 형이라고 말하는 어색한 동생들의 소리를 들으며 조금씩 집의 분위기를 바꾸어놓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 영향을 가장 받은 건 차남이란 딱지를 받은 카라마츠였다. 그저 형이라고 불리고 싶었던 오소마츠 형과는 다르게 카라마츠는 얼떨결에 두 번째로 큰 형이 되었다. 카라마츠는 그날부터 마음을 달리 잡은 듯 했다. 오소마츠 형을 장남으로 치켜세워주는 것도 동생들을 챙겨주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아무도 그를 떠밀지 않았지만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다며, 이제부턴 멋있는 차남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학교에 들어간 우리 중에 부활동을 먼저 시작한 것도 카라마츠였다. 역시나 그답게 '연극부 선배에게 권유받아 보러 간 무대가 멋있어서 덜컥 입부 신청을 해버렸다'며 생각 없이 들어갔고, 나머지는 카라마츠가 얼마나 버티다 연극부를 나올까 내기를 걸 정도로 그가 부활동을 계속해나갈지 기대하지 않았다. 어느 학교라 해도, 연극부는 제법 공을 들여야 하는 귀찮고 힘든 부라는 인식이다. 무대에 서서 빛나기까지 노력하는 시간들을 감내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거기다 초반에는 가만히 서 있는 나무나 지나가는 행인 같은 거나 하면서 보낼 게 뻔한데 그런 시간들을 눈에 띄고 싶어 하는 타입인 그가 기다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설마, 신입인 1학년에게 주연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그 자리에 카라마츠가 들어갈 줄은 몰랐다. 

잽싸게 내기할 때 '빨라도 1학년 이후'로 바꾼 토도마츠가 수를 써 준건지, 아니면 소음공해라며 욕을 들어가며 연습한 카라마츠의 노력이 인정받은 건지 카라마츠가 주연 자리를 따 낸 것이다 

"다른 녀석들보다 안 떨고 오버라도 생동감있게 한다며 칭찬받았어." 

쑥스러워하며 카라마츠는 주연을 따낸 얘기를 했다. 뭔가 한 듯 한 토도마츠도 그렇고 다들 경악했다. 아무리 학교에서 열리는 작은 공연이지만, 사고 쳤다고 주목받는 게 아니라 연극이란 멋진 무대에 서서 주목을 받는다는 건 처음이었다. 카라마츠도 그런 흥분을 애써 눌러가며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했고 제법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다. 

그 모습이 무척 멋있었다. 차남이란 역할도, 연극의 주연이란 역할도. 그 모습이 내 등을 떠밀었다 

 

사실 너도 되고 싶은 모습이 있을 거야. 

, 이렇게 변할 수 있는걸. 이렇게 될 수 있는 걸.

 

오소마츠 형이나 다른 형제들과 해오던 장난들은 짜릿한 맛이 있었지만, 그런 것들도 중학생이 되고 나자 유치하게 보였고, 혼나거나 놀림 받는 게 되어버렸다. 또래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경기 같은 것들로 떠들썩했고, 축구나 캐치볼을 하며 노는 녀석들, 공부한다며 열심인 녀석들, 부활동에 푹 빠진 녀석들을 보며 자기가 원하는 것이 뭔지 고민하고는 했다. 그런데 나랑 다를 바 없던 카라마츠가 형이 되고, 무대의 주역이 되었다 

그래, 나는...인정받고 싶었어. 마츠노 여섯 쌍둥이 중 하나가 아니라, 마츠노 쵸로마츠라고. 

그 뒤로 날 떠민 카라마츠의 모습은 어느새 잊고 살았다 

노력했지만 발버둥 쳐도 올라갈 수 없는 길을 걸으며 

실연을 알고 

현실을 알고, 

체념을 알고, 

평범함을 원하고, 

그러나 그마저도 얻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수없이 기어오른 벽에서 굴러 떨어지며, 난 점차 익숙하고 쉬운 길들을 고르게 됐다. 

 

* 

 

피 뭍은 커터칼 같은걸 품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 

카라마츠를 동경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커터칼을 만지작거린다. 지금도 가끔은 동경하는 형이지만, 그 형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이 마음을 쑤셔온다. 

그의 신호는 커터칼을 널부러놓은 것뿐일까. 카라마츠니까, 알기 쉬운 표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오히려 커터칼은 손목을 긋다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던져놓은 인상이었고. 그 표지를 찾아서 방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한다. 방 청소 같은 건 진작 잊어버렸다. 서랍에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를 일일이 꺼내 훑거나 카라마츠가 이전에 가져온 투명한 잔을 햇빛에 비춰보며 살펴보거나 하는 부질없는 짓들을 해가며 애를 썼지만 찾을 수가 없다 

나라면 어디에 숨길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숨겨놨지만 누군가 눈치채주길 바라는 장소나 물건은 쉽게 떠올릴 수 없다. 꽁꽁 숨겨놓고 싶은 거라면 잔뜩 있지만. 나만 손대는 취직 잡지 같은 거라면 또 모를까... 

책장으로 시선을 옮긴다. 맨 윗칸에 내가 사다 놓은 구직 잡지들 옆으로 카라마츠의 기타 악보집들이 몇 개 꽂혀있다. 아빠한테 받거나, 폐지에서 주워오거나, 가끔은 자기 돈으로 사오는 악보집들. 폼 잡는다며 핀잔을 줄 때나 카라마츠가 펼쳐놓고 기타 연주를 하고 있을 때 빼곤 그 악보집들을 볼 일이 있기나 했을까 

손을 가져가 악보집들을 꺼내려는데 유독 불룩하게 나온 책이 있다. 그 책을 끄집어내니 조그만 수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수첩을 펼쳐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XXX 

///

   

 

XXXO 

///// //\  

 

카라마츠의 글씨체를 기억하고 있다. 급하게 갈겨 쓴 필기라도 알아볼 수 있도록, 오히려 멋을 조금 부려가며 썼던 그다. 형제들 그 누구도 이런 글씨를 쓰는 사람이 없었고, 한두 장에 적어진 메모를 보니 카라마츠의 것이 맞았다. 휘갈겨댄 날짜와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시들을 보며 오싹하기까지 했지만, 날짜를 더듬어간다. 그 전에도 간간히 날짜가 적혀 있고 빗금이 쳐져 있었지만 납치극이 있었던 날을 기점으로 매일매일 기록된 날짜와 빽빽해져가는 빗금은 빽빽해졌다. 납치극 이후에는 이전에 없던 O표시까지 생겨나 당혹감을 준다 

카라마츠는 무언가를 병적으로 표시해놓고 있었다. 그게 뭔지를 사실은 눈치 채고 있지만, O표시와 주머니 속의 커터칼 개수를 세어보며 비교까지 하고 있지만, 굳이 이게 뭔지를 명확히 하고 싶지 않다. 넘어가는 수첩이 점차 흐릿해지고 동그라미고 빗금이고 구분이 가지 않는다. 실감해버린다. 카라마츠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눈물을 셔츠 자락으로 훔치며 수첩을 넘기고 넘긴다. 그 와중에는 종종 밑줄이 쳐진 날짜가 있었다. 저 날은 분명, 쥬시마츠가 창가에 학알이 담긴 병을 놔둔 날. 그리고 저 날은 지붕에서 나와 카라마츠가 단 둘이 술을 마신 날 

"정말...어디까지 상냥한 거냐고...멍청이가..." 

자살 기록이나 해대는 와중에도 형제들이 잘 해줬던 날들을 따로 표시해놓는 바보다. 우리들에게, 나에게 실망한 거 아니였냐고. 실망해서, 자기가 힘들다는 얘기를 꺼내지 못한 거 아니였냐고. 그런 주제에 위로받았다며 엷은 미소를 지었을 그를 상상한다. 그런 점만큼은 상냥한 형이다. 형제들을 사랑하고, 걱정 끼치고 싶지 않고, 있는 폼 없는 폼을 잡아가면서까지 의지할 수 있는 형을 어필하고 싶었던 카라마츠. 그에게 건넸던 위로는 아주 작지만 분명히 전해졌다. 

 

조금 대담해져볼까. 

병원에서는 나머지 형제들이 카라마츠를 지켜주고고 있다. 조금 더 느긋이 돌아가도 될 거야 

가방에 병원에서 지낼 때 쓸 옷가지나 칫솔이 같은 걸 쑤셔 넣은 뒤, 고등학교 졸업앨범과 중학교 졸업앨범을 펼쳐 몇 개의 연락처를 옮겨 적는다 

집에서 전화하면 엄마가 걱정하실 테니까 공중전화로 해야겠지. 

카라마츠를 알고 있는 반 친구나 연극부 동기들 전화번호를 주머니에 넣고, 커터칼들은 검은 봉지에 넣어 다락 한 구석에 숨겨둔다. 이따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향하겠다는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카라마츠는 분명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일이 있다. 바보니까 눈치 채지 못하거나 잊어버리고 넘긴 일일수도 있고, 자기가 꼴사나워보일까봐 말하지 않은 거일수도 있고...그게 최근 어떤 일을 계기로 카라마츠를 조여오기 시작했고, 우리들이 카라마츠의 도움을 무시하고 험한 짓을 해버린 것으로 걷잡을 수 없게 된 것이리라 

내 뇌 속에선 그동안 알고만 있고 신경 쓰지 않았던 일들을 연결해가며 대강의 시나리오를 펼쳐내고 있다. 거기에 운이 좋으면 이 연락처들이 그가 잠 못 이루게 된 사건을 안내해 줄 것이다. 진작 알아주었다면, 그리고 시답잖은 납치극이나 벌린다고 비난하지 않았더라면, 일은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카라마츠 형을 괴롭혀왔던 일들을 찾아서 카라마츠 형은 나쁘지 않다고 말해줘야 해. 멋대로 짊어진 형의 자리지만, 형은 그 자리를 지키려 노력해왔으니까. 동경하는 형일 때도 있었고, 형은 커녕 멀찍이 떨어져 남 취급을 하고 싶을 정도로 안쓰러운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눈을 뜨면 이렇게 말할게.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공중전화부스에 들어가 수화기를 집어 들고 동전을 집어넣어 버튼을 누른다 

수신음이 가더니 알듯 말듯한 목소리가 전화를 받는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서 나의 용건을 얘기해나간다 

자기는 잘 모르겠다며 시답잖은 안부나 묻는 말이 되돌아왔다. 

몇 번 동전을 집어넣고, 수신음만 울리거나 잘못된 전화번호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꿋꿋이 수화기를 들었다 놨다했다. 

이윽고, 연결된 전화에서 원하는 답을 수화기 너머에서 들을 수 있었다.

  

 

 

 

 

 

 

 

* 

 

 

 

  

 

 

 

 

 

 

새하얀 풍경 속에 내가 있다  

아니, 거기에 내가 있다는 건 인식뿐으로 몸이 있다는 감각은 전혀 없지만. 

그저 텅 비어 있는 세상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있다는 걸 느낀다. 

그 뿐으로 다른 게 있진 않은 것 같다. 

새하얀 풍경은 갑작스레 검게 물든다 

새하얀 공간보다도 내가 옅어져가는 기분이다. 

느껴지지 않는 감각을 붙잡아서 내가 여기 있는 걸 확인받고 싶다. 

한편으론 그냥 내가 있다는 인식을 필사적으로 붙잡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어 혼란스럽다. 

이런 텅 빈 공간 속에서 명확한 것은 딱 하나,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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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디어 후반부가 시작되었습니다. 따란!......

4화까지 쓰고 한 달 지나 6화까지 쓰고 세 달이 지나버렸습니다.

의도치 않은 휴재로 조금 실력이 나아지기는개뿔 방치했더니 더 의미불명의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거 말이 이어지는 작품이지 각각 얘기에서 거의 따로 놀고 있는 거 아닌가 싶고 ㅋㅋㅋㅋ

카라른인 주제에 쵸로카라인 주제에 그런 느낌 하나도 안 나고ㅋㅋㅋㅋㅋㅋ 뭐냐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더욱 의미불명인 타이틀을 직접 그려서 걸었더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느낌으로 반쯤 미친듯이 썼습니다. 의미만 통하면 퇴고는 안 할 거 같네요.(어이)

요컨대 분위기입니다. 분위기만 느끼고 가시면 됩니다...(도망)


쉬는 동안 놀랍게도 덧글 달아주시며 잘 보셨다 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진짜 감동먹었는데 어째서...?라는 의문도 들고 했습니다만 덕분에 쓸데없이 의욕과 책임감과 중압감이 늘었습니다.

방치하려 했던 건 아니지만 자기결말을 위해서, 그리고 다음 화를 기다려주시는 분들을 위해서(...?) 대강 짜여진 틀을 가지고 8월 초까지 결말을 향해 달려갈 예정입니다! 

빈 잔은 12화+외전으로 갈 거 같구요...분량은 매 화마다 들쭉날쭉 할 거 같습니다. 퀄은 늘 그렇듯 망퀄...

쓰는 와중에 통온에서 금손님들 소설도 데려와 읽어서 더 성장할 수 있을런지...ㅋㅋㅋㅋ

봐주시는 분이 없어도 상관 없어요. 자기만족입니다 늘...후후후...

그럼 이번 주 내에 8화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아무도 안 봤다고 한다)

 

 

Posted by 하리H( )Ri
2016. 5. 29. 22:14

[오소마츠상 / 쵸로오소] 넌 나를 꿈꾸게 해

*BL.

*국내방영이 싯구금이지만 그런거 없...지 않습니다. 매우 거시기하지 않을 뿐...

*오랜만에 씀, 막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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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로마츠 시점)


오소마츠 형은 알고 있을까.


오늘도 내 오른쪽에서 오소마츠 형이 태평스레 자고 있다.

그런 형을 의식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리게 된다.

후-하아-후우-하아아-

심호흡을 하며 심장박동을 가라앉히고선 형제들의 소란스런 잠버릇들 속에서 어떻게든 잠을 청하려 애썼다.

살짝 손을 뻗으면 오소마츠 형에게 닿을 수 있다.

형의 몸을 만질 수 있다.

그러나 오소마츠 형의 몸 근처까지 간 내 오른손은 다시 내 몸 위로 돌아왔다.

형의 몸에 닿지 못한 채로, 오늘도 내 손은 나 스스로를 위로해줄 뿐이다.

보름달 뜬 밤, 기분이 좋아지는 듯 몽롱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어이, 일어나."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그러나 내 주변에는 아무래도 익숙지 않은 까만 어둠 뿐이었다.

"뒤야, 뒤라고."

뒤를 돌아보자 볼을 찌르는 감촉이 느껴졌다.

"헤헹. 쉬운 녀석이네, 너."

거기에는 우리 형제들과 같은 얼굴을 한 녀석이 있었다.

자세히 보면...오소마츠 형과 닮은 듯한...거기에 뿔이라거나 날개라거나 달려있었지만.

"오소마츠 형...이야?"

"음...이름은 없는데. 심심함에 미칠 거같은 위대한 몸, 이라고 해둘까."

저런 녀석이 있다는 건,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의미겠지.

"네가 꿈꾸고 있는 건 맞지만, 그 꿈에 내가 간섭해 들어온거라고?"

마음도 읽어버리는 거냐, 이 녀석.

"그래, 그 위대하신 몸께서 굳이 나같은 니트의 꿈에 찾아오신 이유나 들어보자."

"뭐야, 그 존대하는 듯 낮춰보는 미묘한 말투는."

"됐고."

"말했잖아? 심심해서 미칠 거 같다고."
명백히 뭔가 꾸미고 있는 듯한 표정이 기분 나쁘다.

오소마츠 형도 가끔 저런 표정을 짓지만, 같은 얼굴이래도 정감이 가질 않는 녀석이다.

"고작 한 뼘도 안 되는 걸 못 뻗어서 말이야. 심심해서 계속 보고 있었더니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었다고?"

이...이 녀석...다 보고 있었던 거야?

"지금 시비 걸러 온 거냐?"

주먹을 휘둘렀지만 녀석은 여유있게 피해버린다.

내 손은 닿지 않을 거리에서 유유히 날개짓하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짓는다.

"뭣하면 내가 도와줄까?"

"뭐?"

"너의 그 마음, 현실이 되게 해 줄 테니까."

내 마음을 현실로 이루어준다.

이 녀석이 하는 말들이 하나하나 나를 찔러온다.

"믿어보라고? 난 거짓말은 하지 않거든."

그러고선 왼쪽 주먹을 꽉 쥔다.

녀석의 손에서는 녀석의 웃음만큼이나 기분나쁜 아우라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녀석은 손을 펴서 내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사탕?"

"한번 먹어봐. 달콤해서 맛있어."

뭐, 꿈이니까 괜찮겠지.

녀석이 준 사탕을 입에 넣자 마치 흑설탕같은 씁쓸한 단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자아! 이제 네가 원하는 것을 그 약에 빌어보는거야!"

녀석이 마술사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눈을 현혹시킨다.

내가 바라는 건 뭐지...

형에게 닿는 것?

그것 뿐인가?

다시금 몽롱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녀석의 말이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인간들은 나를 악마라고 부르더군. 그게 내 이름일지도."


오소마츠 형은 알고 있을까.

밤중에 내가 오소마츠 형과 닮은 악마를 만나는 꿈을 꿨다는 것을.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어째선지 입안에 씁쓸하고도 단 약의 맛이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

오소마츠 형은 아예 바닥을 구르고 있었고 쥬시마츠는 180도 돌아 누웠는지 발만 보였다.

뭐하자는 건가, 나는.

다시금 눈을 감고서 잠들기 위해 양이라도 세어본다.

양이 한 마리, 양이 두마리...

그러나 양을 세는 와중에 불쑥불쑥 떠오르는 꿈 속의 일들 때문에 결국 그대로 잠들지 못했다.


"쵸로마츠? 쵸로마츠!?"

오소마츠 형의 부름에 고개를 슬쩍 돌아봤다.

아, 또다.

볼을 찌르는 느낌.

"따하하하하핫! 이거에 걸리다니~ 쉬운 녀석이네, 쵸로마츠."

"아침부터 철없는 장난하지 말라고, 오소마츠 형."

어라. 데자뷰인가.

"오늘은 텐션이 낮네~ 라이징은 관둔거야?"

"언젯적 라이징이야. 그만 놀리라고."

"이렇게 재밌는 걸 관두겠냐 너같으면ㅋㅋㅋㅋㅋ"

결국 팔꿈치로 형 배를 세게 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보다 쵸로마츠, 어제 밤에 잘 못 잤어?"

"왜."

"너답지 않게 꼼지락대거나 하던걸?"

왜 그런 걸 눈치채는 거야.

"못 자긴 했지. 굴러다니던 주제에 잘도 아네."

"그야, 형은 너네들에 대한 거라면 뭐든 알고 있으니까?"

이유가 되지 않아.

모르고 있는 주제에.

내가 너한테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도.

형은 장남이라는 이유로, 뭐든 알고 있는 척을 해댄다.

그래서 자신이 몰랐던 동생들의 일면을 마주했을 때는, 치비타에게 징징거리고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는 바보같은 형.

그래도 여차할 때는 의지가 되기도, 마음이 맞기도 하는 형이다.

뭐라고 해도 여섯 쌍둥이 중에서도 나와 오소마츠 형은 죽이 잘 맞는 파트너인걸.

그런 형을 두고, 나는 꿈꿔버리고 만다.

"내 것이 되어줘, 오소마츠 형."

어라? 갑자기 이게 왜 입밖으로 나온거야?

"뭐라고? 못 들었는데?"

오소마츠 형이 내 몸을 돌려세운다.

잘못 말했다고 말할까.

그러나 마음 속에서 오소마츠 형에 대한 감정을 토해내야 된다고 외치고 있다.

심장이 미칠듯이 뛰고, 마치 이 말을 그대로 삼키면 내가 죽어버릴 것처럼.

"내 것이 되어달라고, 망할 장남 새꺄!"

표현이 한층 더 거칠어졌다. 

아, 이런 모습이 원래 나였지.

언제나 한 번쯤 더 생각하고 걸러버리니까.

"의미를 모르겠네, 쵸로마츠. 네 것이 되어달라니?"

오소마츠 형은 당황한 듯 묻는다.

"말 그대로야! 바보야!"

그대로 오소마츠 형의 손목을 붙든다.

모든 건 내 본능대로, 내가 숨기고 있던 마음대로.

무의식 속에서 올라오는 감정들은 나의 온 몸을 붙잡고선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는 듯 싶다.

형을 끌고서 아무도 없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의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이 어째선지 귀에 들려왔다.

"쵸...쵸로마츠?"

오소마츠 형은 끌려온 채 방문을 닫으며 말을 걸었다.

아, 이제 생각하는 것도 다 귀찮아졌어.

"오소마츠 형, 꽤나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는데."

오소마츠 형은 형을 붙잡은 내 손을 다른 손으로 잡아주었다.

"나, 형을 좋아하는 거 같아."

"갑작스레 고백이냐."

"무슨 의민지 이해하고 있는거야?"

"의미야 알 수밖에 없잖아? 날 갖고 싶다고 했으니까."

이 바보가 금방 이해해버려서 오히려 맥이 풀렸다.

답을 들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 너가 그동안 잠자리에서 내 몸을 손대려다 만 적이 몇 번 있었던 건 아는데."

알고 있었던 거야?

"그게 그런 의미인 줄은 몰랐네."

어쩐지 형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하게 들렸다.

역시, 싫은걸까.

두근대는 마음은 드디어 고속열차라도 탄듯 질주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

"그런 식이니까...다 알고 있는 듯 얘기하면서...또 능청스럽게 빠져나가버리고..."

갑작스레 눈물이 쏟아졌다.

아, 이게 그건가...악마놈이 내게 먹인 약 때문에 이런건가...

"아...울지 말라고, 쵸로마츠?"

형은 느슨해진 손목에서 내 손을 떼어내더니 날 붙잡았다.

"역시 형은 바보네~ 동생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

"만지고 싶다는 건, 역시 거기?"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오소마츠 형?

"동생이 이만큼 형을 좋아해준다는데, 거부할 이유가 없잖아?"

"진짜 무슨 소린지 이해한거냐고! 형!"

"형이 너네들을 떠나보내봤으니까 알지. 너희들이 날 필요로 해줘야 내가 버틸 수 있다는 걸."

"하지만..."

"네가 그런 의미로 날 필요로 해준다면, 나도 그런 의미로 너에게 답해줘야지 않겠어?"

오소마츠 형은 나를 앉히더니, 바지도 팬티도 벗어버린 채 벌렁 누워버린다.

아까는 무미건조하게 들렸던 형의 목소리는, 평소와도 같은 목소리로 돌아왔다.

"그런..."

눈앞에 형이 자신의 몸을 대주고 있다.

막상 거기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숨막힐 듯 뛰는 심장이 외친다.

-이제 손을 뻗을 수 있잖아? 자, 뻗어보라고. 마음껏. 원하는 대로.

그리고 그 마음에 몸을 맡겨, 나도 하의를 벗어던진 채 형에게 뛰어든다.


이 모든게 꿈일까.

꿈 속에서 꾼 꿈에 이끌려 이런 꿈을 꾼 걸까.

황홀하다못해 몽롱해지는 의식 속에서 오소마츠 형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날 떠민 악마가 형의 얼굴이 아니었다면 이런 꿈을 꾸지 않았을까.

흩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쓰고도 달고도 짠 맛이 입에 감돌았다.  


----------------------------------------------------------------------------------------------------------

1.더빙 쵸로마츠의 애드립과 욕과 거친 입이 그렇게 찰지다면서요? 난 살릴 수 없어...

2. 내가 연성 고자라니

나 : 오른손에… 감각이 전혀 없으니… 어떻게 된 거요?
의사양반 : 아… 하필이면 총알이 영 좋지 않은 곳에 맞았어요.
나 : 그건 무슨 소리요?
의사양반 : 에… 어느 정도 완쾌된 뒤에 말해주려고 했는데... 잘 알아두세요. 선생은 앞으로 오른손을 잘 쓸수가 없습니다.

에, 다시 말해서 연성을 잘 할 수가 없다는 것이오. 에, 총알이 가장 중요한 곳을 지나갔단 말입니다.
나 : 뭐요? 이보시오, 이보시오 의사양반!

3. 오랜만에 와서 똥글쓰고 앉아있는 저...언능 잘 머릿속으로 정리해서 다른 글 써오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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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H( )Ri
2016. 4. 10. 00:43
이번엔 BGM도 가져왔습니다.


-오소른 전력 60분 「망상」 참가작(http://twitter.com/OsoRight_60/status/718794733791752193)

-소재는 Aqua Timez의 그림엽서의 봄(絵はがきの 春)에서 가져왔어요.

원곡은 첨부할 수가 없어서 음원사이트서 한번 들어보시고 이건 조금 빠르게 변형된 버젼인 거 같네요. 자꾸 듣다 보니 이게 원곡 속도였나 좀 헷갈림.
가사는 이 쪽에서(http://hun2two.blog.me/40141271073)

-이치오소; 청춘시대물; 캐붕은 언제나; 형제가 아니라는 설정





링- 띠링-

핸드폰의 수신음이 울렸다. 고양이 스트랩을 단 핸드폰을 집어든 이치마츠의 손은 조금 떨렸다.

「여어-이치마츠 군! 이런 거 찾아버렸어~ 그립네~」

문자메시지와 함께 첨부된 사진 속에는 중학교 시절 그대로 어른으로 자란 오소마츠의 얼굴과 엽서 한 장이 찍혀 있었다. 중학교 졸업하고 나서 가끔 연락 오더니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는 그 연락조차 끊겼던 오소마츠였다. 한 3년 쯤 되었나...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보내오는 것도 오소마츠답다면 오소마츠다웠다. 저 엽서는 틀림없이 직접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써서 보낸 엽서다. 수채화로 마음가는대로 벚나무를 그렸는데 기쁘게 받아줬던 오소마츠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작업실을 나서 방에 들어가 중학교 졸업앨범을 뒤적거린다. 3학년 A반. 우연히도 성이 마츠노로 같아서 출석번호가 나란히, 사진도 옆에서 찍었던 오소마츠. 그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활짝 웃은 얼굴을 보자니 중학교 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반 배정에서 자신의 이름 밑에 똑같은 마츠노를 보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마츠노 오소마츠'인가. 뒤에 붙은 마츠까지 나와 비슷해서 웃음이 나왔다. 

"마츠노 이치마츠 군?"

그때 누군가 등을 툭 두드렸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 순간, 손가락으로 볼을 찔러오는 조금 무례한 녀석. 그게 오소마츠와의 첫 만남이었다.

"에, 누구..."

"마츠노 오소마츠! 참고로 널 알고 있는 건 학교에 걸려 있는 그림을 봐서라구? 옆에 사진도 붙어있었고 말이야."

묻지도 않은 걸 잘도 얘기한다. 그만큼 조금 수다스러워 보이고 장난기가 넘쳐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런고로 잘 부탁해, 이치마츠 군!"

처음부터 이름으로 막 부르는 구나.

"나야말로 잘 부탁해, 마츠노 군."

"마츠노 군이 뭐야, 섭섭하게. 같은 마츠노니까 나도 이름으로 불러줘."

"...그럴게."

우연인지 이름이 비슷한 오소마츠와는 엮이는 일이 많았다. 출석번호가 연달아 있어서 처음부터 앞뒤로 앉는다거나  당번을 같이 한다거나 하는 사소한 일까지. 뒷자리에 앉은 오소마츠는 종종 수업중에 졸다가 공책 좀 보여달라고 나를 찌르거나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거나 했다. 귀찮지만, 그럼에도 싫지 않은 기분으로 공책을 빌려주거나 수학 문제를 알려주거나 하며 오소마츠와는 조금씩 친해졌다. 이치마츠는 조금 예민한 구석이 있어서 다른 반 애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데 비해 오소마츠는 밝고 친화력 좋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카리스마 아이돌이라는 표현답게 리더쉽도 있어서 반의 중심이 됐다. 그런 오소마츠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늘어나면서 이치마츠는 그저 이름이 비슷할 뿐인 오소마츠에게 조금씩 동경의 마음을 품게 되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그 마음은 조금씩 커져서, 여름방학이 되어서는 방학동안 오소마츠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데 아쉬움을 품게 되었다. 오소마츠를 보고 싶고, 얘기하고 싶고, 손도 잡아보고 싶고...이런 생각들을 늘어놓으며 미술부실에서 석고상을 데생하고 있었다.

'아. 이런게 사랑...인가?'

조금 충격이었다. 

'아니, 지금 이게 첫사랑인데. 에, 그러니까 내가 오소마츠를 좋아한다고? 남자를?'

얼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다른 부원들은 이치마츠가 당황해하는 걸 보지 못한 모양인지 연필 사각대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보고 싶다, 오소마츠...'

오소마츠는 고교 수험으로 바쁘려나.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는 건 별로 없었다. 방학이 지나면 2학기엔 또 어색해져버릴지 모르니까. 이치마츠의 머릿속은 눈 앞에 있는 캔버스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점심 때가 되어 부활동은 파했다. 운동장을 뱅 돌아서 집으로 돌아가려던 이치마츠의 등을 누군가 툭 쳤다. 

"누구..."

"나, 오소마츠!"

오소마츠가 방학 때 학교에 있다. 오소마츠는 귀가부, 즉 부활동이 없어서 굳이 학교에 올 일이 없을텐데...

"심심해서 학교로 놀러와버렸습니다~ 누구 없나 했는데 이치마츠가 있어서 다행이네."

이치마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오소마츠가 말을 꺼냈다.

"기껏 내가 학교까지 왔다구~ 수다라도 떨다 가지 않을래?"

배는 조금 고팠다. 하지만 아까 깨달아버린 오소마츠에의 감정은 그보다도 더 컸다. 지금 오소마츠를 놓치면, 정말로 2학기가 되서야 만날지도 모른다. 이치마츠는 오소마츠를 따라 운동장 한 켠의 그네 쪽으로 갔다.

오소마츠는 빨간 그네에 앉아서 발을 굴렸다. 이치마츠는 초록 그네에 앉아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오소마츠 군은...고등학교 어디 수험칠 지 정했어?"

한참을 우물대다 말을 꺼냈다.

"으음..."
오소마츠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이사를 갈 예정이라 적당히 그 근처 고등학교를 가게 되겠지?"

"...이사 가?"

"응. 아버지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기서 꽤 떨어진 곳으로 간다고 하더라고."

수험에 대해 정해놓은 건 없었다. 하지만 기왕이면 오소마츠와 같은 학교를 갈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오소마츠는 떠나버리는구나.

"좀 아쉽네, 기껏 여기서 친해진 녀석들이 많았는데."

방학 때 잠깐 보지 못하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2학기가 끝나면, 졸업해버리면, 오소마츠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치마츠는 두려워졌다. 오소마츠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깨닫고 나서 바로 이별의 때를 생각해버려야 한다니. 머릿 속이 뒤엉켰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오소마츠 군은, 좋아하는 사람이라든가 있어?"

갑작스레 말이 튀어나왔다. 이치마츠는 고양이마냥 놀란 채 입을 틀어막았다. 오소마츠는 그런 이치마츠를 바라보더니 씨익 웃었다.

"글쎄-AV에 나오는 누님들은 좋아하긴 하는데-"

오소마츠 답달까, 갑자기 AV이야길 꺼내다니. 틀어막은 입에서 웃음소리가 새어나갔다.

"그러는 이치마츠는 좋아하는 사람 있어?"

역공을 당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그런 걸 물어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거야.

"그,그,그것은 제쳐두고 말이야."

"왜에?궁금한 데 말이지, 이치마츠 군-"

오소마츠는 그네에 앉아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이치마츠를 재촉했다. 아, 이젠 모르겠다. 이것도 저것도.

"손 잡아도 돼?"

"뭐야 그 뜬금없는 대답은."

"잔말말고."

"좋아."

오소마츠가 팔을 쭉 내밀어 손을 이치마츠의 무릎에 갖다 댔다. 이치마츠는 오소마츠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잡았다.

'따뜻하다.'

오소마츠의 손이 따뜻해서 조금 꽉 쥐다가, 문득 자기 손이 차갑다고 느낀다.

"이치마츠 손은 시원하네. 여름에 더운데 마침 잘 됐다."

오소마츠는 잠깐 팔을 빼더니 이치마츠의 앞에 쪼그려 앉고 두 손을 내밀었다.

"자아~잡아줘."

이치마츠는 망설이다가 오소마츠의 손을 덥썩 잡았다. 손에 퍼져가는 온기를 느끼며 자기의 진심을 얘기하고 싶어졌지만, 오소마츠의 반짝이는 눈을 보자니 입이 도통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순간이자 영겁의 시간이 갔다. 방학때도 꺼놓지 않았는지 점심시간이 끝났다는 시종이 교정에 울려퍼졌다. 

"자, 이제 가봐야겠네. 이치마츠, 배고플텐데 나 때문에 점심 떄 놓쳤으려나."

"...그렇지 않아. 오소마츠도 돌아갈거야?"

"학교에 계속 있다가는 아마 쪄 죽을걸. 여름이니까."

그렇게 오소마츠와는 작별 인사를 했다. 집 방향은 정반대. 오소마츠의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심장이 두근대는 자신을 발견한다.

 

중3의 2학기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수험으로 바쁜 녀석들 속에서 오소마츠는 조금 허전해보였다. 이치마츠의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고 커져만 갔지만 여름날, 손을 잡은 이후로는 일상적인 대화만이 오갔을 뿐 더 나아가지는 못했다. 아마 거기서 더 나아갔다고 해도 곧 맞이할 이별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걸로 됐다며 혼자 마음을 삭혔다. 수험도 끝나고, 졸업을 앞두고서 이치마츠는 엽서 크기의 도화지에 벚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 한 장, 두 장, 마음가는대로 그린 벚나무 그림이 쌓여갔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이치마츠는 붓을 물통에 꽂고선 엎드려서 오소마츠를 생각했다.

조금만 일찍 오소마츠를 만났더라면...

 

어딘가에 교실에서, 오소마츠와 다시 마주한 새로운 교실.

「안녕, 오소마츠.」라며 인사를 건네는 아침. 사랑스러운 너의 얼굴을 보며, 너도 날 사랑해줬음 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인사하자마자 넌 손을 마주대어주어서, 너의 온기가 내 차가운 손에 닿아 기분이 좋다. 이런게 너와 체온을 나눈다는 걸까.

방과 후 너는 내게 다가와 이런 말을 해 줄까.

「이치마츠 군, 우리 봄을 찾으러 가볼까?」

「영문을 모르겠네.」

「내가 좋은 곳을 알고 있거든. 둘만이 봄을 만끽해보자고.」

너의 손에 이끌려 어딘가의 언덕을 향하는 나의 심장 박동. 너에게도 분명 전해지겠지. 

너는 춤추듯 바람을 따라가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를 안내한다.

요정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자, 도착했어! 어때, 여기가 나의 비밀 장소.」

거기에는 거짓말같이 커다란 벚나무가 서 있었다. 벚나무 아래에서 코 밑을 비비며 밝게 웃는 너가 있었다.

아마 꿈이겠지 이건. 이렇게 아름다운, 이 세상에 없을 거 같은 풍경을 내가 볼 리가 없잖아.

 

드르렁.

코 고는 소리에 놀라 잠을 깨버렸다. 하, 하릴 없는 망상을 해버렸네. 다만 마지막의 풍경은 잊히질 않아서, 그 풍경을 열심히 도화지에 옮겨 담았다. 오소마츠의 모습도 넣어서. 드디어 마음에 드는 그림을 손에 넣고서 뒤에는 한 자 한 자, 마음을 들였지만 그 말은 진부할 뿐인 잘 지내라는 이야기를 적어서 졸업하는 날 오소마츠에게 주었다.

"에에~이거 설마 나야?"

"응..."

"내 매력을 담기엔 좀 부족한 거 같은데? 그래도 벚나무 예쁘고, 고마워 이치마츠."
"나아먈로."

"소중히 간직할게!"

소중히 간직한다는 말을 들어버렸다. 이걸로 된 거야. 이치마츠는 그 엽서를 전한 걸로 자기의 첫사랑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멀리서 같은 달을 보거나 할 지도 모르지만, 연락이나 좀 나누다 잊혀지겠지.

잘 가, 내 첫 사랑.   

 

그런 시절도 있었다. 그 뒤에 다른 사랑도 해봤다. 그래도 이 문자를, 이 사진을 보면 떠올릴 수밖에 없잖아.

「오랜만이네, 오소마츠 군. 아직도 그런 거 간직해주고, 고마워.」

이치마츠는 졸업앨범을 닫고서 오소마츠에게 답을 보낸다. 이젠 너무 떨어져 지낸 지 오래됐지만, 그래도 그 그리운 마음을 담아서 전하고 싶다. 물론 이런 딱딱한 단문으로는 그런 게 전해지지 않겠지만. 송신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신음이 울린다.

「나 지금 중학교 근처에 와 있는데 아직도 근처에 살고 있다면 오지 않을래? 학교 뒤쪽에 굉장한 풍경을 봤거든.」

첨부 사진에는 학교가 보이는 언덕, 그리고 흩날리는 벚꽃잎.

또 다시 수신음이 울린다.

「이치마츠 군이 그려준 벚나무랑 닮아서 꼭 같이 보고 싶어.」  

문자를 보고선, 이치마츠는 차림새를 신경쓸 틈도 없이 학교 뒤 언덕으로 달렸다.

 

오소마츠, 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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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전력 시간 오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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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H( )Ri
2016. 3. 22. 16:17

[카라른/오소카라]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5-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캐붕,글솜씨없음주의

※5화 카라마츠 사변 기반+기타 에피소드들 소재

※오늘은 조금 힘을 뺀 이야기와 힘을 넣은 이야기가 공존. 뭔 소린지 원.

※그 외 뭐 여러 가지 주의(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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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이름 모를 거리의 인도. 거기에 나는 서 있다. 밤손님은 이제는 낮에도 찾아와 날 유혹한다.

- 자, 이딴 세상에서 사는거 그만 두자고? 편해지는 거야, 카라마츠.

텅 빈 나를 잡아끄는 그 손길에는 언제든 끌려갈 것만 같다. 그 손길에 몸을 맡긴 채 보낸 시간과 그 손길을 외면하며 보내는 시간이 교차하다, 이제는 조금 더 편해지는 쪽을 택하고는 한다. 

도로에는 빠르게 지나가는 트럭이 몇 대 있을 뿐.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은 거리다. 어디지, 라는 생각은 그만둔 지 오래다. 내가 어디에 있든 무슨 상관인가. 나는 어차피 가벼운 존재. 어디서 굴러다닌 들 상관없는 존재. 기왕 이렇게 된 거, 더욱 더 가벼워진 채 어디 먼 곳으로, 먼 차원으로, 여기가 아닌 곳으로 날려갈 수 있다면 좋을텐데. 형제들은 나를 붙들어서 이 세상에 묶여있게 하지만, 그건 진심인걸까. 아니, 나를 위해서인걸까. 그들이 여섯이서 하나인 20년을 부술 수 없어서 날 붙들고 있는 건 아닐까. 사고는 한번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면 멈추질 않는다. 나의 사고도, 그런 것일테지. 날아가고 싶다. 어디론가, 여기가 아닌 곳으로. 그 소망이 나를 채운다. 붉은 신호등도 푸른 신호등도 상관없이, 나의 세계는 어느새 하얗게 물들어간다. 

 

텅.

 

묵직한 감이 나를 강타한다. 소원이 이루어진 듯, 나는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다. 길 건너엔 또 하나의 나가 미소짓고 있다.

이제 곧 편하게 될 수 있어, 그치?

 

 

 

*

 

 

 

토도마츠는 하루를 꼬박 카라마츠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퉁퉁 불어버린 눈에 눈동자에 생기마저 사라진 토도마츠는 수술이 끝나고 병실로 옮겨진 카라마츠의 손을 잡은 채 카라마츠 형, 카라마츠 형 하며 기도하듯 읊조리고 있을 뿐이었다. 카라마츠가 차에 치였다는 소식을 듣고선 모두들 놀라며 병실로 달려와서는 교대로 토도마츠와 카라마츠의 곁을 지켰다. 아, 거기에는 이치마츠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치마츠는 병실에 와서 카라마츠를 그저 응시하다 나가더니 병실 밖 복도에서만 계속 있었다. 병실의 분위기에 지친 형제들을 위로해주는 건지도 모르지만, 내가 밖에서 있을 때 이치마츠는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무언가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듯 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나도 입을 다문 채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병실로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쵸로마츠가 집에 다녀오겠다며 사왔으면 하는 것, 가지고 왔으면 하는 것을 적어가서 병간호에서 잠시 제외. 토도마츠를 카라마츠하고만 있게 하는 시간도 필요할 것 같아 쥬시마츠를와 함께 병실 밖으로 나왔다. 

"오소마츠 형아, 카라마츠 형 손목에 상처가 많았대...난 손목보호대를 빌려간 게 정말 손목이 아픈 걸로만 생각했는데..."

"응..."

"카라마츠 형, 마음에 상처가 역시 많았던 거겠지? 우리 때문일까?"

"......"

카라마츠는 형제 탓을 잘 하지 않는다. 사소하게 당황스러워 하거나 짜증을 내는 일은 있어도, 정말 심각한 일에 말려들었을때 다른 형제가 연관되어서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 일이라도 괜찮다며 넘기곤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싸움이나 하고 다니면서 다른 형제들에게 피해를 주고 다닌 나와는 다르게. 나 때문에 가장 곤란해 했던 것도 카라마츠였다. 어느 날 부턴가 남을 상처입히고 싶지 않다면서 쌈질에서 빠져나왔다가 내게 당한 복수를 한답시고 덤벼든 불량배에게 당하고 오는 일이 잦았다. 카라마츠도 카라마츠라, 당하고만 오진 않았지만 이전보다는 확실히 힘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대신에 남을 즐겁게 해주겠다며 연극부에 들어가서는 이상한 연기들만 잔뜩 하고는 했던가.

"카라마츠는,"

좀 더 남을 의지할 필요가 있어.

라는 말이 입에서 맴돈다. 늘 생각하는 바지만, 그게 카라마츠가 받은 마음의 상처를 해결하리란 보장이 없다. 아니, 애초에 카라마츠의 기대를 저버린 건 우리들이니까. 특히, 내가 저버렸으니까.

"걱정마. 쥬시마츠. 카라마츠의 의식이 회복되면, 카라마츠를 웃게 해주면 되는거야."
가볍게 말한다. 웃게 해준다고? 그 웃음이 진짜 웃음일지도 모르는 주제에.

"...그걸로 되는걸까?"

"당연하지."

그럼에도 나는 가볍게 답을 내린다. 그도 그럴게, 나는 카라마츠만이 아니라 쵸로마츠,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의 형이기도 하니까. 장남이니까.

 

 

 

최근에 카라마츠와 제대로 대화했던 게 언제였지.

아, 카라마츠가 찻집 알바를 할 때. 그 때였나.

그 이후로, 카라마츠와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아니, 나눌 수가 없었다.

카라마츠의 자해를 보고 말았으니까.

어딘가 어두워져 가는 카라마츠를 눈치채고 있었지만, 찻집 알바를 한답시고 놀려주던 때에는 상황이 거기까지 치닫았다는 것을 어째서 알지 못했던걸까.

「좋은게 좋다」, 나의 모토가 흔들린 순간이었다.

 

카라마츠의 납치극이 적어도 겉보기엔 조용히 지나간 뒤, 새로운 머신이 들어왔다는 전단지에 평소 가던 파칭코와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신 머신에 한 번도 안 가본 곳, 딱 운이 터지기 좋은 곳이니까. 그 결과, 따긴 땄다. 하지만 대박도 아니라서 애매했다. 운세로 치면 소길. 한두 판 더 하면 대박이 터지거나 쪽박을 차거나 할 거 같아 오늘은 여기서 손을 놨다. 일단 따냈다는 데 만족하자는 생각이었다. 기왕 낯선 거리로 왔으니까 넘쳐나는 시간을 조금 보내볼까하고 어슬렁거렸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오전 열한 시, 할 일 없는 니트와 대조되는 분주한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따낸 돈으로 무얼 할지 궁리하던 차에, 어딘가 익숙한 사내를 한 찻집에서 발견했다. 우와, 우리같은 최하층 밑바닥 카스트는 들어가지도 못할 분위기의 찻집. 스타버와는 다른 느낌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만 오갈 거 같은 찻집에 나랑 같은 얼굴이 앉아 있었다. 저런 데라면 톳티, 가 아니라 저 열심히 뭔가 적어내려가는 모습은 카라마츠!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찻집을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무언가를 받아적고 있었고 맞은편에는 우리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카라마츠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설마.

그 카라마츠가 취직을 하려 드는건가? 자립은 하지 않을 거라구~, 날 먹여살리지 않겠나? 같은 말을 내뱉는 안쓰런 카라마츠가 취직을 스스로 하려 든다고? 

그대로 주변 벤치를 찾아 앉아서 찻집을 감시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자 초조해졌다. 본격적인 느낌이라서. 그것보다는 카라마츠의 표정이 더 신경쓰였지만. 우리들 앞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쑥쓰러운 미소라거나 진지한 끄덕임이나, 니트 탈출보다도 그런 게 날 더 초조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이윽고, 카라마츠가 찻집 문을 열고 나왔다. 카라마츠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그의 등 뒤로 돌아 어깨를 확 잡았다.

"어흐어어에에에엑!"

"뭐야 그 반응은, 푸하하."

 카라마츠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형님이 왜 여기 있는 거지? 혹시, 날 따라온..."

"그런 거 아니니까. 이 근처 파칭코 가게 갔다온 참."
"아,"

설마 이 녀석, 날 한심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 표정, 대박 터뜨린 것도, 쪽박 찬 것도 아닌 거 같은데."

"뭐, 그렇지. 따긴 땄는데 정말 조금이라서 말야. 그보다, 잠깐 앉아봐."

"왜 그리 진지한 표정인가?"

"카라마츠...아까 봤는데 혹시 취직하는 거야?"

"취직?"

"응, 방금 나온 찻집에서 뭐 받아적고 있는 거나 분위기가 그래보였는데."

"아, 이건 잠깐 부탁받은 거다."

"그래?"
"아까 얘기하던 사람, 고등학교 때 같이 부활동을 했던 나카무라 군인데 일주일 정도 볼일이 있어서 자기 대신에 잠깐 일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지. 거리에서 우연히 만주쳤다가 권유받아서 오늘 찻집 주인 아저씨와 인사하고 일에 대해 설명을 듣고 한 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고 서빙이나 계산, 잡일을 해 주는 거라며. 카라마츠는 내가 걱정한다고 생각했는지 제법 상세하게 얘기를 해줬다. 뭐야, 취직은 아니었나...다행이네, 다행.  그래도 잘 상상이 가진 않았다. 워낙 우리 앞에선 폼잡고 있거나 하는 게 익숙한 녀석이니까 사람을 접대하는 일을 하는 게 가능은 한건가 싶다. 물론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면 다를 거 같지만. 의외로 쭈뼛쭈뼛하게 손님 눈도 못 마주치고 차만 딱 갖다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했더니 우리 집 차남, 귀여워서 죽어버릴지도.

"형님, 듣고 있나?"

망상을 펼치는 동안 카라마츠가 이것저것 얘기한 모양이다. 어차피 아까의 일을 더 구체적으로 얘기했을 거 같지만. 

"그래. 어쨌든 힘내라."

"오우."

 

나 외에는 잠깐 알바를 한다는 것 정도만 형제들에게 전해서, 카라마츠가 찻집 알바를 한다는 건 나만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형제의 레어한 모습을 보는 걸 독점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으려나. 아침 열 시에나 일어나는 니트가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선 평소에 입던 안쓰런 패션이 아닌 깔끔한 옷을 입고 눈을 비비며 나가는 광경을 쳐다보며 조금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언젠간 우리 형제들도 저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제각각의 일을 찾아 흩어졌다 저녁에 돌아오는 생활을 하게 될까,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간만에 하는 일에 지쳐 돌아온 알바 첫 날, 저녁을 먹고 일찍 들어간 카라마츠는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일주일은 짧은 시간이지만 그 중 하루가 평소와 다른 낯선 하루라면 그게 길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 카라마츠는, 그런 기분일까.

다음 날, 카라마츠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카라마츠가 늘상 하듯 거울을 보며 머리를 정돈하고, 말끔한 옷을 차려입고, 전신 거울 속에 비친 나를 쳐다봤다. 물론 멋있지, 이 몸은. 그 채로 집을 벗어나 거리를 배회하다 찻집이 연다는 열 시 즈음에 맞춰 갔다. 여전히 우리같은 밑바닥은 들어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기지만, 다시금 보니 어쩐지 평화롭고 잔잔해 보이는 찻집. 얇은 커튼이 쳐진 창문 너머에는 카라마츠가 성실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가게 정리를 하고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찻집 문을 열어젖혔다.

"카라마츠~ 이 형이 와줬다고!"

유독 큰 소리로 카라마츠를 불러봤다. 가게 안에는 손님은 없고, 주인 아저씨와 카라마츠만이 일하다 말고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에, 오소마츠?"

카라마츠가 당황한 듯이 나를 쳐다봤다. 그럴 법도 하지. 가게 문을 떡하니 열어젖히고선 한 손으로 기대고 나름대로 폼을 잡고 있으니까.

"가끔은 이런 상류층의 문화도 누리면 좋잖아! 그래, 지명은 카라마츠! 오늘 나와 시간을 보내줘야겠어!"

"그거 상류층 아니니까...여기 어딘가의 가게도 아니고..."

"지금은 손님도 없으니까 괜찮은 거 아냐? 어때요, 아저씨?"

아저씨가 나와 카라마츠를 번갈아보더니 머리를 긁적이다 입을 열었다.

"지금은 한가한 시간이니 마츠노 군, 형과 상대를 해줘도 좋네."

"에, 그렇지만..."

"물론 음료는 공짜가 아니니까, 마츠노 군."

"알겠습니다."

나는 볕이 잘 드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 카라마츠는 나와 마주보고선 앉았다. 주인 아저씨가 주문을 받지도 않고 내 쪽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카라마츠 쪽에는 진해보이는 커피를 놓았다. 이름이 에스프레소 도...도피소였나.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카라마츠가 먼저 운을 띄웠다.

"그냥 우리 카라마츠가 어떻게 일하고 있나 보고싶어서 온거야. 딱히 할 일도 없고 말이지."

"그건 그렇네. 다른 애들은?"

"둘만의 비밀, 이란 걸로 하고 싶어서 말 안했어."

"나는 몰라도 이렇게 말끔하게 차려입은 걸 보고 아무 말도 안 했다고?"

"그럴까봐 눈에 띄기 전에 나왔지."

"얼마나 일찍 나온거야..."

카라마츠는 내 말을 들으면서 살짝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모처럼 둘만의 시간인데,"

그 멋쩍은 미소를 짓는 입술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

"이 형에게 고민거리가 있다면 털어보지 않을래?" 

입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집어들고선 한 모금 들이켰다.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 가게 문 바깥쪽에 달린 종소리, 원두 내리는 소리, 그 소리들 사이에서 카라마츠의 목소리는 섞여나오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커피잔을 잡고 커피를 들여다볼 뿐, 내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기미를 보이진 않았다. 저 모습은 뭘까. 망설이고 있는 걸까. 내겐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인걸까. 그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녀석을 재촉했다간 뭣도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는 고민이 없는게 고민이란 말이지."

일단 나의 이야기를 꺼냈다. 대화를 이어가는 건 일단 한 마디의 말이다.

"너희들을 걱정하긴 하는데, 그게 또 고민까지 이어지진 않는달까. 의외로 다들 제각각의 개성대로 살고 있으니까. 아, 이치마츠는 그래도 좀 걱정이 되려나. 그 녀석은 사회성 제로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뒷골목에서 잘만하면 폭군으로 군림하고 살 거 같기도 한데, 냐하하."

멋쩍은 웃음과 함께 농담을 던졌다. 이치마츠가 들으면 기분 나빠하려나 같은 생각은 일단 제쳐두고.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이치마츠한테 말하지 마. 아, 너라면 말할 거 같진 않지만."

"그게 아니라..."

이치마츠 뒷담 쪽이 아니었나.

"제각각의 개성대로 살고 있다고 말했지, 우리들이."

"그쪽이었나? 그렇지. 최근에야 너네들이 평소에 어떻게 사는 지 알게 됐고 말이지."

카라마츠는 컵을 들고선 커피를 조금씩 마시기 시작한다.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는 걸 보니 역시 쓴 건 잘 먹는 거 같진 않지만.

"내게도 개성이 있어, 오소마츠?"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개성 만만하다 못해 마이 웨이잖냐, 네 녀석은.

"당연하지! 어설픈 오자키 흉내나 안쓰러운 취향이라든가..."

카라마츠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조금 표정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아, 그리고, 그리고, 기타 연주 같은거도 좋아하고 노래 좋아하고 그러잖냐. 나머지는 그런 녀석 없으니까."

간신히 좋은 의미 쪽으로 얘기를 한 거 같다. 아까 말은 하고 보니 기분이 나빴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소마츠가 보는 나는 그렇다는 거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있는데, 역시 말로 설명하기엔 어려운 거 아닐까?"

화제를 돌리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카라마츠는 내가 말을 꺼내면 꺼낼수록 표정이 안 좋아졌다. 물론, 마시고 있는 커피도 써서 그러겠지만.

"카라마츠, 그 커피 한번 마셔봐도 돼?"

카라마츠는 대답없이 잔을 내밀었다. 나도 아메리카노를 내밀어 서로의 음료를 바꿔 마셨다.

"켁, 쓰네 이거...이게 뭐랬지? 에스프레소 도피...도피소?"

"도피오. 샷을 두 번 추가했다는 거야."

카라마츠는 얼음을 입에서 굴리며 답한다. 물론 그 표정은 조금 전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그런가...도피오...용케 이런 걸 마시네."

"어쩌다보니 커피를 마신다면 이걸 마시게 됐어."

분명 이것도 폼 잡는다고 마시게 된 걸거야. 머릿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카라마츠의 표정을 봐서는, 그런 소리를 했다간 더 상처를 받을 거 같았다.

다시금 두 사람의 음료를 바꿔서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시덥잖은 대화를 하며 마시는 동안, 손님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시간은 열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점심 때인가, 손님이 많이 오네."

"아, 이제..."

"가봐야겠네. 동생의 알바를 방해하는 나쁜 형이 되고 싶진 않다구."
"응."

카라마츠는 일어나서 기지개를 한 번 펴더니 나를 쳐다봤다.

"오소마츠."

"왜?"

카라마츠는 입술을 실룩거리더니, 한숨을 쉬었다.

"아무 것도 아냐. 이따가 집에서 보게."
"그래, 일 힘내라."

 

내가 가게 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는 카라마츠는 어쩐지 손을 내밀고 있는 거 같았다. 사실은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고 하는 듯이. 그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못하는 차남. 그리고 누군가에게 의지받지 못하는 장남. 이 때를 놓쳐버린 것에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 그날 밤 옥상의 카라마츠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지금, 카라마츠는 자해인지 사고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병원에 누워있다. 심한 부상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렇게나 거하게 한 건 해버린 카라마츠가 눈을 뜨고 입을 연다고 한들, 나를 의지해주는 날로 돌아올 수 있을까. 카페로 찾아갔던 날, 난 그곳에서 무엇을 말해야 했을까. 동생들에겐 가볍게 답을 얘기해주는 나지만, 나 자신에게만큼은 답을 이야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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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쓰는데 시간이 많이 들었습니다.

구상은 오래 전부터 하던 편인데도 막상 만들어지고보니 재밌지도 않고 감동적이지도 ㅇ낳네요.

문제는 오늘, 24화가....으어.....

스포는 못하겠는데 으어.....그거 보고 무조건 오늘 오소카라 편을 써야겠다 생각해서 이러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써내고 보니 으어...망했어요.

그래도 오늘 일단 이치카라 편도 써서 한 사이클이라도 완성할 수 있음 하는 바람입니다. 두 사이클+@니까요. 지금 내가 후기로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모르는 하츠모리 드림. 

     

Posted by 하리H( )Ri
2016. 3. 13. 02:53
☞3/12일자 오소른 전력 60분 참가
☞주제 '외톨이'
>전력60분에 맞추지 않은 마이룰60분...

*학생 시절 이야기 포함
*시점 표현이 좀 산만해짐
*변변찮음 주의



왠일로 오소마츠가 새벽에야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자고 있던 형제들을 깨우고선 한다는 소리가,
"마츠노 오소마츠, 오늘부로 동정 졸업입니다!"
동생들의 눈빛은 의구심만 가득했지만, 오소마츠는 당당하고 여유있는 표정을 잃지 않고선 동생들을 둘러봤다.
"이건, 거짓말이야...오소마츠 형이?"
토도마츠가 오소마츠를 훑어보며 말했다. 스마트폰을 든 손이 떨리는 걸 봐선 굉장히 당황한 모양이다.
"동정 뗀다면서 억지로 한건 아니지? 경찰서 갈 일은 아닌거지?"
쵸로마츠도 당황해선 의심하는 듯 말한다.
-하긴, 나라면 강간범으로 잡혀가도 할말 없을거라고 쵸로마츠가 말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오소마츠는 딴죽거는 콤비를 싱글싱글 쳐다본다.
"처음은 어땠어, 오소마츠 형?"
쥬시마츠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어본다. 표정에서 느껴지는 무구함이 좀 걸리지만 오소마츠는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찬사를 짜내어 쥬시마츠에게 얘기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응, 응, 하는 모습을 보면 어린 아이같기만 한데 하는 얘기는 그렇고 그런 거라니.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잠자코 오소마츠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저 말은 진실인가. 특히 카라마츠의 눈빛은 무언가 하고픈 말이라도 있는 듯 간절하게도 보였다.
"잘 됐네. 형님. 우리중에 먼저 동정을 벗어난 게 형님이라 다행이다."
카라마츠가 이윽고 입을 연다. 그 말에 오소마츠는 살짝 표정이 굳어졌지만 다시금 입꼬리를 올린다.
"뭐래도 이 장남이 먼저 성공했으니 나머지도 금방 탈출할 거라고~"
장난기 섞인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마츠노 형제의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모두가 잠자리에 다시 들고 나서, 한낮이 되어서야 오소마츠는 잠에서 깼다. 다들 어디엔가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쳇, 나 제법 큰 화젯거리 가지고 온거 아니였냐고.
살짝 불만을 품으며 기지개를 펴는 찰나, 방으로 들어오는 카라마츠와 눈이 마주쳤다.
"좋은...낮이다...브라더..."
"좋은 낮, 카라마츠."
-카라마츠와 단둘이 있는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아.
오소마츠는 나갈 핑계를 찾아 머리를 굴렸다.
"형님, 낚시터에 함께 가주지 않겠는가."
카라마츠가 선수를 친다. 거절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아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배 쪽을 보고만 있다.
"부탁이니까."
고개를 들어 카라마츠를 본다. 아, 역시 진지한 얼굴. 계속 피해다닐 게 아니라면 차라리 당장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이 나아보였다.
"알았어, 대신 비용은..."
"아, 내가 낼게."
낚시터로 가는 내내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속으로 무어라 생각하는 듯 했고, 오소마츠는 굳이 그걸 방해해선 안 될 거 같아서 그냥 걸었다.

봄이라곤 해도 날은 춥고, 벚꽃은 필 기미도 안 보이고. 조금 스산한 경치에 아무 말 하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이 섞여들어간다. 분명, 이 비슷한 시기였나. 카라마츠의 마지막 연극 무대는.
카라마츠는 연극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연기하는 걸 좋아했다. 그런 주제에 유리멘탈이라 욕 먹는 걸 두려워해서 여러 번 형제들에게 울며불며 매달렸다.
"무대에 서면 몇 십 개, 몇 백 개의 눈이 나를 향해 쏠리는데 어떡하지? 나 별거 아닌 지나가는 엑스트라인데도..."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려운건가, 그러면서도 홍보하는 데서는 잘만 떠들어대서 또 그건 아닌가. 그냥 긴장했을 뿐이네, 이 녀석. 그런 판단으로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에게 특훈을 시켜주었다.
오소마츠가 연극부 소품실에서 하얀 가면을 두 개 꺼내들었다. 하나는 카라마츠 손에 들려주고 무대 옆 준비실로 이동했다.
"자, 카라마츠. 이 가면을 쓰는 순간 나도 너도 다른 사람이 되는 거야. 가면의 세계 속에서 완전히 혼자가 되는 거지. 지금까지 널 알던 사람도 가면을 쓰면 못 알아보는거야."
최면을 걸듯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카라마츠는 가면과 오소마츠를 번갈아보며 여전히 불안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다른 사람이 되는 거야?"
"당연하지. 이 형을 믿어봐."
"...형은 거짓말을 많이 하잖아. 툭하면 속여서 쌈질하는데 끌고가거나 간식비 뜯거나 하니까..."
"헤헤...내가 그랬나?"
"참, 형이 연극부였다면 연기를 잘 했을지도 모르겠네...부럽다 그 뻔뻔함..."
"칭찬이나 욕 중에 한 가지만 해줄래? 욕이라면 형 상처받겠지만~"
"휴...그래...오늘은 믿어볼게..."
카라마츠가 한숨을 쉬고선 가면을 얼굴에 덮었다. 오소마츠도 가면을 덮고선, 다시금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이제 우린 마츠노 오소마츠가, 마츠노 카라마츠가 아니야. 우린 누구라도 될 수 있고, 이 가면 속에 있는 나는 그 누구도 모르고,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드는거야."
카라마츠는 그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자는 건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고, 눈을 감고 마치 정말 어디론가 빠져들어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카라마츠가 눈을 떴다.
"오소마츠, 여기선 우리 형제가 아닌거지?"
뜬금없는 카라마츠의 물음이었다. 오소마츠는 그냥 내가 말한 거에 맞춰주고 있는 건가 싶어서 가볍게 대답했다.
"응. 여기선. 가면 뒤에 세계에선 형제가 아니지."
"그렇다면,"
카라마츠가 숨을 골랐다.
"여기서라면 오소마츠를 사랑해도 되는거야?"
"응?"
"가면 뒤에 또다른 세계라고 한다면 혼자 있는 세계라고 했지? 하지만 나, 오소마츠와 둘만의 세계였음 좋겠어."
뭐라는 거야. 오소마츠는 혀를 찼다.
"이번 연극 내용이야, 그거?"
"아니야."
오소마츠는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카라마츠가 숨죽이고 깊이 빠져들었던 이유는 이거였나. 아니, 설마, 진짜?
"난 늘 오소마츠를 동경해왔어."
카라마츠의 독백이 시작됐다.
"형의 당당한 모습, 천연덕스러우면서도 미움사지 않는 모습, 강한 모습, 그 어디에도 동경을 품었어. 내게 뒤를 맡겨주고, 내 곤란함에 먼저 손을 뻗어주는게 고맙고 또 고마워서...그런데 나는 그 만큼은 아닌 거 같아서..."
평범한 얘기다. 평범하지만, 이 뒤는 듣고 싶지 않았다.
"형이 봐줄 연극이라면 좀더 당당하고 멋있고 싶었어. 그런데 그게 아니니까...내가 작아보였어. 형에게 날, 좀더 멋있는 녀석이라 각인시키고 싶었어! 그런데, 나 지금 이렇거 가면이나 뒤집어 써야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어... 한심해... 형이 좋은데, 그런 얘기조차 가면 뒤에서나 한다고..."
앞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카라마츠는 가면을 쓰고 뻔뻔해지랬더니 가면을 쓰고 되려 솔직해져버렸다.
-아마 여기서 녀석을 봐버리면 안되겠지.
오소마츠는 카라마츠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카라마츠 쪽을 보지 않았다. 그걸로, 카라마츠가 방금 한 얘기는 듣지 않은걸로 한거야. 혼잣말이었다는 걸로 쳐 뒀음 한다고.
울음을 그친 카라마츠는 가면에 묻은 눈물도 제 얼굴의 눈물도 소매로 쓱 훔치더니, 오소마츠에게 가면을 주고선 무대로 뛰쳐나갔다. 카라마츠의 연기는 아까보다 훨씬, 아니 엑스트라인데도 주역이라고 믿을 정도로 나아졌다. 카라마츠는 가면 뒤에서 자기만의 세계로 빠진듯 연기하기 시작했다. 주역도 몇 번 따내고, 졸업 전에 섰던 마지막 연극무대는 독백극을 해서 혼자 무대를 장악했다. 그때 카라마츠의 대사는 정말 많아서 외울 수는 없지만, 딱 하나는 기억이 난다.
"거짓말은 달콤해서, 인간이란 거짓의 세계에 의존하며 위안을 얻고는 하지. 그런데 그 이면에, 거짓말을 자아내는 이는 슬픔을 감추고 있다는 걸 알아줬음 해. 거짓말을 자아내는 이는 언제나 외톨이라고? 거짓말은 들키기가 무서워서, 그로 인해 자기를 감싼 세상이 변하는 게 무서워서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는거야."

카라마츠는 그 뒤로도 자기만의 세계를 살고 있다. 오소마츠가 건넨 가면 하나가 그를 외톨이로 만들었다는데 오소마츠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그 날의 일을 없는 취급 하며 살았다.
-오늘은 거기에 대한 벌을 받는 거야.
카라마츠가 고르고 있는 말의 조각들을 오소마츠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낚시터에 도착해서는 카라마츠에게 머리를 쥐어박히겠지. 그리고 아마도 왜 그런 거짓말을 했냐고 물을거야. 카라마츠는 눈치채고 있을테니까.
"형님."
낚시용 의자에 앉자마자 카라마츠가 말을 건다.
"형이 원치 않는다면, 난 그대로 묻어두고 갈 수 있어. 그러니까 그런 거짓말 하지마."
그렇지. 오소마츠가 동정을 뗐다는 건 거짓말. 이유까지도 카라마츠가 눈치챈 데엔 솔직히 감탄한다. 눈치없는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있었네.
-지금에 와서도 난 널 받아줄 수 없어.
확실한 거절은 말하기 어렵다. 카라마츠의 기분은 차갑게 거절당한 경력이 많은 이 장남이 잘 알고 있으니까. 미적지근하지 않은 태도, 하지만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걸 보이려 노력하고 있다.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되니까. 배려한다고 거짓말해서 뭐해. 형은, 오소마츠는 그걸 끌어안고 있다 외톨이가 되버리는 거잖아."
무슨 소리야.
"그건 싫어."
어째서야.
"둘 다 외톨이가 되는 건 싫어."
그건 아니잖아.
"오소마츠가 확실히 얘기해줘. 나도 그럼 다른 곳으로 마음을 찾아가려 노력할테니까."
어째서, 널 거절하는 내 마음까지 배려하는거야.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노려본다.
"그거잖아, 오소마츠. 외톨이 둘이서 등을 기대서 체온을 나누어서 사는 거, 우린 그게 안 되는 거지? 답을 해줘. 형도 그만 가면을 벗고, 솔직한 심정을 들려줘."
카라마츠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듯 오소마츠를 뒤에서 끌어안는다.
답을 뱉어내면, 둘은 정말 외톨이가 아니게 될 수 있을까?
몇 년 전 준비실의 그 때처럼, 또다시 정적이 둘을 감싼다.
















---------------------------------
이전에 거짓말을 소재로 생각하던 걸 외톨이를 가미시켜 쓴거라 거짓말이 주인지 외톨이가 주인지... 어쨌건 하고 싶은 말은 썼습니다. 그리고 어정쩡하게 일인칭 시점을 일인칭으로 안 써보려다 망했네요...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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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H( )Ri
2016. 3. 6. 07:59

[카라른/토도카라]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4-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캐붕,글솜씨없음주의

※5화 카라마츠 사변 기반, 3화 연극부 썰 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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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안쓰러운 형, 카라마츠. 그는 최근 들어 잠을 설치고 있다. 이유는 모르지만, 모른 척 하려 해도 옆자리니까 알게 되는걸. 덕분에 내 컨디션도 엉망진창. 잠을 못 드는 걸로 화를 내는 건 좀 치졸하지만, 책임을 물을 수 있은 데가 달리 없으니까 조금 불만이 쌓이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카라마츠 형에게 핀잔을 던지는 나날을 보낼 즈음, 나머지 형제들의 행동이 조금씩 달라진 게 보였다. 카라마츠 형에게의 태도가 묘하게 달라졌단 말이지. 카라마츠 형의 납치극이 원인이었을까. 나는 카라마츠 형도 이젠 어른이니까 고민 한두가지라고 할 시간을 가지느라 그런 거 아닐까 하고 내버려뒀었는데, 그 이상의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치 못했던 거다. 드라이 몬스터, 나한테 잘 어울리는 말일지도.

 

카라마츠 형이 갖다 놓은 투명한 잔 옆에는 어느새 학알이 든 병과 쵸로마츠 형이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이 붙은 병이 놓여있다. 쵸로마츠 형, 잔소리는커녕 이제는 저기에다 자기 물건까지 올려둘 정도라니. 이유야 대강 알고 있지만. 쵸로마츠 형이 카라마츠 형을 신경쓰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눈에 떡하니 들어와서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쵸로마츠 형이 드디어 자기 인식을 제대로 하기 전에도 신경썼던 부분이라 단순히 형이 주변을 살피게 되었다, 와는 다른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이 적중했음을 안 건 우연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는 주의인 우리 마츠노 형제. 책장 뒤를 뒤지는 쵸로마츠 형을 보고 카라마츠 형의 야한 잡지를 보겠다고 저러는 게 우스워서 사진으로 찍을까 고민하던 차에 쵸로마츠 형이 책장 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뭔지는 잘 보이지 않지만 쵸로마츠 형이 만지작거리다 얼굴을 감싸쥐는 걸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 뒤로 책장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은 나지 않았다. 누군가 한 명은 방에 남아있었으니까.

 

분명 저 책장 뒤에는 심각한 일이 숨어있어. 그래서 혼자가 아니면 좀 집안이 떠들썩해질지 몰라.

 

그걸 목격한 지도 2주일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쵸로마츠 형은 카라마츠 형에게 무언가 시도했다. 쥬시마츠 형도 느낌상 무언가를 눈치채고 카라마츠 형에게 다가갔다. 이치마츠 형은 카라마츠 형을 피하고 있다. 오소마츠 형은 알 수 없이 밖으로 나돈다. 카라마츠를 둘러싼 형제들의 이상한 흐름은 분명 그 책장 뒤에 있는 무언가와 관련이 되어 있겠지. 판도라의 상자가 거기에 있다. 점심밥을 먹고 나서, 다른 형제들의 눈치를 살폈다. 오늘은 다들 어디 안 나가려나, 좀 나갔으면 좋겠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소마츠 형을 제외하고는 다들 바깥으로 나갔다. 이제 이 형만 내보내면 되겠는데. 경마 가라고 천 엔 주고 꼬실까.

"뭘 그렇게 경계하는 거야, 토도마츠."

나왔다! 가끔 예리해지는 장남력.

"경계하긴 뭘 경계했다 그래? 간만에 집에서 느긋이 쉬고 싶은데 누가 남아있는 게 싫어서 그렇거든?"

"'간만에'라니! 하하하핫."

하긴, 우리들 니트니까 매일같이 쉬고 있긴 하지.

"톳티."

"뭐."

"안쓰러운 녀석한텐 뭐라고 해주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런 건 왜 묻는데."

"카라마츠 녀석이 물어봤거든. 자기가 모두를 아프게 만들고 있다고. 고슴도치의 딜레마라고까지 말한다고? 그런건 딱히 아닌데. 그래서 넌 그대로 있어도 좋다고 얘기했거든? 그런데 그걸로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오소마츠 형도 카라마츠 형의 이야기를 꺼낸다. 오소마츠 형이 밖으로 나도는 것도 카라마츠 형 때문이었나. 사랑받고 있네, 라기엔 지금 상황은 좀 애매하다.

"나야 안쓰럽다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쪽이니까. 그런대도 변함이 없어서 안쓰럽지."

"그렇지? 안쓰러운 건 딱히 변하질 않으니까. 우리가 안쓰러워 해주는 게 좋은 건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잖아."

카라마츠 형은 변하지 않아. 안쓰럽게 폼 잡는 것은 변하지 않아. 그렇게 폼 잡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속에 든 게 있는 건지 어떤지는 알지 못하지만. 어찌되든 안쓰러울 뿐이다. 지금은 그 안쓰러움이 행동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마음 속에서 느껴지고 있는 거지만. 잠을 설치고 있다. 텅 빈 카라마츠 형이 고민을 끌어안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안쓰럽게 행동한다. 그 행동으로 그는 고민하는 자신을 숨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소마츠 형이 일부러 이 얘기를 꺼낸 거 같았다. 따지려고 돌아보니 오소마츠 형이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을 뿐이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문을 닫았다. 책장 뒤를 살펴봤다. 카라마츠 형의 야한 잡지들이 널부러져 있다. 잡지들을 걷어내니 커터칼이 여러 개 던져져 있었다. 하나를 집어들어 칼날을 빼보니 칼날 끝에 갈색 얼룩이 져있다. 다른 칼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보고 떠오르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손목을 긋고 있는 거야, 카라마츠 형은. 순간 오싹해졌다. 설마, 카라마츠 형이 끌어안고 있는 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 멍청하게 순진한 형이 자살을 생각한다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납치극 당시가 떠올랐다. 카라마츠 형은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 옷을 갈아입고 병원에 다녀와 치료를 받고 돌아왔다. 집을 비울 때는 이치마츠 형이 큰일이었으니까. 매일매일 사고치는 쌍둥이 형제가 6명이면 한 명쯤 잊어버리는 일도 허다하니까, 그래도 카라마츠 형을 깜빡한 것, 밤에 시끄럽다며 물건을 집어던진건 아무래도 심한 일이었으니까 우리들은 카라마츠 형에게 사과했다. 그 사과는 우리들 형제의 기준으로 보면 대충한 것도, 그저 외면치레만 한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카라마츠 형이 괜찮다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을 때 더 미안하다며 난리를 쳤을 정도였지. 그게 큰 트라우마가 될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로. 문제는 그것만이 다는 아닐 거라는 감이었다. 카라마츠 형이 잠을 설친 건, 납치극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형에게 얽혀있는 일은 단순한 인과관계가 아니었다.

 

카라마츠 형.

 

그러고보니 어느새부턴가 카라마츠 형은 소매를 잘 걷어붙이지 않았다. 특히 왼쪽 팔목은. 소매를 걷어붙일 때에는 쥬시마츠 형에게서 손목 보호대를 빌려서 하고 있었다.  왼쪽 팔목이 아프댔던가, 손목을 돌리면서 하는 말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게 기억난다. 그렇게 카라마츠 형은 혼자서 자신의 아픔을 삼키고 있다. 아니지. 삼키고 있는 게 아니라 발버둥치고 있는 거겠지. 손목을 긋는다는 건 결코 삼키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니까. 그리고 한두번이 아니었을 자살시도를 하면서, 카라마츠 형은 더욱더 깊은 고통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째서. 하나를 알게 되니까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알아버리는데, 그 전에는 하나도 몰랐던 걸까. '드라이하네~' 오소마츠 형의 이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내가 카라마츠 형에게 관심이 없었으니까, 잠을 못 자고 설쳐도 그러려니 하고 넘겨버리니까, 카라마츠 형은 더욱 더 고통스러운 쪽으로 빠져들어갔을 거라고 자책한다. 이런 건 결코 나답지 않지만. 죄 없는 사람 하나를 몰아넣고 태평할 정도까지는 타락하지 않았으니까.

 

카라마츠 형과는 어떻게든 얘기를 나눠야 했다. 카라마츠 형이 자기 마음을 털어놓고 상처를 꿰맬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오소마츠 형이, 쵸로마츠 형이, 쥬시마츠 형이 부딪혔음에도 잘 되지 않은 거 같다. 하물며 이제서야 그의 상처를 눈치챈 나다. 내가 따지듯이 물어간다고 한들, 카라마츠 형은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지 않을거야. 오히려 괜찮다면서 안쓰럽게 폼이나 잡겠지. 그가 더 심각한 생각을 하기 전에, 어둠에 먹혀버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끄집어올 기회만이라도 만들 수만 있다면. 그 계기를 만들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멍때리기만 시전하고 있다.

 

고슴도치의 딜레마.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상처를 주는 거라고 했던가. 이건 카라마츠 형보다는 나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카라마츠를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그 정도까진 아니라고 답하겠지만. 그래도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다. 카라마츠 형은 좀더 나에게 상처를 줘도 괜찮을텐데. 속으로 삼키면 자기의 상처만 벌어진다는 걸 왜 몰라주는 거야.

 

카라마츠 형에게 직접 전할 수 있는 말은 없을거다. 적어도 지금은. 직접적으로 말하는 게 카라마츠 형에게는 상처로 박힐 것이다. 안그래도, 그는 상처를 잔뜩 안고 있다. 돌려 말하는 메시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형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봉합될 수 있도록 일단은 말없는 사랑을 건네야 할 시점이다. 옳은 방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난 방을 뛰쳐나와 달렸다. 달리고, 달리고, 목적지도 없이 달렸다. 무언가 내 마음 속에서 터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애써 무시해왔던 것들이 한번에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어떻게 해야 좋은 거야, 도와줘. 파트너.

 

아무 이유 없이 선인장이 떠오른다. 메마른 사막에서 가시를 뽐내며 선인장이 서있다. 선인장은 성가신 녀석이라 물을 너무 많이 줘도 죽어버린다 한다. 메마른 곳에서 살아온 나름의 폴리시는 사막이 아닌 곳에 와서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물을 안 주면 말라버리지만, 아슬아슬할 때 한 번 주면 된다고 하니까 귀찮은 녀석이다. 뾰족한 가시는 누군가를 찌르기 위한 게 아니라 메마른 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물을 빼앗기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선인장의 진화의 말로다. 그런 선인장이 자신과 닮았다고 느꼈다. 고슴도치보다도 더. 나를 위해서만 발버둥치고 있는 꼴이 딱이다. 카라마츠 형이 주는 물에 흠뻑 적셔졌을 때, 나는 카라마츠 형을 거부했다. 그의 관심을 지나친 거라고만 생각했고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나는 메말라가기 시작했다. 선인장처럼 남을 찌르는 쪽으로 변화해갔다. 그러는동안 물을 채우던 카라마츠 형의 잔도 메말라가기 시작한 걸까. 이윽고 넘치듯 찰랑거리던 물은 증발하고 빈 잔만 남았다. 그 결과, 카라마츠 형은 잔에 물이 아니라 다른 것을 채우기 시작한 거다. 어릴 적 파트너라며 꼭 붙어다녔던 형과 나다. 여섯 쌍둥이라고는 해도, 가장 가까웠던 관계 정도는 있으니까. 늘 같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여섯 쌍둥이가 개성을 찾아가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로가 쌓아왔던 관계도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카라마츠 형은 나름대로 길을 잘 찾아간 편이라고 생각했다. 안쓰러운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그러나 과연 형이 찾아간 길은 형을 위한 길이었을까. 형이 연극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안쓰러움은 가속화되고, 형의 변화도 가속화되었던 것이다. 형은 여전히 텅 비고 멍청한 사람이었지만 겉을 꾸며낼 줄도 알게 되었단 걸 어째서 눈치채지 못한걸까. 

 

숨이 가빠진다. 이젠 내 목이 메말라간다. 아무 생각 없이 뛰쳐나와서 돈도 없고, 집에서도 너무 멀리 떨어져있는 듯 하다. 간질거리는 목에 침을 삼키면서, 조금씩 이성을 되찾는다. 익숙하지 않은 거리의 횡단보도에 서 있다. 슬슬 머릿속을 정리해보자. 카라마츠 형에게 상처가 되더라도, 직접 하고픈 말을 얘기하자. 진심을 부딪히면 형도 진심을 꺼내주지 않을까. 내가 사과하는 일, 좀처럼 없으니까 내 사과라면 진심으로 받아주지 않을까. 아직은 괜찮으니까. 형, 그정도 여유는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오늘 점심도 잘만 먹었지, 식탁을 치워주겠다며 웃으며 밥그릇들도 들고 가줬지. 적어도 오늘 형에게 내 진심을 전한다면, 사과한다면 형이 지고 있는 짐을 덜어줄 수 있을거야. 어디까지 뛰쳐나왔는지는 모르지만, 형을 빨리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 그런 기분이다. 그때, 횡단보도의 건너쪽에서 익숙한 형체가 보였다. 8차선 도로라 그런지 횡단보도가 꽤 커서 명확하지는 않지만, 저건 카라마츠 형이다. 여기서 만날 줄이야. 다른 형제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들어갈 수 있는 좋은 환경이다. 신이 돕는 거네, 이건.

 

 

 

라고 착각했다.

 

차선에는 빠른 속도로 트럭들이 몇 대 지나간다. 보행신호는 도무지 파란불로 바뀔 생각을 않는다. 이윽고 차쪽 신호등이 노란 불, 빨간불로 바뀐다. 3.2.1.텅.

 

트럭이 정지선에 급하게 멈추는 짧은 시간, 카라마츠 형의 몸이 앞으로 내던져졌다. 급정거하는 트럭에 부딪힌 카라마츠 형의 몸은 횡단보도 쪽까지 튕겨나갔다. 머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트럭 운전사도,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들도 모두 카라마츠 형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난 그저 굳은 채 반대편 인도에 서 있을 뿐이었다.   

 

 

 

 

 

 

 

 

 

 

 

-----------------------------------

야, 저 지금 뭐라고 써대고 있는 겁니까.

실은 짜놓은 얘기지만. 토도마츠는 막연히 선인장을 건네주면 어떨까 생각하던 차에 뒷얘기를 생각했던 거라 이번 화에서는 선인장이고 빈 잔이고 내던졌습니다. 토도마츠의 드라이함을 살리고 싶었는데 드라이하려다 땀내나게 되어버렸으니 이거. 분량은 반도 안 왔고, 재미는 없습니다. 변변찮을 정도가 아니라 안타는 쓰레기네요 이거.헿. 그래도 자기만족으로 최대한 써내려가야죠 뭐.

 

 

 

 

Posted by 하리H( )Ri
2016. 3. 6. 05:56

[카라른/ 쵸로카라 편]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3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캐붕,글솜씨없음주의

※5화 카라마츠 사변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 뒤의 시간대는 뒤죽박죽으로 적용되어 있습니다.

쵸로마츠, 21화를 보고 나니 21화 당시의 느낌으로 묘사하고 싶네요. 드디어 쓰레기를 인정했어!(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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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노 가 여섯 니트들은 대부분 늦게 깬다. 누구 하나 제대로 된 녀석이 없지. 그렇다고 나도 거기서 예외는 되지 않는다. 일찍 일어난다고 해봤자 아이돌 콘서트나 굿즈를 위해 순번을 기다려야 하는 날에나 일어날 뿐이지. 이전에는 나만이 멀쩡한 녀석이라고 생각해왔다. 다른 형제들의 바보같고 안쓰러운 행각을 지켜보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던가. 나도 녀석들과 다를 바 없구나, 깔끔하게 인정했을 때 내게 평화가 찾아왔다. 내면의 평화, 랬던가. 이딴 현상을 유지하고 있대도 좋다고 생각해버리는 자기가 한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원해졌다. 다만, 그건 자기에 국한된 일이다. 나에게 내면의 평화가 찾아오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놓치던 것을 찾아내는 건 겉보기엔 좋은 일이지만, 꼭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좋지 않은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내면의 평화는 흔들리고 거기에 휩쓸려 들어갈 뿐이니까.

 

하여간, 오늘 아침에는 내면의 평화를 다시금 찾아볼까 하고 다른 형제들보다 먼저 일어났다. 토도마츠는 아침 조깅을 한댔던가, 스마트폰 알람에 '09:00 조깅♥'이라는 알림이 떠 있다. 시간은 아침 일곱 시, 터무니없이 일찍 깼군. 아침밥은 한참 멀었고 배가 조금 고파져서 우유를 한 잔 마시고 방으로 돌아왔다. 나와 똑같이 생겨먹은 다섯 녀석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내 잠을 방해하는 주범 쥬시마츠와 오소마츠 형은 퍼질러 자고 있고, 토도마츠는 몸을 틀어 배시시 웃으며 자고 있다. 이치마츠는 이불 밖으로 발을 삐죽 내밀며 자고 있다. 눈에 띄는 건 카라마츠, 눈에 다크서클이 져 있고 신음소리를 내며 불편한 듯이 자고 있다. 사실 최근에 일찍 깰 때마다, 카라마츠는 저런 상태였다. 그 최근이 카라마츠의 납치극 즈음이었던가. 아니, 그 전에도 저런 모습이었다. 카라마츠는 단순한 녀석이니까 잠도 달게 자고 일어나는 쪽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잠을 설치거나 하는 일이 잦은 모양이다. 그래도 카라마츠는 그걸 형제들에게 상담해오지 않는다. 안쓰러운 말을 한 번 줄이고 꺼내줬으면 좋으련만, 그걸 하지 못하는지 하지 않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하지 않는 쪽이겠지. 납치극 이후에 카라마츠는 언뜻 보기에 그 전과 다를 바 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형제들과 조금 벽을 쌓고 있다는 인상이다. 자기의 본심을,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고 삼키는 모습을 눈치챈 게 나의 벽이 부서진 이후다. 그 전에도 카라마츠의 모습을 관찰해왔지만, 내가 나를 제대로 의식하고 나서야 카라마츠의 상태를 제대로 눈치채다니, 바보같달까 무심하달까.

 

창가에 있는 빈 잔과 학알이 가득찬 유리병이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난다. 병 위에는 학이 여섯 마리 올려져 있는데, 아무래도 창문을 열면 바람이 불어 떨어지겠지. 용케 방에서 떠들썩하게 형제들이 놀아도 병이나 잔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종이학은 떨어지기 쉽잖아. 안 쓰는 화분받침을 병 위에 올리고, 거기에 학을 조심스럽게 배치했다. 그리고는 잔과 병의 먼지를 털고 잔은 마른 행주로 닦았다. 잔은 안까지 닦아놓으라고 말했건만 카라마츠는 바깥만 슬쩍 닦아놓고선 그대로 방치한다. 잠깐 잔에는 학알들이 차있었지만 병으로 옮겨담은 뒤에 다시금 잔은 빈 상태로 돌아갔다. 술도 잘 마시지 못하는 카라마츠가 술잔을 가져왔을 때, 도대체 저걸 어디에다가 써먹을 생각인지 궁금했는데, 카라마츠는 어디에도 쓰지 않았다. 장식으로 쓰고 있다, 라는 말은 궤변으로 녀석은 그냥 거기에 잔을 방치하고 있을 뿐이다. 술을 담아본 적 없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잔은 어딘가 안쓰러워 보였다. 오소마츠 형이 한 번 여기다가 술을 마셔보겠다고 했을 때 단호하게 거절하던 카라마츠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면서도 창가에 두고 그저 보고만 있을 뿐이다. 달빛을 마시고 싶다던가 하는 말도 그저 말 뿐, 내 잔소리에 못이겨 먼지를 털어낼 때 외에는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이다.

 

이전에 나라면 답답해 했겠지. 쓸모없는 물건을 창가에 올려놨다가 깨뜨리면 어떡할거야. 누가 다치면 어떻게 할 건데. 부엌에 갖다좀 놓으라고. 창가에 놔뒀다가 깨져도 난 몰라. 이렇게 따져들었을거다. 자기가 부족한 녀석인 것을 인정하고 난 뒤에 카라마츠가 잔을 저기에 올려둔 거라 이 잔소리가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다만 부족한 녀석인걸 인정하기 전의 나라도 아마 카라마츠에게 심한 소리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카라마츠가 멀쩡한 상태가 아닌 건 그때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땐 카라마츠가 여전히 삐져있을 거라 멋대로 착각한 거지만. 

 

방을 나와 다락방으로 들어갔다. 다락방 한 켠에 다른 형제들에게 방해받지 않게 소중한 굿즈들을 모아놓은 상자를 꺼냈다. 그 중에 냐쨩이 프린트된 일본주 병을 꺼낸다. 한정상품, 미개봉 상태라 아마 팔려고 하면 사는 사람도 있을 거다. 양보할 생각은 없지만. 술은 좋아하니까 마시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콜렉터로서 열어서 마셔버리기엔 아까우니까 여기에 박아둔 상태다. 냉장고에라도 넣었다간 누가 마셔버리고 병을 엉망진창으로 버려둘 지 모를 일이니까. 병목을 손가락으로 잡고 살짝 흔들어본다. 찰랑-찰랑-술이 병에 부딪히는 소리가 제법 좋다. 그 소리를 들으며, 큰 결심을 한다.

 

방에 돌아오니 토도마츠의 알람 소리가 들린다. 답지 않은 자연의 소리가 울려퍼지고, 토도마츠가 잠을 깬다.

"라이징따르스키형, 잘 잤어?"

"누가 라이징따르스키냐. 아침부터 기분 나쁘게시리."

"헤헤. 그보다 일찍 일어났네. 다시 취활이라도 할 셈이야?"

"아니. 그냥 어쩌다보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쵸로마츠 형은 생각이 참 많아― 뭐, 그것도 쵸로마츠 형이지만."

내면의 평화를 찾았다, 자기 자신을 드디어 인정했다, 이렇게 멋대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들 나는 나인가. 토도마츠의 말은 조금 아프게 들렸다.

"카라마츠 형, 어젯밤도 잠을 설치더라. 덕분에 잠을 제대로 못 잤어."

"뜬금없이 뭔 소리야."

"요즘 신경쓰고 있잖아, 카라마츠 형에게."

"눈에 띄게 피곤해하고 눈에 띄게 피곤하게 만드는 녀석이니까 그렇지."

토도마츠는 헤에-그러더니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쵸로마츠 형은 조금 더 내려놓는 게 좋다고 생각해."

"여기서 내려놓을 게 뭐가 더 있다고."

"나쁜 의미로 말하는 거 아니니까. 걱정할 만큼은 아니지만."

이러고선 토도마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외면을 신경쓰는 녀석이니 세수도 하고 아마 뭐라도 바르고 조깅하러 가겠지. 그것보다 내려놓으라니, 방금 제법 큰 결심을 하고 온 참인데. 내려놓고 온 참인데. 막내 녀석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까 조금 분하다.

 

니트들이 모두 일어났다. 엄마가 아침밥을 차려주고 여섯 형제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밥을 먹는다. 밥을 먹건 술을 마시건 대체로는 누구 하나 빠지는 일 없이 여섯이서 하는 게 익숙해져 있다. 전에 이치마츠랑 단 둘이 밥을 먹을 때, 평소와는 달리 무거운 분위기여서 둘이 먹는 건 별로 좋지 않으려나 생각한다. 둘이 싸웠던 것도 아닌데 여섯이서 먹고 마시는게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랬을거다. 밥을 먹고 나니까 나도 이치마츠도 좀 풀어져서는 이것저것 얘기를 했었으니까. 밥을 먹고 나서는 오소마츠 형은 빠칭코, 토도마츠는 비밀이라고 말하면서 외출, 쥬시마츠는 이치마츠와 함께 야구를 하러 나갔다. 집 안에는 카라마츠와 나만이 남았다. 카라마츠도 안쓰러운 가죽 점퍼를 입는 걸 보니 아무래도 외출하려는 모양이다.

"쵸로마츠, 오늘도 잔을 닦아준건가."

"워낙 안 닦아놓으니까 말이지. 몇 번을 얘기했는데."

"고마워."

예상치 못한 반응이다. 평소에는 닦아놓았다고 내가 먼저 말하고 카라마츠는 그저 끄덕일 뿐이었다. 오늘은 반대의 경우인가. 쥬시마츠가 저 잔을 처음으로 채운 뒤로,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걸까. 카라마츠의 표정은 살짝 지은 미소. 그 속에는 무표정. 변한 게 있는 지 없는 지 모르겠다.

"카라마츠,"

"왜 그러나, 브라더."

"이 술잔, 써도 돼?"

"응?"

"이 술잔, 써도 되냐고."

술잔을 살짝 들어올렸다. 변화구가 아닌 직구를 던진다. 변화구를 던지면 카라마츠는 못 알아들으니까. 마음을 고려한다면 변화구를 던져야 하지만, 알까보냐. 카라마츠의 표정은 조금 일그러졌다. 그도 그럴게, 그동안 저 잔은 카라마츠가 쓰지 못하게 했으니까. 오소마츠 형의 부탁을 거절할 정도로.

"아껴뒀던 술을 마실건데, 투명한 술잔이라야 술을 제대로 보고 즐길 수 있을 거 같거든. 집에 있는 다른 잔은 투명하질 않잖아."

"......"

"싫다면 거절해도 좋아. 너가 아끼고 아끼는 거라면, 그냥 저대로 두고 싶은 거라면 억지로 쓰고 싶다곤 말하지 않을게."

조금 세게 나갔다. 괜히 돌려서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다. 딱히 카라마츠를 위해서가 아니다. 나란 녀석은 이렇게 직구를 날리는 쪽이 훨씬 편하니까 그럴 뿐이다. 답답한 건 싫다.

"...깨끗이 쓰고 다시 돌려놔준다면 괜찮아."

카라마츠가 어렵게 답을 꺼낸다. 좋은 표정은 아니라 살짝 미안해진다.

"그리고 하나 더 부탁할게."

"뭔가."

"술, 혼자 마시면 쓸쓸하니까 같이 있어줘."

카라마츠가 갸웃한 표정을 짓는다. 이런 부탁은 잘 하지 않는다. 혼자 하는 거 아니면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거나 하는 건 여섯이서 하는 게 보통이다. 둘이 있는 일은 그다지 흔치 않으니까.

"한정판으로 나온 냐쨩 프린트 술이라 혼자 마시고 싶은데, 카라마츠에게 특별히 맛보여줄테니까. 술잔 빌려준 답례, 라고하면 좀 억지지만."

술잔을 빌리는 것도 술을 잘 못 마시는 카라마츠에게 술을 주겠다고 하는 것도 모두 내 억지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억지를 부린다.

"그러면 고맙게 받아들이지. 아끼던 술을 준다는 거니까."

카라마츠는 폼잡는 투로 대답한다. 저렇게까지 폼을 잡으면서 세우는 벽을 무너뜨리려면, 강하게 미는 걸로는 안되는 거라고 다시금 느끼게 된다. 카라마츠가 밖으로 나가는 걸 보며 벽을 무너뜨릴 방법을 생각하려 머리를 굴린다.

 

아무도 없던 방에 먼저 들어온 건 토도마츠. 나를 쳐다보더니 씩 웃는 게 기분나쁘다.

"쵸로마츠 형, 아침보다 좋은 표정 하고 있네? 설마 ㄸ..."

"어지간히 좀 해라, 토도마츠. 태클 거는 거는 포기한 거 아니거든."

"농담이야. 뭔가 좀 홀가분해 보여서."

의외로 눈치가 좋단 말이지, 막내 녀석.

"쯧. 그래보인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난 홀가분하지 않거든."

지금 제법 중대한 일을 앞두고 있으니까.

"형은 좋겠다~ 난 지금 전혀 감이 안 잡힌단 말이지."

"뭐가?"

"비밀."

왜 얘기한거냐, 약아빠진 녀석아.

"어쨌든, 잘 되길 빌어~"

그 말에 맞춰서 나갔던 나머지 형제들이 현관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다들 일찍 잠들었다. 다들, 이라곤 했지만 나와 카라마츠는 잠들지 않았지만. 좌쥬시 우오소를 확인하고 이불을 빠져나왔다. 카라마츠도 토도마츠와 이치마츠를 확인하고는 이불을 빠져나와 잔을 들고선 부엌으로 내려갔다. 난 다락방에서 냐쨩 프린트가 되어 있는 일본주를 꺼내든다. 중요한 건 내용물이라고 하지만 이 경우에는 반대. 포장이 훨씬 중요하다. 사실은 내용물이 중요하지만. 병을 들고 지붕으로 기어 올라간다. 뒤이어 카라마츠도 부스럭대는 소리와 함께 지붕으로 올라온다. 카라마츠의 손에는 웬 봉지가 들려있다.

"형제가 아끼는 술을 대접한다니, 안주거리라도 내놓는 게 예의가 아닐까 해서."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그보다 술잔은 하나네?"

"아, 가져올까?"

"아니, 됐어. 어차피 카라마츠...형은 별로 안 마시잖아?"

"형...이라. 간만에 형이라고 불러주는 군."

"형이 형다워야 말이지. 그래도 둘만 있는 건 오랜만이니까 형 대접을 해줘야지."

"그런가."

술 뚜껑을 연다. 솔직하게 아깝다는 생각도 살짝 스쳤다. 그래도, 아끼는 걸 내어주지 않으면 진심은 통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마음을 굳게 먹는다. 잔을 들어 술을 따른다. 술잔은 드디어 처음으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덕인지 달빛을 받아 술잔은 빛나 보인다. 나는 그 잔을 카라마츠에게 내민다.

"자."

"아끼는 술 아닌가, 먼저 맛보는 게 좋지 않아?"

"형이 아끼는 술잔이잖아. 처음으로 술을 담아보는 건데, 형이 먼저 마셔봐야지. 그 잔을 놔둘 때, 달빛을 마시고 싶다며? 딱 거기, 달이 들어앉아 있잖아."

카라마츠는 술잔을 멍하니 보더니, 조금씩 들이킨다. 술의 쓴 맛이 전해져 오는 것인지 눈을 찡그리며 그 얼마되지 않는 술을 꽤 시간을 들여 마신다.

"이제는 내가 다 마셔도 되지? 형은 한 잔으로도 벅차 보이니까."

"그래. 대신에 안주라도 먹으며 같이 있어줄테니까."

안주거리로는 육포를 가져왔다. 카라마츠답다. 육포를 집어들기도 전에 카라마츠는 술을 따라 내게 건넨다. 같은 잔에 술을 나눠 마시는 형제라. 나는 잔을 살짝살짝 돌리다 카라마츠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그가 입을 댔던 곳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댄다. 감촉은 그다지 다를 바는 없지만, 묘한 감정은 맴돈다. 술은, 뭐 특별하지 않게 평범한 맛이네. 분위기는 평범하지 않지만. 술은 분위기로 먹는 거니까, 오늘은 조금 달면서도 쓴 맛이다. 카라마츠는 그런 나를 보면서 육포를 질겅이고 있다.

"카라마츠...형은 말야."

"응?"

"솔직한 모습이라, 부러웠어."

"훗...그게 무슨 소리..."

"나야 요즈음에나 솔직해졌지만, 형은 늘 자신의 진심을 그대로 부딪혀왔잖아?"

"......"

"그게 이상한 데로 가서 안쓰러울 때도 있지만, 솔직함만큼은 솔직히 부러웠다고."

카라마츠는 답이 없다.

"솔직하고, 우리 형제들 중에선 그나마 상냥한 편이고, 묘하게 신경써주는 구석도 있고 하니까."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나와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카라마츠. 술을 한 잔 더 따라 단숨에 마셔버린다.

"형 취급을 잘 안해주고는 있지만, 그래도 난 형이 좋아."

지금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걸까. 카라마츠의 벽을 무너뜨려 보겠다고 하는 말들이 뭔가 이상하기 짝이 없다.

"형이 말하지 않고도 보내는 메시지들, 읽고 있으니까. 나한테만이라도 형의 진심을 얘기해줬음 좋겠어."

그래, 카라마츠가 지금 손목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팔을 걷어붙이지 않은 것도, 아무도 건들지 않는 벽장 뒷편에 내던져진 커터칼도, 가끔 밤중에 사라지는 것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것도 모두모두 알고 있으니까. 내게는 기대줘. 원망하는 거래도 상관없어. 받아줄 테니까. 이 말들은 입 안에서 맴돌고 있다. 다만 입 밖으로 내보낼 때, 이 말들은 나를 홀가분하게도 할 수 있지만, 카라마츠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 될지도 모른다고 내 이성이 붙들고 있다. 직구는 변화구로 바뀌어버렸다. 여전히 직구지만, 직구 속에는 생략이 많다.

"진심이라, 그렇지. 난 형제들을 사랑하고 있다. 그건 이제까지도, 지금도 변하지 않은 진심이야."

카라마츠가 다물고 있던 입술을 떼서 얘기한 말은 이것. 이것도 카라마츠의 진심이겠지만, 내가 원했던 진심하고는 조금 다르다. 카라마츠가 의지해줬음 좋겠어. 자신의 약한 면을 드러내줬으면 좋겠어. 아니면, 차라리 형제들을 사랑하고 있는 그냥 단순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인 카라마츠인 채로 있어주길 바랐는데. 카라마츠의 잔은 비었다. 카라마츠의 시각에서는 말이지. 그러나 내 시각에서는, 카라마츠의 잔은 어둠으로 가득차고 있는 것이다. 그걸 비었다고 얘기한다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속에 든 내면의 어둠은 어디까지고 카라마츠를 붙들고 있다. 그리고 그 어둠은, 우리 형제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거겠지. 카라마츠의 몸을 당겨 끌어안았다. 지금 나는 카라마츠의 벽을 무너뜨릴 수 없다. 다만, 이렇게라도 나의 사랑이, 형제들의 사랑이 카라마츠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 달이 잔을 채운다. 나의 진심도 잔을 채우고 있기를.

 

 

 

창가에는 깨끗이 씻은 빈 잔이 놓여 있다. 그 옆에는 학알을 채운 하트 모양 유리병이, 그리고 그 옆에 새로이 하시모토 냐의 프린트가 된 일본주 병이 놓여 있다. 일본주 병은 옆의 잔이나 병처럼 반짝 빛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쩐지, 희미하게 햇빛을 반사시키는 그 병도 반짝 빛나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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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분량이 길어지고 있나요? 그런 거라면 좋을텐데. 드디어 제 느낌으로, 대화가 적고 생각이 많이 들어간 스타일의 쵸로마츠 편이 나왔습니다. 쵸로마츠 편은 꽤 일찍부터 구상하고 있었는데. 소재는 쥬시마츠 편이 먼저, 세부 내용 구성은 쵸로마츠 편이 먼저 나왔습니다. 커플링 느낌도 더 살아있고. 다만 필력이 딸려서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듯 써졌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리고 의외로 토도마츠 많이 나왔네요. 토도마츠, 다음 화 메인입니다(사전예고제 ㅋㅋㅋㅋ) 어쩌다보니 소설로는 쵸로카라가 고통받는 쵸로만 나온 걸 봐서 (연중카라라든가 봤는데) 이번 쵸로는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내가 썼으니까 행복하게 해줘야지! 그러면서 카라는 불행하게 꼴아박는 나쁜 작가입니다. 

  

  

 

Posted by 하리H( )Ri
2016. 3. 6. 02:27

[카라른/ 쥬시카라 편] 누군가 빈 잔을 채워주오 -2- 

誰か
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캐붕,글솜씨없음주의
※5화 카라마츠 사변 기반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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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창문의 틀에는 술잔이 하나 놓여 있다. 카라마츠 형이 올려놓고선 종종 닦아놓는다. 쵸로마츠 형이 깨끗이 닦아주겠다며 나서는 일도 있지만, 그 외엔 누구도 손대지 않는다. 저렇게 닿기 쉬운 위치에 있는데도, 술잔은 늘 비어있는 채 거기 있다. 카라마츠 형에게 술잔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는다. 저 술잔은 카라마츠 형이 잠시 알바를 하고 받은 돈으로 엄마에게 찻잔 세트를 사왔을 때 덤으로 받아온 것이고, 그 술잔을 처음부터 부엌이 아니라 이 방에 놓을 생각이었던듯 형은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저곳에 놓았다. 술잔을 막 저기 놓았을 때는 당연히 다들 궁금해했다. 그때마다 날아온 답이 죄다 "달빛을 마시고 싶기 때문이지."같은 폼 잡는 말뿐이라 별 도움이 안됐지만. 다만 내가 물을 때만은 "술잔을 바라보고 싶어서."라고 알듯말듯한 답을 해줬다.

카라마츠 형은 그저 술잔을 닦거나 바라보는 것밖에 하지 않았다. 술잔을 닦는 것도 먼지가 앉아서일 뿐인듯 대충 털어내다 쵸로마츠 형의 잔소리 이후 바깥쪽만 닦아낼 뿐이다. 무언가 채워볼 생각은 없는걸까? 술잔은 어딘가 쓸쓸해보였다.

-날 채워줘. 빈 채로 두지 말아줘.

술잔이 마치 그렇게 외치는 듯 했다. 술잔을 빤히 들여다봤다. 햇빛을 받아 빛나는 투명한 술잔은 아직 술을 붓기에는 아까워보였다.

아, 생각났다. 여기에 담고 싶은 거.
나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카라마츠 형을 닮은 투명한 술잔은 그 자리에서 나의 귀환을 기다릴 것이다.

동네 문구점에서 반짝이는 학알접기종이와 학종이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집에는 이치마츠 형만 남아있다. 이치마츠 형은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고양이가 저기 있었나. 형의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야지. 길쭉한 학알접기종이를 꺼낸다.


음...학알은 어떻게 접는거지.


종이를 돌돌돌 말아본다. 모르겠다. 삼각형 느낌이었는데 그런건 어떻게 만드는거지.
자."
어느새 이치마츠 형이 내 곁에 왔다. 형은 쪽지 하나를 건네준다. 어라, 여기에 학알 접는 방법이 그려져 있네.
"어디서 찾은겨, 이치마츠 형."
형은 대답 대신 학알종이가 들어있던 봉투 쪽을 가리킨다. 하하. 널부러놔서 못 봤던 거구나.
"이런 거 접어다 어디다 쓰게?"
이치마츠 형이 금색 종이를 하나 집어들며 묻는다.
"저 술잔."
"하?"
"술잔에다가 넣어주는 거야."
"……썩을마츠가 싫어하지 않을까?"
"술잔이 자기를 채워주길 바라는걸!"
이치마츠 형이 날 빤히 쳐다본다. 왜일까.
"……맘대로 해."
그러고선 쪽지를 보고 학알종이를 척척 접어낸다. 어딘가 각이 잡힌 모습은 아니지만, 학알이 완성됐다. 나도 쪽지를 보고 접지만 모양이 도통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새 빨간색과 파란색 학알을 만든 이치마츠 형은 아까랑은 조금 다른 눈길로 빤히 내 손을 쳐다본다.
"접을 때...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아?"
"그래야 모양이 잘 잡히거든."
"그런가!"
종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접는다. 뭔가 세모꼴로 만들어지고는 있는 거같아.
"쥬시마츠, 난 외출한다."
"으응!"
멸치봉지를 챙겨들고 이치마츠 형이 나간다. 고양이에게 멸치를 챙겨주러 가는 거겠지.

그 뒤로 한참을 끙끙댔다. 쪽지를 보고도 어째선지 학알이 잘 접어지지 않는다. 잔뜩 구겨진 종이들을 한켠에 모아놓고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 그때 카라마츠 형이 방으로 들어왔다.
"반짝반짝한게 아름답군, 브라더."
종이 한 장을 집어들고선 카라마츠 형이 폼 잡고 말한다.
"뭘 만드는가?"
"학알이야."
"그렇군. 학알인가."
이치마츠 형이 만들고 간 학알을 보며 카라마츠 형은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건 보통 병에 담아서 선물하는 것일터. 어디 선물할 데라도 있는건가, 쥬시마츠?"
"저 잔에다 담아두려고."
"잔?"
난 창가에 있는 술잔을 가리켰다. 해가 높이 떠 있어서 그런가 술잔은 더욱 반짝거리고 있다. 형은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보이지 않는 선을 따라 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잔을 바라보는 형의 얼굴은 어쩐지 탐탁찮아 보였다.
"...난 비어있는 쪽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데."
잔은 무언가 채워주길 원하는데, 잔의 주인인 형은 그게 싫다고 한다. 그 말을 꺼내는 형이 저 술잔과 닮아 있어서, 정말로 싫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도 저 잔은 예쁘지만, 이걸 담으면 분명 더 예쁠거야!"

"......"

"하지만 형이 싫다면 그만..."

형은 잠시 고민하는 듯 멍하니 잔을 쳐다보았다. 그러고선 헛기침을 한번 한다.

"쥬시마츠가 원한다면 잠깐은 괜찮아."

"대신 형이 브라더를 위해서 멋있는 병을 구해줄테니, 그땐 거기에 옮겨줬으면 한다."

"응. 알았어!"

그래도 형은 나를 신경써준다. 딱 잘라 거절하지도 않고 내게도 좋을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형의 마음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학알 만드는 거 조금 어려운 일인가, 성공한 거는 몇 개 없어 보이는데."

"아, 이거 만든건 이치마츠 형."

"그런가. 그러면 이 몸이 조금 도와주도록 하지."

그러고선 형은 내 옆에 엎드린다. 아까 집어든 파란색 종이를 쪽지를 보며 의외로 척척 접어낸다.

"어떤가! 잘 만들지 않았는가, 브라더!"

이치마츠 형이 어딘가 딱딱 접히지 않은 학알을 만들었다면, 카라마츠 형이 만든 건 각이 잡혀 세모꼴이 잘 살아있는 학알이다. 여전히 학알이 잘 접히지 않아 구겨진 종이를 보니 조금 풀이 죽네.

"쥬시마츠, 잠깐 손 좀 빌리자."

형이 내 등 뒤에 올라타듯이 하고 내 손을 감싸듯 잡는다. 몸이 살짝 눌려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형이 내 손을 잡고 종이를 접는 동안 종이보다는 형에게 더 신경이 쓰였다. 

"어떤가, 이제는 좀 감이 오는가?"

아뇨, 전혀 감이 안 오는데요. 종이 접는 걸 전혀 못 봤으니까. 신경도 안 쓰고 있었으니까.

"다시 한번 부탁드림다!"

"그럼 다시 한번 접어보도록 하지."

내 손가락들을 꾹꾹 눌러가며 형은 학알을 접어낸다. 종이의 접힌 선은 깔끔하고, 힘을 꾹 주지도 덜 주지도 않아 적당히 모양이 잡힌 학알이 하나 둘 만들어진다.

"이젠 내 힘으로도 만들 수 있을 거 같아!"

"오오, 잘 됐군."

형이 아쉽게도 내 몸 위에서 내려온다. 그래도 다시금 옆에 엎드려서 다른 종이를 집어든다.

"쥬시마츠가 학알을 접는 동안 난 학을 만들고 있을게."

"응응."

 

그 이후로 나는 종이접기에 몰두했다. 형은 이따금 나에게 잘했다, 좋아라며 칭찬을 해줬고 난 그때마다 웃음으로 화답했다. 종이가 사각사각 접히는 소리와 카라마츠형, 나만이 있는 방에서 이어진 종이접기는 쵸로마츠 형이 방에 들어오는 걸로 끝났다. 

"어휴, 방을 이렇게 어질러놓으면 어떡해."

"금방 치울테니까 기다려줘, 쵸로마츠 형."

그동안 접은 학알을 두 손에 모았다. 벌써 해가 기울고 있으니 제법 오랜 시간 만들었구나. 손에 모은 학알들을 보니 아무래도 잔에 넣으면 흘러넘칠 거같다. 뭐, 흘러넘치면 더 좋은 거 아닐까? 손에서 천천히 학알을 잔에 붓는다. 학알이 수북히 차는 모습에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다. 빨간색 학알이 하나 굴러떨어지자 손을 올려서 잔에 학알을 붓는 걸 멈췄다. 쵸로마츠 형이 빈 과자상자를 건네주며 나머지 학알을 넣게 했고 난 학알들과 남은 종이를 집어넣어 책장에 꽂아두었다. 카라마츠 형이 다시 상자를 꺼내 자기가 접었던 학을 집어넣고선 학알이 가득찬 잔을 바라보았다.

 

형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뻐하고 있을까, 언짢아하고 있을까. 형에게서 표정을 읽어낼 수가 없다. 표정이 없다는 말이 이런 의미일까. 아까 종이접기에 몰두하다보니 형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를 볼 수 없었다. 폼 잡으면서 지은 표정 말고는, 형은 오늘 내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거 같다. 역시 형은, 멋대로 저 잔에 학알을 채워넣고 싶어한 내게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쥬시마츠. 학알을 아직은 더 접을 생각인가?"

형이 나를 보며 얘기한다.

"병을 구해다주기로 했으니까, 어느 정도 크기면 좋을지 생각해봐야지."

저 말에는 화가 담겨있지 않다. 형에게 느낄 수 있는 상냥함이 담겨 있다.

"이제까지 접은게 반에 반도 안되니까 저 잔의 네 배 정도면 되겠지?"

"응!"

"그러면 모양은? 쥬시마츠는 어떤 모양이 좋은가?"

난 별 모양이 좋아.

"하트 모양으로!"

형에게 선물할 거니까, 그걸로 형의 마음을 채워주고 싶어.

"그렇다면 하트 모양으로. 알았다."

그러고선 형은 살짝 미소를 지어보인다. 저 미소는 가짜일까, 아니면 진짜일까.

형은 창가로 다가가 잔을 훑더니, 다시금 무표정으로 돌아가버린다. 그리고선 방에서 나가버렸다. 쵸로마츠 형도 슬쩍 잔을 쳐다보더니 카라마츠 형을 뒤따르듯 방에서 나갔다. 방에는 이제 나 혼자만 남았다.

 

형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

빈 잔이 가득 차면, 웃을 수 있을까.

아직 학알이, 내 마음이 부족한 거야.

학알을 접고 접어서, 가득 채워줄게. 형이 진짜 미소를 보여줄 수 있도록.

카라마츠 형이 접은 학을 꺼낸다. 형이 접은 학은 여섯 마리. 우리 형제들의 색과 같은 빨강, 파랑, 초록, 보라, 노랑, 분홍 학을 한 마리씩 접었다. 잔 옆에 뭉쳐 있는 형태로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다시금 학알을 접기 시작한다. 형의 마음을 대신할 병을 찾아올 때까지, 이 학알들을 접어서 가득 채워주고 싶으니까. 어느새 노을이 번지기 시작한다. 카라마츠 형의 빈 잔도, 그 잔에 담긴 학알들도 노을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내가 접고 있는 학알들도 빛난다. 반짝임 속에서, 나는 그저 학알을 접어나간다.

 

야구하는 것도 잊고 학알을 틈틈이 접어나간지 사흘만에 학알 종이를 다 썼다. 그 종이들이 오롯이 학알이 된 건 아니었지만, 과자 상자를 두 개나 꽉꽉 채울 정도로 제법 많은 양이 되었다. 카라마츠 형은 학알을 잔에 채운 그날 바로 어디선가 하트 모양 병을 구해와서 마당 한 켠에 씻어서 말려놓았다. 햇빛이 좋아 금방 말랐는데도 형은 그 병을 방으로 가져오지 않고 마당에 그대로 두었다. 

"카라마츠 형, 다 접었어."

형이 내가 내미는 과자상자를 받아든다.

"그러면 병, 가져올까?"

"응, 가져와줘."

형은 내려가서 하트 모양 병을 가지고 왔다. 병의 크기를 보아하니, 학알들을 모두 넣을 수 있을 거 같다. 눈대중이 좋구나, 카라마츠 형은.

내가 과자상자 하나를, 형이 다른 과자상자 하나를 들고 병에 붓는다. 이윽고 잔에 있던 학알만이 남았다. 

"어떻게 하고 싶어, 카라마츠 형?"

형은 잔과 병을 번갈아 쳐다본다. 병에 옮겨줬으면 좋겠다던 형이 고민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어쩐지 기분이 좋다. 

"역시 병에 옮겨 담아야겠지..."

형은 조금 아쉬운 듯 잔을 가져오더니 병에 옮겨담는다. 조금씩 쥐어서 옮겨 담으니 어디 바닥에 흘리거나 하지 않고 금세 병을 채운다."

"응! 그리고 카라마츠 형,"

"응?"

"자 이거!"

나는 형에게 병을 내밀었다.

"선물이야."

"다른 사람 주는 거 아니였나?"

"아녀아녀, 처음부터 카라마츠 형 주려고 접은 거니까."

형은 병을 받아든다. 지금 형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아무래도 진짜인 듯 싶다. 형의 온기가 들어있으니까. 

"고맙다, 쥬시마츠."

형은 병을 빈 잔의 옆에 놓았다. 그리고선 내가 늘어놓았던 학들을 병 위에 올려놓는다.

이제 형의 마음은 텅 빈게 아니라고, 내 마음이 전해졌을 것이다.

 

 

 

 

 

 

 -고마워, 덕분에 오늘 밤은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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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로 소설을 쓰면 문단 띄는 게 항상 곤란합니다. 읽기 편하라고 문단을 띄는 걸 당연하게 하고 있는데, 이건 틀린 문법이란 말이지. 거기에 얽히면 곤란하기도 하고, 띄는 거 자체가 어떤 장치로 작용할 수 있는데 그걸 날리는 거같단 말이죠. 하여간 어렵습니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으로 정작 내용물은 안 타는 쓰레기...

 

Posted by 하리H( )Ri
2016. 2. 29. 12:19

갑자기 쓴 이야기

어제 본 풍경이 정말 예뻤습니다.

따라서 답지 않은 동화체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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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어느새 다 가는 2월 말. 벌써 꽃샘추위라는 말이 오르내릴 정도로 최근 며칠 동안엔 따뜻했습니다. 아직 꽃들이 피지는 않았지만 새싹은 몇 개 본 것도 같습니다.

 

'이제 봄이 오는 걸까?'

 

토도마츠는 입고 나갈 옷을 고르며 생각합니다. 날씨는 맑음, 방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도 조금 따스합니다. 그동안 추워서 입지 못한 봄옷을 꺼내들고 토도마츠는 거울 앞을 이리저리 살폈습니다.

 

'역시 이 옷이 좋겠어!'

 

기분에 따라 옷을 차려입고 봄을 준비하러 1층으로 나섭니다.

1층 거실에는 자신과 얼굴이 꼭 닮은 형제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명 있습니다. 토도마츠는 여섯 쌍둥이의 막내. 쌍둥이인데 형제들에게 일일이 형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조금 불만스럽지만, 그래도 좋은 형제들입니다. 자신의 일에 대해 크게 관여하지 않으니까요.

 

"토도마츠, 어디 나가?"

 

장남인 오소마츠가 웬일로 불러 세웁니다. 토도마츠는 조금 귀찮음을 느낍니다. 오소마츠는 조금 참견하는 버릇이 있어서, 용건을 간단하게라도 얘기하지 않으면 물고 늘어집니다. 나쁜 일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니니, 토도마츠는 그냥 행선지를 이야기합니다.

 

"응. 근처 쇼핑몰에서 옷이라도 살까 하고 말이야."

 

"헤에-여자애라도 만나는 거 아니고?"

 

오소마츠가 토도마츠의 옷차림을 훑어보고는 떠보는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런 게 기분 나쁘다고 토도마츠는 속으로만 생각합니다. 몇 번 이야기를 했지만 오소마츠의 그 표정은 좀처럼 바뀌질 않거든요.

 

"겨울엔 기회가 없어서 연락처 받은 애가 없거든요!"

 

조금 짜증내는 투로 내뱉고선 토도마츠는 재빠르게 현관을 빠져나와 집 밖으로 나섭니다.

 

'뭐야. 겨울에는 별 핑계 다 대가며 집에 묶어두더니 여자애라도 만나냐고 떠보다니.'

 

이번 겨울, 유독 오소마츠는 토도마츠를 자기 옆에 두려고 했습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든지, 오늘은 춥다든지, 형아 외롭다든지...20살 넘어서 할 일 없이 집에만 있으니 가장 고만고만한 막내라도 잡아서 놀아달라는 투정을 부리는 장남이 우스우면서도, 그런 투정을 부릴 때 어딘가 어린애처럼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는 걸 보고 있노라면, 한숨을 한 번 쉬고 상대가 되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도 그럴게, 여섯 쌍둥이라고는 해도 토도마츠와 오소마츠만큼 서로 죽이 잘 맞는 형제는 없거든요.

 

'이젠 봄이 왔으니, 형도 조금은 밖으로 나돌겠지. 원래는 집돌이도 아니었으면서 왜 이번 겨울에는 유독 집에만 박혀있었을까, 오소마츠 형.'

 

그런 의문을 떠올리고 보니 오소마츠에게 짜증낸 채 나온 게 조금 후회됩니다. 그래도 오소마츠는 담아두는 것 없는 바보니까 괜찮을 거라며 토도마츠는 자기위로를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쇼핑몰 앞입니다.

 

여기는 봄. 형형색색의 봄옷들이 쇼핑몰 곳곳에서 꽃 핀 듯 진열되었고, 쇼핑몰 한가운데에는 봄이 왔다는 듯 모형 벚꽃나무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직 벚꽃이 피기에는 조금 이르니까, 오늘 느끼는 봄기운을 만끽하기 위해 모형 벚꽃나무 아래서 셀카를 한 장 찍어봅니다. 오늘도 귀여운 얼굴로 나와서 만족스럽습니다. 이후에는 정신없이 쇼핑몰을 휘젓고 돌아다닙니다. 봄나들이에 어울릴 듯한 모자나 편하면서도 지금 입은 옷과 잘 어울리는 운동화, 아침 조깅할 때 입을 운동복, 미팅이라도 잡는다면 입고 나갈 수 있는 포인트 있는 셔츠... 눈이 팽글팽글 돌아가는 화려한 옷가지들의 향연에 빠져듭니다. 물론 관심이 가는 알바생에게 번호를 따는 것도 잊지 않고요. 꽃밭과도 같은 쇼핑몰 내부에서 이곳저곳을 휘저으며 다니다 조금 쉬어볼까 생각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와. 엄청 구름이 꼈는데?"

 

"비...아니 눈이 흩날린다! 오늘 날씨 도깨비 같네."

 

토도마츠는 바깥을 돌아봅니다. 과연, 아까까지 감돌던 봄기운은 어디로 가고 잿빛 하늘에 눈 알갱이들이 흩날리고 있습니다.

 

'이런, 오늘 옷은 얇게 입고 왔는데...'

 

슬슬 돌아가 보지 않으면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 더 추워질지 모릅니다. 옷을 여러 개 껴입고 집으로 돌아갈까 싶다가도 그러면 꼴이 이상할 거 같아 토도마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추운 건 싫은데, 그래도 지금 가는 게 좋지 않을까 고민만 앞서지만 쇼핑몰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할 때마다 들어오는 한기에 발을 쉽게 내딛지 못합니다. 어쩌면 좋을까 하고 발만 동동 구릅니다.

 

"토도마츠!"

 

어디선가 토도마츠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자기와 똑같은 얼굴의 사람이 손을 힘차게 흔들고 있습니다.

 

"형아가 와줬다궁! 고맙지?"

 

토도마츠는 대답 없이 오소마츠의 행색을 봅니다. 늘 그렇듯 빨간 파카에 목도리만 두르고 온 대충 온 차림입니다. 화려한 쇼핑몰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오소마츠의 모습이 조금 우습기도 했지만, 그가 없었더라면 추위에 덜덜 떨며 돌아왔을 자신을 생각하니 고마웠습니다.

 

"조금 꾸미고 오지 그랬어."

 

"잠깐 데리러 온 건데 그럴 것까지 뭐 있어.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지더니 눈이 쏟아지길래 놀라서 온 거니까."

 

사실 토도마츠가 나가기 전에 오소마츠는 오늘 날씨가 추워질 거라고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따뜻하게 입으라는 말이 맴돌았다가 저렇게 딱딱하게 얘기하는 토도마츠가 조금 얄미워져서 다른 얘기를 꺼냈는데, 이렇게까지 추워질 줄은 몰랐습니다.

 

"자, 우산 쓰고 가자, 토도마츠"

 

오소마츠가 자기가 하고 있던 목도리를 토도마츠에게 둘러줍니다. 오소마츠의 온기가 토도마츠의 목에 전해져서 아까까지의 한기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당장의 따뜻함에 토도마츠는 기뻐했지만, 그 뒤 눈에 들어온 오소마츠의 휑한 목 주변이 조금 마음에 걸렸습니다.

 

"오소마츠 형은 괜찮아?"

 

"집까지 금방 가는걸. 신경 쓰지 마. 너 입을 걸 가지고 나온다는 걸 깜빡해서 목도리밖에 줄 게 없었거든."

 

역시 형은 바보입니다. 걱정이 됐다는 주제에 옷가지도 챙겨 나오지 않은 하나만 생각하는 바보. 이번 겨울이 유독 추웠으니 밖에 나가지 않은 것도 추위를 피할 좋은 방법을 그것밖에 못 떠올린 걸지도 모릅니다. 오소마츠의 벌벌 떠는 표정을 보면서 토도마츠는 그런 생각에 확신을 가집니다. 그러는 새, 다행히도 눈이 그칩니다.

 

"휴, 눈이 그치니까 좀 낫네."

 

"추운 건 똑같은걸 뭐, 얼른 걸어가자 형."

 

집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벌써 어둑어둑해진 거리에는 가로등이 하나 둘 들어옵니다. 갑자기 오소마츠가 멈춰섭니다. 입술이 조금 파래진 채 오소마츠는 어딘가를 바라봅니다.

 

"토도마츠, 저것 봐."

 

오소마츠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으로 토도마츠가 고개를 돌립니다.

 

"어라?"

 

거기에는 벚꽃이 핀 나무가 한 그루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습니다.

 

"자세히 봐봐."

 

"아."

 

자세히 보니 벚꽃 나무가 아니라 아까 쌓인 눈이 살짝 얼어서 가로등 불빛을 반사하는 거였습니다. 눈이 쌓이기 전에는 겨울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앙상한 나무였는데, 눈과 빛의 조화로 밤벚꽃처럼 보인 겁니다.

 

"우와...신기하네. 봄인 줄 알았는데 겨울 날씨, 겨울인줄 알았는데 봄 풍경이 딱 펼쳐져 있잖아."

 

"그러...켈록...게...켈록"

 

오소마츠가 기침을 내뱉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풍경을 담아두고 싶다는 듯 오소마츠는 그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네, 바보 형이니까.'

 

토도마츠는 오소마츠가 그 풍경을 더 눈에 새길 수 있도록 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기왕이면 이 순간이 오랜 추억에 남았으면 하하고 생각합니다.

 

토도마츠가 오소마츠를 끌어안고, 자신의 볼을 비볐습니다. 파래진 입술도 다시금 붉어질 수 있도록 입술도 가만히 맞댔습니다. 오소마츠는 처음엔 조금 놀라더니 입술을 좀 더 내밀고선 토도마츠를 안아줍니다.

 

이번 겨울동안 보낸 시간, 그리고 겨울의 끝에 맞이한 밤벚꽃까지 해서 둘의 추억은 아마 오래도록 남아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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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체 어려워! 오글거려! 우와앙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실 동화를 읽은지도 오래되서 동화체가 뭔지도 모르는 게 함정

 

써놓고 보니 이거 뭔지 모르겠네요 ㅋㅋㅋㅋㅋ

 

그냥 요새 베니마츠가 좋아져서 썼을 뿐

 

어제 본 눈 쌓인 나무가 밤벚꽃같아서 좋았는데 묘사력 완전 없어!!!!!!!!!!!!!크하하하하ㅏ하하하하하하하하하ㅏㅎ

 

이런 쓰레기를 내놔서 죄송합니다.

 

 

 

 

Posted by 하리H( )Ri
2016. 2. 22. 00:42
誰かカラッポの盃を満たしてくれ

※카라마츠 중심, 결론적으로는 카라총수지만 커플링별 조명 예정이라 카라른을 기본표기 후 커플링 별도 표기합니다.
※캐붕,글솜씨없음주의
※5화 카라마츠 사변 기반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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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새벽에 잠에서 깼다. 깊은 잠을 잔 게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그나마 잠을 다시 잘 수 있는 날은 다행, 그렇지 않은 날엔 낮과는 차원이 다른  불안한 감정에 휩쓸린다. 물론 잠을 잘 수 있다는 건 '그나마' 나을 뿐이다. 최근, 이라기엔 꽤 오래된 일 같지만 같은 꿈만을 꾸고 있을 뿐이니까. 자기가 죽는 꿈을. 그것도 자살하는 꿈을. 자살 방법도 각양각색, 내가 알고 있는 죽는 방법을 뇌 속에서 있는 대로 끄집어내서 보여주고 있는 걸까. 과장 좀 보태서 만 번은 꾼 거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꾸고 있으니까.

자살하는 꿈을 꾸기 시작한 이후 깨고 나면 수첩에 꿈에서의 자살 횟수를 기록하는 게 어느새 일상이 됐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자살을 시도한 날에 표시도 같이 해둔다. 현실은 꿈만큼 창의적이지 않아서, 기껏 시도한대봐야 높은 건물에 올라서는 거나 커터칼을 왼팔 손목에 긋는 것 정도다. 몇 번을 손목을 그어 죽으려고 시도한 흔적은 나이테처럼 쌓여 있다. 누군가 물어오지 않도록 요즘엔 소매를 걷지 않거나 쥬시마츠에게 팔목 보호대를 빌려 차고 있다. 살짝 소매를 걷어올려보니 막 새살이 돋아 튀어나온 흉터가 보인다. 다시 소매를 내렸다.

창가 틀에는 투명한 술잔이 빛나고 있다. 앉으면 머리 위와 닿는 아슬아슬한 위치기는 하지만, 의외로 건드리는 일이 없다. 그건 그거대로 쓸쓸하게도 느껴진다만. 지금것 아무것도 담아 본 적 없이 비어있는 채 그저 거기에 놓여있을 뿐인 술잔은 달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술잔을 보며 미소를 살짝 짓는다.

계속 비어있는 채로, 비어있는 걸 드러낸 채로 오늘도 나는 살아있구나.

살아있다기엔 조금 슬픈 텅 빈 나.

거기에 죽고 싶다는 욕망이 조금씩 채워지고 있다.

옆에는 형제들이 태평스레 잠들어있다. 내게서 등을 돌린 채 새우잠을 자고 있는 이치마츠, 즐거운 꿈이라도 꾸는건지 연신 키득거리는 토도마츠, 파칭코에서 따는 꿈을 꿨는지 크게 잠꼬대를 외치는 오소마츠, 귀를 막다가 지친 듯 손이 귀 근처에 머무르고 있는 쵸로마츠, 끝으로 90°로 돌아서 자고 있는 쥬시마츠까지. 예전같았으면 형제들에게 이런 일을 상담했을텐데.

납치극을 당했을 때 형제들의 반응을 직면한 뒤 형제들에게 기대는 것이 어려워졌다. 사과는 받았지만, 마음 속에 상처는 손목의 금들처럼 흉터가 졌다. 텅 비어있는 마음의 겉면에도 잔뜩 흠집이 나있을 터다.

다시금 잠자리에 누웠다. 빈 술잔이 빛나고 있다. 오늘도 저 술잔에는 나의 슬픔을 한 잔 따랐다가 비워낸다. 아침이 됐을 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다행히 오늘 밤은 몽롱해지는게, 그래도 잠이라도 들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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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른인데 컾이 없다니 이건 사기!
것보다 팔아프네ㅜㅜㅜ

 

Posted by 하리H(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