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키스는 달콤하고도 쌉쌀한 맛이었다. 덜 녹은 다크 초콜릿과 맥주의 알코올이 혀에 남아 자아낸 첫 키스. 첫 키스는 달콤했다느니 키스에서는 레몬사탕맛이 난다느니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 사실감 있는 생생한 그 달콤쌉싸름함은 아마 평생 입 안에 감돌겠지.
“고2때였던가, 발렌타인데이를 며칠 앞두고 있었던 일인데. 상점가를 어슬렁거리며 뭐 재밌는 일 없나,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 둘러보던 중이었지. 거기서 설마 우리 형제를 볼 줄이야. 그것도 카라마츠를 말이지. 그 카라마츠가 잔뜩 쫄아있으면서도 우리가 절대 안 들어갈 고급 과자가게에 들어가는 거야. 화이트데이에도 절대 안 들어갈 데인데 발렌타인데이에 들어가는 건 정말 이해가 안 됐지. 아마 연극부 선배 부탁같은 걸 받아서 대신 사다주나 싶어 카라마츠한테는 안 들키게 숨어서 지켜봤어. 그런데, 녀석이 진지하게 초콜릿을 고르더라고. 뒷모습만 보여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누구 부탁을 받은 게 아니라 스스로 선물할 거를 고르는 느낌? 4개짜리 초콜릿을 골라 포장하던데 가격이 꽤 되더라고. 그냥 편의점이나 가게에서 파는 평범한 초콜릿을 10개는 넘게 살 가격이라 충격이었지. 1개당 한입거리나 겨우 될까말까한 쬐그만 거였다고! 아무튼 잘 포장된 초콜릿 상자를 들고 나오는 카라마츠의 표정을 슬쩍 봤는데, 행복한 듯 배시시 웃는 게 낯설더라고. 그러다 가게 들어갈 때보다 더 근심 어린 표정으로 가버리더라. 대체 누구한테 주려는 걸까. 혹시 자기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자기위로를 거창하게 하는 걸까 싶었지. 그런데…”
“무슨 얘기 하는 중이야, 오소마츠 형?”
“공원 쓰레기통에서 초콜릿 주워 먹은 얘기”
“뭐야, 그게? 갑자기 오늘은 꼭 누구한테 이 얘기를 해야 직성 풀리겠다며 묻지도 않고 옆에서 주절주절 떠들어대기 시작했으면서 어떻게 끝나는 지 그렇게 허무하게 말해버린다고?”
“으엑. 무슨 고양이나 너구리마냥 공원 쓰레기통을 뒤져서 주워먹는거야? 발렌타인데이에 뭐 못 받았다고 그렇게까지? 저런…”
토도마츠는 오소마츠를 쓰레기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째려보고선 다시 나가버렸다. 쵸로마츠도 괜히 이야기 들어주다 시간 버렸다며 투덜대고선 그 뒤를 따라 나갔다.
“아니, 그 사이가 중요한 얘기인데… 아! 실수로 마지막 부분이 튀어나왔어!! 그게 문제라고!!! 누가 고민 상담 좀 해줘!!!!!!”
오소마츠의 절규가 처절하게 무시당하던 그 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카라마츠는 몇 년 만에 다시 예전의 고급 과자가게에서 초콜릿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은 없는데 초콜릿값은 꽤나 비싸졌군. 이번에도 4구짜리로 사야겠다만, 여전히 뭘 고르는 게 좋을 지 모르겠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는 진지하게 초콜릿을 골라 계산하고 포장한 상자를 점원에게서 받아들고선 상자를 양손으로 꼭 쥐었다.
‘이번에는 꼭 제대로 전하는 거다. 못 하겠다면 이제 마음정리를 해야겠지…’
두 사람의 마음 속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발렌타인데이는 올해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가버렸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가 괜히 자기 근처에서 쭈뼛대는 걸 눈치챘지만, 괜히 말을 붙이면 곤란해질 거 같아 모른 척 자리를 피했다. 카라마츠는 피하는 오소마츠를 적극적으로 붙잡고 얘기할 용기가 없었다. 이래서는 예전과 똑같지 않은가, 생각하면서도 손을 뻗으려는 거리가 너무 멀기만 했고, 내딛으려는 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그렇게 자정이 되어버리고, 올해의 발렌타인데이는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해질녘,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슬쩍 불러내선 발렌타인데이의 화풀이를 하러 가자고 꼬드겼다. 화풀이라니 무슨 단어 선택이 그러냐며 웃으면서도 이게 정말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카라마츠는 어제 못 전한 초콜릿을 몰래 챙겼다. 상점가에는 발렌타인데이가 지나버려 화려한 포장의 의미를 살짝 잃은 초콜릿이 할인 딱지가 붙은 채 여기저기 진열돼 있었다. 카라마츠가 진지하게 둘러보고 있는데, 오소마츠는 휙 하고 빠르게 상자 하나를 집어들었다.
“봐봐 이거. 안에 위스키가 들었다나봐. 궁금하지 않아? 이거 먹고도 취할까? 아, 술 얘기 하니까 한 잔 하고 싶네. 아쉬운 대로 맥주라도 한 캔씩 깔까? 초콜릿을 안주삼아서 말야. 형아가 쏜다! 어때?”
“아… 어… 그러지 뭐. 별일이네.”
오소마츠가 코를 쓱 비비며 웃어보였다. 언제까지고 어린애같다니까. 그러면서도 어떨 때는 누구보다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고. 따뜻하고. 별 거 아닌 듯 내미는 그의 손이 다정해서, 그를 특별하게 보게 되고 말았는데 말이지. 그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나서 지나버린 시간이 너무나 길어서, 아마도 건네지 못할 작은 상자를 파카 주머니에서 만지작거리며 카라마츠는 엷은 미소로 답했다.
어느새 둘은 겨울밤의 공원에서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치비타네서 오뎅이라도 몇 개 먹고 올 걸 그랬나 아쉬워하며 저녁밥도 안 먹고 초콜릿에 맥주라는 생소한 조합으로 술자리를 마련한 채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는 초콜릿 상자를 열었다. 위스키가 들었다던 초콜릿이나, 살짝 느끼한 크림같은 게 든 초콜릿, 분홍색 하트모양에 딸기맛이 나는 초콜릿… 약간 출출한 탓인지 긴장한 탓인지 카라마츠는 초콜릿을 열심히 집어먹었다. 오소마츠는 시원하게 맥주 캔을 따서 꼴깍꼴깍 마셔댔다.
‘말이 겨울이지 그리 춥지는 않다만 시원하게도 마시는군.’
생각하며 집어든 조금 까만 색의 초콜릿을 집어들어 입에 넣은 카라마츠의 볼을 갑자기 오소마츠가 쓰다듬었다.
“있잖아, 카라마츠.”
그러고보니 다크 초콜릿이라고 하던가 비터 초코라고 하던가. 아무튼 처음 경험하는 달콤한 향과 조금 씁쓸한 맛의 조합에 카라마츠의 온 신경은 잠시 혀 끝에 집중됐다.
“나랑 사귀자.”
볼을 쓰다듬던 손이 그대로 목덜미를 끌어당기고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답은 듣지 않은채 그대로 자기 입술을 카라마츠의 입술에 맞댔다. 어느새 어깨를 잡으며 살짝 카라마츠를 안는 듯 다가온 그를 카라마츠는 밀쳐내지 않았다. 오소마츠가 맞댄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넣자 카라마츠는 바로 제 혀를 그의 혀에 섞었다. 초콜릿이 녹아간다. 맥주의 향이 섞인다. 혀에서 느껴지는 씁쓸한 맛과 달콤한 맛이 끈적이며 카라마츠의 입 안을 채웠다.
‘아니, 잠깐.’
그제서야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툭 밀어냈다.
“지금 뭐, 뭐한 건가… 냅다 키스를 하는 게 어딨어?”
“헤에, 자기가 고민도 안 하고 바로 받아줘놓고 그렇게 말하는 거?”
“잠시 생각하는 걸 잊어버렸다고 할까… 그보다 뭐야? 뭐지?”
“사귀자고, 카라마츠. 연애하자고.”
“에, 어, 연애라니 무슨 소릴…”
“내가 널 사랑하고, 너도 날 사랑하잖아? 형아는 다 알고 있다고. ”
카라마츠가 멍하게 오소마츠를 쳐다보았다.
“용기내서 한 고백이니까 너무 매몰차게 거절하진 말아주라.”
천진난만한 미소로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멍하니 있던 카라마츠는 곧 얼굴을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카라마츠를 오소마츠는 말없이 감싸안았다.
“고마워, 좋은데, 뭐라고 답해야 할 지, 모르겠어.”
훌쩍거리며 힘겹게 말하는 카라마츠가 그저 사랑스럽지만, 설마.
“으응, 아니다. 사귀자고 해줘서 고맙다, 오소마츠. 너무 좋아서, 어떤 말로 답해야, 내 마음이 표현될 지 모르겠어. 허락하는 걸로 받아들이면 된다. 언젠가 지금 마음을, 제대로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
훌쩍거리며 울든지, 걱정하는 표정을 짓던지, 기뻐서 배시시 미소를 짓던지, 하나만 하라고. 하지만 이런 표정을 짓는 카라마츠는 지금 이 순간의 자신만이 보는 거겠지. 오소마츠는 그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돌아오는 길에 카라마츠가 언제 자기 마음을 눈치챘냐고 물었다. 오소마츠는 당황하면서 그냥 얼마 전부터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얼버무렸다. 어제도 괜히 자기 주변을 쑥쓰러워 하는 표정으로 맴돌지 않았냐면서. 카라마츠는 그 말에 얼굴을 붉히며 역시 발렌타인 초콜릿을 준비하던 걸 눈치챈 건가, 라며 건네지 못할 줄 알았던 주머니 속 초콜릿을 오소마츠에게 건네 주었다.
“초콜릿은 이미 물릴 대로 먹어버렸으니 천천히 먹어도 되지만, 안에 편지가 있으니… 아무도 안 보는 데서 진지하게 읽어줬음 한다. 그렇다고 읽은 감상 같은 거 들려 달란 건 아니니까 읽고 나서 놀리지 말고.”
“에이, 내가 왜 놀리겠어. 혼자 조용히 읽어볼게. 그나저나 제대로 된 발렌타인 초콜릿 받는 건 처음이네! 하루 지나긴 했지만 대충 그런걸로 해도 괜찮지 않을까? 뭐, 고백도 내가 하긴 했지만! 아무튼 고마워, 카라마츠.”
“......”
“응?”
“훗, 고백을 선수치기당해서 좀 아쉬웠을 뿐이다.”
그러고선 대화가 끊긴 채 집에 와서 둘 다 자연스레 다른 형제들에게는 둘의 관계 변화를 숨겨버렸다. 언젠가는 들키거나 둘의 입에서 이야기가 나올 테지만. 둘의 첫 날 또한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은 씁쓸함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날 밤, 카라마츠는 꿈을 꾸었다. 세상은 온통 하얬다. 눈으로 뒤덮인 곳에 끝없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곳. 이정도로 눈이 오는 풍경을 카라마츠는 책이든 TV에서든 본 적이 없었지만, 이 꿈을 지금까지 몇 번이고 꾸고 있다. 눈보라 속에서 누군지 모를 두 사람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듯 흐릿하게 보였다 사라진다. 두 사람은 새하얀 옷을 입고 있어 더 눈에 띄지 않는데다 움직이지도 않는다. 혹시 모르지. 두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닮은 하얀 바위같은 것일지도, 아니면 사람 아닌 존재일지도. 이 풍경은 볼 때마다 낯설다만 짐작이 가는 건, 적어도 저 ‘두 사람’에 자신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 어디까지나 이 풍경을 보는 관찰자의 시선이었다. 두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는커녕 한 걸음 앞의 눈밭을 밟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꿈은 오소마츠에 대해 강렬한 감정을 품은 날 꾸게 된다는 것. 그게 어째서 이런 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소마츠에게 낯선 감정을 처음으로 품은 그 날 처음 꾼 이 꿈은 그 뒤도 그런 날마다 꾸게 되었다. 기쁜 날이었든, 화가 잔뜩 난 날이었든, 슬픈 날이었든, 즐거운 날이었든, 이 꿈을 꾸고 난 뒤에는 왠지 코끝이 시큰거리며 마음 한 켠이 아려오곤 했다. 오늘은 기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행복한 날인데도, 여전히 이 꿈은 슬프고 왜 꾸는 건지도 모르겠는걸. 뭐, 꿈은 꿈일 뿐이니까. 이젠 행복하게 오소마츠와 시간을 보내면 그걸로 되는 거겠지. 그렇게 반 년 정도가 지났다. 울고 웃으며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시간과 형제들과 빈둥빈둥 보내는 시간이 함께 흐르며, 이런저런 사건들이 많이 있었지만, 별일없이 둘은 사귀고 있었다. 변화는 찬바람이 슬슬 불기 시작하는 계절에 일어났다. 오소마츠가 대뜸 카라마츠에게 결혼하자며 프로포즈를 해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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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아마 2020년인가 2021년부터 묵히고 있던 겁니다. 저는 더 오래 묵힌 것도 많은데 아마 꺼내들면 군내가 나버리지 않을까 싶은. 그래도 한 번 저질러야 하지 않겠나, 올려야지 뒤에를 쓰지 않을까 싶어서 4기 막화 방영 앞두고 1화를 올려버리는 P인간입니다. 구글문서에 몇 개의 수정판과 다른 버전이 섰여 있는데 결국 몇 문장 건져오고 다시 쓰게 되는 문제가... 그래도 약 5년을 틈틈이 망상해서 머릿속에 (재미는 보장 목 하겠지만)기승전결이 되어있다는 거 믿고 올리는데 폰으로 쓰는데 폰 오타가 좀 믾이 심해져서 쓰기 불편함+순수한 스태미너 저하+안그래도 없는 능력이 더 사라짐 등이 발목을 잡네요😵💫
제목의 Aisology는 2기 오프닝의 가사에서 따왔습니다. 애정학? 애정론? 대충 이렇게 번역하면 될 말일텐데 제목을 달콤쌉싸름한 애정론?이렇게 한국어로 할까 고민하다 그냥 예전에 꽂힌 그대로 쓰게 되네요. 얼른 쓰고 털어내자! 못 털어낸 거 진짜 써야지! 이런 심정...
'#소나무_연성 > [카라른] 글 그림 낙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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